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끝나지 않은 신드롬 배우 이성민

‘연기의 신’ 전성기는 지금부터!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흥행가도를 달리던 JTBC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이 시원찮은 결말과 함께 종영했다. 아쉬운 목소리가 커질수록, 극에서 조기 퇴장한 이성민을 향한 찬사도 덩달아 커졌다. 이성민은 엄청난 내공이 담긴 연기를 선보이며 화제의 중심에 섰다. 항간에서는 벌써 “연기대상은 따놓은 당상”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이성민은 지난달 말 종영한 JTBC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에서 순양그룹의 총수 ‘진양철’을 연기했다. 실제 나이보다 20세 이상 많은 노인으로 분해 인상적인 연기를 펼치며 안방극장을 사로잡았다. 이성민은 어느덧 연기파 배우의 대표주자로 자리 잡았다. 그 뒤에는 긴 무명 생활과 꿈을 향한 뚝심이 있다. 

접었던
배우의 꿈

이성민은 1968년 경상북도 봉화군 봉화읍 도촌리에서 태어나 인근 도시인 영주시에서 중·고등학교를 나왔다. 이성민은 스스로 생각해도 어렸을 때 자신이 연기자로서의 소질이 부족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고등학교 때 배우가 되기로 결심했다. 당시 시민회관에서 단체 관람한 연극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심을 굳힌 이성민은 중앙대 연극영화과에 지원했다. 하지만 교수들에겐 무시를 당하기 일쑤였고, 가족들은 강력하게 반대했다. 영화를 아주 좋아하던 그의 아버지 역시 다르지 않았다.

부친은 그가 대학원서를 내던 시절 같이 냉면을 먹자고 부른 뒤 “네가 연기를 좋아하는 건 알지만 너는 아니다. 차라리 공부를 더 해서 좋은 대학 다시 가라. 용돈을 줄 테니 여행이라도 다녀오라”며 그의 면전에서 원서를 찢어버렸다. 결국 이성민은 일단 배우의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재수생이 된 이성민은 또다시 배우의 꿈을 꾸기 시작했다. 소백산 철쭉제를 구경하러 갔다가 하필 연극 단원 모집 포스터가 다시 눈에 들어왔다. 이성민은 이를 통해 비교적 인구가 적은 영주시에서도 극단을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결국 이성민은 “이 정도는 공부와 병행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극단으로 향했다.

그는 극단에서 여러 작품을 새로 접하는 등 시야를 넓힐 수 있었다. 집에는 말할 수 없었지만 그는 극단 선배들의 뒤를 항상 따라다니며 극단 생활에 모든 것을 걸었다. 당시 이성민은 생애 처음으로 무대에 설 수 있었다. 그에 따르면 첫 대사는 루퍼트 부르크의 작품 <리투아니아>의 “잘 먹었습니다. 아주 잘 먹었어요”였다. 

하지만 은밀한 이중생활은 금새 들통나고 말았다. 독서실 사감이 어느 날 독서실을 찾은 그의 어머니에게 그가 “공부는 전혀 안 하고 매일 밤 셔터를 열고 들어온다. 몰래 극단 생활을 하고 있다”고 폭로하면서다. 결국 이성민은 어머니의 추궁을 견디지 못하고 공연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실토한다.

집안은 또다시 뒤집혔다. 고모까지 찾아와 연극 생활을 만류할 정도였다고 한다. 결국 그는 “마지막 공연까지만 하고 군대를 다녀와 다시 공부하겠다”고 가족들과 약속했다. 배우의 꿈을 또다시 포기한 것이다.

하지만 이성민은 이미 한 번 올라선 무대를 군 생활 중에도 잊을 수 없었다. 결국 한 연출가가 “대구로 오면 담뱃값은 주고 밥은 먹여주겠다”고 제안하자, 전역한 지 일주일 만에 단돈 7만원을 들고 대구로 향했다. 이때가 1991년, 그의 나이 스물넷이었다. 

