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성 여행 ①청주 상당산성

호서 지방을 지켜준 귀중한 요새

6월1일은 의병의날이고, 6일은 현충일이다. 10일은 6·10민주항쟁기념일이며, 25일은 한국전쟁이 일어난 날이다. 유달리 뭔가를 지키고 얻고자 한 날이 많은 6월, 어떤 주제로 여행을 떠나면 좋을까? 자연스럽게 ‘산성’이 떠오른다. 우리나라는 국토의 7할이 산이라 산성 여행을 떠나는 일이 어렵지 않다. 시중에 산성 여행을 다루는 책이 여러 권 있고, 인터넷 검색으로도 산성 여행에 관한 정보를 얻기 쉽다.

산성은 적의 공격을 막기 위해 산 정상부에 쌓은 성을 말한다. 그중 충북 청주 상당산성(사적)은 조선 시대 군사적 요충지로, 재난이 일어날 때마다 호서 지방을 지켜준 소중한 보루이자 요새다. 성 이름은 백제 시대 청주목을 이르던 상당현(上黨縣)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진다.

정확한 축성 시기는 알 수 없지만, 김유신의 셋째 아들 김원정이 쌓았다는 기록(<삼국사기>)과 궁예가 쌓았다는 기록(<상당산성고금사적기>), 임진왜란 때 충청도병마절도사로 온 원균이 쌓았다는 기록(<선조실록>)이 있다. 당초 토성이던 것으로 짐작되나, 1716년(숙종 42년) 석성으로 다시 쌓기 시작해 영조 때 지금 모습이 완성됐다.

군사적 요충지

초여름의 싱그러운 햇살 아래 상당산성을 한 바퀴 가뿐히 걸어보자. ‘산성 일주 코스’는 상당산 능선 성곽을 따라 걷는 동안 성문 3개와 암문 2개, 치성과 수구 3곳을 한 번에 둘러볼 수 있다. 길이 약 4㎞, 1시간~1시간30분 걸린다. 저수지에서 출발해 남문을 지나 서남암문과 서문, 동북암문, 동문, 동장대를 거쳐 다시 저수지로 내려온다. 산성 내부에 상당산성한옥마을과 식당가가 있어 일정 전후로 식사하기도 좋다.

상당산성은 전형적인 포곡식 석축 산성이다. 포곡식이란 계곡을 끼고 산줄기를 따라 정상부까지 성벽을 높게 쌓는 방식을 말한다. 물과 더불어 산성 내 지형을 넓게 확보해 오랫동안 적에게 항거할 수 있다. 저수지 옆 벤치에 앉아 쉬는 사람들이 보인다.


포곡식 산성답게 시작부터 가파른 오르막이다. 가쁜 호흡을 조절하며 한 계단 한 계단 천천히 오른다. 이내 첫 번째 관문인 남문에 도착한다. 남문은 상당산성의 정문 격이다. 4~5m 아래 상당산성자연마당이 펼쳐진다.

남문에서 멀지 않은 곳에 서남암문이 숨어 있다. 암문은 비상구 역할을 하는 샛문이다. 유사시 사람과 가축, 양식 등이 통과할 수 있도록 치밀하게 설계하며, 눈에 띄지 않는 곳에 만든다. 적에게 알려지면 급히 폐쇄할 수 있도록 암문 안쪽에는 항상 돌과 흙이 쌓여 있다. 상당산성에는 서남암문과 동북암문이 있다.

수백 년 전 은밀한 암문은 이제 청주 시민이 몸과 마음의 휴식을 위해 자연으로 드나드는 천국의 열린 문이 됐다.

상당산성 일주의 백미는 정상부에 해당하는 남문-서문 성곽이 아닐까? 이 구간을 걷는 동안 눈에 들어오는 청주와 청원 일대 모습이 장관이다. 상당산성이 과거 이 지역에서 어떤 무게와 의미를 차지하는지 저절로 알 수 있다. 서문을 향해 걸어가면서 변해가는 풍광을 바라보는 것도 성곽을 걷는 커다란 재미다. 우암산, 좌구산 등 이 일대 산야와 미호평야가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상당산성 성곽은 한남금북정맥에 속한다.

남문과 서남암문을 지난 뒤 한참을 걸어 서문에 이른다. 서문은 지형이 호랑이가 뛰기 위해 움츠리는 모습이라고 해서 ‘미호문(弭虎門)’이라고도 불렸다. 허물어져 오랜 시간 방치된 것을 1978년 복원했으나, 지반침하로 다시 무너져 2015년 해체해서 보수·복원했다. 그런 까닭에 서문은 외형이 제법 깔끔하다. 사각형 석축 출입문 위에 북방식 우진각지붕 문루를 올리고, 바깥쪽 성벽을 높이 쌓아 방어에 유리하다.

