깔보고 뭉개고 ‘왕따 희화화’한 <나혼자 산다>

세월이 지나도 변함없는 TV 속 갑질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요즘을 두고 ‘혐오의 시대’라고 한다. 세대, 남녀, 이념 등 다양한 갈래로 나뉜 갈등이 언행으로 파편이 돼 누군가에게 상처주기를 일삼는다. 혐오에 지친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존중이다. 많은 사람이 존중의 가치를 내걸지만, 미디어에서는 여전히 존중이 결여된 모습이 적잖이 보인다. 최근 논란이 된 MBC <나혼자 산다>가 대표적이다. 

1992년 KBS2 <밤으로 가는 쇼>에서는 배우 윤여정을 게스트로 초대했다. SBS 드라마 <분례기>를 통해 윤여정이 한국방송대상에서 연기상을 받았다는 명목이었다. 토크쇼가 시작되고 불과 3분이 채 되기도 전에 윤여정을 게스트로 초대한 이유의 속내가 드러난다. 

뻔한 속내
비수 꽂다

“저희가 마음에 담아두고 있는 얘기를 좀 들어보려고 하거든요. 괜찮죠? 10년 정도 미국에 있다가 한국에 오셔서 연기를 다시 하는데 힘들진 않으셨나요?” 

MC 임성훈은 다급하게 이 말을 꺼냈다. 20대 때 국내 영화계 신성이었던 그가 미국 생활을 하고 돌아와서 연기를 재차 시작한 지도 수년이 지났을 때인데, 굳이 ‘미국 생활 10년’이라는 말을 집어넣은 것에서 천박함이 엿보인다. 무슨 이야기를 꺼내고자 하는지 속이 뻔히 보이기 때문이다. 

이후 몇 가지 질문을 더 하다 결국 이혼이라는 단어를 꺼냈다. 윤여정이 “그 이야기는 불편하다”며 선을 그었음에도 “이혼의 결정적인 계기가 무엇이냐” “아이들은 뭐라고 하냐” “아빠 보고 싶다고 안 하냐” 등의 질문을 던졌다.


심지어 “재혼 계획은 없냐”고 묻기도 했다. 

여배우라 하더라도 이혼 뒤에 TV에 출연하는 사례가 없어 궁금했던 것은 일부 이해가 되지만, 세 명의 MC를 비롯해 <밤으로 가는 쇼> 제작진이 보인 행태는 그야말로 야만적이다. 마치 힘이 약한 여배우에게 언어로 집단린치를 가하는 느낌을 준다. 

이 장면이 논란이 되지 않은 건 MC의 무례하고 천박한 질문에도, 놀라우리 만큼 충실하고 솔직한 윤여정의 답변 덕분이다. 예나 지금이나 세련되게 자신의 입장을 전하는 윤여정이 대단하게 여겨질 뿐이다. 

비단 <밤으로 가는 쇼>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당시 출연작품마다 출중한 연기력을 보인 윤여정은 다수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꼭 과거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불쾌함을 드러내는데도 꼭 그 질문을 하고야 마는 MC들의 모습이 경악스럽기까지 하다.

아마도 제작진의 요구에 의한 질문이었겠지만, 야만적 행위에 반발하지 않고 더 적극적으로 행동한 MC들도 곱게 보긴 어렵다. 약 30년 전의 한국 TV는 그랬었다.

타인에 대한 존중과 배려 자체가 사회적으로 거의 전혀 없다 해도 무방한 시대였다. 아무도 그 질문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지적하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출연자에 대한 야만적 행태가 윤여정에게만 가해진 건 아니다. 최근 tvN <유퀴즈 온 더 블록>에 나온 김영희 PD가 추억처럼 말한 <느낌표 -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에서 3박4일 동안 유럽횡단을 하며 촬영했다는 내용이나,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에서 불타는 자동차 앞에서 여가수가 춤추는 모습을 촬영했던 것도, 출연자에 배려가 없는 건 같은 맥락이다.


30년 지나도 변함없는 기만적인 태도
차별하고 무시하고…기안84 만만한가?

아마 수많은 연예인의 가슴 속에는 내놓지 못하고 담아둔 충격 비화가 적지 않을 테다. 

세월이 흘렀다고 해서 방송사 제작진의 무례한 모습이 사라진 건 아니다. 방송국의 힘이 막강해지면서 더 노골적이고 못된 횡포가 자행됐다. 

