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세상 떠난 '문제인물' 고 문선명 통일교 총재

  • 김민석 ideaed@ilyosisa.co.kr
  • 등록 2012.09.10 10: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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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종교인'이었나 '희대의 사기꾼'이었나?

[일요시사=김민석 기자] 통일교의 창시자이면서 전 세계에 300만 신도를 거느린 '자칭 메시아' 문선명 통일교 총재가 성화했다. 문 총재는 그가 쓴 자서전에서 자신을 평한 바대로 항상 논쟁을 몰고 다녔다. 그 결과 '세계적 참 종교인'에서 '희대의 사이비 교주'까지 사람들의 평가가 극에서 극을 달리는 인물이 됐다. <일요시사>에서 그를 추모하는 의미에서 굴곡진 인생여정을 돌아봤다.

"나는 이름 석 자만 말해도 세상이 와글와글 시끄러워지는 세상의 문제인물입니다. 돈도 명예도 탐하지 않고 오직 평화만을 이야기하며 살아왔을 뿐인데 세상은 내 이름자 앞에 수많은 별명을 덧붙이고 거부하고 돌을 던졌습니다."

문선명 통일교 총재는 자서전 서문에서 자신의 인생을 이처럼 회고했다. 문 총재는 시끄러운 세상을 뒤로하고 지난 3일 향년 92세의 나이로 성화(인간이 부끄럼 없이 살다가 성스럽게 영계에 간다는 의미)했다.

김일성 장례 이후
18년만의 13일장

문 총재는 지난달 14일 폐렴으로 시작된 합병증으로 서울성모병원 호흡기내과 중환자실에 입원해 치료받았으나 현대의학으로 병세 호전이 불가능하다는 진단에 따라 지난달 31일 경기 가평군 청심국제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아오다 별세했다.

통일교 측은 고인의 장례를 13일장으로 치른다고 밝혔다. 13일장은 1994년 사망한 김일성 북한 주석의 장례 이후 단 한 차례도 이루어지지 않은 이례적인 일. 통일교 관계자는 13일장으로 치르는 이유에 대해 "문 총재 생전에 주로 13일로 큰 행사를 치렀다"며 "그 뜻을 기리기 위해 13일장을 치르게 됐다"고 설명했다.


'문선명 천지인참부모 천주성화식(天宙聖和式)'이라는 명칭의 성화식은 오는 15일 오전 경기 가평군 설악면 송산리에 위치한 '청심평화월드센터'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이 장소는 문 총재의 빈소가 마련된 곳으로 3만명 이상 수용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3일부터 5일까지 전 세계 통일교 신도들이 각 지역 처소 등에서 문 총재를 기리는 '특별정성기간'을 가진 후 6일부터 13일까지 8일간은 마련된 빈소에서 신도와 일반 조문객의 참배가 이뤄진다. 또 15일에 한해 문 총재의 시신을 일반에 공개할 예정이다.

문 총재는 통일교를 단 50여 년 만에 세계적인 신흥종교로 일으킨 범상치 않은 인물이다. 그는 전 세계에 걸쳐 약 300만 신도를 거느리고 있었으며 총 6조원으로 추정되는 어마어마한 자산을 굴렸던 재력가였다. 

'자칭 메시아' 생전에도 극명하게 엇갈렸던 평가
언론·외교·교육 등 전방위 걸쳐 국제적 영향력

뿐만 아니라 문 총재는 미국의 닉슨·레이건, 소련의 고르바초프 등 당대 최고의 정치권력과 교분을 맺으며 외교적 다리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으며 두 차례 북한을 방문해 김일성 주석과 의형제 관계를 맺으며 평화로운 남북관계에 일조하기도 했다. 이렇게 문 총재는 혼란스러운 시대에 태어나 그 이름 석 자를 세상에 널리 알린 인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문 총재에 대한 평가는 극에서 극으로 치닫는다. 통일교 신도를 비롯해 상당수 사람들이 문 총재를 두고 '세계에서 인정한 큰 종교인' '한국의 예수' '이 시대의 선각자' '남북을 넘나든 통일 사업가' 등의 찬사를 보내는 한편, 개신교 세력을 중심으로는 '자칭 메시아' '이단의 교주' '자신을 신이라 칭한 희대의 사기꾼' '종교 팔아 개인의 영달을 추구한 자' 등의 비난을 쏟아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종교적 관점을 빼고 순수하게 그의 일생과 업적만 놓고 보았을 때 어떤 인물일까? 그의 굴곡진 인생 여정을 돌아봤다.

