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무너진 정몽규 HDC현대산업개발 회장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2.01.24 12:44:11
  • 호수 135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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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년 아이파크 또 무너졌다

[일요시사 취재 1팀] 김민주 기자 = 지난 11일 오후 3시46분경, 신축공사 중이던 광주광역시 서구 화정동 광주 화정 아이파크 아파트가 붕괴됐다. 이 사고로 공사 인력 1명이 사망했고, 5명이 실종됐다. 시공사인 HDC현대산업개발 정몽규 회장은 회장직을 사퇴하면서 실종자 구조에 총력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꼬리자르기식 사과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사 중이던 아파트가 무너졌다. 광주 화정 아이파크 공사 현장 2단지 201동의 23~38층의 건물 외벽을 제외한 대부분이 내려앉은 것이다. 사고 당일에는 잔해들로 전신주 고압선이 부딪쳐 광주 신세계백화점, 유스퀘어 등 인근 건물이 정전됐다. 

일주일 후 
현장 방문

아파트가 무너지면서 생긴 파편은 공사 현장 근처에 주차된 차량 20여대를 매몰시켰고, 인근 주민들은 대피했다.

작업 계획서에는 28~29층에 3명, 31~34층에 3명 등 공사 인력 6명이 있었다. 이 중 1명은 사망했고, 5명은 구조를 위해 수사를 진행 중이지만 2차 건물 붕괴의 위험이 있어 여전히 난항을 겪고 있다. 

광주 화정 아이파크의 시공사는 HDC현대산업개발로 회장은 정몽규다. 그는 1996년부터 1998년까지 현대자동차를 이끌었지만, 현대자동차 경영권이 정몽구 회장에게 넘어가면서 1999년부터 현대산업개발로 자리를 옮겼다. 


정몽규 회장이 HDC현대산업개발에 자리 잡은 지 23년의 세월이 흘렀고, 23년의 역사는 아파트 붕괴라는 비극으로 이어졌다. 

정 회장은 참사 발생 후인 지난 17일 오전 서울 용산구 HDC현대산업개발 용산사옥 대회의실에서 광주 아파트 붕괴사고 관련 대국민 사과와 회장 사퇴 의사를 밝히고 광주로 향했다.

정 회장은 기자회견에서 “현대산업개발은 광주시를 비롯한 관련 정부기관들과 힘을 합쳐 사고 현장을 안전하게 관리하면서 실종자 구조작업을 진행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겠다”며 “이번 사고로 인한 피해자 가족분들께 피해를 보상함을 물론 입주 예정자분들과 이해관계자분들께도 피해가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골조 등 구조적 안전 결함에 대한 법적 보증기간은 10년이지만 새로 입주하는 주택은 물론 현대산업개발이 지은 모든 건축물의 보증기간을 30년까지 늘리겠다”며 “이번 사건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며, 저는 이 시간 이후 현대산업개발 회장직에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정 회장의 회장직 사퇴에도 불구하고 피해자 가족들과 여론은 호의적이지 못하다. 피해자 가족들은 정 회장이 광주 아파트 참사가 발생한 지 일주일이 지나고 나서야 광주에 방문한 것에 대해 지적했다.

서울 본사 기자회견 후 정 회장은 광주로 내려가 피해자 가족들을 만나 사과를 했지만 이미 시간은 많이 지났다. 추운 한겨울, 피해자 가족들에게는 1분1초가 아까운 시간이다. 내 가족이 매몰돼있는 건물의 수색은 진행되지 않았고, 총책임자는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정 회장이 피해자 가족들에게 사과하고 광주에 방문한 것은 17일로 사고 발생일로부터 일주일이나 걸렸다. 12일 유병규 HDC현대산업개발 대표이사가 광주를 방문해 피해자 가족들에게 사과를 전했다. 


현대산업개발 측에서는 사고 발생 당일 정 회장이 임직원들과 함께 광주에 내려갔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고가 난 이후 정 회장은 광주에서 머물렀고 지난 토요일에 오전 회의를 마치고 서울로 이동한 뒤, 17일 HDC현대산업개발 회장직 사퇴를 밝히고 광주로 다시 돌아왔다는 것이 사측의 주장이다.

