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정치팀] 정인균 기자 = 유한기의 사망이 정계에 다시 특검 바람을 일으켰다. 정계는 검찰의 잘못된 수사 방식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특검 도입’이란 칼로 난도질을 하는 중이다. 그러나 진행 상황은 그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것이 없고, 앞으로도 달라질 것이 없을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특검을 도입했어야 할 시간이 이미 지났기 때문이다.
유한기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사업본부장이 지난 10일 집 근처 화단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자택에서 유서가 발견된 것으로 보아 유 전 본부장은 수사의 압박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날 새는데…
큰소리 땅땅
유 전 본부장은 화천대유의 관계사인 천화동인으로부터 2억원의 뒷돈을 받은 혐의로 몇 달간 검찰의 수사를 받아왔다. 검찰은 돈을 받고 화천대유의 편의를 봐준 것이 아니냐는 ‘뇌물죄’를 그에게 적용하려 했다. 만일 검찰의 주장이 입증됐다면 유 전 본부장은 최소 10년 이상 형을 살아야 했다.
그가 뇌물을 받았다고 의심받는 시점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가 성남시장으로 재직하던 시절이다. 당시 유 전 본부장은 구속 수감 중인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과 더불어 성남시의 실세로 알려져 있었다.
지역 주민들은 유한기와 유동규를 ‘유투’라 부르며 그들의 영향력을 높게 평가했다. 이 때문에 정계에선 이른바 ‘유투’의 혐의가 입증되면 이 후보도 대장동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 예측했다.
그런 그가 영장실질심사 나흘을 앞두고 주검으로 발견된 것이다. 그의 죽음을 두고 이런저런 말이 많다. “강압수사 때문에 자살한 것 아니냐” “돈을 받았으니 자살한 것이 아니냐” “이번에도 꼬리 자르기 아니냐” 등 관심 있게 사건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그의 죽음에 이런저런 해석을 덧붙이고 있다.
그동안 비슷한 사례를 많이 봐왔던 탓이다. 검찰은 그동안 언론의 주목을 끌만한 유력 정치인들의 사건을 많이 다뤄왔고, 그때마다 빈번하게 의혹 당사자들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 그들의 죽음은 늘 수사팀을 난항으로 빠져들게 했다.
가까이에서 찾으면 작년 ‘옵티머스 복합기 대납 사건’ 사례가 있다. 당시 검찰은 옵티머스의 주가 조작 사건을 수사하던 중,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전 대표의 측근인 이모씨를 유력 관련인으로 보고 참고인 조사를 진행한 바 있다.
이씨는 옵티머스 측으로부터 이 전 대표의 종로 사무실 복합기 사용 요금 76만원을 받은 혐의를 받아 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고발당한 상태였다. 그에 대한 본격적인 수사가 본격적으로 진행된 얼마 후, 이씨는 서울중앙지검 근처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검찰에 대한 여론의 비난이 이어졌고, 이 전 대표는 해당 사건에서 사실상 빠지게 됐다.
유한기 사망 이후 다시 불거져
양당 서로에게 ‘책임 떠넘기기’
그 외에도 상상인저축은행 관련 피고발인, 울산시장 하명 수사 의혹 참고인, 청와대 감찰반원 출신 검찰수사관, 군납 비리 의혹을 받던 육군대장 등 지난해에만 수많은 사람이 검찰 수사를 받던 중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수사는 그때마다 난항에 빠져갔다.
이번 유 전 본부장의 사례도 비슷한 경우다. 검찰은 현재 대장동 과잉 수사 논란에 직면해 있고, 이 후보에게 이는 나쁘지 않은 상황이다.
수많은 설왕설래 속에서 이 후보는 직접 유 전 본부장에 대한 애도 소식을 전했다. 그는 “고인의 명복을 빈다. 극단적 선택에 대해 비통한 심정”이라며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라도 조속히 특검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죽음은 검찰의 무리한 수사 때문이고, 이를 위해서는 특검이 필요하다는 소리다.
이에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는 “설계자 1번 플레이어를 두고 주변만 탈탈 터니 이런 거 아니겠나”며 “권력 눈치를 보며 미적거린 검찰의 장기 수사와 이제 와서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안타까운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검찰의 미진한 수사 상황을 비판하며 특검 도입에 대한 우회적인 주장을 한 것이다.
