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일요시사 대기획> 법의학으로 본 죽음의 격차 ④최초 확인한 이주노동자 부검률

‘내국인 5배’ 돈벌러 와서 조용히 저 세상으로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어디에나 있지만 어디에도 없다. 일할 때는 ‘우리 직원’이지만 사고가 나면 ‘남의 나라 사람’이 된다. 없으면 현장이 마비될 정도로 의존도가 높지만 막상 드러날라 치면 내쫓아 버리기 일쑤다. ‘코리안 드림’을 꿈꿨던 이주노동자는 먼 타국 땅에서 소리도 없이 스러져 차가운 부검대 위에 오른다. 

2020년 12월20일 경기도 포천의 한 농장 기숙사에서 캄보디아 여성 이주노동자 속헹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속헹씨가 머물던 비닐하우스 숙소는 난방이 가동되지 않아 영하 16도의 강추위에 무방비로 노출된 상태였다. 포천이주노동자센터 대표인 김달성 목사는 당시 속헹씨의 사인을 ‘동사(저체온증)’로 추정했다. 

타국서
쓸쓸하게

속헹씨는 2016년 4월 비전문취업(E9) 비자로 한국에 입국해 포천의 채소농장에서 4년 넘게 일했다. 고용허가제에 따라 비전문취업 비자를 받은 이주노동자는 최장 4년10개월까지 일할 수 있다. 속헹씨는 지난해 1월 프놈펜(캄보디아의 도시)으로 출국하기 위해 비행기 표를 끊어둔 상태였다. 하지만 그는 비행기 대신 부검대에 올랐다. 

변사사건이 일어났을 때 검시를 할 수 있는 권한은 검사에 있다(형사소송법 제222조). 이때 검시(檢視)는 변사자 또는 변사의 의심이 있는 사체를 포함한 현장 상황 등 모든 것에 관해 조사하는 일을 말한다. 법률적인 관점에서 정확한 사인을 밝히기 위한 수사기관의 행위다. 

의학적 관점에서의 검시(檢屍)는 검안과 부검으로 나뉜다. 검안은 사체를 손상하지 않고 외표를 살피는 행위고 부검은 사체를 해부하는 행위다. 검안으로 정확한 사인 규명이 이뤄지지 않을 때 부검을 진행한다. 부검은 그 목적에 따라 사법부검·행정부검·병리부검 등으로 나뉘는데 한국은 사체와 범죄의 연관성을 규명하는 사법부검이 대부분이다.


형사소송법 제139조(검증)는 ‘법원은 사실을 발견함에 필요한 때는 검증을 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동법 제140조(검증과 필요한 처분)는 ‘검증을 위해 신체의 검사, 사체의 해부, 분묘의 발굴, 물건의 파괴, 기타 필요한 처분을 할 수 있다’고 돼있다.

‘평온하지 못한 죽음’ 많아
사망 관련 자료 거의 없어

동법 제173조(감정에 필요한 처분)도 ‘감정에 관해 필요한 때에는 법원의 허가를 얻어 사체의 해부를 할 수 있다’고 했다. 

부검의 법률적 근거를 살펴보면 ‘검증’ ‘감정’이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검증은 법률적 정의로 ‘법관이나 수사관이 자기의 감각으로 어떤 대상의 성질이나 상태 따위를 인식해 증거를 조사’하는 것을 말한다. 감정은 ‘재판에 도움을 주기 위해 그 분야의 전문가가 의견과 지식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다시 말해 한국에서 부검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범죄에 연루돼 순탄치 못한 죽음을 맞았다는 의미와 일정 정도 닿아있다. 니시오 하지메 일본 효고의과대학 법의학교실 주임교수는 저서 <죽음의 격차>에 “내가 매일 대면하는 사람은 병원에서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두는 (이른바)‘평온한 죽음’을 맞이하지 못한 사람들”이라고 저술했다.