광주 화정 아파트 참사 
책임지고 회장직 사퇴

반면 18일 이용섭 광주시장은 정 회장에게 후속 조치를 촉구하며, 정 회장이 사고 발생한 지 일주일간 광주에 방문하지 않고 서울 본사에서 사퇴 발표를 한 것에 대해 실종자 가족과 국민들 모두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정 회장은 후속 조치에 대한 모든 것을 적극적으로 돕겠다고 답변했지만, 사측의 의견은 거짓으로 드러난 것이다.

정 회장은 일주일간 무슨 일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HDC그룹의 지주사인 HDC는 지난 13일부터 17일까지 HDC현대산업개발 보통주 100만3407주를 장내매수했다고 공시했다. 날짜로는 13일에 57만3720주, 14일에 29만9639주, 17일에 13만48주를 매수했다. 

또 정 회장의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는 투자회사 엠엔큐투자파트너스는 같은 기간 HDC 보통주 32만9008주를 장내매수했다.

이번 광주 아파트 붕괴사고 당일인 지난 11일 HDC현대산업개발의 주가는 전 거래일보다 19.03% 떨어진 2만850원에 거래를 마쳤다. 정 회장이 회장직 사퇴를 발표한 지난 17일은 전 거래일보다 0.79% 하락한 1만8750원에 장을 마쳤다.

HDC현대산업개발 측은 이번 매수에 대해서 광주 아파트 참사로 인한 주주가치 보호와 책임 경영을 통해 회사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기 위한 결정이라고 설명했고, 앞으로도 필요 시에는 주식을 추가 매입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증권가에서는 투자자 신뢰회복을 위한 움직이라고 해석했다. 하지만 국민의 입장은 전혀 다르다. 국민은 주식 매입으로 회사의 신뢰도를 높이는 게 우선이 아니라 근본적인 사고 수습과 구체적인 사후 대응에 집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HDC현대산업개발의 이 같은 행보가 정 회장의 사과문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한다는 비판도 일었다. 이 밖에도 피해자 가족들은 정 회장에게 원론적인 사과문이 아닌 확실한 해결책을 제시하라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실종자 두고
주주들부터?

피해자 가족 협의회는 소방대원과 인명구조견, 중장비 운용 기술자와 근로자들에 대한 안전화 마련과 휴식 보장, 피해자 가족들과 사고 현장 주변 상인들, 입주자들의 생계 대책을 마련해달라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실종자 수색이 빨리 이뤄지는 것과 위험한 환경에서 2차 피해가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사고수습통합대책본부는 실종자 5명을 수색하기 위해 구조 인력 204명, 인명구조견 8마리, 내시경 카메라와 영상 탐지기, 드론, 집게차, 굴삭기 등 장비 51대를 현장에 투입했다. 

구조대원과 구조견은 지하층 잔재물에 대한 정밀 재수색과 사고 건물 22층 이상에서도 수색 작업을 진행했지만, 이렇다할 성과는 없었다. 

본격적인 정밀 수색은 기울어진 타워크레인 해체 등 안전보강이 완료된 이후 시작될 수 있다. 대책본부는 20일 오후까지 보강 작업을 마치고 해체용 대형 크레인 두 대를 이용해 기울어진 타워크레인 해체를 시작하고, 이달 마지막주 초부터는 정밀 수색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이번 광주 아파트 참사를 지켜본 사람들은 과거의 한 참사를 기억해 냈을 것이다. 바로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이다.

이번 사태에 대해서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현장에서 특별점검대책반장으로 활동했던 이종관 삼풍백화점 붕괴 기록전시관 관장은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삼풍백화점 붕괴사고와 광주 아파트 참사는 불법·탈법·편법에 의한 참사로 데자뷰로 전했다. 

