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표’ 사정기관 새 단장 플랜

반년 내내 물갈이…엇갈린 희비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윤석열정부 출범 반년 만에 주요 사정기관들의 새 단장이 얼추 마무리되는 모양새다. 검찰에 이어 경찰·국정원도 고위직 대규모 물갈이가 단행됐다. 일각에선 정부가 검찰을 중심으로 한 사정기관 서열 재편을 끝냈다고 분석한다. 정권이 다른 사정기관들의 힘을 빼고, 검찰을 ‘원톱’으로 띄우기 위해 이들을 활용할 방법을 찾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검찰이 주도하는 야권 사정국면은 점차 공고해지는 분위기다.

윤석열정부는 취임 반년 만에 검찰을 중심으로 사정기관 서열을 재편하는 데 성공했다. 출범 직전 검수완박법이 통과되면서 계획이 틀어지기도 했지만, 결국 당초 의도한 바를 대체로 이뤄낸 형국이다.

꽂아넣고
갈아엎고

검찰 요직에는 ‘윤 대통령 라인’으로 분류되는 인사들이 들어섰다. 다른 사정기관에 대해서도 정부가 인사권을 꽉 쥐고 흔드는 모양새다. 그 결과 감사원은 정치 중립성 의무 위반 논란에 휩싸였고, 경찰과 국정원은 안팎으로 어수선한 분위기가 몇 달째 이어지고 있다.

특히 전 정권부터 검찰과 경쟁 관계에 놓인 경찰의 난맥상이 두드러진다.

국가정보원은 최근 2·3급 간부 보직인사를 마무리했다. 그런데 100여명에 달하는 간부가 보직을 받지 못했다. 문재인정부에서 요직을 거쳤던 인물도 대거 ‘대기발령’ 상태에 놓인 것으로 전해졌다. 문정부 때 임명된 1급 간부 전원이 퇴직한 지 석 달 만이다. 


김규현 국정원장은 지난 9월 초 1급 간부 20여명을 교체한 직후부터 2·3급 인사작업에 착수했다. 관련 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김 원장은 직무평가와 내부 감찰 등을 통해 대공업무 등 정보기관 본연의 역할에 충실했다는 평가를 받은 인사들을 주요 보직에 배치했다. 

반면 전 정권의 시책을 뒷받침하는 업무에 투입됐던 인사에겐 보직을 부여하지 않았다. 대북 관계 지원부터 간첩 수사·대북 공작 분야를 맡았던 간부들이 된서리를 맞은 셈이다. 아울러 서훈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박지원 전 국정원장 등과 가까웠던 것으로 분류된 인사들도 무보직 신세로 전락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정기관의 대규모 인사에서 대기발령으로 남은 이들은 통상 교육·지원 부서 등 한직으로 밀려날 가능성이 크다.
사실 윤정부 출범 직후부터 국정원 물갈이는 예정된 수순이었다. 국정원 물갈이는 정권교체마다 관례처럼 이뤄져왔다. 

김영삼정부는 집권 초반인 1994년 국정원(당시 국가안전기획부, 안기부) 직원 300여명을 대기발령했다. 국회에는 정보위원회를 설치해 외부 감시장치를 마련했다. 김대중정부는 안기부를 국정원으로 바꾸면서 직원 10% 이상을 줄였다. 10년 만에 정권을 넘겨받은 문정부는 국정원 내부에 ‘적폐 청산TF’를 설치하고 고강도 개혁과 활동범위 조정 등을 단행했다. 

‘검찰 원톱’ 서열 재편 완료
경찰·국정원은 대규모 인사

윤정부는 김 원장 취임 이후 국정원에 감찰심의관 자리를 신설해 현직 부장검사를 파견했다. 국정원은 감찰심의관을 앞세워 전 정권 때 진행된 북한 관련 업무에 관해 강도 높은 내부 감찰을 진행해왔다. 

