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초대석> 법의인류학자 박대균 순천향대 교수

“법의학은 산 사람 위한 학문”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전 국민을 통틀어 3명뿐인 직업이 있다. 이들은 전국을 3개로 쪼개 각 지역을 담당한다. 1명만 없어도 남은 2명의 부담은 배로 늘어난다. 백골이 된 사체의 신원을 밝혀내는 법의인류학자. <일요시사>가 박대균 순천향대 해부학교실 교수를 만났다. 

지난해 9월13일 순천향대학교 부속 천안병원에서 만난 박대균 교수는 코로나19를 심하게 앓았다고 털어놨다. 박 교수는 ‘태어나서 이렇게 아파본 적은 처음’이라고 했다. 그의 앞에는 <일요시사> 취재진이 사전에 보낸 인터뷰 질문지가 놓여 있었다. 질문지는 답변을 위한 기록으로 빼곡했다. 

뼈가 하는 말

박 교수는 국내에 단 3명뿐인 법의인류학자다. 사망 이후 백골이 된 사체의 뼈를 통해 신원을 확인한다. 다른 2명은 가톨릭대 해부학교실에서 일하고 있다. 박 교수는 충청도와 전라도에서 의뢰를 받는다. 백골화 된 사체가 발견되면 박 교수에게 연락이 오고 사람의 뼈로 판명되면 부검 등의 작업을 진행하는 식이다. 

“법의인류학은 법의학이라는 큰 범주 안에 아주 작은 부분으로 들어가 있습니다. 법의학을 1로 따지면 법의인류학은 1/16 정도입니다. 법의학자는 사망 이후 3일 이내 사체를 부검해서 사인을 밝히는 게 주 업무입니다. 저는 그 상황을 넘어선 부패가 심하거나 백골화된 시신을 부검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뼈는 생각보다 많은 정보를 담고 있다. 성별, 사망 당시 연령대, 키, 생전 앓았던 질병 등을 확인할 수 있다. 박 교수는 “예를 들어 100명의 백골화된 사체가 있다고 가정하자. 그럼 남녀를 구분해 먼저 50명으로 줄인다. 나이에 따라 또 줄일 수 있다. 이런 식으로 범위를 좁힌 후 실종자 가족 등의 유전자 정보와 대조해 신원을 확인한다”고 설명했다. 


역으로 말하면 백골 사체의 유전자 정보가 나왔어도 대조하지 못하면 신원확인이 어렵다는 뜻이다. 박 교수는 실종자 가족이 유전자 정보 등록을 해서 백골 사체와 비교할 수 있는 체계가 마련돼야 하는데 아직은 어려운 점이 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여기에 백골 사체를 의뢰받아 부검을 진행해 정보를 제공해도 법의인류학자는 이후 상황을 알 수 없다.

전국서 3명뿐인 직업
백골 사체 신원확인

박 교수는 “백골 사체를 부검하고 감정하는 작업을 하다 보면 이후에 실제로 신원확인이 이뤄졌는지 굉장히 궁금하다. 하지만 수사기관으로부터 그런 정보를 받을 수 없어 짐작만 할 뿐이다. ‘잘 되셨을까?’ ‘잘 되셨겠지’ 정도다. 그런 부분이 상당히 아쉽다. 사체의 신원이 밝혀지고 그 사실을 알 수 있다면 좀 더 큰 보람을 느낄 수 있을 텐데…”라고 말했다. 

국내 법의학자는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참사 현장과 닿아 있다. 사고 과정에서 나오는 대다수의 사체를 부검하고 식별하는 작업이 필요하기 때문. 박 교수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가톨릭의대 학부생 때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를 접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공보의로 근무할 때는 대구지하철 참사가 발생했다. 

대구 지하철 1호선 중앙로역에서 일어난 방화 사건으로 192명이 사망했다. 밀폐된 공간에서 일어난 화재 사고였기 때문에 현장에는 살점이 거의 없는 백골화된 상태와 똑같은 사체가 대부분이었다. 박 교수를 비롯한 법의학자의 역할은 그 상태에서 사체의 신원을 파악하는 일이었다.

