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계 흔드는 '귀족 스태프' 부작용

"월 1000만원" 부르는 게 몸값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수년 전만 해도 영화 혹은 드라마 스태프들에게는 '열정페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고생스러운 노동강도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임금을 받았기 때문이다. 지난해부터 주52시간 근무제가 정착되면서 스태프들의 처우는 선진국과 다름없는 수준이 됐다. 스태프의 노동비가 오른 반면 코로나19 등으로 인해 시장의 성장률이 둔화되면서 오히려 업계의 존폐가 걱정된다는 평가가 나온다. 

영화 투자배급사의 한 예산 관련 직원은 예산을 나눠줄 때마다 자괴감에 빠진다고 토로했다. 이른바 사회에서 통용되는 스펙이 낮은 스태프들의 임금이 힘겹게 경쟁률을 뚫고 대기업에 입사한 자신보다 2~3배가량 높기 때문이다. 

상대적
박탈감

지난 20일 최근 영화 촬영을 마친 한 감독에 따르면 일반 보조 스태프들의 평균 월급은 800만~900만원에 이른다. 약 3년에서 5년 경력을 가진 스태프들 대부분이 1000만원에 가까운 월급을 가져간다. 경험이 전무한 신입 스태프도 월 270만원 이상의 임금을 받는다. 

이 같은 현상은 드라마·영화 등의 촬영 관련 스태프들이 표준계약서를 작성하는 시점부터 시작됐다. 주68시간 근무제가 시행되면서 대다수 스태프들의 임금이 대폭 상승했고, 주52시간 근무제 시행 이후부터는 업무 질적인 차원에서도 매우 좋아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현재 방영을 앞둔 드라마 스태프라고 밝힌 A씨는 "주68시간 근무제가 시행된 2년 전부터 임금이 대폭 올랐다. 당시만 하더라도 현장 업무는 힘들었다. 하지만 주52시간 근무제가 정착되면서부터는 임금이 오르는 폭은 크지 않지만, 업무량이 매우 편해졌다"고 밝혔다. 


불과 몇 년전만 하더라도 '열정페이' 논란이 나올 정도로 국내 스태프에 대한 처우는 가혹했다. 임금은 턱없이 적었고, 수많은 갑들로부터 빈번한 횡포를 당했다. 드라마나 영화 등 이야기 산업 영역에서 스태프들의 포지션은 하위권이었다. 

하지만 웹드라마를 비롯해 OTT 시장이 활성화되는 등 국내 콘텐츠 산업의 외연이 확장되면서 스태프 품귀현상이 일어났다. 현장 경험이 있는 스태프를 구하는 것조차 어려운 실정이 됐다. 스태프에 대한 가치가 급격히 올라갔다.

드라마와 영화 모두 '스태프 모시기' 경쟁이 일어났다. 주68시간 근무제로 인해 스태프 평균 임금이 2배 가까이 올랐다.

스태프 한 명당 임금이 대폭 상승하면서 영화계는 존폐를 고민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불과 5년 사이 스태프 임금은 두 배 이상 오르면서 손익분기점을 맞추는 것조차 어려운 실정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영화 배급사 관계자는 "4년 전에 순제작비 31억원에 찍은 영화가 있다. 당시 110만 관객으로 손익분기점을 넘겼다. 이제 그 영화를 찍으려면 최소 55억원 이상이 든다. 제작비가 2배 이상이 올랐다고 보면 된다"며 "그렇다고 영화 시장이 2배 이상 컸냐고 하면 그렇지 않다. 영화 시장의 성장세는 임금의 성장을 따라가지 못한다"고 말했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열정페이 옛말 오버페이 논란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에서 발간한 '2020년판 한국영화연감'에 따르면 2019년 국내에서 순제작비 30억원 이상이 투입된 상업영화는 45편이다. 마케팅 비용이 포함된 총제작비의 도합은 약 4550억원이다. 한 영화당 101억원 정도의 제작비가 투입된다. 


