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대한항공 성범죄 ‘입꾹닫’ 회장님, 왜?

상사에 당했고 회사가 버렸다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대한항공의 성범죄 사건 대처가 점입가경이다. 가해자에 대한 징계 절차도 밟지 않은 데 이어 사직서를 받아들여 논란이 됐다. 특히 최근에는 피해자와의 민사소송을 재판부가 조정하자 항소한 것으로 확인됐다. 법조계에서조차 이번 대한항공의 항소는 굉장히 이례적인 것으로 보고 있다. 통상 사측이 성범죄 사건 1심 민형사 재판에서 패소하게 되면 도의적인 책임을 지고 항소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A씨가 피해를 본 것은 5년 전이다. 수치스러운 사건이라 공개되는 것은 원하지 않았고 조용히 처리되기를 원했다. 그러나 사실상 가해자 편에 서서 어떤 조치도 하지 않는 사측의 행태에 분노했다. 사건이 알려지자 동료들의 수군거림, 집단따돌림을 겪어야 했다. 실태조사에 나선다고 했던 대한항공은 오히려 A씨를 향한 2차 가해를 방관하거나 모르쇠로 일관했다.

지속된 피해
모르쇠 일관

2017년 여름 가해자는 업무 문제로 곤란한 상황에 처한 부하직원을 외부로 불러내 성폭행하려 했다. 그러나 피해자 A씨는 과거 성희롱 사건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경험했기에 쉽사리 신고하지 못했다. 그는 가해자와 직원들로부터 지속적인 성희롱, 직장 내 괴롭힘과 인사상 불이익 등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실제 A씨는 회사에 해당 사건을 알린 후 갑자기 서비스 클리닉 입과자로 통보받았다. 서비스 클리닉은 서비스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는 직원을 대상으로 하는 자아비판 프로그램이다. 피해자 입장에서는 교육이라는 이름의 망신주기, 징벌적 조치라고 느낄 수 있다.

A씨는 사측에 가해자에 관한 철저한 조사와 추가 피해는 없는지 조사해야 한다고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에게 의견서를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조 회장은 A씨의 의견서에 단 한 차례도 답변하지 않았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당시 대한항공은 피해자의 첫 번째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실태조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피해자와 가해자가 누군지 노출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으로 보인다. A씨는 이후에도 수차례 조사를 요청했다.

그러나 대한항공은 “피해자 보호를 절대 원칙으로 이후 모든 처리 절차를 피해자 측과 상의해 결정했고, 피해자 변호인은 징계위원회 개최 시 가해자의 사직서를 조속히 접수해달라고 요청했다”며 “가해자가 추가 피해를 저지른 게 없는지에 대한 조사 요구는 접수된 바 없다”는 거짓된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피해자 측이 위원회 구성원들과 피해 사건의 내용을 최소한만 공유했고, 여러 차례에 걸치게 되는 상벌위원회 기간 등을 고려해 별도의 징계 절차 없이 가해자에게 사직서 처리를 요구하도록 했다는 주장이다.

피해자 측 변호인은 사측과의 면담 당시 ‘가해자 징계’를 언급한 적이 없었다고 전했다. 대한항공이 먼저 징계위원회를 열면 피해 사실이 대외적으로 알려질 수 있기에 ‘가해자를 따로 불러 가해 사실을 인정하면 사직서를 받는 형식으로 사건 종결 처리가 가능하다’고 거론했다고 한다.

특히 가해자에 대한 징계 절차를 거치지 말아 달라고 전한 적 없다고 강조했다. 대한항공이 피해자에 대한 추가 조사 요구가 있었음에도 없다고 한 것은 거짓말이라는 지적이다.

성폭력 피해자 압박에 사건 축소 시도
가해자 징계 없이 퇴사 처리 속전속결

이 때문에 대한항공이 가해자에게 가해 사실을 재빠르게 인정하도록 압박해 사건을 축소하려 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처음이자 마지막 면담이 진행된 날 퇴사 처리가 일사천리로 진행된 것도 미심쩍은 부분이라는 게 피해자 측 주장이다.


