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길 따라 나아지려나

지난달 23일 한국은행은 올해 두 번째 금융통화위원회를 열고 기준금리를 현 3.5%에서 동결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기준금리가 정점에 도달했다는 의견이 나오면서 부동산시장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2021년 하반기부터 약 1년 반 동안 전례 없는 기준금리 인상 기조를 이어온 한국은행이 인상 행보를 멈추면서 업계에서는 ‘금리 정점론’이 부상하고 있다. 올 들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도 금리 인상 속도를 조절하기 시작했으며, 현 3.5%는 한은이 상한선으로 언급해온 수준으로 추가 인상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3.5%서 동결
금리 정점론

한국부동산원 가격동향 자료에 따르면 가장 최근 금리 하락기인 2018년(1.75%)부터 2020년(0.5%)까지 기준금리는 1.7%p 떨어졌지만, 이 시기 전국 아파트 매매가격지수는 총 6% 올랐다. 소비자심리지수도 달라지고 있다. 

한국은행 소비자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150을 넘긴 금리수준전망 지수는 지난달을 기준으로 113까지 떨어졌다. 이는 전월(132) 대비 19p 하락한 수치며, 2020년 3월 이후 최대 하락 폭이다. 지난해 내리막길을 걷던 주택가격 전망 지수는 71을 기록하며 전월(68) 대비 3p 상승했다.

1년 뒤 집값 상승을 점치는 소비자의 비중이 늘어난 것이다.


부동산시장 회복에 대한 기대감으로 교통호재가 많은 수도권 분양시장이 주목을 받고 있다. 신규 개통되는 교통망은 역 주변으로 주거시설 및 다양한 편의시설 등을 들어서게 해 지역가치를 높아지게 만들어 인구 유입을 이끌게 되는데 이를 바로 ‘새 길 효과’라고 한다.

부동산시장의 흐름이 개선되면 대형 교통호재를 품은 지역들에 부동산 수요자들의 이목이 집중된다. 교통호재는 단순한 교통망 확충뿐 아니라 인구 유입, 인프라 발달 등 전체적인 지역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신규 교통망이 형성되면 인근 지역으로의 접근성이 높아지면서 통학 및 통근이 편리해지고 인구 유입도 활발해진다. 더 나아가 유동인구 증가로 인한 상권 형성은 물론 생활 인프라가 조성되는 등 주거 여건 향상도 기대할 수 있다.

교통호재 지역 시장 회복 기대
새롭게 뚫리는 주변 잇단 분양

분양 성수기인 3월부터 철도, 지하철 등이 새롭게 뚫리는 수도권 지역에서 분양이 잇따른다. 부동산시장 침체 속에서도 신설 철도 개통 주변은 여전한 인기를 이어가고 있는 만큼, 수요자들의 관심이 모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GTX(수도권광역철도), 신안산선, 서해선, 신구로선 등이 개통 시 파괴력이 높은 대표적인 교통호재다.

GTX가 개통은 물론 착공에 속도가 붙고 있다. 내년 조기 개통 소식이 알려진 GTX-A 노선 주변은 수요가 급증하며 매매가격 반등세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토교통부실거래가에 따르면 다음 해 상반기 개통이 예정된 GTX-A 동탄역 주변 ‘동탄역 시범우남퍼스트빌’ 전용 84㎡는 지난달 10억500만원에 거래되며, 전월 거래가(9억2000만원) 대비 8000만원 올랐다. 하반기 개통을 앞둔 GTX-A 운정역(예정) 인근 ‘운정신도시 아이파크’는 같은 달 전용 84㎡가 6억8000만원에 손바뀜되며 전월 거래가(6억2000만원) 대비 6000만원 오른 것으로 조사됐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1월 광역교통망 확충 계획 보고를 통해 GTX-A 노선의 다음 해 조기 개통 추진을 알렸다. 또 그에 앞서 지난해 12월에는 GTX-A 노선 전동차가 첫 출고식을 갖기도 했다. 서울, 경기, 인천 지역의 이동시간을 크게 단축시키는 GTX는 첫 개발 시작 단계부터 수도권 부동산시장의 큰 호재로 작용했다. 

지난 몇 년간 GTX 노선이 지나는 지역들의 부동산에 대한 수요자들의 관심은 상당했다. 실제 부동산 상승장에서 GTX 노선이 지나가는 경기 파주, 동탄 등지의 집값 상승세가 그 어느 곳보다도 뜨거웠다. 정부가 이번에 발표한 GTX-A 노선 조기 개통 추진계획은 다음과 같다. 