이는 70편이 제작된 2015년의 총제작비인 3700억원(평균 총제작비 약 52억원)과 33편이 제작된 2016년의 총제작비 2950억원(평균 총제작비 약 89억원)을 크게 상회하는 수치다. 2017년에는 평균 제작비는 약 97억원, 2018년의 평균 제작비는 102억원이다.

불과 3년 사이에 제작비가 2배 가까이 상승한 셈이다. 스태프 임금 상승과 함께 제작비가 대폭 상승한만큼, 영화 투자사와 제작사의 수익은 줄어들고 있다.

2019년 제작된 영화 45편의 총매출액은 약 5660억원이다. 한 편당 평균 12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하지만 영화는 특정 작품만 고수익을 내는 형태다. 부익부 빈익빈이 심하게 나타난다. 연감에 따르면 2019년 매출 1위를 기록한 <극한직업>을 제외하면 44편의 평균 추정수익률은 -8.1%다. 

2015년부터 2018년까지 4년 동안 국내 상업영화 총 매출액은 4500억원 내외다. <극한직업>과 <기생충>, <어벤져스:엔드게임> 등 1000만 영화가 무려 5편이나 된 2019년 총매출이 약 1000억원 이상 늘어난 것. 그럼에도 <극한직업>을 제외한 수치를 따지면, 영화계는 마이너스 성적표를 받았다.

영진위가 집계한 2018년 추정수익률은 -4.8%다. 영화산업은 코로나가 발생하기 전부터 마이너스 성장으로 접어들었다. 코로나19가 발발한 2020년의 수익은 전년 대비 90% 손실에 가깝다. 2021년 관객수 역시 코로나19 이전에 비교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영화산업은 4년 동안 투자금을 회수하지 못하고 있다. 

한 영화 배급사 관계자는 "영화계가 존폐의 갈림길에 선 지 오래됐다. 코로나19를 떠나서 이미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다. 쉽게 설명해서 6000억원을 투입하면 5500억원 이하의 수익을 내는 산업"이라고 밝혔다. 

4년 동안
마이너스

영화계의 지속적인 마이너스 성장의 이유로 인건비 상승이 꼽힌다. 갑작스럽게 2배 가까이 오른 제작비로 인해 손익분기점이 전반적으로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100만 관객만 동원해도 손익분기점을 넘겼던 영화가 이제는 200만 관객을 동원해야 수익을 남기는 것. 

촬영 회차당 비용이 급격하게 높아지면서, 영화 질적인 부분도 떨어질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특히 세트촬영이 주가 아닌 각종 지역을 돌아다니며 찍어야 하는 작품은 실질적인 촬영 시간이 매우 적어 제작비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영화감독은 "로케이션이 많은 작품은 이제 꿈꾸기도 힘들다. 매우 높은 비율의 세트촬영을 해야 겨우 주어진 시간에 모두 찍을 수 있다. 촬영장 이동 시간도 근무시간에 포함되기 때문에 차가 막히면 하루 회차를 이동하는 데 다 쓸 수도 있다"며 "로케이션 이 많은 방식을 택했다가 심각한 스트레스를 받은 감독도 있다"고 말했다. 

국내 영화계에서 크게 문제가 되는 것 중 하나가 양산형 영화의 확산이다. 양산형 영화는 창의적인 방식으로 이야기를 펼쳐나가는 것이 아닌, 흥행한 작품을 적당히 따라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진 작품을 말한다. 


