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산업센터도 통하는 ‘대단지 효과’

아파트 1000가구 이상을 대단지로 분류하듯 연면적 16만5000㎡(구 5만평) 이상의 대규모 지식산업센터 분양이 주목받고 있다. 대규모 지식산업센터는 유입인구가 많아 상권 형성 및 관리비 절감 효과를 누릴 수 있고, 과거 아파트형 공장의 건축물을 넘어서 다양하고 복합적인 공간을 제공하며 지역을 대표하는 랜드마크 복합단지로 거듭나고 있다.

지식산업센터의 ‘상징성’은 시장에서 수요자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지식산업센터 규모가 커질수록 특별하고 다양한 내외부 설계 도입이 가능해진다. 실제 올해 1월 준공을 완료한 경기도 안양시의 ‘안양 아이에스BIZ타워 센트럴’ 지식산업센터의 경우 2019년 분양 당시 안양 최대 규모(연면적 약 21만6285㎡)의 상징성을 강조하며 많은 인기를 끌었다. 

상징성 강조
원스톱 업무

대규모의 연면적을 바탕으로 업무·주거·상업시설로 구성된 원스톱 업무 환경을 제공함은 물론 입주기업의 편의성을 증가시킬 수 있는 어린이집 및 옥상정원·북카페 등 수요자의 커뮤니티 구성이 수요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다는 평이다. 지식산업센터에는 최근 랜드마크 경쟁으로 커뮤니티 시설뿐만 아니라 업무시설에도 도움을 줄 수 있는 다양한 특화 설계가 도입되고 있다. 

입주 기업의 물류 상하차를 도와줄 수 있는 다이렉트 패스 시스템, 도어투도어 시스템 등은 넓은 면적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대규모의 지식산업센터에서만 도입이 가능하다. 부동산 시장에서 지식산업센터의 공급량이 늘면서 지식산업센터들의 특성화, 거대화 트렌드가 대세로 자리 잡고 있는 셈이다.  

다시 말해 경제학 용어인 ‘규모의 경제(economy of scale)’효과가 지식산업센터에도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생산량 증가에 따라 단위당 생산비가 감소하는 현상을 의미하는 규모의 경제는 부동산의 규모가 클수록 그 가치와 선호도가 높아지는 모습으로 발현되고 있다. 지식산업센터 대형화 추세는 달라진 기업 문화와도 연관이 있다. 최근 기업들은 단순 업무뿐만 아니라 직원들의 사기 증진과 복지에도 관심이 높아 지식산업센터 내 휴식 및 여가공간이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연면적 16만5000㎡ 이상 대규모 단지 주목
유입 인구 많아 상권 형성·관리비 절감

지식산업센터의 규모가 클수록 단지 내 더욱 많은 편의시설을 마련할 수 있다. 기숙사나 휴식, 여가공간까지 골고루 갖출 수 있게 된다. 입주 기업 특성에 맞춘 특화 설계도 들어선다. 제조업체의 편의를 위한 물류 상하차 특화 시스템인 다이렉트 패스 시스템이 적용되어 트리아츠에 입주하는 제조사들의 업무 효율성을 증대시켜줄 것으로 기대된다. 1인기업 및 광고, 영상촬영 기업들을 위한 촬영공간인 포토스튜디오와 크리에이터룸도 도입해 차별성을 두었다.

업계에서는 대규모 지식산업센터를 찾는 수요자들이 더 늘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연면적 20만㎡를 넘는 대규모 지식산업센터 수가 현저히 적기 때문에 공급 대비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대규모 지식산업센터 가치가 더 오를 것이란 전망이다. 한국산업단지공단에 등록된 지식산업센터(지난 9월 말 기준) 1414개소 중 연면적 20만㎡를 넘는 초대형 지식산업센터는 1.5%(22개소)에 불과하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아파트의 경우에도 대규모 단지는 수요자들에게 많은 관심을 받는 만큼 대규모, 최고 높이 등 상징성을 가진 지식산업센터에 수요자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며 “대규모로 수요자의 이목을 집중시킨 후 차별화된 상품성으로 수요자들에게 계약까지 이끌어 낼 수 있는 지식산업센터가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다음은 연면적 20만㎡ 넘는 수도권 지식산업센터.

