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무너진 정몽규 HDC현대산업개발 회장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2.01.24 12:44:11
  • 호수 135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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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년 아이파크 또 무너졌다

[일요시사 취재 1팀] 김민주 기자 = 지난 11일 오후 3시46분경, 신축공사 중이던 광주광역시 서구 화정동 광주 화정 아이파크 아파트가 붕괴됐다. 이 사고로 공사 인력 1명이 사망했고, 5명이 실종됐다. 시공사인 HDC현대산업개발 정몽규 회장은 회장직을 사퇴하면서 실종자 구조에 총력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꼬리자르기식 사과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사 중이던 아파트가 무너졌다. 광주 화정 아이파크 공사 현장 2단지 201동의 23~38층의 건물 외벽을 제외한 대부분이 내려앉은 것이다. 사고 당일에는 잔해들로 전신주 고압선이 부딪쳐 광주 신세계백화점, 유스퀘어 등 인근 건물이 정전됐다. 

일주일 후 
현장 방문

아파트가 무너지면서 생긴 파편은 공사 현장 근처에 주차된 차량 20여대를 매몰시켰고, 인근 주민들은 대피했다.

작업 계획서에는 28~29층에 3명, 31~34층에 3명 등 공사 인력 6명이 있었다. 이 중 1명은 사망했고, 5명은 구조를 위해 수사를 진행 중이지만 2차 건물 붕괴의 위험이 있어 여전히 난항을 겪고 있다. 

광주 화정 아이파크의 시공사는 HDC현대산업개발로 회장은 정몽규다. 그는 1996년부터 1998년까지 현대자동차를 이끌었지만, 현대자동차 경영권이 정몽구 회장에게 넘어가면서 1999년부터 현대산업개발로 자리를 옮겼다. 


정몽규 회장이 HDC현대산업개발에 자리 잡은 지 23년의 세월이 흘렀고, 23년의 역사는 아파트 붕괴라는 비극으로 이어졌다. 

정 회장은 참사 발생 후인 지난 17일 오전 서울 용산구 HDC현대산업개발 용산사옥 대회의실에서 광주 아파트 붕괴사고 관련 대국민 사과와 회장 사퇴 의사를 밝히고 광주로 향했다.

정 회장은 기자회견에서 “현대산업개발은 광주시를 비롯한 관련 정부기관들과 힘을 합쳐 사고 현장을 안전하게 관리하면서 실종자 구조작업을 진행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겠다”며 “이번 사고로 인한 피해자 가족분들께 피해를 보상함을 물론 입주 예정자분들과 이해관계자분들께도 피해가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골조 등 구조적 안전 결함에 대한 법적 보증기간은 10년이지만 새로 입주하는 주택은 물론 현대산업개발이 지은 모든 건축물의 보증기간을 30년까지 늘리겠다”며 “이번 사건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며, 저는 이 시간 이후 현대산업개발 회장직에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정 회장의 회장직 사퇴에도 불구하고 피해자 가족들과 여론은 호의적이지 못하다. 피해자 가족들은 정 회장이 광주 아파트 참사가 발생한 지 일주일이 지나고 나서야 광주에 방문한 것에 대해 지적했다.

서울 본사 기자회견 후 정 회장은 광주로 내려가 피해자 가족들을 만나 사과를 했지만 이미 시간은 많이 지났다. 추운 한겨울, 피해자 가족들에게는 1분1초가 아까운 시간이다. 내 가족이 매몰돼있는 건물의 수색은 진행되지 않았고, 총책임자는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정 회장이 피해자 가족들에게 사과하고 광주에 방문한 것은 17일로 사고 발생일로부터 일주일이나 걸렸다. 12일 유병규 HDC현대산업개발 대표이사가 광주를 방문해 피해자 가족들에게 사과를 전했다. 


현대산업개발 측에서는 사고 발생 당일 정 회장이 임직원들과 함께 광주에 내려갔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고가 난 이후 정 회장은 광주에서 머물렀고 지난 토요일에 오전 회의를 마치고 서울로 이동한 뒤, 17일 HDC현대산업개발 회장직 사퇴를 밝히고 광주로 다시 돌아왔다는 것이 사측의 주장이다.