그는 1920년 1월 6일 8남매 중 차남으로 평안도 정주에서 태어났다. 그는 자서전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인>에서 어린 시절의 자신을 두고 "눈이 작아 '쪼금눈이'로 불리고, 한번 울기 시작하면 하루 종일 울어서 '하루울이'라고 불리는 고집불통"이라고 회상했다.

'자칭 메시아' 문선명
'하나님 나라' 향한 여정


그는 15세가 되던 해에 기독교인이 되었다고 한다. 불과 1년 뒤 16세가 되던 해인 1936년 4월 부활절 아침 기도 중에 예수가 나타나 인류구원이라는 막중한 임무를 문 총재에게 직접 당부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때부터 세계평화를 위한 긴 노정이 시작되었다고 문 총재는 자서전에서 말하고 있다. 그리고 20대 중반 또 한 번 영적 체험을 하면서 통일교의 논리와 교리를 가다듬었고 '천일국(天一國·하나님 나라)'을 건설하겠다는 뜻을 세웠다고 말한다.

그는 18세에 정주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경성상공실무학교 전기과에 입학하여 예수교회 명수대예배당의 반사로 신앙생활을 했다. 1941년엔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와세다대학 부설 고등공업학교 전기과에서 공부했다.

문 총재는 1946년 평양에 개척교회를 세우면서 본격적인 종교 활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2년 만인 1948년 공산당에 의해 '사회질서 문란죄'로 구속돼 5년형을 선고 받고 흥남감옥에서 옥고를 치렀다. 그러던 중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해 문 총재 가족도 피난길에 올라 월남하게 된다.

남쪽의 끝 부산까지 내려와 터를 잡은 문 총재는 1954년 5월 스스로를 '메시아'라 칭하며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현 통일교)를 창립했다. 그리고 예수가 이루려다 실패한 이상세계를 문 총재 자신이 지상에서 이루겠다는 교리를 내세웠다.

이때 문 총재는 기성 교회에 염증을 느끼던 기독교 신자들을 주로 흡수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1955년 이화여대 여성 신학자 김영운 교수가 통일교로 개종한 사건을 계기로 기독교재단인 이화여대와 연세대의 학생 및 교수 20여명이 통일교에 입교한 것이 밝혀졌고 재단 측은 이들 모두를 퇴학·퇴직시켜버렸다. 그 여파로 문 총재도 이듬해 구속됐다.

절대순결, 절대사랑
3만쌍 합동결혼식 화제

개신교 세력의 거센 탄압에 국내 선교가 막혀버린 문 총재는 돌파구를 찾아 1958년 일본에, 1959년엔 미국에 각각 선교사를 파견해 본격적인 해외선교에 나섰다. 1961년엔 오랫동안 통일교에서 2인자로 군림했던 박보희씨가 주미대사관 무관보좌관으로 발령받으면서 통일교는 미국 선교에 날개를 달게 됐다. 미국에서의 왕성한 선교활동으로 1970년대엔 4000만달러를 지불하고 뉴욕의 43층짜리 호텔 건물을 사들여 통일교 세계본부로 사용할 만큼 자금 규모를 키웠다.

또 당시 미국에서 강조된 반공정책에 동조해 대도시에서 대규모 반공시위를 이끌어 주목받기 시작했다. 또 문 총재는 1982년부터 <워싱턴타임즈>를 창간해 극우보수 인사들의 입을 적극적으로 대변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미국 활동 중 그는 탈세 혐의로 댄버리교도소에 수감돼 13개월 동안 복역하고 85년 출소하기도 한다. 통일교에 따르면 문 총재는 평생 6번 옥살이를 하는 시련을 당했다고 한다.

문 총재는 1990년에 이르러선 모스크바에서 미하일 고르바초프 당시 소련 공산당 서기장을 만나 세계평화 등을 논의했다고 알려졌다. 문 총재는 자서전에 고르바초프 서기장과 면담한 자리에서 한국과 수교할 것을 촉구했다고 언급했다.

