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현실판 ‘더 글로리’ 표예림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3.04.24 10:09:11
  • 호수 142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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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학폭 생존자입니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나는 기억이 안 난다. 그때는 나도 어렸다. 철없을 때였지 않냐.” 표예림씨에게 초·중·고 12년간 학교폭력을 가한 가해자의 말이다. 철이 없으면 때려도 되는 걸까? 가해자는 끝까지 표씨에게 “모른다”고만 할 뿐 사과하지 않았다.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에서 주인공 문동은(송혜교 역)은 고등학생 때 학교폭력을 가한 가해자 네 명에게 복수를 계획하고, 그 복수는 결국 성공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학교폭력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알리는 것 자체도 힘들다.

학창 시절
전체가…

학교폭력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세상에 알리는 것은 자신의 힘들었던 과거를 알리는 일이다. 이 일의 주인공인 표예림씨 역시 피해 사실을 알리는 데 무려 8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올해 28세인 표씨는 스스로를 ‘학교폭력 생존자’라고 지칭한다. 

그는 처음 SNS에 자신이 당한 학교폭력 고발 영상을 올리며 자신의 신상공개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렇게까지 한 이유가 뭘까? “대체 왜 나를 괴롭혔어?”라는 질문에 대한 학교폭력 가해자의 대답과 현재 학교폭력 피해를 받고 있거나 고소를 준비하는 사람을 위해 법 개정을 하고 싶어서다.

공부하거나 친구랑 노는 데 정신없어야 하는 학창 시절. 하지만 표씨는 달랐다. 가해자들을 피해 어디로 도망갈지, 어떻게 하면 학교에서 도망칠 수 있을지 고민하기 바빴다. 


이는 표씨가 지난달 10일 ‘12년간 당한 학교폭력에 관한 청원’이라는 제목의 국회 국민동의청원서에 상세히 올라와 있다. 표씨가 올린 국민동의청원서는 지난 19일 오전 5만명 이상의 동의를 받아 위원회 회부 기준 동의 수 100%를 달성한 뒤 종료됐다.

표씨는 경상남도의 한 지역에서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졸업했다. 현재 그는 학창 시절에 겪은 학교폭력 후유증으로 ▲대인관계 어려움 ▲불안 장애 ▲불면증 ▲우울증으로 정신과에서 1년 넘게 치료 중이다.

25세에는 담낭절제술을 받았고, 26세엔 맹장 절제술, 27세엔 대낭용종 제거술 등의 수술을 받았다. 또 지금까지도 원인 불명의 복통을 앓고 있다.

그가 용기를 낸 것도 드라마 <더 글로리> 덕분이다. 표씨는 “나와 같은 피해자가 생기지 않기 위해 청원을 신청했다. 학교폭력은 소아 성폭행과 같이 2차 가해가 두려워 스스로 말하기 어렵다. 또 피해를 당한 만큼 치유되는 데 시간이 걸려 즉각 신고도 힘들다. 난 12년 동안 학교폭력에 노출됐지만, 법이 정한 공소시효는 최대 10년”이라고 전했다.

표씨는 국민동의청원서에 학교폭력 신고의 어려움과 문제를 밝혔다. 그러면서 자신이 어떤 방식으로 학교폭력을 당했는지도 밝혔다.

12년 학교폭력 피해 사실 알려
공소시효 늘리기 위한 목소리

표씨가 당한 괴롭힘은 ▲집단 따돌림 ▲폭행 ▲특수폭행 ▲상해 ▲특수상해 ▲모욕 ▲갈취 등이다. 2005년부터 2009년까지 표씨가 다녔던 초등학교 학급은 전원이 55명이었는데, 이 중 표씨가 지목한 가해자는 무려 30명에 달했다.


중학교 시절인 2009년부터 2012년 전원 96명 중 가해자는 47명, 여자고등학교를 다녔던 2012년부터 2015년에 학급 전원 84명 중 가해자가 43명이라고 지목했다. 이 중 직접적인 학교폭력 가해자는 17명이다. 나머지는 간접적인 가해자로 분류된다.

학교폭력을 당할 때 표씨는 ‘누가 이걸 해결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저 ‘그냥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가해 학생들에게 “나를 왜 괴롭히냐”고 물으면 “내성적이라서”라고 답했다. 괴롭히는 데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담임교사에게 피해 사실을 말해도 도움받지 못했다. 오히려 “너가 친구들하고 잘 못 어울리기 때문”이라는 반응만 돌아왔다. 

