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양, 내년이 더 어렵다?

올해 마지막 달인 12월 재건축·재개발 물량이 대거 쏟아진다. 금리 인상과 원자잿값 상승, 경기 침체 등의 여파로 분양을 미뤘던 단지들이 버티기를 포기하고 분양에 나섰다.

재개발·재건축 단지들은 금리 인상 기조가 이어질 경우 올해보다 내년 분양시장이 더 어려울 것이란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부동산114 렙스(REPS)에 따르면 이달 전국에서 재건축·재개발 정비사업을 통해 총 18개 단지, 3만2177가구가 분양에 나설 계획이다. 

이 중 조합원 물량을 뺀 1만24 30가구가 일반에 분양된다. 지난해 12월(4455가구) 대비 2.8배가량 늘어난 수치다. 지역별로는 서울이 6789가구로 가장 많다. 이어 경기도(3425가구), 인천(1249가구), 강원도(851가구), 부산(116가구) 등이다.

수도권에 예정된 물량만 1만1463가구로 전체의 92.2%에 달한다. 분양업계에서는 재건축·재개발 정비사업장들이 금리 인상에 따른 금융비용 증가와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환 대출이 막히자 어쩔 수 없이 밀어내기 분양에 나선 것으로 분석한다.

실제 부동산개발사업 시장은 PF 시장이 빠르게 얼어붙으면서 자금난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시행업계에 따르면 최근 발행되는 부동산 PF 대출 금리는 연 12~15% 수준이다. 1년 전 3%대였던 데 비하면 많게는 세 배에서 다섯 배 가까이 급등했다. 그나마도 대형 사업장이나 대형 건설사가 신용보증을 해줬을 경우로, 중소사업장은 돈을 빌려줄 금융기관이 없다는 업계의 하소연도 나온다.

그럼에도 분양업계는 기대감이 높았던 수도권 주요 정비사업 아파트 분양이 연말에 몰리면서 예비 청약자들의 관심이 분양 시장에 쏠릴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가 최근 중도금 대출 한도를 분양가 9억원 이하에서 12억원으로 상향 조정하면서 대출이 불가능할 것으로 여겨졌던 단지들도 대출 가능선으로 들어와 분양 흥행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진 상황이다.


연말 선보이는 수도권 단지 어디?
재건축·재개발 물량 대거 쏟아져

하지만 중도금 대출 규제가 완화돼도 ‘로또’ 분양은 여전히 현금부자 잔치가 될 전망이다. 업계는 중도금 대출 규제가 풀리다 말았다고 말하는데, 중도금 대출 한도 ‘꼬리표’가 그대로 남아서다. 

정부는 지난 10월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중도금 대출 대상을 분양가 9억원 이하에서 12억원 이하로 확대하기로 했다. 중도금 대출 보증 기관인 주택도시보증공사(HUG)·주택금융공사(HF) 중 우선 HUG가 이달부터 적용할 예정이다. 이들 보증기관이 분양가 9억~12억원인 주택도 중도금 상환을 책임지는 보증서를 발급하며, 금융회사는 이 보증서를 받고 중도금을 대출해준다.

정부가 앞당겨 시행하기로 한 주택담보대출 규제 완화도 중도금 대출 확대 효과가 있다. 대출 한도인 LTV(담보인정비율)가 투기과열지구에서 40%에서 50%로 늘어나기 때문이다. 중도금 대출도 주택담보대출에 포함된다.

LTV가 늘어나도 중도금 전액을 대출받지 못한다. 중도금이 대개 분양가의 60%선이데 10%는 자력으로 마련해야 한다. 그런데 실제로 대출받을 수 있는 중도금이 이보다 더 줄어들게 된다. HUG 등의 대출 보증 한도에 걸려 있어서다. 현재 HUG가 5억원까지, HF가 3억원까지 각각 보증한다. 이들 기관은 중도금 대출 대상 범위를 확대해도 대출 보증 한도를 높이지 않고 그대로 유지할 방침이다. 