가파른 오르막이 특징인 
포곡식 석축 산성 상당산성

동북암문과 동문을 지나면 동장대가 나타난다. 상당산성 동쪽에서 서장대와 마주 보며 군사를 지휘하고 군대를 조련하던 곳으로, 1992년 복원해 옛 모습을 재현하고 있다. 동장대에서 내려오면 처음 출발한 저수지를 만나고, 상당산성 일주가 끝난다.


홀로 혹은 친구나 연인, 가족과 행복하게 오르내리는 길. 이번 주말에는 역사와 자연과 문화가 살아 숨 쉬는 상당산성을 걸어보면 어떨까? 상당산성관리소에 상주하는 문화관광해설사의 도움을 받으면 산성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상당산성 여행 전후로 상당구에 자리한 명소도 함께 둘러보자. 명암유원지는 청주에서 가장 큰 저수지를 품은 휴식처다. 1.5㎞ 남짓한 타원형 수변은 남녀노소 누구나 걷고 달리기 좋아, 아침저녁으로 이곳을 찾는 시민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명암저수지에서 오리보트를 타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 유원지 인근에 다양한 식당가가 있어 특별한 하루를 만끽하기 좋다. 쾌적한 휴식 공간으로 발돋움하기 위해 최근 저수지 준설 공사, 낡은 목교 정비, 무장애 탐방로 신설 작업을 거쳤다.

우암산 자락의 수암골은 한국전쟁 당시 피란민이 판잣집을 짓고 살면서 형성된 마을이다. 시대의 상처가 남긴 고난과 가난의 흔적으로 한때 남루했으나, 2007년 공공 미술 프로젝트 벽화 작업을 진행해 청주의 감성 여행 1번지로 거듭났다.

현재 40여 가구가 거주해 규모는 작지만, 골목 구석구석에서 느껴지는 정겨운 자취가 오래 발길을 붙잡는다. 근래 허영만 화백과 방송인 류시원, 신현준, 우지원 등이 벽화 보수 작업에 동참해 수암골벽화마을에 활기를 더한다. 드라마 〈카인과 아벨〉 〈제빵왕 김탁구〉 〈영광의 재인〉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국립청주박물관

국립청주박물관은 청주가 고대부터 얼마나 중요한 입지를 차지한 땅이었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문화유산의 산실이다. 1987년 10월 개관한 박물관은 건축가 고 김수근이 설계했다. 4개 공간으로 구성된 상설전시실에서는 청주를 비롯해 충북 지역의 유물 2300여 점을 선사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나눠 전시한다. 통일신라 3개 범종 가운데 하나인 청주 운천동 출토 동종(보물), 국내 최대 종류와 수량을 자랑하는 청주 사뇌사 금속공예품 등 충북에서 발견된 금속 문화재 등을 다수 소장하고 있다.

 

<여행 정보>
당일 여행코스
청주 상당산성→명암유원지→수암골벽화마을→국립청주박물관

1박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청주 상당산성→명암유원지→국립청주박물관
-둘째 날: 청주랜드→청주중앙공원→수암골벽화마을

관련 웹 사이트 주소
-청주시 문화관광 www.cheongju.go.kr/ktour/index.do
-국립청주박물관 http://cheongju.museum.go.kr

문의 전화
-청주시청 관광정책과 043)201-2043
-상당산성관리소 043)201-0202
-명암유원지 043)201-4422
-명암보트장 043)221-8103
-수암골벽화마을(청주시청 관광정책과 관광마케팅팀) 043)201-1793
-국립청주박물관 043)229-6300

대중교통
[버스] 서울-청주, 서울고속버스터미널에서 10~35분 간격(05: 50~24:00) 운행, 약 1시간30분 소요. 센트럴시티터미널에서 30~80분 간격(07:05~22:00) 운행, 약 1시간40분 소요. 동서울종합터미널에서 20~60분 간격(06:50~21:00) 운행, 약 1시간30분 소요.


청주고속버스터미널 정류장에서 500번·502번·511번 버스 등 이용, 청주체육관이나 지하상가 정류장에서 862-2번 버스 환승, 산성남문 정류장 하차, 상당산성까지 도보 약 260m. 청주시외버스터미널 정류장에서 105번·105-1번·311번·833번 버스 이용, 청주체육관이나 사직사거리 정류장에서 862-2번 버스 환승, 산성남문 정류장 하차, 상당산성까지 도보 약 260m.

