2차 개각 3인방 위기 탈출 승부수

돌아온 레트로 전사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추석을 앞두고 윤석열정부의 2차 개각이 시작됐다. ‘공격수 장관’을 통해 국회에 긴장을 불어넣으려는 ‘문책성 개각’이란 의문이 제기된다. MB정부의 재탕 인사라는 비판과 함께 후보 개인사 논란까지 잇따라 터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의 칼날이 녹슬 새가 없다.

지난 13일, 윤석열 대통령이 2차 개각을 단행했다. 국방부 장관 후보자에는 국민의힘 신원식 의원,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 장관 후보자에는 유인촌 대통령실 문화체육특보(이하 특보)가 올랐다. 여성가족부(이하 여가부) 장관 후보자에는 국민의힘 김행 전 비상대책위원이 내정됐다. 대통령실은 연륜과 전문성, 책임성 등을 고려했다고 밝혔지만 “여우 피하려다 호랑이 만난 격”이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총알 장전

세 후보를 대상으로 한 인사청문회(이하 청문회) 정국이 막을 올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공세는 국방부 신임 장관 후보인 신 의원에게 집중되는 분위기다. 현 국방부 장관의 ‘꼬리자르기’ 비판이 제기되자 신 후보의 자질을 검증하겠다는 것이다.

해병대 채 상병 순직 사건과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논란 등이 불거지면서 민주당은 이종섭 국방부 장관에 대한 탄핵소추안 발의를 공식화했다. 정무 교체 기류가 확산하자 이 장관은 개각 발표 하루 전인 지난 12일, 사의를 표했다.

야당의 탄핵소추가 현실화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국방 안보 공백 사태를 막기 위한 대통령실의 의중이 반영됐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를 두고 민주당은 “이 장관 사의 표명은 외압의 몸통을 감추기 위한 은폐 작전”이라고 비판했다.


차기 국방부 장관 후보로 오른 신 후보는 국회 국방위원회 국민의힘 간사이자 합동참모본부 차장 출신이다. 그는 하마평에 오를 때부터 여당 내에서도 거센 반발을 샀다. 이 장관이 해병대 순직 사건을 은폐하려 했다면 신 후보는 ‘박격포 오발탄’ 사건 조작을 시도했다는 의혹을 받기 때문이다.

신 후보는 1985년 10월 자신이 중대장으로 있던 경기도 포천 육군 8사단 공지합동훈련 중 박격포 오발탄을 맞고 숨진 A 일병의 사인을 ‘불발탄 사고’로 조작하는 데 관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당시 군 수사기관은 A 일병이 불발탄을 밟아 사망했다고 결론내렸지만 지난해 10월 재심사에 나선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는 ‘오발탄에 의한 사망’이라고 판단했다.

당시 진상규명위 결정문에 따르면 “누구 주도로 사망의 원인이 왜곡·조작됐는지 확인할 수는 없었다”고 적시됐다. A 일병의 소속 부대 지휘관과 간부들이 사인을 불발탄을 밟아 사망한 것으로 왜곡·조작함으로써 사고의 지휘 책임을 회피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 밖에도 신 후보는 국회 입성 전인 2019년, 문재인정부 당시 한 집회서 “문재인 모가지를 따는 건 시간문제”라는 발언으로 여당의 집중 포격을 맞았다. 이와 관련해 신 후보는 “청문회 중이나 청문회 직후 국민께 충분히 설명드리겠다”고 말을 아꼈다.

“문 모가지” 발언 논란
영부인 친분설 뒷말도

차기 문체부 장관으로 내정된 인물은 MBC 드라마 <전원일기>의 김 회장네 둘째 아들 용식이로 이름을 알린 유인촌 특보다. 2002년 당시 서울시장이던 이명박 전 대통령의 인수위원회 위원을 시작으로 정치권에 발을 들였다. 이후 이명박정부 초대 문체부 장관으로 임명돼 3년간 재임한 ‘MB맨’으로 꼽힌다.

유 후보는 장관 재직 중 세웠던 공로보다 ‘육두문자 사건’이 더 널리 알려졌다는 평을 받는다. 2008년 10월 국회 국정감사 도중 기자들을 향해 삿대질하고 욕설하는 영상이 두고두고 회자되면서다. 야당뿐 아니라 일부 여당 내부서도 유 후보자를 탐탁지 않아 한다는 의견이 나오는 모양새다.


