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전 국민을 통틀어 3명뿐인 직업이 있다. 이들은 전국을 3개로 쪼개 각 지역을 담당한다. 1명만 없어도 남은 2명의 부담은 배로 늘어난다. 백골이 된 사체의 신원을 밝혀내는 법의인류학자. <일요시사>가 박대균 순천향대 해부학교실 교수를 만났다.
![전국서 단 3명만이 갖고 있는 직업인 법의인류학자 박대균 순천향대 해부학교실 교수가 <일요시사>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고성준 기자](http://www.ilyosisa.co.kr/data/photos/20230102/art_16733102895134_7976ce.jpg)
지난해 9월13일 순천향대학교 부속 천안병원에서 만난 박대균 교수는 코로나19를 심하게 앓았다고 털어놨다. 박 교수는 ‘태어나서 이렇게 아파본 적은 처음’이라고 했다. 그의 앞에는 <일요시사> 취재진이 사전에 보낸 인터뷰 질문지가 놓여 있었다. 질문지는 답변을 위한 기록으로 빼곡했다.
뼈가 하는 말
박 교수는 국내에 단 3명뿐인 법의인류학자다. 사망 이후 백골이 된 사체의 뼈를 통해 신원을 확인한다. 다른 2명은 가톨릭대 해부학교실에서 일하고 있다. 박 교수는 충청도와 전라도에서 의뢰를 받는다. 백골화 된 사체가 발견되면 박 교수에게 연락이 오고 사람의 뼈로 판명되면 부검 등의 작업을 진행하는 식이다.
“법의인류학은 법의학이라는 큰 범주 안에 아주 작은 부분으로 들어가 있습니다. 법의학을 1로 따지면 법의인류학은 1/16 정도입니다. 법의학자는 사망 이후 3일 이내 사체를 부검해서 사인을 밝히는 게 주 업무입니다. 저는 그 상황을 넘어선 부패가 심하거나 백골화된 시신을 부검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뼈는 생각보다 많은 정보를 담고 있다. 성별, 사망 당시 연령대, 키, 생전 앓았던 질병 등을 확인할 수 있다. 박 교수는 “예를 들어 100명의 백골화된 사체가 있다고 가정하자. 그럼 남녀를 구분해 먼저 50명으로 줄인다. 나이에 따라 또 줄일 수 있다. 이런 식으로 범위를 좁힌 후 실종자 가족 등의 유전자 정보와 대조해 신원을 확인한다”고 설명했다.
역으로 말하면 백골 사체의 유전자 정보가 나왔어도 대조하지 못하면 신원확인이 어렵다는 뜻이다. 박 교수는 실종자 가족이 유전자 정보 등록을 해서 백골 사체와 비교할 수 있는 체계가 마련돼야 하는데 아직은 어려운 점이 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여기에 백골 사체를 의뢰받아 부검을 진행해 정보를 제공해도 법의인류학자는 이후 상황을 알 수 없다.
전국서 3명뿐인 직업
백골 사체 신원확인
박 교수는 “백골 사체를 부검하고 감정하는 작업을 하다 보면 이후에 실제로 신원확인이 이뤄졌는지 굉장히 궁금하다. 하지만 수사기관으로부터 그런 정보를 받을 수 없어 짐작만 할 뿐이다. ‘잘 되셨을까?’ ‘잘 되셨겠지’ 정도다. 그런 부분이 상당히 아쉽다. 사체의 신원이 밝혀지고 그 사실을 알 수 있다면 좀 더 큰 보람을 느낄 수 있을 텐데…”라고 말했다.
국내 법의학자는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참사 현장과 닿아 있다. 사고 과정에서 나오는 대다수의 사체를 부검하고 식별하는 작업이 필요하기 때문. 박 교수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가톨릭의대 학부생 때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를 접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공보의로 근무할 때는 대구지하철 참사가 발생했다.
![<일요시사>와 인터뷰 갖고 있는 박대균 순천향대 해부학교실 교수 ⓒ고성준 기자](http://www.ilyosisa.co.kr/data/photos/20230102/art_16733104107115_20ceef.jpg)
대구 지하철 1호선 중앙로역에서 일어난 방화 사건으로 192명이 사망했다. 밀폐된 공간에서 일어난 화재 사고였기 때문에 현장에는 살점이 거의 없는 백골화된 상태와 똑같은 사체가 대부분이었다. 박 교수를 비롯한 법의학자의 역할은 그 상태에서 사체의 신원을 파악하는 일이었다.
