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가고 우울증 지금 우리 사회는…

쉽게 낫지 않는 ‘마음의 감기’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마음의 감기’ 우울증이 사회를 잠식하고 있다. 우울증은 불시에 찾아와 사람의 마음을 좀먹는다. 남녀노소도 가리지 않는다. 문제는 우울증과 극단적 선택이 자석의 N극과 S극처럼 맞닿아 있다는 점이다. 

우울증, 이른바 우울장애는 의욕 저하와 우울감으로 인해 신체와 정신에 증상이 나타나면서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질환이다. 감정·생각·신체상태·행동에 변화를 야기하기 때문에 개인의 전반적인 삶에 영향을 미친다. 

2주 이상
우울감 호소

일시적으로 ‘우울하다’는 감정을 느끼는 것과는 다르다. 우울증은 개인의 노력이나 의지로 해결하기 쉽지 않다. 우울증이 발병하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적절한 치료와 투약을 받아야 한다. 전문가의 조언에 따르면 우울감이 상당 정도 해소되고 발병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도 가능하다. 

문제는 우울증에 대한 인식이다. 한국 사회에서는 우울증 환자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많다. ‘의지가 부족하다’ ‘나약하다’ 등 우울증의 원인을 개인의 문제로 몰고 가는 식이다. 이렇다 보니 우울증 환자는 발병 사실을 숨기고 전문가 치료를 꺼리기도 한다. 

지난해 12월 보건복지부는 ‘2021년 정신건강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정신장애의 유병률과 정신건강 서비스 이용 현황을 파악한다는 취지에서 진행된 조사였다.


2001년 이후 5년 주기로 진행된 이번 조사는 지난해 5번째를 맞았다. 보건복지부는 전국 만 18세 이상 79세 이하 성인 5511명(가구당 1명)을 대상으로, 국립정신건강센터가 주관해 서울대와 한국갤럽 조사연구소가 3개월간 실시했다. 

그 결과 지난 1년 동안 알코올 사용 장애, 니코틴 사용 장애, 우울장애, 불안장애 등 정신건강 문제를 경험한 사람은 전체 국민의 8.5%로 나타났다. 약 355만명이다. 평생 유병률로 범위를 넓히면 27.8%에 달한다. 성인 4명 가운데 1명이 평생 한 번 이상 정신건강 문제를 경험하고 있는 것. 

이 중 우울장애 1년 유병률은 전체 1.7%로 나타났다. 보건복지부에서 정의한 우울장애는 ‘2주 이상 거의 매일 우울한 기분, 흥미 상실, 식욕·수면 변화, 피로, 자살 생각 등으로 일생생활이나 작업상 곤란을 겪는 경우’다. 남자 1.1%, 여자 2.4%로 여자가 남자보다 2배 넘게 높았다.

코로나19 사태로 감염병과 함께 우울증이 창궐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사적 모임과 외부 활동이 제한되면서 우울감을 호소하는 사람의 비율이 크게 높아진 것이다. 코로나 확산으로 일상에 큰 변화가 닥치면서 생긴 우울감이나 무기력증을 뜻하는 ‘코로나 블루(코로나19+blue)’라는 신조어가 등장했을 정도다.

실제 지난해 5월 대한신경과학회가 공개한 2020년 OECD 통계를 보면 한국의 2020년 우울증 유병률은 36.8%로 조사 대상국 중 가장 높았다. 코로나 팬데믹(대유행) 이후 한국인 10명 중 4명이 우울증을 겪고 있다는 통계가 나온 것이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우울증 유병률이 2배 이상 늘어났지만 한국 수준에는 못 미쳤다. 

발병률 높은데 치료율 낮아
숨겨진 우울증 환자 많을 듯


코로나 사태의 장기화로 우울증 유병률이 5배나 폭증했다는 전남대병원 연구팀의 연구 결과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전남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연구팀은 코로나 감염력이 없는 일반인 1492명과 대학병원 간호사 646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코로나 발생 이전 우울증 평균 유병률인 4%대보다 5배가량 높은 수치인 20.9%로 나타났다. 

전남대병원 연구팀에 따르면 코로나 블루는 ▲경제적 스트레스와 외로움을 느끼는 정도가 높은 경우 ▲정신질환을 치료 중인 경우 청년층에서 증가한다. 코로나가 장기화되면서 많은 사람이 심각한 정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실이 통계를 통해 드러난 셈이다. 