그간 감사원과 검찰이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과 귀순 어민 북송 사건을 집요하게 파고든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국정원은 지난 7월 초, 서 전 실장과 박 전 원장을 대검찰청에 고발했다. 서 전 실장은 귀순 어민 사건 당시 정부합동조사를 강제로 조기 종료시킨 혐의를, 박 전 원장은 서해 사건 관련 첩보를 무단 삭제한 혐의를 받고 있다. 


윤정부는 이와 전 정권 대북 업무를 한데 묶어 국정원 인사 정리 명분으로 삼은 셈이다. 아울러 국정원은 검수완박으로 타격을 입은 검찰의 입지 회복용 제물로 쓰이는 모양새다.

검찰은 윤정부 들어 국정원 관련 사건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고발 일주일 만에 국정원 청사에서 압수수색을 단행한 데 이어 서욱 전 국방부 장관·김홍희 전 해양경찰청장·서 전 실장 등을 잇달아 구속수사했다. 검찰은 박 전 원장도 조만간 소환조사할 방침이다.

일각에선 이번 국정원 물갈이 양상이 앞선 ‘경찰 길들이기’와 겹쳐 보인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권이 인사권을 쥐고 수뇌부를 압박하는 구도를 짠다는 점에서 방식이 비슷하다는 주장이다. 

윤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줄곧 “경찰을 휘어잡으려 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지난 5월12일 임명 직후 행안부 장관 산하에 ‘경찰제도 개선 자문 위원회’를 꾸리라고 지시했다. 즉각 꾸려진 자문위는 바로 다음날부터 활동을 시작했다. 이들은 한 달 동안 총 4차례 회의한 끝에 경찰국 신설 방안을 발표했다.

공을 넘겨받은 정부는 발표 후 약 열흘 만에 국무회의에서 경찰국을 신설하는 시행령을 의결했다. 경찰국은 경찰 고위 간부 인사권을 쥔 채로 지난 8월2일 출범했다. 아울러 이 장관은 지난 6월 당시 경찰청장 후보군으로 꼽히던 치안정감 승진·내정자 6명과 일대일 면담을 가진 뒤 “필요하다면 경찰청장 후보 면접을 보겠다”고 발언해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윤석열 사단
야권 사냥꾼

당시 경찰 내부에서는 “처음에는 경찰 길들이기 정도로 생각했는데 이 정도면 길들이기가 아니라 통제한다고 선포한 것 아니냐”는 강도 높은 비판이 나왔다.

정치권에선 10·29 이태원 참사 이후 “경찰의 정권 충성 경쟁이 피해를 키웠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이들은 참사 당일 경찰 수뇌부가 대통령 퇴진 시위 통제와 대통령 관련 시설 경호에 과도한 인력을 배치한 이유가 인사권을 쥔 정권에 잘 보이려는 속셈에 있었다고 의심한다. 

다만 경찰국은 10·29 참사 이후 존재 명분에 큰 타격을 입었다. ‘정부 책임론’을 논할 때 인사권과 충성 경쟁 간의 연결고리가 지속적으로 언급되면서다. 비록 철회되기는 했지만, 한때 내년 예산이 전액 삭감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하지만 정부가 경찰에 가하는 영향력이 줄어들 것이라 단정하기는 어렵다. 우여곡절을 겪긴 했어도, 경찰국과 인사권은 아직도 정부 손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반면 안팎으로 곤경에 처해있는 경찰은 당분간 별다른 대응을 보이기 어려울 전망이다.

경찰은 경찰국 설치 논란이 불거진 이후로 잇달아 부침을 겪고 있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경찰 안팎의 비판 세례로 리더십에 큰 타격을 입었다. 그는 논란 당시 경찰국 설치를 사실상 방관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참사 발생 당시에는 미흡한 대처가, 이후 진상조사 국면에서는 책임을 현장 일선으로 돌리는 듯한 행보가 도마에 올랐다.

아울러 최근에는 몇 달간 억눌려 있던 경찰국 설치 반대 여론이 다시금 고개를 들었다. 최근 윤 청장이 경찰청 중앙징계위원회에 류삼영 총경을 중징계해달라고 요청한 사실이 드러나면서다. 류 총경은 울산중부경찰서장으로 재직 중이던 지난 7월 행안부 경찰국 설립에 반발해 전국 경찰서장 회의를 주최한 인물이다. 


