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억원 다단계 사기 ‘남양주 조희팔’ 쫓고 쫓기는 추적기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3.04.24 11:42:32
  • 호수 1424호
  • 댓글 2개

우즈베크, 필리핀… 피해자들이 잡았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우즈베키스탄으로 도망친 200억원 사기 대부업체 사장을 잡은 건 누굴까? 바로 해당 업체로 피해를 입은 피해 당사자다. 피해자 세 명은 도망친 대부업체 사장을 잡기 위해 우즈베키스탄서 필리핀까지 갔다. 5일간의 쫓고 쫓기는 긴 여정이었다.

지난 17일 경기도 남양주서 200억원대 사기를 친 대부업자가 잡혔다. 이날 남양주남부경찰서는 50대 A씨에 대해 특수경제 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사채업자
사기꾼으로

경찰이 밝힌 A씨는 남양주 지역서 10년 이상 대부업체를 운영하며 봉사 및 향우회 활동으로 신뢰와 인맥을 쌓은 인물이다. 그는 “골프연습장 등 투자로 연 20% 이상 이익을 보장한다”며 투자자들을 모았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지난달 21일, 우즈베키스탄으로 출국한 사실을 파악하고 여권 무효화 조치를 했고, 그 여파로 필리핀으로 이동했다가 발이 묶여 국내로 돌아와 공항서 체포됐다.

이렇듯 설명은 간단했다. 하지만 A씨를 잡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A씨에게 사기 피해를 본 피해자 3명이 직접 우즈베키스탄에 가서 그를 회유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 피해자들은 A씨를 전혀 의심하지 못했다. A씨는 그저 안전한 투자처였다.

가족 전체가 총 8억원의 사기 피해를 본 김지선(가명)씨는 투자 종용을 1~2년 전부터 계속 받았다. 결정적으로 그를 신뢰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김씨의 어머니가 7~8년 전부터 A씨에게 안정적으로 돈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씨 어머니는 지인의 소개로 투자했다.

1000만원을 투자하면 30만원을 받는 수준이었다. 사람마다 기준은 모두 달랐지만, 은행보다는 훨씬 이자가 높았다. A씨는 김씨에게 “은행에 적금을 넣을 바엔 나에게 투자하는 게 좋다”고 조언하듯 말했다.

김씨도 처음에는 의심했다. 하지만 어머니가 투자해 이자를 수년간 받고 있었고, 무엇보다도 A씨는 남양주서 호남향우회, 산악회, 성당, 봉사활동을 계속했던 데다 동네 유지였고 주변의 평판도 좋았다. 대부업체를 운영했지만 법정 이자를 잘 지키는 ‘안전한 대부업’이라고 소문이 나 있었다.

2021년 김씨의 어머니가 김씨에게 같이 투자하자고 했고 함께 A씨의 사무실에 방문했다. A씨는 “나한테 돈 빌린 사람이 많다. 지금 골프장 등 부동산 개발을 하고 있다”며 투자를 종용했다. 

대부업체 운영하며 지역 유지로 ‘떵떵’
“은행보다 좋아” 연 20% 이상 이익 보장

김씨는 그 자리서 투자약정서를 작성했다. 투자약정서에는 ‘‘을’이 ‘갑’에게 직접 투자하고 ‘갑’이 ‘제3자’에게 투자하는 방식’ ‘‘갑’이 알선하는 금전차용희망자 ‘제3자’로부터 ‘을’ 명의로 담보를 제공받고 ‘을’이 그 ‘제3자’에게 직접 대여하는 방식’이라고 적혀 있다.


한동안은 이자가 잘 들어왔고 김씨도 안심했다. 문자나 카톡으로 안부를 물어보기도 했고, 자신이 알고 있는 투자 방법을 소개하기도 했다.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힐스테이트 ○○는 현 시세 8.6억~9억원이다. 차주 직장인 1주택자다. 5억7000만원이 필요하다” “요즘 돈을 많이 찾고 있다. 좀만 더 투자해서 용돈 벌어라. 기회는 이틀 남았다. 원래 기존에도 다른 사람보다 이자를 더 많이 준 것”이라는 식이었다.

