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가 깃든 계곡 ③함양 화림동계곡

청량함 가득한 풍류 여행지

본능적으로 시원한 곳을 찾는 계절이다. 여름에는 바다도 좋지만, 계곡 특유의 청량함에 끌린다. 어느 계곡으로 향할지 고민은 접어도 될 듯. 풍류에 일가견이 있는 우리 선조들이 경치가 뛰어난 계곡을 이미 발굴했으니 말이다. 조선 시대 선비들이 ‘영남 제일의 동천(洞天)’으로 칭송한 안의삼동(安義三洞)에 속하는 화림동계곡이 오늘의 목적지다.

화림동계곡이 위치한 경남 함양은 ‘좌안동 우함양’으로 불린 영남 선비 문화의 중심지였다. 이를 증명하듯 선비들이 자연을 벗 삼아 학문과 인생을 논하던 정자와 누각이 곳곳에 있다. 그중 화림동계곡은 함양을 넘어 우리나라 정자 문화의 진수를 보여준다.

정자 문화의 진수

계곡을 따라 기이한 바위와 반석, 산이 어우러져 한 폭의 산수화를 완성하고, 그림 같은 풍경을 조망하는 명당에 정자가 들어섰다.

옛 선비들처럼 계곡과 누정의 운치를 만끽하도록 이곳에 선비문화탐방로를 조성했다. 탐방로는 2개 구간이 있으며, 화림동계곡의 백미인 거연정과 농월정을 잇는 1구간(약 6㎞)이 인기다. 계곡을 따라 숲길과 마을길을 거닐며 거연정, 군자정, 영귀정, 동호정, 경모정, 람천정, 농월정 등 7개 정자를 차례로 방문한다.

양쪽 끝에 있는 거연정이나 농월정, 어느 곳에서 출발해도 상관없다. 물이 흐르는 방향대로 걷고 싶다면 거연정에서 시작한다.


산과 물, 바위, 정자가 완벽한 합을 이루는 거연정(경남유형문화재) 앞에 서는 순간, 화림동계곡이 풍류 명소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기암괴석을 타고 흐르는 계곡물과 암반 위에 절묘하게 세운 정자가 기막힌 조화를 이룬다. 조선 시대에 동지중추부사를 지낸 화림재 전시서가 서원을 세우고 그 옆에 억새를 엮어 처음 거연정을 지었으며, 이후 재건과 중수를 거쳤다.

조선 후기 학자 임헌회는 〈거연정기〉서 “영남의 승경 가운데 삼동(안의삼동)이 최고이고, 삼동의 승경 가운데 화림동이 최고며, 화림동의 승경 가운데 이 정자가 최고”라고 썼다. 현대에도 화림동 거연정 일원이 명승으로 지정된 걸 보면 예나 지금이나 풍치를 바라보는 눈은 매한가지인 모양이다.

거연정 지척에 성리학의 대가인 일두 정여창과 연관된 군자정(경남문화재자료)이 자리한다. 정여창은 처가가 있는 봉전마을을 찾으면 영귀대서 쉬곤 했는데, 후손들이 선생을 기리는 뜻에서 이곳에 정자를 세우고 군자정으로 이름 붙였다. 자연 암반 위에 지은 군자정은 아담하고 소박한 자태가 매력적이다.

거연정과 군자정을 지나 본격적인 계곡 산책이 시작된다. 두 정자 사이에 난 다리(봉전교)를 건너자마자 왼쪽 숲속에 나 있는 덱 탐방로가 보인다. 탐방로에 들어서면 상쾌한 기운이 감싼다. 울창한 나무 그늘과 시원한 계곡물 소리가 무더위를 잊게 한다. 탐방로서 계곡으로 내려가 잠시 쉴 수도 있다.

숲길과 포장길로 이어진 탐방로를 걸어 화림동계곡의 정자 가운데 가장 크고 화려한 동호정에 이른다. 동호정(경남문화재자료)은 조선 선조 때 학자인 동호 장만리를 기리기 위해 그의 후손이 건립한 중층 누각이다. 위풍당당한 정자도 볼거리지만, 계곡에 펼쳐진 드넓은 암반이 시선을 끈다.

영남 선비 문화의 중심지
계곡과 누정의 운치를 만끽

차일암이라 불리는 너럭바위를 중심으로 금적암(琴笛岩)과 영가대(詠歌臺)라고 새긴 글씨가 눈에 띈다. 각각 ‘악기를 연주하는 곳’ ‘노래 부르는 곳’이라는 뜻으로, 선조들이 이곳에서 풍류를 즐겼음을 보여준다. 차일암은 오늘날에도 휴식처이자 놀이터다. 바위에 누워 쉬는 이도 있고, 인증 사진을 찍는 이도 있다.


반석서 바라보는 정자도, 정자에서 바라보는 반석도 아름답다. 건너편 탐방로서 정자와 암반이 한 눈에 담긴다.

