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 위험?' 2학기 등교 딜레마

아이들 건강도 공부도 걱정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교육 백년지대계’라는 말이 있다. 교육은 사회 발전의 초석이기 때문에 백년 뒤를 바라보고 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모든 계획은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당장 2학기 등교 문제를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학교가 위험지대가 된 모양새다.

“코로나19 발생 이전의 세상은 이제 다시 오지 않는다. 이제는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생활 속에서 감염병 위험을 차단하고 예방하는 방역활동이 우리의 일상이다.” 권준욱 국립보건연구원장은 지난해 4월11일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19) 정례 브리핑에서 이렇게 말했다. 

감염병 확산
교육계 타격

지난해 1월20일 국내에 코로나19 첫 확진자가 발생했다. 그로부터 1년7개월, 한 자리로 시작된 확진자 수는 네 자리까지 폭등했다. 지난 10일에는 확진자 수가 사상 처음으로 2000명을 넘어섰다. 사회적 거리두기, 백신 접종 등 전방위적 조치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의 불길은 ‘델타 변이’를 만나 더욱 거세지고 있다. 

전 세계를 팬데믹으로 끌고 간 감염병의 위력은 대단했다. 코로나19는 우리나라 국민의 일상도 완전히 뒤바꿔 버렸다. 마스크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게 됐고, 방문 장소마다 흔적을 남기는 일이 자연스러워졌다. 모임 인원과 영업시간의 제한 등 방역조치라는 명목으로 국민의 자유가 제한됐다.

가장 강력한 수준의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가 시행되면서 경제지표가 바닥을 향했고 특히 자영업자의 상황이 나락으로 떨어졌다. 정부는 이들의 손실 보전을 위해 여러 차례에 걸쳐 지원금을 뿌렸지만 ‘언 발에 오줌 누기’라는 비판에만 직면했다. 사회 전반이 코로나19 여파로 초토화 상태에 빠졌다. 


교육계도 예외는 아니었다. 교육 현장은 코로나19가 지속될수록 학생들의 피해가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감염병 확산으로 등교 수업이 이뤄지지 않더라도 학생들의 시간은 계속 흘러가기 때문. 가령 초등학교 1학년 학생이 1년 내내 등교를 하지 못했다 해도, 1학년을 다시 다닐 수는 없다. 

실제 교육 현장은 코로나19로 사상 초유의 일을 이미 수없이 겪었다. 지난해 2월18일 신천지를 중심으로 대구‧경북에서 코로나19 1차 유행이 시작됐다. 확진자 수가 급증하면서 대구 지역 관내 유치원과 초·중·고, 특수학교의 개학을 연기한다는 입장이 나왔다.

지난해 4월 사상 초유 온라인 개학
확진자 숫자 따라 등교 일수 널뛰어

교육부는 전국 단위의 개학 연기는 없다고 했지만 같은달 23일 개학을 3월9일로 미룬다는 중앙사고수습본부 발표가 있었다. 전국 단위로 내려진 첫 휴교령이었다.  

이후 전국 유치원과 초·중·고 개학은 3월23일, 4월6일 등으로 잇따라 미뤄졌다.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4월9일로 개학을 4번째 연기하면서 등교 대신 사상 초유의 온라인 개학을 발표했다.

당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와 교육부는 코로나19 확진자 발생 현황, 감염 통제 가능성 등을 두고 등교 개학이 어렵다고 판단했다. 4월9일 고3·중3학년 온라인 개학에 이어 4월16일 고 1~2학년, 중 1~2학년, 초 4~6학년, 마지막으로 4월20일에 초 1~3학년 온라인 수업이 시작됐다. 심지어 수능도 2주 미뤄져 12월3일에 시행된다고 발표했다. 

전국 유치원과 초·중·고의 등교 인원은 코로나19 확진자 수에 따라 널을 뛰었다. 순차적으로 등교 인원을 늘렸다가 급증하는 확진자 수에 다시 숫자를 줄이는 일도 빈번하게 일어났다. 교육당국은 물론 학생과 교사, 학부모까지 코로나19 확진자 발생 상황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온라인과 등교 수업이 반복되면서 교육 분위기도 악화됐다. 