문제는 우울증 환자 가운데 전문가를 찾는 비율이 그다지 높지 않다는 데 있다. 보건복지부 조사에서는 평생 정신건강 문제로 전문가(의사 등)에게 상담 또는 치료를 받는 이른바 ‘정신건강 서비스’ 이용 비율이 12.1%에 불과했다. 

정신건강 서비스 이용률은 2016년까지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다 지난해 감소했다. 코로나 사태의 영향으로 보인다. 1년 단위로 좁히면 7.2% 수준이다. 미국 43.1%(2015년), 캐나다 46.5%(2014년) 호주 34.9%(2009년)에 비해 크게 낮은 수준이다. 

그나마 우울장애의 경우 그 비율이 28.2%로 나타났다. 우울장애를 겪는 환자 10명 중 3명 정도는 전문가를 찾는다는 뜻이다. 역으로 말하면 나머지 70%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지 못한 채 혼자 우울장애에 시달리고 있다는 뜻도 된다.

대한신경과학회에서도 이 부분을 지적했다. 우울증 유병률이 세계 최고 수준임에도 치료 접근성이 가장 낮은 수준이라는 것이다. 대한신경과학회는 “한국은 세계에서 우울증 치료를 가장 받기 어려운 나라”라며 “우울증 치료의 접근성은 외국의 20분의 1로 최저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코로나19로
악화된 상황

지난해 9월 대한신경과학회가 내놓은 또 다른 통계에 따르면 2019년 한국의 우울증 치료율(인구 1000명당 항우울제 사용량)은 OECD 국가 중 라트비아에 이어 두 번째로 낮다. 2013년 OECD 국가 중 가장 낮았던 한국의 우울증 치료율이 6년 뒤에도 전혀 변하지 않았다고도 지적했다. 

대한신경과학회는 SSRI(선택적 세르토닌 재흡수 억제제) 항우울제 사용량이 세계 최저 수준인 게 영향을 미쳤다고 꼬집었다. 정부는 정신과를 제외한 다른 진료과 의사들의 SSRI 항우울제 처방을 제한하고 있다. 2002년 3월 급여기준 고시 개정 이후 비정신과 의사의 경우 SSRI를 60일 이상 처방할 수 없다. 

더 큰 문제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지 못한, 혹은 받지 않는 우울증 환자가 극단적 선택을 할 확률이 높다는 점이다. 최근 연예인이 극단적 선택으로 유명을 달리할 때 ‘평소 고인이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 ‘주변 사람에게 우울하다는 말을 자주 꺼냈다’ 등의 말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우울증 환자의 자살률은 일반 자살률에 비해 4배가량 높다는 통계도 있다.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신용욱·예방의학과 조민우 교수팀은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발표한 100만명 이상의 진료 빅데이터(2002~2013년)를 활용해 우울증 집단의 자살률이 정상 집단과 비교해 높다고 발표했다.

남성이거나 나이가 많을수록 자살 위험은 각각 2.5배, 1.5배 높았다. 


조민우 서울아산병원 예방의학과 교수는 “전체 표본 집단 대비 우울증으로 새로 진단되는 환자의 비율은 매년 비슷했지만 전체 유병률은 계속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나 우울증이 잘 치료되지 않고 만성화되는 경향을 보인 것으로 분석됐다”고 말했다.

숨겨진 우울증 환자가 많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극단적 표현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을 가능성이 높은 이른바 ‘자살 고위험군’이 매년 늘고 있는 셈이다.

한국의 자살률은 이미 세계 최고 수준에 다다른지 오래다. 2020년 기준 한국의 자살률은 OECD 국가 중 1위다. 자살로만 1만3195명이 사망했다. 하루 평균 36.1명 수준이다. 전년 대비 4.4% 감소한 수치지만 국가 간 비교하면 내용은 처참하다. 

OECD 국가 간 연령표준화 자살률을 보면 한국은 23.5명으로 OECD 38개국 평균인 10.9명의 2배가 넘는다. 비교 대상 국가 중 자살률이 20명대인 국가는 한국과 리투아니아(21.6명)가 유일하다. 연령표준화 자살률은 국가 간 연령구조 차이를 제거한 표준화 사망률 개념이다. 

자살은 2020년 기준 한국인의 사망 원인 중 5위다. 암‧심장질환‧폐렴‧뇌혈관 질환에 이어 전체 사망의 4.3%를 차지한다. 당뇨병이나 알츠하이머병, 간질환, 고혈압, 패혈증으로 죽는 사람보다 극단적 선택으로 사망한 비율이 더 높다. 

