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정치팀] 정인균 기자 = 그동안 더불어민주당에게 국민의힘 문제는 뒷전이었다. 당 대표를 끌어내리던 윤핵관이 실언하던 민주당은 그들 문제에 큰 관심을 두지 못했다. 그러나 3월로 다가온 전당대회에는 비로소 눈길을 돌리는 모양새다. 민주당은 누가 국민의힘 대표가 되면 본인들에게 유리할지 벌써 계산해두고 있다. 그들이 원하는 차기 국민의힘 대표는 요즘 각종 여론조사에서 1위를 달리고 있는 김기현 의원이었다.
월드컵 개막식만큼이나 주목받는 것이 조 추첨식이다. 보통 월드컵 개막 반년 전쯤 실시되는 월드컵 조 추첨은 본선 참가국 모두의 관심사다. 상대국이 누구냐에 따라 출전 엔트리를 달리 선발할 수 있고, 그 나라의 특색에 따라 전술을 새로 짤 수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몇몇 유명 감독과 코치진은 조 추첨 전까지는 어떤 전략도, 엔트리도 결정하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다.
엎치락
뒤치락
상대에 따라 전략을 달리 짜는 문제는 비단 스포츠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정당 간의 선거전에서도 종종 그런 모습을 찾아볼 수 있는데, 지난해 지방선거와 대통령선거에서 있었던 양당 싸움이 그 좋은 예다.
지난해 대통령선거에서 맞붙은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은 각자 같은 리스크를 갖고 있는 후보를 대통령 후보로 내세운 바 있다.
상대 후보가 같은 리스크를 갖고 있다는 것은 서로에게 행운이었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당시 대장동 문제와 배우자 김혜경 여사의 공금횡령 문제, 또 성남FC 뇌물 혐의 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고발 사주, 배우자 김건희 여사의 주가조작 사건으로 구설수를 타며 지지율 부진을 겪었다.
이때 양 후보는 본인 리스크를 감추기보다는 오히려 당당히 드러내며 상대 리스크도 함께 강조하는 전략을 취했다.
결과적으로 이 전략은 각자에게 성공적이었으며 결국 사법 리스크와 배우자 리스크는 양 후보의 지지율에 큰 영향을 미치진 못했다. 만일 리스크가 없는 후보와 맞붙었다면 양 진영은 다른 전략을 취했을 것이다.
이 정치싸움이 내년에도 벌어질 예정이다. 여의도는 벌써부터 내년도 총선 준비에 한창이다.
정당 관계자들은 지난해 있던 민주당 전당대회와 오는 3월에 있을 국민의힘 전당대회도 준비의 일환으로 보고 있다. 차기 당 대표가 공천권을 쥐고 있는 만큼 당이 총력전을 펼칠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해석하는 것이다.
이를 방증이라도 하듯 요즘 민주당의 관심사는 온통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쏠려 있는 모양새다. 이미 이재명 대표 체제로 굳힌 이들은 ‘2024 총선’이라는 링에 이미 올라가 있는 상태다. 전당대회를 치른 지 반년가량 지난 민주당은 이제 국민의힘의 대표가 누가 될지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국민의힘은 오는 3월8일 제3차 전당대회에서 새로운 지도부를 선출한다. 이 선거에서 국민의힘 당원들은 당대표 한 명과 선출직 최고위원 5명을 뽑게 된다.
말 많았던 공천룰은 당원투표 100%로 굳어졌고, 대표와 최고위원 후보직에 이미 출사표를 던진 후보가 수두룩하다.
주요 당권주자에는 울산에서만 내리 5선을 한 김기현 의원과 3선의 안철수 의원이 각축전을 벌이고 있고 윤상현 의원이 그 뒤를 잇는 상태다.
최고위원 선거에는 광명을 당협위원장인 김용태 최고위원이 다시 도전장을 내밀었고, 송파갑에서 당선된 초선 김웅 의원이 출마 선언을 했다.