▲트리아츠= 군포 랜드마크로 기대되는 하이엔드 지식산업센터 ‘트리아츠’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군포시 군포역세권복합개발사업 A-1BL(당동 일대)에서 조성 중인 트리아츠는 국내의 대형 건설사인 태영건설, SK에코플랜트, SKD&D가 시공을 맡았다. 연면적 24만여㎡에 지하 3층~지상 최고 28층 규모다. 경기 서남부 지역에서 보기 드문 대규모 하이엔드급으로 지어진다. 

거대한 연면적을 가진 만큼 지역을 대표하는 랜드마크급 스펙을 가지고 있다. 업무형과 제조형이 결합된 지식산업센터로, 오피스와 지식산업센터의 성격을 모두 갖추고 있다. 연면적이 넓은 만큼 다양한 트렌드를 적극 반영한 공간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우선 지식산업센터 입주 기업의 주류를 이루는 제조업의 편의를 위해 ‘다이렉트 패스’ 시스템을 도입한다. 제조업 및 물류업체의 원활한 상하차를 돕기 위해 직선 주행을 통해 3개 층을 한 번에 올라갈 수 있도록 설계된 특화시스템이다. 3개 층을 한 번에 올라갈 수 있게 설계를 진행하는 만큼 연면적이 큰 지식산엡선터에서만 도입이 가능하다. 


제조업 외에도 다양한 업종의 편의를 도울 수 있는 특화설계가 도입될 예정이다. 최근 트렌드 업종인 영상, 광고 기업을 위한 공간도 마련된다. 입주기업에서 제품을 편리하게 촬영하고 설명할 수 있도록 하는 공간인 ‘포토 스튜디오’와 크리에이터가 손쉽게 동영상을 촬영하고 편집할 수 있는 공간인 창작공간이 조성될 예정이다. 

달라진 문화
대형화 추세

군포를 대표하는 지식산업센터인 만큼 외관 설계는 물론 휴게공간도 차별성을 두었다. 탁 트인 전망을 보며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옥상정원은 물론 모던한 조경설계로 임직원과 이용객이 편안하게 쉴 수 있는 오픈형 광장이 설계된다. 여기에 공용 라운지, 미팅룸, 수면실 등 다양한 편의시설이 들어설 예정이다. 

분양 관계자는 “트리아츠 조성으로 인해 랜드마크급 지식산업센터 확보와 함께 주변 대형 산업단지와의 시너지 효과를 기대한다”며 “비즈니스를 시작함에 있어 주변에 다수의 산업단지와 우수한 교통망을 가지고 있는 최적의 입지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새로 사업을 시작하려는 수요가 많아 좋은 결과를 예상되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 테라타워 세마역= 현대엔지니어링이 ‘현대 테라타워 세마역’을 공급한다. 세교신도시 내 도시지원시설용지 6블록(A동)과 7블록(B동)에 각각 지하 3층~지상 15층, 지하 3층~지상 13층으로 합계 총 20만7661.77㎡ 규모로 조성되는 대형 지식산업센터다.

드라이브인
도어투도어

A동(6블록) 기준 지하 2층부터 지상 9층까지 지상 ‘드라이브인’ 및 ‘도어투도어’ 시스템을 적용했다. 주차 램프 진입으로 물류 이동 및 하역이 용이하고, 지상 10층부터 15층까지는 누다락 설계를 통한 업무공간과 다락공간 별도 분리로 공간 효율성을 높였다는 점이 특징이다.

제조 특화형 지식산업센터로 계획된 만큼, B동(7블록)도 지하 2층부터 지상 10층까지 호실 앞 주차와 하역이 가능하도록 차량 이동이 용이한 ‘드라이브인’과 ‘도어투도어’ 시스템을 동일하게 적용했다. 

지상 11층부터 13층의 고층부에는 제곱미터당 약 1.0톤의 무거운 하중을 견딜 수 있도록 설계했다. 지게차 교행 이동이 가능한 넓은 복도와 5.1m의 높은 층고를 확보함으로써 물류 이동성이 편리하도록 설계했다. 이 밖에도 입주사의 편의와 문화생활을 위해 소회의실과 대회의실, 피트니스, 스크린골프장 등을 배치해 다양한 커뮤니티 시설을 제공한다.