자살률
부동 1위


질병이 아니라 외부요인에 의한 사망 중에서는 압도적이다. 외부요인으로 사망한 인구는 10만명 당 51.5명인데, 그중 25.7명이 자살로 사망했다. 운수사고는 7.7명, 추락사고는 5.2명으로 격차가 있다. 

심각한 부분은 40대 이상에서 자살률이 감소한 반면 10~30대에서 증가했다는 점이다. 특히 20대 자살률은 19.2명에서 21.7명으로 12.8%나 급등했다. 10대도 5.9명에서 6.5명으로 9.4% 늘었다. 이 같은 증가 추세는 20대 여성 자살률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16.6명에서 19.3명으로 16.5%나 늘었다. 10대 남성 자살률이 5.5%에서 18.8% 늘어난 점도 눈여겨봐야 한다. 실제 자살은 10~30대 사망 원인 중 압도적 1위다.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성인의 10.7%는 평생 한 번 이상 심각하게 자살을 생각하고, 2.5%는 자살을 계획, 1.7%는 실제 시도했다. 1년 단위로 좁히면 성인의 1.3%가 한 번 이상 심각하게 자살을 생각하고, 0.5%가 자살을 계획했으며 0.1%가 자살을 시도했다.

해당 통계에서도 드러나는 부분은 자살을 생각한 사람의 56.8%, 자살 계획자의 83.3%, 자살 시도자의 71.3%가 평생 한 번 이상 정신장애를 경험했다는 점이다. 

청소년으로 범위를 좁히면 적나라한 현실이 드러난다. 여성가족부는 지난 25일 ‘2022년 청소년 통계’ 자료를 발표했다. 그 결과 2020년 9~24세 청소년 사망자 가운데 절반은 극단적 선택으로 숨졌다는 결과가 나왔다. 2011년부터 청소년 사망 원인 1위가 극단적 선택이었는데 그 비율이 50%를 넘긴 것이다. 조사 사상 처음이다. 

2020년 기준 청소년 사망자 수는 전년보다 2.3% 감소한 1909명이다. 하지만 사망 원인인 고의적 자해(자살)가 957명(50.1%)에 이르렀다. 33.7%에서 50.1%로 17%p 이상 크게 증가한 것이다. 

최근 5년 새 35.8%→37.1%→41.0%→44.9%→50.1%로 늘어났다. 1000명 가까운 청소년이 극단적 선택으로 생을 뒤로 하는 상황이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우울감을 호소하는 청소년의 비율도 늘었다. 중·고등학생 26.8%는 최근 1년 내 우울감을 경험했고, 고등학생 27.7%, 중학생 25.9%가 1년 내 우울감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여학생(31.4%)이 남학생(22.4%)보다 우울감 경험률이 높았다. 2019년 28.2%에서 2020년 25.2%로 떨어졌지만 다시 늘어났다. 

10대 사망자 절반 극단적 선택
조사 이후 처음으로 50% 넘어

스트레스에 노출된 청소년의 비율도 다시 증가했다. 중·고등학생의 38.8%는 평상시 스트레스를 느낀다고 응답했다. 이 비율은 2019년 39.9%에서 2020년 34.2%까지 떨어졌지만 코로나 사태 이후 다시 늘었다. 스트레스 인지율은 고등학생(41.2%), 중학생(36.4%) 순으로 높았고, 여학생(45.6%)이 남학생(32.3%)보다 스트레스에 취약했다. 

65세 이상 노인에게 나타나는 노인 우울증도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된 지 오래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6월 ‘2020년 노인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2020년 3월부터 9개월에 걸쳐 노인의 가족 및 사회적 관계, 건강 및 기능상태 등을 조사한 결과다. 전국 969개 조사 구의 거주 노인 1만97명을 대상으로 면접조사를 진행했다. 

우울 증상을 보이는 비율은 2008년 30.8%에서 2017년 21.1%, 2020년 13.5%로 감소하는 추세를 보였다. 우울 증상을 보이는 남자 노인은 10.9%, 여자 노인은 15.5%로 여성에서 평균을 웃돌았다. 65~69세 8.4%, 85세 이상 24.0%로 연령이 높아질수록 우울 증상이 심해진다는 결과가 나왔다.  