박 교수는 지하철에서 ‘붓질을 했다’고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마치 유적 발굴 현장에서 고고학자가 붓을 들고 조심스럽게 흙을 쓸어내듯 박 교수를 비롯한 법의인류학자는 조심스럽게 사체를 찾아냈다. 박 교수는 “‘사체 혹은 사체 조각은 현장에서 들어 올리는 순간 원래대로 돌아갈 수 없다’는 말이 있다. 그렇기에 일단 그대로 둔 상태로 붓질을 했던 것”이라고 밝혔다. 


머리, 목, 몸통, 오른팔, 왼팔, 오른다리, 왼다리를 찾아내면 비로소 사람 1명이 된다. 사진을 찍은 뒤에 순서대로 옮긴다. 아주 작은 부분이라도 유전자 정보를 확인할 수 있으면 신원확인이 이뤄진다. 작은 조각의 치아로도 개인식별이 가능하다. 사체에 남아 있는 소지품도 큰 역할을 했다. 

작업을 반복한 끝에 142명의 미확인 사체 가운데 136명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었다. 6명 가운데 3명은 유전자 정보가 확인됐는데 대조할 가족이 없었고 남은 3명은 완전히 탄화돼서 유전자 검사를 진행할 수 없었다. 실제 대구지하철 참사 실종자 수는 6명으로 최종 집계돼있다.

박 교수는 “대구지하철 참사에 대해 말할 때는 유가족께 굉장히 죄송한 마음이 든다. 위로의 말을 꼭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대구지하철 참사는 법의학의 필요성과 국내 법의학 수준을 사회에 알린 사건으로 꼽힌다. 법의인류학자 역시 이 사건을 통해 그 역할이 알려지게 됐다. 

많은 사람이 법의학을 ‘죽은 자’의 학문으로 여긴다. 사망한 사람의 몸에 남은 흔적으로 사인을 밝히고 감정하는 일이 주 업무기 때문에 산 사람과는 연관이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법의학자는 법의학이야말로 산 사람을 위한 학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대구지하철 참사 시신 발굴
감정 이후 상황 몰라 아쉬워

죽음이 주는 정보가 인간의 삶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주장이다. 

“법의학의 존재 이유는 망자의 인권을 지키고 사인을 밝히는 것도 있지만 이를 통해서 살아있는 사람의 삶에 뭔가 도움을 주기 위한 부분이 굉장히 많습니다. 죽은 사람이 건네는 정보를 통해 산 사람의 건강을 위한 정책을 만든다든지 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셈입니다. 예방을 할 수도 있고요.”

그러면서 박 교수는 현 상황에 대한 아쉬움을 표했다. 사망 원인 등 들쭉날쭉한 통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 오류를 줄여야 한다고 설명했다. 예로 든 건 변사자 통계였다. 경찰과 해양경찰에서는 매년 변사자 수를 파악해 공개한다. 국내 변사자 수는 이 두 기관에서 나온 수치를 합친 것이다. 1년에 3만명가량이다. 

문제는 부검 수다. 3만명의 변사자 가운데 부검을 하는 경우는 8000~9000건 정도다. 법의학자는 변사자 가운데 부검을 하지 않은 2만여명에서 억울한 죽음, 확인되지 않은 죽음이 있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박 교수는 “사인을 정확히 통계화할 수 없는 사망이 그 정도 된다는 뜻”이라고 했다. 일각에서는 1년에 국내서 발생하는 변사자 수를 7만명 정도로 보기도 한다. 매년 최소 2만여명에서 6만여명의 부검하지 않은 변사자가 나오고 있는 셈이다. 