이번 광주 아파트 참사를 보고 그가 느낀 감정이 그만큼 ‘참혹하다’는 것이고, 삼풍백화점과 흡사한 방식으로 아파트가 무너진 것이다.


백화점과 아파트의 설계와 공법은 다르다. 그러나 광주 아파트의 외벽이 뜯겨나간 형태, 힘없이 뽑힌 철근은 삼풍백화점과 매우 흡사하다.

이 관장은 “무엇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공정 전반에 걸친 편법과 탈법”이라며 “27년 전이나 지금이나 현장에서 안전을 위한 기본적인 사항들이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삼풍백화점은 하중을 분산하는 슬래브가 설계보다 얇게 시공되거나 아예 설치되지 않았었다. 광주 아파트도 사정이 마찬가지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 관장은 하중을 받쳐줘야 할 동바리(바계 기둥)가 제대로 설치되지 않은 것, 콘크리트는 영상 5도 이상에서 9일 이상 버텨야 안전한데 최근 날씨가 그렇지 못했다는 점을 덧붙였다.

총체적
부실공사

처음부터 불량 콘크리트를 사용했다는 정보도 속속들이 드러나고 있다. 광주 아파트 현장에 콘크리트를 납품한 레미콘 업체 상당수가 콘크리트 재료 관리 미흡으로 국토교통부에 적발된 것이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김은혜 의원이 지난 19일 국토부로부터 제출받은 지난해와 올해 레미콘 업체 품질관리 실태 점검 결과에 따르면 사고 현장에 콘크리트를 납품한 업체 10곳 중 8곳이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

점검 결과에 따르면 콘크리트에 들어가는 자갈, 모래 등 골재를 잘못 관리했거나 배합 비율을 맞추지 않은 업체가 3곳이었고, 콘크리트 강도를 높이기 위해 사용되는 혼화재를 부적절하게 보관한 업체가 3곳, 시멘트 관리가 부실한 업체도 3곳이었다.

국토부 점검에 따르면 부적합 공장에서 생산된 콘크리트가 사고 현장에 쓰였을 확률이 높다.

정 회장의 위기는 처음이 아니다. 첫 번째 위기는 1999년이었다. 이전까지 정 회장은 고 정세영 명예회장과 함께 현대자동차를 이끌었다. 그러나 현대그룹 창업주인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요구로 그해 3월 현대차를 넘기고 대신 HDC현대산업개발을 넘겨받았다. 

HDC현대산업개발로 옮겨온 뒤 고 정세영 명예회장과 정 회장은 조직문화 변화를 이끌었다. 경영진을 현대차 출신으로 교체, 투명한 회사 업무를 강조했다.

HDC현대산업개발로 온 지 한 달쯤 뒤 아파트 분양가를 자동 계산하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만들도록 지시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현대아파트’라는 브랜드 사용을 놓고 현대그룹과 갈등이 있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국내 아파트 브랜드의 강자는 현대아파트였다. 현대아파트의 가치가 3조~4조원에 이른다는 평가도 있었다.

정 회장은 당연히 현대아파트를 사용하고 싶었지만, 당시 특허청에 등록된 상표의 법적 소유주도 HDC현대산업개발이었다. 그러나 현대그룹은 HDC현대산업개발에 ‘현대’를 사용하지 말라고 요구했고, 그 결과 2000년 HDC현대산업개발은 아이파크를 만들었다.

외벽 뜯긴 형태 삼풍백화점과 흡사 
실종자 뒷전 투자자 신뢰회복 우선?

HDC현대산업개발이 아이파크 브랜드를 개발한 뒤 꾸준히 성장했다. 1999년까지 5위권 밖이었던 HDC현대산업개발은 2000년 5위, 2004년에는 4위까지 올랐다.

이런 승승장구에도 2008년 금융위기를 비켜갈 수는 없었다. 당시 HDC현대산업개발은 주택사업을 중심으로 내수시장 위주의 사업 포트폴리오가 발목을 잡았다.