표씨는 국민동의청원서를 올리는 것 외에도 자신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에 ‘학교폭력의 공소시효 폐지를 건의합니다’라는 제목의 영상을 올렸다. 13분46초 분량의 영상에는 표씨가 가해자 중 한 명으로 지목한 A씨와의 통화 녹취록이 담겼다.

“당한 것 
다 기억”

A씨는 “궁금한 건 물을 수 있지 않냐. 모든 방관자에게 어떠한 책임도 묻지 않고 진술자 모두의 익명성을 보장하겠다. 만약 어길 시 어떠한 민형사적 책임을 지겠다”는 각서의 내용을 읊었다. 이어 “이걸 안 지키면 네가 법적 책임을 받는 게 맞냐”고 물었다.

이에 표씨는 “아직 그 진술서를 적은 친구들은 아무한테도 얘기한 적 없다. 내 부모님이나 애인한테도 얘기 안 했다. 나는 익명성을 보장한 것이다. 피해를 보지 않았는데 내가 왜 그 책임을 져야 하느냐”고 답했다.

A씨는 계속 “안타까워서 그렇다. 너가 어떠한 민형사상 법적 책임을 져도 괜찮은 거지?” “진술서의 익명성을 보장 못한 것 맞지?” 등의 질문으로 회유했다. 

이어 “너가 자꾸 다른 애들한테 연락한 것도 다 알고 있다. 드라마(<더 글로리>) 보고 선을 넘는다는 말이 너무 많다. 진짜로 너를 생각해서 하는 말”이라고 했다. 표씨가 마지막으로 “그때 왜 때렸느냐”고 묻자, A씨는 “나도 모른다”고 말을 흐렸다.

표씨는 녹취 파일 재생이 종료된 후 “어떤가. 이게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사과하는 모습이라고 생각되나”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이어 “할 수 있는 건 청원밖에 없다. 세상이 바뀌어야 저 아이들이 진심으로 내게 미안하다고 얘기할 것이다. 부디 귀찮다고 넘기지 마시고 3분만 시간 내서 의견을 내달라”고 말했다.

표씨 동기들은 표씨가 학교폭력을 당했다는 말에 힘을 실어줬다. MBC <실화탐사대>에 표씨 동기가 익명으로 출연해 “화장실에서 가해자들이 예림이의 머리채를 잡고 변기통에 머리를 집어넣는 장면을 봤다. 예림이가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자 더 괴롭혔다. 단순히 친구끼리 치는 장난이 아닌 ‘폭력’이었다”고 증언했다.


본격적인 폭로 역시 표씨 동창생의 역할이었다. 유튜브 채널 ‘표예림동창생’에는 ‘학교폭력 가해자들의 신상을 공개합니다’라는 영상이 올라왔다.

여전히 
잘살아

이 영상에는 1명의 피해자와 4명의 가해자가 등장한다. 유튜버는 “예림이는 아직도 고통받으며 사는데 가해자는 잘 살고 있다. 나는 더 이상 예림이의 아픔을 무시할 수 없어 익명의 힘을 빌려 가해자에 대한 신상을 공개하려 한다”고 밝혔다.

먼저 가해자의 졸업사진이 공개됐다.

유튜버는 “이들은 예림이 어깨를 일부러 부딪치며 넘어뜨리고 옷에 더러운 냄새가 뱄다고 욕설과 폭행을 했다. 이들은 예림이를 폭행했지만 아직까지 아무런 처벌 없이 잘 있다”며 “왕따를 주도했던 남○○은 현재 육군 군무원으로 근무 중이다. 친구, 동료와 놀러 다니며 행복하게 사는 중”이라고 폭로했다.

이어 “임○○ 역시 남자친구와 행복하게 잘살고 있다. 가해자 최○○은 이름을 개명해 새 삶을 살고 있다. 장○○은 현재 미용사로 근무 중이다. 12년 동안 한 사람을 괴롭힌 가해자는 여전히 잘살고 있다”며 영상이 끝난다. 


