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결혼중개앱 사기 피해가 늘고 있다. 해당 앱 피해 제보자들에 따르면 사기꾼들은 유명 대학병원 의사 행세를 하거나 대기업 직원 등을 사칭했다. 하지만 이들이 고졸, 무직, 유부남 등으로 밝혀지면서 이로 인한 피해자 수가 수백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자가 속출하고 있지만 중개앱 업체 측은 약관에 적혀있는 ‘면책조항’을 내세우며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제보자 A씨는 “지난해 2월 결혼중개앱을 통해 ‘의사 사칭’ ‘고졸’ ‘애가 셋인 유부남’인 B씨를 만나게 됐다”고 주장했다. A씨에 따르면 B씨는 혼인관계증명서와 의사면허를 위조해 앱에 등록했고 본인 인증은 하지 않는 상태였다. A씨에게도 직접 혼인관계증명서와 의사면허증, 유명 대학병원 명찰 등을 보내주며 신분에 대한 확신을 줬다.
모든 게 뻥
하지만 A씨는 지인을 통해 B씨가 의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 과정에서 자신과 같은 수십명의 또 다른 피해자가 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B씨와 수년간 교제하거나 결혼식장 예약까지 하러 갔다는 피해자가 등장하기도 했다.
A씨는 “경찰을 통해 들은 피해자만 50여명 이상”이라며 “피해자의 지역은 전국구고 제주도서도 피해자가 존재한다”고 전했다.
또 다른 여성 C씨는 “7개월간 결혼을 전제로 교제한 D씨는 모든 게 거짓이었다”고 말했다. 금융회사를 다니고 명문대를 졸업했다던 D씨는 고졸의 운전기사였다. 게다가 미혼이라고 자신을 소개했지만 유부남이었다. 이 같은 사실을 알게 된 C씨가 항의하자 D씨는 돌연 자신이 협박당했다는 등의 이유로 C씨를 공갈협박 혐의로 고소했다.
C씨는 “사람을 믿은 것 뿐인데 이런 터무니없는 일을 겪었다”고 분노했다.
결혼중개앱을 통해 여성 3명에게 돈을 뜯어낸 30대 남성이 경찰에 붙잡히는 사건도 있었다. 남성 E씨는 의사를 사칭한 뒤 “결혼을 전제로 만나자”며 총 1115만원을 받아 챙긴 것으로 조사됐다. E씨는 무직에 사기 전과도 다수였다.
경찰 관계자는 “피해자들이 온라인상에서 호감을 갖고 신원 확인도 없이 돈을 보냈다”며 “결혼중개앱에 올린 사진부터 이름까지 모두 거짓이었다”고 전했다.
업체 측은 “약관을 통해 개인의 신뢰도 및 정확도는 책임이 없고 보증도 하지 않으며 이를 사용자에게 동의받았다”며 자신들의 잘못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더 큰 문제는 피해 사례가 일부 접수됐지만 신원 확인이 되지 않는 탓에 남성들은 가입에 가입을 반복하며 여러 명의 피해자를 발생시켰고 업체 측은 해당 사실조차 파악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결혼중개앱들은 ‘상위 10%만 가입’ ‘철저히 검증된 회원’ 등의 문구로 홍보에 나서면서도 정작 이용약관에는 인증이 조작돼 피해가 발생할 경우,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면책 규정을 두고 있다. 업체의 ‘인증 시스템’을 믿고 이용했던 소비자들의 불만이 거세지는 이유다.
직업·학력 모두 거짓…업체 책임 없다?
다수 동종 앱 약관에 ‘면책조항’ 마련
실제로 이용약관에는 ‘회사는 회원이 제공한 개인정보의 신뢰도 및 정확도에 대한 책임이 면제된다’고 명시돼있다. ‘회원정보에 대한 보증을 하지 않는다’ ‘회원의 거짓된 정보와 관련해 타 회원의 피해가 발생할 경우 민형사상 책임은 개인정보를 허위로 기재한 회원에게 귀속된다’는 조항도 있다.
결국 이용자 스스로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것으로 피해 발생 시 업체에 대한 책임을 묻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사용 전 이들이 정한 약관에 동의했다는 이유에서다.
업계에 따르면 최근 결혼중개앱 시장규모가 급속도로 커지고 있다. 앱 시장 분석업체의 조사 결과 지난해 구글과 애플에서 게임을 제외한 한국 소비자 지출 상위 10개 앱 중 4개가 결혼중개 또는 데이트앱이었다. 수백개의 앱이 활성화되고 있는 가운데 회원 수가 무려 400만명에 이르는 앱도 존재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앱을 이용한 사기가 발생해도 단속 및 처벌은 쉽지 않다. 업체 측은 앱이라는 온라인 공간에서 만남이 시작되지만 실제 사기 등 범죄는 오프라인에서 이뤄져 제재에 한계가 있다는 입장이다.
한 개발업체 관계자는 “가입 과정에서 휴대폰 번호 인증, 가입 이후 페이스북 인증, 구글 사진 검색 인증 등을 통해 허위 프로필을 걸러낸다. 하지만 완벽하지 않다. 오프라인에서 벌어지는 일은 업체가 막기 어렵다”고 털어놨다.
한 결혼정보회사 관계자는 “가입 시 최소한 학력 인증을 하고 있지만 회사가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권한이 없는 부분에 있어서는 조금 미흡할 수 있다”면서 “최대한 확인한다고 하지만 회원이 작정하고 속이면 방도가 없다. 사전 예방은 한계가 있고 규모가 작은 업체들의 경우 인증팀을 따로 두는 경우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법조계서도 관련 피해가 발생할 경우 업체에 대한 책임을 묻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2016년 서울중앙지법은 의사를 사칭해 결혼중개앱에 가입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남성에 대해 업무방해 혐의를 인정하면서도 업체에게 책임은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결혼중개앱 업체에게 회원가입 신청자가 제출한 개인정보가 진짜인지 등에 관해 따로 증빙서류를 요청하고 그것과 비교·대조하는 등으로 적극 확인해야 할 의무가 부과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이에 소비자들은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결혼정보앱 업체가 검증을 통해 회원을 받았을 것이라고 믿고 서비스를 이용해왔지만 실제로 그것마저 거짓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한 피해자는 “결혼중개앱을 표방하면서 문제가 생기니 결국 발뺌한다”며 “약관으로 책임을 피해가는 운영은 나와 같은 피해자를 양산하는 짓”이라고 비판했다.
이용객 분통
결혼중개앱은 사용자가 지불한 이용요금으로 운영된다. 하지만 현란한 광고를 앞세우며 피해 재발 및 사전 방지노력은 적극적이지 않다. 피해자에 대한 구제를 비롯한 불량 이용자에 대한 제재 등도 부족한 게 현실이다. 앞서 업체 관계자는 “현재 소송 중인 건에 대해서는 답변할 수 없다”고 밝혔던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