먼저 올 하반기 GTX-A를 시험 운행하고 내년 상반기 수서역~동탄역 구간, 하반기 파주운정~서울역 구간을 순차적으로 개통하는 것이 목표다. 이후 2025년 하반기에는 전 구간을 개통해 운영한다는 계획이다. 다만, 삼성역의 경우는 영동대로 복합개발사업과 연계돼있어 2028년 완공 및 연결을 추진하고, 이전까지는 무정차 통과로 운영할 예정이다. 

GTX-A 노선은 파주운정신도시서 서울역을 거쳐 화성동탄으로 이어지는 총 83.1㎞ 길이의 노선이다. 서울을 비롯해 경기 파주시, 고양시, 서울시, 성남시, 용인시, 화성시 등 총 6개 시를 지나게 된다. 6개 시에는 총 11개역이 분포하는데 주요 역은 ▲운정역(파주시) ▲킨텍스역 ▲대곡역 ▲창릉역(이상 고양시) ▲연신내역 ▲서울역 ▲삼성역 ▲수서역(이상 서울) ▲성남역(성남시) ▲구성역(용인시) ▲동탄역(화성시) 이다.

이 노선이 개통되면 파주운정에서는 서울역까지 18분, 동탄역에서 수서역까지는 19분대로 이동이 가능, 기존 1시간 이상 소요됐던 시간이 획기적으로 줄어들 예정이다. 

현재 예비타당성 조사까지 마친 노선은 A·B·C 세 구간이다. D 노선의 경우 김포~부천 구간만 사전타당성 조사를 마치고 예비타당성 조사를 신청했다. D 노선은 김포~부천〜강남〜하남〜팔당을 잇는다. E, F는 아직 노선이 확정되지 않았다.

첫 삽 뜨는 
GTX 노선들

높은 진척도를 보이는 다른 노선과 달리 GTX C는 다소 지지부진한 모습이다. 일부 지역서 설계변경을 요구하는 등 제동을 걸고 있어서다. C 노선은 경기 북부 양주 덕정역과 경기 남부 수원역을 연결하는 노선이다. 도봉구 창동과 청량리, 왕십리 등 강북 주요 지역과 삼성, 양재 등 강남 도심을 지나간다.

국토부는 C 노선을 올해 안에 착공하는 것이 목표다. 다만 강남 구간에서는 ‘은마아파트 우회안’이 문제로 떠올랐다. C 노선은 삼성~양재 구간 일부가 은마아파트 지하를 지나간다. 이에 아파트 주민들이 ‘안전 문제’를 제기하며 반대하고 나섰다.

주민들은 “재건축을 앞둔 아파트 지하에 GTX가 통과하면 안전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GTX C 삼성역~양재역 구간이 단지를 관통하지 않게 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두 역을 직선으로 연결하거나 탄천 방향으로 우회하도록 설계를 변경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크게 바뀌는
수도권 지도

이를 두고 국토부는 2014년부터 기술·법률 검토를 거쳐 선정된 노선이라며 원안을 고수하겠다는 방침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A·B 노선 수혜 지역에 비해 C 노선 수혜 지역들은 다소 부진한 흐름을 보인다.


양주 덕정, 도봉 창동, 청량리, 왕십리, 안양 평촌 등이 대표 수혜 지역으로 거론되지만, GTX C 노선 효과를 거의 보지 못하고 있다. 안양 평촌 일대 아파트들은 GTX C 노선 개통 효과로 집값이 수억원씩 뛰었지만 최근 상승분을 거의 반납했다.

신안산선은 ‘광역교통시행계획’에 기반, 2020년 4월 착공해 2025년 4월 개통을 목표로 추진 중인 광역철도 확충사업이다. 위험 분담형 민간투자사업(BTO-rs) 방식으로 시행 중이며, 사업시행자는 넥스트레인이다. 총사업비는 4조3055억원이 투입된다.

이 노선은 Y자 형태다. 여의도서 출발 광명역서 화성·시흥 방면, 안산(한양대) 방면 등 두 갈래로 나눠진다. 이 중 일부 노선은 소사-원시선 등과 공용한다. 신안산선 민투사업자가 건설하는 구간은 여의도-광명역-한양대 간 30.7㎞, 광명역-시흥시청 간 10㎞, 원시역(서행선)-송산차량기지 간 4㎞다. 

이 노선이 완공되면 안산, 시흥서 여의도까지 30분대에 운행할 수 있다. 서해선, 월곶-판교선, 인천발 KTX 등과 연계돼 수도권 서남부 광역교통 개선에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충청남도 홍성군과 경기 화성시 송산을 연결하는 서해선도 주목을 받고 있다. 당초 개통 예정 시기였던 올해 12월보다 6개월 지연됐는데, 국가철도공단은 서해선 전 구간을 다음 해 6월 개통할 예정이다. 

