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계 흔드는 '귀족 스태프' 부작용

"월 1000만원" 부르는 게 몸값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수년 전만 해도 영화 혹은 드라마 스태프들에게는 '열정페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고생스러운 노동강도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임금을 받았기 때문이다. 지난해부터 주52시간 근무제가 정착되면서 스태프들의 처우는 선진국과 다름없는 수준이 됐다. 스태프의 노동비가 오른 반면 코로나19 등으로 인해 시장의 성장률이 둔화되면서 오히려 업계의 존폐가 걱정된다는 평가가 나온다. 

영화 투자배급사의 한 예산 관련 직원은 예산을 나눠줄 때마다 자괴감에 빠진다고 토로했다. 이른바 사회에서 통용되는 스펙이 낮은 스태프들의 임금이 힘겹게 경쟁률을 뚫고 대기업에 입사한 자신보다 2~3배가량 높기 때문이다. 

상대적
박탈감

지난 20일 최근 영화 촬영을 마친 한 감독에 따르면 일반 보조 스태프들의 평균 월급은 800만~900만원에 이른다. 약 3년에서 5년 경력을 가진 스태프들 대부분이 1000만원에 가까운 월급을 가져간다. 경험이 전무한 신입 스태프도 월 270만원 이상의 임금을 받는다. 

이 같은 현상은 드라마·영화 등의 촬영 관련 스태프들이 표준계약서를 작성하는 시점부터 시작됐다. 주68시간 근무제가 시행되면서 대다수 스태프들의 임금이 대폭 상승했고, 주52시간 근무제 시행 이후부터는 업무 질적인 차원에서도 매우 좋아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현재 방영을 앞둔 드라마 스태프라고 밝힌 A씨는 "주68시간 근무제가 시행된 2년 전부터 임금이 대폭 올랐다. 당시만 하더라도 현장 업무는 힘들었다. 하지만 주52시간 근무제가 정착되면서부터는 임금이 오르는 폭은 크지 않지만, 업무량이 매우 편해졌다"고 밝혔다. 


불과 몇 년전만 하더라도 '열정페이' 논란이 나올 정도로 국내 스태프에 대한 처우는 가혹했다. 임금은 턱없이 적었고, 수많은 갑들로부터 빈번한 횡포를 당했다. 드라마나 영화 등 이야기 산업 영역에서 스태프들의 포지션은 하위권이었다. 

하지만 웹드라마를 비롯해 OTT 시장이 활성화되는 등 국내 콘텐츠 산업의 외연이 확장되면서 스태프 품귀현상이 일어났다. 현장 경험이 있는 스태프를 구하는 것조차 어려운 실정이 됐다. 스태프에 대한 가치가 급격히 올라갔다.

드라마와 영화 모두 '스태프 모시기' 경쟁이 일어났다. 주68시간 근무제로 인해 스태프 평균 임금이 2배 가까이 올랐다.

스태프 한 명당 임금이 대폭 상승하면서 영화계는 존폐를 고민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불과 5년 사이 스태프 임금은 두 배 이상 오르면서 손익분기점을 맞추는 것조차 어려운 실정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영화 배급사 관계자는 "4년 전에 순제작비 31억원에 찍은 영화가 있다. 당시 110만 관객으로 손익분기점을 넘겼다. 이제 그 영화를 찍으려면 최소 55억원 이상이 든다. 제작비가 2배 이상이 올랐다고 보면 된다"며 "그렇다고 영화 시장이 2배 이상 컸냐고 하면 그렇지 않다. 영화 시장의 성장세는 임금의 성장을 따라가지 못한다"고 말했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열정페이 옛말 오버페이 논란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에서 발간한 '2020년판 한국영화연감'에 따르면 2019년 국내에서 순제작비 30억원 이상이 투입된 상업영화는 45편이다. 마케팅 비용이 포함된 총제작비의 도합은 약 4550억원이다. 한 영화당 101억원 정도의 제작비가 투입된다. 