한 전문가는 우울증을 호소하는 노인의 비율이 줄고 있다는 통계가 있지만 한국이 고령화 사회에 진입하면서 노인 인구가 빠르게 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절대적인 수에 있어서는 적은 숫자가 아니라는 분석이다.

여기에 젊은 층에 비해 정신과를 찾는 비율이 낮은 노인세대의 특성상 숨겨져 있는 우울증 환자의 비율이 상당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노인 자살률과 빈곤률은 OECD 국가 중 부동의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연령대가 높을수록 자살률이 높아지는 현상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노인 자살률이 전체 자살률 증가를 견인하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닌 수준이다. 노인 우울증과 자살률의 상관관계를 무시할 수 없는 이유기도 하다. 

이미 10년 넘게 나오고 있는 말이지만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최근 OECD 1위인 한국의 자살률을 낮춘다는 취지를 내세운 대한우울자살예방학회가 창립됐다. 대한신경과학회, 대한가정의학회·의사회, 대한산부인과의사회, 대한노인의학회, 대한마취통증의학과의사회 등이 힘을 모았다. 

대한우울자살예방학회에 따르면 지난 26일 창립된 학회 초대 회장으로 홍승봉 교수(삼성서울병원 신경과)가 선출됐다. 부회장에는 강재헌 교수(강북삼성병원 가정의학과), 김재유 원장(산부인과), 김한수 원장(내과), 박학수 원장(마취통증의학과), 신동진 교수(가천의대길병원 신경과)가 뽑혔다.

학회는 인구 10명당 24.6명인 OECD 1위 자살률을 OECD 평균인 11.3명 수준으로 낮춘다는 목표를 세웠다. 한국의 OECD 최저인 우울증 치료 접근성(4%)도 50% 이상으로 높인다는 계획이다.

10년 넘게
특단의 대책

홍 회장은 “한국 국민이 어디서나 우울증을 조기에 치료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자살 예방에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것은 모든 의사의 책임이며 사명”이라면서 “우울증 환자들이 숨지 않고 주위에 쉽게 알리고 도움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의 중등도 이상 우울증 치료율은 11.2%에 불과한 반면 미국의 우울증 치료율은 66.3%”라며 “이것이 총기 소유가 자유로운 미국의 자살률이 한국보다 훨씬 낮은 주요 이유”라고 덧붙였다. 


<jsjang@ilyosisa.co.kr>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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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장 올인’ 민주당 그래도 불안한 이유