유 전 본부장의 죽음으로, 정계에는 특검이 다시 화두로 떠올랐다. 양당은 이번 사건에 대한 논평에서 검찰의 미진하고 과격한 수사에 의심을 보내는 것과 동시에 특검에 대한 의지를 피력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그들의 태도에 의아함을 보내는 사람도 많다. 두 달 전까지만 해도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했던 특검법 도입을 양당의 후보와 핵심 인사들이 갑자기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요시사>는 특검이 늦어진 것에 대한 이유를 들어보기 위해 양당 모두를 취재했다. 취재 결과 ‘책임 떠넘기기’였다. 민주당은 국민의힘에게 유리한 내용만 담은 특검법이 발의됐기에 거부한다는 입장이고,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표리부동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고 전해왔다.
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 권혁기 공보부단장은 “국민의힘 쪽이 발의한 특검법을 보셨나 반문하고 싶다. 그 특검법에는 부산저축은행에 대한 수사가 빠져있었다. 대장동 사건을 수사하려면 시작점인 저축은행부터 종착지인 화천대유 로비사건까지 수사해야만 한다는 게 민주당의 일관된 입장”이라며 “국민의힘 측이 특검법 발의를 저축은행과 관련한 것을 빼고 했고, 최근에야 윤석열 후보가 모두 진행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고 말했다.
발의된 특검법 자체가 국민의힘 측에 유리하게 진행되게 짜 맞춰졌기 때문에 민주당은 동의할 수가 없었고, 그 때문에 시간이 늦어지는 것이라는 논리다.
대선후보만
모르고 있나
그가 말하는 부산저축은행 사건은 2011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의 화천대유 ‘봐주기’ 의혹이다. 화천대유는 당시 대장동 사업에 투자하기 위해 1000억원대의 막대한 자금이 필요했고, 이를 대출받는 과정에서 불법 수수료를 지급하는 등 위법행위를 여러 개 저질렀다.
수사 기록에 따르면, 당시 수사를 담당했던 대검 중수부는 이를 알고 있었음에도 사건을 뭉갰다. 이 사건은 4년 뒤 수원지검 특수부가 재수사하며 비로소 세간에 알려지게 됐다.
문제는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중수부의 주임검사가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라는 점이다. 민주당 측은 이때 윤 후보가 수사를 제대로 진행했더라면 화천대유가 대장동에서 막대한 이익을 챙기지 못했었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때문에 특검 수사 대상에는 부산저축은행이 반드시 들어가 윤 후보도 수사선상에 있어야 한다고 성토하는 중이다.
반면, 국민의힘 김경진 상임공보특보단장은 “민주당이 쇼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저축은행 사건은 이미 2011년에 수사해서 2012년에 재판 결과가 난 사안”이라며 “이 후보가 겉으로는 적극적으로 특검을 도입하자고 시늉하고 있지만, 정작 특검 절차를 진행해야 할 원내대표가 협의를 거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 후보와 원내대표 둘이서 역할 분담을 해서 결과적으로는 특검을 반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켕기는 게 있어서 그러는 게 아니겠나 생각한다. 유동규 전 본부장이 체포된 날 통화한 게 이 후보의 최측근인 정진상이라고 밝혀지지 않았나. 당장 대장동 관련 특검을 하면 분명히 이 후보 관련 비리가 나올 것”이라 덧붙였다.
실제로 정진상 전 성남시 정책실장은 유 전 본부장이 구속되기 직전 그와 통화했다고 인정한 바 있다.
정 전 실장은 “녹취록이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는 상황에서 평소 알고 있던 유 전 본부장 모습과 너무나 달라 직접 확인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며 “통화에서 유 전 본부장에게 잘못이 있다면 감추지 말 것과 수사에 충실이 임할 것을 당부했다”고 밝혔다.
반대도 없고
도입도 없고
그러나 유 전 본부장은 정 전 실장의 조언과는 달리, 그와 전화를 끊고 휴대폰을 창문 밖으로 던지는 등 기행동을 펼쳤다. 국민의힘 측은 이것이 정 전 실장을 시킨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하고 있다.
서로 다른 이유로 반대했던 양당이 최근에는 특검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는 형국이지만, 사실상 지금 시점에서 대선 전 특검은 이미 불가능해졌다. 당장 지금이라도 여야가 기적적으로 합의해 특검팀을 빠르게 꾸린다고 쳐도 수사는 대선일인 내년 3월9일을 훌쩍 넘기고 나서 종료된다.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동안의 사례들을 종합해 볼 때, 특검팀의 수사 결과를 듣는 데까지 적어도 100일 이상은 기다려야 한다. 여야가 합의한 특검팀이 꾸려지고 수사 개시까지만 하는 데도 평균 약 40일이 걸렸다.
이명박 전 대통령 내곡동 사저 부지 매입 의혹 특검은 43일이 걸렸고, 국정 농단 때는 34일이 걸렸다. 드루킹 특검은 꼬박 37일이 소요된 바 있다.