M.net <슈퍼스타K>에서 보인 악마의 편집이 대표적이다. 실제로는 없었던 출연진 간의 갈등을 부추기거나, 교묘하게 편집해 선과 악의 대립을 만들고 이슈화하는 방식이다. 수많은 출연자가 음악적 역량과 무관하게 시청자들에게 낙인찍혀 자신의 꿈을 접어야 했다. 

뒤늦게 언론매체를 통해 사실이 아니라고 인터뷰했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되기도 했다. 심지어 악마의 편집에 반기를 들고 하차하는 사례도 있었다. 

같은 제작진이 만든 <프로듀스101>은 이른바 ‘밀실 픽’으로 연습생은 물론 시청자까지 기만했다. 일부 멤버를 회의실에서 결정하고 투표를 조작하는 방식은, 열심히 피땀 흘려가며 치열한 경쟁에서 이기고자 했던 연습생과, 연습생에게 애정을 갖고 문자를 보내며 응원한 시청자를 무시한 처사다. 

의도치 않은 논란에 휘말린 아이즈원이나 엑스원도 존중 없는 방송 행태의 희생양일 뿐이다. 

이외에도 거론하자면 많다. 우등반과 열등반을 만들고 연습생의 자존감을 떨어뜨리는 것을 중계한 M.net <아이랜드>도 있다. 안전하지 않은 세트나 상황에 출연자를 억지로 들이밀어 결국 사고에도 이른 사례도 적지 않다. 결국 동물에게 물리거나, 다리를 심하게 다쳐 입원까지 했다고 밝힌 연예인도 꽤 있었다. 

그 과정에서 방송에 얼굴을 비추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인내해야만 했거나, 그로 인한 충격으로 방송계를 떠난 이도 적지 않을 것이다.

최근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MBC <나혼자 산다>의 기안84 따돌림 논란도 이제껏 방송계가 보여준 파렴치한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무려 30년이 지났어도, 순박하거나 비교적 힘이 약한 사람을 함부로 대하는 인간의 못된 심리는 변하지 않은 듯하다.

그간 기안84를 못마땅해하던 여성 시청자들마저 제작진과 일부 출연진에 등을 돌리고 뭇매를 가하고 있다. 그럼에도 제작진은 자신들의 잘못이 얼마나 심각한지 깨닫지 못하고 있다. 

무례하고
천박하게


논란은 지난 13일 방송분에서 비롯됐다. 웹툰 <패션왕>과 <복학왕>을 연재하며 약 10년 동안 이렇다 할 휴식을 가지지 못한 기안84는 이른바 ‘마감 샤워’라는 명목으로 <나혼자 산다> 멤버들과의 여행을 기획했다. 

기안84가 해보고 싶은 것을 다 하기로 하며 기획된 이번 여행은 수년 전부터 기안84가 “기안 여름학교를 하고 싶다”는 소원을 이뤄주는 현장으로 엿보였다. 기안84는 자신이 기획한 여행 스케줄을 <나혼자 산다> 멤버들과 함께하는 것을 고대하고 있음을 여러 차례 드러낸 바 있기 때문이다.

이날 방송에서도 전현무와 함께 여주로 출발하는 과정에서 어린아이처럼 뛸 듯이 좋아했다. 그는 앞서 웹툰 작가 주호민의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장기자랑을 준비하고 있는 것을 비롯해 여행 중 멤버들과 할 놀이를 계획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나혼자 산다>를 시작하면서부터 무려 5년 동안 고대한 여행은 누구보다도 멤버들을 아끼는 그에게 중요한 일이었던 것 같다.

그 마음을 <나혼자 산다> 관계자가 모를 리 없었다. 방송마다 ‘기안 여름학교’를 외쳐 시청자들조차도 기억하고 있다. 4년 넘게 동고동락한 출연진은 당연히 알 테다. 또 늘 버팀목이 돼 숱한 위기를 넘길 수 있도록 도운 기안84의 순수함을 제작진이 모르면 누가 알 일인가. 

하지만 제작진은 기안84의 마음에 비수를 꽂았다. 출연진과 짜고 기안84의 여행에 전현무만 출연시켰다. 성훈과 박나래, 키가 올 것이라 여겼던 기안84는 전현무가 “다른 멤버는 오지 않는다”고 솔직하게 말하자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너털웃음만 지었다.