‘서울시장 올인’ 민주당 그래도 불안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내년 6월 치러질 지방선거의 최대 격전지는 단연 서울시다. 서울시에 깃발을 꽂는 쪽이 전체 선거의 승리라 봐도 무관하다는 해석도 나온다. 진보 진영에서는 당원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오세훈 대항마’를 자처하는 후보군이 속속 등장했지만, 서울 시민의 마음까지 얻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전국 지역위원장 워크숍에서 제9회 지방선거(이하 지선) 승리라는 목표를 세웠다. 이달 중으로 지선 공천 룰을 확정해 빠르게 선거에 임하겠다는 방침이다. 큰 틀로는 ▲당원 민주주의 실현 ▲완전한 민주적 경선 ▲깨끗하고 유능한 후보 선출 ▲여성·청년·장애인 기회 확대 등 4대 방향이 제시됐다. 출사표 만지작 민주당은 이번 지선의 성격을 ‘완전한 내란 종식’으로 규정했다. 민주당 전국 지역위원장은 워크숍에서 ‘이재명정부 성공과 지선 승리를 위한 더불어민주당 전국지역위원장 결의문’을 통해 “국민의 준엄한 명령을 받들어 민생회복·내란청산·개혁완수라는 역사적 사명을 반드시 이루어 낼 것을 결의한다”고 밝혔다. 내년 지선서 압도적 승리를 이끌어냄으로서 ‘무능 부패한 국민의힘 지방권력’을 심판하고 ‘진짜 자치분권 균형성장’의 시대를 만들겠다는 방침이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 또한 “이정부 성공을 위해 당이 무엇을 할 것인지에 모든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다가오는 지선은 민주당의 책임과 기회의 시험대다. 당의 힘을 모아 이정부의 성공과 지선 승리라는 두 목표를 함께 이뤄낼 것”이라고 밝혔다. 주목도가 높은 서울시장 선거 최종 후보가 되는 것만으로도 존재감을 키울 수 있다. 차기 서울시장 임기는 2030년으로 21대 대통령선거 시기와 맞아떨어진다. 그동안 서울시장은 대선주자로 가는 지름길로 여겨졌던 만큼 정치인으로서 큰 꿈을 꾸는 이들에게는 ‘일생일대의 기회’다. 민주당은 서울시장 선거 본선행 티켓을 놓고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원내 의원들의 공식 출마 선언 이후에도 자칭타칭 물망에 오른 진보 인사들이 시기를 재고 있어 다양한 경선 구도가 그려질 것으로 관측된다. 박주민 의원은 민주당 내에서도 가장 먼저 공식 출마 의사를 밝힌 인물이다. 그는 “서울이 ‘맏이’ 역할을 하며 지방 도시들과 함께 성장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며 일찌감치 선거판을 예열했다. 뒤이어 민주당 서영교 최고위원이 출사표를 던졌다. 조희대 대법원장 저격수를 자처하며 존재감을 키운 그가 이번에는 “서민을 위해 일 잘하는 시장이 필요하다”며 오세운 서울시장 대항마로 나섰다. 서 최고위원은 “(오 시장은) 토지거래허가구역을 무리하게 해제하면서 부동산 폭등을 자초했다”며 “이태원 참사의 충격이 채 가시지도 않은 시점에서 큰 책임이 있는 용산구청장에게 서울시 주최 지역축제 안전관리 대상을 주는 등 시민의 요구, 시대의 요구를 전혀 읽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전현희 최고위원은 “국정감사 이후 결단을 내리겠다”며 가능성을 열어뒀다. 그는 지난달 오마이TV ‘박정호의 핫스팟’과의 인터뷰에서 “정치적 중요성이 매우 크기 때문에 반드시 승리할 후보가 서울시를 탈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그런 자리에 과연 제가 적합한 후보인지 고민을 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큰 판 향하는 의원들 오세훈만 꺾으면 끝? 지난 조기 대선 당시 ‘민주당 골목골목선대위 서울위원장’을 맡아 서울시 정책 로드맵을 짜는 데 참여한 만큼 출마 명분은 충분하다는 평이 나온다. 마찬가지로 원내 인사인 박홍근 의원과 김영배 의원도 몸풀기에 나섰다. 특히 박 의원은 자신의 거취와 관련해선 지난해 8월 당시 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과 사전 논의가 있었던 점을 강조만 만큼 오랜 고심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 원내대표를 지낸 홍익표 전 의원도 “서울시장 선거 출마를 생각하고 준비 중”이라며 도전을 시사했다. 홍 전 의원은 가장 민감한 서울 부동산 문제를 겨냥하는 등 오 시장의 강남권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를 집값 상승의 원인으로 꼽으며 저격에 나섰다. 박용진 전 의원의 출마 가능성도 점쳐진다. 박 전 의원은 “아직 정해진 건 없다”면서도 연일 오 시장을 때리며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최근에는 “민주당의 정치가 ‘영포티(젊어 보이려 애쓰는 40대)’ 정치로 전락하지 않도록 몸부림쳐야 한다”며 청년세대와의 통합을 강조하기도 했다. 원외에서는 정원오 성동구청장의 이름이 눈에 띈다. ‘K-브랜드지수’에서 서울시 지자체장 부문 1위 타이틀을 따낸 그는 활발한 SNS 활동으로 두터운 지지층을 보유한 인물이다. “나 서울 시민인데, 구청장님 좀 같이 씁시다” 등 밈(인터넷 유행 콘텐츠)이 온라인에 퍼지면서 팬덤을 등에 업고 민주당 원내 인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지 이목이 쏠린다. 