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일요시사 대기획> 법의학으로 본 죽음의 격차 ⑥한국 법의학계 현실

과학수사? 꿈같은 얘기하고 있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한국 법의학계를 옭아매고 있는 뫼비우스의 띠가 20여년째 끊어지지 않고 있다. 인력 부족으로 허덕이고 제도로 들어가면 ‘주변인’에 불과한 신세다. 과학수사의 중심이라고 치켜세우지만 한꺼풀만 벗기면 결국 ‘마이너’라는 말이 나온다. 한국 법의학계의 딜레마, 인력 충원이냐 아니면 제도 개선이냐.

죽음의 순간 어떤 상황에 있었는지에 따라 후속 절차가 달라진다. 병원에서 사망하면 대개 병사로 처리된다. 병사일 경우 의사가 사망진단서를 발급하면 곧바로 장례를 치를 수 있다. 반면 변사는 절차가 복잡하다. 먼저 경찰이 개입하고 필요하면 검찰과 법원이, 더 나아가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하 국과수)이 등장한다. 

변사 처리
허점 있다

경찰청 훈령 ‘변사사건 처리규칙’에는 변사를 ‘원인이 분명하지 않은 죽음’이라 정의하고 있다. 세부적으로 ▲범죄와 관련됐거나 범죄가 의심되는 사망 ▲자연재해·교통사고·안전사고·산업재해·화재·익사 등 사고상 사망 ▲극단적 선택이나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의심이 드는 사망 ▲연행·구금·신문 등 법 집행 과정에서 발생한 사망 ▲보건·복지·요양 관련 집단 수용시설에서 발생한 사망 ▲마약·농약·알코올·가스·약물 등에 의한 급성 중독이 의심되는 사망 ▲그밖에 사인이 밝혀지지 않은 사망 등이다.

변사사건이 접수되면 경찰이 현장으로 출동해 사체를 살핀다. 경찰 소속 검시조사관과 검안의가 사체의 외표를 살피는 검안을 진행하고 사인을 찾는다. 뚜렷한 사인을 발견할 수 없을 때는 부검 여부에 대한 소견을 밝힌다. 경찰은 부검 진행을 위해 ‘변사사건 발생 보고 및 지휘 건의서’를 작성해 검사에게 보고한다.

검사는 ‘변사사건 발생보고 및 지휘건의에 대한 지휘서’를 토대로 부검을 지휘한다. 이때 법원은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한다. 


수십년째 변사사건 현장에 적용되고 있는 시스템이다. 실제 부검을 담당하는 법의관은 이 과정에 개입할 수 없다. 형사소송법 제222조(변사자의 검시)는 ‘변사체 또는 변사의 의심이 있는 사체가 있을 때에는 그 소재지를 관할하는 지방검찰청 검사가 검시(檢視)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검시 권한을 검사에게 독점적으로 부여한 것이다. 

검시는 변사자나 변사의 의심이 있는 사체를 포함해 현장 상황 등 사건 장소에 있는 모든 것을 조사하는 과정이다. 검시를 통해 치명적 질병이 분명하게 밝혀지거나 범죄 의심점이 드러나면 오히려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사인이 뚜렷하면 병사로 처리해 장례를 치르면 되고, 범죄 피해라는 판단이 서면 부검을 하면 된다. 

문제는 사인이 아리송할 때 발생한다. 한국에서 사망을 법적으로 인정받으려면 사망진단서와 시체검안서가 필요하다. 둘 다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자격을 가진 자만 발급할 수 있다. 병원에서 사망한 환자를 대상으로 치료한 의사가 발급하는 사망진단서와 달리 변사사건은 대체로 시체검안서로 갈음된다.

검사에 독점적 권한 부여
법의학자 아무 권한 없어

이때 검안의의 전문성에 따라 사인이 널을 뛰는 경우가 생긴다. 

법의학계에서 개선을 요구하는 지점이 바로 이 부분이다. 검시 과정에 ‘사체에 대한 전문성’을 가진 전문가를 투입하자는 주장이다.

