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최근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와 무인기 침투, 그리고 이태원 참사로 인해 국가적 위기 상황에 놓여 있다. 그런데도 대책을 세우고 제일 빠르게 움직여야 할 국방부 장관과 행정안정부 장관이 국회에 나와 의원들에게 쩔쩔매고 있는 모습만 보였다. 여야 의원들도 앞으로 어떤 대책을 세울 것인지는 물어보지 않고, 잘잘못을 따지며 정쟁의 모습만 보였다.
도발과 재난 같은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는 정부가 먼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수습과 동시에 더 이상 도발과 재난이 발생하지 않도록 군이나 국민이 총동원되는 훈련을 하는 게 중요하다. 그래야 국민이 안심할 수 있다. 잘잘못은 나중에 따져도 된다.
국방과 안전이 뚫린 국가적 위기 상황인데도, 왜 국방부는 육해공 전군이 참여하는 연합훈련을 즉각 실시하지 않고, 행정안전부는 전 국민이 참여하는 민방공 훈련을 당장 실시하지 않고 있는지 모르겠다. 위기 상황에서 ‘앞으로 하겠다’는 다짐이나 계획은 무의미하다.
필자는 도발과 재난 같은 위기 상황에 대한 우리나라의 훈련과 매뉴얼이 탑다운(Top-down) 방식이 아닌 보고체계를 중시하는 바텀업(Bottom-up) 방식으로 돼있어, 훈련과 매뉴얼이 실제 위기 상황에서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고 본다.
국방부에서 훈련 업무를 담당했던 모 장교의 말에 의하면, 군의 연간 훈련 일정은 먼저 소대서 훈련을 하고, 다음에는 중대·대대·사단 등으로 올라가면서 연합으로 훈련한 뒤, 최종적으로 미군과 합동훈련을 하는 바텀업 방식이라고 한다. 단계별로 전투력을 높이는 체계적인 훈련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전쟁은 한순간에 발생하기 때문에 바텀업 방식 훈련을 통해 대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연합사령부나 사단에서 종합적인 작전을 세워 연합훈련을 먼저 하고, 나중에 대대·중대·소대로 내려가면서 각각의 작전을 습득하게 하는 탑다운 방식 훈련이 더 중요하지 않을 수 없다.
탑다운 방식 훈련은 위기 상황에서 종합적으로 즉각 대처할 때 효과적인 반면, 바텀업 방식 훈련은 평시 상황에서 위기에 대한 대응 능력을 키우는 데 효과적이어서, 바텀업 방식 훈련만으로는 위기 상황을 극복하는 데 한계가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탑다운 방식 훈련보다 바텀업 방식 훈련에 익숙하다 보니, 최근 북한의 도발과 이태원 참사 같은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당황하는 것이다.
탑다운 방식 훈련은 실전훈련이고 바텀업 방식 훈련은 대비훈련이라는 사실을 정부가 명심해야 한다. IT 강국인 우리나라가 전 세계서 제일 빠른 나라가 됐는데 아직도 바텀업 방식 보고체계를 중시하다 이태원 참사 같은 재난이 반복되고 있다는 게 말이 안 된다.
만약 국방부와 행정안전부 매뉴얼이 탑다운 방식에 방점을 뒀다면 아마도 국방부 장관과 행정안전부 장관은 북한의 도발과 이태원 참사에 책임을 지고 사퇴하거나 구속돼야 한다. 그러나 정부의 매뉴얼이 바텀업 방식에 방점을 두고 있어 중간 관리자만 처벌받는 것이다.
이태원 참사 사건을 수사했던 경찰청 특별수사본부가 행정안전부 장관, 서울시장, 경찰청장은 무혐의로, 그리고 경찰, 구청, 소방, 서울교통공사 등 24명(6명 구속)에 대해서는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 등으로 입건한 것만 봐도 정부의 매뉴얼이 바텀업 방식에 방점을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기업에서는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사업주나 경영주에게 책임을 물어 처벌하는 탑다운 방식의 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하고, 정부에서는 국가적 도발이나 재난이 발생하면 현장 실무자나 중간 관리자가 책임지는 바텀업 방식의 처벌을 적용하는 이 모순을 우리 국민이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안타까울 뿐이다.
위기 상황에서 탑다운 방식 매뉴얼이 성공하려면 최종 컨트롤타워가 위기 상황을 제일 먼저 알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청와대나 총리실이나 각 부처가 위기 정보를 가장 빨리 알 수 있는 장치를 구축하고 있어야 한다.
지난 10일 새벽 1시28분에 필자는 꽤 큰 진동과 함께 요란한 소리를 내는 알림 문자메시지 때문에 잠에서 깰 수밖에 없었다. 인천 강화군 서쪽 26㎞ 해역서 규모 4.0 지진이 발생했으니 낙하물로부터 몸을 보호하고, 진동이 멈추면 야외로 대피하라는 기상청의 긴급재난문자였다.
당일 아침 7시 뉴스를 보니 최초 관측 이후 9초 만에 지진조기경보시스템 자동분석을 토대로 지진 속보가 발표됐고 진앙에서 반경 80㎞ 이내인 수도권에 긴급재난문자가 송출됐다고 했다. 도발과 재난 같은 위기는 이렇게 탑다운 방식 매뉴얼로 가동돼야 한다.
이태원 참사 때도 사고가 나자마자 긴급재난문자를 보내고 사이렌도 요란하게 울리는 탑다운 방식 매뉴얼이 가동됐다면 희생자를 줄일 수 있었다.
민방공 훈련도 중앙본부에서 컨트롤하고 나중에 점차 하위 지자체로부터 보고받으면서 문제점을 보완하는 탑다운 방식 훈련이다. 행정안전부는 지금이라도 강도 높은 민방공 훈련을 실시해야 한다. 위기 상황에서는 탑다운 방식 훈련이 그나마 국민을 안심시킬 수 있다.
국가 위기는 탑다운 방식 훈련으로 대비하고, 탑다운 방식 매뉴얼로 가동돼야 한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그래야 일사불란하게 대응할 수 있고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국회서 여야 의원들이 국방부 장관에게 왜 육해공 전군이 참여하는 연합훈련을 하지 않느냐를 다그치고, 행정안전부 장관에게는 왜 전 국민이 참여하는 민방공 훈련을 하지 않느냐고 다그쳐야 했다.
※본 칼럼은 <일요시사>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