*문의: 서울고속버스터미널 1688-4700 센트럴시티터미널 02)6282-0114 고속버스통합예매 www.kobus.co.kr 동서울종합터미널 1688-5979 시외버스통합예매시스템 http://txbus.t-money.co.kr 청주고속버스터미널(임시) 043)238-8880 청주시외버스터미널 1688-4321

자가운전
경부고속도로→평택제천고속도로→중부고속도로→서청주 IC→상당사거리→산성제1터널→산성제2터널→상당산성

숙박 정보
-가영당: 청원구 오창읍 미래지로, 043)233-9966, www.gayoungdang.com
-초정행궁: 청원구 내수읍 초정약수로, 043) 270-7332, https://crs.cjsisul.or.kr/com/facPortal.do

식당 정보
-상당집(두부전골·두부두루치기·청국장): 상당구 성내로118번길, 043)252-3291
-장수장(장수도리탕·닭백숙·오리백숙·오리탕): 상당구 성내로118번길, 043)253-9292
-효순이네칼국수(칼국수·콩국수·만두): 상당구 산성로, 043)293-4221

주변 볼거리
청남대, 문암생태공원, 오창호수공원, 청주고인쇄박물관, 옥화자연휴양림, 청주 흥덕사지, 초정행궁, 대청댐전망대, 대청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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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2015년 진행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의 여파가 아직까지 남아있다. 정부는 당시 합병으로 인해 외국계 투자회사인 엘리엇 매니지먼트및 메이슨 캐피탈과 국제투자 분쟁에 휩싸였다. 국제상설중재재판소의 판정으로 정부는 이들에게 약 2100여억원을 배상해야 하는 상황 중 아주 작은 소생의 실마리가 나왔다. 엘리엇 분쟁 사건의 판정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승소한 것이다. 정부가 미국계 해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와의 8년간 진행 중인 국제투자 분쟁에서 반전의 기회를 잡았다. 1300여억원을 배상하라는 국제투자 분쟁 판정에 불복해 제기한 소송의 항소심에서 승소하면서다. 이로 인해 배상 판결이 취소될 가능성도 되살아났다. 사건 발단 짚어보니… 법무부에 따르면 영국 항소법원은 지난 17일 한국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여 1심 법원인 고등법원에 사건을 환송했다. 이에 따라 사건을 되돌려받은 영국 고등법원은 엘리엇에 대한 한국 정부의 배상을 결정한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의 재판 관할권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한국 정부로서는 중재판정 자체를 무효화할 가능성을 다시 확보하게 된 셈이다. 엘리엇 배상 사건은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국제투자분쟁(ISDS) 사건이다. 해당 사건은 지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정부가 국민연금공단(이하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이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면서 시작됐다. 엘리엇은 해당 의혹이 발발한 지 3년이 지나서야 7억7000만달러의 손해를 입었다며 ISDS를 제기했다. 엘리엇의 ISDS 제기는 대한민국 정부에게는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만약 엘리엇의 주장이 받아들여질 경우, 막대한 국민 세금이 배상금으로 지급돼야 하는 상황이었다. 또 국제 중재 절차는 매우 복잡하고 오랜 시간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국가의 대외 신인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법무부를 중심으로 전담팀을 구성하고 국제 법률 전문가들과 협력해 엘리엇의 주장에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양측은 수년간의 준비 과정을 거쳐 네덜란드 헤이그에 위치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서 치열한 법적 공방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국정 농단 사건의 재판 결과와 국민연금 관계자들의 증언 등이 중요한 증거로 활용됐다. 기나긴 법적 공방 끝에 지난 2023년 6월20일, 네덜란드 헤이그의 PCA는 엘리엇의 ISDS 사건에 대한 최종 판정을 내렸다. 판정 결과는 대한민국 정부에게 상당한 충격이었다. PCA는 한국 정부가 엘리엇에 5358만6931달러(당시 환율로 약 690억원) 와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이는 엘리엇이 청구한 금액인 약 7억7000만달러의 약 7%에 해당하는 금액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정부가 국제 중재에서 패소해 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점에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PCA는 판정문에서 국민연금의 삼성물산 합병 찬성 행위가 한국 정부에 귀속되는 행위며, 이로 인해 엘리엇에 손해가 발생했다고 판단했다. 이는 국민연금이 공적기금으로서 정부의 통제 하에 있으며, 그 의사결정이 정부의 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또 정부가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의 정당한 주주 권리를 침해하고 투자가치를 훼손했다고 봤다. 