그렇게 1년이 지났다. 교육부는 이제 등교 수업 확대가 절실하다는 입장이다. 온라인 수업이 낳는 후유증이 등교 수업에서 야기될 수 있는 문제보다 크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교육부는 2학기 등교 수업 확대를 넘어 전면 등교를 추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등교 제한
온라인으로

다음달 3일까지 학교 방역상황 등을 꼼꼼하게 살펴본 뒤 6일부터 본격적으로 등교 확대를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교육부가 최근 발표한 ‘교육회복을 위한 2학기 학사운영 방안’에 따르면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에서 초등학교 1~2학년은 모두 등교한다. 중학생은 3분의 1, 고등학교 1~2학년들은 절반만 등교할 수 있다. 밀집도 예외 대상인 고3은 거리두기 단계에 상관없이 전면 등교한다. 

사회적 거리두가 단계가 3단계로 조정될 경우 모든 학교의 등교는 확대된다. 초등학교 3~4학년은 4분의 3이 학교에 갈 수 있고, 중학생은 3분의 2가 등교한다. 고등학교에서는 전면 등교가 가능해진다. 

학교 방역 집중 점검이 마무리되는 다음달 6일부터는 등교가 본격적으로 확대된다.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가 이어질 경우에도 고등학생은 전면 등교하게 된다. 중학생은 3분의 2 이상이, 또 초등학교 3~6학년 절반 이상의 등교가 가능해진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3단계로 하향 조정되면 모든 학생들의 전면 등교가 이뤄진다. 

서울도 마찬가지다. 지난 19일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전면등교‧교육회복 집중 지원’ 관련 온라인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조 교육감은 “9월3일까지는 국가와 지자체 수준에서 총력 방어전을 펼치는 2학기 전면 등교 준비 기간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다”며 “9월6일 이후에도 4단계면 전면 등교에 일정한 제한을 가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3분의 2 등교가 될 것 같다”고 밝혔다. 

교육부가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줄어들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도 등교 수업을 추진하는 주된 이유는 학생들의 학습결손과 사회성 저하에 대한 우려다. 유 부총리는 “비대면 원격수업은 원활한 학습 지도와 관계 맺기 등에 한계가 있다”며 “많이 어려운 시기지만 학교를 가야만 온전히 누릴 수 있는 것들을 우리 아이들에게 돌려줘야 할 때”라고 말했다. 

기초학력
미달 늘어

학습결손 현상은 이미 일정 부분 확인됐다. 교육부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2020년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를 지난 6월에 발표했다. 학업성취도 평가는 문재인정부 출범 뒤인 2017년 전수평가에서 표집평가로 전환됐다. 중3·고2 학생 전체에서 3%의 표본 학생으로 축소된 것이다. 

평가 결과 상위그룹인 보통학력 이상 비율은 중학교 국어·영어, 고등학교 국어에서 감소했다. 중3의 경우 2019년 보통학력 이상 비율은 국어 82.9%, 영어 72.6%였지만 지난해에는 75.4%, 63.9%로 각각 7.5%포인트, 8.7%포인트 하락했다. 고등학교 국어도 같은 기간 77.5%에서 69.8%로 7.7% 낮아졌다. 


특히 기초학력 미달 비율은 표집평가로 전환한 이후 최고 수준이었다. 중학교 수학을 제외한 모든 과목에서 2019년 대비 늘어났다. 중3 국어의 경우 전년 4.1%에서 6.4%로, 영어는 3.3%에서 7.1%로 각각 2.3%포인트, 3.8%포인트 늘었다. 특히 고등학교 국어·수학·영어에서 모두 기초학력 미달 비율이 증가했다. 