2분6초 분량인 짧은 영상의 조회수가 544만회(4월20일 기준)다. 영상을 올린 지 6일 만에 만든 기록이다. 댓글 반응도 뜨거웠다. “나는 외국인이다. 첫 소식을 BBC news서 읽었다. 예림씨 너무 고생했다” “동창생님 용기에 감사드린다. 나 또한 학교폭력 피해자다. 나는 고등학교 1학년 때 당했다. 가해자는 나한테 왕따를 시켰고 명예훼손 및 패륜적 농담까지 들었다”는 댓글이 남겨졌다.

이 중에는 가해자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는지 계속 지켜볼 거라는 댓글 반응도 있었다. 

가해자 신상이 밝혀지자,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 중 한 명이 근무하던 A 헤어숍서 가해자가 해고됐다. 표씨의 가해자라고 알려진 이들의 신상이 공개되자 프랜차이즈인 A 헤어숍이 빠르게 조치한 것이다.

해당 헤어숍은 누리꾼들로부터 별점 테러를 받으면서 이미지가 크게 실추됐다. 지난 19일 가해자의 직장으로 알려진 A 헤어숍에 따르면, 헤어숍은 지난 18일 가해자로 지목된 직원을 계약해지 조치했다.

가해자 실명·사진 공개 파문
“친구도, 담임도 모두 방관자”

A 헤어숍은 입장문을 통해 “사건을 인지하고 확인된 즉시 이번 학교폭력 가해자로 명명된 직원을 계약해지 조치했다. 추후 본사 차원에서 브랜드 이미지 손실에 대한 별도의 조치를 진행하고 있다. 우리 매장은 해당 직원으로 피해 보고 있는 다른 직원들과 매장에 대해 법적 자문하고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단연코 학교폭력 사실을 알았다면 채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력서와 자격증으로 면접을 보고 직원을 채용했는데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가해자를 깊게 살펴보지 못한 점 후회하고 죄송하다”면서도 “하지만 무분별한 악플과 매장에 장난전화는 자제 부탁드린다. 우리는 학교폭력을 당한 뒤 감내한 피해자 표예림씨를 적극 지지한다. 앞으로 어떠한 일이 있어도 적극 지지할 것을 표명한다”고 전했다. 

이런 상황임에도 여전히 가해자는 뻔뻔하다. 지난 19일 가해자 중 한 명이 표씨에게 연락을 취했다. 표씨는 먼저 가해자의 연락을 받기 전 인스타그램 다이렉트 메시지(DM)로 “너는 내게 할 말이 없니”라고 묻자, 가해자는 “미안하다”고 간단하게 답했다.

이어 표씨는 가해자에게 핸드폰 번호를 알려줘 진심 어린 사과를 받으려 했다. 유튜브에 공개된 통화 녹음 내용에서 가해자는 “솔직히 네게 했던 짓이 다 기억은 안 나지만 조금 심했던 건 기억한다. 미안하다”고 말했다.

이에 표씨는 떨리는 목소리로 “너를 포함해서 그 애들이 한 대씩 때린 그 한 대 때문에 난 아직까지 힘들다. 고통을 받았다”며 “난 세세하게 기억한다. 방과후 수업부터 중학교 3학년때까지. 너가 사람이니”라고 물었다. 

가해자는 “기억이 안 난다. 그때는 나도 어렸다. 철없을 때였지 않냐”며 발뺌했다. 그러자 표씨는 “철없고 어리고 미안하다 말하면 그렇게 행동해도 되나? 뺨치고, 머리치고, 다리 때리고 그렇게 해도 돼느냐?”고 묻자, 가해자는 “다리는 때린 적 없다”며 적반하장 태도를 보였다. 

가해자가 표씨에게 보인 태도는 사과가 아니다. 신상이 공개되도 가해자는 표씨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하지 않았다.

사과는?
"모른다”

지난 19일 표씨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제 청원은 이제 국회 위원회에 회부될 것이며, 이후 모든 과정을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모든 분께 감사 인사를 전한다. 정말 저는 스스로도 너무 운이 좋고 세상엔 착한 분들이 이렇게 많다는 걸 느꼈다. 감사한 마음을 담아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으로 국민 여러분께 감사 인사를 전하려고 한다. 다시 한번 제 목소리를 들어 주시고 같이 연대해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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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김건희-정재관-박종철 ‘낙하산 고리’ 추적