광주 화정 아파트 참사 
책임지고 회장직 사퇴

반면 18일 이용섭 광주시장은 정 회장에게 후속 조치를 촉구하며, 정 회장이 사고 발생한 지 일주일간 광주에 방문하지 않고 서울 본사에서 사퇴 발표를 한 것에 대해 실종자 가족과 국민들 모두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정 회장은 후속 조치에 대한 모든 것을 적극적으로 돕겠다고 답변했지만, 사측의 의견은 거짓으로 드러난 것이다.

정 회장은 일주일간 무슨 일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HDC그룹의 지주사인 HDC는 지난 13일부터 17일까지 HDC현대산업개발 보통주 100만3407주를 장내매수했다고 공시했다. 날짜로는 13일에 57만3720주, 14일에 29만9639주, 17일에 13만48주를 매수했다. 

또 정 회장의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는 투자회사 엠엔큐투자파트너스는 같은 기간 HDC 보통주 32만9008주를 장내매수했다.

이번 광주 아파트 붕괴사고 당일인 지난 11일 HDC현대산업개발의 주가는 전 거래일보다 19.03% 떨어진 2만850원에 거래를 마쳤다. 정 회장이 회장직 사퇴를 발표한 지난 17일은 전 거래일보다 0.79% 하락한 1만8750원에 장을 마쳤다.

HDC현대산업개발 측은 이번 매수에 대해서 광주 아파트 참사로 인한 주주가치 보호와 책임 경영을 통해 회사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기 위한 결정이라고 설명했고, 앞으로도 필요 시에는 주식을 추가 매입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증권가에서는 투자자 신뢰회복을 위한 움직이라고 해석했다. 하지만 국민의 입장은 전혀 다르다. 국민은 주식 매입으로 회사의 신뢰도를 높이는 게 우선이 아니라 근본적인 사고 수습과 구체적인 사후 대응에 집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HDC현대산업개발의 이 같은 행보가 정 회장의 사과문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한다는 비판도 일었다. 이 밖에도 피해자 가족들은 정 회장에게 원론적인 사과문이 아닌 확실한 해결책을 제시하라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실종자 두고
주주들부터?

피해자 가족 협의회는 소방대원과 인명구조견, 중장비 운용 기술자와 근로자들에 대한 안전화 마련과 휴식 보장, 피해자 가족들과 사고 현장 주변 상인들, 입주자들의 생계 대책을 마련해달라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실종자 수색이 빨리 이뤄지는 것과 위험한 환경에서 2차 피해가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사고수습통합대책본부는 실종자 5명을 수색하기 위해 구조 인력 204명, 인명구조견 8마리, 내시경 카메라와 영상 탐지기, 드론, 집게차, 굴삭기 등 장비 51대를 현장에 투입했다. 

구조대원과 구조견은 지하층 잔재물에 대한 정밀 재수색과 사고 건물 22층 이상에서도 수색 작업을 진행했지만, 이렇다할 성과는 없었다. 

본격적인 정밀 수색은 기울어진 타워크레인 해체 등 안전보강이 완료된 이후 시작될 수 있다. 대책본부는 20일 오후까지 보강 작업을 마치고 해체용 대형 크레인 두 대를 이용해 기울어진 타워크레인 해체를 시작하고, 이달 마지막주 초부터는 정밀 수색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이번 광주 아파트 참사를 지켜본 사람들은 과거의 한 참사를 기억해 냈을 것이다. 바로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이다.

이번 사태에 대해서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현장에서 특별점검대책반장으로 활동했던 이종관 삼풍백화점 붕괴 기록전시관 관장은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삼풍백화점 붕괴사고와 광주 아파트 참사는 불법·탈법·편법에 의한 참사로 데자뷰로 전했다. 

이번 광주 아파트 참사를 보고 그가 느낀 감정이 그만큼 ‘참혹하다’는 것이고, 삼풍백화점과 흡사한 방식으로 아파트가 무너진 것이다.


백화점과 아파트의 설계와 공법은 다르다. 그러나 광주 아파트의 외벽이 뜯겨나간 형태, 힘없이 뽑힌 철근은 삼풍백화점과 매우 흡사하다.