청년최고위원직에는 장예찬 청년재단 이사장과 김가람 전 한국청년회의소 중앙회장이 나란히 출사표를 던졌다.
김기현 초반 부진 속 당권주자 급부상
나경원-대통령실 갈등 속 어부지리 1등
친윤(친 윤석열)과 비윤(비 윤석열)으로 나눠진 구도에서 각 후보는 나름의 전략을 들고 고군분투 중이다. 친윤은 본인이 윤 대통령의 사람이라는 전략으로 선거운동을 하고 있고, 비윤은 ‘균형 잡힌 당 대표’라는 슬로건으로 어필하고 있다.
세간의 관심은 역시 당 대표 경쟁에 몰렸다. 친윤 세력의 대표를 자처하고있는 김기현 의원은 장제원 의원과의 연대를 공공연하게 알리며 ‘김장 연대’라는 별칭도 얻었다.
지난 5일 장 의원과 김 의원은 서울 송파을 당원 강연회에 나란히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그들이 참석한 행사는 배현진 의원의 지역구 당원 행사였는데, 배 의원 역시 지난해 7월 ‘이준석 때리기’에 앞장선 친윤계 대표 격 의원이다.
당시 최고위원직을 맡고 있던 배 의원은 모두가 이준석 전 대표의 눈치를 보고 있을 때 제일 먼저 최고위원직을 사퇴하며 친윤 세력의 규합을 도모했다. 배 의원의 사퇴로 힘을 받은 친윤계 인사는 줄줄이 지도부를 박차고 나오며 이 전 대표 몰아내기에 힘을 보탠 바 있다.
이때의 주역들이 이날 행사에 모인 셈이다. 배 의원 양 옆에는 김 의원과 장 의원이 배석했고 현직 의원 30명도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또 다른 당권주자인 안 의원의 참석도 눈길을 끌었다.
사실 본인과 관련 없는 지역구 당원 행사에 주요 의원들이 참석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보통 의원들은 타 의원 지역구에 가는 일이 거의 없고, 더군다나 이날 행사처럼 수십명이 모이는 것은 극히 드물다.
정계에서는 이날 행사를 두고 당권에 출마한 후보들이 ‘친윤’ 색을 입기 위해 자리에 참석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당시 행사장에 있었던 여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친윤이 아닌 사람도 대거 참석한 것으로 보인다”며 “당원투표 100% 반영인 상황에서 ‘친윤’으로 인식되는 것은 표 결집에 상당히 효과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김장 연대’가 공고한 만큼 ‘친윤 후보’는 김기현 의원이 가져가지 않을까 한다”고 전했다.
김장철
지났다?
이 관계자가 말한 ‘김장 연대’란 김 의원과 장 의원의 연대를 말한다. 지난 5일, 권성동 의원이 당 대표 선거에 불출마할 뜻을 밝히자 국민의힘 여론은 ‘누가 그럼 친윤 후보냐’는 논란이 벌어졌고, 윤 대통령의 복심인 장 의원은 김 의원을 공개석상에서 두둔하는 등 그에게 대놓고 힘을 실어줬다.
민주당은 이런 국민의힘 기류를 면밀히 파악하고 있다.
민주당 측은 누가 대표가 되느냐에 초미의 관심을 보이고 있고, 그에 맞춘 전략을 구상 중이다. 한 민주당 지도부 관계자는 <일요시사>와 만난 자리에서 “우리는 사실상 ‘친윤’ 후보가 대표에 당선될 것이라 보고 있다”며 “김기현 의원이 되지 않을까 싶다. 우리가 바라는 것도 그(김 의원)”이라고 전했다.
김 의원은 초반 부진을 이겨내고 현재는 1위 후보로 굳어지는 모양새다.
여론조사업체 ‘에이스리서치’가 <뉴시스> 의뢰로 지난 14일부터 16일까지 사흘간 남녀 1002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여당 지지층 397명에게 ‘당 대표 적합도’를 물었다. 그 결과 김 의원은 35.5%로 압도적 1위를 차지했다. 나 전 의원은 21.6%로 2위, 안철수 의원이 19.9%로 3위를 기록했다.
