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굴 위한’ 사면? 김경수 사면론 해부

‘1+1’ MB용 패키지 쓰나

[일요시사 정치팀] 정인균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정치인 특별사면 카드를 만지작 거리고 있다. 광복절 특사(지난 8월15일) 당시 불거졌던 정치인 사면론이 이번 크리스마스와 신년을 맞아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것이다. 정계에선 광복절 특사 때와는 달리 이번엔 비로소 사면이 이뤄질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특히 주목하는 사람은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와 이명박 전 대통령, 두 정치인이다. 양쪽 다 각 진영의 ‘아픈 손가락’인 만큼 사면에 관한 관심은 어느 때보다 뜨거운 형국이다.

사실 김경수 전 도지사, 이명박 전 대통령은 윤석열 대통령에게 사면할 명분이 떨어지는 사람들이다. 김 전 도지사는 윤 대통령의 정적이라 할 수 있는 문재인 전 대통령의 복심 중 복심으로 알려진 인물이고, 이 전 대통령은 윤 대통령이 직접 수사해 유죄 확정을 받아낸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을 윤 대통령이 직접 사면한다는 것은 여러 모로 모양새가 맞지 않다.

명분 없는
두 사람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의 사면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는 여러 정치적 계산이 기저에 깔려있기 때문이다. 역대 대통령들은 정치인 사면 카드를 본인의 정치적 이익이 극대화될 때마다 사용해왔다. 정치인이나 경제인을 대통령 직권으로 사면해줌으로써 본인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해온 것이다.

고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의 ‘하나회 사면’이 좋은 예다. 이들은 각각 대통령, 당선인 신분이던 시절에 고 전두환 씨와 고 노태우 전 대통령에 대한 사면 논의를 시작했다.

하나회 척결을 대통령 과제로 내세운 김 전 대통령으로선 여러 모로 명분 없는 사면이었으나 당시 김 당선인과의 수차례 면담 뒤 마음을 틀었다.


두 사람에 대한 사면은 형이 확정되기 전부터 나오던 오래된 의제였다. 두 전직 대통령은 국가반란수괴 및 내란죄 등으로 유죄판결을 받으며 1심에서 사형 등 중형을 선고받았다. 여의도에선 이때 처음 ‘대법원 확정 판결 뒤 사면설’이 흘러나왔고 당시 정계 분위기는 ‘일단 사법부가 두 사람에게 확정 판결을 내린 뒤 대통령이 사면할 것’이라는 예측이 팽배했다.

일단 명분은 챙기되 정치적 실리는 저버리지 않을 것이란 분석 때문이었다.

당시 두 전직 대통령은 부당한 방법으로 국가권력을 탈취했다는 사실 때문에 여러 비판 여론이 항상 뒤따랐지만, 그에 못지않는 부동의 지지층도 확보하고 있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영향으로 군부독재에 큰 저항감 없는 6070세대와 경상도 지역의 보수 지지층들은 두 전직 대통령에게 호의적인 마음을 갖고 있었다.

당시 이들 중 상당수는 ‘하나회 척결’을 부당한 정치탄압으로 받아들였다. 하나회 척결이 지역감정으로 번질 조짐이 보일 때쯤, 두 사람이 의기투합한 것이다.

특히나 새로운 대통령이 될 김 당선인 입장에서는 국민 통합이 최대 숙제였다. 당시 외환위기를 겪고 있던 터라 국정동력을 얻기 위해선 통합된 국민의 힘이 필요했고, 근소한 차이로 이회창 후보를 꺾은 김 당선인은 국정 시작 전에 힘을 다잡아야했다.

실제로 두 대통령에 대한 사면을 적극적으로 주장한 사람도 김 당선인 본인이었다. 김 당선인은 김 전 대통령과의 청와대 회동에서 두 전직 대통령을 김 전 대통령이 직접 사면해줄 것을 요청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형식은 ‘김 전 대통령 주도, 김 당선인의 동의’라는 모양새를 갖췄지만, 사실상 주도는 김 당선인이 했던 것이다.


결국 사면을 이끌어낸 김 당선인은 국민들에게 찬사를 받았다. 일부 호남지역 사람은 처음에 크게 실망했으나 이내 김 당선인을 믿어주었고, 영남지역민들도 그가 내민 화해의 제스처를 외면하지 않았다. 

특사 카드 만지작…세 가지 숨은 의도?
야권 분열, MB 구하기 명분, 여론 전환

이런 분위기에 힘입어 그는 대통령에 취임한 뒤 국가를 뒤흔든 외환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할 수 있었고, 국정동력을 최대한으로 끌어내 남북정상회담을 최초로 성사시켰다. 김 당선인은 본인을 죽이려 했던 정적을 용서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켰다는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 평화상까지 수상했다.

정적을 사면해 입지를 공고히 한 사례는 이명박정부와 문재인정부에서도 있었다. 이 전 대통령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형인 노건평씨를 사면하면서 노 전 대통령 서거에 대한 부담감을 덜어낼 수 있었다.

