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그라지지 않는 새마을금고 논란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3.07.21 08:49:29
  • 호수 143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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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장담 못 하는 심폐소생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새마을금고의 연체율 상승과 예금 인출 사태로 금융권이 휘청이고 있다. 정부와 금융당국은 안심하라며 설득에 나섰다. 건전성에 빨간불이 켜지자 프로젝트파이낸싱(PF) 수수료 비리 의혹 등이 불거졌다. 새마을금고중앙회의 방만 경영도 재조명된다. 올해만 성추문 등 사건 사고가 23건에 달한다. 행정안전부는 반성의 기미는커녕 “잘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경기불황으로 핑계 삼기엔 너무 멀리 와버렸다.

지난 4일, 경기도 남양주시 동부새마을금고 호평지점서 대규모 인출 사태(뱅크런)가 발생했다. 대출 부실로 같은 지역에 화도새마을금고와 합병한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고객들은 예·적금을 해지하기 위해 해당 지점에 몰렸다. SNS 등을 통해 새마을금고가 위험하다는 소문이 퍼졌다.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에 치중한 결과라는 비판이 속출하고 있다.

PF 대출 
치중 결과

부동산 PF시장 후발주자였던 새마을금고는 연체율이 역대 최고 수준인 6.18%까지 솟았다. 특히 새마을금고의 부동산 대출 위주인 기업대출 연체율은 역대 최악인 9.63%에 달했다. 

금융권에 따르면, 불안심리는 지난 2일 절정에 이르렀다. 새마을금고의 수신 잔액이 눈에 띄게 줄면서 시작됐다. 새마을금고중앙회에 따르면 지난 4월 말 기준 258조2811억원이다. 지난 2월 말 265조2700억원에 비해 약 7조원 감소했다.

새마을금고의 연체율(5.34%)도 불안심리를 자극했다. 1분기 기준 상호금융 전체 연체율(2.42%)을 2배 이상 웃돌았다. 내부서 파악한 지난달 기준 잠정 연체율은 6.4%에 달한다.


새마을금고는 “기존 고객이 가입한 상품의 만기로 예금이 빠져 지난 3~4월 금고 예금 잔액이 잠시 감소했다”고 안심시키면서 “5월부터는 상승세를 회복했다”고 수습에 나섰다. 하지만, 국민적 불안감으로 번져 진화작업은 어려워졌다.

새마을금고의 감독 관할 기관은 행정안전부다. 행안부는 새마을금고의 연체율을 낮추겠다고 특별대책을 발표했으나 되려 “오죽하면 정부가 나서나”는 등 불안심리만 키웠다. 행안부는 연체율이 높은 금고 100개를 집중관리 대상으로 선정했다. 이 중 연체율이 10%가 넘는 30개 금고에 대해서는 특별검사를 진행하기로 했다. 70개 금고에 대해서는 특별점검을 결정했다. 필요하면 통폐합도 고려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지난 5일엔 기획재정부도 동참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부실한 금고는 우량 새마을금고서 인수·합병을 통해 예·적금 100%를 이전해 보호한다”고 달랬다. 한창섭 행안부 차관은 서울 종로 교남동 새마을금고를 직접 찾아 “안심하고 새마을금고를 이용하셔도 된다”며 예금 가입 퍼포먼스를 보이기도 했다. 

이튿날엔 행안부, 기재부, 금융위, 금감원, 한은이 컨트롤 타워인 범정부 대응단이 꾸려졌다. 새마을금고 지점이 합병하더도 고객의 모든 예금을 보장할 것을 약속했다. 또 예·적금을 다시 예치하면 비과세 혜택과 당초 약정이율을 복원하겠다고 했다.

곪을 대로 곪은 게 결국 터졌다
급한 불 끄기 나선 정부 대책은?

지난 7일에는 김주현 금융위원장도 종로구 새마을금고 본점을 찾아 6000만원 신규 예금을 가입했다.

불안감만 키웠다는 지적에 행안부는 자세를 바꿨다. 이날 행안부는 연체율이 높은 새마을금고 30곳에 대한 특별검사 계획을 연기했다. 같은 날 범정부 대응단에 따르면, 새마을금고 자금 이탈이 감소세로 전환됐다. 뱅크런서 돌아온 재예치 건수는 이날 3000건을 넘었다.