이 밖에도 장관 재직 당시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에 연루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야당의 집중 공세를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언론계 블랙리스트’ 작성 의혹을 받는 이동관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 위원장이 깔아 놓은 판에 유 후보가 합세할 것이란 우려도 적지 않다.

둘이 손발을 맞춰 언론과 미디어를 입맛대로 주무를 것이란 게 일부 민주당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지난 14일 유 후보는 인사청문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면서 블랙리스트 의혹과 관련해 입을 열었다. 그는 “대립적 관계는 있었지만 그렇게까지 그런 적은 없어 잘 모르겠다”며 “현장서 느끼는 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잘 정리해보겠다”고 밝혔다.

김 후보는 김현숙 현 여성가족부 장관을 제치고 자리한 만큼 주목도가 높다. 김 장관이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대회(이하 잼버리) 파행 등으로 사실상 불명예 퇴진을 하면서 여가부를 누가 이끌 것인지 이목이 쏠렸기 때문이다.

김 장관은 잼버리 파행 사태를 기점으로 언론과의 소통을 회피하면서 문제를 키웠다는 평을 받는다. 청와대 대변인 출신인 김 후보자 임명을 통해 여가부의 전체적인 이미지 쇄신에 나섰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김 후보는 다른 인사에 비해 비교적 논란이 적었지만 김건희 여사와의 친분설이 불거지면서 급격하게 관심이 쏠렸다. 김 후보가 김 여사와 20년가량 친분을 쌓아온 만큼 이번 내정에 영부인 입김이 작용했을 것이란 의혹이 제기되면서다.

하나둘 자리 앉는 MB맨들
용산 ‘안방마님’ 노렸나

이를 두고 민주당은 “김건희 여사와 20년 지기로 사실상 여성가족정책을 김건희 여사에게 넘기겠다는 말로 들린다”며 “국민은 대통령을 뽑았지 대통령 부인을 뽑은 게 아니다”라며 공세 수위를 높였다.

해당 의혹에 관해 김 후보는 “저는 70년대 학번이고 여사님은 70년대생인데 어떻게 연결이 될 수 있는지 잘 모르겠다”고 일축했다. 그러면서 “가짜 뉴스의 정도가 지나쳐 괴담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개각을 두고 민주당에서는 “국민 뜻을 외면한 퇴행적 내각”이라고 비판했다. ‘이념 전사’를 보강하고 ‘이념 전쟁’의 선봉장이 될 강경파를 수혈했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윤정부의 인재풀 논란도 일었다. 용산에 MB맨 비중이 늘어나는 만큼 ‘인물 돌려막기’가 아니냐는 지적이다. 앞서 임명된 이 방통위원장을 비롯한 김영호 통일부 장관, 이주호 교육부 장관 등 역시 이명박정부 출신 인물이다.

윤 대통령의 정치 경험이 짧은 만큼 믿고 맡길만한 인재가 많지 않아 한계에 부딪혔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새로운 인재를 발굴해 국정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 취재진과 만나 “유인촌·이동관의 투트랙 장악에 관한 우려도 크지만 가장 문제되는 것은 국민의 피로도”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지금 국정을 운영하는 게 윤정부인지 MB정부인지 알 수가 없을 정도”라며 “국민은 이미 한 차례 데어봤다. 과거 인사를 다시 꺼내드는 것은 10년 전 그 시절을 또 겪으라는 셈”이라고 꼬집었다.

지뢰밭

지뢰밭 인사청문회는 이미 예고됐다. 앞서 윤 대통령이 국무위원들에게 “전사가 돼야 한다”고 주문한 만큼 이번 후보들은 ‘최전방 공격수’에 걸맞은 인물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청문회 회의론이 또다시 반복될 것이란 의견이 우세하다. 한 민주당 의원실 관계자는 “어차피 인사청문회서 걸러지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당내서도 다소 회의적인 반응이 대부분이라는 입장이다. 이제는 정쟁을 넘어선 ‘전쟁’ 같은 청문회가 될 것이라고 시사하기도 했다.