해당 여론조사는 무선ARS(자동응답‧RDD) 방식으로 진행됐으며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1%, 응답률은 1.2%였다(더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서 확인할 수 있다).
지난해 12월 같은 조사에서 20.3%를 받았던 김 의원은 지지율이 약 15%p나 올라 이제야 비로소 ‘친윤 바람’을 등에 업었다고 평가받았다. 당초 한 자릿수 지지율에 머물렀던 김 의원의 약진이 윤심 덕분으로 1위까지 올랐다는 해석이다.
많은 정치평론가들은 그 이면에 대통령실과 나 전 의원의 갈등이 한 몫 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들은 당권주자로 인기가 높았던 나 전 의원이 대통령실과의 갈등으로 논란에 휩싸이자 당원들의 마음이 김 의원 측으로 기울었다고 해석한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직을 맡고 있던 나 전 의원은 대통령실과의 마찰을 이기지 못하고 지난 13일 사직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나 전 의원이 받아든 결과는 ‘사직서 수리’가 아닌 ‘해임 통보’였다. 대통령실 김은혜 홍보수석은 같은 날 오후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에서 “윤 대통령은 이날 나경원 전 의원을 저출산고령화사회부위원장과 기후환경대사직에서 해임했다”고 일방 통보했다.
2연패
설욕?
대통령실이 부위원장직은 물론, 기후대사에서도 나 전 의원의 직함을 몰수한 셈이다.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나 전 의원이 발 벗고 윤 대통령을 지원한 점을 볼 때, 해당 결정은 많은 사람의 의아함을 샀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나 전 의원과의 갈등에 대해 “윤 대통령께서는 나 전 의원이 공직을 ‘자기 정치’를 위해 이용했다고 보고 있다”며 “준장관급 자리를 저버리고 전당대회에 나간다는 것이 사실 사리에는 안 맞는 것 아닌가”라고 전했다.
대통령실과의 불화로 당권에서 멀어지고 있는 나 전 의원을 대신해 김 의원이 각광받으면서 민주당은 속으로 웃고 있는 중이다. 민주당이 원하는 게 ‘친윤’을 등에 업은 후보가 나와 대표에 당선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일요시사>와 만난 민주당 관계자들은 김 의원이 대표가 되는 것이 오히려 민주당에 유리할 것이라 주장한다. 우선 이들은 대표가 누가 되느냐에 따라 다음 총선전의 성격이 결정된다고 보고 있다. 이들은 유승민 전 의원이나 나 전 의원같이 비윤계로 분류되는 후보들이 대표가 된다면 중도층 세력 확장에 유리할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를 대승으로 이끈 이 전 대표가 그 좋은 예다. 당원투표와 여론조사로 당 대표에 뽑힌 이 전 대표는 지난해 두 차례 선거에서 전면에 나서며 선거운동을 진두지휘했다.
30대 젊은 남성 대표가 지휘봉을 잡은 국민의힘은 2030세대는 물론 중도층까지 표를 흡수하며 정권교체에 성공했고, 몇 달 후의 지방선거까지 승리했다.
초미의 관심사였던 수도권 선거 역시 국민의힘이 이긴 것이다. 광역자치단체장 선거와 기초자치단체장 선거에서 압승한 국민의힘은 ‘중도층’으로 분류된 수도권 민심을 사로잡은 것으로 평가받았고, 많은 선거 전략 전문가는 그 공이 이 전 대표에게 있다고 분석했다.
민주당 측은 그런 이 대표와 비교적 정치적으로 가까운 유 전 의원이 대표가 되는 것을 매우 꺼려하는 분위기다.
친명(친 이재명)계 의원실 관계자는 “이 대표는 수도권 민심 챙기기를 우선순위로 두고 있고, 여기에 가장 많은 공을 들일 것으로 보인다”며 “상대 당 대표가 PK지역에서만 유리한 김기현 대표라면 민주당 입장에서는 오히려 반기는 분위기”라고 <일요시사>에 전했다.