HDC현대산업개발은 해외실적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국내 시장 침체는 실적 부진으로 이어졌다. 그 결과 시공능력평가 순위가 떨어져 2014년에는 13위가 됐으며 적자는 1400억원대를 기록했다.

정 회장은 무보수 경영을 선언하는 등 비상체제 운영에 나섰다. 그 결과 2014년에는 해외공사 수주를 성공했다. 1년 만에 흑자 전환 성공이었다. 2015년에 다시 10위로 올라섰고, 현재까지 10위권 이내에 꾸준히 머물고 있다.

정 회장은 회장 취임 이후 건설업 이외 업종 진출을 통한 노력을 지속해서 해왔다. 부동산정보업체 부동산114와 한솔개발 인수, 한화에너지와 통영천연가스발전사업 공동추진, 면세점사업 진출 등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9월 말 현재 계열사만 30곳에 달한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정 회장의 이런 행태가 HDC현대산업계발의 부실 공사 사고의 원인이 아닌가 하는 지적도 제기하고 있다. 

특히 건물 붕괴 논란은 이번에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6월 9일 오후 4시 23분쯤 재개발을 위해 철거 중이던 광주 동구 학산빌딩이 무너졌다. 이 순간 정류장에 정차한 버스가 매몰되는 등 큰 피해가 있었다. 피해자는 총 11명으로 사망 3명, 부상 8명이었다.

이때도 정 회장은 기자회견을 통해서 사죄하고 조속한 사고 수습과 재발 방지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지만, HDC현대산업개발은 붕괴의 원인 규명보다는 피해자와 유가족에게 피해 보전을 하는 쪽으로 의견을 결정했다.

건설업계에서는 철거비용과 피해 보상금 등을 포함하면 HDC현대산업개발의 최대 4000억원의 손실을 발생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화정 아이파크는 단지 공정률이 약 60%다. 총 도급액이 2557억원인 점을 감안하면, 현재까지 투입된 공사비는 1500억원에 달한다. 전면 철거를 할 경우 비용은 약 148억원으로 예상된다. 

곳곳 잡음
건설 접나

입주 예정자에 대한 입주지연 보상금도 마련해야 하고, 전면 철거 후 재시공을 한다면 최소 2년 이상이 소요된다. 입주지연 보상금도 약 1000억원의 손실이 발생할 전망이다. 일각에선 그룹 해체 수순을 밟은 성수대교 붕괴 사고(동아건설산업 시공),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삼풍건설산업 시공) 수준과 비견되는 처벌 수위가 이어질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alsw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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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캄보디아 주범 ‘리광호’ 정보기관 추적, 왜?