출연진과 제작진 모두에게 기만당했다는 것을 몸소 느낀 순간일 테다.

자의 반 
타의 반

애꿎은 전현무만 낯뜨거운 상황을 견뎌냈다.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인지, 기안84의 몸을 씻겨주면서 기분을 풀어주려 했다. 친한 형의 애교 섞인 모습에 기안84가 비록 ‘괜찮다’고 했지만, 그 말이 얼마나 진심일까.

이에 시청자들이 화가 났다. 기안84를 대하는 출연진과 제작진의 기만적인 태도가 드러나서다. 제작진은 자막으로, 출연진은 기이한 리액션으로 기안84의 마음에 상처를 덧입혔다. 이는 시청자들의 분노에 불을 지폈다. 

전현무와 박나래는 기안84를 속인 핑계로 코로나 시국을 댔다. 코로나 때문에 여러 사람이 모일 수 없었다는 이유에서 어쩔 수 없이 전현무만 여행에 참여한 것이라는 얘기다. 

제작환경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시청자들에게 통할 리 만무한 논리다. 촬영이 진행된다는 건 수많은 PD와 촬영감독 및 각종 스태프가 모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비록 카메라 안에는 두 명밖에 없지만, 카메라 뒤편에는 수십 명의 스태프가 방송을 위해 모여있다.

“코로나 시국이었기 때문에 기안84를 속였다”는 게 과연 합당한 말일까. 누구 하나 나서서 미안하다는 말없이 어물쩍 상황을 넘기려고 하는 태도는, 평소 얼마나 기안84를 깔보고 있었는지 드러내는 방증이다.

심지어 키는 촬영 당일까지 여행에 참여하는 척했음에도, 사과의 말을 하지 않았다. <나혼자 산다>의 초창기 멤버이자 의문스러운 러브 라인까지 있었으며, 대다수 패널이 빠져나간 순간에도 기안84와 둘이서 <나혼자 산다>를 이끈 박나래는 동료애 때문이라도 여행에 참여해야 하지 않았을까.

아무리 제작진이 그를 속이자고 제안했다 하더라도 나서서 말렸어야 하는 게 의리 있는 행동으로 보이지만, 그 선택을 하지는 않았다. 

다른 멤버들이 오지 않은 것을 두고 ‘서프라이즈’라고 둘러대는 모습도 실망스러운 행태다. 시청자들은 “안 온다고 해놓고 오는 게 ‘서프라이즈’이지, 온다고 해놓고 안 오는 건 왕따놀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거짓말 내뱉고도 반성 없는 제작진
가벼운 사과 한마디 없었던 출연진

제작진은 본인들이 저지른 잘못에 위기의식조차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평소와 다름없이 기안84와 인터뷰를 진행한 것이 그 이유다. “사람들이 오지 않는 건 뇌 밖에 있었다”면서 서운해하는 기안84의 모습을 그대로 내보냈다는 것에서 죄의식이나 죄책감 자체가 없었던 것으로 해석된다. 

방송이 되고 논란이 된 이후에도 기만하는 태도는 변하지 않는다. MBC 관계자는 “너무 황당스러운 이야기”라며 큰 문제가 아니라는 듯 치부하고 있고, 심지어 “기안84도 괜찮다고 했다”며 대신 입장을 전했다. ‘너무 황당한 이야기’라며 치부하면서 왜 해당 방송의 클립은 삭제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실제로 기안84가 멤버들에 대한 서운함이 모두 풀렸을 수 있고, 무지개 회원들 간의 우정이 여전히 돈독할지라도, 지난 13일 방영분에서 보여준 존중 없는 방송에 대해서는 잘못했음을 분명히 전했어야 하지 않을까.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방송임에도, 대중이 무엇에 불편해하고 있는지와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올바른 것인지는 여전히 무지한 듯 보인다.

만약 기안84가 평소 이시언이나 성훈처럼 성격이 있는 모습을 보여줬거나 전현무나 박나래, 화사처럼 대형 기획사에 소속된 방송인이었다면 이 같은 기획을 진행했을 수 있었을까. 전형적인 강자한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모습을 보여준 셈이다. 