타지 생활은 쉽지 않았다. 당시 이성민은 텅 빈 쪽방에서 지내는 등 끊임없이 생활고에 시달렸다. 쪽방에는 가구도, 가재도구도, 심지어 방충망도 없었다. 오직 대본과 커피포트뿐이었다. 밥값도 제대로 챙겨받지 못해 끼니를 거르는 일이 잦았다. 당시 이성민은 낯선 타지에서 외롭고 굶주려 혼자 베개를 껴안고 많이 울었다고 한다. 


그는 배고픔을 견디다 못해 끓인 물에 커피 프림을 풀고 남은 마가린 조각과 설탕을 부어 죽을 만들어 마셨다. 1000원어치 떡볶이를 주문할 때도 국물을 더 달라고 사정해 떡볶이 국물로 배를 채웠다. 그는 밤새도록 쓰린 속을 달래야 했다.

그럼에도 연극에 대한 열정은 여전했다. 이성민은 “누가 연극 포스터를 붙이라고 시키면 한 장도 빠짐없이 붙였다. 손가락이 쓰릴 정도로 힘들게 1만장의 포스터를 붙여본 적이 있다”고 회상했다. 훗날 주연으로 열연한 드라마 <골든타임>에 빗대 자신의 인생 골든타임은 직접 포스터를 붙이던 20대 시절이라고 밝혔다.

<재벌집 막내아들> 종영 후에도…
뇌리에 박힌 ‘진양철’…열연 찬사

이성민은 극단 활동을 이어가다 아내를 만났다. 아내는 이성민이 출연하던 연극 <B언소>의 안무가 제자였다. 이성민은 아내를 만난 이후 2001년 전국 연극제에서 <돼지사냥>으로 최우수 연기상을 수상하는 등 겹경사를 누렸다. 

2002년 이성민은 서른다섯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부인과 딸을 대구에 둔 채로 홀로 상경했다. 앞으로 배우의 길을 쭉 걸을 것인데, 한 번쯤은 대한민국 연극계의 중심인 대학로에서 자신의 실력을 검증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주변에서도 서울로 가 보라는 조언이 이어졌다.

당시 이성민은 가족에게 “3년만 도전해보고 안 되면 다시 돌아오겠다”고 약속했다. 형편은 여전히 좋지 못했던 터라, 서울살이도 쉽지 않았다. 이성민은 1주일에 한 번씩 대구로 내려와 아내에게 10만원의 용돈을 받아갔다. 여기서 차비·교통카드 충전·담뱃값으로 빼면 남는 게 없었다.

교통비를 아끼려 동대구역에서 당시 집이 있던 시지동까지 2시간이 넘도록 걸어 다녔다. 이성민은 혹시라도 일자리를 잃으면 곧바로 돈을 벌 생각으로 택시·대리운전회사 전화번호를 적어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고 한다.

극단 ‘차이무’ 소속으로 <B언소> <돼지사냥> <거기> 등의 연극에 출연하던 이성민은 영화계에도 발을 들였다. 시작은 단역부터였다. 이성민은 2004년 영화 <맹부삼천지교>서 ‘사채 조폭1’역으로 출연했다. 그런데 단역, 조연 출연만으로도 이성민의 진가를 알아보는 이들이 생겨났다.

<맹부삼천지교에> 함께 출연했던 손현주는 그에게 단막극 출연을 추천했다. 드라마 <오 필승 봉순영>의 주연 안재욱은 이성민이 연극 시간을 이유로 ‘박 검품장’역을 고사하자 본인의 스케줄을 조정하면서까지 이성민을 배려했다.

가족과 약속한 3년은 속절없이 흘러갔다. 하지만 이성민은 그때까지도 무명 신세를 벗어나지 못했다. 이성민은 고민 끝에 서울에 남기로 결심한다. 지방인 대구 출신의 배우도 연기 실력이 뛰어나면 전국적으로도 인정받을 수 있다는 선례를 만들겠다는 다짐 때문이었다. 가족들도 그와 뜻을 모아 서울로 거처를 옮겼다.

어려운 형편은 여전했다. 어렸던 딸이 유난히 고기를 좋아했었는데, 이성민은 1000원대의 대패삼겹살밖에 사줄 수 없었다. 그때의 아픈 기억이 지금까지 남아있다고 한다. 