[단독] 캄보디아 주범 ‘리광호’ 정보기관 추적, 왜?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캄보디아를 향한 정부의 압박이 매섭다. 피해자이자 피의자인 한국인 수십명을 발 빠르게 송환한 데 이어 캄보디아에 대한 경제적 지원도 옥죌 계획이다. 정보·수사기관은 제일 먼저 대학생 피살 사건 핵심 인물인 리광호를 추적 중이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리광호는 이미 캄보디아를 떠나 라오스로 밀입국한 것으로 파악됐다. “리광호는 지난주에 이미 떴어요.” 리광호에게 대포통장을 만들어준 보이스피싱 조직원 A씨가 <일요시사>와의 연락에서 한 말이다. 리광호는 캄보디아 대학생 박모씨 피살 사건 주범으로 지목된 인물이다. 이미 캄보디아 시아누크빌에서 라오스 밀입국했다. 정보·수사기관도 관련 첩보를 입수하고 추적 중이다. “지난주에 이미 떴다” 리광호의 신상은 이미 이달 중순부터 텔레그램과 SNS 등을 통해 공개됐다. 1991년생인 리광호는 중국 길림성 훈춘시 출신이다. 키는 160㎝로 단신이며 각진 턱과 짧은 머리가 특징이다. 최종 학력은 초등학교(소학교) 졸업인 것으로 알려졌다. 캄보디아 수사당국은 박씨를 살해한 혐의로 중국 국적 조직원 3명을 체포했다. 앞서 박씨는 지난 7월17일 “현지 박람회에 다녀오겠다”고 한 뒤 캄보디아로 출국한 뒤 연락이 두절됐다가 3주 뒤 깜폿 보코산 인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캄보디아 캄폿지방검찰청은 지난 10일 박씨를 살해한 혐의 등으로 이들을 재판에 넘겼으나 핵심 인물은 따로 있다. 이들 조직원 3명은 박씨의 시신을 옮길 때 현장에 있었을 뿐이었다. A씨는 “캄보디아 경찰이 박씨를 살해한 혐의로 리광호를 잡기 위해 지난 8월 그의 은신처를 급습했었는데 리광호가 몇 시간 전에 미리 알고 도주했다”고 말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국내 인터폴, 경찰, 국정원 등 정보·수사기관도 캄보디아와의 공조를 통해 리광호를 추적 중이다. 그는 이달 초 캄보디아 시아누크빌에서 라오스로 밀입국한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라오스로 넘어갈 때 캄보디아 국경을 관리하는 공무원들에게 수천만원을 줬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넘어가기 직전에 대포 통장과 핸드폰을 급하게 만들어달라고 한 이후에 연락이 끊겼다. 지금은 미얀마로 넘어갈 준비라는 소문이 파다하다”고 주장했다. 수사기관 관계자도 “관련 첩보를 입수하고 추적 중인 건 맞다”며 “현지 경찰과도 공조 중이다. 자세한 내용은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말했다. 리광호는 5년 전 베트남 하노이에서 보이스피싱 조직의 중간 관리자였다고 한다. 조직 내 수익을 빼돌리려는 계획이 탄로나자 잠시 한국에 들어왔다가 지난해 7월 캄보디아 프놈펜으로 출국해 자신과 친분을 쌓은 이들을 모아 시아누크빌에 자리 잡았다. 리광호와 친분을 쌓은 인물 대부분은 조선족인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리광호는 조직에서 간부급은 아니었다. 납치 담당, 고문·협박 담당 등 맡는 일이 다 다른데 리광호는 가리지 않았다. 머리가 좋지 않아서 몸으로 하는 일을 주로 했다”고 설명했다. 라오스 북부 통해 미얀마 밀입국 준비 다른 주범 김, 강남 마약 음료 총책 이어 “조직 간부인 중국인들에게 무시당할 때마다 구금된 여자를 강간하거나 남자들에게 강제로 마약을 먹이고 폭행한다. 이건 리광호만 그런 게 아니다. 그러다가 구금된 이들이 죽으면 시신을 태운다”고 주장했다. 리광호는 현재 영등포경찰서와 인천지검의 수배 대상자다. 인터폴에서도 적색수배 상태로 확인됐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중국에서도 마약 밀수 혐의로 수배에 오른 인물이다. 중국에 다시는 못 들어간다. 들어갔다가 걸리면 사형”이라고 말했다. 국내 정보·수사기관은 리광호 외에 김모씨도 추적 중이다. 