이는 70편이 제작된 2015년의 총제작비인 3700억원(평균 총제작비 약 52억원)과 33편이 제작된 2016년의 총제작비 2950억원(평균 총제작비 약 89억원)을 크게 상회하는 수치다. 2017년에는 평균 제작비는 약 97억원, 2018년의 평균 제작비는 102억원이다.

불과 3년 사이에 제작비가 2배 가까이 상승한 셈이다. 스태프 임금 상승과 함께 제작비가 대폭 상승한만큼, 영화 투자사와 제작사의 수익은 줄어들고 있다.

2019년 제작된 영화 45편의 총매출액은 약 5660억원이다. 한 편당 평균 12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하지만 영화는 특정 작품만 고수익을 내는 형태다. 부익부 빈익빈이 심하게 나타난다. 연감에 따르면 2019년 매출 1위를 기록한 <극한직업>을 제외하면 44편의 평균 추정수익률은 -8.1%다. 

2015년부터 2018년까지 4년 동안 국내 상업영화 총 매출액은 4500억원 내외다. <극한직업>과 <기생충>, <어벤져스:엔드게임> 등 1000만 영화가 무려 5편이나 된 2019년 총매출이 약 1000억원 이상 늘어난 것. 그럼에도 <극한직업>을 제외한 수치를 따지면, 영화계는 마이너스 성적표를 받았다.

영진위가 집계한 2018년 추정수익률은 -4.8%다. 영화산업은 코로나가 발생하기 전부터 마이너스 성장으로 접어들었다. 코로나19가 발발한 2020년의 수익은 전년 대비 90% 손실에 가깝다. 2021년 관객수 역시 코로나19 이전에 비교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영화산업은 4년 동안 투자금을 회수하지 못하고 있다. 

한 영화 배급사 관계자는 "영화계가 존폐의 갈림길에 선 지 오래됐다. 코로나19를 떠나서 이미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다. 쉽게 설명해서 6000억원을 투입하면 5500억원 이하의 수익을 내는 산업"이라고 밝혔다. 

4년 동안
마이너스

영화계의 지속적인 마이너스 성장의 이유로 인건비 상승이 꼽힌다. 갑작스럽게 2배 가까이 오른 제작비로 인해 손익분기점이 전반적으로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100만 관객만 동원해도 손익분기점을 넘겼던 영화가 이제는 200만 관객을 동원해야 수익을 남기는 것. 

촬영 회차당 비용이 급격하게 높아지면서, 영화 질적인 부분도 떨어질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특히 세트촬영이 주가 아닌 각종 지역을 돌아다니며 찍어야 하는 작품은 실질적인 촬영 시간이 매우 적어 제작비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영화감독은 "로케이션이 많은 작품은 이제 꿈꾸기도 힘들다. 매우 높은 비율의 세트촬영을 해야 겨우 주어진 시간에 모두 찍을 수 있다. 촬영장 이동 시간도 근무시간에 포함되기 때문에 차가 막히면 하루 회차를 이동하는 데 다 쓸 수도 있다"며 "로케이션 이 많은 방식을 택했다가 심각한 스트레스를 받은 감독도 있다"고 말했다. 

국내 영화계에서 크게 문제가 되는 것 중 하나가 양산형 영화의 확산이다. 양산형 영화는 창의적인 방식으로 이야기를 펼쳐나가는 것이 아닌, 흥행한 작품을 적당히 따라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진 작품을 말한다. 