<hypak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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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쩍쩍’ 갈라지는 국민의힘 내분 트라우마

‘쩍쩍’ 갈라지는 국민의힘 내분 트라우마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비상계엄령 사태 이후에도 국민의힘은 오로지 계파 갈등만을 보여줬다. 이들이 공감했던 것은 오로지 “이재명은 안 된다”였다. 국민의힘은 어쩌다가 대권주자로 두드러질 만한 정치인이 사실상 사라져 “이재명은 안 되니 탄핵도 안 된다”는 주장까지 하게 됐을까?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일 오후 11시25분 비상계엄령을 선포한 후 이튿날 오전 0시49분부터 국회 본회의가 개의되기까지 모인 국회의원은 190명이었다. 이들은 오전 1시 비상계엄해제 요구 결의안을 안건으로 상정해, 1분 후 가결했다. 본회의장 밖에선 국회 직원들과 보좌진이 국회에 진입한 계엄군이 본회의장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고 있었다. 국회 밖서는 갑작스러운 계엄령 선포에 놀라 모인 시민들이 항의 시위를 하고 있었다. “이재명은 안 된다” 당시 국회에 모인 의원 190명 중 국민의힘 소속은 18명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친윤(친 윤석열)계 의원들은 어디에 있었을까? 국민의힘 추경호 당시 원내대표는 오전 0시15분 비상 의원총회를 소집했다. 소집 장소는 중앙당사였다. 당사에 모인 친윤계 의원은 40여명이었다. 이들은 그저 당사서 대기만 했다. 의원총회를 할 의제나 지도부의 지침이 없었기 때문이다. 같은 시각,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본회의장에 들어가 비상계엄령이 해제되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었다. 한 대표는 국회의원이 아니기 때문에 본회의장에 들어갈 수 없지만,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양해를 얻어 들어갔다. 정작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본청에 있었다. 표결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추 전 원내대표의 당시 행적을 놓고, 국민의힘 김상욱 의원은 “의원들이 국회에 못 들어가도록 계속 헷갈리게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우 의장에게 ‘의원들이 들어올 수 있도록 시간을 달라’고 말했다”며 “우 의장은 ‘기다릴 수 없는 상황’이라면서 표결을 진행했다”고 항변했다. 이로써 국민의힘은 비상계엄령이 선포된 상황서도 계파 갈등을 드러냈다. 당시 상황은 외신으로도 급박하게 보도되고 있었기 때문에, 국민의힘의 계파 갈등은 전 세계로 알려졌다. 계엄군의 체포 대상에 포함됐던 한 대표는 지난 4일 오후 추 전 원내대표, 한덕수 국무총리와 함께 윤 대통령을 만날 수 있었다. 계파 갈등은 여기서도 확인됐다. 한 대표는 윤 대통령의 탈당과 김용현 당시 국방부 장관의 해임을 요구했다. 김 전 장관은 이미 사의를 표명했지만, 한 대표는 ‘해임’ 형식을 요구했다. 윤 대통령은 둘 다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어 계엄군의 체포 시도를 항의하는 한 대표에게 “정치 활동 금지를 명기한 포고령 위반이니 체포하려 한 것 아니었겠느냐”고 반박했다. 한 대표는 같은 날 한 총리와 정진석 대통령비서실장에게 다시 윤 대통령의 자진 탈당을 요구했다. 윤 대통령은 선수를 쳤다. 그는 한 대표의 탈당 요구 이전 한 총리와 국민의힘 중진들을 만나 “임기 중단이 있어선 안 된다”고 요구했다. 이 회동에 참여한 국민의힘 중진들은 주호영·김기현·권성동·권영세·나경원·윤재옥 의원 등 6명이었다. 이들이 윤 대통령의 탈당에 동의하지 않고, 윤 대통령의 주장에 동조한 이유는 단 하나였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에게 유리한 대권 구도를 만들어줄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한 대표의 윤 대통령 탈당 요구는 사태를 수습하기 위한 최소한의 시작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었다. 하지만 중진들은 그 순간에도 ‘이재명’이라는 세 글자에 꽂혀 있었다. “이 대표를 거론할 때마다 국민의힘에 비판적인 유권자에게 이 대표에 대한 강한 확신을 줄 수 있다”는 전술적 고려도 못하는 것이다. 