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보면 ‘더 재밌는’ 민주 전대 관전 포인트 다섯

당 대표 뽑히면 분당 직행?

[일요시사 정치팀] 정인균 기자 =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의 대진표가 확정됐다. 민주당은 ‘이재명 불가론’과 전당대회 ‘룰 결정’, 박지현 전 비대위원장의 ‘출마 무산’ 등 크고 작은 논란들로 시름을 앓아왔다. 그러나 지난 17일 전대 후보 등록이 마감되면서 분쟁은 한꺼풀 꺾이는 분위기다. 이제 각 후보들은 선거에서 이길 방법만 연구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내 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친명(친 이재명)계’와 ‘비명(비 이재명)계’로 갈라져 전투를 벌였던 각 계파는 이제 진짜 전쟁을 준비하려 한다. 그동안 민주당의 최대 쟁점은 이재명 의원의 ‘불출마 여부’였다. 다음 총선의 공천권을 쥐고 있는 당 대표에 이 의원이 출마할 뜻을 내비치자 비명계 쪽이 선거 패배의 ‘책임론’을 들어 출마를 반대한 것이다.

탐색전 끝
전쟁 시작

겉으로는 ‘선거 패배에 책임지는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여주자’는 명분이었지만, 속내는 ‘공천 배제’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이 의원은 그동안 당내에 수많은 적을 만들어왔다. 2017년 대선 경선 당시 문재인 전 대통령과 진흙탕 싸움을 하기도 했고, 이번 대선 경선 과정에서는 이낙연 전 대표와 혈투를 펼쳤다.

싸울 때마다 적을 늘려온 이 의원은 본인도 상처를 입었지만, 반대로 상대 진영 인사들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다. 이는 민주당에 아직도 남아있는 계파 갈등의 근본적인 원인이다.


계파 갈등은 대선 경선 이후에도 계속됐다. 경선 후 ‘원팀’으로 되돌아왔던 민주당 전통을 깨고 선대위에 합류하지 않았던 의원이 있는가 하면, 급기야 몇몇 인사들은 당시 국민의힘 대선후보였던 윤석열 대통령을 공개적으로 지지하기도 했다.

이 의원 지지자들은 이때의 아픔을 아직까지 잊지 않고 있다. 이들은 대선 패배의 원인을 ‘원팀이 되지 못한’ 민주당이라 생각하고 있고, 원팀에 들어오지 않았던 인사를 하나하나 기억하고 있다. 

실제로, 대선이 끝난 후 이 의원에 대한 비판을 멈추지 않았던 민주당 의원들은 한동안 이른바 ‘이재명 지지자 표 문자 폭탄’에 시달려야만 했다. 뿌리 깊은 당내 갈등에 골머리를 앓고 있던 비명계에게 이 의원의 전대 출마 선언은 결정타였다. ‘공천 위기’가 현실이 되자 의원들은 각자 살길을 모색하는 중이다.

본인의 안위를 걱정하기 시작한 몇몇 의원은 친명 쪽에 붙으며 ‘태세 전환’ 중이고, 몇몇 의원들은 세를 규합해 ‘이재명 잡기’에 나서고 있다. ‘비명 진영’에서 당 대표 자리를 탈환해 친명계의 팽창을 저지하려는 속내다. ‘세대교체론’이 이들이 주로 밀고 있는 ‘탈환법’이다.

전대 등록을 마친 당 대표 후보는 ‘양강·양박’의 강훈식·강병원·박용진·박주민(모두 재선) 의원과 설훈(5선)·김민석(3선) 의원, 이동학 전 최고위원, 그리고 초선의 이재명 의원까지 총 8명이다. 이 중 네 명의 재선 의원과 이 전 최고위원이 세대교체론을 주장하며 전대에 뛰어들었다. 