양산영 영화의 특징은 장면마다 기시감이 강한 클리셰가 난무하며, 영화 속 이야기의 맥락과 상관없이 신파가 이어진다. 소재는 대부분 자극적인 사건이며, 캐스팅에서도 모험을 시도하지 않는다. '그 나물에 그 밥'인 영화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과 <미나리>의 윤여정이 전 세계를 호령하는 영화인으로 발돋움하고 있음에도, 한국 영화의 장래가 밝지 못하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메가박스는 최근 <자산어보>를 개봉하고 호평을 받았다. 이준익 감독은 백상예술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정약용과 정약전의 가치를 그린 <자산어보>는 예술성이 높은 작품으로 평가된다. 대중적인 요소도 상당하다. 이 감독은 또 하나의 명작을 만들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자산어보>와 같은 의미 있는 작품에 투자하는 것 자체가 소위 '미친 짓'이라는 말이 나온다. 적은 제작비로 훌륭한 퀄리티의 영화를 만들어온 이 감독이 <자산어보> 제작의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신인 감독이었다면 엄두도 못 낼 작품이라는 것.  

한 영화 배급사 관계자는 "당장 투자배급사가 죽게 생겼는데, 작가주의 영화나 다양성 영화에 투자하기란 쉽지 않다. 다양성 영화를 의식해서 투자를 잘못했다가는 투자팀 직원이 잘리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뒤바뀐
갑과 을


스태프들의 임금이 상승하면서 다양한 문제가 생겨나는 가운데, 영화관계자들은 더 큰 문제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이른바 '부서 이기주의'다. 

영화마다 각 부서가 있는데, 부서만의 이익을 위해 이기적인 결정을 내리는 것을 말한다. 부족한 예산으로 좋은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협력을 해도 모자를 판에 부서의 이익을 위해 비협조적인 결정을 내리는 행태가 만연해졌다는 것. 

촬영을 하다 보면 여러 가지 변수로 인해 30분에서 1시간 정도 시간이 더 소요될 때가 있다. 이런 경우 감독을 비롯한 연출진과 제작자는 '오버페이'를 부담하면서 촬영을 이어가기를 바란다. 하루 더 연장해서 촬영하면 약 2000만~3000만원의 제작비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여기에 장소 대여비와 각종 일정 등을 고려하면, 제작비는 예상치를 크게 웃돌게 된다. 오버페이를 지불하는 것이 영화를 만드는 입장에서는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다. 

하지만 최근 영화 현장에서 이런 협의는 절대 통용되지 않는다고 한다. 최근에 영화 촬영을 진행한 감독은 "스태프들과 협의를 포기했다"고 밝혔다. 

그는 "몇 차례 오버페이를 줄 테니 좀 더 찍자고 협의를 했는데 계속 거부당했다. 나중에는 협의하지도 않고 그냥 회차를 늘렸다. 한국 영화 현장은 할리우드보다 더 빡빡해졌다. 할리우드는 촬영이 좀 오버된 경우 충분히 협의하는 방법이 있는데, 한국은 스태프들이 거부하면 방법이 없다"며 "임금이 늘었다고 책임감이 생긴 건 아니다"라고 토로했다. 

협력 포기한 '부서 이기주의'
"위기의 충무로, 존폐 기로까지
"

드라마의 경우는 비교적 낫다. 매주 찍어야하는 분량이 있기 때문에 부서 이기주의가 비교적 덜한 편이라고 한다. 반대로 영화는 시간의 여유가 있는 편이라 각 스태프의 이기주의가 더욱 심화됐다고 한다. 

한 영화 스태프는 "영화는 일절 협의를 하지 않는다. 주어진 촬영 시간이 끝나면 바로 집에 가는 분위기다. 처음에는 나도 놀랐다. 조금만 더 촬영하면 이 장소에서는 모든 촬영이 끝나는데, 그런 형편을 이해해주지 않는 모습이 무책임해 보였다"며 "좋은 스태프도 있지만, 악질적인 스태프도 많다"고 밝혔다. 

엄청난 흥행을 일으킨 영화 감독은 '현장의 왕'으로 불렸다. 각종 배우 및 스태프의 캐스팅을 손에 쥐고 있으며, 촬영 및 편집 등 모든 부분에서 결정을 내리는 역할이라는 점에서 막강한 권력을 지니고 있었다. 과거에는 이런 감독을 견제하는 역할을 투자사에서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제 감독은 동정심이 가는 포지션으로 전락했다고 한다. 

