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이 노조를 컨트롤하는 수법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2.09.20 10:25:48
  • 호수 139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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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해 공작…돈으로 밀어붙여”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노동조합이란 노동자가 주체가 돼 근로조건의 유지, 개선 등을 목적으로 조직하는 단체다. 이런 이유로 노동조합은 노동자의 목소리를 기업에 전하며, 노동조합은 파업으로 의견을 제시한다. 문제는 기업의 대처 방법이다. 기업은 파업을 참여한 노동조합 조합원에게 손해배상청구소송을 거는 방식으로 노동조합을 컨트롤 한다.

대한민국 헌법 제33조에는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해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 “공무원인 근로자는 법률이 정하는 자만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 “법률이 정하는 주요 방위 산업체에 종사하는 근로자의 단체행동권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해 이를 제한하거나 인정하지 않을 수 있다”고 나와있다.

늘고 있는
소송의 길

노동조합(이하 노조)은 국가에서 헌법으로 보장한 권리다. 노동자 개인이 기업을 상대로 갑질이나 산업재해를 당해도 보상을 받기가 어렵다. 이때 노조에 가입된 노동자라면 노조를 통해 보상이나 구제를 받는다.

노조의 종류는 다양하다. 기본적으로 산별 노조와 기업별 노조로 나뉜다. 산별 노조는 동일 산업에 종사하는 모든 노동자를 하나의 노조으로 조직한 것이다. 기업별 노조는 기업 단위로 결정한 노조다. 산업별, 기업별로 노조이 존재하는 이유다.

노조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노동자가 신청하고 노조가 승낙한다는 합치에 따라 성립된다. 강제적인 노조 가입은 불법이다. 하지만 일부 회사의 어용노조는 단체교섭권을 가지기 위해 노동자를 강제로 가입시키고, 회사가 단체교섭권을 쥐고 움직이는 경우도 있다.


지난해 12월30일 고용노동부(장관 안경덕)는 ‘2020년 전국 노동조합 조직현황’을 발표했다.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0년 노조 조직률은 14.2%, 전체 조합원 수는 280만5000명으로 나타났다. 2019년 노조 조직률은 12.5%, 전체 조합원 수는 254만명이었다.

조직 형태별 조합원 수는 초기업노조 소속이 60.4%인 169만5000명, 기업별 노조 소속이 110만9000명이었고, 상급 단체는 한국노총이 40.1%인 115만4000명, 민주노총이 40.4%인 113만4000명, 미가맹 노조가 14.9%인 41만7000명 등으로 나타났다.

부문별 노조 조직률은 민간 부분 11.3%, 공공 부문 69.3%, 공무원 부문 88.5%, 교원 부문 16.8%이었으며, 사업장 규모별 조직률은 근로자 300명이상 사업장이 49.2%, 100~299명 10.6%, 30~99명 2.9%, 30명 미만 0.2%로 나타났다.

노조가 점점 늘어나다 보니 노동자와 기업의 대립이 날로 심화하는 양상이다. 또 우리나라 경쟁력을 갉아먹는 주된 요인으로 노사간 갈등이 지목된다.

노조 인구 254만명→280만명으로 증가
양사 갈등은 노조의 파업으로 계속 심화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세계경제포럼(WEF)이 지난해 10월 초 발표한 141개국 국가경쟁력 평가 결과를 보면 노동시장 효율성은 전년보다 세 계단 하락한 51위에 그쳤다. 노사 간 협력도 지난해 124위에서 130위로 내려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소속 36개국 회원국 중 노사 협력은 꼴찌였다.

파업은 노사 간 갈등을 심화시키는 이유 중 하나다. 노조는 파업으로 노조 조합원에게 존재감을 인지시키고, 노조원은 파업 참여에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노조 파업에 대한 사측 대응 수단은 직장 폐쇄가 있다. 여기에 더해서 기업이 파업을 참여한 노조 조합원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도 그중 하나다. 대우조선해양은 임금 인상 등을 요구해 51일간 파업을 벌인 하청노조를 상대로 500억원 규모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노조를 대상으로 한 기업의 손해배상소송이 헌법상 노동 3권을 침해한다는 논란이 이는 상황이었지만, 대우조선해양은 소송을 강행하기로 한 것이다. 노동 3권은 노동자의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하기 위해 헌법에서 정한 노동자와 그 소속단체에게 부여된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말한다.