김씨 가족이 야금야금 투자한 금액만 8억원. 장시간 안전하게 이자를 받던 김씨 어머니는 지인들까지 A씨에게 연결했다. 피해는 이런 식으로 커졌다.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사람만 투자한 것이 아니다. A씨 사무실 건물의 청소부, 시장서 장사하던 상인, 노후자금을 갖고 있던 노부부 등도 투자했다. 주위서 이자를 많이 준다는 소문이 나자 너도나도 투자했다.

A씨가 김씨에게 마지막으로 돈을 준 것은 지난달 15일이다. 그러고선 4일 뒤인 19일에는 갑자기 A씨로부터 급박한 목소리로 “음주운전 교통사고가 났다. 합의해야 하는데 합의금이 없다. 1000만원만 빌려달라”고 연락이 왔다. 하지만 김씨 가족은 “당장 줄 수 있는 현금이 없다”고 거절했다.

“믿고 맡겨봐”
투자자 모아

결국 A씨는 다른 사람에게 돈을 빌렸는데 그 돈을 들고 우즈베키스탄으로 도망친 것이다. A씨가 한국에 없으니 이자를 주는 사람도 없었다. 피해자들은 사기당한 사실을 경찰에 신고했다. 하지만 경찰의 대응은 뜨뜻미지근했다. 경찰은 “이미 A씨가 해외에 도주했다. 인터폴에 요청했다”고 말할 뿐이었다.

피해 금액은 계속 커졌다. 몇몇 피해자는 사기당한 사실을 알고 난 뒤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아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하다 가족에게 발견되기도 했다. 피해자는 입을 모아 A씨를 빨리 잡아달라고 재촉했다. 그러나 특별한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

답답한 마음에 피해자 3명이 모여 A씨를 잡기 위해 우즈베키스탄으로 떠났다. 이들 3명(B씨)은 현지 영사관에 방문했지만 협조를 전혀 받지 못했다. 

우즈베키스탄에 도착한 B씨가 A씨를 찾기 위해 수소문한 곳은 여행사였다. A씨는 우즈베키스탄 언어인 우즈베크어나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현지 통역사 없이 우즈베키스탄서 지낼 수 없었다. 

현지 통역사 수소문 중 A씨를 만난 적 있다고 밝힌 한 사람은 그의 개인 정보에 대해 말하는 것을 꺼리면서 영사관에 찾아가라고 조언했다.

B씨는 영사관을 찾아 “한국서 A씨에 대한 적색수배(체포영장이 발부된 중범죄 피의자에게 내리는 국제수배)가 곧 내려질 것이다. 우리가 피해 당사자인데 좀 도와달라”고 말했지만, 영사관으로부터 “여기서 분란이 일어나길 원하지 않는다”는 대답만 들었다.

처음에는
꼬박꼬박


당시 B씨 일행은 A씨가 거주하고 있는 호텔을 알아낸 상태였다. 우즈베키스탄은 우즈베키스탄에 체류 중인 외국인에 한 해 3일에 한 번씩 ‘거주증 신고’를 해야 하는데, 이를 추적해 알게 된 거주지다. 

이 같은 사실을 영사관에 알려도 영사관에선 “곤란한 일을 만들지 말라”고 대답할 뿐이었다. 영사관이나 현지 경찰도 도와주지 않으니 우즈베키스탄 현지서 직접 찾아다닐 수밖에 없었다. 한인 식당이나 한인 마을을 돌며 사진을 들고 물색에 나섰다.

그러다가 기적같이 A씨를 알고 있다는 사람을 찾아 전화번호를 입수하는 데 성공했고 A씨에게 연락했다. 도망 중인 사람에게 ‘너 잡으러 여기까지 왔다’고 한다면 누가 만나줄까? 일행 중 그나마 피해 금액이 가장 적은(1억6000만원) 일행 중 한 명이 나서 A씨를 회유했다.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A씨의 변제 능력 여부 ▲한국으로의 귀국이었다.