물갈이, 분열, 컷오프, 최고위, 단일화…
‘친명계’ 잡으려고…각양각색 논리 동원

재선 의원들은 일찌감치 ‘97그룹(90년대 학번·70년대생)’으로 묶이며 언론의 주목을 받아왔다. ‘586세대’가 차지했던 기득권을 넘겨받겠다며 의기투합한 넷은 각각 출마선언문을 통해 기득권 타파와 ‘젊은 당으로의 회귀’를 주장했다. 


이 전 최고위원의 도전도 당이 주목하고 있는 포인트다. 유일한 원외 후보인 그는 지난 15일 국회 소통관에서 출마 선언을 하며 “승산 없는 무모한 도전이라는 비판을 잘 알고 있다”며 “자기 말을 할 수 있는 통로를 열어 전당대회가 공론의 장이자 담대한 혁신의 장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97그룹과 그의 도전까지 공식화되자 민주당 내에서는 세대교체론이 탄력을 받는 모양새다. 본래 이 전 최고위원은 송영길 전 대표가 영입한 인사다. 송 전 대표는 “미래를 함께 공감하고 세대간 소통의 다리를 이어줄 청년”이라며 그를 민주당 최고위원으로 지명했다.

1982년생으로 평생을 환경운동에 힘쓴 인물이며 열린우리당의 평당원 시절부터 민주당 일원이었던 그는 2012년에 경기도당 대학생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며 정치권에 정식으로 데뷔했다. 

비록 친명계로 분류되는 송 전 대표의 추천으로 당 지도부에 입성했지만, 현재는 이 의원의 당선을 저지하려는인사들 중 한 명이 됐다. 그 이유에 대해 그는 “지도부 기간 동안 당내 기득권에 혐오가 쌓였고 계파 싸움에 진력이 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전 최고위원과 같은 ‘젊은 지도부 인사’가 당의 쇄신을 주장하고 있는 분위기에서 친명계 카드는 점점 줄어가고 있다. 이번 전대를 바라보는 지지자 중 상당수는 이 젊은 정치인들을 관심 있게 보고 있다. 비록 이들의 도전이 실패로 끝날 가능성이 크더라도, 이들에게 전대의 흥행이 달려있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설 의원도 자신만의 방법으로 친명계를 견제하고 나섰다. 설 의원은 ‘민주당 분당론’으로 이 의원을 압박하고 나섰다. 그는 이 의원이 대표가 되면 필연적으로 당은 쪼개질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고, 이를 막기 위해서 비명계가 힘을 합쳐 이 의원을 막아야 한다고 말한다.

민주당 내에 위기의식을 고취시켜 표를 결집시키겠다는 의도다.

한마음으로
친명 견제

그는 ‘이재명의 민주당’ 아래에서는 절대 민주당이 하나가 될 수 없고, 총선이 있는 2024년 쯤엔 공천을 둘러싸고 분열이 정점을 찍어 당이 쪼개질 것으로 내다봤다. 이를 막을 수 있는 적임자가 바로 본인이라고 소개한다.

‘민주당 전통’을 지키고 있는 자신이 ‘이재명 대세론’을 잠재울 대표 후보감이라는 소리다. 설 의원은 지난 대선 경선 과정에서 당시 이 전 대표의 선거운동을 도왔다. ‘필연 캠프’의 선대위원장을 맡았고, 스스로 대변인 역할까지 도맡아 하며 ‘친문(친 문재인)’계의 좌장 역할을 수행했다.

경선 후 선거 불복 운동에 앞장섰을 뿐 아니라, 대선 기간 중 이 의원을 향한 네거티브 공격도 서슴지 않았다.

그는 현재 출사표를 던진 후보 중 가장 긴 정치경력을 자랑한다. 젊은 나이에 고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발탁돼 오랜 세월 동교동계의 핵심멤버로 활동했다. 1996년에 국회의원에 처음 당선돼 여의도에 입성한 그는 2000년 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한 후 민주당의 주류로 자리매김해왔다. 


정치적 위기도 잠시 있었다.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캠프에서 일하던 설 의원은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으로부터 ‘허위사실 유포죄’로 고소당했고, 2005년 확정판결이 나면서 ‘피선거권 10년 박탈’ 처분을 받았다.