박 교수는 지하철에서 ‘붓질을 했다’고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마치 유적 발굴 현장에서 고고학자가 붓을 들고 조심스럽게 흙을 쓸어내듯 박 교수를 비롯한 법의인류학자는 조심스럽게 사체를 찾아냈다. 박 교수는 “‘사체 혹은 사체 조각은 현장에서 들어 올리는 순간 원래대로 돌아갈 수 없다’는 말이 있다. 그렇기에 일단 그대로 둔 상태로 붓질을 했던 것”이라고 밝혔다.
머리, 목, 몸통, 오른팔, 왼팔, 오른다리, 왼다리를 찾아내면 비로소 사람 1명이 된다. 사진을 찍은 뒤에 순서대로 옮긴다. 아주 작은 부분이라도 유전자 정보를 확인할 수 있으면 신원확인이 이뤄진다. 작은 조각의 치아로도 개인식별이 가능하다. 사체에 남아 있는 소지품도 큰 역할을 했다.
작업을 반복한 끝에 142명의 미확인 사체 가운데 136명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었다. 6명 가운데 3명은 유전자 정보가 확인됐는데 대조할 가족이 없었고 남은 3명은 완전히 탄화돼서 유전자 검사를 진행할 수 없었다. 실제 대구지하철 참사 실종자 수는 6명으로 최종 집계돼있다.
박 교수는 “대구지하철 참사에 대해 말할 때는 유가족께 굉장히 죄송한 마음이 든다. 위로의 말을 꼭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대구지하철 참사는 법의학의 필요성과 국내 법의학 수준을 사회에 알린 사건으로 꼽힌다. 법의인류학자 역시 이 사건을 통해 그 역할이 알려지게 됐다.
많은 사람이 법의학을 ‘죽은 자’의 학문으로 여긴다. 사망한 사람의 몸에 남은 흔적으로 사인을 밝히고 감정하는 일이 주 업무기 때문에 산 사람과는 연관이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법의학자는 법의학이야말로 산 사람을 위한 학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대구지하철 참사 시신 발굴
감정 이후 상황 몰라 아쉬워
죽음이 주는 정보가 인간의 삶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주장이다.
“법의학의 존재 이유는 망자의 인권을 지키고 사인을 밝히는 것도 있지만 이를 통해서 살아있는 사람의 삶에 뭔가 도움을 주기 위한 부분이 굉장히 많습니다. 죽은 사람이 건네는 정보를 통해 산 사람의 건강을 위한 정책을 만든다든지 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셈입니다. 예방을 할 수도 있고요.”
그러면서 박 교수는 현 상황에 대한 아쉬움을 표했다. 사망 원인 등 들쭉날쭉한 통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 오류를 줄여야 한다고 설명했다. 예로 든 건 변사자 통계였다. 경찰과 해양경찰에서는 매년 변사자 수를 파악해 공개한다. 국내 변사자 수는 이 두 기관에서 나온 수치를 합친 것이다. 1년에 3만명가량이다.
![박대균 순천향대 해부학교실 교수 ⓒ고성준 기자](http://www.ilyosisa.co.kr/data/photos/20230102/art_16733104795671_f26cb5.jpg)
문제는 부검 수다. 3만명의 변사자 가운데 부검을 하는 경우는 8000~9000건 정도다. 법의학자는 변사자 가운데 부검을 하지 않은 2만여명에서 억울한 죽음, 확인되지 않은 죽음이 있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박 교수는 “사인을 정확히 통계화할 수 없는 사망이 그 정도 된다는 뜻”이라고 했다. 일각에서는 1년에 국내서 발생하는 변사자 수를 7만명 정도로 보기도 한다. 매년 최소 2만여명에서 6만여명의 부검하지 않은 변사자가 나오고 있는 셈이다.
박 교수는 “부검을 하고 망자를 통해서 사인을 확실하게 밝히면 좀 더 정확한 질병 통계를 만들 수 있다는 거죠. ‘사망 원인으로 이 경우가 제일 많으니 조심합시다’라는 예방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 그 통계가 부족하다보니 아쉬움이 좀 있습니다.”
들어야 한다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고민한 끝에 법의인류학자가 됐다는 박 교수. 그는 해부학을 전공하면서 뼈에 관심을 갖게 됐고 이후 법의학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분야를 찾다가 법의인류학의 길을 걷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사체는 스스로 말을 하고 있기 때문에 법의학자는 그 말에 항상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당부하면서 말을 맺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