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앞 파업 쓰나미 손 놓은 정부, 왜?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2.11.28 16:28:18
  • 호수 14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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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만 동동’ 멈춰버린 대한민국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지난 22일부터 다음달 2일까지 총 7개의 파업이 진행되고 있다. 파업을 진행하는 단체는 각기 다르지만, 이들의 공통점은 처우개선, 인력 충원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정부는 이들에게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법과 원칙에 따라 단호히 대응하겠다”며 강경 대응을 예고했다. 

파업은 노동자들이 자신의 요구사항을 실현시키기 위해 집단적으로 노동 제공을 거부하고 일을 중지하는 것을 말한다. 파업의 이유로 ▲고용 조건과 작업환경의 개선 ▲미해결된 고충 해결 ▲노동조합을 교섭 기구로 인식시키기 ▲기업 경영에 압력을 가하기 위한 목적 등이 있다.

전국적으로…
끝나지 않은

위와 같은 목적이 있더라도 모든 파업이 정당한 것은 아니다. 한국은 파업 정당성 인정 기준을 정해놨다. 정당한 파업의 기준으로 ▲단체교섭의 주체가 되며 ▲목적이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한 노사 간의 자치적 교섭을 목적으로 하고 ▲사용자가 근로자의 근로조건 개선에 관한 구체적인 요구에 대해 단체교섭을 거부했을 때 개시하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조합원의 찬성 결정을 따라야 하며 ▲파업 수단과 방법이 사용자의 재산권과 조화를 이뤄야 함은 물론 폭력의 행사에 해당되지 않아야 한다.

노동자들에게 파업은 최후의 수단이다. 노동자가 파업을 하게 되면 회사나 파업 대상과 척을 지기 때문이다. 특히 파업을 이끈 주동자는 잠재적 위험 인물로 퇴사 압박 또는 승진 시 차별을 받을 수 있다.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파업이 발생하기 전에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지만, 그렇지 못한 상황은 시시각각 발생한다.

지난 22일부터 다음 달 2일까지 서울에서만 7개의 파업이 진행되거나 예정돼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지난 22일 화물연대 총파업 등 잇단 노동계 투쟁과 관련해 “110만 조합원의 모든 역량을 동원해 우리 시대의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총력 투쟁할 것이다. 핵심 과제를 반드시 쟁취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노총은 이날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서 ‘총파업 총력 투쟁 선포 및 개혁 입법 쟁취 농성 돌입’을 위한 기자회견을 열고 이같이 밝혔다. 산하 조직의 총파업을 앞두고 지원사격에 나선 것이다. 

첫 번째로 파업은 지난 22일부터 시작됐다. 해당 파업에서 민주노총은 ‘노동 개악’ 저지와 이른바 ‘노란봉투법’ 입법 등을 주장했다. 민주노총의 대정부·국회 요구사항은 ▲건설 안전 특별법 제정을 통한 건설현장의 중대재해 근절 ▲화물 안전 운임제 일몰제 폐지 및 적용 업종 확대 ▲교통·의료·돌봄 민영화 중단 및 공공성 강화 ▲노조법 2, 3조 개정 ▲진짜 사장 책임법 ▲손해배상 폭탄 금지법 제정 등이 있다.

교섭 진행해도 입장 차 좁히지 못해
“단체 요구에도 계획 없다 말만 들어”

두 번째 파업은 이튿날(지난 23일), 공공운수노조가 ‘안전 운임제’ 연장을 촉구하면서 시작됐다. 이들은 지난 6월 총파업 당시 정부와 합의한 ‘안전 운임제’가 지속적으로 추진돼야 하며, 품목 확대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안전 운임제는 화물 노동자에게 최소한의 운송료를 보장하는 제도로 올해 말 종료를 앞두고 있다.

안전 운임제 관련은 화물연대본부(화물연대)도 지난 24일 0시부터 총파업을 돌입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화물연대 총파업은 오전 10시부터 11시 사이에 ▲강원 동해 ▲경남 마산 ▲광주 하남 ▲전남 광양항 ▲경북 구미 ▲경북 포항 ▲대전 ▲부산 ▲위수탁 ▲서경 의왕ICD ▲울산 ▲인천 ▲전북 군산 ▲제주 ▲충남 현대제철 ▲충북 단양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된다.

화물연대의 주장은 아래와 같다. 

지난 9월29일 안전 운임제 폐지와 품목 확대 법안의 논의가 국회에서 시작됐다. 안전 운임제는 화물자동차 운수 사업법이 개정되면서 2020년 시행됐는데, 올해 말 제도가 일몰된다. 


