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라왕’ 휩쓴 자리 ‘마피’ 거래

최근 서울의 경우 아파트 청약에 100% 성공하면서 규제완화 효과를 톡톡히 누렸다. 반면 오피스텔과 생활(형)숙박시설, 빌라 등은 여전히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집값이 고공 행진하던 2020~ 2021년 비싼 아파트를 대신할 ‘대체 주거상품’으로 각광받았던 오피스텔·생활(형)숙박시설에 찬바람이 불고 있다.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빌라 역시 선호도가 떨어지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이어진 대규모 빌라 전세 사기 사태로 취약점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집값 고공행진
대체 주거상품

지난해 미국발 급격한 기준금리 인상이 단행되며 주택시장이 침체에 접어들어 가격 하락기가 찾아온 것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KB부동산이 발표하는 KB아파트담보대출 소득대비집값비율(PIR)은 직장인이 월급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내 집을 마련하기 위해 걸리는 시간을 계산한 수치다. 지난해 서울의 PIR지수는 직전 해 18배에서 16.9배로 소폭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정부의 전방위 부동산규제 완화 정책이 나오면서 오피스텔과 생활(형)숙박시설 등은 아파트에 비해 규제가 느슨하다는 장점마저 잃어버리고 만 것으로 분석됐다.

부동산 정보제공업체 경제만랩이 한국부동산원의 주택거래량을 살펴본 결과 올해 2월 전국 주택 거래량은 7만7490건으로 나타났다. 이 중 아파트 거래량은 6만3909건으로 아파트 거래 비중이 82.5%로 집계됐다. 이는 한국부동산원이 관련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2006년 이래 월별 기준 가장 높은 비중이다.

아파트 거래 비중이 늘고 있는 반면 전국 빌라 거래 비중은 역대 최소치를 기록한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 2월 전국 빌라 거래량은 7021건으로 빌라 거래 비중이 9.1%로 확인됐다. 이는 관련 통계 작성 이래 월별 기준 가장 낮은 비중이다.


빌라는 환금성이 떨어지고 가격 상승여력도 상대적으로 낮은 편으로, 아파트 관련 규제가 완화되면서 실수요자들이 아파트로 눈을 돌리고 있는 분위기다. 빌라의 몰락을 부채질한 결정타는 이른바 ‘빌라왕’ 사태다. 지난해 말부터 불거졌던 조직적인 부동산 전세사기였다.

빌라는 아파트에 비해 가격이 저렴하다는 이유로 전세 사기에 더 취약하다는 문제점이 있다. 다세대주택은 아파트에 비해 매매가 잘 이뤄지지 않아 시세 파악이 힘들고 분양도 어렵다. 전세 사기를 노리는 일당들은 바지사장을 내세워 미분양 빌라를 매매가와 비슷한 수준에 내놓아 세입자를 받는다. 이후 모종의 이유로 집이 압류돼 경매에 넘어가게 됐다는 소식이 세입자에게 전해지면, 세입자는 울며 겨자 먹기로 전세보증금 대신 미분양빌라를 갖게 되는 식이다.

다 같은  분양시장? 아파트만 훈풍
2006년 이래 가장 높은 거래 비중

심지어 수도권에서 올 하반기 만기 되는 빌라 전세계약의 71%가 동일한 전세금으로 전세보증 가입이 불가할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올 한 해 역전세난이 심화되며 현재 거주 중인 세입자들에게 보증금을 반환하지 못하는 임대인들이 급격히 증가할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는 실정이다.

빌라만이 아니라 오피스텔과 생활(형)숙박시설 등 대체 주거상품들의 분위기는 더욱 냉랭하다. 분양시장이 침체를 맞이하고 있는 시기에도 서울에서 분양된 아파트들은 두 자릿수 경쟁률로 청약 흥행에 성공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오피스텔이나 생활(형)숙박시설 등은 서울이라는 입지조차 흥행을 보장해주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올해 서울에서 분양에 나선 ‘구의역에떼르넬비욘드’ ‘강동역 SK리더스뷰’ ‘서울 우남 W컨템포287’등 오피스텔은 모두 한 자릿수 이하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부동산 호황기였던 2020~ 2021년 서울에 분양된 오피스텔들이 수백건의 신청을 모으며 두 자릿수 경쟁률을 기록했던 것과는 사뭇 다르다.