대중에 엄청난 영향력을 끼치는 미디어가 왕따를 희화화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과연 올바른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시청자들이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나혼자 산다>의 왕따 방송에 대한 제재를 가할 것을 문의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 18일까지 무려 수십여건의 문의가 이어졌다.

다신 이러한 방송이 나오지 않도록 확실한 처벌이 필요해 보인다. 

오랫동안 함께한 출연자를 무시하는 <나혼자 산다>와 달리 SBS <런닝맨>은 패널에 대한 애정을 분명히 보였다. <런닝맨> 멤버들은 방영 기간 내내 이광수를 모두 놀릴 뿐 아니라 기린, 배신자 등의 별명을 붙이기도 했지만, 그가 하차할 때만큼은 모든 멤버가 진심으로 헤어짐을 슬퍼했다. 그 마음을 아는 이광수 역시 하차 방송에서는 차오르는 눈물을 막지 못했다. 

심지어 제작진도 이광수의 하차 방송 때 이광수를 중심으로 게임을 기획했으며, 그가 하차한 뒤에도 이광수의 캐릭터를 활용하며, 꾸준히 그와의 인연을 직간접적으로 이어가고 있다. 

존중 없는
‘강약약강’

<나혼자 산다>와 너무 뚜렷하게 대비되는 <런닝맨>을 본 시청자들의 분노는 지극히 자연스럽다. 타인을 무시하고 깔본 <나혼자 산다> 제작진과 출연진은 진심 어린 사과가 불가피해 보인다. 이제껏 보여준 것처럼 어설프게 넘기려고 했다가는 프로그램의 존폐마저 흔들리지 않을까 짐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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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터질’ 11월 국회 막전막후