이 관장은 “무엇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공정 전반에 걸친 편법과 탈법”이라며 “27년 전이나 지금이나 현장에서 안전을 위한 기본적인 사항들이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삼풍백화점은 하중을 분산하는 슬래브가 설계보다 얇게 시공되거나 아예 설치되지 않았었다. 광주 아파트도 사정이 마찬가지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 관장은 하중을 받쳐줘야 할 동바리(바계 기둥)가 제대로 설치되지 않은 것, 콘크리트는 영상 5도 이상에서 9일 이상 버텨야 안전한데 최근 날씨가 그렇지 못했다는 점을 덧붙였다.

총체적
부실공사

처음부터 불량 콘크리트를 사용했다는 정보도 속속들이 드러나고 있다. 광주 아파트 현장에 콘크리트를 납품한 레미콘 업체 상당수가 콘크리트 재료 관리 미흡으로 국토교통부에 적발된 것이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김은혜 의원이 지난 19일 국토부로부터 제출받은 지난해와 올해 레미콘 업체 품질관리 실태 점검 결과에 따르면 사고 현장에 콘크리트를 납품한 업체 10곳 중 8곳이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

점검 결과에 따르면 콘크리트에 들어가는 자갈, 모래 등 골재를 잘못 관리했거나 배합 비율을 맞추지 않은 업체가 3곳이었고, 콘크리트 강도를 높이기 위해 사용되는 혼화재를 부적절하게 보관한 업체가 3곳, 시멘트 관리가 부실한 업체도 3곳이었다.

국토부 점검에 따르면 부적합 공장에서 생산된 콘크리트가 사고 현장에 쓰였을 확률이 높다.

정 회장의 위기는 처음이 아니다. 첫 번째 위기는 1999년이었다. 이전까지 정 회장은 고 정세영 명예회장과 함께 현대자동차를 이끌었다. 그러나 현대그룹 창업주인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요구로 그해 3월 현대차를 넘기고 대신 HDC현대산업개발을 넘겨받았다. 

HDC현대산업개발로 옮겨온 뒤 고 정세영 명예회장과 정 회장은 조직문화 변화를 이끌었다. 경영진을 현대차 출신으로 교체, 투명한 회사 업무를 강조했다.

HDC현대산업개발로 온 지 한 달쯤 뒤 아파트 분양가를 자동 계산하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만들도록 지시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현대아파트’라는 브랜드 사용을 놓고 현대그룹과 갈등이 있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국내 아파트 브랜드의 강자는 현대아파트였다. 현대아파트의 가치가 3조~4조원에 이른다는 평가도 있었다.

정 회장은 당연히 현대아파트를 사용하고 싶었지만, 당시 특허청에 등록된 상표의 법적 소유주도 HDC현대산업개발이었다. 그러나 현대그룹은 HDC현대산업개발에 ‘현대’를 사용하지 말라고 요구했고, 그 결과 2000년 HDC현대산업개발은 아이파크를 만들었다.

외벽 뜯긴 형태 삼풍백화점과 흡사 
실종자 뒷전 투자자 신뢰회복 우선?

HDC현대산업개발이 아이파크 브랜드를 개발한 뒤 꾸준히 성장했다. 1999년까지 5위권 밖이었던 HDC현대산업개발은 2000년 5위, 2004년에는 4위까지 올랐다.

이런 승승장구에도 2008년 금융위기를 비켜갈 수는 없었다. 당시 HDC현대산업개발은 주택사업을 중심으로 내수시장 위주의 사업 포트폴리오가 발목을 잡았다.

HDC현대산업개발은 해외실적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국내 시장 침체는 실적 부진으로 이어졌다. 그 결과 시공능력평가 순위가 떨어져 2014년에는 13위가 됐으며 적자는 1400억원대를 기록했다.

정 회장은 무보수 경영을 선언하는 등 비상체제 운영에 나섰다. 그 결과 2014년에는 해외공사 수주를 성공했다. 1년 만에 흑자 전환 성공이었다. 2015년에 다시 10위로 올라섰고, 현재까지 10위권 이내에 꾸준히 머물고 있다.

정 회장은 회장 취임 이후 건설업 이외 업종 진출을 통한 노력을 지속해서 해왔다. 부동산정보업체 부동산114와 한솔개발 인수, 한화에너지와 통영천연가스발전사업 공동추진, 면세점사업 진출 등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9월 말 현재 계열사만 30곳에 달한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정 회장의 이런 행태가 HDC현대산업계발의 부실 공사 사고의 원인이 아닌가 하는 지적도 제기하고 있다. 