그렇다면 중도금 대출 가능 금액이 어떻게 될까. 분양가가 12 억원이고 중도금이 60%인 7억2000만원 주택의 경우 대출 금액이 LTV 50%에 따라 6억원인데 HUG의 보증 한도가 5억원이어서 5억원까지만 빌릴 수 있다. 나머지 중도금 2억2000만원은 직접 마련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 주택의 계약금이 20%라면 총 4억6000만원을 여유 자금으로 갖고 있어야 한다. 중도금 대출을 받을 수 있는 주택도 현금부자가 아니면 분양받기 어려운 셈이다.

업계는 중도금 대출 보증 한도와 LTV를 확대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6억원이던 HUG 보증 한도가 문재인정부 들어 2018년부터 5억원으로 축소됐다. 중도금에 대한 LTV도 문정부 이전 70%에서 문정부 때 40%로 조였다가 이번에 50%로 다소 풀렸다. 중도금 대출을 옥죄는 사이 분양가는 상승했다. HUG의 민간 아파트 분양가격 통계를 보면 지난 10월 기준으로 3.3㎡당 분양가가 2017년 10월보다 서울 29.3%, 수도권 39% 각각 올랐다. 


017년 10월 3.3㎡당 2200만원인 서울 분양가가 지금은 2800만원이다.

중도금을 분양가의 60%로 보고 중도금 전액을 대출받을 수 있는 주택형이 2017년엔 45평형까지 가능했으나 지금은 30평형 정도다. 국민주택 규모인 전용 84㎡(34평형)도 중도금을 모두 대출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중도금 대출 대상 분양가가 12억원까지 올라가도 중도금 전액을 대출받을 수 있는 아파트는 분양가 8억3000만원 이하이기 때문이다. 분양가 8억3000만원의 중도금이 분양가 60% 기준으로 HUG 중도금 대출 한도인 5억원이다. 앞으로 중도금을 모두 대출로 해결할 수 있는 주택이 8억3000만원 이하에서 더 줄어들 수 있다. 

분양 경기가 침체한 가운데 업계가 계약금을 10%로 낮추고 중도금을 70%로 높일 경우 중도금이 5억원이 되는 가격이 7억1000만원이다. 중도금 대출 대상을 늘리는 것 못지않게 중도금 대출에 적용하는 LTV와 중도금 대출 보증 한도를 올려야 중도금 대출 완화의 실효성이 있다고 업계는 전했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재건축·재개발 사업지는 대부분 과거 주거 중심지 역할을 하던 구도심에 자리해 기반시설은 이미 완비돼 있지만 노후 주택이 많아 새 아파트에 대한 수요가 높은 곳”이라며 “정비사업 특성상 일정이 연기될 가능성이 존재하는 만큼 분양이 가시화된 곳으로 청약을 노려보는 게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이달 선보이는 수도권 주요 분양단지.

 

 

▲올림픽파크 포레온= 현대건설, HDC현대산업개발, 대우건설, 롯데건설은 서울 강동구 ‘올림픽파크 포레온’을 분양한다. 단지는 지하 3층~지상 35층 85개동에 공동주택 총 1만2032가구 규모로 조성된다. 이 가운데 4786가구가 일반분양으로 공급된다. 총 46만여㎡의 대지에 조성되는 국내 최대 규모의 아파트 단지다.

전용면적별로는 29㎡A 10가구, 39㎡A 1150가구, 49㎡A 901가구, 59㎡A 936가구, 59㎡B 302가구, 59㎡C 149가구, 59㎡D 54가구, 59㎡E 47가구, 84㎡A 209가구, 84㎡B 21가구, 84㎡C 75가구,84㎡D 188가구, 84㎡E 563가구, 84㎡F 47가구, 84㎡G 19가구, 84㎡H 115가구로 구성된다. 

