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권의 <대통령의 뒷모습>은 실화 기반의 시사 에세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재임 시절을 다뤘다. 서울 해방촌 무지개 하숙집에 사는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당시의 기억이 생생히 떠오른다. 작가는 무명작가·사이비 교주·모창가수·탈북민 등 우리 사회 낯선 일원의 입을 통해 과거 정권을 비판하고, 그 안에 현 정권의 모습까지 투영한다.
“물론 서두를 필요야 없겠지요. 다만, 해서는 안 된다고 억지로 트집을 잡기보다 가능하면 통일하는 길로 가는 게 좋지 않을까요? 물론 통일이 되면 손해보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아마 대부분의 국민에겐 이익이 되는 면이 크겠죠. 통일이란 이상적인 말은 좀 접어두더라도, 분단 상태로 발생한 피해가 과거뿐 아니라 현재에도 너무나 심하니까 말예요.”
화합 경쟁
“너무 흥분하지 마세요. 통일되지 않은 분단 상태의 이익도 있을 테니까요.”
“어떤 이익?”
“글쎄요…. 갑자기 질문받으니 얘기가 잘 안 나오네요. 혹시, 남북한이 서로 라이벌 의식을 가지고 경쟁해서 발전하는 긍정적인 면은 없을까요?”
“아, 물론 있겠죠. 분단되지 않은 미국이나 일본도 각각의 주 또는 지방끼리 서로 화합 경쟁하면서 독특하게 발전하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우리하곤 상황이 다르잖아요. 증오심과 적대감은 없으니…. 경쟁이라도 긍정적이고 생산적이어야 의미가 있지, 우리처럼 서로 부정적일 뿐만 아니라 파괴적이고 소모적인 짓을 매년 매시 반복해서야 무슨 가치가 생겨나겠어요.”
“특히 요즘처럼 글로벌과 자국 이익주의가 혼재하는 시대에…. 더구나 남북한은 미국과 일본과는 달리 어리석고 창피스럽게도, 한민족끼리 인간의 복지와 자유 그리고 정신과 문화를 위해 경쟁하기보다 군비 증강과 무력 대결에 혈안이 돼 진정 아름다운 삶을 못 본 채 귀중한 것들을 허비‧낭비하고 있잖아요. 해마다 미국에 쏟아 부어 주는 무기 구입비를 좀 절약해 참다운 국리민복에 쓴다면 많은 불행한 사람이 얼마나 행복해질까요!”
“현실과 이상은 차이가 있다잖아요. 엄연한 현실 상황을 도외사한 채 너무 이상향만 추구해선 안 된다고 봐요.”
“그래요. 이제 그만하죠. 그런데… 물질적인 분단보다 더 위험한 건 정신적인 분단 의식이 아닌가 싶어요. 우리들의 마음과 영혼마저 늘 분단상태에 놓여 있으니까요. 이건 비현실적인 몽상이나 공상이 아니라 우리가 매일 시시각각 체험하고 있는 엄연한 현실이잖아요?”
“허허, 글쎄….”
“아니, 농담이라기엔 꽤 심각한 문제인 것 같아요. 다른 나라는 다 극복해서 버린 빨갱이니 뭐니 하는 어거지가 아직도 이 땅에선 통하고 있어요.”
“하하, 심각한 농담이로군요.”
통일의 득과 실…어떤 것이 더 클까?
남북 국민 모두 ‘감언이설’ 피해자들
“세계에서 머리가 가장 좋다는 한국인들이 여전히 그런 어리석은 생각에 얽매여 일종의 이상한 짐승처럼 살아가는 건 바로 남북이 녹슨 철조망으로 분단돼 있기 때문이죠. 우리의 정치, 경제, 법률, 군사, 문화 예술, 교육, 철학 사상 등등 모든 분야가 그 철조망의 영향을 받고 있잖아요. 물론 소수의 상류 특권층은 이런 특수한 상황을 독특하게 활용하여 나름 재미를 누릴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일반 국민은 차가운 쇠사슬에 코를 꿴 채 불안스러운 노예처럼 살고 있거든요.”