김장한 대한법의학회 회장은 “변사자를 한곳으로 모아 부검 여부를 기준으로 검시할 수 있는 공시소 같은 물적 시설이 필요하다”며 “변사체가 오면 전문가가 밤새 약‧독물 검사 등을 진행해 1차 분류작업을 진행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경찰이 현장을 수사한 자료를 공유해주면 우리는 변사체를 육안으로 검사한 뒤 피를 뽑고 엑스레이와 CT를 찍는 거다. 이때 의무기록까지 확인할 수 있으면 시체검안서의 사망원인 부분을 진단명으로 채울 수 있다. 지금 이걸 못하니까 전부 부검으로 넘어가는데 이렇게 되면 또 과부하가 걸린다. 악순환의 연속”이라고 토로했다.

대한법의학회는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하는 검시제도 입법을 위해 수십년째 국회 문을 두드리고 있다. 2005년 윤호중 의원(열린우리당)이 대표 발의한 ‘형사소송법 일부개정 법률안’부터 지난해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의원이 대표 발의한 ‘검시를 위한 법의관 자격 및 직무에 관한 법률안’까지 20여년 동안 검시제도와 관련해 7개 법안이 발의됐다. 

2005년 4월 윤 의원이 대표 발의한 ‘형사소송법 일부개정 법률안’은 검시 대상과 범위를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변사자 또는 변사의 의심이 있는 사체’로 검시 대상을 두루뭉술하게 정해둔 것을 ‘범죄행위에 의한 사망, 교도소, 경찰서 유치장, 기타 국가기관에 의해 시설에 수용된 자의 사망, 그 밖에 원인이 불분명한 사망의 경우’로 구체화했다.

검시전문가
양성 취지

담당 공무원의 자의적인 판단을 최소화하자는 취지다. 

2005년 10월 유시민 의원(열린우리당)이 대표 발의한 ‘검시를 행할 자의 자격 및 직무범위에 관한 법률안’은 검시관 제도 도입을 담았다. 검시 관련 업무를 전담하는 검시 전문 인력을 양성하자는 취지다. 검시 전문가가 아닌 수사기관이나 경찰공의 등의 단순한 검안을 거쳐 사건이 종결되면서 ‘억울한 죽음’이 양산되고 있다고 발의 배경을 밝혔다. 

최규식 의원(민주당)은 2009년 2월 형사소송법 222조(변사자의 검시)에 4항을 신설하는 내용을 담은 ‘형사소송법 일부개정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검시권을 갖고 있는 검사가 검시를 진행할 때 유가족이나 법정대리인에게 사전고지의 의무를 하도록 했다. 검사의 검시권 독점에 제동을 거는 시도로 풀이됐다. 

19대 국회에서는 문정림 의원(새누리당)이 ‘법의관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2014년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노숙자 오인 사건이 영향을 미쳤다. 사체 발견과 개인 식별 과정에서 미흡한 초동대처로 국민 불신과 사회 혼란이 크게 불거진 바 있다. 당시 사건으로 변사사건 현장에 법의학 지식이 있는 전문가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대두됐다.

법의관 법안은 법의관 양성과 검시 업무를 담당하는 기관의 업무를 관리·감독하는 검시위원회 설립을 골자로 한다. 검시와 검안, 해부의 주체를 법의관으로 하고 위원장을 비롯해 7명으로 구성된 검시위원회를 국무총리 산하에 둔다는 내용을 담았다. 범죄 예방과 검시 인력 양성을 위한 법이라고 명시했다. 

2017년 6월 정갑윤 의원(자유한국당)이 ‘법의관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변사체에 대한 검안, 부검 여부의 결정과 시행, 사망원인과 종류 결정 등에 있어서 수사기관을 지원할 법의학 지식과 경험을 가진 전문 인력과 시설이 필요한데 국과수만으로는 부족한 형편이니 이를 위한 전문 인력을 양성하자는 내용이다. 

정부 부처
얽혀 있어

2018년 3월에는 진선미 의원(더불어민주당)이 ‘검시관의 자격과 직무 등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일반의사가 검안을 담당하는 사례가 많아 시체검안서와 부검감정서의 일치율이 크게 떨어지는 점을 개선하자는 취지다. 법의학 지식과 경험을 갖춘 검시관이 사망사건 발생 초기부터 사망원인 등을 전문적으로 밝혀 국민의 인권을 보호하자는 내용이다.