김씨는 리광호와 함께 박씨 사건 주범으로 의심되는 인물이다. 특히 리광호와 김씨는 2년 전 강남 대치동에서 발생했던 마약 음료 사건의 유통책으로 확인됐다. 마약 음료 사건은 지난 2023년 이모씨 등이 필로폰과 우유를 섞어 만든 음료를 강남 대치동 학원가에서 미성년자에게 제공하고 마시게 했던 사건이다. 당시 이씨 일당은 마약 음료 수백병을 만든 뒤 2023년 4월 대치동 학원가에서 ‘집중력 강화 음료’ 시음 행사라며 미성년자 13명에게 제공하고 실제 9명이 마시게 했다. 이후 음료를 마신 학생의 부모에게 연락해 “당신 자녀가 마약 음료를 마셨으니,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협박해 금품을 뜯으려고 시도했다. 불특정 다수의 미성년자를 속여 급성 중독성 마약을 투약하고 부모까지 노린 신종 보이스피싱 범죄라는 점에서 사회적 파장을 불렀다. 중국에 있던 주범 이씨는 사건 발생 50여일 만인 2023년 5월 중국 지린성 내 은신처에서 중국 공안에 검거돼 강제로 송환됐다. 대법원은 지난 4월 이씨에게 징역 23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마약 음료 제조자 길모씨는 징역 18년, 마약 공급책 박모씨는 징역 7년이 확정됐다. 진짜 두목 따로 있다 당시 필로폰을 공급한 중국 국적 총책은 검거돼 캄보디아 법원에서 26년형을 선고받았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리광호와 김씨는 수사를 통해 추적해 왔던 인물이다. 필로폰 4kg 이상을 밀반입하는 걸 주도했고 그걸 이씨와 박씨가 국내에 뿌렸던 사건으로 파악됐다”고 전했다. 리광호가 속한 캄보디아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의 웹사이트 중 일부는 북한 IT 전문가들이 구축한다는 게 <일요시사>와 접촉한 이들의 설명이다. 또 다른 조직원 B씨는 “전부 다 북한 애들이 하진 않는다. 허술한 웹사이트는 북한 전문가들의 작품이 아니다. 한국인 범죄자들은 피싱으로 중국 조직에 1억원의 수익을 안겨주면 수수료로 7~10%의 수고비를 받는다. 북한과 조선족은 더욱 싸다. 3~5% 정도면 굉장히 열심히 한다”며 “중국 조직 입장에서는 한국인들보단 북한이나 조선족을 동원하는 경우를 선호한다”고 했다. 최근 정부는 김진아 외교부 2차관을 단장으로 정부 합동 대응팀을 캄보디아에 파견했는데 여기에는 경찰청, 국정원 등이 참여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캄보디아 스캠 범죄를 매우 심각하게 여기고 국정원에 “발본색원해 완전히 해결될 때까지 조직의 사활을 걸고 확실하게 해결해 국민 걱정을 덜어드려라”는 특별지시를 내렸을 정도로 정보기관 내부에서는 리광호와 김씨와 같은 조직원들 추적에 사활을 건 분위기다. 국정원은 캄보디아 스캠 범죄조직은 중국 등 다국적 범죄조직이 캄보디아로 침투해 만들어진 것으로서 프놈펜, 시아누크빌을 비롯해 총 50여곳에 약 20만명의 조직원이 있는 것으로 추산했다. 이들 조직들의 범죄수익은 2023년 기준 125억 달러(약 18조원)로 캄보디아의 국내 총 GDP의 절반 수준에 달했다. 다국적 범죄조직 이들 조직은 과거 카지노 자금 세탁 등을 했던 조직으로 코로나 팬데믹 이후 국경이 폐쇄되면서 캄보디아로 침투해 스캠 범죄로 범죄를 변경했다. 이들 조직은 자체적으로 무장경비원까지 배치하고 있다. 비정부 무장단체가 장악한 지역이나 경제특구 등 캄보디아의 다양한 지역에 분포돼있어서 캄보디아 정부도 단속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정원은 한국인들의 현지 방문 인원과 스캠 단지(웬치) 인근 한식당 이용 현황 등을 통해 스캠 단지에 있는 한국인 범죄 가담자를 1000~2000명가량으로 추산했다. 국정원은 이들에 대해 “100%는 아니지만, 피해자라기보다는 범죄에 가담한 사람들이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캄보디아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의 자금을 관리하는 배후로는 프린스그룹과 후이원이라는 현지 기업이 언급된다. 