그러나 2년 뒤인 2007년 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사면을 받아 곧바로 정계 복귀에 성공했고, 2012년부터 현재까지 내리 3선에 성공하며 베테랑 정치인으로 자리 잡고 있다. 

‘동교동계’와 ‘친노(친 노무현)’에서 ‘친문’으로 이어진 그의 정치 커리어는 당내에 혜성처럼 등장한 이 의원과는 매우 상반된다. 수십년간 민주당을 지켜온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민주당 지지자들이 크게 동요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런 그의 입에서 ‘분당’이 자주 등장하니 위기의식이 고취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의 분당 발언 이후 이 의원을 성토하는 목소리가 점차 거세지고 있고, 전대 불출마를 선언했던 친문 인사들이 물밑에서 설 의원과 젊은 당권 후보들을 적극적으로 돕기 시작했다.

2016년 이미 한 차례 분당 경험이 있는 민주당 의원들이 이번 전대가 ‘분당의 씨앗’이 될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비명계가 분당을 우려하는 이유는 비단 당 대표 선거 때문만은 아니다. 함께 치르는 최고위원 선거에서도 친명계의 강세가 두드러지고 있기 때문이다. 당 지도부 내에서 대표를 견제해야 하는 최고위원들까지 ‘이재명의 사람들’로 채워진다면 비명계 측에는 마지막 희망마저 없어진다. 


최고위원 선거에는 총 17명이 참전했다. 원내에서는 고영인·고민정·박찬대·서영교·정청래·송갑석·이수진(동작을)·윤영찬·양이원영·장경태 등 10명의 의원이 출사표를 던졌고, 원외에서는 김홍걸 의원을 도왔던 이현주 전 보좌관과 박영훈 전 민주당 대학생 위원장 등 각계각층의 민주당원 7명이 출마를 선언했다.

비명계 다수
단일화 긍정

주목해야할 점은 원내서 출사표를 던진 인사들이다. 인지도가 약한 원외 인사들이 최고위원으로 선출되는 일은 드문 만큼, 민주당 내에선 원내 인사 중에 최고위원이 나올 것으로 보고 있다.

문제는 현재 선거에 나온 원내 인사 10명 중 6명이 친명계라는 점이다. 3선의 정 의원과 서 의원, 재선의 박 의원, 초선의 장 의원과 양 의원, 이수진 의원이 친명계로 분류된다. 

전대 후 민주당 지도부는 당 대표, 원내대표, 최고위원 7명까지 총 9명으로 구성된다. 최고위원 7자리 중 5자리는 전대서 뽑히는 선출직이지만, 2자리는 당 대표가 임명한다. 원내대표는 친명계로 알려진 박홍근 의원이 이미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이 의원이 대표로 당선될 경우 지도부 구성원 중 네 명은 이미 친명계 인사로 채워지게 된다.

여기에 선출직 최고위원 2명이 가세하면 이 의원은 당 지도부를 완벽히 장악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6명 중 2명 이상이 당선될 가능성이 다분하다고 정계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당선이 유력시되고 있는 친명계 의원은 “친문이 곧 친명”이라고 선언한 3선의 정청래 의원이다. 거침없는 발언과 여당에 대한 날선 견제로 당내 수많은 지지자를 확보하고 있는 그는 대표로 거론될 정도로 영향력이 막강한 인물이다.

최근에는 당내 초선 강성 그룹인 ‘처럼회’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입지를 더 공고히 하고 있다. 당초 정 의원은 당 대표에 출마할 것으로 알려졌으나 후보 등록 막판에 대표 출마가 아닌 최고위원 출마로 입장을 바꿨다.

그는 최고위원에 출마한 배경에 대해 “원래 제가 이재명 대통령, 정청래 당 대표를 오랫동안 꿈꿔왔고 준비도 많이 했었다”며 “원래 높은 자리, 낮은 자리를 가리지 않고 다 했었는데 이번에는 최고위원에 다시 한 번 도전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재명을 당 대표로 밀어주기 위한 초석’이라는 것이 당내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그가 말했던 ‘대통령과 당 대표 사이’처럼 ‘당 대표와 최고위원’을 그리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해석에서다.