계엄 이틀 만에 적중한 의심 대권주자 사라진 여 갈팡질팡 한 대표는 “비상계엄령 선포 후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들을 체포해 가두려고 했다”는 사실을 확인한 지난 6일부터 조속한 직무 정지를 거론했다. 이때만 해도 한 대표는 대단히 강경했다. “윤 대통령이 대통령직을 유지하면, 극단적 행위를 반복할 위험이 있다”는 발언도 이어갔다. ‘조속한 집무집행 정지’는 일반적으로 탄핵안 가결로 이해됐다. 하지만 ‘탄핵’이라는 쉽고 간결한 두 글자가 아니라 굳이 아홉 글자를 거론했다. 평소 말을 자주 바꾸고, ‘간을 본다’는 지적을 받는 태도로 인해 “야당의 탄핵안 발의 및 가결에 협조할지는 두고 봐야 한다”는 일각의 의심도 있었다. 그 의심은 이틀 만에 적중했다. 한 대표는 지난 8일 한 총리와 공동담화를 발표한다. 일명 ‘한덕수 책임총리 체제’라는 정체불명의 과도기 통치 방안의 등장이었다. 이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지난 7일 대국민 담화서 “제 임기를 포함해 앞으로 정국 안정 방안은 우리 당에 일임하겠다”고 말했다. “더는 대통령 직무를 정상적으로 소화할 수 없다”는 현실만큼은 인식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이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최순실 게이트 정국이 한창이었던 지난 2016년 11월29일 진행한 대국민 담화 내용과 거의 비슷했다. 박 전 대통령은 당시 “대통령직 임기 단축을 포함한 진퇴 문제를 국회의 결정에 맡기겠다”고 말했다. 물론, 차이는 있다. 박 전 대통령은 여야를 함께 언급했지만, 윤 대통령은 ‘우리 당’만 언급했다. 박 전 대통령은 개헌을 화두로 던지면서 김병준 국민대 교수를 ‘책임총리’로 지명했다. 이로 인해 탄핵 움직임이 다소 둔화됐지만, 여야가 국민 여론을 이기지 못해 얼마 지나지 않아 무산됐다. 한 대표는 이를 이어받아 ‘사실상 직무 배제’와 ‘질서 있는 퇴진’을 언급했다. 그러면서 “총리는 당과 긴밀히 협의하면서 함께 지혜를 모아, 주 1회 회동을 하겠다”고 밝혔다. 총리와 여당이 과도기를 이끌겠다는 체제였다. 윤 대통령은 사임하지도 않았고, 사고·궐위 상황도 아니었다. 그런 대통령을 건너뛰고, 총리가 국정에 개입할 아무런 권한이 없는 여당 대표와의 협의를 거쳐 과도기를 이끈다는 것은 상식을 뛰어넘는 발상이었다. 심지어 한 대표는 국회의원도 아니어서 국회 본회의장조차 야당의 양해를 얻어 들어갔다. 민주당 이 대표는 같은 날 “한 대표가 국민의힘 대표인 것은 알겠는데, 무슨 자격으로 직접 국무총리와 의논해 정하겠다는 것이냐”며 “무슨 공산당 인민위원장쯤 되느냐”고 비판했다. 일당 독재하는 당이 행정부보다 절대 우위인 공산국가 통치 구조를 빗대어 한 대표를 비판한 것이다. 이후 한 대표는 여론과 야당으로부터 뭇매를 맞는다. 학계서도 큰 비판을 받았다. 체포 대상으로 지정된 피해자라는 인식도 완전히 사라졌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한 대표를 ‘너’라고 지칭하면서 “네가 어떻게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을 직무 배제할 수 있느냐”고 비판했다. 홍 시장은 “대한민국 국민은 너한테 국정을 맡긴 일이 없고, 당원들이 당무를 맡겼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말 바꾼 윤석열 친윤의 주장은 정리하기 어렵다. 처음엔 “한 대표가 대통령 놀이를 하고 있다”는 비판을 이었다. 윤상현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당 최고위원회·의원총회, 또 여러 원로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해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방안을 모색하라는 의미”라면서 한 대표를 비판했다. 반대로 “친윤들이 한 대표와 한 총리를 총알받이로 내세운 것 아니냐”는 의혹 제기도 있다. 그 근거로는 “여론의 비난을 피하면서 탄핵안 가결을 방해하려는 의도”라는 해석이 제시되고 있다. 윤 대통령의 ‘우리당 일임’ 발언이 나온 후 하루 만에 나온 과도기 방안 발표였기 때문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김 교수를 책임총리로 내세워 여론의 비판을 무마하려고 했던 박 전 대통령 시절 수습안의 복사판으로 보일 여지가 있다. 친윤의 학습효과에 대해 상당한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는 대목일 수도 있다. 한덕수 책임총리 체제라는 ‘쿠데타 속 쿠데타’는 며칠도 못 가 국민의 관심 밖으로 사라졌다. 설령 윤 대통령과 한 대표가 일시적으로 연합한 결과라고 해도, 큰 의미를 두기는 어려워졌다. 두 가지 난제가 밀려왔기 때문이다. 