한국에서 한 해에 발생하는 변사자 수는 3만명 전후로 추산된다. 2020년 사망자 수가 처음으로 30만명을 넘어섰다. 2020년 기준 전체 사망자의 약 10%가 변사인 셈이다. 이 가운데 8000~9000명이 부검대에 오른다. 경찰과 의사의 검안, 검사의 검시를 거쳐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하 국과수) 법의관 앞에 놓이는 사람들이다.

범죄 연루
부검 대상


국과수에 따르면 2020년 부검 건수는 8813건이다. 2016년 8046건, 2017년 8538건, 2018년 8530건, 2019년 8566건 등 한 해 평균 8500건을 부검했다. 사망자 대비 법의부검률(법의부검 시행 수/사망자 수)은 2.9~3%, 변사자 대비 법의부검률(법의부검 시행 수/변사자 수)은 23~24%다.

국과수 등을 통해 공개된 법의부검률은 내국인, 즉 한국 국적을 가진 사람을 대상으로 산출한 결과다. 그렇다면 외국인 부검률은 어떨까. 결론부터 말하면 외국인 부검 관련 자료는커녕 사망 관련 자료도 구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국과수 감정관리시스템 역시 2015년에 이르러서야 외국인 체크란이 생겼다. 

지난 7월1일 경주화백컨벤션센터에서 ‘포스트 코로나 다시 시작하는 기초의학’을 주제로 제29회 기초의학 학술대회가 열렸다. 이날 ‘안전사고’를 주제로 진행한 대한법의학회 프로그램에서 이주노동자 부검 현황과 관련한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박종필 연세대 법의학과 조교수와 김기하 조교의 ‘이주노동자의 법의부검에 대한 고찰’ 연구다.

김 조교는 “19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이주노동자의 유입이 시작됐고 그 수가 점차 증가하고 있다. 이주노동자의 출입과 체류가 증가하면서 한국 사회에 한 구성원으로 자리 잡고 있지만 이들에 관한 법의부검을 비롯한 사망원인 통계 분석은 이뤄지지 않아 현황 파악이 어려운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한국 법의부검 중 이주노동자(미등록 이주노동자 포함)의 부검 현황을 조사하고 연도별 부검률, 사망원인 및 사망의 종류에 대해 분석했다”고 밝혔다. 

절차 문제?
위험 노출?

이주노동자 부검과 관련해 유의미한 통계가 발표된 건 이번 연구가 처음이다. 박 교수와 김 조교는 이주노동자 사망자 수와 법의부검 시행 수로 법의부검률을 산출했다. 앞서 이들은 외국인과 이주노동자의 기준을 명확히 하기 위해 UN에서 사용하고 있는 이주노동자 개념을 사용했다.

UN의 국제이주노동자권리협약에 따르면 이주노동자는 ‘그 사람이 국적국이 아닌 나라에서 유급활동에 종사할 예정이거나 이에 종사하고 있거나 또는 종사해온 사람’이다. 이 기준에 따라 ▲외국 국적으로 취업활동이 가능한 체류 자격의 종류를 소지한 사람 ▲20세 이상 취업활동을 목적으로 입국한 사람 ▲취업비자 외 경제적인 목적으로 일하는 경우로 이주노동자를 정의했다. 

<일요시사>가 박 교수와 김 조교가 기초의학 학술대회에서 발표한 이주노동자 부검 관련 자료를 단독으로 입수했다. 연구 자료에 따르면 이주노동자 부검률은 내국인 부검률과 비교해 최소 4.6배, 최대 6배까지 높았다. 이주노동자가 사망 이후 부검대에 오르는 비율이 내국인에 비해 높다는 뜻이다. 

2016년 이주노동자 사망자 수는 2469명이고 이 가운데 336명(13.6%)을 부검했다. 2017년 17.3%(435명/2515명)로 치솟은 부검률은 2018년 16.4%(425명/2587명), 2019년 17.3%(462명/2670명), 2020년 17.4%(495명/2843명)를 기록했다. 

