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잔혹사]④스크린·안방극장은 ‘모방범죄’ 양성소?

너무 사실적으로 묘사하는거 아냐?


‘지금 여자들이 사라지고 있다’ ‘군포 여대생 실종 사건과 유사한 스토리 라인’. 지난 1월29일 개봉한 미국영화 <트랩>의 홍보 문구다. 온 국민을 연쇄살인의 충격으로 몰아넣고 있는 군포 여대생 사건을 홍보문구로 사용해 빈축을 사고 있다. 영화 <트랩>은 여성 연쇄실종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로 2006년부터 총 7명의 여성을 납치·살해한 군포 여대생 살해범 강호순의 행각과 흡사한 면이 있다. 연쇄살인은 영화가 사랑하는 소재인 동시에 범죄에 대한 영향, 모방범죄 가능성 등으로 사회적인 지탄을 받기도 한다.

‘강호순 연쇄살인사건’ 영화로 만든다는 이야기 솔솔
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 모방범죄 가능성 높아 사회적 지탄
<살인의 추억> <추격자> <그놈 목소리> 실화 사건 영화화 흥행 성공
안방극장 범죄 재연 프로그램, 범죄 예방보다 모방범죄로 악영향


강호순이란 연쇄살인마의 사건이 연일 모든 뉴스와 인터넷에 가득 채워져 있다. 벌써 강호순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다는 소문이 어디선가 흘러나온다.
1993년 지존파 사건은 범인들이 당시 유행했던 <지존무상>에서 이름을 따서 조직을 결성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비슷한 영화들이 몰매를 맞기도 했다. 연쇄살인을 다룬 영화, 특히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가 제작이 어렵고 조심스러운 것은 모방 범죄 때문이다.
한국영화 속 연쇄살인범은 한풀이가 많았고 성장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는 설정, 음모론 등이 주를 이뤘다. <오로라공주> <우리동네> <예스터데이> <텔미썸씽> <H> 등에서 연쇄살인범들은 한국 공포영화 속 주인공들처럼 한이 섞인 이들이 살인을 저지른다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미제 사건이 많아지면서
실화에 눈을 돌리기 시작

그러나 점차 현실이 더 잔혹해지고 미제 사건이 많아지면서 한국영화는 실화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사이코패스에 초점을 맞춘 영화와 연쇄살인을 시대의 공기에 연결하는 작품이 등장했다. <살인의 추억> <추격자>는 실화 연쇄살인사건을 영화로 만들어 크게 성공했다. 그 외에도 <그놈 목소리>처럼 실화 범죄사건을 영화화한 작품도 꽤 있다.
강우석 감독의 <공공의 적>은 돈을 노리고 아버지를 살해한 실화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작품이었다. 강우석 감독은 범인에 대한 어떤 미화도 하지 않고 강철중이라는 억척 형사가 단죄하게 만들었다.

봉준호 감독은 대표적인 미제 사건인 화성 연쇄 살인사건을 <살인의 추억>에 담아 시대와의 불화에 접목시켰다. 시국 사건에 쫓겨 수사력을 집중하지 못하고 한건주의로 엉뚱한 사람을 범인으로 둔갑시킨 암담했던 시대가 범죄를 양산했다고 그렸다.
<살인의 추억>은 살인사건에 대한 시효 문제를 사회적으로 환기시키기도 했다. 범인을 반드시 잡아서 처벌해야 한다는 여론을 일으켰다. 이형호 군 납치사건을 그린 <그놈 목소리> 역시 미제 사건 시효를 없애야 한다는 여론과 함께 다시 한 번 안타까운 범죄를 환기시켰다.
이들 영화의 특징은 미제 사건인 탓도 있지만 범인에 대한 일말의 동정도 담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실화라는 점도 있지만 무엇보다 제작진이 사건을 통해 범인에 대한 단죄, 그리고 사회적인 환기를 목적으로 한 탓이다.