감·검
원투펀치

부산경찰청 16개 경찰관서 직장협의회 회장단(이하 직장협)은 지난 6일 ‘류삼영 총경 중징계 요구에 대한 입장문’에서 “경찰국 설치가 정당한 것인지 의견을 수렴하기 위한 세미나 형식의 회의를 개최한 것이 복무규정 위반이라고 징계하는 것을 납득할 수 없다”고 밝혔다. 

또 직장협은 “경찰 조직 내 현안이 있을 경우 경찰관들이 공식적으로 의견을 나눌 수 있도록 총경회의를 보장하라”고 촉구했다. 이외에도 현직 경찰 간부들이 잇달아 수사선상에 오르내리는 점도 경찰 내부 분위기를 어수선하게 만들고 있다.

반면 일찌감치 전열을 재정비한 검찰은 어느덧 사정국면을 주도하고 나섰다. 

윤정부는 지난 5월 한동훈 법무부 장관 취임 하루 만에 단행한 검찰 고위 간부 인사와 한 달 뒤 열린 첫 정기인사에서 ‘검찰 빅4’로 불리는 요직에 이른바 ‘윤석열 사단’을 전면 배치했다. 

당시 임명된 송경호 서울중앙지검장·신자용 법무부 감찰국장·김유철 대검 공공수사부장·신봉수 대검 반부패강력부장 등은 모두 윤석열 라인의 ‘코드인사’로 분류된다.


검찰 안팎의 비판 여론을 의식한 듯, 전반적인 인사는 탕평책처럼 진행됐다. 하지만 전 정권 관련 수사가 유력한 일선 검찰청에는 어김없이 특수통 출신 검사장들이 자리했다. 산업부 블랙리스트 의혹을 수사하고 있는 서울동부지검, 월성 원전 1호기 경제성 평가 조작 사건을 수사하는 대전지검, 국회를 관할하는 서울남부지검 등은 모두 윤석열 사단의 지휘를 받고 있다. 

이들에게 공을 넘긴 건 또 다른 사정기관인 감사원이다. 감사원은 윤정부 출범 이후 줄곧 정치 중립성 위반 논란에 휩싸였다. 유병호 사무총장을 중심으로 표적 감사 시비가 끊이질 않았다. 일각에서는 윤정부가 검찰과 감사원을 ‘원투펀치’로 쓰고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감사원이 감사를 통해 위법 사항을 밝히고 고발하면 검찰이 사건을 이어받아 수사하는 식이다.

검, 검수완박 버텨내고 야권 정조준
전 정권·이재명 넘어 전방위 타격

아울러 검찰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에 관한 수사에서도 성과를 거두고 있다. 대장동 의혹의 ‘키맨’으로 꼽히는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과 남욱 변호사가 입을 열면서 의혹 규명이 급물살을 탔다. 검찰은 여세를 몰아 민주당 정진상 대표실 정무조정실장과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을 구속했다. 

이외에도 검찰은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민주당 이정근 전 사무부총장·같은 당 노웅래 의원 등 야권을 겨냥한 수사에 열을 올리고 있다. 

검찰 출신의 한 법조계 인사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연결점이 많다고 해서 의도성을 예단할 수는 없다”면서도 “그래도 그 여부를 떠나 검찰의 전방위적 야권 수사가 둘 모두에게 득이 되지 않겠나. 검찰은 조직 역량을 다시금 입증하고, 정부는 야권 비위 사실이 밝혀지면서 반사이익을 누릴 것”이라고 짚었다.

검찰은 특수본 수사 및 국정조사 결과에 따라 존재감이 더욱 커질 가능성도 남아있다. 진상규명이 ‘용두사미’에 그치면 검찰의 진상규명 경험·역량을 다시 활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1404호 ‘열리는 이태원 국조’ 몰래 웃는 검찰 속내). 향후 총선에서 여권이 승리한다면 정권 내 수사권 복구까지 바라볼 수 있다. 