한 해 뒤인 1991년 11월30일 평양을 방문해 당시 북한에 생존해 있던 여동생을 상봉하고 흥남까지 헬기를 타고 가 '마전 주석공관'에서 김일성 주석과 만났다. 당시 문 총재는 김 주석과 금강산 개발투자 등 다양한 대북투자 사업에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 총재는 지난해 12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하자 북한에 조화를 보내기도 했다.

2001년 미국 뉴욕에서 9·11 테러가 발생하자 문 총재는 2003년 9월부터 2004년 5월까지 7차에 걸쳐 '이스라엘 평화대행진'을 열기도 했다. 이는 예루살렘 성지를 두고 오랜 갈등을 겪어온 유대교·기독교·이슬람교·시크교·힌두교 등 각 종단 대표자들이 이스라엘에 모여 화합을 도모하는 자리를 마련한 것. 또 2003년부터 시작된 세계클럽축구대회인 '피스컵'도 9·11 테러 이후 평화를 염원하는 문 총재에 뜻에 의해 열린 것이라 한다.

문 총재는 2005년 천주평화연합(UPF)을 창립한 데 이어 2010년 강대국들의 각축장이 된 유엔을 대체할 평화기구가 필요하다면서 '부모 유엔'을 창설하기도 했다. 이렇듯 문 총재는 세계평화에 각별한 관심을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통일교, 나아가 세계의 연례행사가 된 '합동결혼식'도 그 규모가 엄청나져 세간의 관심을 받고 있다. 합동결혼식은 1960년 스물세 살 연하인 한학자(둘째 부인)씨와 함께 통일교 내 '참부모'가 된 후 '순결한 가정'을 기치로 열게 된 것으로 1961년에는 참여자가 36쌍에 불과했으나 현재는 수만 쌍으로 규모가 엄청나게 커졌다.

1992년 8월 서울 잠실올림픽 주경기장에서 열린 3만쌍 국제 합동결혼식은 전 세계적으로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또 2001년엔 아프리카 잠비아의 가톨릭 밀링고 대주교가 문 총재가 맺어준 한국인 여성과 합동결혼식을 했는데 이에 로마 교황청이 반발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통일교에 따르면 지금까지 비신자를 포함해 5억쌍이 절대순결과 절대사랑의 참가정 서약을 하는 축복결혼에 참여했다고 한다.

이것도 통일그룹 것이라고?…종교단체야 재벌이야?
그가 떠나며 남긴 300만 신도와 수조원대 자산

통일교의 경전으로 불리는 <원리강론>에 따르면 통일교는 기독교 교리에 세계평화와 철학을 보태고 그 바탕은 가정의 순결이라는 교리를 내세우고 있다. 이에 행복한 가정과 평화를 원하는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이 통일교에 입교해 신도수가 늘었다는 것이 통일교 측의 설명이다.

실제로 통일교는 성경이나 예수의 가르침보다는 문 총재의 가르침에 더 초점을 두어 교단 설립 당시부터 이단 논쟁을 달고 다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0여 년 만에 전 세계에 걸쳐 300만 신도를 거느린 신흥종교로 성장한 것이다.

통일교의 교세가 이토록 급증할 수 있었던 것은 통일교의 교리도 훌륭하지만 문 총재의 반공성향이 박정희 및 레이건 부시 2대의 반공코드와 잘 맞았기 때문이라는 평이다.


통일교는 종교집단으로 시작해 경제, 문화, 예술, 언론, 교육 등 다방면에 사업을 확장하며 거대 기업집단으로 성장했다.

통일그룹의 계열사로는 일화, 일신석재, 세일중공업, 성일기계 등 15개 분야의 기업 외에도 국내 일간지 <세계일보>, 미국 일간지 <워싱턴타임즈>, 세계 4대 통신사 중 하나인 <UPI통신> 등 세계 각지에 굵직한 언론사를 거느리고 있다. 또 경복초, 청심국제중·고, 선화예고, 선정고, 선문대 등 여러 학교를 운영 중이고 의료법인 청심국제병원과 리틀엔젤스예술단, 유니버설발레단 등 문화예술단체도 소유하고 있다.