세부 내용 따라 격차 커질 수도
위험한 환경 노출로 죽음 위기↑


박 교수는 “이주노동자가 사망할 경우 내국인과 비교해 그 절차가 복잡하다. 수사 후 그 결과를 해당 대사관이나 본국에 있는 가족에게 전달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불필요한 오해나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 원칙대로 하다 보니 내국인은 넘어갈 건도 부검하게 되는 경우가 있어 부검률이 높게 나타났다고 보는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또 사망 당시 이주노동자가 처해있던 상황이 법의부검의 대상이 된 경우가 많았을 가능성이 있다. 사고사나 산업재해, 타살 등 내국인도 일반적으로 부검을 하는 사례에 높은 빈도로 노출돼있기 때문에 부검률이 높게 나타났다는 것이다. 우리가 주목하는 지점은 후자”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이주노동자 부검률이 현재 연구 결과보다 더 높게 나타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추락했거나 가격당하는 등 물리적 손상이 아닌 직업병이나 직업성 질환은 산출 과정에서 산업재해가 아니라 질병으로 제외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부검률이 내국인과 비교해 5배 넘게 높다는 점은 세부적으로 분석하면 더 큰 차이를 보일 수 있다는 의미다. 

여기에 연령대가 20~60대에 집중돼있는 이주노동자의 특성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내국인 사망자 연령별 분포를 보면 신생아나 노인 등 아주 어리거나 고령일 때 생을 마감하면 부검을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주노동자는 신생아나 고령층이 많지 않다. 연령대의 양 가장자리가 없는 상황에서도 부검률이 상당한 수준인 셈이다. 

앞뒤 빼고도
더 높았다


특히 20~40대 등 내국인의 경우 사망률이 낮은 연령대로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이주노동자의 부검률이 더 높게 나타날 수 있다. 또 내국인 20~40대의 사망원인 1위가 극단적 선택인 반면, 이주노동자의 경우 사고사나 타살의 비율이 높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내국인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이주노동자 주변에 ‘죽음의 위기’가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이주노동자 법의부검 연구 박종필 연세대 의과대학 조교수·김기하 조교 인터뷰

“외국인 사망 자료 없다”

지난 9월20일 연세대 의과대학 본관에서 ‘이주노동자의 법의부검’에 대해 연구 중인 박종필 법의학과 조교수와 김기하 조교를 만났다.

이들은 지난해 3월부터 본격적인 연구에 돌입해 지난 7월1일 경주화백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기초의학 학술대회’에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다음은 박 교수·김 조교와의 일문일답.

-연구를 시작한 계기는.

▲의과대학 학생 때부터 이주노동자라는 특정 계층에 관심이 있었다. 그 관심을 이어오다가 법의학자가 된 뒤 부검을 하는 과정에서 외국인 특히 이주노동자를 자주 접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를 실제로 확인해 보고 싶다는 생각에 연구를 시작하게 됐다.(박종필)

-자료는 어떻게 수집했는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본원과 지역사무소, 한국법의의원, 경북대 등에서 부검 자료를 받았다. 이중에서 이름 등을 통해 외국인을 선별했다. 재외동포 등 이름으로 구분이 어려운 때는 부검장부를 확인, 크로스체크를 진행해 누락률을 낮추려고 노력했다.(김기하)

부검하다 자주 접하지만…

-연구 과정에서 어려웠던 점이 있다면.

▲외국인 사망 자료가 정말 없다. 법의부검률을 사망자 수 대비가 아니라 변사자 수 대비로 산출하려 했는데 기관에서 외국인 변사자에 대한 개념이나 분류 자체가 전혀 안 돼있었다. 이 자료가 없다 보니 법무부에서 받은 총 외국인 사망자를 분모로 해 부검률을 낼 수밖에 없었다.(김기하)

-유의미한 결과가 나왔는데. 