[단독] 김건희-정재관-박종철 ‘낙하산 고리’ 추적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10·29 이태원 참사 당시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정재관 현 군인공제회 이사장(당시 대통령경호처 소속)에게 대통령실 인근 전단지 제거 상황을 보고한 사실이 드러났다. 정 이사장은 대한토지신탁의 박종철 대표이사를 ‘낙하산으로 임명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박 대표가 김건희 일가의 양평 공흥지구 개발사업의 담당자였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면서다. 국회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관련 청문회에서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2022년 10월29일 밤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당시 대통령경호처 소속이던 정재관 이사장에게 대통령실 인근 담벼락에 붙은 전단지를 제거했음을 보고하는 취지의 문자메시지와 사진을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공공기관 인사를 둘러싼 윤석열정부의 정치권 인맥 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이태원 참사 개입 정황들 이날 오후 10시51분 박 구청장이 보낸 문자에는 ‘전단지 제거 완료’라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정 이사장은 ‘ㅋ 고생하셨습니다’라는 취지의 답장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메시지가 오간 시간대는 소방 경찰 시민이 뒤엉켜 사람들을 끄집어내고 심폐소생술을 하던 10시49분과 겹친다.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는 “수백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지방자치단체가 대통령실 인근 전단지 제거 상황을 보고하고 있었다면 행정 대응의 우선순위가 뒤바뀐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태원 참사 이후 인파 관리 실패와 초기 대응 부실이 핵심 책임 논쟁으로 이어졌던 만큼, 참사 당일 용산구청이 어떤 업무에 행정력을 투입했는지에 대한 의문도 다시 제기되고 있다. 박 구청장은 청문회에서 해당 문자와 관련해 “전단지를 제거하라고 지시한 것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그는 “우리 업무인 것 같아 전화해 보라고 한 것일 뿐 바로 나가서 제거하라고 지시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청문위원들은 문자 내용과 상황을 근거로 사실상 조치 지시가 있었던 것 아니냐며 강하게 추궁했다. 또 참사 상황에서 대통령실 인근 문제를 별도로 챙기고 이를 대통령경호처 인사에게 보고한 정황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사고 우려 민원 전화가 쇄도하던 때 박 구청장은 대통령실 인근 담벼락에 붙은 진보 단체 전단지를 다 떼어냈다며 사진과 함께 보고 형식의 문자를 보냈다. 이를 받은 정 이사장은 웃으며 “고생했다. 이태원 압사사고 안타깝고”라고 답한 것이다. 이번 문자 공개로 이태원 참사 당시 지방자치단체의 대응 판단과 대통령실 주변 기관과의 관계, 그리고 재난 상황에서 행정 대응의 우선순위가 어떻게 작동했는지에 대한 논란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박 구청장이 문자를 보낸 정 이사장은 김용현 당시 대통령경호처장과 절친한 육사 38기 동기다. 윤석열 캠프에서 ‘국방정책자문단 육사 8인회’로 통했으며 용산 ‘대통령실 이전 TF’에서 활동했다. ‘21세기 하나회’나 다름없다. 이태원 참사 전단지 제거 의혹 제기 보고받은 정, 대토신 사장 임명 개입? 박 구청장은 수사와 재판에서 이날 오후 10시51분에야 이태원참사를 인지했다고 주장했다. 느낌표까지 쓰며 “전단지 제거 완료”를 보고한 바로 그 시각과 분 단위까지 일치한다. 박 구청장이 참사 현장에 도착한 건 8분 뒤인 10시59분. 그 사이 박 구청장이 어디에 몰두했는지 그리고 대통령실 측근들과 어떤 소통을 한 건지 처음 드러났다. 지난 12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10·29 이태원참사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특별조사위원회가 연 청문회에서 양성우 이태원 특조위 위원은 “정재관이 전단지 제거를 요청했기 때문에 자랑하려고 보낸 것인가요?”