통일교의 총자산은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대략 한국 2조4000억, 일본 2조, 미국 1조, 기타 5000억원 해서 총 6조원 상당으로 추정하고 있다. 국내에 소유한 주요 부동산만 해도 여의도 통일교 세계본부 건축예정지(약 1500억), 세계일보 부지(약 1000억), 청평유원지(약 500억), 선문종합대학(약 500억), 도원빌딩, 강남 센트럴시티, 강남 신세계 백화점, 반포 메리어트호텔 등이 있다.

전 세계 6조원 자산
누가 어떻게 관리하나?

문 총재는 14남매를 두었다. 통일교회의 핵심축인 종교부문은 7남 문형진(33) 통일교 세계회장이 맡고 있다. 문 총재는 생전에 유서를 통해 7남 문 회장을 자신의 종교적 후계자로 지명한 바 있다. 3남 문현진(43)씨는 통일교 산하 기업군인 UCI 회장이고, 4남 문국진(42) 통일그룹 회장은 교계 재단 산하 기업들을 맡고 있다. 5남 문권진씨는 미국 체류 중이며 장남과 차남, 6남은 젊은 나이에 사망했다. 마지막으로 한학자씨는 선문학원 이사장과 세계평화여성연합 총재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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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②부정선거에 꽂힌 내막