통상 임직원이 파면 등의 중징계를 받으면 타 회사로의 이직이 힘들어진다. 대한항공이 가해자에게 사건이 사실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중징계를 면치 못할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사직서 제출이라는 해결책을 제시해줬다는 것이다.

이 같은 미온적인 대처로 일관한 대한항공의 행태에 분노한 A씨는 고용노동부에 ‘직장 내 성희롱(강간미수)·직장 내 괴롭힘 금지 및 사용자 조치 의무 위반’ 혐의로 진정을 넣었다. 고용 당국은 현장조사를 통해 A씨가 제기한 내용을 확인하고 사건 당사자 간의 면담을 진행했다.

당국은 대한항공이 가해자에 대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봤다. 다만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지연 조사, 피해자 보호 소홀, 신고자에 대한 불리한 처우나 비밀누설 금지 등은 혐의가 없으며 다만 대한항공 직장 내 괴롭힘은 있다고 봤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중부지방고용노동청 관련 자료에 따르면 대한항공 직원 B씨의 괴롭힘 행위는 2019년 1월로 법 시행일인 2019년 7월16일 이전이므로 처벌이 불가하다고 해석했다. 법 적용 대상이 아니기에 처벌하지 못할 뿐 비상식적 행위는 존재했다는 설명이다.

당시 중부지방고용노동청은 “대한항공 내 성희롱 재발방지 및 상호 존중하는 직장문화 정착을 위해 조직문화 점검, 맞춤 전문교육 실시, 고충상담 전담자 지정 등에 대해 개선 지도를 했다”고 설명했다.

방관한 회장
의견서 무시

대한항공의 방관으로 A씨는 수면장애와 우울증에 시달렸고, 정신과 치료까지 받아야 했다.

여성가족부가 2018년 배포한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 사건 처리 매뉴얼’에 따르면 회사는 직장 내 성폭행·성희롱 발생 사실을 알게 되면 성희롱고충심의위원회나 조사위원회 등을 구성해 조사에 들어가야 한다. 조사 결과 사실로 드러나면 회사는 징계위원회나 인사위원회를 열어 가해자에 대한 징계 등 제재를 결정해야 한다.

가해자에 대한 조치 이전에 회사는 반드시 피해자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

서울중앙지법은 대한항공이 직장 내 성희롱, 성폭력 사건에 대한 실태를 전수조사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조정 결정사항을 통해 “피고 주식회사 대한항공은 외부 컨설팅업체에 위임해 회사 내 전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직장 내 성희롱, 성폭력 사건에 대한 실태를 전주조사하고 그 조사에 따른 대응책을 마련하라”고 판시했다.

그러나 대한항공은 “피고 회사가 원고(피해자) 측과 협의를 통해 가해 직원을 사직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원고 또는 노동조합을 통해 사실과 다른 언론 보도가 지속적으로 나옴에 따라 피고 회사 내·외부의 오해가 심화되고 있다”며 법원의 판단에 불복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A씨가 제기한 민사소송은 상당한 의미가 있었다. 직장 내 성폭력에 기업 책임이 있다고 인정하는 판단이 나왔기 때문이다. 지난 7월 서울중앙지법 민사32단독(유영일 부장판사)은 A씨에게 지급해야 할 손해배상액을 5000만원으로 정하고 이 중 1500만원을 대한항공이 지급해야 한다고 선고했다.


이는 손해배상액 5000만원 중 가해자가 피해자와의 조정으로 지급한 3500만원을 제외한 나머지 금액이다.

재판부는 “성희롱 방지 교육 등 다수를 상대로 한 교육을 넘어서 실효성 있는 위험 발생 및 방지조치를 제대로 하지 못한 (대한항공의)감독상의 미비가 있었다”며 “강간미수 행위는 외형적, 객관적으로 피고(대한항공)의 피용자인 ○○○(가해자)의 사무집행에 관해 발생한 사고라고 봄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이직 쉽게?
취업 돕기

앞서 2020년 7월 A씨는 가해자와 대한항공(대표이사 조원태·우기홍)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이후 지난해 1월 재판부의 강제조정을 가해자만 받아들이면서 피고는 대한항공만 남게 됐고, 2년간 진행된 1심 재판의 결과는 ‘대한항공의 1500만원 손해배상금 지급’이었다.