‘박 터질’ 11월 국회 막전막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9월 정기국회 첫날부터 한복과 상복으로 기싸움을 벌이던 여의도 전쟁은 현재 진행형이다. 12월 정기국회 종료까지 겨우 한 달 남았지만 여야 간의 파열음은 여전하다. 더불어민주당은 개혁 추진 동력을 얻기 위해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이에 질세라 국민의힘은 야당으로서 거대 여당의 폭주에 맞서겠다며 맞불을 놨다. 고성과 퇴장이 난무하던 이재명정부 첫 국정감사(이하 국감)가 종합감사만 남긴 채 막바지에 돌입했다. 수많은 안건 속에서도 처음부터 끝까지 언급된 건 김현지·조희대 두 사람의 이름이다. 여전히 베일에 싸인 김현지 제1대통령실 부속실장과 사퇴 압박에도 꼿꼿하게 버티는 조희대 대법원장을 둘러싼 국감 후폭풍이 이어질 전망이다. 김현지 조희대 오는 6일 열리는 국회 운영위원회가 대통령실을 대상으로 한 종합감사에 김 실장 이름을 증인으로 올렸지만 끝내 불발됐다. 그동안 국민의힘은 김 실장을 증인으로 불러 모든 의혹을 검증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감사가 아닌 정치공세”라며 이를 거부했다. 민주당은 김 실장이 국감 당일 오전 또는 오후 1시까지만 출석할 수 있다고 밝혔고 ‘반반 출석’ 논란을 키웠다. 국민의힘 김은혜 의원은 “김현지 증인 출석을 놓고 민주당이 내놓은 안은 오전 출석, 오후 불출석이라고 하는데 국감이 치킨인가? 반반 출석하게”라며 “김 실장 한 사람을 지키려고 하니 이런 코미디가 나오는 것”이라고 비꼬았다. 국민의힘이 ‘김현지 흔들기’에 나서자 민주당은 조 대법원장을 도마 위에 올렸다. 민주당은 “국감이 끝난 이후 사법개혁을 처리하겠다”며 조 대법원장이 스스로 거취를 정할 수 있는 데드라인을 그어줬다.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이번 사법개혁안은 제왕적 대법원장의 전횡을 막고 재판의 민주적 절차를 강화하기 위한 사법정상화법이다. 사법 독립성과 책임성을 두텁게 하고 국민의 공정한 재판받을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라며 사법부 장악 논란을 사전에 잠재웠다.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은 조 대법원장에 대한 탄핵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혁신당 조국 비상대책위원장은 “대법원이 조 대법원장의 사퇴 요구를 외면할 경우 탄핵을 포함한 모든 법적·정치적 수단을 강력히 추진하겠다”며 으름장을 놨다. 두 사람의 이름은 오는 12월 정기국회를 마치고 해를 넘겨서도 호명될 것으로 보인다. 여야 모두 내년에 있을 지방선거를 겨냥해 상대편의 아킬레스건을 물고 늘어지겠다는 전략이다. 한 야권 관계자는 “김건희 특검이 12월까지 갈 것으로 봤는데 조희대라는 새로운 공격 포인트가 생겼다. 민주당이 쉽게 놔주지 않을 것”이라며 “‘내란 세트’로 묶어서 지방선거까지 끌고 가겠다는 심산이다. 내란이라는 키워드만큼 국민의힘을 공격하기 좋은 소재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반면에 민주당은 부동산 실책이 뼈아프다. 그걸 덮기 위해 조 대법원장을 계속해서 끌어들일 것”이라며 “국민의힘 권성동 의원과 추경호 의원에 대한 수사가 이뤄지면 이제 그쪽을 노리지 않겠나? 여아가 머리채만 안 잡았지, 아마 역대급 국회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여야 ‘사이좋게’ 하나씩 쥔 약점 특검 앞 권성동·추경호 운명은? 추 의원은 지난달 30일 국회의 계엄해제 의결을 방해한 혐의로 첫 조사를 받았다. 특검은 당시 원내대표였던 추 의원을 비롯한 국민의힘 지도부가 의원총회 장소를 여러 차례 변경함으로써 고의로 표결을 방해했는지를 들여다볼 예정이다. 이날 추 의원은 조은석 내란특검에서 진행되는 1차 피의자 소환조사에 응해 “무도한 정치 탄압”이라며 “당당하게 특검에 임하겠다”고 밝혔다.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구속 수감 중인 권성동 전 원내대표의 첫 재판은 오는 3일로 예정돼있다. 권 전 원내대표는 불법 정치자금 1억원을 수수한 혐의를 받아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처럼 각종 악재가 국민의힘을 단단히 휘감자 부동산으로 한차례 휘청한 민주당이 반사이익 효과를 볼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여기에 여론조사 대납 의혹을 받는 오세훈 서울시장과 정치 브로커 명태균씨의 대질이 오는 8일 예정돼 내년 6월 치러질 지방선거 판까지 흔들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오는 5일부터 시작되는 내년도 예산안 심사를 놓고 긴장감이 고조된다. 이정부 출범 후 첫 예산 심사로 국민의힘은 지역사랑 상품권 등 이 대통령의 트레이드마크인 지역 화폐를 겨냥해 맹공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 올해 두 차례에 걸쳐 민주당 주도로 추경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국민의힘이 크게 반발했고, 지난 8월 정부 예산안이 공개되면서 본격적으로 ‘이재명식 포퓰리즘’ 프레임 굳히기에 나섰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오는 5일 있을 예산안 공청회를 시작으로 6∼7일 이틀간 종합정책질의를 실시할 예정이다. 10~11일에는 경제부처, 12∼13일에는 비경제부처 부별 심사가 진행되고 17일에는 소위원회 예산안의 감·증액을 심사하는 예산안조정소위가 가동된다. 