정부가 경찰국 신설을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이 알려진 직후부터, 사회 각계에서는 치안 공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 바 있다. 정권의 시선이 국정원을 향하면서 비슷한 우려가 반복되고 있다.

박 전 원장은 지난 6일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나와 “정권교체 때마다 정치보복이 일어나선 안 된다”며 “이렇게 일괄적으로 비리도 없는 27명의 1급 부서장이 4~5개월간 대리인 체제로 가면 이 나라의 안보 공백이 온다”고 말했다.

치안·안보
공백 우려

그러면서 대기발령을 받은 인사들에 관해 “박근혜정부에서 잘나갔던 인사들이 국내 정보 수집·분석이 폐지돼 정치 관련 일을 하지 않으니까 굉장히 한직에 가 있었다”며 “나중에 알고 유능하기 때문에 다 좋은 보직을 줬다. 제가 그 사람들을 발탁하지 않았으면 지금 더 좋은 보직으로 와서 잘 일할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jeongun15@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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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장 올인’ 민주당 그래도 불안한 이유

‘서울시장 올인’ 민주당 그래도 불안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내년 6월 치러질 지방선거의 최대 격전지는 단연 서울시다. 서울시에 깃발을 꽂는 쪽이 전체 선거의 승리라 봐도 무관하다는 해석도 나온다. 진보 진영에서는 당원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오세훈 대항마’를 자처하는 후보군이 속속 등장했지만, 서울 시민의 마음까지 얻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전국 지역위원장 워크숍에서 제9회 지방선거(이하 지선) 승리라는 목표를 세웠다. 이달 중으로 지선 공천 룰을 확정해 빠르게 선거에 임하겠다는 방침이다. 큰 틀로는 ▲당원 민주주의 실현 ▲완전한 민주적 경선 ▲깨끗하고 유능한 후보 선출 ▲여성·청년·장애인 기회 확대 등 4대 방향이 제시됐다. 출사표 만지작 민주당은 이번 지선의 성격을 ‘완전한 내란 종식’으로 규정했다. 민주당 전국 지역위원장은 워크숍에서 ‘이재명정부 성공과 지선 승리를 위한 더불어민주당 전국지역위원장 결의문’을 통해 “국민의 준엄한 명령을 받들어 민생회복·내란청산·개혁완수라는 역사적 사명을 반드시 이루어 낼 것을 결의한다”고 밝혔다. 내년 지선서 압도적 승리를 이끌어냄으로서 ‘무능 부패한 국민의힘 지방권력’을 심판하고 ‘진짜 자치분권 균형성장’의 시대를 만들겠다는 방침이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 또한 “이정부 성공을 위해 당이 무엇을 할 것인지에 모든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다가오는 지선은 민주당의 책임과 기회의 시험대다. 당의 힘을 모아 이정부의 성공과 지선 승리라는 두 목표를 함께 이뤄낼 것”이라고 밝혔다. 주목도가 높은 서울시장 선거 최종 후보가 되는 것만으로도 존재감을 키울 수 있다. 차기 서울시장 임기는 2030년으로 21대 대통령선거 시기와 맞아떨어진다. 그동안 서울시장은 대선주자로 가는 지름길로 여겨졌던 만큼 정치인으로서 큰 꿈을 꾸는 이들에게는 ‘일생일대의 기회’다. 민주당은 서울시장 선거 본선행 티켓을 놓고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원내 의원들의 공식 출마 선언 이후에도 자칭타칭 물망에 오른 진보 인사들이 시기를 재고 있어 다양한 경선 구도가 그려질 것으로 관측된다. 박주민 의원은 민주당 내에서도 가장 먼저 공식 출마 의사를 밝힌 인물이다. 그는 “서울이 ‘맏이’ 역할을 하며 지방 도시들과 함께 성장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며 일찌감치 선거판을 예열했다. 뒤이어 민주당 서영교 최고위원이 출사표를 던졌다. 조희대 대법원장 저격수를 자처하며 존재감을 키운 그가 이번에는 “서민을 위해 일 잘하는 시장이 필요하다”며 오세운 서울시장 대항마로 나섰다. 