단역서
주연으로


이성민은 2005년 <말아톤> 등 여러 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했지만 상당수가 편집됐다. 2006년에는 차이무 출신 배우들이 힘을 합쳐 만든 영화 <비단구두>서 인간적인 조폭 ‘성철’역을 맡아 열연했다. 영화계의 이목을 끌긴 했지만 저예산 영화의 한계로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지는 못했다.

그래도 이성민은 이후 각종 영화와 드라마에서 조연으로 발돋움했다. <대왕세종>의 집현전 학사 최만리, <고고70>의 팝 칼럼니스트, <부당거래>의 부장검사 역할 등을 맡았다. 

이성민은 박찬욱 감독의 <박쥐>에 출연할 기회를 잡았다. 이전에 <밀양>서 호흡을 맞췄던 송강호가 그를 직접 추천했다. 그런데 이성민은 오디션장에서 “송강호와 친하냐”는 질문에 “안 친하다”고 대답했다. 결국 그 대답 때문인지 이성민은 오디션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훗날 송강호가 “왜 친하다고 하지 않았느냐”고 묻자 이성민은 “솔직히 친한 건 아니었지 않느냐”고 답했다 한다. 

그래도 이성민은 점차 시청자들에게 눈도장을 찍어가기 시작했다. 그 시작은 2010년 MBC 드라마 <파스타>의 레스토랑 바지사장 설준석역이었다. 이성민은 극 중에서 얄밉긴 해도 쉽게 미워할 수 없는 매력적인 악역 연기를 선보였다.

그 뒤엔 드라마 <글로리아> <내 마음이 들리니>, 영화 <작은 연못>, 연극 <늘근 도둑 이야기> 등에 잇달아 출연했다.


2011년에는 KBS 2TV 드라마 <브레인>에서 권력욕에 찌든 의사 고재학역을 맡았다. MBC 드라마 <마이 프린세스>에선 정의로운 척하면서 자기 잇속 챙기기에 열중하는 대통령 이영찬역으로 분했다.

주로 얄미운 악역을 많이 연기하던 이성민은 2012년 MBC 드라마 <더킹 투하츠>에서 이미지 변신에 성공한다. 당시 그는 주인공(이승기)의 형이자 전임 국왕인 이재강역을 열연해 호평받았다.

몇 달 뒤 방영된 MBC 드라마 <골든타임>에서는 외상전문의 최인혁역을 맡았다. 비중만 놓고 보면 사실상 주연급에 가까웠다. 이성민은 같은 의사 역할이었던 <브레인>의 고재학과는 달라진 의사 연기를 선보일 생각에 체중을 7㎏나 감량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촬영 때 신을 운동화를 이전부터 질질 끌고 다니는 등 응급실 의사의 실상을 최대한 살리려 노력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결국 이성민은 <골든타임>에서 대중들에게 주연급 배우로 당당히 인정받았다.

미생 출연
배우 정점

2013년 말 개봉한 영화 <변호인>에서 주인공 송우석 변호사(송강호)의 고교 동창이자 부산지역 신문사 사회부 기자인 이윤택역을 연기했다. 조연이지만 나름 적지 않은 출연 비중을 보였다. 같은 시기 방영한 MBC 드라마 <미스코리아>에서는 화장품 회사 사장 김형준(이선균)으로부터 빚을 받아내려 쫓아다니는 퇴물 조폭 정선생역을 맡았다.

이성민은 2014년 tvN 드라마 <미생>에 출연하면서 배우 생활의 정점을 찍었다. 오상식역으로 출연해 실감나는 직장인 연기로 시청자들의 찬사를 받았다. 이성민은 <미생> 출연으로 2015년 백상예술대상 TV 부문 남자 최우수 연기상을 수상했다. 2016년 tvN10 Awards에서도 같은 배역으로 남자배우상을 수상했다.

이성민은 2016년 초 개봉한 <로봇, 소리>에서 첫 영화 주연을 맡았다. 2018년엔 영화 <공작>으로 생전 처음 칸영화제 레드카펫을 밟았다. 수상 복도 따랐다. 이성민은 이 작품으로 부일영화상, 대종상,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디렉터스컷 어워즈서 남우주연상을 휩쓸었다.