지난달 23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대우조선해양은 지난달 19일 열린 이사회에서 하청노조인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하는 안을 보고했다. 손해배상소송은 이사회 의결을 거쳐야 하는 안건은 아니지만, 중요 사안인 만큼 보고 형식을 갖춘 것으로 전해졌다.

손해배상소송의 청구 금액은 대략 500억원이다. 대우조선해양은 노조 파업에 따라 8000억원의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노조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 소송은 노동자를 위축시키고 노조 탄압으로 이용된다는 지적이 많다. 또 500억원은 역사상 개인 노동자에게 청구하는 가장 큰 금액이라, 윤석열정부가 나서서 대우조선해양의 손해배상소송을 멈춰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점점 느는
노조원 수

민주노총 경남본부는 “대우조선해양의 500억원 손해배상소송 제기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동기본권·생존권 말살 정책이다. 투쟁 과정에서 어떠한 책임 있는 역할도 하지 않은 대우조선해양이 이제 와서 손해배상소송을 들이미는 행위는 할 말을 잃게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8월23일부터 52일간 있었던 현대제철과 당진제철소 비정규직지회 노조 파업도 손해배상소송이 진행되고 있다. 지난 6일 현대제철과 민주노총에 따르면 비정규직 노조는 코로나 범유행 상황에서 당진제철소 통제센터를 불법 점거해 ‘불법 파견 사죄와 직접 고용·정규직 전환 쟁취’를 위한 총력 파업을 벌였다.

현대제철은 이와 관련해 1인당 1000만원씩 총 246억원의 파업 관련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앞서 현대제철과 사내 협력사, 협력사 노조 등은 지난해 10월13일 당진제철소에서 고용노동부 천안지청 관계자가 참석한 가운데 점거 농성 상황 해소와 공장 정상화를 골자로 하는 안에 합의해 파업을 마무리했다.

현대제철 당진제철소 직영노조는 지난 5월2일부터 현대자동차와 기아, 현대모비스 등 타 계열사처럼 400만원의 특별격려금 지급을 요구해 당진제철소 사장실을 점거한 채 100일 넘게 점거 농성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현대제철은 직영노조가 한 요구와 관련해 지난해 하반기 임금협상에서 기본급 7만5000원을 인상했고 성과급을 이미 지급해 특별격려금은 지급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회사의 손해배상소송으로 극단적 선택을 한 노동자도 있다. 바로 한진중공업 노동자다. 한진중공업은 2011년에 대규모 정리해고를 했다. 이때 한진중공업 노조는 부산 영도의 크레인에 올라 투쟁했다.


선택은 
잔인했다

하지만 한진중공업의 선택은 잔인했다. 한진중공업은 노조를 상대로 158억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냈다. 2014년 1심 법원은 59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이때 노조는 항소하지 않았다. 항소하지 않은 이유는 금액이 얼마든, 노동자가 감당할 수 있는 금액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감당할 수 있는 금액이어야 ‘깎아달라’는 말이라도 할 수 있는 것.

한진중공업의 손해배상청구 소송판결은 확정됐지만, 집행은 하지 않았다. 노조가 다시 회사에 위협을 가하면 손해배상 가압류를 집행할 거란 이야기가 떠돌았다. 노조 간부들은 손해배상 가압류가 진행될까 염려돼 개인재산을 만들 수도 없다. 당연히 노조 조합원은 떠나갔고, 노조가 정상적으로 운영될 수도 없었다.

한진중공업이 노조 상대로 158억원 손해배상청구소송을 걸었던 2011년 겨울, 한진중공업 노동자였던 최강서씨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 유서에는 “민주노조 사수하라, 손해배상 철회하라. 태어나 듣지도 보지도 못한 돈 158억…돈이 전부인 세상에 없어서 더 힘들다”고 남겼다.

기업이 손해배상소송을 취소한 경우도 있다. 하이트진로는 지난달 29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 소속 조합원 25명을 상대로 총 27억7000만원 손해배상소송을 진행해서 논란이 됐다. 기존 11명을 대상으로 한 5억8000만원 청구에서 금액 기준 5배 수준으로 늘렸다. 화물연대가 하이트진로 공장 앞 도로 점유 파업, 참이슬 등 소주 출고를 막아선 것이 이유다.