▲결과는 유의미하게 나온 게 맞는데 디테일한 부분에서 문제가 있다. 내국인 전체 사망자 수는 통계청에서, 외국인 사망자 수는 외교부나 법무부를 통해 확보했다. 문제는 외교부나 법무부에서 이(사망자 수) 통계를 어떻게 산정하는지를 알 수 없었다는 점이다. 통계의 불확실성이 있어 이 결과에 대해 어디까지 의미 부여를 해야 될 지 조심스러운 부분이 분명히 존재한다.(박종필) <선>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우리에게 추석은 차례를 지내거나 귀향을 하는 것이 익숙한 명절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명절을 보내는 방식이 크게 달라졌다. 특히 차례를 지내는 비중은 줄어들고 MZ세대를 중심으로 긴 연휴를 활용한 여행, 단기 아르바이트, 자기계발 등을 하는 것이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추석에 차례를 지내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40%대 초반에 그쳤다. 절반 이상은 차례를 지내지 않겠다고 답한 것이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당연하게 여겨지던 차례와 제사가 더 이상 필수가 아니게 된 셈이다. 알바 우선 통계청 조사에서도 명절 의례를 간소화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 가정이 해마다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차례를 지내는 대신 긴 연휴를 여행으로 보내려는 수요가 뚜렷하게 증가했다. 한국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행 중개 플랫폼 스카이스캐너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77%가 이번 추석 연휴에 여행 계획을 세웠다고 응답했다. 특히 해외여행 비중이 크게 늘었다. 10년 전 대비 명절 여행에 긍정적인 인식이 37%에서 70%로 2배 가까이 상승했다. 검색 데이터에 따르면, 추석 연휴 기간 인기 여행지는 일본(43.1%)이 1위였고, 이어 베트남(13.2%), 중국(9.6%), 태국(7.5%), 대만(6.2%) 순이었다. 도시별로는 일본 후쿠오카(20.2%)가 가장 높은 검색 비율을 기록했으며, 오사카(18.3%), 도쿄(15.4%), 방콕(8.9%), 타이베이(8.0%)가 뒤를 이었다. 여행을 가지 않고 명절 연휴를 일터에서 보내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긴 연휴를 활용해 “돈을 벌겠다”는 사람들이 늘면서 단기 아르바이트 수요도 급증했다. 당근마켓과 같은 알바 커뮤니티와 플랫폼에는 “추석 알바 구합니다”라는 글이 다수 올라왔다. 한 20대 청년은 “쉬는 날이 길어 잠깐이라도 일을 하려 한다”고 밝혔고, 한 대학생은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선물세트 포장 알바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특히 명절 기간에는 업무강도가 높아 평균 시급의 1.5배를 지급하는 경우가 많다. 평상시에 근무할 때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많은 청년들이 명절 시즌 알바를 노리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맞춰 구인·구직 플랫폼들은 ‘추석 알바 채용관’을 운영하며 수요를 모으고 있다. 백화점과 대형 마트, 도·소매점과 전통시장에서 단기 인력을 모집하고, 선물용 고기·과일 세트 포장, 택배 상·하차, 진열·판매 등의 일자리가 집중적으로 생겨났다. 절반 이상 “안 지내요” 77%가 여행 계획 세워 지난해 추석 구인 구직 사이트 알바천국 조사에서는 응답자 중 절반 이상(53.9%)이 단기 용돈 벌이를 위해, 22.2%는 고물가로 인한 지출 부담 때문에, 18.2%는 여행 경비나 등록금 등 목돈 마련을 위해 명절 알바를 계획했다고 답했다. 이는 명절을 단순히 휴식 시간으로 보내지 않고, 생계와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집에 머무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기계발하며 추석 나기’가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혼자 추석을 보내는 일명 ‘혼추족’ 중에는 독서나 온라인 강의, 어학 공부, 자격증 준비 등에 연휴를 투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스터디 카페와 도서관을 찾는 이용객이 증가했다는 조사도 나왔다. 