B씨 일행은 A씨가 묶고 있는 호텔에 방문해 10시간이 넘게 이야기했다. 이 과정서 A씨는 “돈은 없다. 이곳저곳에 돈을 사용했다. 한국에 있는 사람들을 믿지 마라”고 말했다. 그는 계속 두려워하면서도 돈이 없다고만 했다. 

B씨 일행은 A씨에게 “너가 필리핀 마닐라로 가면 도망가는 것을 도와주겠다”고 말했고, A씨 역시 이에 동조해 필리핀으로 향했다. 문제는 마닐라 숙소를 구할 돈이 없었다. 장기체류를 하게 되면 숙박비가 많이 든다. A씨는 스스로 여자친구에게 5000만원을 달라고 전화 요청했지만, 여자친구는 돈이 없다고 거절했다. 

충격을 받은 A씨는 B씨 일행이 모두 잠이 든 사이 도망쳤다. 당시 핸드폰 2대를 갖고 있던 A씨는 한 대는 남겨두고 한 대만 가져갔다. 남겨놓은 핸드폰에는 “죽음으로 죄를 갚겠다”는 유서를 남겨놨다. 


“일단 돌아가자” 현지서 만나 회유
“한 푼도 없다” 유서 남기고 사라져

도망치는 A씨를 본 사람은 숙소 가사 도우미였다. 도우미가 봐도 A씨의 모습이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양말을 신지도 않은 채 길거리를 걸어 택시를 탔다. 그 방향으로 1시간 반 넘게 가면 바닷가 마을이 있었다.

이 사실을 안 B씨 일행도 바닷가로 향했다. 바닷가는 작은 동네와 붙어 있었는데 그 동네를 아무리 뒤져도 A씨를 찾을 수 없었다. 8시간 뒤, 한인에게 뜻밖의 연락을 받았다.

400명 넘게 있는 필리핀 한인 단체 카톡방에 “바닷가서 한국 사람이 극단적 선택을 하려는데 누군지 아는 사람 있나요”라는 글이 사진과 함께 올라온 것이다. A씨를 찾고 있었던 B씨 일행에게 이 연락이 닿았다.

A씨는 그 지역 한인회장이 경찰로부터 인계받아 보호 중이었다. 하지만 이들이 한인회장에게 가는 도중 A씨는 다시 도망쳤다. 도망치면서 결제하지 않은 병원비는 B씨 일행이 결제했다. 쫓고 쫓기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B씨 일행도 지칠 대로 지쳤다. 다만, A씨의 여권을 B씨 일행이 가지고 있었는데, 여권은 전달해줘야 했다.

이 시점부터 A씨가 사기꾼이라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한국의 사채업자, 향우회 인맥이 A씨가 갈만한 곳에 연락한 것이다. 이때부터는 한인회장이 B씨 일행을 도와주기 시작했다.

A씨는 도망쳤지만 멀리 가진 못했고 필리핀서 도망치던 중 다른 한인에게 사기를 당했다. 들고 있던 골프 가방, 서류 등 마지막 물건들을 모두 뺏기자 한국으로 다시 들어오게 된 것이다.

결국 A씨를 잡은 것은 B씨 일행이 우즈베키스탄까지 가서 회유한 덕분이다. 필리핀서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기까지 했던 사람이었다. 경찰은 B씨 일행에게 수사를 도와준 것에 대한 고마움을 표하기도 했다. 

경찰은
어디에?

B씨 일행은 “A씨가 돈이 없었기 때문에 죽어서라도 한국에 올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경찰의 너무 소극적인 태도에 실망했다. 결국 피해자가 우즈베키스탄, 필리핀까지 가서 잡아온 것”이라며 “처음 뉴스에 보도되길 ‘공조수사’로 A씨를 잡았다고 발표했다. 전혀 그런 것(우리 도움 내용)이 없어서 억울하다. 지금 피해자들이 너무 많다. 더 적극적으로 수사해 A씨가 재산을 어디로 빼돌렸는지 알아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alswn@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다단계 사기업체 내부자료
“과세 근거로 삼아도 적법”

다단계 사기업체의 내부자료라도 신빙성이 있으면 과세 근거로 삼아도 된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지난 10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5부(김순열 부장판사)는 A씨가 서울 성북세무서장을 상대로 ‘종합소득세 부과 처분을 취소하라’며 낸 소송을 최근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A씨는 외환 차익거래 사업을 벌인 B사에서 2014∼2016년 본부장으로 근무했다.