서 최고위원은 “(오 시장은) 토지거래허가구역을 무리하게 해제하면서 부동산 폭등을 자초했다”며 “이태원 참사의 충격이 채 가시지도 않은 시점에서 큰 책임이 있는 용산구청장에게 서울시 주최 지역축제 안전관리 대상을 주는 등 시민의 요구, 시대의 요구를 전혀 읽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전현희 최고위원은 “국정감사 이후 결단을 내리겠다”며 가능성을 열어뒀다. 그는 지난달 오마이TV ‘박정호의 핫스팟’과의 인터뷰에서 “정치적 중요성이 매우 크기 때문에 반드시 승리할 후보가 서울시를 탈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그런 자리에 과연 제가 적합한 후보인지 고민을 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큰 판 향하는 의원들 오세훈만 꺾으면 끝? 지난 조기 대선 당시 ‘민주당 골목골목선대위 서울위원장’을 맡아 서울시 정책 로드맵을 짜는 데 참여한 만큼 출마 명분은 충분하다는 평이 나온다. 마찬가지로 원내 인사인 박홍근 의원과 김영배 의원도 몸풀기에 나섰다. 특히 박 의원은 자신의 거취와 관련해선 지난해 8월 당시 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과 사전 논의가 있었던 점을 강조만 만큼 오랜 고심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 원내대표를 지낸 홍익표 전 의원도 “서울시장 선거 출마를 생각하고 준비 중”이라며 도전을 시사했다. 홍 전 의원은 가장 민감한 서울 부동산 문제를 겨냥하는 등 오 시장의 강남권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를 집값 상승의 원인으로 꼽으며 저격에 나섰다. 박용진 전 의원의 출마 가능성도 점쳐진다. 박 전 의원은 “아직 정해진 건 없다”면서도 연일 오 시장을 때리며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최근에는 “민주당의 정치가 ‘영포티(젊어 보이려 애쓰는 40대)’ 정치로 전락하지 않도록 몸부림쳐야 한다”며 청년세대와의 통합을 강조하기도 했다. 원외에서는 정원오 성동구청장의 이름이 눈에 띈다. ‘K-브랜드지수’에서 서울시 지자체장 부문 1위 타이틀을 따낸 그는 활발한 SNS 활동으로 두터운 지지층을 보유한 인물이다. “나 서울 시민인데, 구청장님 좀 같이 씁시다” 등 밈(인터넷 유행 콘텐츠)이 온라인에 퍼지면서 팬덤을 등에 업고 민주당 원내 인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지 이목이 쏠린다. 민주당 후보군은 일동 ‘오세훈 때리기’에 집중하고 있다. 오 시장의 야심작인 한강버스가 연일 구설수에 오른 데 이어 최근 서울시가 최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서울 종묘 맞은편에 높이 145m 건물이 들어설 수 있도록 재정비촉진계획을 변경한 것을 두고 맹공에 나선 것이다. 지난 11일 민주당 문화예술특별위원회는 기자회견을 통해 종묘 재개발 논의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당내 서울시장 후보군인 박주민 의원과 서영교 최고위원을 비롯한 전현희·김영배·박홍근 의원 등이 대거 참석했다. 특히 박홍근 의원은 “차기 시장, 그리고 대권 놀음을 위해 종묘를 제물로 바치겠다는 것이냐”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서울 종묘가 서울시장 선거의 새로운 전장이 된 셈이다. 이리저리 혼돈의 표심 민주당에서는 윤석열정부 조기 퇴진으로 치러진 조기 대선 승리의 후광효과가 지선까지 이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번 지선 기조를 내란 청산으로 내세운 것 역시 ‘내란 VS 헌법 수호’ 프레임이 유효하다고 본 것이다. 다시 꺼내든 내란 종식 키워드가 내년 지선에서도 먹힐지는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지선 압승이라는 낙관론에 젖어 서울시 민심을 제대로 훑지 못한다면 ‘이정부 심판론’으로 되치기당할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지점이다. 민주당 출신의 한 정치권 관계자는 “서울시 선거는 ‘오세훈만 꺾으면 당선’ 같은 일차 방정식이 아니다. 