온라인 수업이 길어지면서 교우 관계를 제대로 맺지 못한 점이 사회성 저하로 이어진다는 우려도 나온다. 학교생활에 대한 학생들의 행복도 역시 등교 수업 때와 비교해 낮아진 경향을 보였다. 학교생활 행복도는 학생들의 만족도와 적응도를 나타내는 수치다.

학교생활 행복도는 2013년 이후 꾸준히 늘어, 매년 60% 안팎의 결과를 보였지만 코로나19로 온라인 수업이 진행됐던 지난해에는 하락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학계와 현장 교사들에 대한 의견 수렴 결과 코로나19로 인한 등교 축소, 원격수업 전환 등으로 학생들이 학교생활에서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나타났다”며 “이 과정에서 학교생활 행복도와 자신감 등이 하락해 학업성취도 저하에 영향을 줬다”고 분석했다. 

학습결손·사회성 저하
학생·학부모 불안 여전

교육부는 학교가 다른 장소에 비해 코로나19 감염 위험에서 상대적으로 안전하다는 연구 결과도 내놨다. 최은화 서울대 가정의학과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지난 3월부터 7월까지 학생들의 코로나19 감염 경로는 가정(48.7%), 지역사회(22.6%), 학교(15.9%) 순이었다. 


유 부총리는 “한 학교 안에서 5명 이상 확진자가 나오는 집단감염은 2만여개 학교 중 0.44%인 91곳에 불과했다”며 “전문가가 볼 때도 이 비율은 매우 낮은 수준이고 이는 학교가 상대적으로 안전했다는 뜻”이라고 강조했다. 

교육부 관계자도 “미국과 영국, 일본 같은 국가에서도 확진자가 늘어나고 있지만 전면 등교를 추진하는 등 등교 수업을 원칙으로 세웠다”며 “학교 감염 상황 분석과 등교 확대 필요성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등교 확대 기조를 유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교육부의 확고한 의지에도 학생과 학부모는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2학기 전면 등교에 반대하는 청원글이 올라왔다.

청원자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리고 델타 변이까지 나온 상황에서 2학기 전면 등교는 아니라고 본다”면서 “제가 다니는 학교, 옆 학교에서도 확진자가 나오는 상태에서 등교를 강행하는 것은 학생들과 그 가족, 지인들을 모두 위험에 빠뜨리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다른 청원의 게시자는 “(사회적 거리두기)4단계라 수도권은 오후 6시부터 3인 (이상 모임)도 집합금지고 많은 시설이 문을 닫았는데 굳이 전면 등교를 시행하는 게 이해가 안 된다”면서 “코로나19에 걸려 대학 면접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까 봐 너무 무섭다”고 반대하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교원단체는 교육부의 방침에 동의를 표하면서도 세심한 방역 대책을 주문했다. 하윤수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장은 “점점 심각해지는 학생들의 학력‧사회성 저하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등교 확대의 필요성에 공감한다”며 “다만 학생 감염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더 촘촘한 방역 대책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확산세에
달렸다

결국 변수는 코로나19 확산세다. 이미 한 달 넘게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1000명을 넘어선 것은 물론 2000명을 넘는 날도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를 계속 연장하고 있지만 확진자 수는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유일한 대책으로 평가받는 백신 수급도 불안하다. 교육부의 의지나 학생과 학부모의 불안감에 관계없이 전면 등교는 코로나19 확산세에 달렸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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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APEC’ 강대강 매치 막전막후