재판의 쟁점은 가해자의 성폭력이 ‘대한항공의 사무집행에 관해’ 발생했는지 여부였다. 민법 756조에는 ‘타인을 사용해 어느 사무에 종사하게 한 자(대한항공)는 피용자(가해자)가 그 사무집행에 관해 제3자(피해자)에게 가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나와 있다.

쉽게 말해 가해자의 성폭력이 업무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인정돼야 대한항공의 손해배상 책임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특히 사건 당시 가해자가 휴가 중이었던 상황이라, 대한항공은 ‘가해자의 성폭력이 사무집행에 관한 것이 아니다’란 주장을 내세웠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강간미수 행위가 비록 휴가 중 행해진 것이긴 하나 (가해자는)원고에 대한 업무 감독과 평정 등의 권한을 행사하는 자리로 복귀할 예정이었다”며 “(업무 관련)설명을 빌미로 원고를 불러 (강간미수 행위가)감행된 것이어서 그 배경과 동기가 외관상 업무와 관련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높은 위험군에 속할 것으로 보이는 ○○○(가해자)에 대해 성희롱 방지 교육 등 다수를 상대로 한 교육을 넘어서 실효성 있는 위험 발생 및 방지조치를 제대로 하지 못한 (대한항공의)감독상 미비가 있었다”며 “민법 756조를 그 존재 이유 중 하나인 피해자의 보호 강화라는 취지와 함께 객관적으로 살피면 (가해자의)강간미수 행위는 외형적·객관적으로 피고(대한항공)의 피용자인 ○○○의 사무집행에 관해 발생한 사고라고 봄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다만 재판부는 A씨 측이 지적한 가해자 사직 절차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해당 사건 판결문에 따르면 피해자 측은 “남녀고용평등법과 대한항공의 취업규칙에 따라 (성폭력 발생 후)대한항공이 가해자를 징계할 의무가 있었다”며 “더욱이 (대한항공은 사내)조사 과정에서 모순된 변명을 하며 도리어 피해자를 비난하는 직원(가해자)을 징계하지 않았고 그 입장을 원고에게 알려주지도 않은 채 사직 처리를 함으로써, (피해자는)형사고소 등 권리행사를 할 기회마저 상실하게 됐다”고 강조했다.

민사 조정…항소 후 회유
조사 요청 모르쇠로 일관

그러나 재판부는 “(가해자가)일부 세부 항목에 관해 이의를 제기하긴 했으나 결론적으로 (성폭력의 사실관계에)수긍했고, 나아가 사직서를 제출하지 않으면 고용관계의 종료로 결론지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징계 절차를 밟을 수밖에 없다는 피고(대한항공)의 입장에 면담 당일 사직서를 제출했다”며 “이는 징계 절차를 밟아서 도달하는 해고와 결과의 면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고 봤다.

대한항공은 이 같은 법원의 판단에 불복했다. 이는 성폭력 사건에 대한 도의적인 책임을 지는 타 기업들과는 대조적인 행보다. 법원 홈페이지 내 사건번호 조회 시스템으로 사건 진행 내용을 보면 대한항공은 지난 8일 소송대리인(법무법인 한결 담당 변호사 이경우)을 통해 항소장을 제출했다.

다음 날인 9일 대한항공 소송대리인 측은 보정명령 등본까지 받았다.

대한항공은 오히려 A씨에게 노조 활동을 중단하면 실태조사를 진행하고 재발방지에 나서겠다고는 조건을 제시하는 등 회유에 나섰다. 또 언론에 보도된 대한항공 성폭력 기사에 대한 정정보도를 피해자가 요청해야 한다고 조건을 내걸었다.

다른 기업은 어떨까? 대다수의 기업이 성폭력 피해자에게 이 같은 압력과 비상식적 행위로 사건을 축소시키려 하지만 도의적인 책임까지 외면하지는 않는다. 오너가 직접 공식 입장을 밝히거나 심각한 경우 기자회견을 통해 사과하는 경우도 있다.