[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②부정선거에 꽂힌 내막

[일요시사 취재1·정치팀] 오혁진·박희영·김철준 기자 =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한 지 6개월이 지났다. 특검이 출범하면서 관련 수사도 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현재까지 여러 언론을 통해 핵심 인물들의 수사 기록이 일부 보도됐다. 그러나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에 대한 내용은 구체적으로 언급된 바 없다. <일요시사>는 경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단의 ‘노상원 수사 기록’을 단독으로 입수해 공개하기로 했다. “부정선거 증거가 차고 넘치고 나중에는 드러날 것이다.”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이 수사기관에 진술한 내용이다. 그가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처럼 부정선거 음모론에 꽂혀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노 전 사령관은 윤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주최하는 집회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사실상 수년 전부터 망상에 빠져있었다고 볼 수 있다. 같은 생각 노 전 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주도하는 부정선거 음모론 집회에 참여하기 시작한 건 2년 전부터로 추정된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노 전 사령관 수사 기록에 따르면 그는 부정선거 음모론 집회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의 집회에 여러 차례 참여했다. 노 전 사령관이 전 목사와 개인적으로 알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노 전 사령관은 김 전 장관에게 집회에 참여할 때마다 당시 분위기와 참석자들이 윤 전 대통령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텔레그램으로 자신의 의견을 전달했다. 1년간 ‘극우 집회’를 분석한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그는 “문상호, 정성욱, 김봉규 등과 만날 때 주로 어떤 말을 했느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 “선관위를 얘기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선관위가 부정선거의 온상이라고 김용현 전 장관이 많이 말씀하셨다. 나에게도 여러 번 선관위의 부정선거에 대해 알아보라고 지시했고 네이버로 찾아도 봤다”고 말했다. “부정선거를 주로 누구에게서 들었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는 “관련 집회에 여러 번 참여하면서 들었고 특정 인물이 누구인지 실명을 거명하긴 그렇다. 나도 김 전 장관에게 보고를 해야 해서 스스로 공부도 많이 했다. 여론조사 조작이나 선거 부정은 합리적인 근거가 있다”고 했다. 전 주도 윤 지지자 극우 집회 직접 참석 김과 텔레그램으로 부정선거 자료 공유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의 근거로 “선관위 산하에 여론조사심의위원회가 있다. 여론조사기관은 여론조사심의위에 등록해야 한다. 여론조사기관의 갑이다. 여론조사심의위원회는 9명으로 위원장 이대영 사무총장과 강성봉 등이고 그 밑에 쭉 있는데 7명이 진보 계열 인물이다. 여론조사기관이 편향되어 있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고 주장했다.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이 주장하는 임시선거사무소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네이버에 검색하면 다 나오는데 2021년 국회의원 선거 때 동작구 선거사무소가 있는데 옆을 임대해서 임시선거사무소를 만들었었다. 언론에 나오니까 발뺌했었고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자 김 전 장관이 더 많은 자료를 보내 줬었다”고 했다. 노 전 사령관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며 “결국에는 다 까질 것이다. 전산은 한 번 가지면 되돌릴 수가 없다. 폭파하거나 고물상에 갖다 버리지 않는다면 전산은 결국 까진다. 북한이 쳐들어온 것도 아니고 서울 상공에 포를 쏜 것도 아니지만 윤석열 전 대통령께서는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고 생각하시고 정국이 전시에 준하는 사태라고 민감한 상황이라고 보신 것 같다. 그런 상황이 아닌데도 그렇게 행동한 건 그만큼 절박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2시간짜리 호소였다. 만약 국회 결정을 윤 전 대통령께서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유혈사태가 났을 것”이라고 윤 전 대통령을 옹호했다. 노 전 사령관은 12월 초 후 선관위가 서버 교체를 검토했다가 교체하려 했던 것을 두고 “윤 전 대통령께서 어디에선가 확실하고 핵심적인 정보를 들으셨을 것 같다. 서버 조작이 있었기에 그 서버를 우리가 확보하려 할 때 선관위 측이 폭파했을 수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의 군검찰·검찰 피의자 신문조서를 보면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8월 초 ‘정보사 군무원 간첩 사건 수사 결과’를 보고받는 자리에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인 등 인물들에 대해 “비상대권을 사용해 이 사람들에 대해 조치를 해야 한다”며 “현재의 사법체계, 형사소송법, 방탄국회 및 재판지연 아래에선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재명 조치’ ‘2시간짜리 계엄’ 겹치는 윤·노 발언 "서버 확보하려 했다면 선관위가 폭파했을 것” 주장 윤 전 대통령이 “비상대권을 사용한 조치”를 언급한 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만큼 이 대통령과 자신의 의견을 거스르는 인물들에 대한 복수심이 극에 달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노 전 사령관도 마찬가지다. 노 전 사령관은 경찰에 “김용군(대령)과 구삼회 등에게 ‘이재명은 죄가 7개인데 봐주고 지연시키고 구속도 안 되고 당 대표까지 하는데 더불어민주당이 감사원장, 중앙지검장, 판사 등을 모두 탄핵하려고 하는 게 과연 올바른 세상이냐’고 한 적이 있다”고 진술했다. 윤 전 대통령과 노 전 사령관이 언급한 말이 일치하는 건 이뿐만이 아니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12일 “국정원 직원이 해커로서 해킹을 시도하자 얼마든지 데이터 조작이 가능했고 비밀번호도 아주 단순해 ‘12345’ 같은 식이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노 전 사령관도 “선관위는 헌법기관인데 스스로 깨끗해야 하거나 아무런 문제가 없어야 하는데 황제·세자 채용 등 문제가 나왔다. 각종 할 수 있는 최악의 것은 다 저질렀다. 그리고 전산 해킹이 언급될 때 서버 본체를 보여준 것도 아니고 일부 샘플만 살짝 보여줬는데 얼마든지 전산 조작이 가능하고 해킹에 얼마나 취약하면 비밀번호가 ‘1234’냐. 이미 그런 게 다 나왔다. 그렇게 떳떳하면 왜 본체를 못 열어주나”고 말했다. 그러나 조태용 국정원장은 같은 해 12월 검찰 조사에서 “선관위 시스템에 보안상 취약점이 발견됐지만, 부정선거에 관한 단서는 전혀 포착하지 못했다”는 내용으로 보고했다고 진술했다. 일각에서는 노 전 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과 직접 비화폰으로 연락을 주고받았을 것이라는 보고 있다. 실제 노 전 사령관도 지난해 12월2일 자신의 지인에게 윤 전 대통령과의 친분을 과시했다. 노 전 사령관은 당시 “나 같은 경우는 브이(V, 윤 전 대통령 지칭)하고 이렇게 좀 도와드리고 있다. 원래 한 4~5년, 3~4년 전에 알았다뿐이고 그래서 이제 뭐 이렇게 여러 가지로 좀 도와드리고 있다. 비선으로”라고 했다. 친분 과시 노 전 사령관은 안산 ‘롯데리아 회동’에 참석했던 구삼회 전 육군 2기갑여단장에게도 “며칠 전에는 김용현과 함께 대통령도 만났다. 갈 때마다 대통령이 나한테만 거수경례를 하면서 ‘사령관님 오셨습니까’라고 한다. 내가 이런 사람이다. 대통령과 장관 같이 만난다. 나는 벌써 여러 번 만났다”고 했다. <hounder@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