‘경주 APEC’ 강대강 매치 막전막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오는 31일부터 다음 달 1일까지 APEC 정상회의(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sia-Pacific Economic Cooperation, 이하 정상회의)가 경북 경주에서 열린다. 우리나라를 제외한 20개 나라 정상이 초청 대상으로, ‘외교 슈퍼 위크’가 시작된 셈이다. 우연의 일치일까? 각국의 강경파들이 경주로 모이면서 서로 어떤 합을 보일지 관심이 쏠린다. 2025 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한미 관세 문제가 급물살을 탔다. 지난 7월 협상 시한 하루를 앞두고 한미 간 무역 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된 지 약 세 달 만이다. 정상회의를 계기로 관세 협상이 매끄럽게 마무리될 것이란 기대감이 나온다. 노브레이크 미국 관세 쟁점은 한국이 상호 관세를 15%로 낮추는 조건으로 미국에 투자하기로 한 3500억달러(약 500조원)에 대한 지불 방식이다. 한국은 직접 투자 비중을 줄이고 투자 기간을 늘리겠다는 방침이지만,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임기 내 최대한 현금 투자를 확대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번 정상회의에서 현금 선불 투자를 고집하는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할 수 있는지가 협상 타결의 관건이란 관측이 나온다. 정상회의가 며칠 남지 않은 시점까지도 협상은 난항을 겪었다. 큰 틀에서는 합의가 이뤄졌지만, 세밀한 부분이나 주요 쟁점이 해결되지 않는 등 의견이 모이지 않은 탓이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지난 22일(현지시각)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과 회담한 뒤 “진전이 있었다”면서도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날 김 실장은 ‘마지막 쟁점이 조율됐느냐’는 특파원들 질문에 “쟁점이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두 개라고 했고, 아주 많지는 않다”며 “오늘 남아있는 쟁점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고 진전이 있었다. 만나면 조금 더 상호 입장을 이해하게 된다”고 답했다. 양국의 대면 협의가 사실상 이날 종료되면서 이재명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두 사람의 결단만 남았다. 미중 간의 관세 협상 결과와 이번에 이뤄질 두 정상의 만남이 한국에 영향을 끼치지 않겠냐는 분석이 나온다. 앞서 중국과 미국은 지난 4월부터 보복 형식으로 서로를 향해 관세 허들을 높여갔다. 그러던 중 중국이 희토류 수출 통제 카드를 꺼내면서 질주하는 미국에 제동을 걸었고,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산 제품에 100% 관세를 추가 부과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며 관세 전쟁은 절정으로 치달았다. 추가 관세가 현실화하면 중국이 미국에 내야 할 관세는 157%에 달하는 만큼 미중 간의 팽팽한 대립이 이어졌다. 좁히지 못한 ‘디테일’ 막판 협상 난항 이 “우리는 동맹…상식과 합리성 공유” 중국이 밸브를 잠그자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희토류와 핵심 광물 공급 협력에 관한 협정에 서명했다. 이는 정상회의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기 전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전략으로 해석된다. 일본도 일부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희토류 삼각 동맹이 이뤄진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1일 백악관 로즈가든 클럽에서 주재한 오찬 행사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한국에서 만나 많은 것을 이야기할 것”이라며 대화의 여지를 열어뒀다. 이어 “우리가 협상에서 잘할 것으로 생각한다”며 “나는 시 주석과 좋은 합의를 하고 싶고, 시 주석이 중국을 위해 좋은 합의를 하길 바란다. 하지만 그 합의는 공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중 간 무역 갈등이 장기화되면 한국 경제 성장률을 비롯해 수출입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이 대통령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한미 관세 협상 타결 전망과 관련해 “조정·교정하는 데 상당히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투자펀드를 둘러싼 이견에 대해서는 “결국 이성적으로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합리적인 결과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며 “왜냐하면 우리는 동맹이며 서로 상식과 합리성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미중 갈등이 현재 진행형인 상황에서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한국이 어떤 입장을 취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11년 만에 이뤄진 시 주석의 방한도 눈여겨볼 만하다. 