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초대석> 서울락스퍼국제영화제 수석프로그래머 허은도 감독

“인권영화도 재밌어야죠”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다들 미쳤다고 했지.” 영화제의 유일한 프로그래머이자 총기획을 담당한 1명의 ‘미친 짓’은 대박으로 마무리됐다.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 영화제를 성공적으로 마친 수석프로그래머의 눈은 벌써 다음 기획으로 향해 있었다. <일요시사>가 서울락스퍼국제영화제 수석프로그래머 허은도 감독을 만났다.

지난달 24일 개막한 서울락스퍼국제영화제(이하 락스퍼영화제)가 6일간의 대장정을 마치고 막을 내렸다. 개막작 <시대혁명>, 폐막작 <잠입> 등 영화제의 꽃으로 불리는 개·폐막작을 모두 문제작으로 배치해 영화 관계자는 물론 씨네필의 관심을 끌었다. 서울시청 광장에서 상영한 <닥터 지바고> <사운드 오브 뮤직>도 큰 호응을 얻었다. 

서울 넘어

“<닥터 지바고>를 상영한 날, 일몰 시간을 잘못 계산하는 바람에 관객을 많이 기다리게 했거든. 바람도 많이 불어서 추웠고. 그런데도 관객들이 자리를 안 뜨는 거야. 주최 측에서 빌려준 돗자리를 뒤집어쓰고 영화를 보더라고. 밤 11시까지 영화가 상영됐는데 끝까지 보고 가는 관객을 보면서 정말 감동했지.”

지난 2일 서울 서대문구에 위치한 락스퍼영화제 사무국에서 수석프로그래머 허은도 감독을 만났다. 푹 눌러쓴 모자에 티셔츠, 청바지 차림은 락스퍼영화제를 종횡무진 뛰어다녔던 때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허 감독은 “내가 늘 모자를 쓰고 다녀서 몇몇 사람은 내가 대머리인 줄 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지난해 ‘서울락스퍼인권영화제’라는 이름으로 1회를 진행한 락스퍼영화제는 올해 ‘서울락스퍼국제영화제’로 2회를 맞았다. 규모와 프로그램을 한층 업그레이드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특히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진행한 개막식이 주목을 받았다. 3000석 대극장의 1층이라도 제대로 채울 수 있겠느냐는 우려는 개막식 이후 깔끔하게 사라졌다.


“영화제는 전환점이 있어야 돼. 영화제는 개·폐막작이 성패를 가른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야. 그중에서도 개막작. 그리고 개막식을 어디서 하는지도 중요한 부분이고. 지난해에는 내 극장(명보 아트씨네마)에서 개·폐막식을 다 진행했는데, 이번에 외형을 크게 키워야겠다는 생각에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을 대관했지. 다들 미쳤다고 했어.”

자유·정의·인권을 주제로 한 락스퍼영화제는 개막작으로 홍콩 민주화운동을 다룬 주관위 감독의 <시대혁명>을 소개했다. 칸 영화제에서 깜짝 상영으로 공개된 <시대혁명>은 전 세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홍콩 정부의 범죄인 인도법안(송환법) 추진에 반대하는 홍콩 시민의 저항을 생생하게 담아냈다.

작년보다 규모 키운 2회
세종문화회관서 개막식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 자리한 관객들은 2시간30분의 러닝타임에도 대부분 자리를 뜨지 않고 끝까지 영화를 관람했다. 오케스트라 공연과 함께 영화가 마무리되자 객석 곳곳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몇몇 관객은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지난해 7월 영화를 직접 본 허 감독은 <시대혁명>을 볼 때마다 눈물을 흘린다고 했다. 

락스퍼영화제는 작명부터 결산까지 허 감독의 손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 단편영화제 시상식에서 수여한 트로피 제작도 그의 몫이었다. 개막식 사회를 맡은 이익선 앵커에게 수여된 특별상도 그의 의견이 반영됐다. 허 감독은 “이익선 앵커는 우리 영화제를 위해 헌신한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 특별상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24일 개막식에서도, 29일 폐막식에서도 허 감독은 영화 상영시간을 제외하고는 단 한 번도 자리에 앉지 못한 채 곳곳을 누볐다. 개막식 날 김문수 이사장, 이장호 집행위원장 등과 함께 레드카펫 단상 위에 올라가 잠시 주목을 받은 게 전부였다.