각 소위의 논의를 거친 예산안은 전체회의 의결을 통해 본회의에 상정된다. 예산안 국회 본회의 처리 법정 시한은 매년 12월2일이지만 늘 그렇듯 여야의 예산 샅바싸움으로 해당 날짜를 넘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앞서 정부는 지난 8월 728조원의 예산을 편성했다. 올해 본예산에 견줬을 때 8.1% 늘어난 규모다. 이 대통령은 초혁신 경제 분야 등에 큰 폭으로 투자해 경제의 마중물 역할을 하겠다는 방침이다. 예산안이 의결되던 날 이 대통령은 “지금은 어느 때보다 재정의 적극적 역할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씨앗을 빌려서라도 뿌려서 농사를 준비하는 게 상식이고 순리”라고 말했다. 역대급 규모 쩐의 전쟁 이어 “현재 우리 경제는 신기술 주도의 산업 경제 혁신, 그리고 외풍에 취약한 수출 의존형 경제의 개선이라는 두 가지 과제를 동시에 안고 있다”며 “국무회의에서 의결되는 내년도 예산안은 이런 두 가지 과제를 동시에 해결하고 경제 대혁신을 통해 회복과 성장을 이끌어내기 위한 마중물”이라고 설명했다. 가장 눈에 띄는 점은 AI 투자다. 그동안 이 대통령은 AI 3대 강국을 강조한 만큼 예산 역시 이에 맞춰 전년 대비 3배 이상 증가한 10조1000억원으로 책정했다. 자동차·조선, 반도체 등 주요 산업에 AI를 접목하고 휴머노이드 로봇용 AI 모델 등 ‘피지컬 AI’ 분야에도 집중 투자를 예고했다. 과학기술 연구개발(R&D) 예산은 지난해보다 19.3% 증가한 35조3000억원이다. 역대 규모인 이번 예산 중 10조6000억원이 AI·바이오·콘텐츠·방산·에너지·제조 등 6대 첨단산업의 핵심 기술개발을 지원하기 위해 투입된다. 이 중에서도 국민의힘은 26조2000억원으로 책정된 ‘민생경제 회복과 사회연대경제 기반 구축’ 부문을 눈여겨보고 있다. 정부는 24조원 규모로 지역사랑상품권 발행을 지원하고 지역별 여건을 고려해 국비 보조율을 상향 조정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민주당은 24조원은 총 발행되는 상품권의 액면가이며 이 중 3~7%를 예산으로 지원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디지털 온누리상품권 예산은 4000억원으로 도합 4조5000억원 규모로 책정됐다. 또 정부는 연 매출 1억400만원 미만인 소상공인 230만개 사에 경영안정 바우처 25만원을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예산안이 발표되자 국민의힘은 곧바로 ‘국민 부담 가중 청구서’라고 반박했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이정부 예산이 올해보다 8.1% 늘어난 728조원 규모로 편성됐다. 조세감면까지 포함하면 실질 지출은 무려 808조5000억원에 달한다”며 “내년도 국가채무는 1415조원, 2029년에는 무려 1789조 원으로 폭증할 전망이다.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올해 49.1%에서 내년 51.6%, 2029년에는 58%까지 치솟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지난 문재인정부 5년 동안 국가채무 비율이 33.9%에서 46.8%로 뛰어올랐는데 이정부는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나는 나랏빚을 통제하기는커녕, 폭발 직전까지 끌어올릴 심산”이라고 지적했다. 민주당은 “거짓 선동”이라며 민생 최우선에 초점을 맞췄다고 반박했다. ‘올려’ ‘내려’ 본회의 난타전 쟁점 법안 처리 여부도 관전 포인트다. 민주당은 사법개혁을 위한 법 왜곡죄를, 국민의힘은 이정부의 부동산을 겨냥한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폐지를 밀어붙이고 있다. 앞서 민주당과 혁신당은 각각 법 왜곡죄를 발의했다. 해당 법안은 판·검사가 증거를 조작하거나 사실관계를 왜곡하는 등 잘못된 사실관계에 법을 적용해 기소나 유죄 판결을 내리는 경우 처벌토록 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현재 법 왜곡죄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소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민주당 김현정 원내대변인은 지난달 28일 국정감사 대책 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사법개혁안에 대해 “이번달 까지 (입법을) 마무리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백혜련 사법개혁특별위원장도 MBC 라디오를 통해 “특위에서 낸 5대 개혁안은 상당한 공감대가 이미 이뤄져 있다”며 “당내, 국민적으로 그리고 법원과도 대법관 증원 문제 빼고는 의사소통이 이뤄졌다. 