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일요시사 대기획> 법의학으로 본 죽음의 격차 ⑥한국 법의학계 현실

과학수사? 꿈같은 얘기하고 있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한국 법의학계를 옭아매고 있는 뫼비우스의 띠가 20여년째 끊어지지 않고 있다. 인력 부족으로 허덕이고 제도로 들어가면 ‘주변인’에 불과한 신세다. 과학수사의 중심이라고 치켜세우지만 한꺼풀만 벗기면 결국 ‘마이너’라는 말이 나온다. 한국 법의학계의 딜레마, 인력 충원이냐 아니면 제도 개선이냐.

죽음의 순간 어떤 상황에 있었는지에 따라 후속 절차가 달라진다. 병원에서 사망하면 대개 병사로 처리된다. 병사일 경우 의사가 사망진단서를 발급하면 곧바로 장례를 치를 수 있다. 반면 변사는 절차가 복잡하다. 먼저 경찰이 개입하고 필요하면 검찰과 법원이, 더 나아가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하 국과수)이 등장한다. 

변사 처리
허점 있다

경찰청 훈령 ‘변사사건 처리규칙’에는 변사를 ‘원인이 분명하지 않은 죽음’이라 정의하고 있다. 세부적으로 ▲범죄와 관련됐거나 범죄가 의심되는 사망 ▲자연재해·교통사고·안전사고·산업재해·화재·익사 등 사고상 사망 ▲극단적 선택이나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의심이 드는 사망 ▲연행·구금·신문 등 법 집행 과정에서 발생한 사망 ▲보건·복지·요양 관련 집단 수용시설에서 발생한 사망 ▲마약·농약·알코올·가스·약물 등에 의한 급성 중독이 의심되는 사망 ▲그밖에 사인이 밝혀지지 않은 사망 등이다.

변사사건이 접수되면 경찰이 현장으로 출동해 사체를 살핀다. 경찰 소속 검시조사관과 검안의가 사체의 외표를 살피는 검안을 진행하고 사인을 찾는다. 뚜렷한 사인을 발견할 수 없을 때는 부검 여부에 대한 소견을 밝힌다. 경찰은 부검 진행을 위해 ‘변사사건 발생 보고 및 지휘 건의서’를 작성해 검사에게 보고한다.

검사는 ‘변사사건 발생보고 및 지휘건의에 대한 지휘서’를 토대로 부검을 지휘한다. 이때 법원은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한다. 


수십년째 변사사건 현장에 적용되고 있는 시스템이다. 실제 부검을 담당하는 법의관은 이 과정에 개입할 수 없다. 형사소송법 제222조(변사자의 검시)는 ‘변사체 또는 변사의 의심이 있는 사체가 있을 때에는 그 소재지를 관할하는 지방검찰청 검사가 검시(檢視)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검시 권한을 검사에게 독점적으로 부여한 것이다. 

검시는 변사자나 변사의 의심이 있는 사체를 포함해 현장 상황 등 사건 장소에 있는 모든 것을 조사하는 과정이다. 검시를 통해 치명적 질병이 분명하게 밝혀지거나 범죄 의심점이 드러나면 오히려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사인이 뚜렷하면 병사로 처리해 장례를 치르면 되고, 범죄 피해라는 판단이 서면 부검을 하면 된다. 

문제는 사인이 아리송할 때 발생한다. 한국에서 사망을 법적으로 인정받으려면 사망진단서와 시체검안서가 필요하다. 둘 다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자격을 가진 자만 발급할 수 있다. 병원에서 사망한 환자를 대상으로 치료한 의사가 발급하는 사망진단서와 달리 변사사건은 대체로 시체검안서로 갈음된다.

검사에 독점적 권한 부여
법의학자 아무 권한 없어

이때 검안의의 전문성에 따라 사인이 널을 뛰는 경우가 생긴다. 

법의학계에서 개선을 요구하는 지점이 바로 이 부분이다. 검시 과정에 ‘사체에 대한 전문성’을 가진 전문가를 투입하자는 주장이다.

김장한 대한법의학회 회장은 “변사자를 한곳으로 모아 부검 여부를 기준으로 검시할 수 있는 공시소 같은 물적 시설이 필요하다”며 “변사체가 오면 전문가가 밤새 약‧독물 검사 등을 진행해 1차 분류작업을 진행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경찰이 현장을 수사한 자료를 공유해주면 우리는 변사체를 육안으로 검사한 뒤 피를 뽑고 엑스레이와 CT를 찍는 거다. 이때 의무기록까지 확인할 수 있으면 시체검안서의 사망원인 부분을 진단명으로 채울 수 있다. 지금 이걸 못하니까 전부 부검으로 넘어가는데 이렇게 되면 또 과부하가 걸린다. 악순환의 연속”이라고 토로했다.

