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2020년 4·15 총선에서 문재인정부의 지지를 받아 대승한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는 총선이 끝나자마자 연일 의원들에게 “17대 국회 당시 열린우리당의 우(愚)를 범해서는 안 된다“며 메멘토모리 교훈을 잊지 말라고 강조했다.
163석을 얻어 거대 여당이 됐지만, 2022년 3·9 대통령선거와 6·1 지방선거를 염두에 두고 하는 경고의 메시지였다.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사태 속에서 이른바 ‘탄돌이’로 불렸던 의원들이 17대 국회의원 선거에 대거 당선되면서 열린우리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했지만, 국가보안법 폐지 등 이른바 4대 개혁 입법을 밀어붙이다가 그 과정에서 여·야 갈등이 폭발했다.
이로 인해 정부와 열우당 지지율이 급락하면서 노무현정부는 개혁 동력을 상실했고, 결국 2007년 대선을 앞두고 해체되면서 대선에서 패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 2년 동안 민주당 의원들은 2020년 4·15 총선 직후 당시 지도부가 언급한 메멘토모리 정신을 망각하고, 다수 의석으로 정권 연장을 위한 입법을 강행하다가 열우당의 전철을 밟으면서 올해 3·9 대선과 6·1 지선서 패하고 말았다.
메멘토모리(Memento-mori)는 “자신의 죽음을 기억하라” 또는 “너는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 “네가 죽을 것을 기억하라”를 뜻하는 라틴어로, “언제 죽을지 모르는 죽음이라는 미래 상황을 현재 상황으로 인식하라”는 실존주의 철학의 이론을 닮고 있다.
고대국가 로마에서는 원정에서 승리를 거두고 개선하는 장군이 시가행진할 때 노예를 시켜 행렬 뒤에서 ‘메멘토모리!’를 외치게 했는데, 이는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너무 우쭐대지 말고 개선장군이지만 언젠가는 죽을 수 있으니, 겸손하게 행동하라는 의미에서 생겨난 풍습이다.
메멘토모리는 패자가 아닌 승자에게 주어지는 교훈이기에, 2020년 4·15 총선에서 패한 국민의힘 의원들에게 해당하는 교훈이 아니라 승리한 민주당 의원들에게 해당하는 교훈이었다.
그렇다면, 현 시점에서 올해 3·9 대선과 6·1 지선 승리는 총선 승리가 아니기 때문에, 메멘토모리가 국회의원이 아닌 대통령과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에게만 해당하는 교훈일까? 그렇지 않다.
대한민국 주요 선거는 정당에서 후보를 공천하고, 정당 차원에서 선거를 관리하고,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승패도 정당의 몫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현 시점에서 메멘토모리는 여당이 된 국민의힘 의원들에게 필요한 교훈이다.
그런데 올해 대선과 지선 양대 선거를 승리로 이끈 국민의힘 의원들에게 2년 전, 민주당 지도부처럼 메멘토모리 교훈을 잊지 말라고 경고하는 자가 아무도 없다.
무엇보다 2년도 남지 않은 의원 본인들의 선거인 2024년 4·10 총선을 앞두고 있는데도 전쟁에서 승리한 개선장군들이 전유물을 나눠 갖기 위해 다투듯이 싸움만 하고 있다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윤석열정부를 도와주는 국정 파트너가 돼야 할 여당인데도, 오히려 당 대표는 당원권 정지 6개월이라는 중징계를 받고 외유 중이고, 내부적으로는 안장, 김장, 철권이라는 신조어까지 나오면서 당권 싸움만 하고 있는 게 국민의힘의 현재 상황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지난 3·9 대선 때 문재인 전 대통령 지지율이 40%대를 유지하면서 느슨했던 민주당에 비해, 윤석열 대통령 임기 100일도 안 된 최근 지지율이 30%대로 떨어지면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2년 후 참패할 수도 있다”는 메멘토모리 교훈을 조금이라도 체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 지지율 30%대가 국민의힘 의원들에게 주는 메멘토모리 교훈이 된다는 게, 참으로 부끄러운 대한민국 집권여당의 모습이 아닐 수 없다.
국민의힘 당사에 메멘토모리(Memento-mori) 문구라도 걸어놓고, 개선장군에게 “자신의 죽음을 기억하라”는 메멘토모리를 외쳤던 로마의 교훈을 국민의힘 의원들이 되새겨야 할 것이다.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 당사에는 메멘토마사다(Memento-masada) 문구를 걸어놓으면 어떨까? 대선과 지선 양대 선거에서 참패했다는 사실도 까마득히 잊고, 한 달 앞으로 다가온 8·28 전당대회에서 당권을 잡기 위해 혈안이 되어 피터지게 싸우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에서 장교 임관 시 유대인이 로마군과 최후의 항전을 펼치면서 스스로 자결했던 마사다 전투를 잊지 않고 기억하겠다고 임관자들이 ‘메멘토마사다!’를 외치며 다짐하듯이, 민주당 의원들도 지금이라도 대선과 지선의 패배를 잊지 않고 기억하겠다고 다짐해야 할 것이다.
메멘토마사다도 실존주의 철학의 이론처럼 마사다 전투 패배라는 처절한 과거 상황을 현재 실제 존재 상황으로 인식하라는 교훈이다.
2024년 4·10 총선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올해 대선과 지선에서 승리한 국민의힘 의원들은 메멘토모리 정신으로, 참패한 민주당 의원들은 메멘토마사다 정신으로 무장해야 한다.
그리고 5년 후 임기를 마치는 윤 대통령과 4년 후 임기를 마치는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도 임기 내내 메멘토모리 정신으로 무장해야 다음 선거에서도 승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선과 지선 양대 선거를 승리로 이끈 후 메멘토모리 정신으로 무장했어야 했던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윤리위로부터 중징계를 받고, 최근에는 지지층 저변을 넓혀 가는 전략으로 장외전을 치르면서 메멘토마사다 정신으로 무장하고 있는 모습이 참으로 안타까운 우리 정치의 현주소가 아닐 수 없다.
메멘토모리는 “승자가 미래의 실패를 예상해 현재 겸손하게 준비를 해야 한다”는 교훈이고, 메멘토마사다는 “패자가 과거의 실패를 교훈삼아 현재 뼈를 깎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교훈으로, 둘 다 실존주의 철학자 샤르트르가 말한 실존주의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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