이 두 기업은 웬치에서 감금, 사기 행각을 벌이거나 북한 해킹 조직의 자금을 세탁하는 등 전방위 범죄를 저지르며 천문학적 수익을 벌어들였다. 프린스그룹은 캄보디아 최대 범죄 거점으로 지목된 ‘태자 단지’를 운영하는 등 조직적 인신매매와 불법 감금, 사기 등의 배후로 알려졌다. 중국에서도 불법 도박이나 성매매 등으로 범죄 자금을 벌어들였다. 베트남 국경 지역에 있는 진베이 단지는 중국 9개 성의 법원에서 심리된 83건의 형사사건에 연루된 상황이다. 천즈 프린스그룹 회장이 기업을 성장시킬 수 있었던 배경에는 훈 센 전 총리 등 캄보디아 고위층과 긴밀한 유착 관계를 형성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천즈는 수많은 논란에도 훈 센 전 총리 정권에 막대한 자금을 바치며 캄보디아의 최고위층 귀족 칭호인 ‘옥냐’를 캄보디아 국왕으로부터 수여받았다. 국내 은행사가 이들의 범죄 자금을 유통·세탁하는 데 이용됐을 우려도 나온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국민은행·전북은행·우리은행·신한은행·IM뱅크 등 국내 금융사의 캄보디아 현지 법인 5곳은 프린스그룹과 총 52건의 거래를 진행했다. 거래액은 1970억4500만원에 달한다. 아직 900억원이 넘는 자금이 여전히 현지에 남아 있다. 보이스피싱·스캠 조직 웹사이트 서버 북한이? 국정원·정보사 해외 파트·대북팀 동원해 추적 후이원은 범죄조직의 자금을 세탁하며 회사의 규모를 키웠다. 후이원은 ‘캄보디아의 알리페이’라고 불리는 후이원페이를 가지고 있는 금융, 결제, 정보기술(IT) 서비스 복합 기업이다. 이들은 자사의 기술력을 활용해 국제 해킹 조직이 사이버 사기, 랜섬웨어 등으로 얻은 범죄수익을 세탁해 왔다. 후이원페이는 훈 센 전 총리의 조카인 훈 토가 주요 주주로 등록된 회사이기도 하다. 정보기관에 따르면 이 기업은 북한 정찰총국 산하 해킹 그룹 ‘라자루스’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후이원은 공개·비공개 텔레그램 등 채팅방을 이용해 사기 조직과 자금 세탁범을 연결하고 범죄수익을 해외로 유출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2021년 이후 700억~890억 달러 규모의 가상화폐 거래를 중개했고 일부는 라자루스로 흘러 들어갔다. A씨는 “북한 IT 전문가들이 피싱·스캠 관련 웹사이트를 제작하기 시작한 건 4~5년 전부터”라며 “북한이 제작한 사이트의 경우 퀄리티가 상당하다. 그 대가로 후이원이 스테이블코인을 만들어 북한 쪽에 수익을 전달하기도 한다”고 주장했다. 국정원 해외 파트인 해외정보국과 대북 업무 담당자 상당수는 이미 캄보디아를 포함한 동남아 곳곳에서 관련 첩보를 입수 중이다. 국정원은 1차장이 해외 파트, 2차장이 대북·대공 업무를 담당한다. 2차장은 특히 북한 정보수집·분석 등 국정원의 대북 분야 실무를 총괄하는 자리다. 이외에도 국군정보사령부 동남아팀 휴민트(HUMINT·인간정보)들도 현지서 국정원과 정보를 공유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정보사 출신 한 군 고위 관계자는 “캄보디아 수도권에 대남공작원들이 많긴 하지만 웬치에 북한 대사관 관계자나 공작원들이 있진 않다.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고, 단지 대가를 받고 캄보디아 범죄조직 사이트를 만들어주거나 불법적으로 벌어들인 자금으로 세탁해 주는 게 북한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김정은 배후? 북한 연루설 다른 정보기관 관계자도 “국정원을 비롯한 정보사가 이번 캄보디아 사건에서 할 수 있는 건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으로 인해 우리 국민이 피해를 본 금액이 얼마나 많은지와 북한에도 그 금액이 흘러 들어갔는지, 북한과 관련된 인물들이 얼마나 있는지 등이다. 캄보디아에서의 대남 관련자들은 절대로 개인적으로 특정 행위를 하지 않는다. 예시로 캄보디아 무역 또는 사업가, 식당을 운영하는 인물 등이 대남공작원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