진 의원은 지난해에도 ‘검시를 위한 법의관 자격 및 직무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불명확한 사망원인을 과학적이고 전문적으로 밝혀 억울한 죽음을 방지할 수 있도록 법과 제도적인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내용이다. 검시 업무의 전문성을 확보하기 위한 법의관을 양성해야 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하지만 7개 법안 중 지난해 발의한 진 의원 법안(계류 중)을 제외하고 모두 ‘임기만료 폐기’ 됐다. 17대부터 21대 국회까지 4년에 한 번씩 꼬박꼬박 관련 법안이 나왔지만 단 한 건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진 의원 법안도 2번의 토론회를 거쳐 발의됐지만 큰 진전은 없는 상태다.

그동안 검시제도 관련 법안은 여야를 가리지 않고 발의됐다. 검시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큰 틀에서는 진영논리가 없었던 셈이다. 특히 검시제도 개선을 통해 국민의 인권을 보호한다는 법안의 취지는 모두 일맥상통했다. 역으로 말하면 검시제도 관련 법안이 제자리걸음을 걷는 동안 국민의 삶 특정 부분에 구멍이 생겼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김장한 회장은 “검찰은 법무부, 경찰은 행정안전부, 군 사망사고는 국방부, 의무기록은 보건복지부 등 검시제도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여러 정부부처와의 협업이 필수”라며 “그런데 여러 부처가 관련돼있다 보니 추진 주체가 흔들리는 문제가 발생한다. 진행 과정에서 자꾸 브레이크가 걸리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결국 피해자는 국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검시제도 관련 법안이 번번이 무산되자 법의학계에서는 ‘희망고문’ ‘법안 발의 개수를 채우기 위해 이용했다’ 등의 반응이 쏟아졌다. 여기에 법의학계의 고질적인 문제인 인력 부족이 부각되면서 검시제도 개선을 위한 동력이 식어가고 있다. ‘인력을 충원하기 위해서는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제도 개선을 위해서는 일정 수준의 인력이 필요하다’는 일종의 딜레마에 빠진 것.

‘국민의 인권 보호’ 취지
법안 7개 중 6개 버려져


대한법의학회 학술이사를 맡고 있는 박종필 연세대 법의학과 조교수는 “10년 넘게 제도에 대해 말해왔지만 아마 다 안 될 거다. 제도를 가지고 가면 ‘그래서 사람은 어떻게 뽑을 건데’라는 말이 따라 붙는다”며 “지금 단계에서는 제도 개선이 아니라 법의관 양성이 문제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법을 만들면 사람이 충원될 것이라 생각했는데 정원이 늘었는데도 채우질 못했다”고 덧붙였다. 

국과수 법의관 정원은 2014년 유벙언 전 세모그룹 회장 노숙자 오인 사건 등을 거치면서 크게 늘었다. 국과수에 따르면 2015년 28명이었던 법의관 정원은 2016년 38명, 2017년 47명, 2018년 54명으로 점차 확대됐다. 이후 2019년 55명까지 늘었다가 2020년부터 53명을 유지하고 있다. 

문제는 늘어난 정원을 채우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2015년 이후 현재까지 국과수 정원을 꽉 채운 적은 한 해도 없다. 올해 국과수에 근무 중인 법의관은 35명으로 충원율은 66%에 머물러 있다. 대학 법의학교실, 민간 법의의원 등으로 넓혀도 부검을 할 수 있는 인력은 60여명에 그친다.

대한법의학회가 2020년 국과수의 용역을 받아 내놓은 <법의학 전문 감정 연구 인력 인재 양성 방안 연구>에 따르면 2020년 기준 활동 중인 법의학자는 63명으로 파악됐다. 이 중 대학에 재직하거나 은퇴 후 촉탁부검을 하는 경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사법부검을 주 업무로 하는 법의의사는 전국적으로 32명(국과수 30명, 국방부과학수사연구소 2명)뿐이다. 

<일요시사>가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서치디앤에이에 의뢰해 전국 성인남녀 101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36.2%가 ‘법의학자 수는 200명 이상이 적당하다’고 응답했다. ‘100명 이상’으로 넓히면 73.8%에 이른다. 국민 10명 가운데 7명이 현재 법의학자 수와 비교해 2~3배 이상 더 필요하다고 응답한 것이다.