노씨는 2006년경 농협중앙회에 세종증권을 매각하는 과정에서 약 30억원을 받은 뇌물죄와 탈세, 횡령 등의 혐의로 징역 2년6개월형을 확정받았다.

당시 검찰 측 수사 자료에 따르면, 노씨는 노 전 대통령의 고교 동기인 정화삼씨 측과 공모해 세종캐피탈 홍기옥 사장으로부터 농협 정대근 전 농협회장을 소개해달라는 부탁의 대가로 29억6300만원을 받았고, 증여세와 부가가치세 총 5억2000만원을 탈세했다.

또 정원토건과 관련해 2004년 3월부터 2005년 11월까지 회사자금 15억원을 주식 매수 등에 사용하는 횡령 범죄까지 저질렀다.

이 모든 과정이 드러나고, 재판을 받은 기간은 이 전 대통령 재임 기간과 겹친다. 또 이 전 대통령 재임 기간에는 노 전 대통령이 검찰의 전방위적인 수사를 이겨내지 못하고 사저 뒷산에 있는 부엉이바위에서 투신해 생을 달리하기도 했다.

광우병 사태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으로 ‘반쪽짜리’ 대통령으로 불리던 이 전 대통령은 해당 사건으로 지지율이 곤두박질치게 됐다. 유독 심한 레임덕을 겪던 이 전 대통령은 퇴임 전 ‘국민 통합’이라는 시대적 요구를 사면으로 풀려 노력했다.

야권에서는 이미 노씨에 대한 대통령 사면을 수차례 건의해왔고, 임기 후반 들어 법무부가 나서서 사면을 주도했다. 결국 이 전 대통령은 노씨를 전격 사면하면서 유종의 미를 거두려 했다.

문 전 대통령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문 전 대통령은 임기 중 최초로 두 명의 대통령이 구속된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겼다.

친문
구심점


‘적폐 청산’이라는 명목 아래 대대적인 전 정권 수사를 벌인 검찰은 우선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유죄판결을 이끌어낸 후, 이듬해엔 이 전 대통령의 혐의도 입증했다.

전직 대통령들이 구속 수감될 때마다 한쪽 진영은 박수를 보냈으나 다른 한쪽 진영은 큰 앙심을 품게 됐다. 그리고 그 앙심은 문 전 대통령에게로 향했다. 두 전직 대통령의 지지층은 부당한 수사에 의한 정치탄압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문 전 대통령 재임 시절 매주 광화문에서는 태극기 집회가 벌어졌고, 집회에서는 항상 ‘박근혜, 이명박 석방’이라는 피켓이 등장했다.

결국 문 전 대통령은 퇴임 직전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특별사면을 단행했다. 이때도 명분은 국민 대통합이었다. 문 전 대통령은 5번째로 시행한 대통령 특별사면에서 총 3092명을 사면시켰고, 그중에 박 전 대통령과 한명숙 전 총리를 포함시켰다.

당시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은 사면·복권의 이유로 ‘박 전 대통령의 건강상태’와 ‘국민 통합’을 들었다.

문 전 대통령은 “우리 앞에 닥친 숱한 난제를 생각하면 무엇보다 국민 통합과 겸허한 포용이 절실하다”며 “박 전 대통령의 경우 5년 가까이 복역한 탓에 건강상태가 많이 나빠진 점도 고려했다”고 밝혔다.


이번 김 전 도지사의 사면론이 불거지는 이유도 이때의 이유와 많이 닮아있다. 대대적인 전 정권 수사를 시작한 윤정부 검찰은 현재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에게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는 상태다. 그의 양팔로 불리던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과 정진상 당 대표실 정무실장은 구속 상태고, 남욱 변호사와 유동규 전 성남개발도시공사 기획본부장은 연일 핵폭탄급 폭로를 이어가고 있다.

검찰의 수사선상에는 문 전 대통령 측도 포함된다. 서해 공무원 피격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은 지난 4일 서훈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구속시켰다. 서 전 실장과 더불어 박지원 전 국정원장도 수사선상에 포함돼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정계는 결국 문 전 대통령에게 화살이 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야권 관계자는 여러 모로 어수선한 상황에서 김 전 도지사에 대한 사면 카드가 ‘신의 한 수’가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는 <일요시사>와 만난 자리에서 “대통령 사면 카드는 항상 정치적으로 이용돼왔다. 이번에도 같은 맥락”이라며 “현재 여권은 전 정권 수사에 대한 반발심에 큰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면 카드는 한시름 덜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면 전환
신의 한 수?

야권에서 김 전 도지사의 사면 가능성을 높게 점치는 이유는 그를 사면하면서 윤 대통령에게 세 가지 이득이 생길 것으로 계산하기 때문이다. 야권에서 바라보고 있는 윤 대통령의 정치적 이익은 야권 분열, 여론 전환, MB 사면 명분 등 세 가지다.

김 전 도지사는 일명 ‘드루킹’ 김동원씨 일당과 공모해 2016년 11월부터 민주당 대선후보였던 문 전 대통령의 당선을 위해 자동화 프로그램인 ‘킹크랩’으로 여론을 조작한 혐의(컴퓨터 등 장애 업무방해)를 받았다.