2019년 제55회 백상예술대상에서도 영화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을 받았다.

2020년 개봉한 영화 <남산의 부장들>에서 연기력으로 또다시 극찬을 받았다. 극 중 이성민은 박정희 전 대통령을 연기했다. 처음 캐스팅 때는 외관상 전혀 닮지 않은 탓에 부정적인 반응도 감지됐지만, 낮게 깔리는 경북 사투리와 열연을 통해 반전 평가를 이끌어냈다.

특히 김규평(이병헌)과 5·16군사정변 당시 새벽 한강 다리에서의 일화를 회상하는 장면은 압권이었다. 김규평이 한강다리를 건너지 않았더라면 어땠을지 질문을 던질 때 미세한 표정변화를 표현하는 연기가 두고두고 회자됐다.

지난해 초 공개된 넷플릭스 드라마 <소년심판>에서 주연 강원중역을 맡았다. 가족에게 비정하면서도 아들에게 죄책감을 가지는, 동시에 공천에 떨어질까 노심초사하는 입체적인 모습을 잘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오랜 무명 생활 견딘 ‘대기만성형’
올 개봉 영화 3편…대세 이어갈까?

지난해 말 <재벌집 막내아들> 진양철역을 맡으며 연기력이 극에 다다랐다는 평가를 받았다. 가족까지 내칠 정도로 자신이 일군 회사에 집착하는 재벌 1세대 역을 완벽하게 소화해내면서 시청자들의 극찬을 받았다. 

본인의 출신을 잘 살린 경상도 사투리와 노인 특유의 탁한 목소리를 성공적으로 구사하면서 캐릭터에 생동감을 불어넣었다. 이성민이 극을 힘있게 이끌어가던 만큼, ‘진양철’이 퇴장한 이후 드라마의 몰입감이 순식간에 떨어졌다는 이야기가 시청자 사이에서 돌았다.

드라마 전체로 보면 비극이지만, 이성민 개인에게는 이만한 찬사가 없었을 것이다.

이성민은 지난해 29일 JTBC <뉴스룸>에 출연해 <재벌집 막내아들> 종영 이후 첫 인터뷰를 가졌다. 앵커가 “다시 태어나면 배우는 안 할 거라는 얘기는 왜 자꾸 하는 건가”라고 묻자 그는 “다른 일을 해보고 싶다. 난 다른 일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많은 배우가 아르바이트 등 여러가지 일을 했다고 하지 않느냐”고 답했다.

그러면서 “내 삶이 가끔 불쌍할 때가 있다. 다른 삶을 잘 몰라서 다시 태어난다면 배우는 그만하고 싶다. 다양한 직업, 다양한 모험을 해보지 못했다”고 부연했다.

이성민은 진양철을 연기하면서 가장 중점을 둔 부분에 대해 “내 연령대의 역할이 아니다 보니 나이를 연기하는 게 가장 신경쓰였다”고 털어놨다. 이어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에게 방해를 주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게 제일 우선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시청자를 설득하는 힘의 원천은 배우의 힘보다 시나리오의 공”이라며 자신을 향한 찬사에도 겸손함을 보였다.

실감나는 경상도 사투리 연기에 대해 “이번 작품은 거의 애드리브가 없었다. 고향 친구들이 연락해 ‘네 애드리브 아니냐’고 묻던데 대본이 그 정도로 완벽했다”며 “작가님 남편이 경상도 분이라서 고증했다고 하더라. 그 당시 분들이 쓰는 단어를 잘 써줘서 감탄하면서 연기했다”고 말했다.

앵커가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늘 취해 있지 말라는 그 대사 같으신 분이라고 오늘 느꼈다”고 소감을 전하자, 그는 “그러려고 오늘도 정신 차리자고 주문을 건다. 내년에도 많은 관객을 만났으면 좋겠고, 새해 3월에 조진웅 배우와 찍은 영화 <대외비>를 개봉한다. 그 때 다시 뵀으면 좋겠다. 내년에 소원 꼭 다 이루레이”라고 덕담을 건넸다.