국과수 원장(2012~2016년)을 지낸 서중석 에스제이에스법의학연구소 소장은 “법의관을 양성하려면 기존 인력을 유지한 상태로 새로운 인력을 충원해야 한다. 그런데 너무 힘들고 보수도 열악하다 보니 기존 인력이 많이 빠져나갔다”며 “음지에서 양지로, 덜 힘든 곳으로, 더 명예스러운 곳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다. 국과수가 더 명예스럽고, 더 인정받는 곳이라면 왜 그곳을 떠나겠나”고 자조했다. 

내부에서도
자조 목소리

이어 “사회에는 생각보다 어려운 사람이 많다. 그런 사람들이 마지막 가는 길에 한 점 억울함도 없게 하려면 지금의 검시제도로는 무리다. 국과수에 있는 동안 ‘검시제도를 개선하고 인력을 키워서 국민에게 제대로 봉사하는 시스템을 갖추자’고 내내 주장했다. 하지만 그런 몸부림에도 아무것도 변한 건 없지 않나”고 반문했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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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억 오세훈 한강버스, 아라호 흑역사 오버랩

1000억 오세훈 한강버스, 아라호 흑역사 오버랩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시가 돛을 올린 한강버스가 고장 끝에 결국 멈췄다. 과거 ‘아라호 사업’도 재조명되고 있다. 아라호 사업은 2010년대 초반 경인 아라뱃길을 중심으로 관광 활성화와 교통난 해소를 위해 인천시와 공동으로 수백억원을 들여 기획한 수상 교통 프로젝트였다. 아라호는 시민들의 외면과 운영 적자로 인해 자취를 감췄다. ‘반면교사’로 삼았던 걸까? 서울시는 한강을 따라 운행되는 수상 교통수단으로, 서울 전역을 연결하는 새로운 교통망을 구축하겠다는 계획으로 지난 18일 한강버스 운항을 시작했다. 여의도, 잠실, 뚝섬 등 주요 한강변 거점과 지하철역을 연계해 시민과 관광객 모두가 이용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는 게 핵심이다. 관광이냐 출퇴근이냐 서울시는 한강버스를 통해 관광 교통수단을 넘어 서울을 ‘한강 중심의 스마트 모빌리티 도시’를 만들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그러나 정식 운항을 시작한 지 열흘 만에 운항이 중단됐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9일 오전 시청에서 열린 주택 공급 대책 관련 브리핑 도중 “한강버스 관련 입장을 밝히지 않을 수 없다”며 “시민 여러분께 송구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열흘 정도 운행 통해 기계적·전기적 결함이 몇 번 발생하다 보니 시민들 사이에서 약간 불안감 생긴 것도 사실”이라며 “이번 기회에 (운항을) 중단하고 충분히 안정화시킬 수 있다면 그게 바람직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시는 이날부터 10월 말까지 한강버스 시민 탑승을 중단하고 성능 고도화와 안정화를 위한 무승객 시범 운항을 한다. 시는 국내 최초로 한강에 친환경 선박 한강버스를 도입해 지난 18일 정식 운항을 시작했다. 하지만 지난 22일에는 잠실행 한강버스가 운항 중 방향타 고장이 발생했고, 같은 날 마곡행도 운항 준비 중 전기 계통에 문제가 생겨 결항했다. 26일에도 운항 중 방향타 고장이 발생했다. 이 과정에서 운항 중단과 재개가 반복되자 운항 중단을 결정했다. 과거 아라호의 값비싼 교훈을 남겼지만, 실패 요인을 분석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해석되는 결과다. 한강버스 역시 또 하나의 혈세 낭비 사례가 될 수 있다. 서울시 한 관계자는 “아라호 사례를 철저히 분석해 이번에는 실질적인 시민 편익을 제공하고 지속 가능한 운영 모델을 구축하겠다”고 강조했다. 