B사 설립자는 폰지 사기(다단계 금융사기)로 약 5년간 1만2000명으로부터 1조740억원을 편취한 혐의(특가법상 사기)로 2017년 12월 대법원에서 징역 15년을 확정받았다.

A씨 역시 회사의 사기행위에 동조한 혐의(방문판매 등에 관한 법률 위반)로 기소돼 2020년 1월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확정받았다.

그는 재직 기간 회사와 금전소비대차계약 및 투자약정을 체결해 약 2년간 매월 이자 명목으로 대여금의 5%, 이익 배당금 명목으로 투자금의 2%를 지급받았다.

종합소득세 부과 처분 취소 소송
“피해액 커도 사업소득액 산정 무관”

과세당국은 A씨가 이렇게 받은 이자·사업소득 약 5억8000만원에 대한 종합소득세 신고를 누락한 사실을 확인하고 2020년 9월 그에게 세금 1억9000만원을 부과했다.

A씨는 “당국이 아무런 관리·감독을 받지 않은 불법 다단계 회사가 만든 자료를 토대로 세금을 산정했기 때문에 근거과세 원칙에 반한다”며 과세처분에 불복하는 소송을 냈다.

하지만 재판부는 B사 자료에 신빙성이 있고, 이를 근거로 한 과세 처분도 적법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B사 자료 내용 중 특별히 사후적으로 변경됐다고 인정할 만한 사정이 보이지 않는다”며 특히 “폰지 사기는 오직 다단계 구조에 참여한 투자자들의 신뢰를 토대로 유지되기 때문에 투자금·수익금 지급 현황을 장부에 기계적으로 정리하는 게 사업 유지의 필수 요소가 된다”고 설명했다.

자금거래를 수시로 기록하는 만큼 장부의 신뢰도가 높다는 취지다.

A씨는 “B사에서 받은 돈보다 B사에 줬다가 돌려받지 못한 투자 피해액이 더 커 사실상 사업소득이 없었음에도 종합소득세를 부과한 것은 실질과세 원칙에 반한다”고도 주장했다.

재판부는 “설령 A씨가 받은 수당보다 재투자로 인한 투자 피해액이 더 크더라도, 재투자는 총수입금액에 포함한 수당을 처분하는 한 방법에 불과해 사업소득액 산정과 무관하다”고 판단했다. <민>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김건희-정재관-박종철 ‘낙하산 고리’ 추적