한 투자 배급사 관계자는 "과거에 투자사에서 영화 현장을 가는 건 두 가지 이유였다. 이전에 찍은 촬영분이 너무 허접해서 혼내러 가거나, 작품이 잘 되고 있어서 놀러 가는 것이었다"며 "요즘에는 위로해주러 간다. '잘 찍는 건 둘째 치고 회차만 맞춰달라'고 말하고 온다. 그러면 감독은 '저런 애들 데리고 어떻게 회차를 맞추냐'며 하소연을 한다. 실제로 현장에 가보면 다들 스마트폰을 하고 있다. 영화 촬영에 집중하지 않는다. 어차피 촬영이 늦어지면, 이득을 보는 게 그들이다. 회차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좋으니까"라고 말했다. 

대부분 스태프는 3~4개월 촬영하면, 1~2개월은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다시 작품에 투입된다고 한다. 계약의 연속성 면에서 부담이 있기는 하나, 요즘과 같은 콘텐츠 범람의 시대에서는 일자리를 구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는 게 전언이다. 

한 제작사 관계자는 "'귀족 스태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임금도 많이 받고, 실업급여도 받는다. 어차피 몇 달 하고 안 볼 사람이라는 생각들이 있어서인지 절대 제작진의 마음을 이해해주지 않는다. 그렇다고 딱히 견제할 방법도 없다. 수틀리면 갑자기 도망치기도 하는데, 처벌할 방법은 없다"고 말했다. 

갑자기 도망
책임감 필요

한 영화 감독은 "인건비가 늘어난 만큼 책임감 있는 스태프들이 늘어났으면 한다. 예전과는 다르게 일하기 좋은 환경이 됐다. 건강한 생각의 좋은 인력들이 많이 들어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어쭙잖은 실력으로 갑질하는 스태프는 안 봤으면 한다"고 말했다. 


<intellybeast@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포스트 코로나' 시대, 한국 영화 미래는?

영화계 내에 문제가 산적한 가운데, 현재 한국 영화계의 미래는 암울한 수준이다. 코로나19를 회복하지 못한 것에 더불어 각종 OTT로 인해 집에서 드라마를 보는 문화가 확산됐기 때문이다. 

코로나19를 회복한다면 곧 영화계도 회복될 것이라는 긍정적인 시선이 있는 반면, OTT로 인해 잠식될 것이라는 비관적인 시선도 많다. 오히려 비관론이 더 늘어나는 추세라는 게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한 시나리오 작가는 "영화산업은 사양산업에 접어들었다고 본다. 과거에는 영화관 가는 것이 일상이었다면,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일탈이 될 것"이라며 "관람료는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감독이나 작가, 배우 등 새로운 스타를 발굴하지 못한다면 영화계는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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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창행 김건희’ 아직 남은 의혹들