법사위 논의 과정을 거친다고 한다면 이번 정기국회 내 충분히 처리 가능하다”고 밝혔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 역시 최고위원회의에서 “민주당은 개혁 골든타임을 절대로 실기하지 않고 연내에 반드시 마무리 짓겠다”며 힘을 실었다. 헌법 제84조이자 형사소송법 개정안인 ‘대통령 재판중지법’에도 군불을 땠다. 법사위 국감에서 국민의힘 송석준 의원이 “이 대통령 파기환송심은 다시 기일을 잡아 (재개)할 수 있느냐” 고 물은 데 대해 김대웅 서울고등법원장이 “이론적으로는 그렇다.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라고 답한 것이 도화선이 됐다. 헌법 제84조는 ‘대통령은 내란·외환죄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에 발생한 범죄로 형사상 소추를 받지 않는다’고 규정한다. 당시 사법 리스크 족쇄를 풀지 못한 이재명 대표의 당선이 확실시되자 ‘대통령의 불소추특권’ 조항을 놓고 여러 갈래의 해석이 제기됐다. 민주당은 법안이 당론은 아니라면서도 향후 사법부의 행동에 따라 결정하겠다고 압박에 나섰다. 민주당 박상혁 의원은 YTN 라디오를 통해 “많은 국민이 지난 국감에서 서울고등법원장의 발언을 보고 깜짝 놀라셨을 것”이라며 “벌써 몇 달째 계류 중인 법안을 처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다. 국민이 만들어주신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사법개혁? 부동산? 마음은 지선 노발대발 ‘쇼츠각’ 잡는 의원들 거대 여당인 민주당이 의석수로 법안을 통과시킨다면 국민의힘은 막아낼 도리가 없다. 대신 국민의힘은 부동산 규제를 파고들면서 이정부의 가장 아픈 곳을 찔렀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을 향해 이번 정기국회에서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이하 재초환) 폐지 법안을 여야 합의로 처리하자고 제안했다. 재건축 활성화의 핵심인 재초환은 재건축으로 얻은 초과이익에 부담금을 부담하는 규제다. 앞서 민주당은 재초환 폐지 가능성을 언급했다가 “당 차원의 결정은 아니”라며 입장을 선회했다. 10·15 부동산 대책 발표 후 예상보다 후폭풍이 크자 신중론을 내세운 것이다. 여당의 갈지자 부동산 행보가 오히려 시장 혼란을 부추겼다는 비판이 나오는 지점이다. 국민의힘 김도읍 정책위의장은 국회에서 열린 국정감사 대책회의에서 “민주당이 10·15 부동산 대책 발표 이후 국민적 비난과 여론의 뭇매로 궁지에 몰리자 이제야 국민의힘이 줄곧 주장해 온 재초환 폐지를 검토하겠다고 한다”며 “이미 김은혜 의원이 법안을 발의해 놨다. 정기국회에서 재초환 폐지 법안을 여야 합의로 신속 처리하자”고 말했다. 하지만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이 국감에서 재초환 유지 방향에 공감한다는 뜻을 밝히면서 여야 간 이견만 커지는 모양새다. 민주당 이연희 의원이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재초환 폐지는 투기 광풍을 불러올 조치기 때문에 결코 안 된다. 반드시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고 이에 김 장관은 “공감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민주당은 재초환 폐지를 정기국회 내 처리하자는 국민의힙 요구에 대해 “원내 중심의 대화를 기대한다”며 협상의 여지를 열어뒀다. 다만 더 이상 부동산 문제로 자책골을 넣어서는 안 된다는 여론이 강한 만큼 국민 여론을 충분히 반영하겠다는 방침이다. 문제는 여당인 민주당이 언제까지나 ‘신중하게’ 입장을 보류할 수 없다는 점이다. 부동산 시장 혼란이 가중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지만 “국민의힘 페이스에 말려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기류가 흐르는 만큼 돌파구를 모색해야 한다. 어느 각도에서 보더라도 여야의 강대강 대치는 불가피해 보인다. 지난달 26일 국회가 이례적으로 국감 도중 본회의를 열고 비쟁점 민생 법안 70여건을 일괄 처리하면서 협치의 물꼬가 트이나 싶었지만 또다시 서로를 향해 날을 세우는 형국이다. 앞서 민주당은 APEC 주간을 앞두고 국민의힘을 향해 “무정쟁 주간을 갖자”고 제안했으나 국민의힘은 “경제 참사·부동산 참사를 덮기 위한 침묵 강요이자 정치적 물타기”라고 오히려 비판 수위를 높였다. 김도읍 정책위의장은 “이정부와 민주당이 독선과 독재를 멈추고 정치를 회복시키면 정쟁은 없어진다”고 훈수했다. 손 내밀어도 고개만 팽 한 정치권 관계자는 “여당인 민주당은 정부의 외교 성과를 띄우고 야당인 국민의힘은 야당으로서 잘한 것과 아쉬운 것을 구분해 견제해야 하는데 지금 의원 한 명 한 명이 국회를 자기 정치의 장으로 쓰고 있다”며 “내년 지방선거 영향이 크다. 선거를 앞뒀는데 어떤 정당이든 서로 의견을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여주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회의감을 내비쳤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