최근 포스코는 최정우 회장이 침묵으로 일관했으나 쇄신 계획을 발표했다. ‘성 윤리 위반 제로 회사’를 만들겠다며 사내 문화를 개선하겠다고 했다. 사건 초기의 미온적인 태도와는 달라진 모습이다.

삼성, LG, 현대차 등 주요 대기업들은 모두 성 비위와 관련해서는 무관용 원칙을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일부 권위주의적 문화가 남아있는 업종을 중심으로 곳곳에서 성폭력 사건이 지속되고 있다. 호텔신라 성추행 사건이 대표적이다. 2016년 호텔신라 입사 2년 차인 20대 여성이 같은 팀 상사로부터 세 차례 강제추행을 당했다.

성추행 발생 직후 직속 상사에게 보고했으나 회사 정식 조사는 2년 뒤에야 진행됐고, 피해자와 가해자 분리가 이뤄지지 않다가 결국 피해자만 원치 않는 부서로 인사이동됐다. 고용노동부조차 가해자의 부서 이동이 불가능했다는 회사 쪽 주장을 합리적이라고 판단했다.

도의적 책임?
“우린 모른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기업 간부는 “성추행 전력이 있는 사람이 임원을 달기도 했고, 성추행 장면이 찍힌 사진까지 나온 팀장급 직원은 보직해임을 당하고 좌천됐지만 여전히 근무 중”이라고 말했다. 금융권에서도 성폭력 사건이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국민의힘 윤창현 의원실에 따르면, 2017년부터 지난 3월까지 국내 금융사의 사내 윤리강령 위반 총 220건 중 성희롱·성추행 관련 징계가 76건으로 가장 많았다.


<hound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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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표 계승?’ 이재명정부 태양광 로드맵