‘철창행 김건희’ 아직 남은 의혹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논란과 문제가 끊이지 않던 퍼스트레이디가 결국 구속됐다. 김건희 여사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검찰총장 인사청문회부터 사사건건 발목을 잡던 의혹으로 최초로 구속된 영부인이 됐다. 김 여사의 구속 기간인 20일 동안 김건희 특검팀은 남은 수사에 박차를 가한다는 계획이다. 법원이 지난 13일, 김건희 여사에 대한 구속영장을 전격 발부하면서 최초로 전직 대통령 부부가 모두 구속되는 헌정사상 초유의 일이 발생했다. 대통령보다 힘이 세던 V0이 몰락한 셈이다. 주요 의혹인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명태균 공천 개입’ ‘건진법사·통일교 현안 청탁’ 등으로 김 여사 구속에 성공한 김건희 특검팀은 남은 의혹에 대한 수사에도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증거인멸 도주 우려” 이날 법조계에 따르면, 김 여사는 구속영장이 발부되면서 정식 구치소 입소 절차를 거쳤다. 이름과 주민등록번호·주소 등 인적 사항을 확인한 후 일반 수용자와 마찬가지로 정밀 신체검사를 진행한다. 이는 마약 등 반입 금지 물품을 지니고 들어왔는지 등을 확인하는 절차다. 왼쪽 가슴 부분에 수용자 번호가 있는 미결수용 수용복으로 갈아 입고, 얼굴 사진인 ‘머그샷’을 촬영한다. 또 지문 채취와 구치소 내 규율 등 생활 안내, 건강 검진도 받게 된다. 이후 세면 도구와 모포, 식기 세트 등을 받아 본인 ‘감방’으로 향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으로) 영부인 신분이 아닌 만큼 일반 수용자와 똑같은 대우를 받는다”는 게 법무부 측 설명이다. 김 여사는 앞서 수감된 윤 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독거실에 수용될 전망이다. 크기는 구인 피의자 대기실과 비슷하며 매트리스와 책상 겸 밥상, 관물대, TV 등이 비치돼있다. 끼니도 구치소에서 제공하는 1700원짜리 음식으로 해결해야 한다. 식사와 목욕도 일반 수용자와 같은 절차에 따르지만, 보안상 다른 수용자와의 동선이 겹치지 않도록 조정될 것으로 보인다. 김건희 특검팀(특별검사 민중기)은 지난 7일, 김 여사에 대한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특검은 법원에 22쪽 분량의 구속영장 청구서와 함께 848쪽 분량의 의견서를 제출했다. 구속 의견서에는 ▲지난 4월4일 윤 전 대통령 파면 직후 김 여사가 휴대전화를 교체한 사실 ▲탄핵 인용 전 코바나컨텐츠 사무실에 있는 노트북을 포맷한 사실 ▲김 여사의 ‘문고리’로 불리던 유경옥·정지원 전 대통령실 행정관이 휴대전화를 초기화한 사실 등이 적시됐다. 특검은 ▲김 여사가 지난 6일 조사 과정에서 자신의 혐의를 전면 부인한 점 ▲김 여사의 진술이 계속 바뀌는 점 ▲압수된 휴대전화의 비밀번호를 알려주지 않는 등 수사에 비협조적인 점 ▲전 대통령실 행정관 등 최측근과 말 맞추기를 시도할 우려가 있다는 점 등을 들어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김 여사가 건강상 이유로 입원할 경우 수사에 불응할 가능성이 있다며 구속 사유에 ‘도주 우려’를 포함했다. 영장실질심사에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수사를 주도했던 한문혁 부장검사 등 8명이, 김 여사 측에선 유정화·채명성·최지우 변호사가 참여했다. 김 여사 측은 이날 약 80페이지 분량의 자료를 준비했으며 특검도 구속 수사의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약 3시간 분량의 프리젠테이션(PT)을 진행했으나 법원은 특검의 손을 들어줬다. 특검팀이 처음 주목한 의혹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이른바 명태균 게이트로 불리는 ‘명태균 공천 개입’ 건진 게이트로 불리는 ‘건진법사·통일교 현안 청탁 의혹’이다. 특검팀은 이를 848쪽의 구속 의견서에 담았다. 