라고 물었다. 이에 박 구청장은 “전혀 아니”라고 답했다. 양 위원이 “정재관을 통해서 경호처장 김용현, 나아가 대통령 내외에게 전달될 것을 의식하고 보고한 것 아닙니까”라고 재차 질문하자, 박 구청장은 아니라고 답했다. 앞서 정 이사장은 특조위 조사에서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대통령실에 협조한 걸 자랑하려고 일방적으로 보낸 것 같다”고 진술했고, 이날 청문회에 불출석했다. 현재 정 이사장이 이끌고 있는 군인공제회는 약 17만명 군인 회원의 노후 자금을 운용하는 대형 기관이다. 자산 규모는 20조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산하 기업 가운데 하나인 대한토지신탁은 군인공제회가 100% 지분을 보유한 부동산 신탁회사다. 사실상 공제회의 핵심 투자 및 사업 플랫폼 역할을 한다. 문제의 중심에는 정 이사장과 대한토지신탁 대표 박종철의 인사 흐름이 있다. 정 이사장은 2023년 1월 제16대 군인공제회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그는 예비역 육군 준장 출신으로 통상 소장 또는 중장급이 맡아왔던 자리에 임명된 이례적 인물이다. 군 안팎에서는 그의 발탁 배경에 윤 정부 핵심 인맥으로 꼽히는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영향력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20조 책임진 원스타 준장 실제로 군인공제회가 창립된 1984년 이래 준장급이 이사장을 맡은 건 정 이사장이 처음이다. 예비역 준장 출신인 정 이사장이 발탁된 데에는 ‘김용현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는 게 군 인사에 정통한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군인공제회 이사장은 현역 군인 및 군무원 37명으로 구성된 제113차 대의원회의에서 선출, 국방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 취임하기 때문이다. 또 정 이사장은 육군사관학교 38기 출신으로 한미연합사 민군작전처장, 합참 민군작전과장, 국방부 국회협력단장 등을 거친 군 경력 인사다. 특히 국방부 국회협력단장 시절 정치권과의 연결고리를 구축하며 윤정부 핵심 라인과 가까운 인물로 분류됐다. 논란은 그로부터 약 4개월 뒤 이어진 박 대표를 선임하는 과정에서 불거졌다. 대표이사 선임 과정 역시 공제회 이사회 추천과 국방부 승인 절차를 거치는 구조이기 때문에 사실상 모회사인 군인공제회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내부에서는 이 같은 인사 흐름을 두고 “군인공제회 수장 교체 이후 산하 기업 인사까지 연쇄적으로 바뀌는 전형적인 권력 인사 패턴”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대한토지신탁 대표 선임 과정은 공개 채용 형식을 취하지만, 최종 후보자는 군인공제회 이사회의 추천을 받아야 하고 국방부 승인까지 거쳐야 한다. 결과적으로 공제회 수장의 의중이 크게 반영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박 대표의 과거 이력까지 다시 조명되면서 정치적 논란이 확대됐다. 박 대표는 과거 양평 공흥지구 개발사업을 담당했던 대한토지신탁 실무 책임자로 알려져 있다. 이 사업은 윤석열 전 대통령 장모 최은순씨 일가가 연루된 특혜 의혹 사건과도 연결된 사업이다. 당시 윤석열 측은 대선 과정에서 공흥지구 개발사업이 대한토지신탁 주도로 진행된 만큼 특혜 가능성이 없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이후 자료에서 박 대표가 해당 사업 담당자로 확인됐다. 2018년 12월 사업1본부장으로 퇴사한 박 대표가 정권 출범 이후 다시 복귀한 배경을 둘러싸고 ‘낙하산 인사’ 의혹이 제기됐다. 대한토지신탁은 지난 11월 초 <일요시사>와 통화하며 “2014년 양평 공흥지구 사업은 오래된 만큼, 담당자를 알 수 없다”고 일축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 한준호 의원이 요청한 ‘대한토지신탁 양평 공흥지구 개발 담당자 명단’에는 박 대표를 비롯한 양평 공흥지구 사업 실무자들의 이름이 정확하게 기재돼있다. 김건희 일가 집사로 활동 민중기 특별검사팀은 김건희의 가족 회사인 이에스아이엔디(ESI&D)가 양평 공흥지구 개발 과정에서 특혜를 받았다고 의심하고 있다. 