야권이 지난 4일 발의한 윤 대통령 탄핵안은 지난 7일 국민의힘의 조직적인 본회의장 이탈로 정족수가 충족되지 않아 ‘투표 불성립’ 처리됐다. 추 전 원내대표의 사퇴로 인해 지난 12일 진행된 원내대표 경선 과정서도 이들은 또 상호 비방에 몰두했다. 이는 국민의힘이 어떤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정치를 하는지 스스로 입증한 것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전대미문의 사태로 인해 분노한 국민 여론보다는 ‘탄핵 트라우마’를 언급하면서, 여당 지위에 대한 집착과 “이재명은 안 된다”는 생각을 행동으로 드러낸 것으로 분석될 가능성이 컸다. 실제로 의원총회서는 “탄핵을 2번 당한 당을 누가 찍겠느냐? 보수 정당은 멸문지화를 당할 것”이라는 발언이 있었다. 이에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은 “위헌적인 비상계엄에 대해 많은 의원이 심각성을 잘 못 느끼는 것 같다”고 우려했다. 이후 국민의힘 의원들의 지역 사무실과 SNS 계정은 거센 질타에 노출됐다. 몰려든 지역구 주민들은 지역 사무실에 달걀 등을 던지거나 근조화환을 전달하면서 항의했고, 자택 앞에서 커터칼이 발견된 김재섭 의원은 경찰이 신변보호 조치에 들어갔다. 휴대전화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문자메시지가 수신됐다. 윤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 자체를 두둔하는 일부 의원들과 조직적인 투표 거부로 인해, 정당해산심판 요구까지 불거지고 있다. 국회 국민동의 청원 게시판엔 국민의힘 정당해산 청원이 올라왔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탄핵 반대 당론을 정해 내란의 종결을 방해했다면, 정상적인 헌법 수호 의지를 가진 정당으로 볼 수 없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왜 이런 반응을 보이는지는 지난 4월 진행된 제22대 총선서 확보한 지역구 의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수도권서는 일부 지역 기반이 탄탄한 의원들 외에는 전멸했고, 충청권서도 대패했다. 부산·경남선 완승했지만, 경합 지역이 많았다. 발등 찍힌 친한계 현재 국민의힘 의원들의 지역구는 예외적인 몇몇 의원을 제외한 대부분이 영남과 수도권 내 일부 부촌에 한정된다. 이들이 진짜로 우려하는 멸문지화는 당의 멸문지화가 아닐 가능성이 있다. 당의 기반이 무너져 자신의 안정적인 지역구와 금배지가 무너지는 멸문지화를 우려했을 가능성이 크다. 당이 무너지면 자신의 지역 기반도 함께 무너지기 때문이다. 이들의 계파 갈등은 근본적으로 당의 주도권 다툼,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텃밭 확보전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기 어렵다. 이런 흐름이 굳어지면서, 강성 지지자들의 구미에 맞는 발언을 하는 분위기가 정착됐다. 윤 의원은 지난 11일 국회 본회의 긴급 현안 질의서 “1997년도 대법원 판례를 보면, 비상계엄은 고도의 정치행위, 통치행위로 보고 있다”고 주장했다. 통치행위는 고도의 정치적 결단에 의해 발동되는 대통령의 행위고, 사법심사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이 원칙이기는 하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통치행위가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할 경우는 사법적 심사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대법원도 “비상계엄의 선포나 확대가 국헌 문란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행해졌다면, 법원은 그 자체가 범죄행위에 해당하는지 심사할 수 있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윤 의원은 이론과 판례의 앞부분만 잘라서 합리화한 것이다. 특히 대법원의 입장은 윤 의원의 옛 장인 전두환씨의 12·12 쿠데타와 5·18 광주민주화운동 관련 내란 등 혐의 유죄가 확정되는 판례서 나왔다. 통치행위는 행정법을 공부할 때 가장 먼저 접하는 개념이다. 수많은 공무원시험 응시생들이 있는 나라서 견강부회할 수 있는 개념이 아니다. 이런 견강부회가 국민의힘 의원들만 하는 것은 아니긴 하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아는 개념을 토대로 공식 석상서 너무 노골적으로 저질렀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된다. 강성 지지자들을 결집시키고자 하는 목적으로 저지를 수 있는 견강부회가 아니다. 