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한 번 깨진 그릇은 붙여도 금이 남는 법이다’. 신뢰와 관련해 흔히 쓰이는 말이다. 특히 인터넷 커뮤니티 등의 발달로 과거의 사건이 끊임없이 회자되는 시대인 만큼 한 번의 잘못은 곧 불신으로 이어진다. 그 대상이 공권력이라면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2020년 말 기준 전국에 있는 경찰서는 257개에 이른다. 그중 서울에만 31개가 있다. 250여개가 넘는 경찰서 중 유독 자주 언급되는 곳이 있다. 바로 강남경찰서다. 수년 전 ‘버닝썬 게이트’로 크게 잃어버린 신뢰를 현재까지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에이스였다가…
특히 ‘롤스로이스 사건’으로 또 한 번 크게 주목받는 상황이다. 지난 2일 오후 8시10분께 강남구 신사동 압구정역 4번 출구 인근 도로서 20대 여성이 롤스로이스 차량에 치인 사건이 발생했다. 운전자인 신모씨는 사건 당시 약물을 복용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피해자는 머리와 다리 등을 크게 다쳐 수술을 받았지만 현재 뇌사 상태다.
신씨는 사건이 일어나고 약 10일이 돼서야 구속됐다. 지난 11일, 서울중앙지법 유창훈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 위반(위험운전치상) 혐의를 받는 신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증거인멸 우려가 있다는 이유였다.
경찰은 마약 간이 시약검사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식, 행적 조사 등을 통해 신씨의 향정신성의약품 투약 사실을 확인했다. 신씨의 체내에선 케타민, 디아제팜, 미다졸람, 프로포폴, 아미노플루티느라제팜 등 7종의 성분이 검출된 것으로 파악됐다.
신씨는 “병원서 수술을 받은 후 의사에게 케타민을 처방받았다”고 진술했다. 그는 지난 2월부터 병원 4곳을 돌며 16차례 피부 질환 관련 시술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롤스로이스 사건은 유튜브 채널 <카라큘라 탐정사무소>에 게재된 영상을 통해 크게 확산됐다. 카라큘라는 “신씨는 사고 직후 ‘차 밑에 사람 있다’고 소리치는 주변 행인의 외침에도 갑자기 액셀러레이터를 밟아 피해자를 매단 채 건물 외벽을 들이받았다”며 “그로 인해 피해자는 더욱 심각한 부상을 입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천천히 여유롭게 차에서 내린 가해자는 만신창이가 된 피해자를 살펴보지도 않은 채 비틀거리며 경찰과 구급대원이 도착할 때까지 누군가와 통화만 했다고 한다”면서 “신씨는 강남경찰서에서 대형로펌 소속 변호사와 함께 여유롭게 웃으며 조사를 받고 있는 것을 경찰서에 방문한 저와 제작진이 직접 목격했다”고 주장했다.
롤스로이스 사건 관련 자료가 공개되면서 국민적 공분이 일었다. 여기에 기름을 끼얹은 게 바로 강남경찰서다. 신씨를 체포한 뒤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아 석방한 것. 마약 간이 시약검사에서 케타민 양성이 확인된 이후였음에도 신씨는 17시간 만에 경찰서를 걸어 나왔다.
피해자가 생사를 넘나드는 수준의 부상을 입었고 마약 복용 관련 의혹이 불거졌는데도 불구하고 신씨가 구속 조치되지 않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비난이 빗발쳤다. 강남경찰서는 “신씨의 변호사가 신원보증을 하고 책임지겠다고 해 석방했다”며 “구속할만한 사유가 없었다”고 해명했다.
천호성 법률사무소 디스커버리 대표 변호사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 <빡친 변호사>에 ‘진짜 강남경찰서 제정신인가?’라는 글을 남겼다.