오 시장이 명태균 게이트, 한강버스 등 각종 리스크에 발목 잡혀 약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서울시민이 내란 종식을 외치는 후보에게 표를 던지겠냐는 근본적인 질문에서 다시 출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구 특성만큼 변수도 많은 서울시 자체가 첫 번째 허들이다. 서울은 마포·용산·영등포·광진·동작·성동·강동·중구 등 13개 선거구를 일컫는 한강벨트를 따라 보수층이 포진해 있어 보수 텃밭으로 여겨지지만, 지난해 치러진 총선에서 민주당이 서울 48석 중 37석을 얻어 과반이 넘는 지역에 파란 깃발을 수놓았다. 그럼에도 조기 대선에서 당시 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서울시에서 각각 47.1%, 41.6%를 얻어 두 후보 간의 격차는 5.5%p에 불과했다. 여기에 범보수로 여겨지는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가 얻은 9.9%를 더하면 보수 진영이 진보 진영을 앞서게 된다. 비상계엄이라는 특수 상황을 경험했지만 40%에 달하는 서울 시민이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두 번째는 한강벨트를 따라 빼곡히 자리 잡은 부동산이다. 정부의 10·15 부동산 정책을 통해 서울시 민심을 움직이는 건 진영 간의 논리 싸움이 아닌 정책, 그중에서도 집값이라는 게 명확해졌다. 서울 전역을 토지거래허가구역과 투기과열지구·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하는 이재명표 부동산 대책이 발표된 지 약 보름 뒤 민주당 지지율이 1주일 새 10%포인트 하락하며 국민의힘에 오차범위 내에서 역전됐다. 지지층에 휩쓸릴라 한국갤럽이 지난달 28~30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민주당의 서울 지지율은 31%로 전주 대비 10%p 떨어졌다. 반면 국민의힘은 12%p 오른 32%로 집계됐다. 서울을 대상으로 고강도 대책이 발표되자 서울 민심에 본격적으로 영향을 끼쳤다는 해석이 나왔다. 이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한 전체 긍정 평가는 전주 대비 1%포인트 상승해 57%를 기록했지만, 민주당과 마찬가지로 서울 지역에서는 8%p 하락한 47%로 나타났다. 해당 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로 응답률은 12.6%다.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와 한국갤럽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결국 이번 서울시장 선거는 진영 간의 대립구도가 아닌 인물과 정책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는 의견에 초점이 맞춰지지만, 진보 진영 후보들은 본선 진출을 위해 당원의 표심을 얻는 일을 우선해야 한다는 딜레마에 빠졌다. 지선을 앞두고 민주당 지도부가 권리당원 권한을 대폭 강화하겠다고 밝힌 만큼 국민의힘과 잘 싸우는 ‘전투적인 후보’가 경선에서 압도적으로 유리하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차기 서울시장 후보 적합도를 묻는 여론조사에서 진보·여권 후보 가운데 정 구청장이 1위를 차지했다. 만일 정 구청장이 출마 의지를 굳히더라도 박주민·서영교 의원 등 쟁쟁한 원내 인사를 제치고 당원의 선택을 받을지 확신할 수 없다. 인지도면은 물론 민주당 지선 기조가 내란 청산으로 자리 잡은 한 12·3 비상계엄을 해제한 인물에게 더 많은 정치적 유산과 서사가 쥐어지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박 전 의원은 출마 가능성을 시사한 동시에 민주당 강성 지지층에게 집중적으로 질타 받았다. 2023년 8월 당시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이던 시절 체포동의안을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지던 중 불체포특권 포기 성명에 이름을 올린 31명의 의원 중 한 명인 만큼 경선 통과가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반면 민주당 지지층으로부터 꾸준히 이름을 알려온 경우 경선 통과가 수월하지만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 ‘개딸(개혁의 딸들)이 밀어준 강경파 후보’라는 꼬리표가 붙는다면 정책이나 행정가로서의 자질은 묻히고 이에 거부감을 느낀 중도층의 표가 분산될 것이란 점에서다. 