[단독] 김건희-정재관-박종철 ‘낙하산 고리’ 추적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10·29 이태원 참사 당시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정재관 현 군인공제회 이사장(당시 대통령경호처 소속)에게 대통령실 인근 전단지 제거 상황을 보고한 사실이 드러났다. 정 이사장은 대한토지신탁의 박종철 대표이사를 ‘낙하산으로 임명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박 대표가 김건희 일가의 양평 공흥지구 개발사업의 담당자였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면서다. 국회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관련 청문회에서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2022년 10월29일 밤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당시 대통령경호처 소속이던 정재관 이사장에게 대통령실 인근 담벼락에 붙은 전단지를 제거했음을 보고하는 취지의 문자메시지와 사진을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공공기관 인사를 둘러싼 윤석열정부의 정치권 인맥 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이태원 참사 개입 정황들 이날 오후 10시51분 박 구청장이 보낸 문자에는 ‘전단지 제거 완료’라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정 이사장은 ‘ㅋ 고생하셨습니다’라는 취지의 답장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메시지가 오간 시간대는 소방 경찰 시민이 뒤엉켜 사람들을 끄집어내고 심폐소생술을 하던 10시49분과 겹친다.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는 “수백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지방자치단체가 대통령실 인근 전단지 제거 상황을 보고하고 있었다면 행정 대응의 우선순위가 뒤바뀐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태원 참사 이후 인파 관리 실패와 초기 대응 부실이 핵심 책임 논쟁으로 이어졌던 만큼, 참사 당일 용산구청이 어떤 업무에 행정력을 투입했는지에 대한 의문도 다시 제기되고 있다. 박 구청장은 청문회에서 해당 문자와 관련해 “전단지를 제거하라고 지시한 것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그는 “우리 업무인 것 같아 전화해 보라고 한 것일 뿐 바로 나가서 제거하라고 지시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청문위원들은 문자 내용과 상황을 근거로 사실상 조치 지시가 있었던 것 아니냐며 강하게 추궁했다. 또 참사 상황에서 대통령실 인근 문제를 별도로 챙기고 이를 대통령경호처 인사에게 보고한 정황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사고 우려 민원 전화가 쇄도하던 때 박 구청장은 대통령실 인근 담벼락에 붙은 진보 단체 전단지를 다 떼어냈다며 사진과 함께 보고 형식의 문자를 보냈다. 이를 받은 정 이사장은 웃으며 “고생했다. 이태원 압사사고 안타깝고”라고 답한 것이다. 이번 문자 공개로 이태원 참사 당시 지방자치단체의 대응 판단과 대통령실 주변 기관과의 관계, 그리고 재난 상황에서 행정 대응의 우선순위가 어떻게 작동했는지에 대한 논란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박 구청장이 문자를 보낸 정 이사장은 김용현 당시 대통령경호처장과 절친한 육사 38기 동기다. 윤석열 캠프에서 ‘국방정책자문단 육사 8인회’로 통했으며 용산 ‘대통령실 이전 TF’에서 활동했다. ‘21세기 하나회’나 다름없다. 이태원 참사 전단지 제거 의혹 제기 보고받은 정, 대토신 사장 임명 개입? 박 구청장은 수사와 재판에서 이날 오후 10시51분에야 이태원참사를 인지했다고 주장했다. 느낌표까지 쓰며 “전단지 제거 완료”를 보고한 바로 그 시각과 분 단위까지 일치한다. 박 구청장이 참사 현장에 도착한 건 8분 뒤인 10시59분. 그 사이 박 구청장이 어디에 몰두했는지 그리고 대통령실 측근들과 어떤 소통을 한 건지 처음 드러났다. 지난 12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10·29 이태원참사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특별조사위원회가 연 청문회에서 양성우 이태원 특조위 위원은 “정재관이 전단지 제거를 요청했기 때문에 자랑하려고 보낸 것인가요?”