정부는 재발 방지를 위해 상호금융권의 규제 강화에 나섰다. 새마을금고 같은 상호금융조합은 각 조합원의 자금을 예탁받아 빌려주는 방식으로 영업한다.

탄생 배경은 조합원의 경제적·사회적 지위를 향상하기 위함이다. 직능 중심 조합으로는 농협·수협·축협 단위조합과 산림조합이 있다. 지역 중심 조합으로는 신용협동조합(신협), 새마을금고가 있다. 관리·감독하는 주무 부처는 모두 다른데, 신협은 금융당국이 맡는다. 전문성으로 보면 금융위가 관리해야 한다.

반면, 새마을금고는 행안부가 중점적으로 맡고 있다. 이에 따라 행안부의 관리·감독 부실이 꾸준히 제기됐다. 새마을금고에 대한 감독을 금융위로 통합해야 한다는 의미다. 

행안부는 “새마을금고는 설립 취지가 달라 행안부 관리가 필요하다”며 “지역사회 공헌과 서민금융 지원의 목적이 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서민금융 지원이라는 행안부 입장은 실상과 달랐다. 새마을금고의 부동산 관련 기업대출이 가계대출을 뛰어넘어서다. 새마을금고 통계에 따르면 햇살론 등 공공대출은 2010년 말 기준 1조6302억8000만원서 2020년 말 6988억4700만원으로 급감했다. 약 57%로 줄어든 셈이다.

같은 기간 새마을금고의 총자산은 90조7774억원서 209조1199원으로 2배 이상 불어났다. 반면, 기업대출은 최근 5년 새 급격히 늘었다. 2017년 말 기준으로 기업대출액은 18조367억6700만원이었다. 올해 기준으로는 111조6000억원으로 5배 이상 불어났다. 

“뱅크런
막아라”

논란에 휩싸인 연체율 역시 기업대출서 발생했다. 심지어 가계대출의 연체율은 1.65%로 비교적 안전하게 관리되고 있다. 이번 사태는 고금리 여파로 부동산 관련 대출금 회수가 어렵다는 방증이다. 실제로 기업대출 연체율은 9.63%로 높은 수준이다.

탄생 배경이 서민금융 지원이라는 행안부 입장이 무색할 정도다. 행안부의 전문성 논란이 제기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관리·감독을 금융위로 통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새마을금고의 대응이 한발 늦었다고 지적한다. 같은 상호금융권조차 지난해 하반기부터 부동산 신규 공동대출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은 지난해 상호금융권의 부동산 PF 신규 대출을 중단하도록 지도했다.

이에 지역 농·축협, 신협 등 발을 맞췄던 반면, 새마을금고는 취급한도를 축소하는 데 그쳤다. 이는 새마을금고만 행안부의 관리·감독을 받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논란이 일자 행안부는 “우리가 오히려 더 철저히 관리하고 있다는 평가도 있다”고 반박했다. 사태의 심각성을 통감하기보다는 권한을 잃지 않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다만, 감독 전문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도 있었다. 2020년에는 신용사업과 공제사업의 감독을 금융위와 협의하도록 새마을금고법을 개정했다. 최근 개정된 법은 금감원장 등에게도 지원을 요청할 수 있도록 했지만, 이는 미봉책에 가깝다. 발 빠른 대응이 어렵다는 의미다.


더불어민주당 이형석 의원이 대표 발의한 ‘새마을금고법 일부 개정안’에도 이 같은 내용이 담겼다. 이 의원은 제안 이유로 “새마을금고의 경영건전성 관리에 사각지대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지속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법안은 2021년 1월 발의된 이후 국회 법안심사소위에 머물러 있다. 

행안부가 기득권 유지 차원서 감독권을 고집한다는 해석도 있다. 행안부 외풍은 새마을금고의 인사권에 영향을 줄 정도다. 실제로 새마을금고 인사추천위원회 위원 7명 중 1명을 행안부 장관이 중앙회장과 협의를 거쳐 추천한다. 9명 이상 13명 이하로 구성되는 예금자보호준비금 관리위원회에도 행안부 장관이 3명을 지명한다.

