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만 무성' 겉도는 소상공인 지원 민낯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2.04.11 11:40:58
  • 호수 137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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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효성 없고 현실성도 없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지난해 동안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에서 50만원의 ‘폐업 점포 재도전 장려금’을 받은 소상공인은 총 23만6487명이다. 벌써 코로나19가 시작된 지 2년하고 5개월. 소상공인의 상황은 그야말로 ‘벼랑 끝에 선’ 형국이다. 하지만 이들은 현실성 없이 말만 무성한 정부의 소상공인 지원이 가장 힘들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지난달 31일 법무부·중소기업벤처부·국토교통부가 합동으로 코로나19 때문에 손해 본 소상공인들을 위해 ‘임대료 감액 조정 가이드라인’(이하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 가이드라인의 기본 방침에 따르면 방역 또는 예방 조치가 시행되고, 조치 이후의 평균 매출액이 30% 이상 감소한 경우 임차인인 소상공인은 감액을 요청할 수 있다.

현 정부도

감액 금액은 매출액이 감소한 부분에 비례한 것으로 정했다. 정부는 이번 가이드라인으로 소상공인과 임대인의 조정성립률이 높아져 소송비용 등 불필요한 부담이 줄어들고, 당사자 사이에 자율적 분쟁 해결의 기준으로 활용돼 차임증감에 대한 협의가 쉬워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소상공인과 시민단체들은 실효성 없는 가이드라인이라고 지적했다.

우선 가이드라인의 임대료 감액조정 지원 대상에는 제한사항이 있다. 방역 또는 예방 조치가 없어진 뒤 매출액이 방역 또는 예방 조치 강화 이전으로 회복되는 경우, 임대인은 다시 차임 증액을 요청할 수 있는 것이다.


또 ‘감액의 구체적인 범위를 협의할 수 있다’고 정해놨다. 이에 대해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민변 민생경제위원회는 이날 “임대료 감액 조정 기준 마련 만시지탄, 권고 수준 실효성 높일 후속 조치 필수적”이라는 논평을 발표했다.

이 논평에는 가이드라인이 권고안이어서 강제성이 없고, 마련 자체가 너무 늦어서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실렸다. 이어 공공기관이 보유한 상가점포에 우선 적용하고, 대기업 프랜차이즈 본사의 지원 독려, 임대인들의 참여를 독려하기 위한 세제 지원, 독립 자영업자들이 활용할 수 있는 방법 교육 등 후속조치를 도입해달라고 밝혔다. 

이 밖에도 코로나 이후 소상공인들이 어떤 어려움을 겪었는지 다시 꼬집었다. 코로나와 방역 조치의 일환으로 시행된 ‘영업제한’ ‘영업금지’ 등으로 자영업자들의 매출이 급감한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감염병에 의한 경제사정의 변동’이라는 조건 자체가 매우 불명확하다. 또 차임증감 조정 기준도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실제 신청된 건수가 저조하다.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민변 민생경제위원회는 “이번에 발표한 감액 기준은 그동안 증감청구권이 제대로 활용되지 못했던 한계에서 한발 나아가 활용 가능한 구체적인 기준을 마련하는 데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디테일 전무한 임대료 감액 조정
이미 폐업한 소상공인이 더 많아

무엇보다도 이번 가이드라인에서 나타난 가장 큰 문제점은 너무 늦게 발표됐다는 것이다. 이미 지난해에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은 경제적으로 큰 타격을 입은 상황이다.


만약 가이드라인이 지난해 말에 나왔으면 가이드라인 기준안 활용을 시도할 수 있었지만, 현재는 이미 폐업한 소상공인과 자영업자가 많다.

이 밖에도 가이드라인에 제시된 ‘당사자 사이의 자율적 분쟁을 해결하는 기준으로 활용될 것’이라는 의견에 회의적이다.

그 이유는 기본적으로 임대인과 임차인의 관계가 갑을 관계여서 임대료 인하를 요구하는 것 자체가 어렵고, 올해 금리 인상 등으로 금융비용 부담이 늘어난 건물주가 상가임대료 인상을 요구할 확률이 크기 때문이다. 