앞으로
더 기대

올해는 이성민이 출연한 영화 3편이 개봉을 앞두고 있다. 이성민은 <대외비>에 이어 <핸섬가이즈> <서울의 봄>으로 극장가 복귀에 나선다. 대표적인 ‘다작’ 배우답게, 드라마 활동도 이어간다. 이성민은 현재 디즈니플러스 시리즈 <형사록2> 촬영에 열중하고 있으며 드라마 <운수 오진 날> 출연도 확정지었다.


<jeongun15@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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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해산’ 민주당 딜레마

‘국민의힘 해산’ 민주당 딜레마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국민의힘이 위태위태하다. 끝나지 않는 내부 총질에 “이럴 바엔 해산하라”는 날 선 비판까지 나온다. 이 모습을 바라보는 더불어민주당은 만감이 교차한다. 정당해산 카드를 꺼내자니 보수 결집이, 그대로 놔두자니 개혁에 걸림돌이 되는 딜레마의 연속이다. 이번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윤 어게인(Again)’과 전한길씨의 싸움으로 자리 잡았다. 누가 대표가 되더라도 ‘내란 정당’이라는 꼬리표를 떼기에는 역부족이다. 이에 발맞춰 국민의힘 해산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 내란 수괴와 45명의 적 국민의힘 해산 요구는 지난 6·3 조기 대선 정국서부터 불거졌다. 서부지검 폭동 사태와 헤어 나오지 못한 탄핵의 강 등 내란 사태가 지속되자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정당해산 가능성을 언급한 것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탈당하기 전 당시 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는 “국민의힘은 윤석열을 비호하고 내란에 동조하며 국가적 위기와 사회적 혼란을 키운 씻을 수 없는 큰 책임이 있다”며 제명을 촉구했다. 윤 전 대통령을 수호한 45명의 의원을 ‘인간 방패’라고 꼬집으며 제명을 요구했다. 민주당이 호명한 45명은 국민의힘 ▲강대식 ▲강명구 ▲강민국 ▲강선영 ▲강승규 ▲구자근 ▲권영진 ▲김기현 ▲김민전 ▲김석기 ▲김선교 ▲김승수 ▲김위상 ▲김은혜 ▲김장겸 ▲김정재 ▲김종양 ▲나경원 ▲박대출 ▲박성민 ▲박성훈 ▲박준태 ▲박충권 ▲서일준 ▲서천호 ▲송언석 ▲엄태영 ▲유상범 ▲윤상현 ▲이달희 ▲이상휘 ▲이만희 ▲이인선 ▲이종욱 ▲이철규 ▲임이자 ▲임종득 ▲장동혁 ▲조배숙 ▲조은희 ▲조지연 ▲정동만 ▲정점식 ▲최수진 ▲최은석 의원이며 이들이 내란 정당의 주축이라고 봤다. 대선후보 마감을 앞두고 국민의힘이 새벽을 틈타 ‘후보 바꿔치기’를 시도하던 때에는 보수 진영에서도 쓴소리가 나왔다. 당원이 뽑은 김문수 후보의 선출을 취소하고 전 국무총리던 한덕수 무소속 예비후보를 입당시켜 당의 대선후보로 등록한 것이다. 밤사이 일어난 촌극에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니들이 저지른 후보 강제 교체 사건은 직무 강요죄로 반민주 행위고 정당해산 사유도 될 수 있다”며 “기소되면 정계(에서) 강제 퇴출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면서 “자기들이 저지른 죄가 얼마나 무거운지도 모르고 윤통(윤석열 전 대통령)과 합작해 그런 짓을 했나”라며 “그 짓에 가담한 니들과 한덕수 추대 그룹은 모두 처벌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홍 전 시장은 지난달 자신의 온라인 소통 플랫폼 ‘청년의 꿈’에서 한 지지자가 국민의힘 복당 등에 대해 질문하자 “해산될 정당에 다시 들어갈 일은 없을 것”이라며 국민의힘 해산 가능성에 힘을 실었다. 민주당은 통합진보당(이하 통진당)이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에 의해 위헌정당해산심판으로 해체된 사례를 예로 들며 해산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2014년 12월 헌재는 통진당이 “북한식 사회주의 혁명 노선을 추종하며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를 위협한다”며 재판관 8대 1의 의견으로 정당해산을 결정한 바 있다. 