“존재감 없고 이슈파이팅 못해…환영”
친윤 업은 당 대표 상대로 차기 대권?
민주당은 수도권에서의 승리에 더해 ‘김기현표’ 국민의힘이 가지고 있는 약점이 더러 있다고 밝혔다. 우선 이들은 김 의원의 낮은 인지도에 국민의힘 표가 잠식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직함 특성상 선거전에서 자주 선거운동을 지원하러 다녀야 하는 당 대표가 인지도가 낮다면, 그 파급력이 이 대표를 따라오지 못할 것이라 생각이다.
대통령선거까지 치른 이 대표의 선거 지원에 비해 5선이지만 울산 지역에서만 영향력을 행사해온 김 의원은 상대적으로 대중에게 이름이 덜 알려진 인물이다. ‘김장 연대’로 주목받기 전까지만 해도 김 의원의 당내 존재감은 그리 크지 않았으며 현재 나와 있는 여러 당권주자들 중 가장 낮은 지지율을 기록하기도 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전화 통화에서 “물론 여의도에 오래 있던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김 의원의 이름이 익숙하지만, 일반 대중에게 파급력이 약한 것은 사실 아니냐”며 “그런 분이 대표로 국민의힘 선거운동을 이끈다면 민주당에 한참 유리한 것은 사실이다. 이슈 파이팅 능력도 상당이 저평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알려지지 않은 무명 세월이 긴 만큼 이슈를 메이킹한 적도, 그에 대응한 경험도 상당히 적은 편이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의 국민의힘 내홍 문제에서도 그는 존재감 없는 모습을 연일 보여줬다.
당시 국민의힘은 이 전 대표와 윤 대통령 간의 갈등으로 연일 매스컴을 장식한 바 있다. 유례없었던 지도부와 대권후보 간의 갈등은 시민들의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고, 언론은 둘 사이의 기사를 쏟아내며 싸움을 부추겼다.
당시 원내대표를 맡고 있던 인물이 바로 김 의원이었다. 그는 당내 지도부로서 내홍을 끝낼 책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역할을 해내지도, 주목도 끌지 못했다.
비록 울산에서 두 사람의 회동을 주선해 화해의 밑거름을 깔았지만, 이날 언론의 관심도 역시 이 전 대표에게만 쏠렸을 뿐이었다.
민주당은 그런 김 의원의 존재감이 민주당에는 호재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존재감이 곧 리더십으로 비춰지는 요즘 여의도 분위기에 리더십 없는 김 의원이 대표가 되기를 내심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또, 김 의원이 친윤을 대표하고 있다는 이미지도 놓칠 수 없는 포인트다. 민주당 지도부는 이 대표가 윤 대통령과의 대결 구도를 가져가는 것이 여러 모로 도움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차기 대선후보를 이 대표로 사실상 내정해놓고 있는 민주당 관계자들은 이번 총선이 이 대표의 ‘첫 승리’로 끝나길 바라고 있다.
지난해 두 번의 선거에서 윤 대통령에게 모두 패배했다고 평가받고 있는 이 대표를 2024년 총선서 승리하게 한 뒤 차기 대권후보로 다시 한번 발돋움시키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상대당 후보가 친윤 바람을 등에 업은 후보라는 점은 필수적인 요소다. 유권자들에게 현직 대통령이라 비칠 수 있는 기회인 셈이다.
막상 뚜껑
열어봐야
민주당은 현재 상대 진영의 간판이 누가 될 것인가를 두고 이런저런 셈하고 있는 분위기지만, 이 대표에게 닥친 사법 리스크는 점점 더 그를 압박해가고 있다. 이 대표가 다음 총선까지 대표직을 유지하려면 이를 어떻게 극복할지부터 생각해야 한다. 현재 민주당에게 가장 중요한 현안은 이 대표의 ‘대표직 유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