<그놈 목소리> 제작사의 한 관계자는 “아동범죄에 대한 공소시효 연장 청원을 해서 결과를 냈다”면서 “영화가 할 수 있는 몫을 하려했다”고 말했다.
범인을 잡은 사건도 냉철한 시각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 큰 화제를 모은 <추격자>는 21명을 살해한 유영철 사건을 스크린으로 옮겼다. 영화는 범인의 살해 동기나 범인에 대한 연민을 전혀 담지 않았다. 당시 나홍진 감독은 “범인을 미화하고 싶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미제사건과 날로 늘어나고 있는 연쇄살인사건은 지금도 조심스럽게 스크린에 옮겨지고 있다. 문성근, 추자현이 주연을 맡은 <실종>은 2007년 전남 보성 어부 연쇄살인사건을 그린 영화다. 91년 전국을 안타깝게 만든 개구리소년 실종 사건도 이규만 감독이 현재 영화화를 추진 중이다.
현재 한국영화계는 각종 스릴러물 제작 바람이 일고 있어 모방 범죄 염려가 끊이지 않고 있다. 대형 폭력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거론되는 것이 사건과 영화간 모방 범죄 상관 가능성이다.

영화 <친구> 지나친 폭력성 묘사로
당시 청소년들 폭력범죄 흉내내기도

전국 관객 800만명을 넘기며 큰 성공을 거둔 영화 <친구>는 개봉 당시 지나친 폭력성에 대한 묘사로 청소년들이 이 영화를 보고 폭력범죄를 흉내내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2008년 10월에 일어난 논현동 고시원 사건은 영화 <달콤한 인생>을 모방한 사건이었다. 당시 강남경찰서의 한 관계자는 “피의자 J씨가 <달콤한 인생>이라는 액션영화를 보고 주인공이 멋있다는 생각을 해 이와 관련된 범행을 저질렀다”고 밝혔다.

영화뿐 아니라 범죄를 다루는 프로그램들의 모방 범죄도 만만찮다.
최근 서울 강남에서 붙잡힌 ‘퍽치기’ 용의자는 “혼자 걸어가는 여자의 뒤를 따라가 머리를 때리고 돈을 뺏는 수법이 수차례 TV에서 나왔다”며 “모 프로그램을 보고 배웠다”고 진술했다. 대낮에 범행을 저지른 대담성에 미리 도망갈 길을 파악하는 치밀한 수법은 모두 TV 프로그램이 전수한 방법들이었다.
케이블 채널을 통해 방송되는 대부분의 범죄 재연 프로그램은 범인을 잡는 범죄 예방 및 해결 프로그램을 자처했지만 모방 범죄로 이어지는 경우가 일어나고 있다.

리얼리티 전문채널을 표방한 리얼TV는 사회에서 벌어지는 각종 사건과 사고를 다룬 <리얼폴리스>를 방송 중이다. 경찰들의 수사 시선을 쫓으면서 검거 현장까지 다루는 다큐 프로그램이다.
다큐멘터리지만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려다 보니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내용이 그대로 방송된다. 또 수사 방법이 지나치게 공개되면서 범죄 예방보다는 오히려 범죄자들의 도피망을 마련해 주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시청자들 눈길 끌려다 보니
폭력적인 내용 그대로 방송

다른 케이블 채널 YTN스타도 살인자들의 범죄심리를 분석한 <살인자는 말한다>와 <범죄인간>을 방송 중이다. 전편과 속편 격인 두 프로그램은 경찰대학교 표창원 교수를 내세워 살인자들의 범죄심리를 심층 분석하겠다는 취지다.
제작진은 실제로 일어났던 범죄사건을 범인의 시점에서 설명해 범죄를 예방할 수 있는 길도 모색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현대 사회의 각종 범죄들을 쫓는 과정에서 선정적인 편집은 피할 수가 없다.

