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공정거래위원회가 저승사자의 탈을 내려놓는다. 외부인 접촉 금지 규정을 바꾸기로 한 것이다. 시장경제 활성화에 이바지하겠다는 의지다. 곱게 보이지만은 않는다. ‘전관 논란’의 늪에 재발로 들어가는 꼴이다. 갑질을 타파해야 하는 공정위가 로펌 및 대기업과의 미팅 과정서 로비를 눈감을 수 있다는 우려가 상당하다.
“국민적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바뀌어야 한다.” 2017년 김상조 당시 공정거래위원장의 각오였다. 전관들이 사건 조사 과정서 이른바 ‘방패막이’ 역할을 한다는 비판을 의식한 발언이었다. 이후 ‘부적절한 만남’을 차단하면서 기강 잡기에 나섰다. 하지만 6년이 지난 지금 제재 문턱은 과거로 회귀하게 됐다.
경제 검찰
외부인 접촉관리 제도는 김 전 위원장 때 시행됐다. 대형 로펌 변호사와 대기업 임직원을 만나거나 전화했을 때 5일 이내에 감사담당관에게 의무적으로 보고해야 하는 ‘로비스트 제재’ 규정이다. 사건과 관련해 외부인의 부당한 영향력 행사를 막으려는 취지였다.
공정위는 접촉관리 규정 완화를 적극적으로 검토 중이다. 공정위 안팎의 의견을 듣기 위한 의견 청취에도 나섰다. 지난 4월부터 정책과 조사 파트를 분리한 만큼 정책 업무를 맡은 직원은 외부인 접촉 보고 대상서 제외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조사 담당 직원이라고 해도 대면조사나 자료 제출처럼 공식적으로 공정위를 방문해 접촉하는 경우엔 신고 대상서 제외하는 방안도 논의 중이다. 접촉 신고를 해야 하는 상황과 신고 대상에 들어가는 직원 범위를 줄여 제도를 고치겠다는 의미다.
외부인 접촉 관리 규정상 신고 대상을 공정위 퇴직자로 한정하는 내용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올해 상반기 공정위 직원들이 가장 많이 만난 로펌은 김앤장법률사무소다. 기업집단 중에서는 SK 소속 관계자를 가장 많이 만났다.
지난 1일 국민의힘 윤창현 의원이 공정위로부터 제출받은 ‘외부인 접촉 보고 현황’에 따르면 공정위 직원들은 ▲김앤장(258건) ▲태평양(128건) ▲세종(101건) ▲율촌(90건) ▲광장(63건) 등 로펌과 접촉이 잦았다. 기업집단 중에서는 ▲SK(29건) ▲롯데·KT(14건) ▲현대차·CJ(13건) 등과 자주 만났다.
전관예우 논란 외부인 접촉 금지 엎어
‘내부 적폐 청산’ 정권 바뀌자 봐주기로
접촉 사유는 사건 관련(85.4%)이 대부분이었다. 자료 제출·의견 청취(517건)가 가장 많았고, 현장조사(514건), 디지털 증거수집(131건) 등이 뒤를 이었다.
공정위 직원들의 접촉 보고는 한 해에만 수천건이다. 올해 1~6월 공정위 내에서 외부인 접촉을 했다는 보고는 1520건이었다. 2018년 2851건을 시작으로 지난해 말까지 5년간 접촉 보고 건수는 총 1만7482건에 달한다.
공정위가 제재 문턱을 낮추기로 하면서 로비로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공정위 국장 출신 한 변호사는 “로펌으로 이직한 퇴직 관료 등과 공정위 직원의 사적 접촉, 전관예우 문제를 막고 사건 관련자와 불필요한 접촉을 줄이는 청탁 관행을 막을 수 있었다”며 “실제 외부인 접촉 과정서 퇴직 후 이직이나 낮은 강도의 현장조사를 부탁받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실제 공정위를 떠난 직원 5명 가운데 3명은 기업체나 법무법인으로 이직했다. 특히 3명 중 1명은 국내 5대 법무법인 중 하나인 김앤장으로, 또 1명은 한국콜마의 지주회사인 한국콜마홀딩스로 자리를 옮겼다. 과거 사건을 다퉜거나, 눈여겨 감시하던 곳에 새 둥지를 튼 셈이다.