최초 전직 대통령 부부 구속 의견서엔 구체적 사실 적시 구체적으로 김 여사가 지난 2010년 10월부터 2012년 12월까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범행에 가담한 공범이라고 판단하며 불법 거래 횟수가 총 3822회에 달한다고 적시했다. 특검은 김 여사가 주가조작으로 수익 8억1144만3596원을 얻어내기 위해 70만2512주를 권오수 전 도이치모터스 회장 등과 공모해 통정매매 188회, 가장매매 12회를 했다고 판단했다. 또 같은 기간 주가를 올리려는 목적으로 높은 값에 사는 척하는 고가 매수 주문 1661회, 주가를 내리려는 목적으로 많은 양의 주식을 파는 척하는 물량 소진 주문 1432회, 허수 매수 주문 367회, 시가·종가 관여 주문 242회 등의 이상매매 주문을 김 여사가 권 전 회장 등과 공모해 제출했다고 봤다. 4년 넘게 김 여사의 주가조작 연루 의혹을 수사했던 서울중앙지검은 지난해 10월 “김 여사가 주가조작을 인식했다고 볼 증거가 없다”며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김 여사의 계좌가 주가조작에는 이용됐지만 범행을 알았다는 증거가 없었다는 취지라며 주가조작 공모와 방조 모두 무혐의로 판단했다. 하지만 특검은 보강 수사를 거쳐 방조 혐의를 넘어 공범 혐의를 적용했다. 특검은 2011년 1월경 김 여사가 미래에셋증권 직원과 통화하면서 “6대 4로 나누면 저쪽에 얼마를 줘야 하는 것이냐”며 “2억7000만원을 줘야 하는 것 같다”고 말한 통화 녹취록을 확보해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여사가 통화 당일 은행 계좌에서 2억7000만원을 수표로 인출한 사실도 확인했다. 이에 특검은 김 여사가 주가조작 주도 세력인 ‘저쪽’에 수익 40%를 떼어줬다고 판단하고 “시세조종이라는 교묘한 수법을 동원해 재산상 이득을 취했다”고 적시했다. 특검은 정치 브로커 명태균씨 관련 공천 개입 의혹과 건진법사 전성배씨 관련 통일교 현안 청탁 의혹 등에 대해선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가 공적 지위를 사적으로 활용한 사건”이라고 판단했다. 특검은 “헌법적 가치가 훼손됐다”고 여러 차례 강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검은 윤 전 대통령 부부가 명씨로부터 여론조사를 무상으로 제공받고 공천에 개입했다는 의혹에 대해 ‘정당의 후보자 추천 제도에 정치권력과 금권이 개입한 사건’으로 규정하며 “선거제도의 출발점인 공천의 공정성을 훼손하면서 정당의 후보자 추천 제도를 포함한 대한민국의 헌법적 가치를 침해했다”고 영장에 적시했다. 또 윤모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으로부터 샤넬 백 2개와 영국 그라프사의 다이아몬드 목걸이 등 총 8000여만원의 금품을 전씨를 통해 전달받은 뒤 통일교 현안 청탁을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선 김 여사 구속영장을 통해 “종교와 정치가 분리돼야 한다는 헌법 정신에 어긋나는 일을 하면서 국정 질서에 혼란을 초래했다”고 규정했다. 848쪽 의견서 특검은 통일교의 캄보디아 메콩강 부지 개발 등 공적개발원조(ODA) 사업 지원 청탁에 대해선 “김 여사가 대한민국 정부의 조직과 예산에 대한 사적 개입으로 국정 질서에 혼란을 초래했다”고 밝혔다. 특검팀이 밝혀낸 3가지 의혹의 주요한 사실과 더불어 제시한 ‘증거인멸 정황’이 김 여사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에 결정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특검은 반클리프 앤 아펠 목걸이를 구매해 김 여사에게 교부한 혐의를 받는 이봉관 서희건설 회장으로부터 전날 제출받은 자수서와 반클리프 앤 아펠 목걸이 진품, 김 여사의 친오빠 진우씨의 장모 자택에서 압수한 목걸이 가품을 영장실질심사에서 제시했다. 이 회장은 자수서에서 “대선이 치러진 2022년 3월 직후 비서실장을 통해 반클리프 앤 아펠 목걸이를 구입해 김 여사에게 전달했고 다시 돌려받았다”고 밝혔다. 