양산영 영화의 특징은 장면마다 기시감이 강한 클리셰가 난무하며, 영화 속 이야기의 맥락과 상관없이 신파가 이어진다. 소재는 대부분 자극적인 사건이며, 캐스팅에서도 모험을 시도하지 않는다. '그 나물에 그 밥'인 영화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과 <미나리>의 윤여정이 전 세계를 호령하는 영화인으로 발돋움하고 있음에도, 한국 영화의 장래가 밝지 못하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메가박스는 최근 <자산어보>를 개봉하고 호평을 받았다. 이준익 감독은 백상예술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정약용과 정약전의 가치를 그린 <자산어보>는 예술성이 높은 작품으로 평가된다. 대중적인 요소도 상당하다. 이 감독은 또 하나의 명작을 만들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자산어보>와 같은 의미 있는 작품에 투자하는 것 자체가 소위 '미친 짓'이라는 말이 나온다. 적은 제작비로 훌륭한 퀄리티의 영화를 만들어온 이 감독이 <자산어보> 제작의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신인 감독이었다면 엄두도 못 낼 작품이라는 것.  

한 영화 배급사 관계자는 "당장 투자배급사가 죽게 생겼는데, 작가주의 영화나 다양성 영화에 투자하기란 쉽지 않다. 다양성 영화를 의식해서 투자를 잘못했다가는 투자팀 직원이 잘리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뒤바뀐
갑과 을


스태프들의 임금이 상승하면서 다양한 문제가 생겨나는 가운데, 영화관계자들은 더 큰 문제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이른바 '부서 이기주의'다. 

영화마다 각 부서가 있는데, 부서만의 이익을 위해 이기적인 결정을 내리는 것을 말한다. 부족한 예산으로 좋은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협력을 해도 모자를 판에 부서의 이익을 위해 비협조적인 결정을 내리는 행태가 만연해졌다는 것. 

촬영을 하다 보면 여러 가지 변수로 인해 30분에서 1시간 정도 시간이 더 소요될 때가 있다. 이런 경우 감독을 비롯한 연출진과 제작자는 '오버페이'를 부담하면서 촬영을 이어가기를 바란다. 하루 더 연장해서 촬영하면 약 2000만~3000만원의 제작비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여기에 장소 대여비와 각종 일정 등을 고려하면, 제작비는 예상치를 크게 웃돌게 된다. 오버페이를 지불하는 것이 영화를 만드는 입장에서는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다. 

하지만 최근 영화 현장에서 이런 협의는 절대 통용되지 않는다고 한다. 최근에 영화 촬영을 진행한 감독은 "스태프들과 협의를 포기했다"고 밝혔다. 

그는 "몇 차례 오버페이를 줄 테니 좀 더 찍자고 협의를 했는데 계속 거부당했다. 나중에는 협의하지도 않고 그냥 회차를 늘렸다. 한국 영화 현장은 할리우드보다 더 빡빡해졌다. 할리우드는 촬영이 좀 오버된 경우 충분히 협의하는 방법이 있는데, 한국은 스태프들이 거부하면 방법이 없다"며 "임금이 늘었다고 책임감이 생긴 건 아니다"라고 토로했다. 

협력 포기한 '부서 이기주의'
"위기의 충무로, 존폐 기로까지
"

드라마의 경우는 비교적 낫다. 매주 찍어야하는 분량이 있기 때문에 부서 이기주의가 비교적 덜한 편이라고 한다. 반대로 영화는 시간의 여유가 있는 편이라 각 스태프의 이기주의가 더욱 심화됐다고 한다. 

한 영화 스태프는 "영화는 일절 협의를 하지 않는다. 주어진 촬영 시간이 끝나면 바로 집에 가는 분위기다. 처음에는 나도 놀랐다. 조금만 더 촬영하면 이 장소에서는 모든 촬영이 끝나는데, 그런 형편을 이해해주지 않는 모습이 무책임해 보였다"며 "좋은 스태프도 있지만, 악질적인 스태프도 많다"고 밝혔다. 

엄청난 흥행을 일으킨 영화 감독은 '현장의 왕'으로 불렸다. 각종 배우 및 스태프의 캐스팅을 손에 쥐고 있으며, 촬영 및 편집 등 모든 부분에서 결정을 내리는 역할이라는 점에서 막강한 권력을 지니고 있었다. 과거에는 이런 감독을 견제하는 역할을 투자사에서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제 감독은 동정심이 가는 포지션으로 전락했다고 한다. 