당원 마음 잡으랴, 중도층 안으랴 김민석·강훈식 ‘투톱’ 차출설도 경선과 본선을 놓고 민주당의 딜레마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 대통령의 신임을 받는 ‘김민석·강훈식 차출설’이 돌면서 서울시장 선거판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인지도가 높고 행정가 면모가 돋보이는 김민석 국무총리와 강훈식 대통령실비서실장을 서울시장 후보로 내보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국정 투톱이 또다시 정치의 한가운데에 들어섰다. 앞서 김 총리는 여러 차례에 걸쳐 서울시장 출마 가능성에 선을 그어왔지만 종묘 재개발 논쟁에 뛰어들면서 다시 불을 댕겼다. 지난 10일 김 총리가 서울 종묘 일대를 찾아 “무리하게 한강버스를 밀어붙이다 시민의 부담을 초래한 서울시로서는 더욱 신중하게 국민적 우려를 경청해야 한다”고 우려를 표했는데, 이를 두고 오 시장이 “국민 감정을 자극하려 하는데 이는 선동”이라며 지선을 겨냥한 발언이라고 의심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한 차례 서울시장에 도전했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이름도 다시 거론된다. 김 총리가 서울시장 대신 당 대표로 나서고, 직을 내려놓은 정 대표가 서울시장 도전 후 대권 코스를 밟는 시나리오다. 3대 개혁을 두고 당정 불협화음이라는 의심의 눈초리가 따라붙는 만큼 교통정리를 통해 당정 서로에게 윈윈(win-win)하는 방법으로 꼽힌다. 우선 민주당 관계자들은 앞선 두 사람의 출마 가능성이 극히 낮다고 보고 있다. 가장 중요한 시기에 총리나 대통령비서실장 자리에 생긴 공백은 국정 운영에 차질이 빚을뿐더러 정부 출범 1년도 되지 않은 시기에 지선 후보로 차출할 시 모양새가 좋지 않다는 게 공통된 설명이다. 정 대표의 서울시장 도전 여부 역시 “이제 겨우 (취임) 100일이 지났다”며 일축했다. 이처럼 ‘스타 정치인’ 후보군이 물망에 오르자 당 일각에서도 지역 일꾼을 뽑는 지선의 의미가 퇴색될까 우려하는 모양새다. 경선 당락을 결정할 당원의 표심을 사로잡기 위해 지나친 선명성 경쟁이 이어질 경우 중도층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거라는 지적도 나온다. 수많은 변수들 여권 관계자는 “지선 결과를 미리 예단하기엔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 차분하게 기다리면서 후보들의 공약을 분석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이어 “앞으로 종묘 재개발 같은 이슈가 전방으로 나올 텐데 그때마다 (민주당도) 네거티브로 맞받아치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우리 당원도 내란 종식과 민생회복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사람을 최종 후보로 뽑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터줏대감 눈치 보는 국힘? 더불어민주당과 마찬가지로 국민의힘 역시 서울시장을 이번 지방선거의 최대 격전지로 보고 있다. 서울시 사수를 위해 후보군을 물색하고 있지만, 오세훈 시장의 임기가 남은 만큼 누구 하나 선뜻 도전장을 내밀지 못하는 분위기다. 이에 오 시장의 재도전이 유일한 방법으로 여겨지는 모양새다. 오 시장은 “시민들이 어떤 평가를 해줄지 지켜보며 거취를 분명히 하겠다”며 3선 도전 가능성을 내비쳤다. 명태균 게이트, 한강버스, 종묘 재개발 등 리스크를 안고 있지만 현역 프리미엄에 기댄다면 시도해 볼 가치가 충분하다고 본 셈이다. 한때 경기도지사 후보로 거론됐던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이 이번에는 서울시장 물망에 올랐다. 서울시장 출사표를 던진 민주당 박주민 의원이 “오 시장이 아닌 나 의원을 상대할 가능성이 있다”는 취지로 말하면서 이목이 쏠렸지만 정작 나 의원은 서울시장 도전 가능성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