특검에 따르면 김 여사가 이 회장 측에 진품을 돌려준 시기는 2022년 6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순방 이후 재산 미등록 의혹 관련 고발장이 제출된 2022년 9월 이후인 것으로 확인됐다. 김건희 특검팀이 수사하고 있는 의혹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삼부토건 주가조작 사건 ▲코바나컨텐츠 뇌물성 협찬 사건 ▲명품 가방 수수 사건 ▲명태균·건진법사 등 민간인이 국정에 관여한 국정 농단 사건 ▲인사 개입 사건 ▲채해병 사건 및 세관 마약 사건 구명 로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개입 ▲제8회 전국동시지방 선거 개입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개입 ▲명태균 등을 통해 제20대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불법 여론조사 등 총 16가지다. 이 외에도 ▲무상 여론조사 제공 대가로 2022년 재보궐선거 공천 거래 등 선거 개입 ▲서울-양평고속도로 노선 변경 및 양평 공흥지구 인허가 과정 개입 ▲대통령 집무실 이전 및 국가 계약에 개입 ▲국가기밀정보 유출 ▲제1호부터 제15호까지의 사건과 이 사건의 수사 과정에서 인지된 관련 사건 및 특별검사의 수사에 대한 방해 행위 등이다. 특검팀은 의혹의 정점인 김 여사의 신병을 확보함에 따라 최장 20일간의 구속 기간 동안 아직 풀리지 않은 사건들에 대한 수사에 속도를 낼 예정이다. 대부분의 의혹이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명태균·건진법사 게이트와 관련된 사건으로, 특검팀은 관련된 사실을 대부분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들통난 거짓말 이에 특검팀은 출범 이후 인지한 사건인 ‘집사 게이트’와 관련해 수사력을 모을 것으로 관측된다. 특히 베트남에서 귀국한 ‘김 여사 일가의 집사’ 김예성씨의 신병을 확보함에 따라 향후 수사에도 탄력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 김씨를 중심으로 IMS모빌리티(구 비마이카)에 대가·보험성 투자 혐의가 의심되는 기업들과 김 여사 일가의 사금고 의혹을 받는 신안저축은행, 그리고 김 여사가 운영해 온 코바나콘텐츠가 개최한 전시회 뇌물 협찬 기업들로 수사가 확대될지도 주목된다. 우선 특검팀은 이번 김 여사의 구속영장 청구에서 배제됐던 ‘반클리프 앤 아펠 목걸이’ 의혹에 대한 수사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6000만원대로 알려진 해당 목걸이는 2022년 6월 윤 전 대통령 부부가 나토 정상회의 참석 차 유럽 순방 당시 착용했다가 재산 신고 누락 논란의 중심에 섰던 바 있다. 목걸이의 행방을 추적해 왔던 특검팀은 최근 김 여사의 오빠인 김진우씨의 장모집에서 해당 목걸이를 확보했지만 감정 결과 모조품인 것으로 확인됐다. 김 여사 역시 해당 목걸이에 대해 모친인 최은순씨에게 선물하기 위해 2010년쯤 홍콩에서 구매한 200만원대 모조품이라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특검팀이 최근 서희건설 측으로부터 윤 전 대통령 당선 직후 ‘김 여사에게 반클리프 스노 플레이크 목걸이의 진품을 직접 건넸다’는 취지의 자수서를 확보하면서 수사는 전환점을 맞이했다. 윤 전 대통령 당선 직후 해당 목걸이를 선물했으며, 몇 년 뒤 김 여사 측으로부터 돌려받아 보관해 왔다는 게 서희건설 측의 설명이다. 서희건설 측은 해당 목걸이 실물도 특검팀에 제출했다. 특검팀 관계자는 “김 여사는 서희건설 측으로부터 목걸이 진품을 교부받아 나토 순방 당시 착용한 게 분명함에도 특검 수사 과정에서 자신이 착용한 제품이 20년 전 홍콩에서 구매한 가품이라고 진술하고 김 여사 오빠 인척집 압수수색 과정에서 이와 동일한 모델인 가품이 발견된 경위에 대해 철저히 수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김 여사를 비롯한 모든 관련자를 수사 방해 및 증거인멸 혐의에 대해 명확히 규명하겠다”고 말했다. 