검찰은 김 전 도지사가 김씨에게 댓글 조작을 의뢰하고 일본 총영사직을 주기로 한 혐의(공직선거법)도 있다고 의심했고, 김 전 도지사는 1심과 2심에서 댓글 조작 혐의가 인정돼 유죄판결을 받았다. 다만 공직선거법은 2심에서 무죄가 선고되며 해당 혐의는 벗게 됐다.

김 전 도지사는 징역형이 확정돼 옥살이를 이어오고 있으며 형기 만료 이후에도 약 5년간 피선거권이 제한돼 적잖은 정치적 타격을 받게 됐다. 

이번 사면의 관전 포인트는 그의 복권 여부다. 윤 대통령이 그를 사면함으로 야권 분열까지 노린다면 복권까지 이뤄져야 한다. 복권되지 않을 경우 김 전 도지사는 2028년까지 선거에 나갈 수 없다.

반면 복권 시 차기 총선에서 영향력을 보다 크게 발휘할 명분이 생긴다. 친문(친 문재인) 진영이 2024년에 있을 제22대 총선을 앞두고 김 전 도지사가 구심점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표가 만일 사법 리스크로 낙마하면 민주당은 새로운 리더가 필요해진다.

친문 의원들은 김 전 도지사가 돌아와 제 힘을 발휘해주길 기대하고 있다. 그가 부당하게 수감됐다고 생각한 몇몇 민주당 지지자를 중심으로 친문이 결집하면 현재 집권세력인 친명(친 이재명)계를 몰아낼 수 있다는 계산 아래서다. 

이 대표가 사법 리스크로 정치 1선에서 물러날 가능성이 커져 있는 가운데, 민주당은 새로운 리더를 찾아야만 하는 실정이다.

그러나 대통령실 측은 사면은 하되, 복권까지는 고려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김 전 도지사에 대한 사면은 거의 기정사실화됐다. 다만 복권은 안 할 계획으로 전해 들었다”고 말했다.

항상 비판 여론 일었는데…
‘국민 통합’ 시대적 요구?

이 관계자는 사면은 (거의)하자는 분위기지만 정치적 복권까지는 아직 정해진 바가 없다고 덧붙였다. 김 전 도지사를 사면함으로써 야권의 분열을 노릴 것이라는 여의도 전문가들의 예측을 대통령실이 전면 부정한 것이다. 

정계에 오래 몸담고 있던 여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 만난 자리에서 “어차피 이낙연 전 대표가 내년에 돌아올 것인데 김경수 전 도지사를 왜 사면해줘야 하냐는 내부 의견을 들었다”며 “이 전 대표가 이 대표에 대한 의혹 제기를 가장 많이한 인물인 만큼 우리는 사태를 관망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즉 대통령실은 명분만 챙기되 김 전 도지사에 대한 정치적 명분은 주지 않을 것이라 계획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미국에 가 있는 이 전 대표가 돌아온다면 김 전 도지사보다 훨씬 더 큰 역할을 할 것이란 게 대통령실의 의중이다.

이 전 대표는 지난 지방선거 후, 1년간 미국 워싱턴주에 머물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연구원 신분으로 미국 현지에서 교민들과 활발히 교류 중이며 워싱턴대학교에서 공부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시간상 내년 6월에 복귀가 예정된 그는 2024 22대 총선에서 영향력을 발휘할 채비를 갖추고 있다. <일요시사>의 취재를 종합하면 이 전 대표는 현지 교민들과 활발한 강연활동을 벌이고 있고,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지지층들과도 자주 화상 연결을 통해 교류하고 있다. 여야가 이 전 대표의 귀국 시기를 점치고 있는 이유다.

윤 대통령은 이 전 대통령의 사면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 이 전 대통령은 특정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뇌물) 혐의로 징역 17년, 벌금 130억원이라는 중형을 확정 판결받은 바 있다. 

그는 현재 건강상의 사유로 형집행이 정지된 상태지만 혐의는 아직 벗지 못했다. 정계에선 이번 정치인 사면 배경은 사실상 이 전 대통령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현재 국민의힘 주류 세력이라고 알려진 이른바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 측에서 대통령실 관계자들에게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사면을 끊임없이 주장하고 있다”며 “아시다피시 윤핵관 의원 대부분이 친이(친 이명박)계 출신”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친이계 출신의 윤핵관 의원들이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사면을 강력히 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김 전 도지사에 대한 사면 논의도 이 전 대통령 사면의 일환이며 여권 측에서는 정치적 노림수를 크게 두기보다는 이 전 대통령의 사면에 무게를 싣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치적 
노림수

여러 가지 정치적 상황에 의한 대통령 사면은 관례로 인식되고 있다. 윤 대통령은 현재 김 전 도지사와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사면이 본인에게 어떤 이익을 줄지 면밀히 살피고 있다. 사법부를 견제하기 위해 대통령에게 준 ‘사면권’이 정치싸움의 무기로 전락하고 있는 모양새다.


<ingyu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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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