버닝썬 게이트 악몽 이어
롤스로이스 사건으로 뭇매
천 변호사는 “마약 양성 반응이 나왔고 고작 20대가 6억원짜리 롤스로이스를 타고 온몸에 문신을 두르고 있으며 아무런 잘못이 없는 피해자는 두 다리를 절단해야 할지도 모르는 일을 당했는데도 대형로펌(법률회사)이 신원 보증해 줬다고 그걸 받아준다는 게 민중의 지팡이라는 경찰이 할 짓인지 도저히 이해가 안 되고 분노에 치가 떨린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피의자의 구속수사와 불구속 수사는 하늘과 땅 차이”라며 “불구속 수사를 하는 순간 피의자와 관련 있는 쟁점에 대해 진실이 밝혀질 가능성은 현저히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마약 양성 반응 나왔을 때 신속하게 압수수색을 하고 증거를 제대로 수집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강남경찰서가 신씨를 석방하면서 수많은 추측이 이어졌다. 강남경찰서가 신씨를 봐주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의 목소리도 나왔다. 결국 강남경찰서는 석방 8일 만에 신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신씨의 신원을 보증하겠다고 했던 변호사는 지난 9일 자진 사임했다. 심지어 법원의 구속영장 발부 사유는 ‘증거인멸 우려’였다.
강남경찰서의 석연치 않은 태도에 2019년 한국 사회를 뒤흔들었던 ‘버닝썬 게이트’가 끌려 나왔다. 이른바 강남경찰서의 ‘전례’다. 버닝썬 게이트는 서울 강남구의 클럽 ‘버닝썬’ 등지서 일어난 폭행 및 경찰 유착·마약·성범죄·조세 회피·불법 촬영물 공유 혐의 등이 총망라된 대형 범죄 사건이다.
강남경찰서는 버닝썬 게이트와 관련해 ‘유착 의혹’으로 곤욕을 치렀다. 발단은 김상교씨가 버닝썬에 방문했다가 클럽 직원에게 폭행을 당했다는 제보로 시작됐다. 당시 신고를 받고 출동한 역삼지구대 경찰관이 김씨를 연행하는 과정서 과잉대응 논란이 일었고 클럽과 경찰 사이의 유착설이 제기됐다.
실제 수사 과정서 버닝썬 측이 미성년자 출입 사건을 무마하기 위해 강남서 출신 전직 경찰관에게 돈을 건넸던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버닝썬 게이트로 강남경찰서는 혹독한 대가를 치렀다. 버닝썬 클럽 폭행사건과 관련해 수사권을 넘겨야 했고 100여명이 넘는 인력이 물갈이됐다. 경찰청이 유착비리 근절 종합대책을 발표하면서 1호 특별인사관리구역으로 지정되는 굴욕도 겪었다. 경찰청에 따르면 관리구역으로 지정되면 최대 5년간 직원의 최소 30%서 최대 70%가 교체된다.
또 헛발질
버닝썬 게이트는 서울 31개 경찰서 중 이른바 ‘핫’한 사건을 자주 맡아 승진 코스로 여겨졌던 강남경찰서의 위상을 나락으로 끌어내렸다. 문제는 그렇게 잃어버린 신뢰를 미처 회복하지 못한 상황서 이번 롤스로이스 사건으로 또 한 번 논란의 중심에 섰다는 점이다.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문제가 불거지면서 강남경찰서는 신뢰 회복을 위해 배로 노력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롤스로이스 사건, 의사도 피소
롤스로이스 사건의 피해자 측이 가해자인 신씨에게 마약류 약물을 처방한 것으로 알려진 의사 4명을 고소·고발했다.
경찰 등에 따르면 피해자를 대리하는 법무법인 해광 권나원 변호사는 사고 당일 가해자 신씨에게 마약류 향정신성의약품을 투약 및 처방한 것으로 알려진 압구정역 인근 모 성형외과 의사를 업무상과실치상, 도로교통법상 약물운전 방조, 마약류관리에관한법률 위반, 의료법 위반 혐의로 서울 강남경찰서에 고소했다.
지난 2월부터 신모씨에게 마약류의 향정신성의약품을 처방해왔다고 알려진 또 다른 의사 3명은 마약류관리에관한법률및의료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