배상 취소 소송 항소심 승소 한미FTA상 성립 불가능 판단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는 이 판정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았다. 법무부는 판정 직후 즉각적으로 불복 절차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2023년 7월18일, 정부는 중재판정부에 판정의 해석·정정을 신청하는 동시에, 중재지인 영국 법원에 판정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정부는 판정에 법리적 오류가 있거나 중재 절차에 중대한 하자가 있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주장하며 판정을 뒤집기 위한 총력전을 펼쳤다. 특히, 정부는 엘리엇 사건이 한미 FTA상 ‘성립 불가능’한 사건이라는 점을 취소소송에서 가장 크게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국제투자 분쟁은 해외 투자자가 ‘투자국’의 협정 위반 행위에 대해 제기하는 국제중재로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는 ‘상업적 행위’일 뿐 국가의 행위로 볼 수 없다는 게 정부의 논리였으나 1심 법원에서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정부는 해당 판결에 대해서도 항소를 진행했고 지난 17일 영국 항소법원은 우리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사건은 다시 1심 법원인 영국 고등법원으로 환송됐으며, 영국 고등법원은 배상 판결을 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 애초 재판 관할권이 있었는지부터 다시 심리하게 된다. 이 판결은 한국 정부가 거액의 배상을 면할 수 있는 반전의 기회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엘리엇 배상 사건의 발단은 삼성물산 제일모집 합병에서 촉발됐다. 지난 2015년 5월26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합병 계획을 발표하며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1대 0.35의 비율로 흡수합병하는 방식이었다. 이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그룹 경영권 승계 및 지배력 강화를 위한 것으로 해석됐으나, 삼성물산 주주들에게는 불리한 합병 비율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8년 소송 결말은? 당시 제일모직의 주가는 삼성물산의 약 3배였지만, 자산총액 기준으로는 삼성물산이 제일모직의 3배에 달했기 때문이다. 이에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는 삼성물산 지분 7.12%를 보유하고 있음을 공시하며 합병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합병 금지 가처분신청을 제기하는 등 적극적인 반대 운동을 펼쳤다. 당시 엘리엇은 삼성물산의 가치가 지나치게 저평가됐으며 합병 조건이 불공정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법원은 엘리엇의 가처분신청을 모두 기각하며 삼성의 손을 들어줬다. 합병의 가장 중요한 변수는 삼성물산의 최대주주였던 국민연금이었다.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들이 합병 반대 의견을 내놨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은 내부 투자위원회를 거쳐 합병에 찬성표를 던졌다. 결국 2015년 7월17일, 삼성물산 주주총회에서 합병안이 통과됐고, 그해 9월1일 통합 삼성물산이 공식 출범했다. 이후 박근혜정부 국정 농단 사건이 불거지면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의 불법성 의혹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특별검사팀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지배력 강화를 위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이 이뤄졌고, 이 과정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제공하는 등 불법 행위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특히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하도록 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관련 인사들이 재판에 넘겨졌다. 2025년 7월17일, 대법원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부정과 관련한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행위, 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 대해 전부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이로써 이 회장은 약 10년간 이어져 온 사법 리스크에서 벗어나게 됐다. 리스크 해소 다양한 반응 엘리엇 배상 사건이 새로운 국면을 맞으면서 법조계와 정치권에서는 다양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항소심에서 ‘한국 승소’로 뒤집히자, 취소 청구를 주도한 법무부 장관으로서 환영했다. 