서해선엔 KTX 이음을 투입한다. 당초 공단은 2023년 12월 서해선 전 구간을 개통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레미콘 등 자재 수급 불안으로 개통 시기가 미뤄졌다. 다만, 국토교통부가 서해선 복선전철화 사업 기간을 다음 해 12월 말로 고시해 개통 시기가 더 늦춰질 수도 있다.


개통까지 오랜 시간 걸려
실수요는 좀 더 신중하게 

충남도 서해선이 경부고속철도와 연결되면 수도권 간의 이동시간 단축으로 철도교통 접근성이 크게 개선되고 환승 이동 불편사항도 해소될 것으로 기대된다. 여기에 향후 장항선 복선전철과 연계되면 수도권과 충남도, 전라남·북도를 연결하는 지역 간 중추 교통로로 지역 균형발전 및 지역경제 활성화 등 파급효과 상당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서해선과 경부고속철도 연결에 따른 경제효과는 생산유발효과 8507억원, 고용유발효과 8037명, 취업유발효과 6973명 등에 달할 것으로 충남도청은 분석했다. 서해선은 현재 수도권 전철 경인선 소사역(경기도 부천)서 원시역(경기도 안산)까지 운행하고 있다. 주요 환승역은 소사역과 초지역이다.

서해선 복선전철 전 구간 개통 시 주요 환승역은 대곡역(경의중앙선), 김포공항역(공항철도, 서울5·9호선), 소사역(경인선), 시흥시청역(신안산선, 경강선), 초지역(수인분당선, 서울4호선, 인천KTX) 등이 될 전망이다.

3기 신도시와 연관된 경기 시흥서 서울 목동을 잇는 전철 신구로선(시흥대야~목동) 확정으로 관련 지역에 수요자가 몰리며 있다. 이들 지역은 그간 교통혼잡으로 교통망 확충 필요성을 줄곧 제기해온 곳이다. 

신구로선은 경기 시흥 대야역서 옥길역·항동역·온수역·궁동·개봉·고척·양천구청을 지나 서울 목동까지 연결되는 노선을 말한다. 신구로선이 개통되면 시흥서 목동까지 45분에서 15분으로 단축된다. 국토교통부는 2021년 4월 제4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서 이 같은 내용의 신구로선을 새롭게 포함시켰다. 다음은 수도권 교통호재 수혜 단지.

▲동탄신도시 금강펜테리움 6차 센트럴파크= 금강주택이 ‘동탄신도시 금강펜테리움 6차 센트럴파크’를 분양한다. 신주거문화타운 A59블록에 지하 1층~지상 최고 20층, 14개동, 총 1103세대의 대단지로 조성된다. 전 세대가 전용면적 84㎡·100㎡의 중대형 아파트로 구성된다. 타입별 분양 세대 수는 84㎡ 718세대, 100㎡ 385세대다.

내년 개통이 예정된 GTX-A 노선이 지나갈 SRT동탄역을 이용하기 수월하고, 신리IC를 통해 경부고속도로, 수도권제2순환고속도로 등 접근성도 용이하다. 여기에 인근에는 동탄도시철도(트램) 2호선도 지나갈 예정이어서 광역교통망도 우수하다는 평가다.

▲시흥능곡역 하이스퀘어= 시흥장현지구 ‘시흥능곡역 하이스퀘어’가 분양 중이다. 업무형과 주거형 공간의 장점을 더한 신개념 라이브오피스로 계획돼 희소성이 뛰어나다는 평이다. 

균형발전
지역경제

불과 210m 거리에 서해선 및 신안산선(예정) 더블역세권인 시흥능곡역 4번 출구가 자리해 지하철 이용이 편리하다. 한 정거장 거리인 시흥시청역에는 신안산선(2024년 예정)과 월곶판교선(2027년 예정)이 개통될 예정으로, 트리플역세권 단지가 장점도 누릴 수 있다. 

▲개봉 디스페이스 구로= 서울특별시 구로구 개봉동 144-5번지 일대 개봉동 첫 지식산업센터 ‘개봉 디스페이스(D-SPACE) 구로’가 분양한다. 대지면적 1986.00㎡, 연면적 1만6862.49㎡, 지하 5층~지상 13층 규모다. 서울지하철 1호선 개봉역 400m 내에 있는 역세권이다.

신도림역을 통한 KTX, GTX-B 등을 이용할 수 있어 광역교통망 우수하고 신구로선 개통 시 더블역세권으로 재탄생한다. 신구로선 개봉역 예정에 따라 1호선 개봉역과 함께 대중교통 환경 역시 더욱 편리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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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