정당해산의 주요 원인은 이석기 전 의원의 내란 음모 사건이었이다. 알면서 잡은 썩은 동아줄…속내 복잡 남은 건 ‘내란 정당해산’ 심판대뿐 당시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해산 청구 이유에 대해 “통진당의 강령 목적이 우리 헌법의 자유민주주의적 기본 질서에 반하는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구하고, 핵심 세력인 RO(지하 혁명 조직)의 내란 음모 등 그 활동도 북한의 대남 혁명 전략에 따른 것으로 분석됐다”며 헌법의 민주적 기본 질서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민주당은 실행되지 않은 예비 음모 혐의와 내란 선동만으로 통진당이 해산됐는데, 내란을 실행한 자를 옹호한 국민의힘의 죄는 통진당보다 더 크다고 보고 있다. 지난해 12월3일 이후부터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기까지, 국민의힘은 내란에 동조했을 뿐더러 극우 단체와 함께 저항권 행사를 선동했다고도 주장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의원이던 당시 국회에 정당해산심판 청구 요구권을 부여하는 내용의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그는 민주당 최전방에서 국민의힘 해체를 요구했던 만큼 이제는 당 대표 직권으로 개정안을 밀어붙일 가능성이 제기된다. 헌법재판소법 제55조에 따르면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 질서에 위배될 때에는 헌법재판소에 정당해산심판을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며 주체는 ‘정부’로 명시하고 있다. 정 대표가 발의한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정당해산심판 청구 요건에 ‘국회 본회의 의결이 있을 때’라는 요건이 추가돼 해산심판 주체가 ‘국회’를 포함하게 된다. 당시 정 대표는 한 라디오를 통해 “국민의힘이 제1야당이라 법무부가 직접 나서기엔 부담이 있을 수 있다”며 “그렇기 때문에 국회가 의결을 통해 정당해산 청구를 국무회의 심의 안건으로 올리는 방식이 현실적”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사면으로 정치권에 복귀한 조국혁신당 조국 전 대표도 국민의힘 정당해산을 주장하고 나섰다. 조 전 대표는 “윤석열 파면과 대선 패배 이후에도 여전히 친윤(친 윤석열)계가 당권을 장악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여전히 계엄과 내란에 대해서 옹호하는 정당”이라고 강조했다. 민주당 정 대표가 정당해산을 주장한 데 대해서는 “정당해산을 하려면 12·3 내란과 관련해 국민의힘 지도부가 조직적으로 관여했음이 확인돼야 한다. 적어도 1심 판결까지 기다려야 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뼈아픈 공포탄? 개헌 저지선인 100석을 겨우 넘긴 국민의힘이지만 민주당발 정당해산만큼은 피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거센 풍파를 겪었던 보수가 재건할 새도 없이 또다시 무너진다면 그야말로 회생 불가능한 상태에 빠질 것이란 우려에서다. 최근 전 정부와 국민의힘을 옥죄는 특검이 동시다발적으로 이어지자 정당해산의 신호탄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국민의힘은 최근 통일교와 자당 간의 연결고리를 좇는 특검 수사를 언급하며 “국민의힘과 특정 종교를 억지로 결부시켜 정당해산의 빌미를 인위적으로 조작하려고 하는 정치 보복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최은석 수석 대변인 역시 “여당 대표가 정당해산을 입에 올리자 (특검이) 곧장 달려든 모습은 수사기관이 아니라 정권의 ‘행동대장’ ‘'친위부대’로 전락한 모습”이라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은 전당대회 기간 동안 “우리도 자칫 통합진보당 꼴이 될 수 있다”며 우려를 내비쳤다. 