당시 하이트진로 측은 “화물연대의 도로 점유 파업이 장기화하면서 손해액이 늘어났다”며 “경찰 조사를 통해 불법행위자 인적사항을 추가로 확보해 인원과 청구액을 늘렸다”고 말했다. 

하이트진로 소주 공장인 경기도 이천공장, 충북 청주공장 등에서는 지난 3월부터 운임료 인상 등을 요구하는 화물연대 소속 화물차주들의 도로 점유 파업이 이어졌다. 하이트진로는 화물차주의 파업으로 참이슬과 진로 등 소주 제품 운송이 차질을 빚으면서 지난 6월 생산을 중단하기도 했다.

거의 합의 후 손해배상소송 취하 
금액 때문에 극단적 선택하기도

6개월간 이어졌던 화물연대의 공장 봉쇄, 본사 옥상 점거 등 장기 파업 사태는 일단락됐다. 하이트진로는 지난 13일 “당사의 상황으로 인해 수개월 동안 심려를 끼쳐드려 대단히 죄송하다”며 “지난 9일 합의가 이뤄진 것에 대해 다행스럽게 생각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어 “협상이 마무리된만큼 앞으로 더 좋은 제품을 공급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 아울러 소비자 여러분의 신뢰를 얻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수양물류와 노조 간 합의는 지난 9일 이뤄졌다. ▲운송료 5% 인상 ▲공장별 복지기금 1% 조성 ▲휴일 운송단가 150% 적용 등 사안에 대해 합의했다.

하이트진로는 “손해배상소송 철회 등에 합의했고, 이외에도 수양물류와 차주 간 향후 진지하게 논의하고 협의를 이어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유성기업은 2011년 아산공장에서 벌어진 파업으로 10년간 손해배상소송을 이어나갔다. 2심에서 10억1000만원 배상 판결이 나왔는데, 지난해에 노사 합의로 회사가 소를 취하했다. 노조는 주야 2교대를 주간 연속 2교대로 전환해줄 것을 회사에 요구했다. 

회사는 40억원의 손해배상소송을 냈는데, 유시영 회장은 나중에 부당노동행위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노무법인 창조컨설팅의 자문을 받아 노조 파업에 직장폐쇄로 응수하고 어용노조를 만들어 기존 노조 와해 공작을 한 것이다.

파업 당시 유성기업 영동지회 지회장이었던 이정훈씨는 “우편물이 자꾸 송달되니까 가정불화가 생기고 방황하면서 조합원들이 사망하기도 했다”며 “매일 아침저녁 조합원들과 미팅하면서 소송 상황을 투명하게 알리고 우리가 어떻게 대응할 예정이라는 점을 알려줄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이씨는 “하루 벌어서 하루 먹고사는 노동자에게 천문학적 액수의 소송을 내는 것은 그 돈을 정말 받겠다는 목적은 아닐 것”이라며 “손해배상소송을 걸어서 노조를 와해시키려는 목적”이라고 말했다.

기업이 노조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거는 것을 방지하고자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원청 책임‧손해배상 금지 노조법 2‧3조 개정 운동본부는 지난 14일 오전 11시30분 국회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에서는 “손해배상청구는 노동자의 노동권을 파괴하고 있다. 이 나라에서는 합법적인 쟁의행위를 하기가 어렵다. 어렵사리 합법적인 쟁의행위를 하더라도 작은 위법을 문제 삼아 파업 전체를 불법으로 내몰고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일도 허다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손해배상청구는 손해를 배상받을 목적이 아니라 파업하는 노동자를 괴롭혀서 노동권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하려는 목적으로 활용된다. 손해배상을 당한 노동자의 삶은 파괴되고 노조는 무력화된다”고 말했다.

노동권
무력화

이들은 “노동권을 훼손하는 노조 활동에 대한 손해배상과 원청 책임의 불인정은 국제노동기구(ILO) 등 국제사회에서도 문제라고 지적해왔다. 노동자는 단결해 파업하고, 사용자와 대등하게 교섭을 할 수 있어야 현재의 불안정하고 불평등한 노동자들의 삶을 개선할 수 있고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울러 “그동안 노동권을 지키기 위해 싸워온 노동자들이 있다. 늦었지만 노동시민 사회가 이 노동자들과 함께 노동권이 훼손된 현실을 바꾸고자 한다”며 “향후 일정은 노동자와 시민에게 노조법 개정의 필요성을 알리고, 노동권을 지키기 위해 싸워온 이들과 연대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alsw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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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