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2팀] 정인균 기자 = 최근 전남 여수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이 충격을 주고 있다. 한 30대 남성이 40대 부부를 살해하고, 60대 노부모를 다치게 한 사건이다. 인근에서 치킨집을 운영하던 피해자 부부는 늦은 시각 일을 끝마치고 귀가하던 중 변을 당했다. 10대 자매는 하루아침에 부모를 잃었고, 조부모의 생사도 병원에서 밤을 새우며 확인해야 했다. 살인을 저질렀다고 자백한 가해자는 범행 이유로 ‘층간소음’을 들었다. 층간소음이 어떻게 이런 비극을 야기하게 되는지 짚어봤다.
층간소음으로 인한 살인사건은 그리 놀라운 뉴스가 아닌 작금이다. 잊을만하면 들려오는 층간소음 살인사건은 매년 2~3건씩 뉴스에 등장하는 단골 소재다.
지난해 5월 경기 고양시에선 60대 여성이 윗집 남성을 살해하는 사건이 있었고, 2019년에는 세종시에선 윗층에 거주하던 40대 남성이 아래층에 거주하는 남성을 찾아가 흉기로 복부를 22차례 찌르는 살인미수 사건이 있었다. 두 사건 모두 층간소음이 갈등의 원인이 돼 일어난 사건들이다.
22차례 찔러
이 같은 뉴스가 앞으로 더욱 많이 들리게 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나오고 있다. 코로나 시대에 접어들며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난 사람들이 층간소음 피해 신고를 더 많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환경부가 공개한 ‘층간소음 이웃사이센터 2020년 운영결과 현황’(2020년 12월 기준)에 따르면, 2012년 8795건이었던 피해사례 상담이 2013년부터 1만8524건으로 두 배 이상 급증하더니 ▲2014년 2만641건 ▲2015년 1만9278건 ▲2016년 1만495건 ▲2017년 2만2849건 ▲2018년 2만8231건 ▲2019년 2만6230건으로 매해 상승해왔다.
급기야, 코로나 사태가 터진 해인 2020년에는 4만2250건으로 약 1.6배 증가했다. 집계를 시작한 이래로 3만건은 물론, 4만건이 넘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층간소음이 일어나는 원인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된다. 높은 아파트 주거 의존도, 현행 건축법의 사각지대를 노린 부실 공사다.
층간소음에 노출될 가능성이 있는 절대 인구수가 많으면 극단적인 사례도 많아지기 마련이다. 프랑스 지리학자 발레리 줄레조는 그의 책 <아파트 공화국>에서 한국의 주거 형태가 아파트에 지나치게 의존돼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은 급격히 빠른 경제성장을 거치며 짧은 시간에 많은 주거공간이 필요했고, 아파트가 그 해법이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통계청이 조사한 ‘2020년 인구주택 총조사 결과’에서 나타난 아파트 주거 비율은 51.5%로 전체의 절반을 넘었다.
대한민국 국민 둘 중 하나는 층간소음 피해에 노출될 가능성이 있는 곳에서 살고 있는 셈이다. 층간소음은 본질적으로 건물의 부자재를 통해 전해진다. 즉, 건물을 건설할 때 소음의 정도가 정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부실이 일어나면 소음 노출 위험도는 더욱 올라간다. 감사원이 실시한 ‘아파트 층간소음 저감제도 운영실태’에 따르면 층간소음을 일으킬 수 있는 부실공사가 전체의 60% 이상을 차지했다.
지난해 4월, 공공아파트 191세대를 대상으로 실시된 이번 층간소음 실태 조사 결과 184세대(96%)가 성능 등급보다 실측 등급이 미달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114세대(60%)는 최소 기준에도 미치지 못했다.
감사원은 사전 인증과 현장 시공, 사후관리 등 전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다고 총평했다. 즉, 상당수의 층간소음 위험이 시공 과정에서 이미 생긴 것임을 뜻한다.
차상곤 주거문화연구소 소장은 본인의 연구 ‘층간소음 민원저감형 가이드라인 개발을 위한 피해자 경향 분석’에서 살인사건은 1년 이상 갈등이 소요된 사례에서 주로 일어난다고 주장했다.
이웃 간의 층간소음은 갈등이 심화되는 과정을 거치며 골이 깊어지고, 결국 감정이 들어가 살인까지 이어진다는 것이다.
반복되는 비극…해법은 양보밖에 없나?
6개월 내 해결해야…길어지면 감정 섞여
연구를 위해 그는 116개 단지의 공동주택 내 관리소 직원과 동 대표 및 입주자 대표, 층간소음관리위원회를 대상으로 층간소음 민원 현황과 층간소음관리위원회의 구성과 운영 방법을 조사해 분석했다.
해당 연구는 갈등의 유형을 기간에 따라 1, 2, 3단계 유형으로 분류했다. 1단계는 6개월 이내로 이 단계에서 피해자들은 침착하게 위층과 관리소에 자신의 피해 상황을 전달하며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이 과정에서 큰 문제는 일어나지 않는다. 2단계는 6개월~1년이다. 층간 소음이 당사자 간의 감정 문제로 확대되는 단계인데, 지속적으로 피해사실을 알렸음에도 나아지지 않을 때 이 상황까지 오게 된다.
이 단계에서는 층간소음이 당사자 간의 감정 문제로 확대되고, 위층과 관리소에 불신이 생겨 소통을 단절하거나, 심한 경우는 세대 간의 갈등이 불거진다.
3단계는 갈등 상황이 1년 이상 지난 경우다. 차 소장은 뉴스에서 보는 대부분의 사건이 이 경우라 설명했다. 1년 이상 갈등이 지속된 피해자들은 문제를 직접 해결하려고 한다.
주로 법적 소송을 준비하거나 폭력을 행사하려는 시도를 하는 것이다. 이때, 직접 갈등을 마주한 당사자들이 다툼을 벌이던 중 감정이 격해져 살인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차 소장은 지난달 광주 MBC 라디오 <황동현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살인을 막기 위한 골든타임은 1단계인 6개월 이내”라고 말했다.
그는 “살인이 일어나기 전까지의 골든타임을 6개월 이전이라 보고 있다”며 “피해 기간이 6개월 이전이라면 층간소음을 소음으로만 바라보니 객관적인 접근이 가능하지만, 이게 1년이 넘어가면 소음 20%에 감정이 80% 섞이며 감정문제로 넘어가게 된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이런 상태에서는 소음 피해자가 위층 사람 얼굴만 봐도 살인 충동이 난다고 한다. 이번에 일어난 여수 사건도 이런 경우로 보는 게 맞다”고 설명했다.
차 소장은 이날 인터뷰에서 6개월 이내의 경우라면, 피해를 준 집에 인터폰으로 먼저 올라간 뒤 올라가 정중히 피해사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1년이 넘은 상황이라면 이런 방법은 지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참는 게 답?
차 소장은 “1년 이상이 넘어가면 통상적으로 살인사건 등으로 이어지는 폭행 시비가 붙는 경우가 많다”며 “이 경우는 반드시 전문가와 상담하거나 관련 지식이 많은 제 3자, 혹은 기관이 개입해 접근 방법을 조언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