그는 자신의 SNS를 통해 “불법 계엄은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는, 헌정사 최악의 법치 유린”이라며 “그것을 옹호하거나 침묵하는 사람이 대표가 된다면, 그 즉시 우리 당은 ‘내란 정당’으로 낙인 찍히고 해산의 길로 내몰릴 수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연일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지만 공포탄이 실탄으로 바뀔지는 미지수다. 내란 정당인 국민의힘은 10번 100번도 해산해야 한다지만 막상 야당에 칼을 겨누자니 여당으로서의 현실적인 고민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실제 정당해산심판이 이뤄진다면 오히려 국민의힘이 똘똘 뭉치는 계기가 마련될 수 있다. 특검이 국민의힘을 포위하자 전당대회를 앞두고 사분오열 흩어졌던 보수가 잠깐이나마 하나가 돼 단체 농성에 나서는 등 결집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정당해산은 이 대통령이 강조하는 통합 정치와도 거리가 멀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을 뿌리 뽑기 위함이라고 주장하지만, 대화는커녕 당 대표끼리 악수조차 못하는 상황에서 곧바로 해산 청구를 했다가는 여당이 의석수로 야당을 찍어 누르는 듯한 모습으로 비쳐질 것이란 분석이다. 서로 실책에 기대는 반사이익 구조도 문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최근 정부여당 지지율이 떨어지긴 했어도 국민의힘이 저런 식으로 행동하는 한 국민은 이들을 야당이 아닌 내란 세력의 현재 진행형으로 볼 것”이라며 “고질적인 문제지만 한국 정치는 반사이익 구조를 벗어날 수 없다. 정당해산으로 국민의힘이 사라진다면 과연 민주당에 득이겠느냐”라고 의아해했다. 뿔뿔이 흩어질까 이어 “지금 민주당의 모든 정책, 개혁은 내란 세력 척결이라는 원포인트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내란 세력이 사라지면 민주당의 날카로움이 돋보이지 않는, 오히려 개혁의 동력이 떨어지는 모순적인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정당해산심판을 청구하기 보다 구심점을 잃고 자중지란을 겪고 있는 야당을 그대로 두는 게 더 낫다는 설명이다. 정당해산이 말로만 그쳐도 문제다. 지난 민주당 전당대회서 강성 당원들은 시원하게 개혁을 외치고 날카롭게 국민의힘을 찌른 정 대표를 당의 수장으로 세웠다. 정당해산을 소리 높여 주장하는 정 대표가 막상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다면 그 실책은 고스란히 민주당이 떠안게 된다. 국민의힘 스스로 분열의 길에 접어들면서 또 다른 선택지가 주어졌다. 친윤·친한(친 한동훈), 찬탄(탄핵 찬성)·반탄(탄핵 반대)으로 단단하게 굳어 심리적 분당 상태에 빠진 국민의힘이 자진해서 해체하는 방법이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국민의힘의 분열을 기회로 보고 있다. 편 가르기의 결과로 당이 쪼개져 자진 해산한다면 민주당은 정당 해체 심판을 청구하는 수고로움을 덜 수 있다. 혹시 모를 지지율 역풍과 보수 결집 등의 고민도 해결된다. 장동혁 당시 대표 후보가 정당해산 프레임을 같은 편에 덧씌우면서 공세 수위를 높인 것이 한몫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탄핵 찬성파인 안철수·조경태 후보를 겨냥한 듯 “소신이라는 이유로 사사건건 당론을 어기고 급기야 탄핵까지 찬성했던 분들이 대표가 된다면 정청래(민주당 대표)와 짬짜미해서 당을 해산시킬지 우려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진짜 해산돼야 할 위헌 정당은 국민의힘이 아니라, 온갖 방법으로 헌법 질서를 파괴하고 일당 독재를 하는 민주당”이라고 주장했다. 전당대회를 앞두고 탄핵에 찬성한 이들과 차별화를 두기 위한 강력한 한 수를 던진 셈이다. 