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정치팀] 정인균 기자 = 정치인들이 말을 번복하는 경우는 그동안 너무 많이 봐와서 지겨울 정도다. 자신의 욕심에 따라, 혹은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에 따라 정치인들은 자신의 뜻을 뒤집는다. 보통 비판을 듣기 마련인 이 같은 행태를 요즘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전 대표가 보이고 있다. 그러나 송 전 대표의 번복에는 비판만 따라오지 않는다.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전 대표가 서울시장에 출마한다. 송 전 대표는 지난달 31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나타나 기자들에게 “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당 대표를 지냈던 사람으로서 가진 책임감”이라며 “대선 패배는 했지만 수용할 수 없는 아픔을 달래기 위해 당이 책임져야 한다”며 출마 의지를 재차 확인했다.
번복
그는 “출마하시려는 분들이 경쟁력이 있다면 굳이 내가 거론될 필요가 없다. 그런 걸 당에서 검토할 텐데 일각에서 저에게 강력히 요청을 많이 한다”고 덧붙였다.
송 전 대표의 이날 발언은 ‘나 아니면 안되니까 나왔다’ 정도로 요약된다. 그동안 거론돼왔던 인물들이 경쟁력이 없기에 당에서 고심이 깊어졌고, 당 차원의 고민을 자신이 무시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가 펼친 이날 주장은 사실이다. <일요시사>는 일찍이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군에 대한 취재를 시작해왔다. 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측 관계자는 “현재(서울시장에) 나와 있는 후보들에서 당장 결론을 내지 않을 것”이라며 “다른 인사들에게 접촉을 시도하고 있고, 거물급 인사들을 경선에 참여시켜 서울시장 경선판 자체를 키울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는 서울시장 후보군에 마음에 드는 인사가 없다는 뜻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그의 서울시장 출마를 바라보는 시선은 두 가지다. 송 전 대표 말대로 ‘당 대표급 인사들이 지방선거에 발 벗고 나서야 한다’는 긍정적인 시선과 ‘대선 패배의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인물이 어떤 명분으로 또 다시 선거에 나오느냐’는 부정적인 시선이다.
우선 긍정적인 시선은 ‘서울시장은 그만큼 어려운 선거’라는 의견에 동의하는 데에서 출발한다. 비록 여러 명의 의원들이 출사표를 던지며 서울시장에 대한 욕심을 드러낸 바 있지만, 그들 중에는 재선을 선언한 오세훈 현 서울시장을 이길만한 경쟁력을 갖춘 사람이 없다.
이들이 나오면 ‘질 것이 뻔하기에’ 당 대표급 인사가 나와야만 경쟁이 가능하다는 분석이다.
당내 ‘친이(친 이재명)계’로 통하는 민주당 김남국 의원은 CBS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서울시장에 중진 의원이 출마해서 경선 붐도 일으키고 경쟁력 있는 후보를 발굴해내는 일에 함께 해달라는 뜻”이라며 “어떻게 보면 죽으러 가는 것, 희생하러 가는 것인데 그런 역할을 해달라는 것”이라 이른바 ‘송영길 서울시장 차출론’에 대해 평가했다.
인천 떠나 서울로 “당 요청”
커진 경선판…필패론 지배적
민주당의 한 초선 의원도 김 의원의 의견에 동의했다. 그는 “개인의 욕심 때문에 서울시장에 나가는 것은 아닐 것”이라며 “당 내부에서는 희생하는 자리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라고 <일요시사>에 알려왔다.
그러나 부정적인 의견을 내는 의원들의 목소리가 더 거세다.
서울시의원들은 지난달 31일 송 전 대표의 서울시장 출마 선언을 듣고 당일 밤 즉각 회동한 바 있다. 민주당 측에 따르면 이날 회동에는 20명가량의 의원이 참석했으며 이외 다수의 의원들도 격려 전화를 걸었다.
회동 후 20명가량의 의원들은 송 전 대표의 출마를 반대하는 것으로 의견을 수렴했다고 전했다.
이들은 1시간 정도 진행된 회동에서 ‘86 쇄신론’을 들고 나왔던 본인이 다시 등장하는 것은 모순이라는 점에 동의했고, 송 전 대표만이 유일한 대안인 것처럼 말하는 비대위에 대한 우려도 함께 전했다.
민주당의 다른 인사들 또한 이들의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최재성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이건 차출이 아니라 자출”이라고 송 전 대표의 출마 선언을 평가하며 “다음 총선에 안 나오겠다고 해놓고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서 또 나오는 분에게 서울 시민들께서 표를 주겠느냐”고 반문했다.
한편, 민주당 조응천 의원은 다른 시각에서 송 전 대표의 서울시장 차출을 비판했다. 희생도 좋지만 왜 하필 ‘서울시장’이냐는 것이다. 그는 “지역 연고 기반이 인천이신 분”이라며 “그런데 갑자기 서울로 오신다는 게 자연스럽진 않다”고 잘라 말했다.
조 의원의 주장대로 송 전 대표의 지역구는 항상 인천 계양구였다. 2000년 제 16대 총선에서 계양구에 출마한 그는 최종 득표율 48%를 얻으며 초선 의원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제18대 총선까지 내리 3선을 하며 인천에서 정치적 역량을 키워왔다.
그런 그가 인천의 얼굴이 된 것은 2010년 제5회 지방선거에서 인천시장으로 당선되면서부터다. 이때부터 송 전 대표는 인천을 대표하는 민주당 인사로 유권자들의 뇌리에 인식됐다.
사실 송 전 대표는 1992년 서울 신림동 고시촌에서 사법고시를 준비하던 시절과 대학 시절을 빼고는 서울시에 연고를 둔 적이 없다. 전남 고흥에서 태어난 그는 광주에서 고등학교를 나온 후 연세대학교 경영학과에 입학하며 서울에 처음 입성했다.
대학 졸업 직후인 1986년부터 그는 쭉 인천시 북구에 거주하며 인천에 연고를 두기 시작했다. 인천지역에서 고 노회찬 전 정의당 의원과 함께 노동운동을 하며 정치인으로서의 역량을 펼쳤다.
송 전 대표는 노동운동 중 변호사 자격이 있으면 노동자들에게 더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해 사법시험 준비를 위해 서울 신림동 고시촌으로 들어갔다. 그의 두 번째 서울 입성이었다.
사법고시에 합격하며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송 전 대표는 다시 인천으로 돌아가 인권 변호사로서 지역 운동에 투신했다. 이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에 가입하고 인천 계양구 건축분쟁조정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했다.
사실상 그의 정신적, 정치적 연고는 인천뿐인 셈이다.
그런 그가 뜬금없이 서울시장에 나온다고 하니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하고 있다. 오세훈 현 서울시장이나 직전 시장인 고 박원순 전 시장, 이명박 전 대통령 등 모두 지역구나 정치적 기반이 서울지역이었다.
그에 비하면 송 전 대표의 경우는 상당히 어색해지는 이력인 셈이다.
직진
여러 논란에 있어서 이렇다 할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는 송 전 대표 측은 서울시장 출마 선언을 뒤집을 생각이 없어 보인다. 송 전 대표가 서울시장 선거에서 낙선한다면 상당한 정치적 타격도 불가피하다. 그의 도전이 야욕이 될지, 희생이 될지 이제 유권자들이 투표로 판가름 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