한 투자 배급사 관계자는 "과거에 투자사에서 영화 현장을 가는 건 두 가지 이유였다. 이전에 찍은 촬영분이 너무 허접해서 혼내러 가거나, 작품이 잘 되고 있어서 놀러 가는 것이었다"며 "요즘에는 위로해주러 간다. '잘 찍는 건 둘째 치고 회차만 맞춰달라'고 말하고 온다. 그러면 감독은 '저런 애들 데리고 어떻게 회차를 맞추냐'며 하소연을 한다. 실제로 현장에 가보면 다들 스마트폰을 하고 있다. 영화 촬영에 집중하지 않는다. 어차피 촬영이 늦어지면, 이득을 보는 게 그들이다. 회차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좋으니까"라고 말했다. 

대부분 스태프는 3~4개월 촬영하면, 1~2개월은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다시 작품에 투입된다고 한다. 계약의 연속성 면에서 부담이 있기는 하나, 요즘과 같은 콘텐츠 범람의 시대에서는 일자리를 구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는 게 전언이다. 

한 제작사 관계자는 "'귀족 스태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임금도 많이 받고, 실업급여도 받는다. 어차피 몇 달 하고 안 볼 사람이라는 생각들이 있어서인지 절대 제작진의 마음을 이해해주지 않는다. 그렇다고 딱히 견제할 방법도 없다. 수틀리면 갑자기 도망치기도 하는데, 처벌할 방법은 없다"고 말했다. 

갑자기 도망
책임감 필요

한 영화 감독은 "인건비가 늘어난 만큼 책임감 있는 스태프들이 늘어났으면 한다. 예전과는 다르게 일하기 좋은 환경이 됐다. 건강한 생각의 좋은 인력들이 많이 들어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어쭙잖은 실력으로 갑질하는 스태프는 안 봤으면 한다"고 말했다. 


<intellybeast@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포스트 코로나' 시대, 한국 영화 미래는?

영화계 내에 문제가 산적한 가운데, 현재 한국 영화계의 미래는 암울한 수준이다. 코로나19를 회복하지 못한 것에 더불어 각종 OTT로 인해 집에서 드라마를 보는 문화가 확산됐기 때문이다. 

코로나19를 회복한다면 곧 영화계도 회복될 것이라는 긍정적인 시선이 있는 반면, OTT로 인해 잠식될 것이라는 비관적인 시선도 많다. 오히려 비관론이 더 늘어나는 추세라는 게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한 시나리오 작가는 "영화산업은 사양산업에 접어들었다고 본다. 과거에는 영화관 가는 것이 일상이었다면,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일탈이 될 것"이라며 "관람료는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감독이나 작가, 배우 등 새로운 스타를 발굴하지 못한다면 영화계는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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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성 없는 ‘내란 TF’ 겉핥는 내막