“낯가림이 심하다”며 인터뷰를 여러 차례 거절했던 허 감독은 막상 질문이 시작되자 거침없는 답변을 쏟아냈다.


“자유와 정의, 인권이라는 주제는 굉장히 보편적인 가치야. 그런데 몇몇 국내 영화제는 이런 가치를 정치 이념에 따라 분류해버려. 좌우를 가리지 말고 모두가 보고 다뤄야 할 가치를 진영에 따라 소비하는 상황이라고. 또 인권 영화제라고 하면 성소수자, 장애인 등 한정된 주제에 국한되는 경우가 많고. 그래서 내가 한 번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지.” 

허 감독은 인터뷰 내내 ‘재미있는 영화’를 강조했다. 관객이 찾지 않는 영화, 영화제는 정신승리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영화를 전문으로 하는 영화인이 아니라 인권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영화제를 진행하다보니 ‘프로그래밍’이 되지 않는 부분이 안타깝다고도 덧붙였다.

<시대혁명> <잠입> 문제작 상영
군인에 대한 존경심 고취 목표

그는 “영화제의 외연 확장을 위해 대중이 소비할 수 있는 영화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닥터 지바고>나 <사운드 오브 뮤직> 등 많은 사람이 고전 명작이라고 부르는 영화에는 재미와 함께 분명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고 강조했다. 자유와 정의, 인권을 맨 앞에 내세우지 않고도 얼마든지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 수 있고, 또 영화제에 그런 영화를 상영해 대중에게 보편적인 가치가 스며들도록 하는 게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개인적으로 영화가 관객을 가르치려 들면 그 순간 망하는 거라고 생각해. 관객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서 그들을 동화시켜야지, 선생님처럼 가르쳐서 데려오려고 하면 반발심이 생기게 마련이거든. 특정 인물에 대한 영화를 만들 때도 인물 위주가 아니라 일화 중심의 영화를 만들어야 돼. 그래야 그 안에 메시지를 자연스럽게 담을 수 있지.”

그러면서 6·25전쟁 과정에서 터키 군인과 전쟁 고아의 이야기를 다룬 <아일라>, 이라크 전쟁에서 사망한 챈스 필립스 일병의 유해를 미국으로 송환하는 과정을 그린 <챈스 일병의 귀환>, 아돌프 히틀러와의 협상을 거부하고 전쟁을 택한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의 고뇌를 담은 <다키스트 아워> 등의 영화를 소개했다. 

락스퍼영화제를 마친 허 감독의 눈은 ‘락스퍼영화제의 전국화’로 향해 있었다. 자유와 정의, 인권 등 보편적인 주제를 다루는 만큼 1회성 행사가 아니라 상황에 맞게 영화제를 다양하게 변주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미 다음 달 부산 광안리, 다대포 등지에서 ‘서울락스퍼국제영화제 인 부산’이 진행될 예정이다. 

그에 앞서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서울락스퍼국제영화제 앵콜’도 진행한다. 연평해전 20주년을 맞아 서울시청 광장에서 대규모 영화제를 진행,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군인에 대한 존경심을 고취시키자는 취지다. 허 감독은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제복 입은 분들에 대한 존경심이 너무 없었다. 이들이야말로 진짜 영웅”이라고 강조했다. 

전국으로

락스퍼영화제 폐막식을 진행한 사회자는 “오늘은 2회 락스퍼영화제가 끝나는 날임과 동시에 3회 락스퍼영화제가 시작되는 날”이라고 말했다. 허 감독은 “내가 할 수 없을 때까지 영화제를 꾸려 가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을 전했다. 그러면서 “전국적으로 사랑받는 영화제를 만들고 싶다”고 환히 웃었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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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