특히 건물 붕괴 논란은 이번에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6월 9일 오후 4시 23분쯤 재개발을 위해 철거 중이던 광주 동구 학산빌딩이 무너졌다. 이 순간 정류장에 정차한 버스가 매몰되는 등 큰 피해가 있었다. 피해자는 총 11명으로 사망 3명, 부상 8명이었다.

이때도 정 회장은 기자회견을 통해서 사죄하고 조속한 사고 수습과 재발 방지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지만, HDC현대산업개발은 붕괴의 원인 규명보다는 피해자와 유가족에게 피해 보전을 하는 쪽으로 의견을 결정했다.

건설업계에서는 철거비용과 피해 보상금 등을 포함하면 HDC현대산업개발의 최대 4000억원의 손실을 발생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화정 아이파크는 단지 공정률이 약 60%다. 총 도급액이 2557억원인 점을 감안하면, 현재까지 투입된 공사비는 1500억원에 달한다. 전면 철거를 할 경우 비용은 약 148억원으로 예상된다. 

곳곳 잡음
건설 접나

입주 예정자에 대한 입주지연 보상금도 마련해야 하고, 전면 철거 후 재시공을 한다면 최소 2년 이상이 소요된다. 입주지연 보상금도 약 1000억원의 손실이 발생할 전망이다. 일각에선 그룹 해체 수순을 밟은 성수대교 붕괴 사고(동아건설산업 시공),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삼풍건설산업 시공) 수준과 비견되는 처벌 수위가 이어질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alsw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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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 상병 특검’ 공수처 불편한 속내