“사이비 정치꾼들은 그걸 정쟁에 이용해 사리사욕을 챙기고, 선거 철만 되면 북풍공작 따윌 조작해 한자리 감투를 꿰어 훔칠 궁리만 하잖아요. 그들은 국민을 자기들과 동류의 인간이 아닌 일종의 가축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요. 국민들이 그들의 감언이설에 세뇌돼 속지 않는다면 아마 그자들도 계속 똑같은 사기를 치진 않을 텐데…. 지난 수십 년 동안 수많은 북풍 조작 짓거리가 저질러졌으나, 지나고 보면 대부분 공포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사기술 협잡질이었거든요. 심지어 남한과 북한의 수뇌부 놈들이 미리 짜고 국민과 인민을 속여 넘긴 작태도 많았잖아요.”
“하하, 너무 의심이 지나치셔. 하하….”
“우리들은 가끔 생각하죠. 왜 저 북쪽 인민들은 악마 괴수들에게 세뇌돼 제정신과 인간성마저 빼앗긴 채 어리석은 무지렁이처럼 살고 있을까? 왜 정신을 바짝 차려 악마 놈들의 흑심을 간파하고 힘을 합쳐 일어서서 김정은 악귀 무리를 몰아낸 후 사람답게 살지 않을까?”
“그야 물론 세뇌가 골수까지 진행돼서 그렇겠죠.”
“그럼 우리는요? 남한 사람들은 과연 대한민국 헌법에 명시된 주권을 확실히 인식한 채 이 나라의 주인으로서 생각하며 행동하고 있나요?”
“너무 잘난 체하지 말어. 정치 하시는 분들이 하숙생인 당신보다 못하겠어? 그리 잘났다면 직접 한번 발벗고 나서 보든지….”
“너무 어이없어서 속이 터지니 그러지. 내가 잘났다는 게 아니라, 어린애나 강아지마저 비웃을 짓을 하잖냐 말야!”
“흥분하지 마. 정치란 우리 박 선덕여왕님처럼 대국적인 견지에서 무심중에 해나가야 나중에 큰 결실이 있지, 소국에 얽매여 빨갱이 자식들처럼 시시콜콜 따지다 보면 소탐대실의 비극을 맞게 되는 거야. 당신도 그런 성격 때문에 집을 경매 처분당하고 이혼까지 한 나머지 그런 꼴로 하숙 생활을 하고 있잖냐 말야.”
“무심중에 하는 정치라면 정말 한 차원 높겠지. 옛 선덕여왕도 못 해 본 것일 텐데…. 요즘의 가짜 여왕은 무심중에 아름다운 정치 꽃을 피우는 게 아니라, 무뇌충처럼 허장성세 미소나 날리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은 걸.”
“그 무슨 발칙스러운 소리야! 작은 고통을 참아 넘기면 여왕님의 신비로운 미소처럼 곧 화려한 통일 꽃이 피어날 거야!”
“아하하… 삼척동자도 웃겠군. 작은 것을 잘해야 큰 것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까? 꽃 한 송이가 피어나기 위해 얼마나 세밀하게 노력하는지… 집 한 채를 짓기 위해서도…. 흠, 미국과 중국 같은 초강대국뿐만 아니라 왜국 일본도 그러한 진리를 알고 소부분 정밀하게 힘을 모아 목표를 향해 노심초사하는 판국에, 허황스러운 몽상의 조화(造花)로 국민의 눈을 현혹시키며 희희덕거리는 꼴이니….”
“사람의 능력만 너무 믿으면 안 되지. 다른 변수가 많으니까 말야.”
모종의 기대
“위대하신 반인반신으로 추앙받는 아버지의 후광을 업고 대통령에 당선된 딸은 모종의 기대를 모았었지. 일부 국민들 사이엔, 만일 박정희 대통령 각하께서 김재규의 총탄에 맞아 쓰러지지 않았다면 계속 위대한 영도력을 발휘하여 대한민국을 상상 불허의 초강대국으로 만들어 나갔으리라며 아쉬워 통탄하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지만….
<다음호에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