지난 1월 전국 오피스텔 거래량은 4086건에 그치며 월 기준 역대 최소치를 기록한 것으로 조사됐다. 2월에는 4930건으로 소폭 회복했지만, 전년 동월 1만655건에 비하면 절반이 넘게 줄어든 것이다. 애물단지가 된 오피스텔이나 생활(형)숙박시설에는 마이너스피, 일명 ‘마피’거래도 속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마이너스피란 실제 지불한 분양권의 가격보다 낮은 가격으로 판매되는 것을 의미한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오피스텔은 아파트에 비해 관리비도 높고 아파트만큼 가격이 오르기도 쉽지 않아 이런 시장 침체기에는 조명받기 힘든 주거상품으로, 아파트 가격의 하락이 빌라나 오피스텔 등 다른 주거상품들의 메리트를 지워버린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다음은 서울 강북권에서 분양(예정) 중인 아파트.

 

 

▲새절역 두산위브 트레지움= 두산건설이 서울 은평구 신사1구역 재건축 정비사업을 통해 ‘새절역 두산위브 트레지움’을 공급한다. 전용면적 59~84㎡ 총 424가구로 구성된다. 이 중 235가구가 일반에 분양될 예정이다. 

지하철 6호선 새절역이 도보권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새절역에는 신촌·여의도를 거쳐 지하철 2호선 서울대입구역을 잇는 경전철 ‘서부선’과 새절역~창릉신도시~고양시청을 연결하는 ‘고양은평선’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인근 연신내역에는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A노선이 개통될 계획이다. 

전국 거래비
역대 최소치

국내 최대 디지털미디어·엔터테인먼트 집적단지인 상암 디지털미디어시티(DMC)가 근거리에 있다. 이마트 은평·수색점, NC백화점 불광점 등의 대형 쇼핑시설을 비롯해 은평세무서·은평구청·서울특별시은평병원·서울시립서북병원 등 다양한 편의시설을 편리하게 누릴 수 있다. 서신초, 상신중, 연서중, 숭실중, 숭실고 등을 도보로 통학할 수 있다. 단지 바로 옆 구립 도서관 및 인근 학원가를 이용할 수 있다. 

여의도 공원의 절반 크기에 달하는 신사근린공원(11만1650㎡)이 인접해 있고, 봉산공원·백련산·불광천 등이 가까워 가벼운 산책 및 운동을 즐길 수 있다. 단지 인근인 경의중앙선 수색역부터 DMC역 구간을 복합문화 중심지로 조성하는 수색역세권 개발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은평구 녹번동 ‘서울혁신파크’에는 복합문화쇼핑몰과 60층 높이 랜드마크 건물 등을 품은 ‘산업·주거·문화 융복합도시’가 들어설 예정이다. 인근 마포구 상암동에는 서울시의 ‘그레이트 한강’ 프로젝트를 통해 고리형 대관람차인 ‘서울링’(높이 180m) 등이 들어설 계획이다. 

마이너스피’
형편없는 수준

단지가 들어서는 은평구 내에는 다양한 정비사업이 예정돼 있다. 이를 통해 서울 서북권의 새로운 대표 주거타운이자 ‘뉴시티’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은평구 내에서 추진되는 정비사업은 관리처분을 인가받은 사업장 3곳, 착공 들어간 사업장 5곳, 준공을 인가받은 사업장 5곳 등 총 24곳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분양 관계자는 “정부의 부동산 규제 완화에 힘입어 매매수급지수, 거래량 등 다양한 통계 지표에서 상승세를 기록하고 있다”며 “서울 부동산 시장의 반등 조짐이 뚜렷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새절역 두산위브 트레지움은 탁월한 정주여건, 개발호재 등 장점을 갖추고 있다”며 “실수요를 비롯한 투자자 관심을 사로잡을 것으로 예측된다”고 덧붙였다.

 

 

▲엘리프 미아역= 계룡건설이 지하철 4호선 미아역 초역세권에 선보이는 주상복합 아파트 ‘엘리프 미아역’이 분양한다. 지하 5층〜지상 24층, 3개동, 전용면적 49〜84㎡ 총 260가구 규모로 조성된다. 이 중 공공임대 34가구를 제외한 226가구가 일반에 분양될 예정이다. 