1구간 마지막 정자인 농월정에 이르니 풍경은 더욱 웅장하다. 거대한 월연암 한쪽에 농월정이 서 있고, 그 뒤로 산이 원근감을 달리하며 펼쳐진다. 몽환적인 이 장면은 드라마 〈환혼〉의 배경으로 등장했다. 조선 시대 학자 지족당 박명부가 지었다는 정자는 세월의 흔적이 덜 느껴지는데, 2003년 화재로 소실됐다가 2015년에야 복원했기 때문이다.

억겁의 시간을 보낸 듯한 너럭바위에 견주어 새것 같은 정자 외양이 다소 이질적이지만, 농월정이 있어 이곳의 풍치가 비로소 완성된다.

선비문화탐방로는 길이 평탄해 남녀노소 누구나 걷기 편하다. 그늘이 없는 마을 길 구간도 포함되니 모자와 선크림, 마실 물을 꼭 준비하자. 전 구간을 걷기 부담스러우면 정자와 계곡서 여유롭게 쉬며 일부만 둘러보는 것도 방법이다. 거연정과 동호정, 농월정 인근에 주차할 공간이 있어 자동차 이동도 가능하다.

빼어난 계곡에 이어 숲을 향유할 차례. 함양 상림(천연기념물)은 우리나라서 가장 오래된 인공림이다. 통일신라 때 최치원이 홍수 피해를 막기 위해 조성했다고 전하며, 다양한 수종 2만여 그루가 빼곡한 숲을 이룬다. 숲속을 산책하며 함화루(경남유형문화재), 이은리 석불(경남유형문화재), 최치원신도비(경남문화재자료) 등도 살펴볼 수 있다.

상림 일대를 공원으로 꾸며 연꽃단지, 음악분수, 역사인물공원 등 볼거리가 많다.

개평한옥마을은 개울을 따라 한옥과 돌담이 어우러져 고아한 멋을 뽐낸다. 함양 일두고택(국가민속문화재), 풍천노씨대종가(경남문화재자료), 개평리 하동정씨고가(경남문화재자료) 등 문화재로 지정된 고택이 여럿이다. 정여창의 옛집인 일두고택은 〈미스터 션샤인〉 〈다모〉 〈토지〉 등 드라마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남계서원

일두고택 맞은편에는 500년이 넘는 전통을 간직한 솔송주를 테마로 하는 솔송주문화관이 있다.

정여창을 기리는 함양 남계서원(사적)이 개평한옥마을에서 멀지 않다. 영주 소수서원(사적)에 이어 우리나라서 두 번째로 세운 서원이며,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도 살아남았다. 뒤쪽 높은 곳에 제향 공간을, 앞쪽 낮은 곳에 강학 공간을 배치했고, 작은 연못이 운치를 더한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한국의 서원’ 아홉 곳 중 하나로, 뒤쪽에 솔숲이 우거져 산책하기 좋다.

 

<여행 정보>

당일 여행코스
화림동계곡(선비문화탐방로 1구간)→개평한옥마을→함양 남계서원→상림공원


1박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화림동계곡(선비문화탐방로 1구간)→함양 안의 광풍루→함양 남계서원→함양 청계서원→개평한옥마을
-둘째 날: 함양대봉산휴양밸리→상림공원→지안재

관련 웹 사이트 주소
함양군 문화관광 www.hygn.go.kr/tour.web

문의 전화
-함양군청 문화관광과 055)960-4520
-상림공원 055)960-5756
-일두홍보관(개평한옥마을) 055)964-5800
-남계서원관광안내소 055)962-9785

대중교통
[버스] 서울-안의, 서울남부터미널서 하루 9회(07:30~23:00) 운행, 약 3시간 소요. 동서울종합터미널서 하루 3회(12:00, 14: 30, 21:00) 운행, 약 3시간5분 소요. 안의버스터미널 정류장서 서상행 농어촌버스 이용, 봉전 혹은 농월정 정류장 하차, 봉전 정류장서 거연정까지 도보 약 100m, 농월정 정류장서 농월정까지 도보 약 500m.

*문의: 서울남부터미널 1688-0540 동서울종합터미널 1688-5979 시외버스통합예매시스템 https://txbus.t-money.co.kr 안의버스터미널 1666-0448

자가운전
통영대전고속도로→서상 IC→함양·안의 방면 우회전→송계삼거리서 거창·안의 방면 왼쪽 도로→거연정→농월정


숙박 정보
-우명리정씨고가: 수동면 효리길, 010-5356-4116, https://u myeongri.modoo.at
-남계한옥스테이: 수동면 남계서원길, 055)  964-7700, www.hyhanokstay.com
-지리산태고재: 지곡면 개평길, 055)964-8949

식당 정보
-옛날금호식당(안의갈비탕): 안의면 광풍로, 055)964-8041
-함양기찬면옥 본점(냉면): 함양읍 필봉산길, 055)963-2330
-대성식당(따로소고기국밥): 함양읍 용평6길, 055)964-5400

주변 볼거리
용추계곡, 오도재, 지리산조망공원, 한신계곡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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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