한강버스가 서울의 새로운 교통 패러다임으로 자릴 잡을지, 아라호의 전철을 밟을지는 향후 몇 년간의 운영 성과에 달려 있다. 서울시 아라호는 오세훈 서울시장의 첫 임기 때인 2010년 서울시가 예산 112억원을 들여 만든 2층 유람선으로 지난 2009년 5월부터 1년5개월을 들여 건조됐다. 오 시장의 지시로 건조된 아라호는 시민들에게 저렴한 요금으로 공연과 한강특화공원 관람이 동시에 가능한 선상문화체험 기회를 제공한다는 영리 목적보다 공공문화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차원에서 민자 유치 대신 재정이 투입된 사업이었다. 당초 아라호를 한강에서 인천 앞바다까지 운항하는 관광 크루즈선으로 활용하려 했으나 여덟 차례 시범 운항과 21회 시험 운항만 했을 뿐 사실상 사업은 중단됐다. 제작 당시부터 경제적 타당성이 부족하다는 논란을 빚었던 아라호는 정식 취항도 해보지 못한 채 팔렸다. 실제 운행이 어려운 상황에서 보험료와 유지비 등 관리 비용에만 연간 1억원이 들어간다는 점도 매각을 선택하는 데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112억원 들여 29억원에 판 아라호 출항 나흘 만에 고장…오, 좌불안석 아라호가 정식 운항에 나서지 못했던 배경에는 서해뱃길 사업을 둘러싼 서울시와 시의회의 갈등도 있었다. 오 시장의 아라호 활용 계획에 당시 더불어민주당이 다수인 시의회가 이에 반대했기 때문이다. 지난 2011년 10월 고 박원순 전 시장이 취임 후 사업 타당성 문제로 매각을 결정하면서 오 시장의 한강 르네상스 사업이 백지화됐다. 결국 서울시는 아라호 매각을 결정한 후 지난 2013년 5월, 106억원의 예정 가격으로 매각 입찰에 나섰으나 응찰자가 없어 유찰됐다. 이후 2차 입찰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알만한 이들은 알겠지만, 선박 사업은 수요를 찾기 어려운 사업 중 하나다. 결국 서울시는 3차 매각 입찰에서 최초 예정 가격에서 10% 인하된 95억원으로 깎았지만 이마저도 입찰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이후 같은 해 11월, 4차 매각에서 15% 인하된 90억원에 입찰을 시도했지만 응찰자가 없어 가격 인하의 효과는 전혀 없었다. 그러다 서울시는 지난 2016년 아라호를 매각하지 못하자 결국 임대 쪽으로 사업 방향을 틀었다. 아라호가 정식 운항도 못한 채 6년 넘게 여의도 한강공원 선착장에 방치되면서다. 서울시가 제시한 사업 기간은 연말까지 8개월이고 한 차례 1년간 계약을 연장할 수 있었다. 당시 최저 임대료는 2억6300만원이었다. 아라호는 임대 사업을 시작해 건조 6년 만에 빛을 봤지만, 운항이 종료되는 시점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한강의 애물단지로 전락했던 아라호는 지난 2016년 민간업체인 레츠고코리아가 임대사업권을 낙찰받아 3년간 운영하다가 2018년 이랜드그룹 계열사 이랜드크루즈로 사업권을 넘겨줬다. 이랜드크루즈가 사업권을 따낸 시점은 지난 2018년 3월이지만 실제 운영은 2019년 6월부터 시작됐다. 이전 사업자인 레츠고코리아가 서울시의 계약 위반을 주장하며 유람선과 시설물 반환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결국 이랜드크루즈는 1년간의 법정 공방 끝에 지난 2019년 6월부터 운영을 시작했지만,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수익성 악화로 아라호의 임대 운영 사업을 1년 만에 접어야 했다. 애물단지 전락하나 이랜드크루즈는 임대계약 갱신청구권(1년)마저 포기했다. 코로나19 팬데믹 무렵부터는 주식회사 수가 임대사업권을 이어받았다. 이후 마지막으로 인더라인25가 지난해 6월부터 올해 5월까지 사업하는 조건으로 서울시와 지난 2022년 12월 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1년 단기 임대계약이 종료된 이후에도 인더라인25가 철거하지 않아 서울시는 골머리를 앓았다. 