‘채 상병 특검’ 공수처 불편한 속내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채 상병 특검’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야권의 4·10 총선 압승으로 더불어민주당의 움직임에도 속도가 붙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난감하기만 하다. 부족한 인력으로 인해 수사의 첫 단추도 끼우지 못하는 실정이다. 발 빠른 수사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공수처 안팎에서는 정치권의 책임 떠넘기기에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조직이 와해되기 직전인데 수사에 속도가 어떻게 나겠느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출신 한 변호사의 말이다. 요즘 공수처의 분위기는 참혹하다. 해병대 ‘채 상병 사건’으로 반전을 꾀하고 싶어도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특별검사(이하 특검) 목소리가 거세지면서 ‘비교 대상’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대통령실 압수수색? 채 상병 사건 특검법 추진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공수처의 분위기는 암흑 상태다. 검찰 제도를 보완해 ‘상설특검’ 명목으로 출범했음에도 ‘늑장·부실’ 수사 논란 속에 결국 사건 기록을 특검에 넘겨줘야 하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오는 5월2일, 임시국회를 열어 법안을 표결하자는 분위기다. 법안 통과를 위해서는 국회의장과 여당의 협조가 필요한데, 총선 이후 여당 일각서도 채 상병 특검에 동의하는 분위기가 표출되고 있다. 채 상병 특검 법안은 지난해 10월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뒤 180일의 숙려 기간을 거쳐 본회의 표결만 하면 언제든 통과할 수 있는 상황이다. 채 상병 사건 수사 갈래는 크게 두 가지다. 무리한 수색 지시 등 책임자를 가리는 본안 수사가 경북지방경찰청서 진행 중이고, 해병대 수사단의 초동 조사에 국방부와 대통령실 관계자가 개입했다는 외압 의혹은 공수처가 맡고 있다. 외압 핵심 피의자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주호주대사로 임명돼 부임 후 사퇴하는 과정서 대통령과 법무·외교부 장관의 직권남용 의혹도 공수처에 추가로 고발됐다. 야권이 특검을 통해 밝히려는 사안의 실체는 수사 외압에 집중돼있다. 특검이 통과되면 공수처가 내려던 실적이 특검으로 넘어가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민주당은 이 대사 임명 과정서의 추가 의혹도 특검법안을 수정 발의해 포함할 계획이다. 공수처는 수사의 무게를 일부 덜겠지만, 6개월 넘게 진행해온 사건 기록을 외부에 넘긴다는 건 또 다른 비판의 빌미를 제공하는 셈이다. 특검 추진 본격화…수사팀 의욕 잃어 “이럴 거면 왜 강조하나” 불만 증폭 공수처 출신 한 변호사는 “인력난 때문에 고전하는 상황이다. 내부 얘기를 들어보면 ‘죽을 맛’이란다. 채 상병 사건 수사는 최선을 다하려 했는데 특검이 언급되면서 수사팀의 의욕이 상실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수처법상 수사 범위와 인원 범위가 지나치게 제한돼있어 실질적인 수사 기능을 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설명이다. 공수처법은 공수처의 수사 범위를 현직 공직자와 그 가족, 퇴임 3년 이내 전직 고위공직자로 한정하고 있다. 공수처 검사와 수사관의 인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현재 공수처법이 규정하고 있는 검사와 수사관의 규모는 처·차장 포함 검사 25명, 수사관 40명이다. 공수처법을 추진할 당시 규모는 검사 30~50인, 수사관 50~70인이 제안됐지만 법무부와 국회의 논의를 거치면서 현재 정원으로 대폭 감소했다. 공수처 관계자는 “총선과 무관하게 지속적으로 인원 확대와 관련해 국회와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며 “검사의 신분보장을 위한 임기에 대해서도 개선해야 할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앞서 공수처는 최소한의 행정인력이라도 확보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해 달라고 호소한 바 있다. 현행법상 행정인원 정원은 20명인데 지난 2022년 공수처는 행정직원 중 국·과장과 직제 파견자 등 7명을 제외하면 실제 가용인원이 13명에 불과해 수사관을 행정인력에 투입해야 할 상황에 놓인 바 있다. 공수처가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법 개정이 필수적이라는 분석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특히 공수처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일치시켜 수사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수처는 ‘공수처법상 기소권 없는 사건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연구용역’을 발주하는 등 수사 대상과 기소 대상의 불일치로 발생하는 구속영장 논란을 정리하기 위한 연구에 착수하기도 했다. 인력난 가중화 지금까지 공수처가 채 상병 사건을 수사한 상황을 보면 초기 단계에 불과하다. 지난해 12월 이 전 장관 등을 출국금지했고, 한 달 후인 지난 1월 압수수색에 착수했다. 이후 포렌식과 참고인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 전 장관을 비롯한 국방부 지휘부와 해병대 수뇌부 등에 대한 조사는 특검의 몫이 될 가능성도 있다. 