이사장의 
절대권력

게다가 새마을금고중앙회의 예산 승인 권한도 행안부 장관에게 있다. 최근 공포된 새마을금고법 개정안에는 행안부 장관이 임원을 직접 제재할 수 있는 근거도 마련됐다. 

반면, 행안부가 감독할 명분으로 제시한 지역금융 기능은 약화됐다. 금융연구원에 따르면 새마을금고의 비수도권 자산 비중은 2012년 61.8%서 2021년 54.7%로 낮아졌다. 같은 기간 신협은 68.6%서 66.8%로 1.8%p 감소에 그쳤다. 새마을금고의 비수도권 대출 비중은 2012년 63.2%서 2021년 55.5%로 낮아졌다. 

신협은 70.0%서 67.0%로 3%p 떨어졌고, 농협은 60.4%서 62.3%로 오히려 1.9%p 상승한 것과 비교된다. 새마을금고의 방만 경영을 뚜렷하게 확인할 수 있다. 행안부엔 새마을금고를 관리할 금융 전문가도 없다. 심지어 행안부 공무원 10명이 전국의 새마을금고 4000개를 관리한다.


지역 단위 경제에 이바지해온 역사적 배경과 달리 지방 금고 수는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2010년 기준 1480개였던 금고 수는 지난달 기준으로 1293개까지 감소했다.

일각에선 “지역별 금융 수요를 파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새마을금고가 지역경제를 위한 목적에 충실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신양철 전 새마을금고중앙회 상근이사도 이번 사태에 대해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신 전 상근이사는 <뉴스핌>과의 인터뷰서 “새마을금고는 고수익을 좇는 조직이 아니다”며 “부동산 PF 투자도 상생이 아닌 수익을 염두에 뒀기 때문에 발생했다”며 “지역 자금은 지역을 위해 쓴다는 원칙만 지켜도 이번 사태는 없었다”고 지적했다. 

지난 13일 새마을금고 측은 <일요시사>와 전화 통화서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으며 잘못된 정보를 바로잡겠다”고 밝혔다.

끊이지 않는 사건·사고…올해만 23건
횡령·사기는 시중 5대 은행과 맞먹어

무분별한 영업행위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전국의 새마을금고서 올해만 23건의 사건·사고가 발생했다. 새마을금고중앙회 공시에 따르면 ‘감정가격 과다평가 대출’ ‘동일인 대출한도 초과 대출 등 관계형 비위’가 12건으로 드러났다. 직장 내 괴롭힘도 다양했다. ‘폭언이나 폭행’ ‘성희롱을 포함한 직장 내 괴롭힘’ 관련이 9건이었다.

이 밖에 ‘횡령’ ‘직무관련 투자’ ‘출퇴근보조비 중복 수령’ ‘부정 환전을 통한 차액 편취’ ‘목적 외 예산 사용’ 같은 금품 관련 8건 등이었다.

이는 개별 금고 이사장의 막강한 지배구조가 원인으로 지적된다. 새마을금고 사건사고는 다른 상호금융권과 비교해 건수나 피해액이 큰 수준이다. 2017년부터 지난해 8월까지 새마을금고 임직원의 횡령은 총 60건에 피해액만 385억5800만원에 달했다.

같은 기간 농협은 60건·154억원, 신협은 58건·78억원, 수협은 20건·53억원 등이었다.

올해는 지역 금고뿐만 아니라 중앙회서도 비위사건이 발생했다. 검찰은 지난 3월 불법 리베이트를 받은 혐의로 팀장급 직원 A씨를 구속했다. 지난 6일에는 박차훈 중앙회장의 측근인 류혁 중앙회 신용공제 대표이사에 대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등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임직원이 저지른 횡령·배임 등 사고는 수년간 발생해왔다. 행안부에 따르면 2017년부터 지난해 8월까지 횡령·배임·사기·알선수재 사고는 85건으로, 피해 금액은 640억9700만원이었다. 반면, 같은 기간 5대 시중은행(신한·KB국민·우리·하나·NH농협)의 금융사고 건수는 총 210건에 불과했다. 피해액은 1982억원으로 한 곳당 약 40건, 400억원 안팎이었다.