아라호 운항은 멈췄지만, 선착장을 한 달째 무단 점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인더라인25는 계약 연장을 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서울시는 인더라인25를 상대로 명도소송, 점유 이전 금지 가처분, 행정 가처분 등 소송을 진행하기도 했다. 아라호가 실패한 가장 큰 이유는 수요 예측 실패와 운영비 부담이었다. 당시 서울시는 아라호가 연간 수십만명의 승객을 유치할 수 있다고 예상했으나, 실제 이용객은 예측치의 30%에도 미치지 못했다. 또 노선 설계가 시민들의 일상적인 통근이나 이동과 잘 맞지 않았고, 요금 역시 육상 교통수단에 비해 비쌌다. 결과적으로 관광객 유치에도 한계가 있었고,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아라호는 철수될 수밖에 없었다. 아라호는 건조한 지 15년 만에 민간에 팔렸다. 지난 1월 서울시 한강 유람선 아라호는 5차례 입찰 끝에 약 28억5780만원에 팔려 민간업체에 인도됐다. 2013년부터 총 9번의 입찰을 시도한 결과 3분의 1 가격에 달하는 헐값에 팔린 셈이다. 당시 서울시에 따르면 아라호는 2024년 11월 말 공개입찰을 진행한 뒤 지난달 주식회사 마이랜드와 매각 계약을 체결했다. 길이 58m에 688톤 규모의 아라호는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과 서강대교 남단을 오갔다. 승객은 총 310명까지 태울 수 있다. 음악회, 공연, 결혼식, 영화 상영을 위한 시설도 보유했다. 선착장에는 편의점, 치킨집 등 부대시설도 있었다. 아라호는 건조 후 15년 만에 매각되기까지 여러 우여곡절을 겪었다. 후임 고 박원순 시장이 2012년 사업을 백지화하면서 5년간 방치됐다. 2013년 5월 처음으로 공개입찰에 넘겨졌다. 시는 같은 해에만 총 4번의 입찰을 추진했으나, 입찰자가 없어 매번 무산됐다. 실패했지만 이번엔 달라? 서울시는 수의계약 방식으로도 매각을 시도했으나, 매각사의 자금 동원 문제로 불발됐다. 이에 시는 2016년 아라호를 매각하는 대신 민간 위탁하는 방향을 택했고, 2017년부터 민간 위탁을 통해 운영했다. 하지만 임대계약이 만료되면서 지난해 5월 말부터 운항이 중단됐다. 그러자 시는 다시 매각을 시도했다. 지난해 10월부터 총 5차례의 입찰을 진행했고, 같은 해 11월 말 입찰자가 나와 12월 매각 계약을 맺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그간 아라호의 위탁 운영은 선박 운항이 아닌 선착장 내 치킨집 등 부대시설 위주로 돌아갔다”며 “자연스레 선박도 노후화되고, 전반적으로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다시 매각을 추진하게 됐다”고 말했다. 법적 분쟁으로 얼룩진 아라호를 통해 한강에 배 띄우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경험했지만, 이번엔 다르다고 한다. 서울시는 이번 한강버스 사업에서 아라호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3가지 전략적 과제를 내세우고 있다. 먼저, 실제 수요 기반의 노선 설계를 강조했다. 또 관광 중심이 아닌, 출퇴근·생활 교통을 고려한 정류장 배치, 그리고 지하철·버스 환승과의 연계를 강화했다는 것이다. 합리적인 요금 체계를 내세우기도 했다. 기존 대중교통과의 환승 할인을 적용하고, 관광·레저용 프리미엄 서비스와 생활 교통 요금제의 이원화를 강조했다. 또 탄소 배출을 최소화한 전기·수소 하이브리드 선박을 도입했고, 실시간 교통 정보 제공 및 안전 관리 시스템을 구축했다고 한다. 서울시가 한강버스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지난해 들인 초기 사업비는 약 542억원으로 향후 발생할 총 사업비는 약 1500억~1750억원으로 예상된다. 아라호 사업비보다 10배가량 많은 혈세가 투입될 예정이다. 한강버스는 출·퇴근용 선박인 만큼 이용객을 충족하기 위해 여러 척의 선박이 필요하다. 