그동안 받은 귀중품 수사 확대 집사 게이트·관저 이전 의혹도 특검팀은 조만간 이봉관 서희건설 회장과 비서실장 최모씨 등을 소환 조사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인척집에서 최소 3000만원 이상의 바셰론 콘스탄틴 여성용 시계 보증서가 발견된 것과 관련해서도 김 여사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혐의로 수사 중이다. 해당 시계를 구매한 사업가 서모씨는 최근 특검팀 조사에서 지난 2022년, 윤 전 대통령 취임 뒤 김 여사의 부탁을 받아 같은 해 9월7일쯤 자신이 구매한 뒤 직접 전달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시계 구매 자금 중 일부는 김 여사 측으로부터 받았다는 입장이다. 같은 해 9월 대통령경호처와 1870만원 상당의 로봇개 경호 시범 사업 계약을 맺기도 했다. ‘집사 게이트’와 관련해서는 핵심 키맨인 김씨가 베트남 호찌민에서 귀국하자마자 특검팀은 인천공항에서 체포해 특검 사무실로 압송해 즉시 조사에 착수했다. 김씨의 체포 기한이 영장 집행 기준 48시간 이내이기 때문에 특검팀은 그 안에 수사를 마치고 구속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김씨 역시 특검에 적극 협조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상태다. 특검팀은 김씨를 상대로 집사 게이트에 연루된 기업들의 184억원 투자 경위와 46억원의 행방 그리고 코바나콘텐츠 뇌물 협찬 의혹을 집중 추궁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씨가 운영한 렌터카 플랫폼 사이드스탭 ‘뿅카’는 비마이카와 함께 2015~2019년 코바나콘텐츠가 개최한 4개 전시회 협찬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또 카카오모빌리티와 HS효성 등은 물론 신안저축은행을 대상으로 특검팀의 수사가 확대될지도 주목된다. 특검팀은 카카오모빌리티와 HS효성 등이 IMS모빌리티에 거액을 투자하기 전후로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조사받은 것에 주목하고 있다. 이에 지난 11일, 관련 자료 제출 요구를 위한 정부세종청사 공정위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하기도 했다. 김 여사 일가가 운영하는 이에스아이엔디(ESI&D) 등에 130억원이 넘는 대출을 해준 것으로 알려져 사금고 논란이 제기된 바 있는 신안저축은행은 코바나콘텐츠 전시회에도 협찬했다. 신안그룹 회장 차남인 박지호(개명 전 박상훈) 전 신안저축은행 대표는 2010년 서울대 최고경영자과정(EMBA)에서 김 여사와 김씨를 처음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인연이 이어져 2013년 3월 신안저축은행의 각종 불법 대출 혐의가 불기소 처분된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당시 수사를 지휘한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 부장검사가 바로 윤 전 대통령이었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김씨는 박 전 대표의 집사 역할을 했다는 의혹도 있다. 박 전 대표는 신안저축은행이 2017년 김씨와 모친 최은순씨의 329억원대 허위 잔고 증명서 사건의 피해자였음에도 이듬해 김씨를 계열사인 바로투자증권(현 카카오페이증권) 임원으로 선임했다. 특검팀 과제는? 특검팀은 관저 이전 특혜 의혹에 관한 수사도 본격화했다. 이들은 지난 13일 “관저 이전과 관련해 21그램 등 관련 회사 및 관련자 주거지 등에 대해 건설산업기본법 위반 등 혐의로 압수수색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검팀이 관저 이전 문제에 대한 강제수사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관저 이전 특혜 의혹은 윤 전 대통령 취임 후 대통령실과 관저 이전·증축 과정에서 21그램 등 무자격 업체가 공사에 참여하는 등 실정법 위반이 있었다는 게 핵심이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