전문가들은 이사장의 독단적인 의사결정이 이번 사태의 일부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무리한 대출을 실행한 건 관리·감독 부실이다. 행안부도 책임을 회피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관리감독 부실
행안부도 책임

김대종 세종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일요시사>와 전화 통화서 “새마을금고 연체율은 시중 은행보다 20배 높다. 철저한 관리와 감독이 필요하다”며 “새마을금고 관리주체를 현재 행정안전부서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소관부처로 바꾸고 금융기관으로 간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책임감을 통감하고 해결에 나선 모습은 다행스럽다. 새마을금고의 불투명한 지배구조를 철저하게 감독할 명분도 주어진 셈이다. 정부는 행안부 관리 부실을 철저히 물어야 한다. 금고 이사장 각자의 막강한 권한도 손질할 때다.


<smk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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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2015년 진행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의 여파가 아직까지 남아있다. 정부는 당시 합병으로 인해 외국계 투자회사인 엘리엇 매니지먼트및 메이슨 캐피탈과 국제투자 분쟁에 휩싸였다. 국제상설중재재판소의 판정으로 정부는 이들에게 약 2100여억원을 배상해야 하는 상황 중 아주 작은 소생의 실마리가 나왔다. 엘리엇 분쟁 사건의 판정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승소한 것이다. 정부가 미국계 해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와의 8년간 진행 중인 국제투자 분쟁에서 반전의 기회를 잡았다. 1300여억원을 배상하라는 국제투자 분쟁 판정에 불복해 제기한 소송의 항소심에서 승소하면서다. 이로 인해 배상 판결이 취소될 가능성도 되살아났다. 사건 발단 짚어보니… 법무부에 따르면 영국 항소법원은 지난 17일 한국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여 1심 법원인 고등법원에 사건을 환송했다. 이에 따라 사건을 되돌려받은 영국 고등법원은 엘리엇에 대한 한국 정부의 배상을 결정한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의 재판 관할권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한국 정부로서는 중재판정 자체를 무효화할 가능성을 다시 확보하게 된 셈이다. 엘리엇 배상 사건은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국제투자분쟁(ISDS) 사건이다. 해당 사건은 지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정부가 국민연금공단(이하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이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면서 시작됐다. 엘리엇은 해당 의혹이 발발한 지 3년이 지나서야 7억7000만달러의 손해를 입었다며 ISDS를 제기했다. 엘리엇의 ISDS 제기는 대한민국 정부에게는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만약 엘리엇의 주장이 받아들여질 경우, 막대한 국민 세금이 배상금으로 지급돼야 하는 상황이었다. 또 국제 중재 절차는 매우 복잡하고 오랜 시간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국가의 대외 신인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법무부를 중심으로 전담팀을 구성하고 국제 법률 전문가들과 협력해 엘리엇의 주장에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양측은 수년간의 준비 과정을 거쳐 네덜란드 헤이그에 위치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서 치열한 법적 공방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국정 농단 사건의 재판 결과와 국민연금 관계자들의 증언 등이 중요한 증거로 활용됐다. 기나긴 법적 공방 끝에 지난 2023년 6월20일, 네덜란드 헤이그의 PCA는 엘리엇의 ISDS 사건에 대한 최종 판정을 내렸다. 판정 결과는 대한민국 정부에게 상당한 충격이었다. PCA는 한국 정부가 엘리엇에 5358만6931달러(당시 환율로 약 690억원) 와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이는 엘리엇이 청구한 금액인 약 7억7000만달러의 약 7%에 해당하는 금액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정부가 국제 중재에서 패소해 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점에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PCA는 판정문에서 국민연금의 삼성물산 합병 찬성 행위가 한국 정부에 귀속되는 행위며, 이로 인해 엘리엇에 손해가 발생했다고 판단했다. 이는 국민연금이 공적기금으로서 정부의 통제 하에 있으며, 그 의사결정이 정부의 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또 정부가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의 정당한 주주 권리를 침해하고 투자가치를 훼손했다고 봤다. 