일부 출판사나 문화 기획사에서는 명절 연휴에 맞춰 북콘서트 같은 행사를 열기도 했다. 명절이 휴식 기간만이 아닌 스스로를 계발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같은 양상은 가족 모임에도 영향을 받았다. MZ세대는 가족·친척 모임을 스트레스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한 청년은 “친척들과 모이면 취업·결혼 얘기 등으로 잔소리를 들어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느니 차라리 그 시간에 자기계발을 하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말했다. 과거처럼 친척 모임에 시간을 할애하기보다, 필요한 경우에만 가족을 만나고 나머지 시간에는 개인활동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연휴를 도심에서 보내는 ‘혼추족’을 겨냥해 유통·외식업계도 다양한 이벤트를 내놓고 있다. 수도권 맛집 가이드, 추석맞이 전시·공연, 집콕형 OTT·게임 프로모션 등이 대표적이다. 편의점과 HMR(가정 간편식) 업체는 명절 한정 도시락·한상 차림 제품을 늘리고, 명절 기간 반값·카드 제휴 할인 등 단기 판촉을 강화하고 있다. 추석 선물 시장도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예전에는 굴비·한우·고급 과일 세트 등 전통 품목이 중심이었지만, 최근에는 실속형·소포장 선물세트가 늘었다. 대표적으로 대형마트에서는 고급 커피·차 세트, 수제 디저트처럼 가볍게 주고받을 수 있는 소포장 구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일과 자기계발이 더 유익해” 명절 스트레스 가족 모임 불참 온라인몰에서는 올리브 오일, 참기름, 견과류, 꿀 등 건강 지향 소품목 세트가 매출 상위에 오르기도 했다. 실속형·소포장 선물을 찾는 배경에는 고물가 부담과 1~2인 가구 증가가 있다. 소비자들은 예전처럼 고가 선물을 준비하기보다, 실용적이고 보관이 편리한 상품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 명절을 함께 보내는 가족 규모가 줄면서 필요한 양만큼만 담긴 선물세트가 ‘부담 없는 선택’으로 자리 잡았다. 가격 대비 효용을 중시하는 MZ세대 소비자층도 이 같은 흐름을 이끌고 있다. 모바일 선물하기 판매는 전년 추석 대비 두 배 이상 늘었고, 온라인몰도 같은 기간 선물세트 매출이 2배 가까이 증가했다. 편의점 앱을 통한 선물세트 매출은 연중 대비 100% 이상 신장세가 관측됐고, 패션·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의 선물하기 거래액도 두 자릿수 증가를 이어가고 있다. 마켓컬리는 추석 기간 한시 선물하기 서비스를 운영하며 홍삼·화장품 등 선물 품목을 확장했다. 명절 식문화 자체도 간편화 된 흐름이 뚜렷하다. 1인 가구 1012만명, 2인 가구 600만명으로 소규모 가구가 크게 늘어난 가운데, 대형마트의 간편 차례상 매출은 최근 3년 연속 증가했다. 편의점의 냉장·냉동 HMR 매출은 두 자릿수 증가했고, 명절 한정 도시락은 1인 가구 밀집 상권에서 판매 비중이 높았다. 이번 추석에도 이런 흐름에 맞춰 대형 마트는 간편 차례상·냉동 밀키트 대형 할인전을, 편의점 4사는 명절 도시락 출시와 제휴 할인행사를 연달아 내놓고 있다. 밀키트와 같은 간편식의 수요가 증가한 데에는 물가 상승이 영향을 미쳤다. 소비자 설문에선 추석 전체 지출 예산이 평균 71만2000원으로 전년 대비 26%가량 늘었다는 응답이 나왔다. 지출 중에는 부모 용돈·선물 비중이 절반을 웃돌았고, 차례상 비용·내식 비용도 적지 않았다. 품목별로 과일·수산물·햅쌀·송편 등의 차례상 음식 가격 부담이 커지면서, 수입 축산물 고려 비율도 늘었다. 이 때문에 “차례상 형식을 간소화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선택의 시대 추석을 준비하는 한 30대 가정주부는 “지금은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차례를 안 지내거나 설에 한 번만 지내는 집이 많다. 고물가 시대에 음식을 다 준비하는 것은 부담되는 것 같다. 그런 형식적인 것은 간소화하더라도 차례를 지내는 행위에 의미가 있으니 상관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