라고 물었다. 이에 박 구청장은 “전혀 아니”라고 답했다. 양 위원이 “정재관을 통해서 경호처장 김용현, 나아가 대통령 내외에게 전달될 것을 의식하고 보고한 것 아닙니까”라고 재차 질문하자, 박 구청장은 아니라고 답했다. 앞서 정 이사장은 특조위 조사에서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대통령실에 협조한 걸 자랑하려고 일방적으로 보낸 것 같다”고 진술했고, 이날 청문회에 불출석했다. 현재 정 이사장이 이끌고 있는 군인공제회는 약 17만명 군인 회원의 노후 자금을 운용하는 대형 기관이다. 자산 규모는 20조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산하 기업 가운데 하나인 대한토지신탁은 군인공제회가 100% 지분을 보유한 부동산 신탁회사다. 사실상 공제회의 핵심 투자 및 사업 플랫폼 역할을 한다. 문제의 중심에는 정 이사장과 대한토지신탁 대표 박종철의 인사 흐름이 있다. 정 이사장은 2023년 1월 제16대 군인공제회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그는 예비역 육군 준장 출신으로 통상 소장 또는 중장급이 맡아왔던 자리에 임명된 이례적 인물이다. 군 안팎에서는 그의 발탁 배경에 윤 정부 핵심 인맥으로 꼽히는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영향력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20조 책임진 원스타 준장 실제로 군인공제회가 창립된 1984년 이래 준장급이 이사장을 맡은 건 정 이사장이 처음이다. 예비역 준장 출신인 정 이사장이 발탁된 데에는 ‘김용현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는 게 군 인사에 정통한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군인공제회 이사장은 현역 군인 및 군무원 37명으로 구성된 제113차 대의원회의에서 선출, 국방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 취임하기 때문이다. 또 정 이사장은 육군사관학교 38기 출신으로 한미연합사 민군작전처장, 합참 민군작전과장, 국방부 국회협력단장 등을 거친 군 경력 인사다. 특히 국방부 국회협력단장 시절 정치권과의 연결고리를 구축하며 윤정부 핵심 라인과 가까운 인물로 분류됐다. 논란은 그로부터 약 4개월 뒤 이어진 박 대표를 선임하는 과정에서 불거졌다. 대표이사 선임 과정 역시 공제회 이사회 추천과 국방부 승인 절차를 거치는 구조이기 때문에 사실상 모회사인 군인공제회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내부에서는 이 같은 인사 흐름을 두고 “군인공제회 수장 교체 이후 산하 기업 인사까지 연쇄적으로 바뀌는 전형적인 권력 인사 패턴”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대한토지신탁 대표 선임 과정은 공개 채용 형식을 취하지만, 최종 후보자는 군인공제회 이사회의 추천을 받아야 하고 국방부 승인까지 거쳐야 한다. 결과적으로 공제회 수장의 의중이 크게 반영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박 대표의 과거 이력까지 다시 조명되면서 정치적 논란이 확대됐다. 박 대표는 과거 양평 공흥지구 개발사업을 담당했던 대한토지신탁 실무 책임자로 알려져 있다. 이 사업은 윤석열 전 대통령 장모 최은순씨 일가가 연루된 특혜 의혹 사건과도 연결된 사업이다. 당시 윤석열 측은 대선 과정에서 공흥지구 개발사업이 대한토지신탁 주도로 진행된 만큼 특혜 가능성이 없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이후 자료에서 박 대표가 해당 사업 담당자로 확인됐다. 2018년 12월 사업1본부장으로 퇴사한 박 대표가 정권 출범 이후 다시 복귀한 배경을 둘러싸고 ‘낙하산 인사’ 의혹이 제기됐다. 대한토지신탁은 지난 11월 초 <일요시사>와 통화하며 “2014년 양평 공흥지구 사업은 오래된 만큼, 담당자를 알 수 없다”고 일축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 한준호 의원이 요청한 ‘대한토지신탁 양평 공흥지구 개발 담당자 명단’에는 박 대표를 비롯한 양평 공흥지구 사업 실무자들의 이름이 정확하게 기재돼있다. 김건희 일가 집사로 활동 민중기 특별검사팀은 김건희의 가족 회사인 이에스아이엔디(ESI&D)가 양평 공흥지구 개발 과정에서 특혜를 받았다고 의심하고 있다. 