‘문재인표 계승?’ 이재명정부 태양광 로드맵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전 세계적으로 기후 위기가 가시화되면서 에너지 정책은 범국가 차원에서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최근 환경부 장관 후보자의 발언으로 이재명정부의 에너지 정책 방향이 윤곽을 드러내는 모양새다. 일각에서는 문재인정부의 태양광 사업이 어른거린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3일 대통령실은 “국회 기후위기특위에서 활동하는 등 미래 환경문제를 지속적으로 고민해온 3선 국회의원”이라고 소개하면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성환 의원을 환경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했다. 김 후보자는 22대 국회 기후위기특별위원회(위원장 한정애, 민주당) 위원으로 활동하며 탈원전·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한 노력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 대선공약 대통령실은 그가 “‘기후 위기는 모두의 생존 위기’라는 대통령의 문제의식을 잘 이해하고 그동안의 입법 경험을 바탕으로 환경문제에 적극 대응할 것”이라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실제 김 후보자는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안’ ‘환경친화적 자동차의 개발 및 보급 촉진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 등을 발의한 바 있다. 이번 김 후보자의 지명으로 이재명정부의 환경 정책이 구체화되고 있는 모양새다. 김 후보자는 지난 24일 오전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이 마련된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기자들을 만나 “재생에너지 기반으로 모든 에너지 체계를 바꾸고 화석연료에 의존하지 않는 재생에너지 중심의 체계를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원전은 보조 에너지원으로 활용하겠다는 뜻도 비쳤다. 그는 ‘재생에너지를 늘리면 전기료가 오른다’는 우려에 대해 “전 세계적으로 균등화발전비용(같은 양의 전력을 생산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가장 싼 전원은 이미 풍력과 태양광”이라며 “다만 아직 한국에선 여러 기회 비용, 시간 비용, 금융 비용이 쌓여 상대적으로 비쌀 뿐이다. 실제 요금이 오를 일은 없다. 오히려 그런 식의 접근이 대한민국의 에너지 전환을 가로막고 있다”고 주장했다. 탈원전에 대해서는 “각 나라 특성에 따라 원전을 쓰는 나라가 있는데 한국도 탈원전을 바로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주 에너지원으로 재생에너지를 쓰고 원전을 보조 에너지원으로 쓰는 것이 (이재명정부의) 탈탄소 정책 기조”라고 말했다. 김 후보자는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으로 신설 예정인 기후에너지부 장관으로도 거론되고 있다. 기후에너지부는 분리돼있는 기후와 에너지 관련 부처 업무를 통합한 조직이다. 그는 “기후에너지 문제를 어떻게 하는 게 가장 효과적인지 빠른 시일 내로 큰 방향을 잡겠다”며 “국정기획위원회에서 조직개편안을 검토하고 있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신재생에너지로 전환 필요” “원전은 보조 에너지원으로” 환경부 장관 후보자가 에너지 ‘전환’을 예고하면서 일각에서는 문재인정부의 태양광 사업이 떠오른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대선공약으로 신재생에너지 확대를 내세운 바 있다. 이를 세부적으로 진행하는 과정에서 태양광 사업이 크게 대두돼 국가 예산이 투입됐다. 문정부는 출범하면서 203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비율을 20%까지 높이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재생에너지 3020 이행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정부는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늘리기 위해 설비를 확충하기로 했다. 태양광, 풍력발전소 등이다. 당시 내용대로면 총 110조원에 이르는 돈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정부는 국가 예산과 공기업, 민간 등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문정부 임기 내내 전국 단위로 태양광 사업을 위한 지원금이 뿌려졌다. 당시 문정부는 신재생에너지 확대와 함께 탈원전 로드맵을 동시에 진행했다. 일부 원전이 영구적으로 정지됐고 짓고 있던 원전 공사가 중단됐다. 단계적 원전 감축 계획을 세우고 이를 신재생에너지로 대체하겠다는 취지였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나온 잡음이다. 특히 태양광 사업을 둘러싼 각종 비리 의혹은 정권이 교체된 이후에도 문정부를 오랫동안 괴롭혔다. 국가 주력 사업이었던 만큼 정권이 바뀐 이후 새 정부의 표적이 된 상황에서 실제 문제가 드러난 것이다. 천문학적 예산 투입 윤석열정부는 신재생에너지 지원 사업에 대한 대대적인 점검을 진행했다. 윤정부 국무조정실은 일부 표본만 조사했는데도 불구하고 2000억원이 넘는 돈이 불법으로 사용된 정황이 드러났다고 발표했다. 당시 국무조정실 정부합동 부패예방추진단은 전국 12개 지자체와 한국전력, 한국에너지공단을 대상으로 ‘전력산업 기반기금 사업’ 운영 실태에 대한 합동 점검을 벌인 결과 총 2267건(2616억원)의 위법·부당 사례를 적발했다고 밝혔다. 