강제성 없는 ‘내란 TF’ 겉핥는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이재명정부가 내란을 방조하거나 간접적으로 가담한 이들을 가리기 위해 TF를 구성했다. 내년 1월까지 공무원 75만명을 대상으로 참여·협조 여부를 조사한다. 일부 기관은 자체적으로 판단해 TF를 구성하는 걸 두고 고민하고 있다. TF는 강제성이 없으며, 이미 조사를 끝내 인사에 반영한 기관도 존재한다. 헌법 존중 정부 혁신 TF(태스크포스)는 중앙행정기관 49곳에 구성됐다. 구체적으로 각 부처 25곳이 포함됐다. TF는 총 48개다. 활동 목표가 인사에 합리적으로 반영하기 위한 것이라지만 각 기관 안팎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사실상 내란 특검팀(조은석 특별검사)의 연장선이 아니냐는 것이다. 방조·간접 가담자들 김민석 국무총리는 지난달 24일 TF 실무 책임자들과 첫 간담회를 갖고 “TF의 조사 활동은 대상, 범위, 기간, 언론 노출, 방법 모두 절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 총리는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절제하지 못하는 TF 활동과 구성원은 즉각 바로잡겠다”면서 “TF 활동의 유일한 목표는 인사에 합리적으로 반영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이 TF는 공무원 75만명의 ‘내란 참여·협조’ 여부를 개인 휴대전화까지 제출받아 조사한다는 방침 등이 인권침해란 논란이 일었다. 총리실에 설치된 ‘총괄 TF’는 이날까지 부처 25곳을 포함한 기관 49곳에서 TF 48개가 출범했다. 국무조정실·국무총리비서실로 구성된 총리실에 단일 TF가 설치되면서 TF 숫자는 하나 줄었다. TF는 대부분 10~15명으로 구성됐지만, 전체 인원이 많은 국방부(53명), 경찰청(30명), 소방청(19명) 등은 대규모 조사단을 꾸렸다. TF 48개의 총인원은 정부 내부 인사 536명을 포함해 661명에 달한다. TF 48개 중 32개에 외부 인사 125명이 참여했고 그중 76명(60.8%)은 법조인, 31명(24.8%)은 학자, 18명(14.4%)은 시민단체 관계자 등이 참여했다. TF는 ‘내란의 사전 모의나 실행, 사후 정당화, 은폐’를 한 공무원은 ‘내란 참여’로, ‘내란의 일련의 과정에 물적·인적 지원을 도모하거나 실행’한 공무원은 ‘내란 협조’를 한 것으로 보기로 했다. 적발된 공무원에게는 내년 2월13일까지 ‘징계’나 ‘승진 배제’ 같은 인사 조치할 방침이다. 또 ‘내란 행위 제보 센터’를 설치해 동료 공무원들에게 제보·투서를 받고, 의심 공무원은 개인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기로 했다. 한 정부 관계자는 “의혹이 상당하다고 판단되면 대상자의 휴대전화를 제출받아 들여다볼 예정이다. 의혹이 상당한 데도 조사에 협조하지 않으면 수사 의뢰까지 가능한 선을 정했다”고 말했다. 법조계에서는 TF 조사 권한을 두고 이견이 나온다. 형사가 아닌 행정 절차이지만 일반적인 조사가 아닌 만큼 행정법이 지켜져야 한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공무원 75만명 전방위 조사 문제없나 형소법 원칙 유명무실…권력남용 소지 한 서초동 변호사는 “영장 없는 조사를 두고 많은 문제 제기가 이뤄질 수밖에 없다. 행정조사기본법에 따르면 인사상 불이익으로 압박하거나 진술을 강요하면 직권남용 혐의가 성립될 수 있다. 최소한의 범위를 규정하고 조사해야 하는데 TF가 정한 선이 어느 지점까지인지가 핵심일 것 같다”고 조언했다. 국회도 과거 비슷한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2022년 발간한 ‘권력적 행정조사의 쟁점 및 개선 과제’ 보고서에서 행정조사 과정에서 영장주의·진술거부권이 침해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행정조사에서 수집된 자료가 수사기관으로 넘어가 형사 처벌 근거로 활용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형사소송법상 원칙이 유명무실해지고, 국가권력이 남용될 소지도 있다. 업무용 PC나 이메일에서는 변호사와 상담한 내용까지 확보되는 사례도 있어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위축될 가능성도 있다. 