배상 취소 소송 항소심 승소 한미FTA상 성립 불가능 판단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는 이 판정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았다. 법무부는 판정 직후 즉각적으로 불복 절차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2023년 7월18일, 정부는 중재판정부에 판정의 해석·정정을 신청하는 동시에, 중재지인 영국 법원에 판정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정부는 판정에 법리적 오류가 있거나 중재 절차에 중대한 하자가 있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주장하며 판정을 뒤집기 위한 총력전을 펼쳤다. 특히, 정부는 엘리엇 사건이 한미 FTA상 ‘성립 불가능’한 사건이라는 점을 취소소송에서 가장 크게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국제투자 분쟁은 해외 투자자가 ‘투자국’의 협정 위반 행위에 대해 제기하는 국제중재로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는 ‘상업적 행위’일 뿐 국가의 행위로 볼 수 없다는 게 정부의 논리였으나 1심 법원에서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정부는 해당 판결에 대해서도 항소를 진행했고 지난 17일 영국 항소법원은 우리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사건은 다시 1심 법원인 영국 고등법원으로 환송됐으며, 영국 고등법원은 배상 판결을 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 애초 재판 관할권이 있었는지부터 다시 심리하게 된다. 이 판결은 한국 정부가 거액의 배상을 면할 수 있는 반전의 기회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엘리엇 배상 사건의 발단은 삼성물산 제일모집 합병에서 촉발됐다. 지난 2015년 5월26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합병 계획을 발표하며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1대 0.35의 비율로 흡수합병하는 방식이었다. 이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그룹 경영권 승계 및 지배력 강화를 위한 것으로 해석됐으나, 삼성물산 주주들에게는 불리한 합병 비율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8년 소송 결말은? 당시 제일모직의 주가는 삼성물산의 약 3배였지만, 자산총액 기준으로는 삼성물산이 제일모직의 3배에 달했기 때문이다. 이에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는 삼성물산 지분 7.12%를 보유하고 있음을 공시하며 합병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합병 금지 가처분신청을 제기하는 등 적극적인 반대 운동을 펼쳤다. 당시 엘리엇은 삼성물산의 가치가 지나치게 저평가됐으며 합병 조건이 불공정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법원은 엘리엇의 가처분신청을 모두 기각하며 삼성의 손을 들어줬다. 합병의 가장 중요한 변수는 삼성물산의 최대주주였던 국민연금이었다.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들이 합병 반대 의견을 내놨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은 내부 투자위원회를 거쳐 합병에 찬성표를 던졌다. 결국 2015년 7월17일, 삼성물산 주주총회에서 합병안이 통과됐고, 그해 9월1일 통합 삼성물산이 공식 출범했다. 이후 박근혜정부 국정 농단 사건이 불거지면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의 불법성 의혹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특별검사팀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지배력 강화를 위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이 이뤄졌고, 이 과정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제공하는 등 불법 행위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특히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하도록 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관련 인사들이 재판에 넘겨졌다. 2025년 7월17일, 대법원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부정과 관련한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행위, 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 대해 전부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이로써 이 회장은 약 10년간 이어져 온 사법 리스크에서 벗어나게 됐다. 리스크 해소 다양한 반응 엘리엇 배상 사건이 새로운 국면을 맞으면서 법조계와 정치권에서는 다양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항소심에서 ‘한국 승소’로 뒤집히자, 취소 청구를 주도한 법무부 장관으로서 환영했다. 