또 옥상정원과 중정공원 등을 통해 쾌적하고 여유로운 휴게공간을 조성해 근무자들의 휴식을 위한 공간을 확보한 점이 눈에 띈다.

분양 관계자는 “오산 세마역 일대 역세권에 자리 잡은 대규모 단지로 생활 편의성을 한층 강화했다”며 “오산시는 성장관리권역으로 과밀억제권역에서 이전할 경우 법인세 및 소득세가 감면되는 지역이라 사무실 이전 수요도 상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평택 오션센트럴비즈= 골드랜드제이앤제이가 경기도 평택시 포승읍 만호리(포승2일반산단)에 들어서는 지식산업센터 ‘평택 오션센트럴비즈’를 분양한다. 단지는 지하 2층~지상 40층, 연면적 약 24만㎡ 규모로 지어진다. 1군 건설사인 대우건설이 시공을 맡았다.


지난 5월 KRI 한국기록원으로부터 ‘세계 최대 규모 항만 복합지원시설’로 인증을 받는 등 초고층 지식산업센터로 지역 내 랜드마크로 거듭날 전망이다. 

초대형 지식산업센터는 입주 기업 수가 많은 만큼 비즈니스 인프라를 형성하고 공유하는 등 기업 간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특히 상업시설, 편의 및 휴게공간 등 다양한 지원 시설도 갖추고 있어 양질의 근무환경을 찾는 CEO들의 선호도가 높다는 평가다.

제조형, 스마트형, 업무형 등 각각의 업무유형에 맞춘 사무공간을 갖춰 다양한 기업 수요를 흡수할 전망이다. 지하 1층~지상 4층에는 제조형 공장이, 지상 5~39층에는 섹션형과 스마트 공장이 들어선다. 

아파트형 공장 건축물 넘어
지역 대표 랜드마크로 우뚝

차별화된 특화설계도 눈여겨볼 만하다. 제조형 지식산업센터에는 건물 외부에서 화물 엘리베이터를 통하지 않고 내부로 화물차량이 직접 진입할 수 있는 드라이브인 시스템이 도입된다. 여기에 사무실 앞까지 주차가 가능해 작업 동선을 최소화하고 하역시간을 단축시키는 도어투도어 시스템이 동시에 적용된다.

또 최고 6.9m 층고로 설계해 기존 지식산업센터 대비 공간 활용도와 개방감까지 높였다. 사물인터넷(IoT) 오피스 시스템을 제공해 근무자의 업무 효율성 및 편의성을 높이고, 기업체의 비용 절감 및 생산성 향상에 도움이 될 전망이다. 


대규모로 지어지는 지식산업센터인 만큼 다양한 커뮤니티 시설도 마련된다. 단지 내에는 공용회의실, 중앙수변공원 등을 비롯해 지상 5층에 잔디광장과, 야외 농구코트, 풋살장 등 체육시설이 마련된다. 지상 6층부터 11층까지는 층별 테라스정원이 조성된다. 

특히 40층에는 서해바다, 서해대교 평택항을 조망할 수 있는 스카이라운지가 마련되는 등 쾌적한 업무환경과 휴게공간이 조성될 예정이다. 지하 1층~지상 2층에는 워터갤러리, 힐링포레스트, 선큰가든 등 다양한 휴식공간과 연계된 원스톱 스트리트몰로 조성돼 입주사들의 업무효율 및 편의를 높일 뿐만 아니라 주변 산업단지 종사자들의 힐링 스폿으로 자리매김할 전망이다. 

비즈니스 
인프라 형성

지식산업센터 내 입주 기업을 중심으로 약 2만5000명의 고정 수요를 확보할 수 있다. 인근 산업단지 종사자 등 배후수요도 탄탄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입지도 좋다. 평택 오션센트럴비즈가 위치한 포승2지구는 평택포승 BIX 및 평택항만배후단지, 평택자동차클러스터 개발 등에 따른 최대 수혜지로도 주목받고 있다.

평택시는 최근 2035 평택시 기본계획을 통해 서부권인 포승, 안중, 현덕을 부도심으로 묶어 국제 핵심 물류, 제조 기반, 항만, 관광 및 휴양 기능을 부여해 발전시킨다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webmaster@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