단지는 고금리 속 금전적인 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는 ‘중도금 2%’의 파격적인 계약조건을 갖췄다. 계약조건은 계약금 10%, 중도금 20%, 잔금 70%가 기본이다. 하지만 계약자의 금융비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계약금과 중도금 2%만 먼저 내면 나머지 88%는 입주 후에 내도록 선택할 수 있다. 

계약자 선택에 따라 12%만으로 입주 시까지 추가 비용 부담이 없어 사실상 중도금이 없는 단지라는 평이다. 전매제한은 당첨일로부터 1년이 적용된다. 이에 따라 계약자들은 중도금 부담 없이 분양권을 보유하다가 거래가 가능해지면 입주 대신 매도를 선택할 수도 있게 된다.


입지가 가장 큰 장점이다. 지하철 4호선 미아역 초역세권에 위치해 있으며, 서울시 정책사업인 미아역세권개발 프리미엄도 누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미아역을 통해 종로, 동대문 출퇴근이 20분대로 가능하며 은평, 서대문, 일산, 고양 삼성, 상암DMC, 마포, 을지로, 강남 등 접근성도 우수하다. 

빌라·오피스텔·생숙 찬바람
대규모 전세 사기 몰락 부채질

단지 인근으로 롯데백화점, CGV, 이마트, 하이마트 등 풍부한 생활 인프라가 밀집되어 있다. 서울 동북부권 초입에 위치해 풍부한 주거 인프라를 이용 가능하다. 단지 바로 앞에 강북구에서 유일한 자율형사립고인 신일고등학교와 신일중학교가 위치해 있어 도보 통학이 가능하다. 반경 1㎞ 내 화계초 등 초등학교 3곳, 중학교 2곳, 고등학교 2곳 등 뛰어난 학군을 갖췄다. 단지 인근으로 벽오산 어린이공원, 오패산, 북서울 꿈의숲 등 쾌적한 자연환경도 다양하게 누릴 수 있다. 

단지 지하 1층~지상 3층에 다양한 근린생활시설이 들어설 예정으로, 인근의 주거 인프라와 함께 입주민들의 편리성을 높여줄 전망이다. 이외에도 지상 3층에는 서울시 공공건축가가 별도로 설계를 진행할 ‘거점형 키움센터’, 지상 2층에는 ‘청소년문화의 집’을 조성해 지역 청소년을 위한 특성화 시설로 활용될 예정이다.

분양 관계자는 “최근 높은 중도금 금리에 부담을 느끼는 소비자가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파격적인 계약조건이 소비자의 비용 부담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주택법 시행령통과로 분양권 전매제한도 1년으로 짧은 만큼 중도금 부담 없이 분양권을 보유하다가 입주 대신 전매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서울 은평뉴타운 디에트르 더 퍼스트= ‘서울 은평뉴타운 디에트르 더 퍼스트’도 분양을 앞두고 있다. 대방건설의 최장 10년 공공지원 민간임대주택인 해당 단지는 전 타입 전세형으로 월 임대료가 발생하지 않고 취득세, 보유세 등 세금 부담이 발생하지 않는다. 서울 은평구 진관동 일대에 전용면적 59·75·84m², 지하 5층~지상 최고 15층, 15개동, 총 452세대로 조성되는 단지는 대방건설이 시공 및 시행을 한다. 


현재 은평구에는 GTX-A 개통(2024년 예정), 신분당선 서북부 연장(추진 중), 대학, 복합쇼핑몰 등이 포함된 코엑스급 융·복합 랜드마크 조성(계획 중) 등 대규모 호재를 갖춰 센트레빌 아스테리움 시그니처(은평구 역촌동 일대)의 청약이 흥행하는 등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특히 단지가 위치한 은평뉴타운은 2008~2010년 입주를 진행한 단지가 주를 이뤄 신축 단지가 귀하다. 이에 따라 단지의 입주 시기(입주예정일 2025년 6월)에는 신축 아파트에 대한 희소가치는 더욱 돋보일 예정이다. 

고금리 부담
파격적 조건

단지 반경 약 1.5㎞ 내에는 신도초, 신도중, 하나고, 은평도서관, 구파발역(서울 지하철 3호선), 은평 성모병원, 롯데마트, 롯데시네마, 기자촌 근린공원 등의 생활 인프라가 골고루 조성돼 주거환경이 우수하다. 현재 신규 임차인은 분양전환우선권, 5% 계약금(1차) 등 한시적 계약 혜택을 제공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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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