박 교수는 “부검을 하고 망자를 통해서 사인을 확실하게 밝히면 좀 더 정확한 질병 통계를 만들 수 있다는 거죠. ‘사망 원인으로 이 경우가 제일 많으니 조심합시다’라는 예방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 그 통계가 부족하다보니 아쉬움이 좀 있습니다.”

들어야 한다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고민한 끝에 법의인류학자가 됐다는 박 교수. 그는 해부학을 전공하면서 뼈에 관심을 갖게 됐고 이후 법의학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분야를 찾다가 법의인류학의 길을 걷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사체는 스스로 말을 하고 있기 때문에 법의학자는 그 말에 항상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당부하면서 말을 맺었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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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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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당은 민주당 내부에서도 받아들일 의사가 있어야 진행될 수 있다. 자신들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서 합의점에 도달하면 합당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대통령 있는데 당대표가 어떻게 의사 관철?” “장동혁은 대권 욕심 갖고 계속 변화할 것”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이끌던 국민의당과 혁신당은 총선을 치르면서 호남에서 선전해 존재감을 드러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호남 민심이 어떤 선택을 할 거라고 보나? ▲두고 봐야 안다. 호남 민심은 제19대 대선에선 안 의원이 아니라 문재인 전 대통령을 선택했다. 호남 유권자들은 상당히 전략적으로 투표한다. 그들은 정권 재창출이 가능한 후보에게 표를 몰아준다. 그러니 선거를 치러봐야 알 수 있다. 지금은 뭐라고 얘기하기 어렵다. -장 대표가 취임하자, 강경 보수 유튜버들은 “군소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과 강경 보수 유튜버들이 너무 밀착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국민의힘이 계속 지금과 같은 자세를 유지하면, 희망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사태와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 우리 정치 지형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냉철하게 분석해야 한다. 변화가 있어야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처럼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 -장 대표는 강경 보수와의 밀착과 중도층 공략 사이에서 계속 의견이 바뀐다. ▲장 대표에게도 정치적 목표가 있을 텐데 그는 목표 달성을 위해 많은 변화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강경 보수의 지원을 받아 당 대표가 됐지만, 자신의 정치적 지향점을 어떻게 결정할지 잘 생각해 봐야 한다. 만약 “지나치게 강경 보수와 밀착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 어느 정도는 그들과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선을 긋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그에게는 크게 정치적 기대를 하기 힘들다고 본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가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어차피 당 대표가 됐으니, 대권 욕심을 가질 것이다. 정치인은 언제나 시대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장 대표 스스로 “변화하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계속 많이 변할 것이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장 대표가 당선되면서 위상이 많이 훼손됐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한 전 대표의 행보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국민의힘 당원들은 상당한 분노에 차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강경해졌다. 세월이 흘러 당원들이 당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되면, 또 변할 수도 있다. 지금 상황만으로 판단하기엔 굉장히 이르다. 한 전 대표가 당시 여당 대표로서 비상계엄 선포 직후 반대 의견을 밝히면서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에 찬성한 것은 굉장히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앞으로 어떻게 정치적으로 발전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래도 국민의힘에선 가장 올바른 판단을 했다고 본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다. ▲장 대표로선 당연히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쫓아낼 수 있겠는가? 어떻게 쫓아내겠나? 