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제헌절(17일), 권성동 국민의힘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는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취임 100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21대 국회가 해묵은 개혁과제를 해결하는 국회가 되길 바란다”며 규제·공공·연금·노동·국방·교육개혁을 강조했다.
같은 날 국회 소통관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상임고문은 당 대표 출마 선언 기자회견에서 ‘정치개혁’과 ‘통합’을 강조했다.
야당 출신 김진표 국회의장도 이날 국회에서 열린 제74주년 제헌절 기념행사에서 대통령 권력 분산을 위한 헌법개정 논의를 촉구하며 의장 직속으로 개헌 자문회의를 두겠다고 선언했다.
제헌절에 정권을 잡고 있는 집권여당 대표는 사회 전반적 개혁 카드를 꺼내들었고, 빼앗긴 정권을 다시 찾겠다고 당권에 도전하는 야당 상임고문과 야당 출신 국회의장은 각각 정치개혁과 개헌 카드를 꺼내들었던 것이다.
개혁이란 원래 자연적인 변화에 비하면 속도가 빨라서 진보의 대명사처럼 보이지만, 비합법적인 수단을 사용하는 혁명에 비하면 보수적 색채를 띠어서인지 몰라도, 지금은 여야 모두 개혁이라는 카드를 같이 쓰고 있는 것 같다.
그래도 권 직무대행이 강조한 사회 전반의 각종 개혁은 점진적 변화에 가깝고, 이 상임고문과 김 의장이 주장한 정치개혁이나 개헌은 혁명 쪽에 가깝다는 생각이다.
개혁(reform, 改革)은 정치나 사회의 구 체제를 합법적이고 점진적인 절차를 밟아 고쳐나가는 과정을 말한다. 세계사를 보면 권력을 탈취할 때는 주로 혁명(Revolution, 革命)이나 이에 준하는 카드를 썼지만, 탈취한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주로 개혁이라는 카드를 썼다.
윤석열정부와 여당(국민의힘)도 궁극적으로는 정권 유지를 위해 사회 여러 분야에서 개혁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고, 야당도 정권을 되찾기 위해 혁명에 준하는 정치개혁과 개헌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혁명은 성공 시 주동 집단이 엄청난 힘을 갖게 되지만, 실패하면 역적이 돼 죽음도 감수해야 한다. 반면, 개혁은 주로 권력을 가진 집단이 주도하기 때문에 성공하면 정권 연장에 도움이 되고, 실패하더라도 정권만 빼앗길 뿐 훗날을 도모할 수 있다.
개혁과 혁명 사이에는 대중의 힘에 의해 형성되는 사회운동이 있다. 사회운동(social movement)은 기존의 제도권에 대해 집단행위를 통해 공동의 이익을 증진시키거나 공동의 목적을 달성하려는 집합적인 시도를 말한다. 이 같은 연유로 주동세력에 의해 행해지는 개혁이나 혁명과는 달리, 사회운동은 대중의 힘이 사회 변화를 꾀한다고 생각해 매우 우호적으로 받아들이는 편이다.
국내 현대사를 보더라도 민주화운동 같은 사회운동이 엄청난 변화를 이끌어온 게 사실이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사회운동 이면에는 항상 주동세력이 숨어 있고, 성공으로 얻은 힘은 대중의 힘이 되는 게 아닌 이들 세력의 힘이 되고 만다.
힘을 갖게 된 주동세력은 개혁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전 정권의 핵심 정책이나 인물을 완전히 바꿔 자신들에게 힘을 실어준 사회운동을 혁명의 이미지로 바꿔놓기를 좋아한다.
5·18 집단시위도 대중의 힘에 의해 일어났기에 5·18 민주화운동이라고 하는데, 촛불 집단시위는 왜 촛불운동이라 하지 않고 촛불혁명이라고 하는지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단지 정권이 바뀌었다고 촛불 집단시위를 상징적으로 촛불혁명이라 명명했다면, 아마 후세들이 언젠가는 촛불혁명의 의미를 깎아내리고 말 것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개혁은 합법적이고 점진적인 절차를 밟아 고쳐가는 과정이다.
우리는 루터의 종교개혁을 왜 종교혁명이라고 하지 않는지 깊이 생각해봐야 한다. 또 개혁이 정부나 여당에 우호적인 카드지, 야당에 우호적인 카드가 아니라는 사실을 범야권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
정부와 여당도 현재 시도하고 있는 각종 개혁들이 무늬만 개혁일 뿐, 실제 혁명 수준은 아닌지 자문해봐야 한다. 사회운동이나 혁명보다 더 어려운 것이 개혁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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