한 전 대표는 “최선을 다하고 성과를 낸 많은 ‘좋은 공직자’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한동훈 전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제가 법무부 장관으로서 지휘했던 엘리엇 국제투자분쟁(ISDS) 중재판정의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대한민국이 이겼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더불어민주당이 저 소송(취소소송 제기) 관련해 저를 많이 비난했었다”고 정쟁적 비판을 상기시켰다. 그는 “‘국익’이 걸렸지만 결과가 나쁠 수도 있는 위험 부담이 큰 문제를 결정할 때, 몸 사리면 공직자들은 편하다. ‘지면 네 돈 낼 거냐’는 폭력적인 질문 앞에서 ‘안 하고 말지’ 생각이 들게 마련”이라며 “그래도 몸 사리지 않고 국익을 생각한 좋은 공직자들이 있다. 이 경우가 그랬다”고 설명했다. 특히 “엘리엇 항소에 대해 ‘질 가능성이 크니 항소하지 마라, 그래서 지면 한동훈 사비로 돈 대신 내라’는 감정적 비난이 많았고, 그런 제목의 언론 사설까지 있었다”면서 공직사회에 “피 같은 국민 세금 아끼기 위해 많은 분들이 혼신의 노력을 해온 것을 제가 잘 안다”고 격려를 보냈다. 한 전 대표는 “의미있는 승리지만 이 사안은 아직도 갈 길이 먼, 쉽지 않은 싸움”이라며 “끝까지 최선을 다해 국익을 지켜주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법조계에서는 엘리엇 배상 사건처럼 메이슨 캐피탈이 같은 이유로 제기했던 ISDS의 중재판정 취소소송 항소 포기에 대한 아쉬움을 내비쳤다. 한 국제통상 전문 변호사는 “엘리엇과 메이슨은 같은 이유로 ISDS를 제기했다”며 “엘리엇은 취소소송의 항소심을 진행하면서 메이슨은 지연이자 등으로 항소심을 진행하지 않았다. 하지만 엘리엇 사건이 항소심에서 승리하면서 메이슨도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아쉬울 따름”이라고 평가했다. 앞서 법무부는 지난 4월 정부 대리 로펌 및 외부 전문가들과 논의한 끝에 정부의 메이슨 ISDS 중재판정 취소 청구를 기각한 싱가포르 국제상사법원의 1심 판결에 대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발단 “이재명정부가 구상권 제기해야” 메이슨은 지난 2018년 9월 우리 정부가 자유무역협정(FTA)을 위반했다며 손해배상금 1억9139만달러(약 2609억원)와 판정일까지 연 5% 월 복리이자를 지급하라는 ISDS를 제기했다. 정부는 한미 FTA상 ‘정부가 채택하거나 유지한 조치’는 공식적인 국가 행위를 전제로 하는데, 개별 공무원의 불법적이고 승인되지 않은 비위 행위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중재판정부는 지난해 4월 우리 정부를 향해 메이슨 측에 3203만876달러(약 438억원) 및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정부는 지난해 7월 취소소송을 제기했지만, 지난달 싱가포르 법원은 메이슨 측 주장을 받아들여 한국 정부 측에 손해배상을 명한 중재판정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법무부는 "법리뿐 아니라 항소 제기 시 발생하는 추가 비용 및 지연이자 등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해 결정했다"고 항소 포기 이유를 밝힌 바 있다. 이번에 항소심에서 정부가 승리했지만, 여전히 문제는 국민 세금으로 내야 할 배상액이다. 정부가 메이슨에 지급해야 할 돈은 지연이자까지 포함해 약 887억원이 됐다. 엘리엇에 배상해야 할 금액은 당초 1300억원에서 지연이자까지 더하면 약 1500억원가량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시민단체에서는 엘리엇과 메이슨이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손해를 봤다며 소송을 제기한 만큼 당시 합병을 주도한 이 회장과 두 기업의 합병 과정에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박근혜 전 대통령 등을 상대로 구상권을 제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복리이자가 계속 쌓이면서 배상액도 천문학적으로 계속 늘고 있는 상황이라, 이재명정부의 대응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5월 대선을 앞두고 참여연대는 대선후보들에게 엘리엇·메이슨 ISDS 배상금 구상권 행사 여부를 듣기 위해 질의문을 보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였던 이재명 대통령은 질의에 응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참여연대는 “단순한 침묵이 아니라 대통령 후보로서 세금 수천 억원의 손실을 되돌리기 위한 의지와 책임을 보여야 할 자리에서 책무를 방기하고 있다는 점이 중대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난 17일에는 이재용 회장의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직후 다시 한번 “재벌 봐주기 판결로 사회 정의를 무너뜨리고 총수 일가의 전횡을 용인하는 해로운 판례를 남긴 법원을 강력히 규탄한다”는 주장과 함께 정부를 향해 구상권 청구를 요청했다. 구상권 문제는? 다만 국제통상 전문가로 활동한 송기호 변호사가 대통령실 국정상황실장에 있다는 점에서 변화를 기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송 실장은 변호사 시절 “법무부는 당시 중과실로 불법 행위한 대한민국 공무원들, 이들과 공모 관계라고 인정된 이재용 회장을 상대로 신속하게 구상권 청구를 해야 한다”며 “박 전 대통령 등 공무원에겐 국가배상법에 따라 당사자에게 청구하고, 이 회장에 대해선 민법상 공동불법행위자로서 청구할 수 있다고 본다”고 밝힌 바 있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