지난 1월31일 방송된 MBC <뉴스 후>는 총 7명의 부녀자를 납치 살해한 군포 여대생 살해 사건의 범인 행적을 쫓았다. 21명을 살해한 희대의 살인마 유영철과 13명을 죽이고 20명을 중태에 빠뜨린 연쇄살인범 정남규와 함께 사이코 패스로 규정하고 범행 과정을 되짚었다.
이 과정에서 화재 사건과 증거 인멸 과정을 자세하게 설명했고 범죄 예방보다는 또 한 명의 살인마를 흥미 위주로 쫓았다.
한 케이블 프로그램 연출자는 “요즘 범죄 재연물은 픽션이 아닌 다큐 형식이나 페이크 다큐로 리얼리티에 접근하는 추세”라며 “실제와 혼동될 정도로 사실성에 주력하다 보니 모방 범죄 가능성이 없지 않다”고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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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1조4000억원 규모 초대형 사업에 ‘변수’가 등장했다. 사업 진행 과정에서 불거진 절차적 정당성에 시비가 붙었다. 법정 공방으로 비화됐던 문제는 이제 결론만 남은 상태다. ‘모로 가도 수익만 내면 된다’는 재개발·재건축 시장에 브레이크가 걸릴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 5-1구역, 5-3구역 도시정비형 재개발사업(이하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둘러싼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현재 확인된 소송만 ▲손해배상 청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등 3건에 이른다. 겉으로는 순탄하게 진행 중인 듯한 사업의 이면에 ‘복마전’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일요시사> 1539호 ‘<단독> 1조4000억원 세운5구역 재개발 복마전’(https://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250331) 기사 참조). 꼬리에 꼬리 사법 리스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은 서울 중구 산림동 190-3번지 일원 7672㎡ 부지에 지상 37층 규모의 업무복합시설을 짓는 프로젝트다. ㈜이지스자산운용이 주주로 참여 중인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PFV)가 시행을, GS건설이 시공을 맡고 있다. 태영건설이 시공권과 지분을 갖고 있었지만 워크아웃에 돌입한 이후 GS건설이 인수했다. 대신자산운용이 업무시설에 대한 선매매 계약을 체결했다. 선매입 가격은 3.3㎡당 3500만원가량으로 계약금으로만 700억원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지스자산운용에 따르면, 현재 사업은 철거 단계로 예정대로 2030년에 개발이 끝나면 연면적 13만㎡가 넘는 최상급 오피스 건물이 들어서게 된다. 문제는 몇 년째 꼬리표처럼 따라붙고 있는 ‘사법 리스크’다. 검찰, 경찰에 고발된 몇몇 사건은 종결됐지만 일부는 법정 공방으로 번졌다. 눈여겨볼 대목은 송사에 휘말린 이들이 현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아무런 지분이 없는 ‘외부인’이라는 사실이다. 사업 초창기 기틀을 닦은 이른바 ‘개국공신’ 역할을 한 것은 맞지만 지금은 연결고리가 없는 상태다. 그런데도 이들의 송사에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끊임없이 언급되는 이유는 시행을 맡은 이지스자산운용이 연루돼있기 때문이다. 이지스자산운용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자금 조달 역할로 합류했다. 부동산 매매, 분양 등을 하는 업체 대표 염모씨와 부동산 개발 관리 등을 하는 업체 공동대표 오모씨, 권모씨 등이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토지 매입 자금이 부족해지자 이지스자산운용을 끌어들였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사업에 합류할 무렵 인허가 문제 등이) 어느 정도 진행돼있었고 저희가 투자하기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돈을 투자해 진행하면 안정권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판단해 진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염씨가 대표로 있는 연합와이앤제이(이하 연합)와 이지스자산운용은 2019년 1월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은 50대 50으로 맞췄다. 여기에 연합은 오씨, 권씨, 최씨, 박 전 이사 등과 따로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 구조는 연합 50%, 오씨 30%, 권씨 10%, 최씨 7%, 박 전 이사 3% 등으로 구성됐다. 2030년 13만㎡ 업무복합시설 법정 공방 최소 3건 진행 중 2019년 6월 연합, 이지스자산운용, 국민은행(이지스펀드의 신탁사), 생보부동산신탁(현 교보자산신탁) 등은 주주협약서를 작성하고 ㈜세운5구역 PFV를 설립했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위한 시행사가 정식으로 구성된 것이다. 