경우에 따라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등으로 특검 수사가 확대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공수처와 경찰은 특검법 처리 여부를 주시하며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총선 국면서 논란의 중심에 선 공수처는 수사를 신속하게 진행해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겠다는 입장이다. 공수처 지휘부 공백 상태가 영향을 줄 여지도 있다. 주요 피의자 소환 및 신병처리 등 주요 의사결정을 처장 대행인 부장검사가 결정하기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면서다. 만약 국회서 여야가 특검법 처리에 합의하는 수순을 밟으면 공수처도 새로 출범할 특검에 기록을 인계하기 위한 작업에 중점을 둘 가능성이 크다. 현재 본회의에 회부된 안은 민주당이 지난해 9월 발의한 법안이다. 민주당이 지난 3월, 이 전 장관이 주호주대사로 임명된 경위를 수사해야 한다는 별도의 특검안도 국회에 제출했기 때문에 이 두 법안이 병합되는 안도 거론된다. 본회의 회부 안건은 수사기간을 최장 100일로 정하고 있는데, 잔여 수사를 검찰에 이첩하도록 명시됐다. 경찰과 공수처가 시작한 수사가 특검을 거쳐 검찰 손에 넘어가는 것은 부자연스럽다는 말도 나온다. 민주당이 3월 발의한 안은 잔여수사 이첩 대상을 검찰과 공수처로 정했다. 단추도 못 끼워 민주당이 특검법 조항 일부를 양보하고 국민의힘이 수사 대상 확대에 동의하는 시나리오도 정치권을 중심으로 나온다. 이런 과정서 본회의 회부 안이 조정될 수도 있다. 이 가운데 이 전 장관은 최근 변호인을 통해 공수처에 “소환조사를 진행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 전 장관 측이 공수처에 소환조사를 요청한 것은 이번이 네 번째다. 이 전 장관 측 김재훈 변호사는 최근 공수처에 소환 촉구 의견서를 내고 “이 전 장관은 호주 대사직서도 물러났으나 공수처는 지금까지도 아무런 연락이 없다”며 “공수처의 이런 수사 방기 탓인지 정치권에서는 특검 필요성까지 제기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공수처에 보낸 의견서에서 “이첩 보류 지시는 직권남용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국방부 장관은 민간 수사기관으로의 사건 이첩에 대한 최종 승인권자이므로 인사권자가 인사안 결재 후 이를 취소·변경할 수 있듯이 그 승인을 변경할 수 있다”며 “해병대 수사단장에게 수사 권한이 있다느니, 수사단장에게 민간 수사기관으로의 이첩 권한이 있다느니 하는 것은 법 규정의 몰이해로부터 비롯된 억지”라고 주장했다. 이 전 장관 측은 ‘이 장관이 보고서를 회수하라고 지시하기 전에 대통령실 내선번호로 전화를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이 전 장관 측은 “이 전 장관은 대통령으로부터 (사단장을 빼라는)지시를 받은 사실이 없다”며 “당시 장관이 군사보좌관과 논의하는 과정서 ‘(초급 간부들까지 처벌 대상에 포함한다면)초급 간부들이 힘들어할 것 같다’는 의견을 나눴고 법무관리관실의 법리 검토를 거쳐야 한다고 판단해 이첩 보류를 지시했다”고 강조했다. 수사 인원 범위 제한적 법 개정 안되면 도루묵 이어 “재검토한 결과 8월24일 직접적인 혐의가 있는 2명을 경찰에 이첩했고, 해병대수사단 조사기록 원안도 그대로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 전 장관 측은 민주당이 추진하는 ‘채 상병 특검’도 비판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공수처의 1차 수사 결과도 나오지 않은 상황인데 무엇이 미흡하고 국민적 의혹이 남아 해소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냐”며 “특검 논란을 잠재울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은 공수처의 신속한 수사와 결정”이라고 주장했다. 공수처 수장이 석 달째 공석인 점은 제도 지속 가능성에 의문을 더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최종 후보자 지명을 두 달 가까이 미루고 있다. 앞서 국회 공수처장후보추천위원회는 지난 2월29일 판사 출신 오동운(사법연수원 27기) 변호사와 검사 출신 이명순(연수원 22기) 변호사를 후보로 추천했다. 김진욱 전 처장과 여운국 전 차장이 임기 만료로 퇴임해 공수처가 ‘대행 체제’에 들어간 건 지난 1월 말부터다. 김선규 수사1부장이 처장 대행을 맡고 있지만, 지난달 제출한 사직서가 수리되지 않아 임시로 대행직을 수행 중이다. 최근 인사위원회서 연임이 불발된 수사1부 소속 김송경 검사(사법연수원 40기) 임기도 만료됐다. 김 대행이 이끄는 수사1부는 공기광 검사만 남게 된다. 별도 조직개편 계획도 없어 수사 부서 1개가 사실상 사라질 위기다. 윤 대통령이 공수처장 후보자를 지명해도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해야 임명이 가능하다. 21대 국회 임기는 내달 29일까지다. 22대 국회가 개원해도 원구성에 시일이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신속한 공수처장 공백 해소를 위해선 이달 안으로 후보 지명을 마쳐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수장 공백 장기화 우려 법조계에서는 특검 수사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공수처법에 따르면, 공수처는 이 전 장관에 대한 수사권은 있지만 기소 권한이 없다. 수사를 마친 뒤 검찰에 사건을 넘기고 검찰이 기소 여부를 판단해야 하는 구조다. 공수처 출범 당시 수사·기소권을 모두 줄 경우 일각에선 ‘무소불위 공수처’가 될 거란 우려가 제기되면서 공수처는 법관, 검사, 고위 경찰공무원에 대해서만 제한적 기소권을 갖게 됐다. 문제는 검찰이 채 상병 사건 기소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검찰을 관할하는 법무부는 지난달 8일, 공수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 전 장관의 출국금지를 해제했다. 사건 처리의 중립성 논란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특검을 통해 채 상병 사건을 수사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