아직 한중 관계에 큰 잡음은 없지만 훈풍이 불지 않는 만큼 개선의 여지가 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따라서 이번 정상회담에서 이 대통령은 한중 관계의 안정적 관리에 대해 초점을 맞출 것으로 전망된다. 이재명정부의 첫 주중대사인 노재헌 신임 대사는 “(시 주석의) 국빈 방문이 계획됐기 때문에 한중 관계가 새로운 도약을 맞이할 수 있는 좋은 계기라고 생각한다”며 “양국 지도자 간에 우호와 신뢰 관계를 다시 굳건히 하고 그 초석 위에서 한중 관계를 발전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직 친하지?” 서먹해진 중국 이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미·중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하는 시험대에 놓였다. 이 대통령은 지난 9월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 열리는 ‘항일전쟁 및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80주년(전승절)’에 초청받았지만 의전 서열 2위인 우원식 국회의장이 대신 자리했다. 이 대통령의 전승절 참여 여부를 놓고 국민의힘이 친중 프레임을 굳히자 불필요한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한 선택으로 풀이된다. 앞서 백악관은 이 대통령이 취임한 직후 축사를 하던 중 뜬금없이 “중국의 간섭과 영향력 우려”라며 중국을 향해 견제구를 날렸다. 한국이 중국과 우호적인 관계임을 강조할 경우 미국이 제동을 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해석이다. 이처럼 한중 관계 개선의 가장 큰 변수는 미국인 만큼 한국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공정한 외교 전략을 펼쳐야 한다. 김지수 한반도 미래경제 포럼 대표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단어가 나오던 때랑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안보와 경제가 같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런 점에서 미국이 더 중요해졌다”고 봤다. 이 대통령 역시 안미경중 노선에 대해 “과거처럼 그런 태도를 취할 수는 없는 상황이 됐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미국이 중국에 대한 강력한 견제, 나아가 봉쇄 정책을 본격 시작하기 전까지 한국은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입장을 유지해 왔던 게 사실”이라면서도 “몇 년 사이 자유 진영과 중국을 중심으로 한 진영 간 공급망 재편이 본격적으로 벌어졌고 미국의 정책이 노골적으로 중국을 견제하는 방향으로 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한국도 미국의 기본적인 정책에서 어긋나게 행동하거나 판단할 수 없는 상태”라며 “중국은 지리적으로 매우 가까운 데서 생겨나는 불가피한 관계를 잘 관리하는 수준으로 유지하는 상황”이라 고 부연했다. ‘여자 아베’ 경주 데뷔 김 대표는 “미국의 최대 경쟁국은 중국”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미국은 중국을 제어하기 위해 한국을 향해 손짓하고 있다. 미중 패권 전쟁에서 유리한 전략을 모두 취하고 있는 것”이라며 “중요한 것은 중국을 어떻게 관리하느냐다. 미국과 가까이 지내기 위해 중국을 적대시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중국인 무비자 입국으로 한국 전역에 퍼진 반중 혐오 시위도 고려 대상이다. 최근 국민의힘 등 보수 세력을 중심으로 반중 정서가 확대되면서 외교 갈등이 촉발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와 관련해 노 대사는 중국 주상하이 총영사관에서 주중대사관을 상대로 열린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한국 내 반중·혐중 시위를 묻는 말에 “당연히 우려되고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고 양국 국민의 우호 정서 함양·증진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며 “근거 없고 음모론에 기반한 행위에 대해서는 조치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시적 비자 면제 정책에 대한 자국민의 우려에 대해서도 “불법 체류 현황은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고, 범죄 같은 부분은 입국자 등을 잘 지켜보면서 필요하면 단속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지난 21일 선출된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신임 총리는 이번 정상회의를 시작으로 본격 대외 행보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보수 성향이 짙은 탓에 한일 관계가 틀어지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정권 초기인 만큼 우호적 태도를 유지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중의원 10선 의원으로 경제안보담당상, 총무상, 자민당 정무조사회장 등을 지낸 인물이다. 