당시 지분 구조는 연합 47.1%, 이지스자산운용(17.2%)+이지스펀드(29.9%) 47.1%, 생보부동산신탁 5.8% 등이다. 대표이사는 염씨가 맡기로 했고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은 각 2명씩 이사를 추천해 총 4명으로 이사회가 구성됐다. 연합 측에서는 염 대표와 박 전 이사가 이사로 참여했다. 이 구성은 박 전 이사가 2020년 8월14일 이사직을 사임할 때까지 유지됐다. 이후 염 대표가 이지스자산운용에 지분을 넘기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빠져나왔다. 현재 진행 중인 소송은 염 대표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손을 떼는 과정에서 오간 돈, 이지스자산운용이 오씨와 권씨, 최씨 등에게 준 돈을 두고 불거졌다. 염 대표가 받은 378억원, 오씨 등 3명 등이 받은 94억원 등 약 480억원을 둘러싸고 소유권 논쟁이 진행 중이다. 세운5구역 PFV, 이지스자산운용은 돈을 지급한 주체라 송사에 연루돼있다. 이 소송은 당시 사업의 지분 구조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시작됐기에 어떤 결론이 나오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다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최근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 자체가 흔들릴 수 있는 소송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동안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절차적 정당성’을 부여했던 이사회 관련 소송이 1심 판결을 앞두고 있는 것. 세운5구역 PFV 4명의 이사 가운데 1명이었던 박 전 이사는 2023년 9월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2019년 6월20일부터 2020년 8월14일까지 이사로 재직하는 동안 단 한 차례도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 기간 세운5구역 PFV가 진행했다고 알려진 이사회는 16번이다. 480억원 두고 초기 멤버 갈등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는 상근 직원이 없고 등기임원의 보수도 없는 특수목적법인으로, 이사회는 업무 집행의 법률적 효력과 정당성을 보장해 주는 가장 중요한 기구이자 어쩌면 회사 그 자체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 이사회가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채 진행됐으니 그 결의 내용은 무효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세운5구역 PFV는 명목상 구성된 페이퍼컴퍼니였던 만큼 사업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는 실질적인 경영 주체(이지스자산운용), 총괄 관계자가 책임져야 한다. 리모컨을 누른 사람(이지스자산운용)이 문제지, 리모컨(세운5구역 PFV)이 잘못이 아닌 것과 같다”며 “14개월 동안 이사로 재직하다가 정기총회도 거치지 않고 중도 사퇴한 건 더 가다간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휘말릴 것 같아서였다”고 털어놨다. 박 전 이사는 이사회가 실제로 진행되지 않고 서류 작업을 통해 조작됐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그는 “상법에 따르면 이사회는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의 방식으로 진행하게 돼있다. 어디에도 서면으로 진행해도 된다는 문구는 없다. 대표이사였던 염씨가 이사회를 소집 통지하는 과정에서 보낸 공문에도 정확하게 기재돼있다”고 주장했다. 상법 제391조(이사회의 결의방법)에 따르면 이사회 결의는 이사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 이사의 과반수로 해야 한다. 다만 정관으로 그 비율을 높게 정할 수 있다. 그러면서 ‘정관에서 달리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이사회는 이사의 전부 또는 일부가 직접 회의에 출석하지 않고 모든 이사가 음성을 동시에 송·수신하는 원격통신 수단에 의해 결의에 참가하는 것을 허용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실제 <일요시사>가 입수한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 주식회사 이사회 소집통지’ 공문에 따르면 2020년 3월27일 오전 11시 이지스자산운용 회의실에서 이사회를 진행하겠다는 내용과 함께 ‘방법’ 부분에 ‘직접 참석 or 컨퍼런스 콜’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방어 근거 무너지나 박 전 이사는 해당 이사회에 참석한 적 없지만, 자신의 막도장을 이용해 의결이 이뤄진 것처럼 꾸몄다고 주장했다. 