이에 화물연대는 “안전 운임제는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가 20년 동안 투쟁한 산물이고 동시에 화물노동자의 염원이다. 화물노동자의 안전뿐 아니라 국민의 안전을 보장한 안전 운임제의 일몰이 불과 1개월 남았는데, 정부는 이 법에서 빠져나갈 궁리만 하고 있다. 정부와 국회는 즉각 안전 운임 일몰제 폐지와 차종, 품목 확대를 결정할 때까지 화물연대 투쟁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화물연대 파업은 ▲철도 지하철 협의회 ▲철도노조 ▲공항항만운송 본부 ▲민주버스본부 ▲항공연대협의회 ▲택시지부 전국 물류센터 지부가 함께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날엔 전국철도노동조합의 준법투쟁도 있었다. 전국철도노조(철도노조)는 ‘철도 민영화·구조조정 저지, 올해 임단협 승리를 위한 철도노조 준법투쟁 선포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24일부터 준법투쟁을 벌였다.

움직이는
화물연대

철도노조는 “지난 수개월간 대화와 교섭을 통해 노동조합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했다. 그러나 정부와 철도공사 그 누구도 책임 있게 듣고 행동하지 않았다. 정부와 철도공사의 탈선을 멈추기 위해서 총파업에 돌입한다”고 강조했다.

철도노조는 지난 4월부터 임금·단체협약 갱신을 위한 교섭을 진행했지만 입장 차를 좁히지 못했다. 이에 철도노조는 지난달 26일 조합원 총투표를 시행해 재적 조합원 61.1%의 찬성률로 파업 돌입을 결정했다. 이들은 ▲임금 정액 인상 ▲사측이 추진하는 직무급제 도입 중단 ▲호봉제·연봉제 직원 간 임금 형평성 확보 ▲불공정한 승진제도 개선 등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 25일에는 전국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학비연대)가 처우개선 등을 요구하는 총파업을 진행했다. 학교 비정규직에는 급식조리원·돌봄 전담사가 포함돼있어 급식과 돌봄에 비상이 걸렸다. 

이에 서울교육청은 지난 23일, 11개 교육지원청과 대책회의를 열고 학교 교육활동 정상 운영에 대해 논의했다. 교육청은 유치원·초등학교 돌봄교실, 특수교육 분야의 학교 내 교직원을 최대한 활용해 파업으로 인한 교육 공백을 줄이겠다고 약속했다.

학비연대는 ▲학교 급식실 폐암·산재 종합 대책 마련 ▲지방 교육재정 감축 반대 ▲정규직과 차별 없는 임금체계 개편 등을 요구하고 있다. 임금 개편 관련은 지난 9월부터 교육당국과 6번의 실무교섭과 2번의 본교섭을 가졌으나 끝내 입장 차를 좁히지 못했다.

학비연대는 “시·도교육청은 임금교섭에서 근속수당을 동결하는 등 사실상 실질임금 삭감 교섭안을 제시했다. 복리후생 지급 기준 동일 적용 등 임금체계 개편 요구는 완전히 무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장기투쟁
불사할 것”

학교 급식실 노동자의 폐암 사망 사건과 관련해 학비연대는 교육당국이 안일하게 인식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환기시설·배치 기준 개선 등 종합 대책 마련을 위한 예산편성을 요구했지만, 교육부는 계획이 없다고 무시했다”고 전했다. 


이어 “파업 요구에 정부와 교육감이 화답하지 않는다면 재차 파업 등 장기투쟁도 불사할 것이며 사상 처음으로 신학기 총파업도 이어갈 수 있다”고 언급했다.

이에 대해 전종근 서울시 교육청 노사협력담당관은 “상당한 예산이 수반되는 사안으로 현재 노사 간 의견 차이가 있지만, 시‧도 교육감과 노동조합 간 집단 교섭을 통해 합리적인 해결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여기까지가 현재 진행 중인 파업으로, 예정된 파업은 2개나 더 있다. 서울교통공사 노동조합은 정부와 서울시가 인력 감축 계획을 철회하지 않으면 시민의 안전을 위해 오는 30일에 총파업에 돌입하겠다고 경고했다.

지난 18일 명순필 노조위원장은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총파업 예정일이 2주도 안 남은 상황에서 사태를 여기까지 끌고 온 서울시의 상황 인식이 안이하다”며 “오세훈 서울시장은 한쪽으로는 안전 인력의 임시변통 투입을 지시하고 한쪽에선 대규모 인력 감축과 외주화를 강요해 이중적인 태도를 보인다”고 비판했다.