한 전 대표는 “최선을 다하고 성과를 낸 많은 ‘좋은 공직자’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한동훈 전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제가 법무부 장관으로서 지휘했던 엘리엇 국제투자분쟁(ISDS) 중재판정의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대한민국이 이겼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더불어민주당이 저 소송(취소소송 제기) 관련해 저를 많이 비난했었다”고 정쟁적 비판을 상기시켰다. 그는 “‘국익’이 걸렸지만 결과가 나쁠 수도 있는 위험 부담이 큰 문제를 결정할 때, 몸 사리면 공직자들은 편하다. ‘지면 네 돈 낼 거냐’는 폭력적인 질문 앞에서 ‘안 하고 말지’ 생각이 들게 마련”이라며 “그래도 몸 사리지 않고 국익을 생각한 좋은 공직자들이 있다. 이 경우가 그랬다”고 설명했다. 특히 “엘리엇 항소에 대해 ‘질 가능성이 크니 항소하지 마라, 그래서 지면 한동훈 사비로 돈 대신 내라’는 감정적 비난이 많았고, 그런 제목의 언론 사설까지 있었다”면서 공직사회에 “피 같은 국민 세금 아끼기 위해 많은 분들이 혼신의 노력을 해온 것을 제가 잘 안다”고 격려를 보냈다. 한 전 대표는 “의미있는 승리지만 이 사안은 아직도 갈 길이 먼, 쉽지 않은 싸움”이라며 “끝까지 최선을 다해 국익을 지켜주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법조계에서는 엘리엇 배상 사건처럼 메이슨 캐피탈이 같은 이유로 제기했던 ISDS의 중재판정 취소소송 항소 포기에 대한 아쉬움을 내비쳤다. 한 국제통상 전문 변호사는 “엘리엇과 메이슨은 같은 이유로 ISDS를 제기했다”며 “엘리엇은 취소소송의 항소심을 진행하면서 메이슨은 지연이자 등으로 항소심을 진행하지 않았다. 하지만 엘리엇 사건이 항소심에서 승리하면서 메이슨도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아쉬울 따름”이라고 평가했다. 앞서 법무부는 지난 4월 정부 대리 로펌 및 외부 전문가들과 논의한 끝에 정부의 메이슨 ISDS 중재판정 취소 청구를 기각한 싱가포르 국제상사법원의 1심 판결에 대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발단 “이재명정부가 구상권 제기해야” 메이슨은 지난 2018년 9월 우리 정부가 자유무역협정(FTA)을 위반했다며 손해배상금 1억9139만달러(약 2609억원)와 판정일까지 연 5% 월 복리이자를 지급하라는 ISDS를 제기했다. 정부는 한미 FTA상 ‘정부가 채택하거나 유지한 조치’는 공식적인 국가 행위를 전제로 하는데, 개별 공무원의 불법적이고 승인되지 않은 비위 행위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중재판정부는 지난해 4월 우리 정부를 향해 메이슨 측에 3203만876달러(약 438억원) 및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정부는 지난해 7월 취소소송을 제기했지만, 지난달 싱가포르 법원은 메이슨 측 주장을 받아들여 한국 정부 측에 손해배상을 명한 중재판정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법무부는 "법리뿐 아니라 항소 제기 시 발생하는 추가 비용 및 지연이자 등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해 결정했다"고 항소 포기 이유를 밝힌 바 있다. 이번에 항소심에서 정부가 승리했지만, 여전히 문제는 국민 세금으로 내야 할 배상액이다. 정부가 메이슨에 지급해야 할 돈은 지연이자까지 포함해 약 887억원이 됐다. 엘리엇에 배상해야 할 금액은 당초 1300억원에서 지연이자까지 더하면 약 1500억원가량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시민단체에서는 엘리엇과 메이슨이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손해를 봤다며 소송을 제기한 만큼 당시 합병을 주도한 이 회장과 두 기업의 합병 과정에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박근혜 전 대통령 등을 상대로 구상권을 제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복리이자가 계속 쌓이면서 배상액도 천문학적으로 계속 늘고 있는 상황이라, 이재명정부의 대응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5월 대선을 앞두고 참여연대는 대선후보들에게 엘리엇·메이슨 ISDS 배상금 구상권 행사 여부를 듣기 위해 질의문을 보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였던 이재명 대통령은 질의에 응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참여연대는 “단순한 침묵이 아니라 대통령 후보로서 세금 수천 억원의 손실을 되돌리기 위한 의지와 책임을 보여야 할 자리에서 책무를 방기하고 있다는 점이 중대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난 17일에는 이재용 회장의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직후 다시 한번 “재벌 봐주기 판결로 사회 정의를 무너뜨리고 총수 일가의 전횡을 용인하는 해로운 판례를 남긴 법원을 강력히 규탄한다”는 주장과 함께 정부를 향해 구상권 청구를 요청했다. 구상권 문제는? 다만 국제통상 전문가로 활동한 송기호 변호사가 대통령실 국정상황실장에 있다는 점에서 변화를 기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송 실장은 변호사 시절 “법무부는 당시 중과실로 불법 행위한 대한민국 공무원들, 이들과 공모 관계라고 인정된 이재용 회장을 상대로 신속하게 구상권 청구를 해야 한다”며 “박 전 대통령 등 공무원에겐 국가배상법에 따라 당사자에게 청구하고, 이 회장에 대해선 민법상 공동불법행위자로서 청구할 수 있다고 본다”고 밝힌 바 있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