이에 비명계에서도 반격의 카드를 준비했다. ‘친문’계로 분류되는 고 의원과 윤 의원이 입후보한 것이다. 친명계 예비후보들 뒤에 처럼회가 있다면 이들 뒤에는 ‘초금회’가 있다. 문재인정부 당시 청와대 비서진이었던 의원들이 주죽이 돼 만들어진 ‘초금회’는 이들을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5명 중 2명만…지도부 장악
1차 투표 통과에 최대 변수

세력이 약해지고 있다고는 하나, 아직 ‘친문’은 당내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전대에서는 중앙위원회의 입김이 강력히 작용한다.

그동안 기득권을 차지하고 있던 비명계에 상당한 영향을 받는 중앙위원들은 아직 비명계 인사들에게 더 호의적이다. 특히 17명에서 9명을 낙마시키는 최고위원 1차 컷오프(오는 28일 예정)는 중앙위 100%로 이뤄진다. 중앙위가 ‘친명계를 견제하자’는 뜻에 동조한다면 최고위원 최종 후보 8명 중 과반이 비명계로 채워질 가능성이 농후한 것이다.

비명계의 막판 단일화 여부는 이번 전대의 최대 관전 포인트다. 강한 후보를 잡기 위해 군소 후보들이 뜻을 모으는 것은 정치권의 오래된 승리 공식이다. 전대에 출마한 8명의 후보 중 7명은 비명계로 분류되는 인사들이다. 1차 컷오프에서 3명으로 추려질 대표 후보군에는 이 의원과 97그룹 2명, 혹은 설 의원이 올라갈 가능성이 크다.

97그룹 의원들은 이미 단일화를 가시화한 바 있다. 강훈식 의원은<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아직은’이란 단서를 달긴 했지만, 막판 단일화에 대한 가능성 자체는 열어뒀다. 그는 “컷오프 이전 단일화는 불가능하겠지만, 후에 가치와 노선이 맞으면 단일화는 가능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예비후보인 강병원 의원은 지난 21일 비명계 후보들에게 단일화를 공식 제안했다. 그는 본인의 SNS에 “강훈식, 김민석, 박용진, 박주민, 설훈, 이동학 후보님께 제안한다. 당의 미래를 위해 단일화를 해야 한다”며 “오는 28일 당 대표 후보 3인을 추리는 컷오프 이전에 ‘단일화 공동 선언’에 동참해달라”고 적었다.

비명계 예비후보들 중 최초로 단일화를 공식화한 셈이다.

설 의원 또한 컷오프를 단일화 시점으로 보고 있다. 그는 “컷오프를 진행하게 되면 8명에서 3명으로 후보가 압축되는데, 이재명 의원과의 대결을 위해 본선에 올라간 나머지 두 사람이 힘을 합쳐야 할 것”이라 <일요시사>에 전했다.

다만 박용진 의원만 입장이 미묘하게 갈린다. 그 역시 단일화 자체에는 동의하면서도 명분이 이 의원에 대한 반대가 돼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박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컷오프를 통해 자연스럽게 단일화될 것이라 생각한다”며 “그러나 단일화가 당을 어떻게 바꾸겠다는 가치에 기반한 단일화가 아닌, 단순히 ‘이재명 반대’를 위한 단일화라고 한다면 설령 가능하다 한들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전당대회 후
더 파국으로?

전대에 뛰어든 이들의 여정은 오는 28일 1차 컷오프를 거친 뒤, 다음 달 28일에야 끝날 예정이다. 누가 웃을지 친명계와 비명계 중 컷오프에선 누가 살아 남을지, 분당은 현실화될지, 단일화는 이뤄질 지 등 민주당 지지자들은 발을 동동 구르며 주목하고 있다.

<ingyu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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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