이사회 당일 다른 곳에 있던 적도 있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박 전 이사는 “2019년 3차 이사회 이사록을 보면 그해 10월31일 재적 이사 전원 출석으로 이사회가 개최된 것으로 기재돼있다. 하지만 당시 나는 지인들과 서울 강남구 수서동에서 스크린 골프를 치고 있었다. 물리적으로 1시간가량 차이 나는 곳에 있던 상황이다. 그런데도 이사회 결의는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박 전 이사는 이 내용을 가지고 서울영등포경찰서에 염 대표 등을 ‘배임’ ‘사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경찰은 박 전 이사가 재직 당시 이사회 소집이나 의사록 작성 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사실이 없다는 점 등을 들어 불송치 처분했다. 박 전 이사는 “사후에 통보식으로 이사회 의결 내용을 알았다고 해서 이사회 자체의 절차적 하자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검찰은 물론 염 대표, 이지스자산운용 모두 물리적 행위 자체가 없었던, 그래서 의결 자체가 무효인 이사회를 무기로 각종 고소·고발건을 방어해 왔다”며 “이사회에서 특별 결의사항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본인들이 체결한 공동사업약정서 등에 기재돼있는데도 그조차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가 토지를 매입하는 내용을 안건으로 다룬 이사회가 가장 문제라고 지적했다.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이 맺은 공동사업약정서에 따르면 ‘승인된 사업계획에 포함되지 않은 자본적 지출’은 이사회 특별 결의사항으로 분류하고 있다. 또 특별 결의사항은 재적 이사 전원의 동의로 의결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법원 절차적 하자 인정하면 사업 자체 흔들릴 가능성도 연합 등이 토지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땅값 부풀리기’ 의혹이 제기됐다. 염 대표와 오씨 등이 재개발 구역의 땅을 사는 과정에서 특수관계인을 이용해 비싼 값에 매입했다는 의혹이다. 시행사가 직접 원주민에게 토지를 사는 방식이 아니라 그사이에 특수관계인을 끼워 넣어 차익을 봤다는 것이다. 당시 검찰은 불기소의 근거 중 하나로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언급한 바 있다.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도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땅값은 사실 정해져 있는 게 아니지 않나. 재개발사업에서는 토지 확보가 중요하기 때문에 협의에 따라 하는 것이지, 정확한 시세가 있는 것도 아니다. 만약 너무 비싸게 샀다면 의사결정 과정을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의사회 결의는 무조건 다 있었고 더 큰 의사결정은 주주총회를 통해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박 전 이사의 주장대로 이사회의 절차적 하자가 인정돼 그 존재 자체가 무효가 된다면 결의 내용 역시 ‘없던 일’이 될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사회 관련 소송에 증인으로 참석한 당시 세운5구역 PFV 이사의 발언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4명의 이사 가운데 한 명이었던 그가 같은 이사였던 박 전 이사를 ‘전혀 모른다’는 취지로 증언한 것이다.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 온·오프라인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박 전 이사의 주장에 힘이 실리는 대목이다. 박 전 이사는 “내가 증인으로 신청했다. 그런데 서로 얼굴 한번 본 적 없다. 만나기는커녕 전화 한 통 한 적 없다. 세운5구역 PFV 측은 그제야 대면 결의는 없었다고 인정하면서 서면 결의도 인정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조합에 서면으로 이사회 결의를 한다고 말하면 조합장이 당장 쫓겨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지스자산운영 측은 “해당 건은 소송이 진행 중인 사안으로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답변드리기 어려운 점 양해 부탁드리며 향후 법적 과정에서 투명하게 밝혀질 수 있도록 성실히 소명할 계획”이라고 입장을 전해왔다. 1심 판결 곧 나온다 일각에서는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에 위반될 소지도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경험이 풍부한 한 관계자는 “SPC가 설립되고 사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사회 문제가 불거진 만큼 소송 결과에 따라 주무 관청의 인허가 문제로까지 번질 수 있다”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