민주노총 소속 서울교통공사 노조와 한국노총 소속 서울교통공사 통합노조로 구성된 연합 교섭단은 서울시와 서울교통공사가 2026년까지 1500여명을 감축하는 구조 조정안을 추진하고 있다며 이를 철회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국가경제에 피해, 글로벌 경쟁력도 위협”
“정부는 법을 빠져나갈 궁리만 하고 있다”


현재 예정된 마지막 파업은 다음달 2일에 있는 철도노조 파업이다. 철도노조는 지난 24일 준법투쟁을 거쳐 다음 달 2일 이를 받아 총파업을 이어간다. 

총력투쟁에 나서는 이유로 철도노조가 준법투쟁을 할 때와 마찬가지로 올해 임단협 갱신 교섭에서 철도공사가 보인 고집과 불통을 들었다.

철도노조는 “그동안 철도공사는 불공정한 인사 보수제도를 바로잡자는 요구를 거부하고 노사합의조차 정부의 지적을 핑계로 외면해왔다”며 “여기에 지난 5일 발생한 오봉역 참사도 투쟁에 불을 피웠다. 철도노조는 올해만 네 명의 조합원이 작업 중 순직했는데, 국토부는 ‘남 탓’으로 국면 전환만 시도한다. 철도공사는 예산과 권한을 핑계로 뒷짐 진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현정희 공공운수노조 위원장은 윤석열정부의 철학과 정책이 잘못됐다고 성토했다. 현 위원장은 “모두 살릴 수 있었지만 정부가 역할을 못해 살리지 못한 인재가 오봉역 참사다. 이제 노동자가 나서서 시민을 보호할 시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철도노조는 근무체계 개편에 필요한 1800여명의 인력증원을 요청했지만 국토부가 묵살했다. 오히려 지금은 한 술 더 떠서 철도 민영화를 추진 중이다. 부족한 인력 충원은커녕 오히려 1000여명 넘는 정원 감축을 추진 중인 기재부는 누구를 위한 정부기관이냐”고 따져 물었다.

여기까지가 다음달까지 예정된 파업 단체의 속사정과 일정이다. 이들은 모두 원청과 교섭을 하지 못하면서 처우 개선·인력 충원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과 장기간 파업을 했지만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해 정부는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처벌한다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요청 묵살
단호한 대응

지난 22일 한덕수 국무총리는 정부서울청사에서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등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었다. 한 국무총리는 “경제가 엄중한 상황에서 운송 거부 행위는 국가경제에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히고 글로벌 경쟁력마저 위협하는 것”이라며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법과 원칙에 따라 단호히 대응하겠다”고 경고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국민의 편에서 법과 원칙을 수호한다는 게 정부의 입장이다. 한편으로는 이 같은 단체행동이 이뤄지는 원인 파악도 병행할 것”이라고 전했다.


<alswn@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화물연대 파업, 경제단체 입장은?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가 진행한 지난 24일 총파업과 관련해, 경제 6단체가 “화물연대의 집단이기주의”라고 반발하면서 파업 철회와 안전운임제의 즉각적인 폐기를 촉구했다.

한국무역협회, 대한상공회의소, 전국경제인연합회, 중소기업중앙회, 한국경영자총협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등 경제 6단체는 이날 화물연대 집단운송 거부 선언과 관련한 공동성명서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이들 단체는 성명서를 통해 “수출과 경제에 미칠 심각한 피해를 우려한다. 화물연대 측이 즉각 운송 거부를 철회하고 차주, 운송업체, 화주 간 상생협력에 나서기를 촉구한다”고 호소했다.

또 “이미 지난 6월 화물연대의 집단운송 거부로 수출 현장은 막대한 손실을 봤다. 자동차, 철강, 석유화학 등 주요 국가기간산업은 1주일 넘게 마비됐고 일부 중소기업은 수출물품을 운송하지 못해 미래 수출계약마저 파기되는 시련을 겪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번 또 다른 집단행동은 우리 수출업체는 물론 국민경제에도 큰 타격을 주면서 수출과 국민을 생각하지 않는 화물연대의 집단이기주의에 대한 국민들의 비판은 강화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화물연대가 연장을 요구하는 안전운임제에 대해서도 “인위적 물류비 급등을 초래하는 등 화주의 일방적 희생을 요구해 위험에 빠뜨림으로써 궁극적으론 차주나 운송업체들의 일감마저 감소시킬 수 있는 불합리한 제도”라며 “계약당사자도 아닌 화주를 상품 운송을 의뢰했다고 해서 처벌하는 이 제도는 폐지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당초 계획대로 안전 운임제를 즉각 폐지하되 차주, 운송업체, 화주가 서로 ‘윈-윈-윈’ 할 수 있는 대안 마련에 적극 나서라”고 요구했다.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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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