민주당 한준호 의원이 대한토지신탁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박 대표는 2014년 5월27일 양평 공흥지구 사업 담당자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박 대표는 대한토지신탁 사업1본부장으로 근무하다가 2018년 12월 퇴사했다. 2019년과 2020년에는 에이치에스파트너스그룹 사장과 비전알이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그는 윤 전 대통령 당선 이후인 2023년 5월 대한토지신탁 대표이사로 복귀했다. 이 같은 의혹은 대한토지신탁의 최근 경영 상황과 맞물리며 더욱 확대되는 분위기다. 대한토지신탁은 부동산 경기침체와 PF 부실 여파로 유동성 압박을 겪고 있다. 군인공제회는 최근 수천억원 규모의 재무 지원을 단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대한토지신탁은 군인공제회로부터 지급보증과 채권 인수 등을 통해 수차례 자금 지원을 받았지만 경영지표 개선은 제한적이었다. 이 때문에 “군인들의 노후자금이 부실 자회사 방어에 사용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대한토지신탁은 군인공제회의 100% 전액 출자를 바탕으로 부동산 신탁 및 개발사업을 주력으로 하고 있다. 군인공제회는 대한토지신탁의 주요 자금 조달이나 사업에 대한 지급보증을 지원하는 등 모회사를 지원함으로써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군인공제회는 대한토지신탁의 대표이사를 공모하는 모회사다. 대한토지신탁의 대표이사 선임 과정도 군인공제회의 자회사 인사 시스템과 상법 및 관련 법규에 따라 진행된다. 대표이사직이 공석이 되면, 군인공제회는 대한토지신탁 대표이사를 공개 채용한다. 지원자들은 정해진 기간 내에 지원서를 제출하며, 대한토지신탁 인사총무팀 등에서 서류 전형을 진행한다. 양평 공흥지구 사업1본부장이 대표이사로 김용현 입김?···군인공제회 연결고리 주목 논란의 핵심은 인사와 경영 책임의 연결성이다. 군인공제회는 군인 복지와 연금 재원을 운용하는 기관인 만큼 정치권 외풍으로부터 독립성이 중요하다. 정 이사장의 임명 배경부터 산하 기업 대표 인사까지 정치적 인맥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기관 운영의 투명성 문제가 다시 도마 위에 오른 상황이다. 군 관련 기관 내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공제회 관계자들은 “이사장이 특정 정치 라인으로 임명되면 관련 인사들이 주요 보직에 연쇄적으로 배치되는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며 “기관의 본래 목적보다 정치적 이해관계가 우선될 위험이 있다”고 지적한다. 군인공제회가 100%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자회사 공우이엔씨도 자금난 논란에 휩싸일 전망이다. 공우이엔씨는 대한토지신탁과 마찬가지로 군인공제회가 출자한 자회사다. 1993년 설립된 제일종합개발은 1999년 공우개발사업소 창설로 이어졌다. 군인공제회관과 계룡대 등의 시설 관리, 예식장, 사우나, 체력 단련장 등을 직영하는 업체였다. 2000년엔 육군 오수처리시설 용역관리와 환경공사로 사업 분야를 넓혀 나갔다. <일요신문> 보도에 따르면 일부 핵심 사업은 이미 공우이엔씨 손을 떠난 상황이다. 2012년 국우터널이, 2022년엔 문학터널이 무료화됐다. 2023년엔 경북 영천 소재 군 골프장 충성대 체력단련장 운영이 종료됐다. 전자공시시스템에 게재된 2023년 감사보고서는 공우이엔씨 민간사업 관련 보증이 리스크로 작용할 가능성을 시사한다. 공우이엔씨는 BTL이 아닌 기타 분야 사업에서도 2000억원대 보증을 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1년 기준 공우이엔씨 기타 사업 보증액 규모는 835억원 규모였다. 이 중 시설관리용역 관련 보증액을 제외한 기타 사업 분야 보증액 규모는 394억원이었다. 2년 사이 기타 사업 관련 보증액이 1222억원 불어났다. 2년 사이 보증액이 약 335% 폭증한 셈이다. 이로 인해 자금난 얘기가 고개를 든 것으로 파악됐다. 공우이엔씨 상황은 2024년 들어 악화일로에 접어든 것으로 전해진다. 2023년 기준 공우이엔씨 매출액은 1066억5280만원 규모였다. 그러나 23억2986만원 규모 영업손실을 봤다. 내부적으론 2024년 손실액이 더욱 커질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내부 불안감이 증폭되는 상황이다. 공우이엔씨 적자 허덕 정 이사장과 대한토지신탁 박 대표 인사 사이의 직접적인 개입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만, 군인공제회와 산하 기업 인사 구조상 영향력을 행사했을 가능성은 충분히 제기되는 상황이다. 군인들의 노후 자금을 운용하는 공공성 기관에서 정치권 인맥 중심 인사가 반복될 경우 제도적 견제 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