단지는 조경 면적이 전체의 약 37%에 달한다. 단지 중앙부에 자연과 어우러진 중앙광장 잔디 마당을 조성해 입주민들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오픈 스페이스 공간을 마련할 예정이다. 주차 공간도 가구당 1.4대의 넉넉한 주차 대수를 마련한다. 법정 기준(30%)보다 많은 약 99% 이상을 가로 2.5m, 세로 5.1m 이상의 확장형 주차공간을 적용했다. 

 

 

▲장위자이 레디언트= GS건설은 서울시 성북구 장위동 장위4구역을 재개발하는 ‘장위자이 레디언트’를 분양한다. 지하 3층, 지상 최고 31층, 31개동, 총 2840가구의 대단지 아파트다. 전용면적 49~97㎡, 1330가구가 일반분양 된다. 전용면적별로 49㎡ 122가구, 59㎡ 266가구, 72㎡ 354가구, 84㎡ 573가구, 97㎡ 15가구 등이다. 

최근 12억원 이하 아파트에 대한 중도금 대출을 허용하는 정책이 나오며 ‘장위자이 레디언트’가 전 타입 최대 수혜를 누리는 단지로 떠올랐다. 분양가는 전용 84㎡ 기준 약 9억원대 수준(일부 세대 제외)으로 인근 아파트 단지의 매매 가격 대비 합리적인 금액으로 기대된다. 

12월 8개 단지 3만2177가구…2.8배↑
대출 막히자 어쩔 수 없이 밀어내기

단지는 남향 위주다. 판상형이 많아 바람도 잘 통하도록 설계했다. 고품격 커뮤니티시설 ‘클럽 자이안’도 들어선다. 스포츠존에는 피트니스클럽, 골프연습장, GX룸, 록커룸, 사우나, 카페&라운지 등이 마련된다. 에듀존에는 작은도서관, 독서실, 키즈룸 등이 들어선다. 


분양 관계자는 “교통, 교육, 편의 등의 시설과 자연환경이 고루 갖춰진 장위뉴타운에 있는 2800여 가구의 대단지 아파트로 고객들의 관심이 높다”며 “지역을 대표하는 랜드마크가 될 수 있도록 조경과 커뮤니티시설 등을 차별화한 단지를 선보이겠다”고 말했다.

 

 

▲철산자이 더 헤리티지= GS건설이 경기 광명시 일대에서 공세권과 수세권 입지를 갖출 ‘철산자이 더 헤리티지’를 공급한다. 단지는 평지 지형에 대단지로 조성되는 아파트로 지하 3층~지상 최고 40층, 23개동, 전체 3804가구 규모로 공급된다. 이 가운데 전용면적 59·84·114㎡ 1631가구가 일반분양 물량이다.

단지는 주차장을 지하에 배치하는 대신 지상공간에 엘리시안가든(중앙광장)이 조성된다. 뷰테라스가든, 라운지가든(선큰), 자이 프롬나드(산책로), 자이펀그라운드(어린이놀이터), 웰빙가든(주민운동시설) 등 다양한 콘셉트의 정원도 곳곳에 마련될 예정이다. 중앙광장에는 수경시설 도입에 따른 리조트형 테마정원이 구현된다. 

 

 

▲더샵 아르테= 포스코건설은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주안10구역 주택재개발정비사업을 통해 ‘더샵 아르테’를 분양한다. 지하 2층, 지상 최고 29층, 10개동, 전용면적 39~84㎡ 총 1146세대(임대포함) 규모로 조성된다. 이중 770세대가 일반분양 대상이다. 일반분양 물량은 전용 39㎡ 60세대, 59㎡A 272세대, 59㎡B 25세대, 59㎡C 168세대, 74㎡ 157세대, 84㎡A 42세대, 84㎡B 46세대 등이다. 

입주민에게 높은 만족도를 주기 위해 다양한 커뮤니티를 선보인다. 단지 내 게스트하우스는 입주민들이 지인들을 초청해 편히 머물거나 파티 공간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 입주민이 책도 읽고 차를 마시며 담소도 나눌 수 있는 북카페도 들어선다. 이 밖에 실내골프연습장, 피트니스센터, GX룸, 독서실, 탁구장 등도 마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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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