민주당 후보군은 일동 ‘오세훈 때리기’에 집중하고 있다. 오 시장의 야심작인 한강버스가 연일 구설수에 오른 데 이어 최근 서울시가 최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서울 종묘 맞은편에 높이 145m 건물이 들어설 수 있도록 재정비촉진계획을 변경한 것을 두고 맹공에 나선 것이다. 지난 11일 민주당 문화예술특별위원회는 기자회견을 통해 종묘 재개발 논의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당내 서울시장 후보군인 박주민 의원과 서영교 최고위원을 비롯한 전현희·김영배·박홍근 의원 등이 대거 참석했다. 특히 박홍근 의원은 “차기 시장, 그리고 대권 놀음을 위해 종묘를 제물로 바치겠다는 것이냐”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서울 종묘가 서울시장 선거의 새로운 전장이 된 셈이다. 이리저리 혼돈의 표심 민주당에서는 윤석열정부 조기 퇴진으로 치러진 조기 대선 승리의 후광효과가 지선까지 이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번 지선 기조를 내란 청산으로 내세운 것 역시 ‘내란 VS 헌법 수호’ 프레임이 유효하다고 본 것이다. 다시 꺼내든 내란 종식 키워드가 내년 지선에서도 먹힐지는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지선 압승이라는 낙관론에 젖어 서울시 민심을 제대로 훑지 못한다면 ‘이정부 심판론’으로 되치기당할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지점이다. 민주당 출신의 한 정치권 관계자는 “서울시 선거는 ‘오세훈만 꺾으면 당선’ 같은 일차 방정식이 아니다. 오 시장이 명태균 게이트, 한강버스 등 각종 리스크에 발목 잡혀 약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서울시민이 내란 종식을 외치는 후보에게 표를 던지겠냐는 근본적인 질문에서 다시 출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구 특성만큼 변수도 많은 서울시 자체가 첫 번째 허들이다. 서울은 마포·용산·영등포·광진·동작·성동·강동·중구 등 13개 선거구를 일컫는 한강벨트를 따라 보수층이 포진해 있어 보수 텃밭으로 여겨지지만, 지난해 치러진 총선에서 민주당이 서울 48석 중 37석을 얻어 과반이 넘는 지역에 파란 깃발을 수놓았다. 그럼에도 조기 대선에서 당시 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서울시에서 각각 47.1%, 41.6%를 얻어 두 후보 간의 격차는 5.5%p에 불과했다. 여기에 범보수로 여겨지는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가 얻은 9.9%를 더하면 보수 진영이 진보 진영을 앞서게 된다. 비상계엄이라는 특수 상황을 경험했지만 40%에 달하는 서울 시민이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두 번째는 한강벨트를 따라 빼곡히 자리 잡은 부동산이다. 정부의 10·15 부동산 정책을 통해 서울시 민심을 움직이는 건 진영 간의 논리 싸움이 아닌 정책, 그중에서도 집값이라는 게 명확해졌다. 서울 전역을 토지거래허가구역과 투기과열지구·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하는 이재명표 부동산 대책이 발표된 지 약 보름 뒤 민주당 지지율이 1주일 새 10%포인트 하락하며 국민의힘에 오차범위 내에서 역전됐다. 지지층에 휩쓸릴라 한국갤럽이 지난달 28~30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민주당의 서울 지지율은 31%로 전주 대비 10%p 떨어졌다. 반면 국민의힘은 12%p 오른 32%로 집계됐다. 서울을 대상으로 고강도 대책이 발표되자 서울 민심에 본격적으로 영향을 끼쳤다는 해석이 나왔다. 이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한 전체 긍정 평가는 전주 대비 1%포인트 상승해 57%를 기록했지만, 민주당과 마찬가지로 서울 지역에서는 8%p 하락한 47%로 나타났다. 해당 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로 응답률은 12.6%다.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와 한국갤럽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결국 이번 서울시장 선거는 진영 간의 대립구도가 아닌 인물과 정책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는 의견에 초점이 맞춰지지만, 진보 진영 후보들은 본선 진출을 위해 당원의 표심을 얻는 일을 우선해야 한다는 딜레마에 빠졌다. 지선을 앞두고 민주당 지도부가 권리당원 권한을 대폭 강화하겠다고 밝힌 만큼 국민의힘과 잘 싸우는 ‘전투적인 후보’가 경선에서 압도적으로 유리하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차기 서울시장 후보 적합도를 묻는 여론조사에서 진보·여권 후보 가운데 정 구청장이 1위를 차지했다. 만일 정 구청장이 출마 의지를 굳히더라도 박주민·서영교 의원 등 쟁쟁한 원내 인사를 제치고 당원의 선택을 받을지 확신할 수 없다. 