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2년 카타르월드컵에서 한국이 16강에 오를 수 있었던 데는 파울루 벤투 감독의 신의 한 수가 있었다는 일화가 있다. 조별리그 H조 2차전 가나와의 경기 때 이야기다. 한국이 2:3으로 지고 있던 후반 추가 시간이 종료되기 직전, 코너킥 찬스를 얻었는데 테일러 주심이 경기를 종료시켰다.
이에 한국 선수들이 강하게 항의했고, 특히 핵심 수비수인 김영권 선수가 거칠게 항의하는 상황에서 테일러 주심이 주머니에서 카드를 꺼내려 했다. 이때 벤투 감독이 갑자기 경기장에 전력질주로 뛰어들어 선수들보다 더 격렬하게 항의했다. 그리고 벤투 감독은 레드카드를 받고 퇴장당했다.
이를 두고 김진수 선수는 벤투 감독이 김영권 선수를 보호하기 위해 더 거세게 항의하면서 스스로 레드카드를 받았다고 했다. 당시 김영권 선수는 이미 옐로카드를 받아 한 번 더 받을 경우 퇴장당해 다음 경기인 포르투갈전에 출전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만약 김영권 선수를 보호하려는 벤투 감독의 희생이 없었다면 우리는 포르투갈전에서 김영권 선수의 동점골을 볼 수 없었고 결국 한국이 16강에 오르는 기쁨도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벤투 감독 한 명의 희생이 2022 카타르월드컵 16강 진출이라는 영광과 함께 전 국민을 기쁘게 했던 신의 한 수였다.
벤투 감독은 레드카드를 받은 다음날 기자회견에서도 “제가 좋지 않게 반응한 것 같다. 이런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지 않았으나 저도 사람이기 때문에 이렇게 됐다”면서 테일러 주심의 레드카드를 겸허히 받아들였다. 역시 명감독다운 말이 아닐 수 없다.
조직이나 단체의 지도자는 법과 원칙을 지키면서 공동체의 유익을 꾀해야 하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특히 위기 상황에서는 공동체 유익의 대가로 지도자 개인이 스스로 법과 원칙을 어기면서 처벌받을 각오를 해야 한다.
위기 상황에서 지도자가 법과 원칙을 어기면 안 된다는 원칙에 갇혀버리면 그 지도자는 개인으로서는 떳떳할지 모르나 공동체 전체를 위기에서 구할 수는 없다. 또한 위기 상황에서 공동체를 구하기 위해 법과 원칙을 어긴 지도자가 공동체를 구했다는 핑계로 법과 원칙을 어긴 대가를 치르지 않으려고 한다면 이 역시 지도자로서 올바른 자세가 아니다.
특히 국민이 뽑은 선출직 지도자라면 평소에는 법과 원칙을 지켜야 하지만, 위기 상황에서는 지도자 스스로가 죄를 짓고 감옥에 가는 한이 있더라도 공동체 전체를 살리기 위해 과감하게 정책을 수립하고 그 정책을 자신 있게 추진해야 한다.
위기 상황을 이용해 지도자가 자신이나 측근의 이익을 위해 죄를 짓는다면 우리는 그 지도자를 욕하고 비난하지만, 공동체 유익을 위해 죄를 짓고 그 죗값을 당당하게 치를 각오가 돼있는 지도자라면 우리는 그 지도자를 영웅이라고 부른다.
가치관이 다르고 성이 다르고 연령이 다르고 출신이 다른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공동체가 위험에 처해 있을 때, 어찌 죄를 전혀 짓지 않고 공동체 전체를 살리는 유능한 지도자가 될 수 있겠는가? 작금의 한국은 국가 전체를 위해 스스로는 죄인이 될 줄도 아는 지도자가 필요한 때 같다.
만약 벤투 감독이 개인적으로 경기규칙을 어기지 않겠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면 한국이 2022 카타르월드컵에서 16강에 오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벤투 감독이 레드카드를 인정하지 않고 계속 항의만 했다면 한국의 16강도 빛나지 못했을 것이다.
5160만명이 사는 대한민국 공동체 지도자인 윤석열 대통령이 2023년을 개혁의 원년으로 삼고, 특히 “노동·교육·연금 3대 개혁(담대한 개혁)이 인기 없는 일이지만 회피하지 않고 역사적 소명을 갖고 추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여기서 분명한 건 3대 개혁이 말로만 끝나지 않고 성공하려면 개혁의 특성상 지도자가 잘못된 기존의 틀을 깨야 하고 그 대가로 지도자가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는 점이다.
윤 대통령과 3대 개혁 관련 부처 장관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역대 어느 정부도 하지 못했던 3대 개혁을 실천할 때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하면서 법과 원칙, 그리고 공정을 최고의 가치로 삼되, 국가와 국민은 잘되고, 대통령과 장관 스스로는 죄인이 될 각오로, 그리고 그 대가로 감옥에 갈 각오로 개혁에 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윤정부가 대한민국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다.
안중근 의사가 대한민국 공동체를 위해 일본과 맞서 싸우는 투사에 머물지 않고, 스스로 죄인이 되고, 죄에 대한 대가로 감옥에서 죽음을 맞이한 지도자가 됐던 것처럼 말이다.
최근 수개월 동안 전 정부 장관 여러 명이 업무 과정에서 드러난 실책 때문에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고 있다. 그런데 만약 그들이 자신의 욕심이 아니고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하다가 실책했다면 당당하게 그 실책에 대한 처벌을 받으면 된다.
그래야 떳떳하다. 구차한 변명을 한다거나 현 정부에 협조성 발언이나 하고 처벌을 면하려 해서는 안 된다.
현 정부 장관도 전 정부 장관이 줄줄이 검찰에 소환되는 것을 보고 차후 처벌이 염려돼 자신에게 주어진 미션을 떳떳하게 감당하지 못하는 일이 있어서는 절대 안 된다. 대통령과 같이 감옥 갈 생각하고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해야 우리 국민은 현 정부에 박수를 보낼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도 그 책임을 묻지 않을 것이다. 예수도 2000년 전 타락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죄인(?)이 됐고 그 대가로 십자가에서 처형당했다.
※본 칼럼은 <일요시사>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