지난해 3월 한강버스 운영사는 6척의 선박을 납품받는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현재는 첫 출항 이후 3척이 운항 중이며, 향후 6척의 선박이 모두 납품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밖에도 선착장 시설, 운영 시스템, 접근성 개선 등 다양하고 복합적인 요소가 포함돼 총사업비가 1000억원대 중반까지 증가한다. 묻지 마 10배로 베팅 6시에 나와야 9시 출근 아라호는 ‘유람선 제작’이 중심이고, 공연시설 등이 포함된 문화를 제공하기 위한 목적의 선박이었다. 시설 설계가 크고 복잡한 부분이 있지만, 수량이 하나라 규모 면에서 제한적이기에 한강버스와 다르다는 결론이다. 반면, 한강버스는 여러 척의 선박을 건조해야 하고, 선착장 설치 또는 보수도 그만큼 갖춰져야 한다. 또 전기 또는 하이브리드 선박을 도입한 만큼, 유지비용도 클 뿐만 아니라 홍보, 안전, 시험 운항 등 여타 부대 비용에 민간투자금 및 보조금 등이 혼합돼있어 사업비 증액은 여러 원인으로 발생한다. 한강버스 사업비가 초기 대비 크게 증가한 이유로 업체 선정 과정에서 계약 조건, 예상보다 오래 걸린 공정률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를테면 선박 제작 능력이 있는 업체와 없는 업체 간의 차이를 분석했는데, 일부 업체는 인프라가 부족하거나 준비가 미흡했다는 평가를 받아 계약이 무산된 경우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한강버스는 대중교통 기능이 강조되면서 ‘출퇴근 수단’ ‘교통망 보완’ 등의 역할이 기대되는 상황이다. 따라서 초기 투자비가 크더라도 지속 운영을 통한 수요 확보가 전제된다. 하지만 계획 대비 수요가 예상만큼 확보될지, 운영비와 적자 보전 부담이 얼마나 될지는 논란 중이다. 한편, 한강버스는 정식 운항 나흘 만에 선박의 방향타 고장 등으로 잇따라 멈춰 승객들이 불편을 겪었다. 지난 23일 기준 누적 탑승객이 1만명을 돌파하는 등 시민들의 큰 관심을 받은 한강버스가 정시성 확보가 중요한 대중교통수단으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을 지 의문이 커지고 있다. 매체에 따르면 지난 22일 오후 7시쯤 옥수선착장을 출발한 잠실행 한강버스가 강 한가운데서 20여분간 멈춰섰다. 결국 승객들은 종착지까지 가지도 못하고 도중에 내려야 했다. 한강버스 운영사는 고장 선박을 뚝섬 선착장에 접안한 뒤 승객들을 모두 하선시켰고, 뚝섬에서 잠실까지 구간의 운항을 취소했다. 지난 18일 정식 운항을 시작한 지 나흘 만에 발생한 일이다. 이 과정에서 제대로 된 안내 방송이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한 탑승객은 “20분이 넘게 서 있었고, 안내 방송이 안 나오고 승무원도 안 계시고…. (뚝섬 선착장) 도착하기 2~3분 전에 승무원이 ‘이 배 잠실까지 안 간다’고 뚝섬에 다 내리셔야 된다고…”라고 말했다. 이 사고와 별개로 같은 날 오후 7시30분에 잠실 선착장을 출발할 예정이었던 마곡행 한강버스는 선박 고장으로 아예 결항됐다. 그 바람에 강서 방향으로 이동하려던 시민들은 황급히 다른 교통수단을 찾는 등 불편을 겪어야 했다. 승부수? 무리수? 서울시는 두 선박 모두 전날 밤 안정화 조치를 거쳐 다음 날인 23일 운항에는 차질이 없다고 밝혔다. 또 선내 안내 방송이 없었다는 주장에 대해선 한강버스 운영사가 이상을 감지한 뒤 원인을 파악하는 데 다소 시간이 걸려 안내에 일부 지연이 있었다는 설명이다. 현재 한강버스는 마곡-망원-여의도-압구정-옥수-뚝섬-잠실 28.9km 구간을 상하행 7회씩 총 14회(첫차 11시) 운항하고 있다. 소요 시간은 마곡에서 잠실까지 127분이다. 여의도에서 잠실까지는 80분이다. 추석 연휴 이후인 다음 달 10일부터는 출퇴근 시간 급행 노선(15분 간격)을 포함, 평일 기준 왕복 30회로 증편한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