행정조사 위법성과 관련해서는 판례도 존재한다. 지난 2012년 서울고법은 기관이 업무용 휴대전화 통화 기록과 문자메시지를 동의 없이 확보해 공무원을 해임한 사건에서 이를 위법한 증거수집으로 보지 않았다. 법원은 기관이 통신비를 부담했고, 감사 목적이 공익적이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도 상고를 기각했다. 조직 내부 감사는 세무조사·공정거래위원회 조사·근로감독 등과 달리 별도의 법적 근거가 불명확한 경우가 많아 조사의 한계 역시 모호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정부 차원의 대규모 내부 감사가 법적 문제를 일으킨 선례 역시 많지 않다. 민간인의 TF 참여도 새로운 논란이다. 정부는 감사부서 공무원 외에 민간인을 포함하거나 아예 외부 전문가로만 구성된 TF를 둘 수 있다는 지침을 내렸다. 명확한 법적 근거 없이 민간인이 공무원에 대해 조사권을 행사하는 셈인데, 정부는 TF 설치를 위한 별도 입법을 마련하지 않았다. 논란 불구 조사 시작 공직사회는 뒤숭숭한 분위기다. 조사 기준이 모호해 억울한 문책 인사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반면 계엄을 방관했거나 동조한 세력을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상당하다. 핵심 조사 대상으로 거론되는 기관은 기획재정부·국방부·행정안전부·경찰·검찰·법무부 등이다. 기재부의 경우 최상목 전 기재부 장관 겸 경제부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겸했다. 최 전 장관이 12·3 비상계엄 당시 윤석열 전 대통령으로부터 국가비상입법기구 예비비 편성 등 계엄 지시 문건 등을 받고 1급 고위직들을 소집해 회의를 연 바 있어, 당시 회의에 참석했던 이들이 조사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10월 국회 국정감사 때 김동일 전 예산실장과 신중범 전 대통령실 경제금융비서관 등이 아시아개발은행(ADB)과 아시아거시경제감시기구(AMRO)로 파견되기 직전 명예 퇴직금을 수령한 것을 두고 ‘해외도피’ 논란이 제기되기도 했다. 외교부는 이번 국감에서 비상계엄 직후 대통령실이 외교부 장관 명의로 ‘합법적 계엄’이란 내용의 공문을 주미한국대사관에 보내고, 이를 ‘3급 기밀’로 지정한 점을 지적받은 바 있다. TF가 가동되면서 외교부 인사는 사실상 ‘중단’ 상태다. 외교부는 애초 올해 말까지 1급 인사를 마무리할 계획이었지만, TF 활동이 시작되면서 어렵게 됐다. 새 정부가 출범한 지 반년이 다 되어가지만, 그동안 외교부 실·국장 및 재외 공관장 인사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외교부 인사는 특임 대사 임명과도 맞물려 있지만 인사 속도는 더디기만 하다. 특히 현 정부는 특임 대사를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외교부는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임 대사는 직업 외교관이 아닌 전문가·정치인·학자 등을 대통령이 재외공관장으로 임명하는 제도다. 주요 공관장 인사가 늦어지면서 사안이 터졌을 때 제대로 대응할 수 있느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지난 9월 미국 조지아주 현대자동차·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발생한 한국인 불법구금 사태 당시에도 조지아주를 관할하는 주애틀란타총영사직은 공석이었고, 캄보디아 사태 때도 주캄보디아 대사직이 비어있었다. 필요는 한데… 이중 감사 검찰 TF는 최근 검찰 내부망인 ‘이프로스’에 다음 달 12일까지 제보용 익명 게시판과 별도의 이메일 계정을 통해 관련 제보를 받겠다고 공지했다. 단장은 구자현 검찰총장 대행이 김성동 대검 감찰부장과 주혜진 대검 감찰1과장이 각각 부단장과 팀장을 맡아 10여명이 참여했다. 법무부에 설치된 TF 역시 같은 날 공지를 게시했다. 법무부에선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TF 단장을 맡고 내외부 인사 10여명이 구성원으로 참여한다. 