공정위 직원들이 대기업이나 법무법인으로 이직하는 게 불법은 아니다. 인사혁신처의 심사를 거쳐 문제가 없을 때만 재취업이 가능하다. 하지만 공정위와 대기업·법무법인 간 유착관계에 대한 의심스러운 시선은 거두기 힘들다.
공정위는 전관예우로 검찰의 압수수색을 받은 불명예스러운 과거도 있다. 2018년 6월 ‘재계 저승사자’로 불리는 공정위 기업집단국과 심판담당관실, 운영지원과 등이 압수수색을 당했다. 김 전 위원장이 외부인 접촉 금지 규정 강화에 힘을 실을 수 있었던 이유다.
당시 검찰은 공정위 전직 간부가 업무 유관 이익단체에 자리를 얻는 과정서 불법이 있었고, 이 과정서 공정위가 도왔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대형 로펌·대기업 재취업·로비 창구 악용 우려
인원 줄었는데 현장 점검↑…부실 조사 손놓기?
실제 전·현직 간부 10여명이 취업제한기관에 심사 없이 재취업하기도 했다. 검찰이 밝힌 조사 배경 중 부적절한 사건 자체종결 의혹도 전관예우와 연관된다. 검찰은 부영, 신세계그룹, 네이버 등 대기업들의 주식 소유 현황, 계열사 현황 등을 제출하는 과정서 허위자료가 있는데도 공정위가 봐주기를 했고 해당 기업의 재취업 특혜를 받았다고 봤다.
정치권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17년 8월까지 공정위 4급 이상 퇴직자의 재취업 결과를 분석한 결과 총 27명 중 18명이 삼성전자, 삼성카드, 삼성물산, 현대건설, 기아자동차, LG, KT, 롯데제과 등 대기업으로 자리를 옮겼다. 4명은 김앤장 법률사무소, 법무법인 태평양, 법무법인 바른, 법무법인 광장 등 대형로펌에 들어갔다.
1조원대 퀄컴 소송을 맡은 법무법인 세종은 노대래 전 공정위원장을 고문으로 영입하기도 했다. 이 같은 공정위 OB들은 공정위가 기업에 부과했다가 토해낸 과징금이나 불복 소송서의 패소율이 매년 급증하는 원인으로 지목되는 등 방패막이 역할을 하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현재 공정위는 현장조사를 두고 부실조사에 관한 우려의 목소리도 일고 있다. 현장조사는 증가한 반면, 조사 인력은 감소했기 때문이다. 지난 6월 공정위는 109개 업체에 대한 현장조사를 진행했다. 지난 1월(52개)과 비교하면 2배 이상 증가한 수준이다. 조직개편 전인 1~3월 평균(71.6개) 대비해서도 급증세다.
이 같은 현장조사 증가는 지난 4월 조사와 정책 부서를 분리하는 공정위 조직개편의 영향으로 풀이된다. 개편을 앞둔 공정위는 주요 사건의 현장조사를 미뤄왔다. 담당 국·과장 교체가 예정된 상황서 전임자가 현장조사 등 주요 정책적 판단을 하지 않기 위함이다. 개편 후 그간 미뤄왔던 현장조사가 시작되며 현장조사가 증가했다.
방패막이
또 조직개편 후 성과를 내기 위해 적극적으로 현장조사에 나선 측면도 있다. 조사와 정책 업무가 분리돼 업무 효율성과 전문성이 높아졌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다. 문제는 실적 경쟁하듯 이뤄지는 현장조사로 공정위의 신뢰도가 낮아질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조직개편으로 조사 인력은 감소했는데 현장조사는 늘어 조사가 부실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개편 후 조사 인력은 18% 감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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