일본 정계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비세습 여성 정치인으로 강경 보수 성향이라는 평가와 함께 입지를 다져왔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 4일 치러진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승리하며 당권 티켓을 거머쥐었지만 1999년부터 자민당과 협력해 온 중도 보수 성향인 공명당이 연정에서 이탈해 표가 분산될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강경 보수 성향이자 제2야당인 일본유신회를 새롭게 끌어들이면서 극적으로 총리직에 당선됐다. 서로 싫다는 미·중, 사이에 낀 한국 일본까지 강경파 ‘폭풍 속 한반도’ 이 대통령은 신임 일본 총리가 선출된 것에 대해 “정상회의가 개최되는 경주에서 총리를 직접 뵙고, 건설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길 고대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같이 밝히며 “우리는 새로운 한일 관계의 60년을 열어가야 하는 중대한 전환점에 서 있다. 그 어느 때보다 불확실성이 높아진 국제 정세 속에서 한일 관계의 중요성 역시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중대한 시기에 총리와 함께 양국 간, 그리고 양 국민 간 미래지향적 상생 협력을 한층 강화해 나가길 기대한다. 아울러 셔틀 외교를 토대로 양국 정상이 자주 만나 소통할 수 있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훈훈한 축하 인사와 달리 한일 관계는 다시 시험대에 놓였다. 온건하다고 평가받았던 이시바 시게루 내각 체제만큼 협력 기조가 이어질지 확실치 않기 때문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2021년 총재 선거 당시 고 아베 전 총리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신임 보수 전사로 떠올랐다. 이번 총리 선거에서 역시 아베 전 총리의 파벌로 형성된 아베파의 지지가 두터웠던 것으로 전해진다. 일본 현지 신문은 자민당의 연정 상대가 공명당에서 유신회로 바뀌면서 다카이치 내각의 보수색이 선명해졌다고 해석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과거부터 야스쿠니 신사를 꾸준히 참배해온 만큼 한국 과거사와 독도 영토 문제 등 민감한 사안을 놓고 이정부와 충돌할 우려도 제기된다. 일각에서는 다카이치 총리가 이번에 보여준 강경 보수 행보는 우익 세력을 끌어들이기 위한 방법으로 한일 외교에 있어서는 이시바 내각과 마찬가지로 온건한 노선을 택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다카이치 총리는 취임 기자회견에서 한일 관계에 우호적인 뜻을 내비쳤으며 가을 예대제 기간에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지 않을 것으로도 전해진다. 한일 관계 전망이 불투명한 가운데 다카이치 총리의 온건 행보가 일시적일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역대 총리들이 그랬듯 지지율이 떨어지면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고 반한 감정을 부추겨 보수 지지층 결집을 유도할 것이란 점에서다.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이 대통령이 국가 간의 가교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한미, 한중, 미중 정상회담이 연쇄적으로 열릴 가능성이 크고 비핵화와 관련해 이 대통령이 남·북·미 간의 대화 물꼬를 튼다면 경주를 무대로 ‘평화 한반도’ 기조를 형성하는 일등 공신 역할을 노릴 수 있다. 눌리거나 손잡거나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관계자는 “이 대통령에게 가장 큰 변수는 아무래도 미국이다. 각 국가 정상마다 성향도 다르고 원하는 바도 다른 만큼 미국부터 삐끗하면 차후 일정도 줄줄이 꼬인다”면서 “조급하게 나서면 될 일도 안 되는 게 외교 문제다. 한국은 한국만의 강점이 있다. 우리 쪽에서도 몇 가지 카드가 있을 테니 지금으로서는 정부를 믿는 것이 최선”이라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하필 지금? 미사일 쏜 북한 속내 지난 22일 북한이 이재명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단거리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한미·한중 정상회담 등에서 북한 문제가 다뤄질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존재감을 과시하고 미국을 향한 시그널을 보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주한미군과 우리 군의 반응이 엇갈린 점 역시 주목된다. 주한미군은 미국의 한미 동맹에 대한 공약이 굳건하다는 점을 강조하며 “불법적이고 불안정을 초래하는 행위를 강력하게 비판한다. 북한에 유엔안보리 결의 위반 행위를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반면 우리 군은 통상 해오던 미사일 발사 규탄 성명을 내지 않았다. 정상회의를 앞두고 이정부가 남북 평화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는 만큼 이를 의식해 톤 조절에 나선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