법무부는 내부 익명 게시판을 통해 제보를 접수하는 한편, 검찰과 별도의 이메일 계정을 개설해 운영할 예정이다. 경찰은 경무관 승진, 총경 인사를 앞두고 숨죽이는 분위기다. 앞서 계엄 수사로 조지호 경찰청장 등 수뇌부가 재판에 넘겨졌지만, 계엄 당시 국회 출입 통제나 체포조 투입에 관여됐던 간부 상당수는 기소를 피했다. 국방부는 이중 감사 논란이 일고 있다. 이미 12개 기관을 대상으로 내부 감사를 진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취임 직후 감사관실 주도로 중령급 이상 간부를 전수 조사해 지난주 보고서를 대통령실에 제출했고, 이는 이번 3성 장군 인사에도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는 총리실의 지시에 따라 기존 감사자료를 제출하는 수준에서 협조할 것으로 알려졌다. 감사관실은 조사본부를 합류시켜 TF를 꾸릴 것으로 보인다. 지난 국방부의 자체 감사는 합참 현역 장교뿐 아니라 본부 군무원과 민간 공무원까지 포함한 대대적 감사였다. 지난 9월 진영승 합참의장 취임 이후, 권대원 합참차장을 제외한 합참 장군 전원과 2년 이상 근무한 중령·대령에 대한 대규모 인적 쇄신이 실제로 단행됐다. 합참의 지시에 따라 장교들의 진급이 보류되거나 보직이 변경됐다. 국정원은 이미 이종석 국정원장 취임 이후 직원들의 비상계엄 관련 여부 등 내부 조사를 마쳤다. 특히 의무적으로 TF를 구성해야 하는 기관이 아니다. 국정원은 지난 8월 첫 1급 인사를 단행하고 최근까지 2∼4급 인사를 마무리했다. 애매한 의혹 제기 투서 남발 우려 일부 기관 자체 판단 별도 TF 설치 이 인사는 이 원장 취임 이후 진행한 내부 조사 결과를 반영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국정원은 이 원장 취임 두 달 만인 8월 1급 간부 20여명의 인사를 단행하면서 그간 정권이 바뀐 뒤 1급 간부를 모두 교체하던 관행과 달리 윤석열정부에서 임명된 간부들을 일부 유임시켰다. 국정원은 대통령 직속 기관이다. TF 설치를 두고 대통령실이 직접 관리할 수 있다. 정부 관계자는 “본래 정권이 바뀔 때마다 신임 국정원장이 취임하면 국정원은 윗선 지침이 없어도 원장 지시하에 내부적으로 감찰이나 조사를 철저하게 해 왔다”며 “대통령실에서 직접 관리해 TF 조사가 이뤄져도 추가로 드러날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국회 정보위원회 간사인 더불어민주당 박선원 의원은 지난달 4일, 국정원 국정감사 이후 브리핑에서 “국정원이 불법적 비상계엄 상황에서 내란·외환 정보수집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는 점을 인정했다”면서 “국정원은 국정원법 4조에 따라 내란죄·외환유치 관련 자료를 특검에 이미 제출했고 계엄 시 국정원 역할 재정비와 실효적 안보조사체계 복원을 추진하겠다고 보고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인권침해 진정이 들어온 기구를 인권위가 설치하면 모순”이란 이유로 TF 설치를 거부했던 국가인권위원회는 TF 구성 반대 의결 과정에서 절차상 흠결이 지적되자 다음 전원위원회에 다시 상정해 논의하기로 했다. 앞서 인권위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등 독립기관은 TF 설치를 자율적으로 판단하기로 정해졌다. 안창호 인권위원장은 지난달 24일 열린 제21차 전원위원회에서 “정부에서 부처 내 헌법존중 TF를 자율적으로 만들라는 권고가 있는데 어떻게 할 것이냐”고 위원들에게 물었다. 이에 한석훈 위원이 구두로 안건 발의를 제안했다. 이후 안건 발의자로 참여한 김용원·이한별 위원 포함 발의자 세 명과 강정혜·김용직 위원, 안 위원장 등 6인이 ‘TF 구성 반대’에 손을 들면서 의결됐다. 부역자 남았나 인권위 안팎에선 자율적 설치라고 해도, TF 설립 취지에 비쳐 조사 대상이 될 수 있는 위원들이 안건을 즉석에서 상정해 반대 의결까지 한 건 부적절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특히 반대 의견을 낸 안 위원장과 김용원 위원 등은 지난 2월 ‘윤석열 방어권 안건’ 의결에 찬성해 특검에 내란 선동·선전 혐의로 고발된 상태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