오늘의 장 대표는 한 전 대표 덕분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 대표는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 오세훈 서울시장 등과 지방선거에서 연대할 가능성을 내비친다. ▲뻔한 사람들끼리 하는 거라서 큰 효과가 있을 것 같진 않다. 모두 국민의힘 사람이거나 국민의힘 출신인데 특별한 효과가 있겠는가? -진영 간 대결 구도가 성별·세대 갈등 구도로 번졌다. 정치권 원로로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시대·사회·경제 구조가 변하고, 새 기술이 도입되면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다. 국민 사이에 형성되는 ‘그룹’을 조화시킬 수 있는 정치적 능력이 필요하다. 이런 능력이 없는 사람은 정치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 “이준석·안철수·오세훈? 뻔한 사람들” “국힘, 강경 보수로? 희망 보이지 않아” -일부 정치인은 갈등을 이용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후원금을 벌고 있다. ▲큰 도움이 되진 않을 것이다. 갈등을 전체적으로 포괄한 후 최대공약수를 찾아 정치해야 한다. -과거 정치와 현재 정치의 가장 큰 변화와 차이점은? ▲못 살던 시절엔 먹고사는 게 가장 중요해서 경제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먹고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지금은 국민의 의식 구조가 과거와 다르다. 이 시대의 젊은 세대는 우리 국민 중 성숙도가 가장 높다.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도 가장 좋다. 이들은 공정하지 못하고, 불평등하며, 민주적이지 않은 것에 크게 저항한다. 세대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극우화됐다”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4050 남성이 2030 남성에게 가장 불만을 품는 부분은 “너희는 왜 국민의힘을 지지하면서 보수화되느냐”는 것이다. ▲2030 남성은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게 아니다. 최근 국민의힘은 장외 집회를 하고 있는데, 이들은 이런 걸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너무 소란을 피우는 것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흔히들 “장 자크 루소가 얘기하는 계몽주의가 프랑스 대혁명을 낳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계몽주의가 뭔가? 성숙지 못한 국민을 성숙하게 만들어서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우리 국민의 성숙도는 매우 높아졌다. 이 때문에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도 실패했다. 국민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 정치가 이를 따라가야 하는데, 접근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정계의 킹메이커로 알려졌다.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인가? ▲대통령은 정직해야 한다. 시대 변화에 민감하게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대통령들이 모두 실패한 원인은 너무 탐욕스러웠고, 시대 변화를 제대로 못 따라갔다는 것이었다. -최근 한국 정치·사회에서 작게나마 희망을 봤거나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그 반대가 된 일이 있다면? ▲우리나라의 제일 시급한 과제는 아주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이다. 이를 완화하지 않으면, 한국 정치는 국민통합을 이룰 수 없다. 우리는 초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고, 출산율은 매우 낮다. 경제의 역동성이 거의 없어지고 있다. 정치인이 말로만 소통·통합을 외친들 아무 소용이 없다. -추석 연휴를 앞둔 <일요시사> 독자에게 남길 덕담 한마디가 있다면? ▲대통령을 선출하는 기준이 여론조사에 휩쓸리는 식으로 정해지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윤 전 대통령도 그렇게 대통령에 당선됐다. 오랫동안 검사였던 사람이 지도자가 된 사례가 세계적으로 별로 없다. 이들은 남의 부정적인 측면만 따지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창의적·긍정적 역할을 하기 힘든 사람들이다. 제가 그를 호의적으로 봤던 것도 큰 잘못이었다. 당시 국민의힘엔 대통령감이 없었다. 그래서 저는 윤 전 대통령의 여론조사 지지율이 높은 것을 일컬어 “별의 순간을 잡았다”고 말했다. 결국 윤 전 대통령은 제가 우려했던 행동을 했다. 저는 이승만 전 대통령 외엔 모든 대통령을 만나봤다. 직접 자문도 했고, 대통령 선거에 참여한 적도 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왜 대통령은 실패하는가>라는 책도 출간했다. 이들이 실패한 원인은 초심을 관철하지 못했단 것이었다. 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이유를 생각해야 한다. 이미 우리나라에선 오래전에 보수·진보가 사라졌다. 지난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됐던 제15대 대선도 보수·진보의 싸움이 아니었다. 모두 보수였다. 1980년대 운동권 출신들은 정치권에 진출한 후 스스로 대단한 진보를 자처했다. 그런데 이들은 진보의 뜻도 모른다. 이들은 정권을 네 번 잡을 동안 양극화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무슨 진보 정권인가? 국민이 정치 상황을 냉철하게 관찰하시고 올바른 선택을 하는 자세를 갖추셔야 한다. 대통령·국회의원도 결국 국민이 선출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바란다. <ctzxp@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