인지도면은 물론 민주당 지선 기조가 내란 청산으로 자리 잡은 한 12·3 비상계엄을 해제한 인물에게 더 많은 정치적 유산과 서사가 쥐어지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박 전 의원은 출마 가능성을 시사한 동시에 민주당 강성 지지층에게 집중적으로 질타 받았다. 2023년 8월 당시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이던 시절 체포동의안을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지던 중 불체포특권 포기 성명에 이름을 올린 31명의 의원 중 한 명인 만큼 경선 통과가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반면 민주당 지지층으로부터 꾸준히 이름을 알려온 경우 경선 통과가 수월하지만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 ‘개딸(개혁의 딸들)이 밀어준 강경파 후보’라는 꼬리표가 붙는다면 정책이나 행정가로서의 자질은 묻히고 이에 거부감을 느낀 중도층의 표가 분산될 것이란 점에서다. 당원 마음 잡으랴, 중도층 안으랴 김민석·강훈식 ‘투톱’ 차출설도 경선과 본선을 놓고 민주당의 딜레마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 대통령의 신임을 받는 ‘김민석·강훈식 차출설’이 돌면서 서울시장 선거판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인지도가 높고 행정가 면모가 돋보이는 김민석 국무총리와 강훈식 대통령실비서실장을 서울시장 후보로 내보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국정 투톱이 또다시 정치의 한가운데에 들어섰다. 앞서 김 총리는 여러 차례에 걸쳐 서울시장 출마 가능성에 선을 그어왔지만 종묘 재개발 논쟁에 뛰어들면서 다시 불을 댕겼다. 지난 10일 김 총리가 서울 종묘 일대를 찾아 “무리하게 한강버스를 밀어붙이다 시민의 부담을 초래한 서울시로서는 더욱 신중하게 국민적 우려를 경청해야 한다”고 우려를 표했는데, 이를 두고 오 시장이 “국민 감정을 자극하려 하는데 이는 선동”이라며 지선을 겨냥한 발언이라고 의심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한 차례 서울시장에 도전했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이름도 다시 거론된다. 김 총리가 서울시장 대신 당 대표로 나서고, 직을 내려놓은 정 대표가 서울시장 도전 후 대권 코스를 밟는 시나리오다. 3대 개혁을 두고 당정 불협화음이라는 의심의 눈초리가 따라붙는 만큼 교통정리를 통해 당정 서로에게 윈윈(win-win)하는 방법으로 꼽힌다. 우선 민주당 관계자들은 앞선 두 사람의 출마 가능성이 극히 낮다고 보고 있다. 가장 중요한 시기에 총리나 대통령비서실장 자리에 생긴 공백은 국정 운영에 차질이 빚을뿐더러 정부 출범 1년도 되지 않은 시기에 지선 후보로 차출할 시 모양새가 좋지 않다는 게 공통된 설명이다. 정 대표의 서울시장 도전 여부 역시 “이제 겨우 (취임) 100일이 지났다”며 일축했다. 이처럼 ‘스타 정치인’ 후보군이 물망에 오르자 당 일각에서도 지역 일꾼을 뽑는 지선의 의미가 퇴색될까 우려하는 모양새다. 경선 당락을 결정할 당원의 표심을 사로잡기 위해 지나친 선명성 경쟁이 이어질 경우 중도층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거라는 지적도 나온다. 수많은 변수들 여권 관계자는 “지선 결과를 미리 예단하기엔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 차분하게 기다리면서 후보들의 공약을 분석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이어 “앞으로 종묘 재개발 같은 이슈가 전방으로 나올 텐데 그때마다 (민주당도) 네거티브로 맞받아치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우리 당원도 내란 종식과 민생회복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사람을 최종 후보로 뽑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터줏대감 눈치 보는 국힘? 더불어민주당과 마찬가지로 국민의힘 역시 서울시장을 이번 지방선거의 최대 격전지로 보고 있다. 서울시 사수를 위해 후보군을 물색하고 있지만, 오세훈 시장의 임기가 남은 만큼 누구 하나 선뜻 도전장을 내밀지 못하는 분위기다. 이에 오 시장의 재도전이 유일한 방법으로 여겨지는 모양새다. 오 시장은 “시민들이 어떤 평가를 해줄지 지켜보며 거취를 분명히 하겠다”며 3선 도전 가능성을 내비쳤다. 명태균 게이트, 한강버스, 종묘 재개발 등 리스크를 안고 있지만 현역 프리미엄에 기댄다면 시도해 볼 가치가 충분하다고 본 셈이다. 한때 경기도지사 후보로 거론됐던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이 이번에는 서울시장 물망에 올랐다. 서울시장 출사표를 던진 민주당 박주민 의원이 “오 시장이 아닌 나 의원을 상대할 가능성이 있다”는 취지로 말하면서 이목이 쏠렸지만 정작 나 의원은 서울시장 도전 가능성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