수사가 개시된 후에도 특검팀은 약 3주간 수사에 착수하지 못한다. 상설특검법 10조 1항엔 ‘특검은 임명된 날부터 20일 동안 수사에 필요한 시설의 확보, 특별검사보의 임명 요청 등 직무 수행에 필요한 준비를 할 수 있다. 이 경우 준비기간 중에는 담당 사건에 대해 수사를 해선 안 된다’고 명시돼있다.
특검팀은 개시 후 20일 동안 수사 준비만 해야 하는데, 이때 담당 사건에 대해 수사하는 것은 법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준비 기간이 끝난 후 특검팀에게 주어진 수사 기간은 총 30~70일이다. 이 기간은 대통령 승인 여부에 따라 10~30일 연장도 가능하다. 이때는 수사팀의 역량에 따라 수사 결과를 내놓는 시점이 더 짧아질 수도, 더 길어 질수도 있는데, 그간의 사례들은 적어도 40일 이상 걸릴 것이라 말해주고 있다.
내곡동 사저 특검은 약 40일, 국정 농단 특검은 수사하는 데만 약 70일 이상, 드루킹 특검은 약 50일이 걸렸다. 수사 종료 후 발표까지 유권자들은 적어도 한 달 반은 수사 결과를 기다려야만 한다.
특검 수사 종료까지 100일
대선까진 90일도 안 남아
평균치를 기준으로 계산했을 때, 특검팀 꾸리는 데 40일, 수사 준비 20일, 수사기간 40일을 더하면 약 100일이라는 수치가 나온다. 빠르게 합의해 12월 셋째 주 월요일(20일)에 특검팀 준비를 시작한다 해도 최종 수사 결과는 백일 후인 내년 3월29일에나 나온다.
대통령선거가 3월9일에 시작되는 것을 감안하면 이는 너무 늦은 날짜다. 유권자들이 공정한 정보를 갖고 대통령 투표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인데도 대선후보들은 서로 경쟁하듯 특검을 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이 후보는 지난달 18일 “조건을 붙이지 않고 아무 때나 합의해서 특검을 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윤 후보를 겨냥해 “본인이 잘못한 게 없으면 피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윤 후보는 지난 11일 “말장난 그만하고 바로 특검에 들어가자”며 “부산저축은행 부실 수사 등을 다 포함해서 하자고 말한 것이 언제냐. 정말 자신 없으면 못하겠다고 말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두 후보가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서서 특검을 주장한 시점은 대선 전 특검 도입이 사실상 불가능해지기 시작한 지난달 둘째 주부터다. 그전까지 특검법 합의안에 대한 이유 등으로 특검에 미온적 태도를 보였던 양당 후보가 대선 전 수사 종료라는 데드라인이 지나자 갑자기 적극적인 태도로 입장을 바꾼 것이다.
“법조인 출신인 두 후보가 특검 데드라인이 지난 것을 알았기 때문 아니냐”는 의심이 나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특검 시행이 이미 늦은 것 아니냐는 <일요시사>의 질문에 양당의 공보팀은 각기 다른 대답을 내놨다. 국민의힘 김 단장은 “그런 골치 아픈 문제가 있는 게 사실”이라며 “현실적으로 특검이 ‘불가능한 상황’ 비슷하게 됐다. 적어도 두 달 전에는 출범을 했어야 했는데 시간이 너무 흘렀다. 한 달 반 후에는 본격적인 선거운동이 들어가는데, 특검을 현실적으로 시작하기 어려운 국면을(민주당과 이 후보가) 만들어놨다”고 이미 늦은 특검을 인정했다.
반면, 민주당의 권 부단장은 수사 종료 시점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누가 범인인지가 꼭 대선 전에 밝혀져야 한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잘못된 발상”이라며 “양 후보 모두 범인이 아닐 수 있는 것이다. 대선 전에 끝나야 하는 것도 강박성에 사로잡힌 생각이다. 철저히 수사해서 누가 범인인지를 공정하게 밝혀야 한다는 것이 수사의 본질”이라고 강조했다.
사실상 이미 늦은 특검인 것을 인정하면서도, 수사 데드라인에 큰 의미를 두면 공정한 수사가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참 아이러니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누구도 특검을 반대하지 않는데, 누구도 특검을 도입을 행동으로 옮기려 하지 않고 있다.
사실상
끝난 얘기
지금 시작해도 대선 전에 수사 결과 발표가 불가능한 특검을 양당의 후보들은 정치적인 메시지로 연일 떠들어대고 있다. 그들의 메시지가 유권자들에게 제대로 먹혀들어 갈지는 미지수지만,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그들이 날리는 ‘특검 주장’은 이미 공수표가 됐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