대한법의학회는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하는 검시제도 입법을 위해 수십년째 국회 문을 두드리고 있다. 2005년 윤호중 의원(열린우리당)이 대표 발의한 ‘형사소송법 일부개정 법률안’부터 지난해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의원이 대표 발의한 ‘검시를 위한 법의관 자격 및 직무에 관한 법률안’까지 20여년 동안 검시제도와 관련해 7개 법안이 발의됐다. 

2005년 4월 윤 의원이 대표 발의한 ‘형사소송법 일부개정 법률안’은 검시 대상과 범위를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변사자 또는 변사의 의심이 있는 사체’로 검시 대상을 두루뭉술하게 정해둔 것을 ‘범죄행위에 의한 사망, 교도소, 경찰서 유치장, 기타 국가기관에 의해 시설에 수용된 자의 사망, 그 밖에 원인이 불분명한 사망의 경우’로 구체화했다.

검시전문가
양성 취지

담당 공무원의 자의적인 판단을 최소화하자는 취지다. 

2005년 10월 유시민 의원(열린우리당)이 대표 발의한 ‘검시를 행할 자의 자격 및 직무범위에 관한 법률안’은 검시관 제도 도입을 담았다. 검시 관련 업무를 전담하는 검시 전문 인력을 양성하자는 취지다. 검시 전문가가 아닌 수사기관이나 경찰공의 등의 단순한 검안을 거쳐 사건이 종결되면서 ‘억울한 죽음’이 양산되고 있다고 발의 배경을 밝혔다. 

최규식 의원(민주당)은 2009년 2월 형사소송법 222조(변사자의 검시)에 4항을 신설하는 내용을 담은 ‘형사소송법 일부개정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검시권을 갖고 있는 검사가 검시를 진행할 때 유가족이나 법정대리인에게 사전고지의 의무를 하도록 했다. 검사의 검시권 독점에 제동을 거는 시도로 풀이됐다. 

19대 국회에서는 문정림 의원(새누리당)이 ‘법의관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2014년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노숙자 오인 사건이 영향을 미쳤다. 사체 발견과 개인 식별 과정에서 미흡한 초동대처로 국민 불신과 사회 혼란이 크게 불거진 바 있다. 당시 사건으로 변사사건 현장에 법의학 지식이 있는 전문가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대두됐다.

법의관 법안은 법의관 양성과 검시 업무를 담당하는 기관의 업무를 관리·감독하는 검시위원회 설립을 골자로 한다. 검시와 검안, 해부의 주체를 법의관으로 하고 위원장을 비롯해 7명으로 구성된 검시위원회를 국무총리 산하에 둔다는 내용을 담았다. 범죄 예방과 검시 인력 양성을 위한 법이라고 명시했다. 

2017년 6월 정갑윤 의원(자유한국당)이 ‘법의관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변사체에 대한 검안, 부검 여부의 결정과 시행, 사망원인과 종류 결정 등에 있어서 수사기관을 지원할 법의학 지식과 경험을 가진 전문 인력과 시설이 필요한데 국과수만으로는 부족한 형편이니 이를 위한 전문 인력을 양성하자는 내용이다. 

정부 부처
얽혀 있어

2018년 3월에는 진선미 의원(더불어민주당)이 ‘검시관의 자격과 직무 등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일반의사가 검안을 담당하는 사례가 많아 시체검안서와 부검감정서의 일치율이 크게 떨어지는 점을 개선하자는 취지다. 법의학 지식과 경험을 갖춘 검시관이 사망사건 발생 초기부터 사망원인 등을 전문적으로 밝혀 국민의 인권을 보호하자는 내용이다.


진 의원은 지난해에도 ‘검시를 위한 법의관 자격 및 직무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불명확한 사망원인을 과학적이고 전문적으로 밝혀 억울한 죽음을 방지할 수 있도록 법과 제도적인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내용이다. 검시 업무의 전문성을 확보하기 위한 법의관을 양성해야 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하지만 7개 법안 중 지난해 발의한 진 의원 법안(계류 중)을 제외하고 모두 ‘임기만료 폐기’ 됐다. 17대부터 21대 국회까지 4년에 한 번씩 꼬박꼬박 관련 법안이 나왔지만 단 한 건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진 의원 법안도 2번의 토론회를 거쳐 발의됐지만 큰 진전은 없는 상태다.