이런 풍토가 구조화된 국민의힘에선 이 대표에 맞설 대선주자가 사실상 사라진 지 오래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여론조사공정㈜이 <데일리안>의 의뢰로 지난 9일 100% 무선 ARS 방식으로 진행한 차기 대권주자 지지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49.0%는 이 대표를 선택했고, 9.1%는 한 대표를 선택했다. 한 대표 외 다른 주자로는 오세훈 서울시장 6.0%, 홍 시장 5.8%,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 3.3% 순이었다. 다시 휘감은 박근혜 악몽 천막당사는 그저 옛이야기? 홍 시장은 윤 대통령과 한 대표를 각각 대통령과 당 대표로 재임하는 현 상황을 “용병 정치”라고 평가했다. 지난 8일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윤 대통령이 탄핵을 당하더라도, ‘용병 윤통’이 탄핵을 당한 것이고, 한국 보수진영이 탄핵을 당한 것이 아니다”라며 “우리는 용병 하나 선택을 잘못했을 뿐이니, 기죽지 말자”고 주장했다. 격려인지 조롱인지 알 수 없는 홍 시장의 주장에 오래전부터 누적된 문제점이 모두 터진 국민의힘의 현 상황이 모두 녹아있다. ‘3김’이 각각 대통령 임기 만료와 정계 은퇴로 사라진 이후, 국민은 여의도 문법에 익숙한 국회의원의 대통령 당선을 원하지 않았다. 노무현·이명박·문재인 전 대통령은 국회의원을 지내긴 했지만, 여의도 문법보다는 고유의 캐릭터를 내세워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박 전 대통령도 오랜 의정 생활이 아닌 ‘아버지의 후계자’라서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윤 대통령은 지난 2021년 7월 국민의힘 입당을 통한 정계 입문 이후 1년도 지나지 않은 지난 2022년 5월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그 비결은 전임자들과 똑같이 고유의 캐릭터였다. 이 대표와 한 대표가 대권주자 반열에 오른 계기도 똑같다. 박 전 대통령은 후계자를 용납하지 않는 성향까지 아버지와 똑같았으나 방법은 달랐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2인자 경쟁을 유발해서 1명이 2인자로 확고하게 자리매김하는 것을 막았다면, 박 전 대통령은 처음부터 2인자로 두드러질 수 있는 싹을 잘랐다. 유승민 전 의원은 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배신의 정치’라는 낙인이 찍혔다. 박 전 대통령을 추종하는 정치인들과 지지자들은 여전히 “유 전 의원은 박 전 대통령 덕분에 국회의원이 됐으면서, 자신을 키워준 박 전 대통령을 배신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이 파면된 이후 새누리당은 옹립할 대선주자가 없었다. 그런 상황서 갑자기 출마했던 후보가 홍 시장이었다. 지난 대선서도 국민의힘은 홍 시장 외엔 이렇다 할 대선주자가 없었다. 그래서 ‘용병’ 윤 대통령을 입당시켜 대선주자로 옹립했다. 윤 대통령을 옹립하면서 국민의힘 의원들은 적당한 대선주자를 내세운 후 자신들은 지역구 국회의원으로서 마치 일본 전국시대 다이묘처럼 군림하는 흐름에 완전히 익숙해졌다. 차기 대선주자로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는 한 대표도 홍 시장의 말대로 ‘용병’이다. 여론은 국회의원에게 비판적이지만, 비상계엄령 해제 과정서 확인했듯이 그들이 제대로 일을 해야 할 때는 앞장서서 국회를 뒷받침한다. 국회에 대한 비판적 여론은 민생보다는 당리당략에 몰두하는 흐름에 대한 불만으로부터 비롯됐을 뿐이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여론의 동향을 자신의 정치생명 유지에 악용하는 것으로 보일 여지가 강한 선택을 이어왔다. 이 대표가 강해서 국민의힘의 차기 대선 패배 가능성이 큰 것이 아니다. 꼼수에 익숙해져 ‘고유의 캐릭터’를 국민에게 제시할 능력을 상실해서 패배 가능성이 큰 것이다. 상실의 시대를 스스로 열었던 것일 뿐이다. 스스로 연 상실 시대 국민의힘 계파 갈등은 앞으로도 사사건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럴수록 국민의힘이 맞이한 상실의 시대는 더욱 길어질 가능성이 크다. 스스로 연 상실의 시대를 종식하는 방법은 따뜻한 텃밭서 잃어버렸던 자기 자신을 찾는 것은 아닐까? 지난 2004년 불법 대선자금 사태 당시 천막 당사로 ‘차떼기당’이라는 오명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이들에게 그저 한 편의 옛이야기인가 보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