해당 기금은 산업자원통상부(이하 산업부)가 전기 요금의 3.7%를 징수해 조성한 돈으로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지원과 보급에 주로 사용됐다. 5년간 투입된 금액은 12조원에 이른다. 1차 조사에 따르면 신재생에너지 지원 사업에서 부적절한 대출과 보조금 부당 집행, 회계 부실 등이 적발됐다. 태양광 사업의 경우 점검 대상의 17%인 1129건에서 1847억원의 위법 대출 등이 확인됐다. 2차 점검에서는 적발 금액이 2배로 늘었다. 국무조정실은 2019~2021년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에 쓰인 금융지원사업(1조1325억원) 내역과 2017~2021년 보조금 지원 규모가 컸던 25개 지자체의 발전소 주변 지역 지원사업 등을 조사했다. 그 결과 금융지원 사업에서 4898억원, 발전소 주변 지역 지원 보조금 사업에서 574억원, 전력 분야 연구개발 지원사업에서 266억원, 기타 전력기금 사업에서 86억원의 부정 집행 사례가 나타났다. 당시 국무조정실 관계자는 “신재생에너지 지원금 대부분은 태양광 사업에 쓰였다”며 “가장 규모가 컸던 부정 금융지원 사업 사례 중 99%는 태양광 사업”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태양광 업자들은 허위 세금계산서를 발행해 불법 대출을 받았고 가짜 세금계산서로 공사비를 부풀려 지원금을 타냈다. 감사원 조사로 검찰 수사까지 대출을 받은 뒤 세금계산서를 취소, 축소하는 등 탈루가 의심되는 정황도 드러났다. 가짜로 버섯 재배 시설이나 곤충 사육 시설, 축사 등 농림축산업 시설을 만들어 놓고 신재생 시설을 짓겠다고 대출을 받은 경우도 있었다. 농지에 신재생 시설을 지을 때는 용도변경 등 인허가 절차가 필요하지 않고 생산한 전력을 팔 때 받을 수 있는 보조금 한도도 커진다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한 마을회는 마을 창고를 짓겠다며 전력기금에서 돈을 받아 부지를 사들였지만 실제 창고는 짓지 않았고 부지는 마을회장이 6촌에게 되팔았다. 지방자치단체의 문제도 드러났다. 한 군은 타낸 보조금을 다 쓰지 못하고 약 24억원이 남자 이를 다른 계좌로 빼돌렸다가 적발됐다. 한 시는 보조금을 빼돌려 관용차를 사기도 했다. 감사원 조사도 이뤄졌다. 감사원은 2023년 11월 ‘신재생에너지 사업 추진 실태’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신재생에너지 사업의 목표와 이행, 인프라 구축, 관리 등 3개 분야로 나눠 추진 과정과 집행 전반을 들여다봤다. 감사원에 따르면 산업부는 2017년 신재생 발전 목표를 상향하면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검토했지만 막상 후속 조치 이행에는 소홀했다. 감사원은 “톱다운(하향식) 방식으로 내려온 목표에 따라 무리한 계획이라도 수립해야 했다는 이유로 실현 가능성이 떨어지는데도 면밀한 검토 없이 강행되고 짧은 기간 내 일관성 없이 변경됨으로써 정책 혼선과 신뢰성 저하를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윤석열정부서 전반적 점검 8000억 넘는 예산 줄줄 샜다 대통령의 대표 공약이었던 만큼 정부 부처가 이를 맞추기 위해 과도하게 정책을 추진했다는 것이다. 문정부가 신재생에너지 확대로 야기될 수 있는 전기요금 인상 가능성을 감췄다는 지적도 나왔다. 감사원 감사 결과에 따르면 산업부는 문정부의 국정 과제대로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늘릴 경우 2030년까지 전기요금을 40% 가까이 올려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당시 청와대의 압박에 12년 동안 10.9%만 오를 것이라고 국민 부담을 축소했다. 태양광 사업의 여파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새만금 태양광 발전사업 비리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은 지난 1월 군산시청에 대한 추가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감사원 감사 결과 군산시 태양광 발전사업 수주 과정에서 뒷돈이 오간 정황이 포착됐고 이를 검찰에 수사 의뢰를 하면서 시작된 일이다. 당시 군산시장은 군산시가 1000억원 규모의 태양광 사업을 추진할 때 자신의 고교 동문이 대표로 있는 업체에 특혜를 준 혐의를 받고 있다. 해당 업체가 사업자금을 조달하는 금융사가 제시한 연대보증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는데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해 계약 체결을 지시했다는 게 감사원의 판단이다. 앞서 검찰은 새만금 태양광 사업을 주도한 회사 대표를 알선수재 혐의로 기소했다. 그는 태양광 발전사업 과정에서 정·관계 인사에게 로비를 해주겠다며 뒷돈을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그의 진술로 비리 의혹은 정치권으로까지 번졌다. 핵심 수사 대상에 올랐던 건설사 대표가 실종됐다가 시신으로 발견되는 일도 일어났다. 관련 시장은 반응 오는 중 이 대통령이 기후, 에너지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김 후보자가 재생에너지를 언급하면서 관련 시장이 다시 들썩이는 모양새다. 실제 태양광 관련 주가가 오르는 등 주식시장에는 벌써부터 반응이 나타나고 있다. 윤정부는 문정부의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통째로 부정하다시피 했다. 반대로 문정부의 정책을 다시 끄집어낸 이정부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