민주당 한준호 의원이 대한토지신탁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박 대표는 2014년 5월27일 양평 공흥지구 사업 담당자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박 대표는 대한토지신탁 사업1본부장으로 근무하다가 2018년 12월 퇴사했다. 2019년과 2020년에는 에이치에스파트너스그룹 사장과 비전알이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그는 윤 전 대통령 당선 이후인 2023년 5월 대한토지신탁 대표이사로 복귀했다. 이 같은 의혹은 대한토지신탁의 최근 경영 상황과 맞물리며 더욱 확대되는 분위기다. 대한토지신탁은 부동산 경기침체와 PF 부실 여파로 유동성 압박을 겪고 있다. 군인공제회는 최근 수천억원 규모의 재무 지원을 단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대한토지신탁은 군인공제회로부터 지급보증과 채권 인수 등을 통해 수차례 자금 지원을 받았지만 경영지표 개선은 제한적이었다. 이 때문에 “군인들의 노후자금이 부실 자회사 방어에 사용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대한토지신탁은 군인공제회의 100% 전액 출자를 바탕으로 부동산 신탁 및 개발사업을 주력으로 하고 있다. 군인공제회는 대한토지신탁의 주요 자금 조달이나 사업에 대한 지급보증을 지원하는 등 모회사를 지원함으로써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군인공제회는 대한토지신탁의 대표이사를 공모하는 모회사다. 대한토지신탁의 대표이사 선임 과정도 군인공제회의 자회사 인사 시스템과 상법 및 관련 법규에 따라 진행된다. 대표이사직이 공석이 되면, 군인공제회는 대한토지신탁 대표이사를 공개 채용한다. 지원자들은 정해진 기간 내에 지원서를 제출하며, 대한토지신탁 인사총무팀 등에서 서류 전형을 진행한다. 양평 공흥지구 사업1본부장이 대표이사로 김용현 입김?···군인공제회 연결고리 주목 논란의 핵심은 인사와 경영 책임의 연결성이다. 군인공제회는 군인 복지와 연금 재원을 운용하는 기관인 만큼 정치권 외풍으로부터 독립성이 중요하다. 정 이사장의 임명 배경부터 산하 기업 대표 인사까지 정치적 인맥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기관 운영의 투명성 문제가 다시 도마 위에 오른 상황이다. 군 관련 기관 내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공제회 관계자들은 “이사장이 특정 정치 라인으로 임명되면 관련 인사들이 주요 보직에 연쇄적으로 배치되는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며 “기관의 본래 목적보다 정치적 이해관계가 우선될 위험이 있다”고 지적한다. 군인공제회가 100%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자회사 공우이엔씨도 자금난 논란에 휩싸일 전망이다. 공우이엔씨는 대한토지신탁과 마찬가지로 군인공제회가 출자한 자회사다. 1993년 설립된 제일종합개발은 1999년 공우개발사업소 창설로 이어졌다. 군인공제회관과 계룡대 등의 시설 관리, 예식장, 사우나, 체력 단련장 등을 직영하는 업체였다. 2000년엔 육군 오수처리시설 용역관리와 환경공사로 사업 분야를 넓혀 나갔다. <일요신문> 보도에 따르면 일부 핵심 사업은 이미 공우이엔씨 손을 떠난 상황이다. 2012년 국우터널이, 2022년엔 문학터널이 무료화됐다. 2023년엔 경북 영천 소재 군 골프장 충성대 체력단련장 운영이 종료됐다. 전자공시시스템에 게재된 2023년 감사보고서는 공우이엔씨 민간사업 관련 보증이 리스크로 작용할 가능성을 시사한다. 공우이엔씨는 BTL이 아닌 기타 분야 사업에서도 2000억원대 보증을 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1년 기준 공우이엔씨 기타 사업 보증액 규모는 835억원 규모였다. 이 중 시설관리용역 관련 보증액을 제외한 기타 사업 분야 보증액 규모는 394억원이었다. 2년 사이 기타 사업 관련 보증액이 1222억원 불어났다. 2년 사이 보증액이 약 335% 폭증한 셈이다. 이로 인해 자금난 얘기가 고개를 든 것으로 파악됐다. 공우이엔씨 상황은 2024년 들어 악화일로에 접어든 것으로 전해진다. 2023년 기준 공우이엔씨 매출액은 1066억5280만원 규모였다. 그러나 23억2986만원 규모 영업손실을 봤다. 내부적으론 2024년 손실액이 더욱 커질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내부 불안감이 증폭되는 상황이다. 공우이엔씨 적자 허덕 정 이사장과 대한토지신탁 박 대표 인사 사이의 직접적인 개입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만, 군인공제회와 산하 기업 인사 구조상 영향력을 행사했을 가능성은 충분히 제기되는 상황이다. 군인들의 노후 자금을 운용하는 공공성 기관에서 정치권 인맥 중심 인사가 반복될 경우 제도적 견제 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