참여연대는 정부를 향해 ▲한국토지주택공사(LH), 서울주택도시공사(SH), 지하철공사 등 공공기관이 보유하고 있는 상가점포에 가이드라인 우선 적용 ▲가맹본사가 각 가맹점주를 대신해 임대료 감액 조정 ▲임대료를 낮춘 임대인에게 ‘착한 임대인’ 정책에 따른 세제 혜택 등 인센티브 제공 ▲임대료 조정 협상이 힘든 경우 분쟁조정위원회가 조정에 참여 ▲임대료 증감청구 소송이 제기됐을 시 비송사건절차법을 개정해 상가 임차인들의 임대료 부담 해소를 요청했다.

그렇다면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제시한 소상공인 지원은 실현 가능할까.

윤 당선인은 지난달 22일 코로나로 손실을 본 소상공인·자영업자를 대상으로 한 보상 체계 마련을 위해 50조원 규모의 2차 추가경정예산 추진을 공식화하며 현 정부에 추경을 요청하겠다고 약속했다.

현 정부에서 응하지 않을 시 새로 출범하는 정부에서 코로나로 인한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의 빈곤 탈출 방안을 수립하겠다며 ‘플랜B’도 발표했다. 

소상공인연합회는 “윤 당선인은 선거 기간 동안 소상공인 위기 극복을 위해 방역지원금 최대 1000만원 지원과 함께 100% 손실 보상, 보상 하한액 인상 및 소급방안 마련, 대대적인 채무 재조정 등 강력한 소상공인 보상 정책 추진을 강조해왔다. ”며 “이에 대한 소상공인들의 기대가 큰 만큼, 최우선 국정과제로 소상공인 공약 실현을 위해 최선을 다해주기 바란다”고 윤 당선인에게 힘을 실었다.

추경 50조원 국채발행 불가피
이미 10년 만에 최고 물가상승

지난 7일 기준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사이트에는 “소상공인 지원금을 꼭 실행해달라”는 글이 132건이나 게재돼있다. 그러나 상황은 그리 녹록지 않다. ‘물가’가 윤 당선인의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4.1%나 올랐다. 4%대 물가 상승률은 2011년 12월 4.2% 이후 10년3개월 만이다.

인수위 경제 관련 분과 간사들은 윤 당선인에게 지난달 물가가 크게 뛴 원인과 배경, 향후 국민에 미칠 파급 효과 등에 대해 설명하면서 “올해 상반기뿐 아니라 하반기에도 각종 경기지표와 물가 전망이 어둡다”고 보고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새 정부의 물가 상승 대응책으로 공공요금 인상 억제 정책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으나, 현재 경제 상황과 하반기 경제 전망은 매우 우려되는 상황이다. 물가가 계속 상승하는 시점에서 50조원 손실보상 추경 편성을 하면 더욱 물가 상승을 자극할 수 있다.

지난 5일 국무회의에서는 ‘2021회계연도 국가결산보고서’를 심의·의결했다. 지난해 일반회계와 특별회계를 포함한 총세입은 524조2000억원, 총세출은 496조9000억원으로 결산상 잉여금은 27조3000억원이 발생해 7년째 흑자를 이어갔다.

다만 이 중 세계잉여금과 한국은행 잉여금 초과분 등으로 마련할 수 있는 추경 재원은 7조원 수준에 불과해 50조원에 비교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결국 소상공인 50조원 손실보상 추경 편성을 위해 지출 구조조정을 추가해 재원 10조~20조원이 마련돼도, 적자 국채 발행이 불가피하다는 의미다. 그러나 한국의 국가채무 증가 속도는 이미 선진국 중 1위다.

이에 따라 윤 당선인의 ‘소상공인·자영업자 보상을 위한 50조원 지원’이 현실성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2차 추가경정예산은 50조원보다 적을 것이란 관측이 힘을 받고 있다. 

다음 정부도


소상공인연합회는 “윤 당선인이 공약한 50조원 규모의 코로나 손실보상 추진이 공식화되고 2차 추경 편성이 논의되는 상황이다. 오랜 기간 지속된 영업제한으로 본 피해가 정당하고 온전하게 보상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차질 없고 신속한 손실보상을 위해 정치권이 힘을 모아줄 것”을 당부했다.


<alsw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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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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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