이 과정을 지켜보던 민주당은 “분당이나 정당해산을 피하려면 윤 어게인 세력과 결별하라”고 지적했다. 상처만 남은 전대 이대로 알아서 해산?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국민의힘은 전당대회를 분당대회로 이름을 바꿔라”라며 “윤석열 재입당 공약과 전한길의 선동 사태는 친길(친 전한길)파와 반길(반 전한길)파의 분당 예고편 같다. 진정 분당과 정당해산을 피하고 싶다면 이제라도 전한길과 윤 어게인 세력과 결별 하길 권고드린다”고 말했다. 이들의 내부 총질은 전당대회를 앞둔 마지막 토론회서 화룡점정을 찍었다. ‘반탄파(탄핵 반대)’인 김문수·장동혁 후보와 ‘찬탄파(탄핵 찬성)’인 안철수·조경태 후보 간의 살벌한 대치가 이어지면서 정당해산 카드를 꺼내기도 전 스스로 분당 수순에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1, 2차 토론회와 마찬가지로 김 후보와 조 후보는 비상계엄 문제를 놓고 대립했다. 김 후보는 “비상계엄은 잘못됐고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이 될 만큼의 불법성이 있다”면서도 “헌재 판결은 받아들이지만 그 자체가 모든 면에서 완전하다고 받아들일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조 후보는 “강성 지지층인 윤 어게인을 의식한 발언”이나며 “우리나라는 민주주의 국가이지 ‘윤주주의’ 국가가 아니지 않는가”라고 받아쳤다. 그러자 김 후보는 “민주당 조경태 의원이 말하는 것은 그렇다고 할 수 있지만, 조 후보는 국민의힘 의원”이라며 사퇴를 촉구하기도 했다. 토론 단골 주제인 유튜버 전한길씨도 화두에 올랐다. 장 후보는 내년 치러질 재보궐선거에 만일 공천을 한다면 한동훈 전 대표와 전씨 중 누구를 택하겠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열심히 싸우고 있는 분에 대해서는 공천을 줄 수 있다”며 전씨를 택했다. 반면 조 후보는 “오늘 토론회를 보면서 상당히 마음이 아픈 게 장 후보가 재보궐선거에 공천할 후보로 전씨를 선택한 것”이라며 “전씨는 윤 어게인을 주창하는 분이고 그분이야말로 내란 동조 세력”이라고 마지막까지 비판했다. 당 대표 선출서 갈등이 최고조에 올랐던 만큼 선거가 끝난 이후에도 쉽사리 봉합되지 않고 있다. 특히 내년 지방선거라는 대목을 앞두고 치열한 계파 싸움이 예고되면서 당의 앞날이 불안정하다는 평이다. 여의도 안팎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민주당은 특검 수사 진행 상황에 따라 정당해산 압박 수위를 조절할 것으로 예상된다. 내란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민주당은 국민의힘을 향해 언제든지 정당해산이라는 카드를 쥐고 흔들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느 쪽도 진퇴양난 한 야권 관계자는 “국민의힘은 정당해산에 대해 가능성 없는, 반민주적 행위라고 주장하지만 내심 불안해하는 것 같다며 “국민의힘이 빈말이라도 ‘할 테면 해 봐라’라는 식의 이야기를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처럼 당 간판만 갈아 치워서는 국민의 마음을 돌릴 수 없다는 걸 본인들이 가장 잘 알 것”이라며 “‘먹히는 개혁안’을 찾아야 한다. 같은 편끼리 지지고 볶다 자진 해산하나, 민주당 손에 이끌려 강제 해산하나 불명예스럽긴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이것’으로 뭉친 국힘 서로를 거칠게 비판하던 국민의힘이 당원 명부를 놓고 결집했다. 김건희 특검팀이 ‘2022년 통일교 입당 의혹’과 관련해 국민의힘 중앙당사 압수수색을 시도하자 하나로 뭉쳐 이를 저지한 것이다. 국민의힘은 “국민의 정치적 활동과 일상생활을 감시하겠다 것”이라며 크게 반발했다. 이들은 조를 편성해 24시간 중앙당사에서 비상 체제를 유지했고 결국 특검팀은 국민의힘과 절충점을 찾지 못해 압수수색은 불발됐다. 국민의힘은 특검팀의 압수수색 시도를 “야당 탄압” “정치 보복”으로 규정하고 농성을 이어갈 예정이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