그동안 검시제도 관련 법안은 여야를 가리지 않고 발의됐다. 검시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큰 틀에서는 진영논리가 없었던 셈이다. 특히 검시제도 개선을 통해 국민의 인권을 보호한다는 법안의 취지는 모두 일맥상통했다. 역으로 말하면 검시제도 관련 법안이 제자리걸음을 걷는 동안 국민의 삶 특정 부분에 구멍이 생겼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김장한 회장은 “검찰은 법무부, 경찰은 행정안전부, 군 사망사고는 국방부, 의무기록은 보건복지부 등 검시제도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여러 정부부처와의 협업이 필수”라며 “그런데 여러 부처가 관련돼있다 보니 추진 주체가 흔들리는 문제가 발생한다. 진행 과정에서 자꾸 브레이크가 걸리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결국 피해자는 국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검시제도 관련 법안이 번번이 무산되자 법의학계에서는 ‘희망고문’ ‘법안 발의 개수를 채우기 위해 이용했다’ 등의 반응이 쏟아졌다. 여기에 법의학계의 고질적인 문제인 인력 부족이 부각되면서 검시제도 개선을 위한 동력이 식어가고 있다. ‘인력을 충원하기 위해서는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제도 개선을 위해서는 일정 수준의 인력이 필요하다’는 일종의 딜레마에 빠진 것.

‘국민의 인권 보호’ 취지
법안 7개 중 6개 버려져


대한법의학회 학술이사를 맡고 있는 박종필 연세대 법의학과 조교수는 “10년 넘게 제도에 대해 말해왔지만 아마 다 안 될 거다. 제도를 가지고 가면 ‘그래서 사람은 어떻게 뽑을 건데’라는 말이 따라 붙는다”며 “지금 단계에서는 제도 개선이 아니라 법의관 양성이 문제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법을 만들면 사람이 충원될 것이라 생각했는데 정원이 늘었는데도 채우질 못했다”고 덧붙였다. 

국과수 법의관 정원은 2014년 유벙언 전 세모그룹 회장 노숙자 오인 사건 등을 거치면서 크게 늘었다. 국과수에 따르면 2015년 28명이었던 법의관 정원은 2016년 38명, 2017년 47명, 2018년 54명으로 점차 확대됐다. 이후 2019년 55명까지 늘었다가 2020년부터 53명을 유지하고 있다. 

문제는 늘어난 정원을 채우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2015년 이후 현재까지 국과수 정원을 꽉 채운 적은 한 해도 없다. 올해 국과수에 근무 중인 법의관은 35명으로 충원율은 66%에 머물러 있다. 대학 법의학교실, 민간 법의의원 등으로 넓혀도 부검을 할 수 있는 인력은 60여명에 그친다.

대한법의학회가 2020년 국과수의 용역을 받아 내놓은 <법의학 전문 감정 연구 인력 인재 양성 방안 연구>에 따르면 2020년 기준 활동 중인 법의학자는 63명으로 파악됐다. 이 중 대학에 재직하거나 은퇴 후 촉탁부검을 하는 경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사법부검을 주 업무로 하는 법의의사는 전국적으로 32명(국과수 30명, 국방부과학수사연구소 2명)뿐이다. 

<일요시사>가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서치디앤에이에 의뢰해 전국 성인남녀 101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36.2%가 ‘법의학자 수는 200명 이상이 적당하다’고 응답했다. ‘100명 이상’으로 넓히면 73.8%에 이른다. 국민 10명 가운데 7명이 현재 법의학자 수와 비교해 2~3배 이상 더 필요하다고 응답한 것이다.

국과수 원장(2012~2016년)을 지낸 서중석 에스제이에스법의학연구소 소장은 “법의관을 양성하려면 기존 인력을 유지한 상태로 새로운 인력을 충원해야 한다. 그런데 너무 힘들고 보수도 열악하다 보니 기존 인력이 많이 빠져나갔다”며 “음지에서 양지로, 덜 힘든 곳으로, 더 명예스러운 곳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다. 국과수가 더 명예스럽고, 더 인정받는 곳이라면 왜 그곳을 떠나겠나”고 자조했다. 

내부에서도
자조 목소리

이어 “사회에는 생각보다 어려운 사람이 많다. 그런 사람들이 마지막 가는 길에 한 점 억울함도 없게 하려면 지금의 검시제도로는 무리다. 국과수에 있는 동안 ‘검시제도를 개선하고 인력을 키워서 국민에게 제대로 봉사하는 시스템을 갖추자’고 내내 주장했다. 하지만 그런 몸부림에도 아무것도 변한 건 없지 않나”고 반문했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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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