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 태양금속공업 3세의 가시밭길

금수저 내려놓고 지휘봉 잡나

[일요시사 취재1팀] 태양금속공업 창업주 3세 한하워드성(한성훈) 대표가 부친인 한우삼 태양금속공업 회장의 지분을 일부 증여받으며 2대 주주에 이름을 올렸다. 한 대표가 등기임원에 선임된 지 10년 만에 지분 확보에 나선 만큼 본격적인 3세 승계 작업에 돌입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하지만 회사의 실적은 곤두박질 치고 있다. 추후 한 대표의 앞길은 순탄치 않아 보인다.
 

▲ 한하워드성(한성훈) 태양금속공업 대표 ⓒ태양금속공업

자동차용 볼트와 너트 등 냉간단조 전문기업 태양금속공업이 승계 굳히기에 들어갔다. 창업주 3세 한하워드성(한성훈) 대표이사는 부친의 지분을 일부 증여받으며 2대 주주에 이름을 올렸다.

2대 주주 등극
승계속도 내나?

한우삼 태양금속공업 회장은 지난해 5월 한 대표에게 지분 140만5165주를 증여했다. 이로써 한 대표는 단번에 지분율 3.82%를 보유한 2대 주주로 등극했다. 한 회장은 지분 일부를 증여했지만 여전히 지분율 34.46%를 보유한 최대주주로 남았다.

태양금속공업은 창업주 고 한은영 명예회장이 1954년 3월 설립한 태양자전거기업사를 모태로 한다. 초기에는 자전거 부품을 제조했으나 자동차 및 전자제품 부품 시장으로 품목이 다변화하자 1964년 법인화 과정에서 사명을 지금과 같이 변경했다.

현재 북미와 인도, 중국 등 해외법인들을 설립해 글로벌 시장을 공략하는 회사로 성장했다.


한 대표가 지분 증여를 받으면서 승계 전략에 눈길이 쏠린다. 창업주 3세인 그는 1971년생으로 미국 카네기 멜런 대학교에서 MBA를 졸업하고 KPMG FAS(Financial Advisory Service)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다. KPMG FAS는 기업의 비전을 제시하고 발전을 견인하기 위한 재무 자문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으로 알려졌다.

한 대표는 2007년 6월 부사장에 부임하며 경영에 참여했다. 지난 2010년 3월 등기임원 선임에 이어 2011년 8월 대표이사 선임된 후 현재까지 한 회장과 함께 부자(父子) 경영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한 대표는 최근까지 태양금속공업 주식을 보유하지 않았다.

이에 일각에선 승계 목적으로 주가를 억제하고 있다는 말들도 나왔다. 한 대표가 등기임원으로 선임된 지 10년 만에 지분 확보에 나서자 업계에선 태양금속공업이 본격적인 3세 승계 작업에 돌입했다는 해석도 나왔다.

태양금속공업은 현재 최대주주인 한 회장을 비롯해 그의 친형 한애삼(2.72%), 배우자 배시학(1.71%), 계열사 썬테크(2.52%) 등이 태양금속공업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이렇듯 가족경영으로 경영권을 공고히 가져오던 태양금속공업에 때 아닌 경영권 분쟁이 일기도 했다.

10년 만에 지분 확보…본격 승계 움직임?
때 아닌 경영권 분쟁…대물림 문제 제기

2017년 발명가이자 교수인 노회현씨가 태양금속공업의 지분을 잇따라 매입하고 경영참여를 선언한 것도 모자라 소송까지 제기하는 사건이 있었다. 노씨는 당시 태양금속공업 주식 11만1443주를 주당 2100원에 장내매수했다. 주식 보유 목적은 단순 투자가 아닌 경영참여와 주주가치 제고를 위함이라고 밝혔다.

노씨는 태양금속공업 주식을 집중적으로 매입했다. ‘5% 룰’에 의해 최초로 태양금속 주요 주주로 등장했을 당시 노 교수의 지분은 5.46%였다. 하지만 그 뒤 주식을 2000~2100원 사이에서 꾸준히 사들이면서 보유지분을 244만5573주(6.61%)까지 늘렸다. 


노씨는 “한우삼 태양금속 회장 등 오너 일가가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노력을 등한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주주들의 기업설명회(IR) 개최 요구에도 묵묵부답이며 기업가치를 공정하게 평가받을 자산재평가나 주가부양 의지도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해 11월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스템에 상장법인인 태양금속공업에서 임시주주총회를 연다는 내용의 공시가 올라왔다. 이는 일반적인 주총 소집 공시와 큰 차이를 보인다. 주주총회 공시 주체가 회사 법인이 아닌 ‘노회현’이라는 개인주주였다. 
 

▲ 태양금속공업 본사 ⓒ네이버 지도

노씨는 공시와 관련해 “법원 명령에도 사 측이 대형 기업전문 로펌까지 앞세워 지속적인 방해공작을 펴고 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주명부 폐쇄부터 신문공고, 주주명부 확정 및 통보, 주주총회 일자 및 장소 선정·개최에 이르기까지 주주총회 개최의 모든 과정을 주주가 직접 진행하는, 대한민국 상장법인 주주총회 역사상 아주 이례적인 임시주주총회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노씨는 일반 투자자들과 태양금속공업의 한 회장 등 경영진에 맞서 소액주주운동을 벌였다. 노씨가 만든 온라인 카페를 중심으로 태양금속공업 소액주주 모임이 결성됐으며 그 수는 300여명에 달했다. 

미 국적
황태자

노씨와 소액주주들은 이례적인 주총 추진도 최대주주의 전횡을 막고 주주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이들은 사 측이 기업설명회(IR)나 자사주 매입, 자산재평가 실시 등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노력을 의도적으로 하지 않아 주주에게 피해를 입히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 배경으로 오너 일가의 경영권 승계 문제를 꼽았다. 회사가 한 회장이 미국 국적의 아들인 한 대표에게 경영권을 넘기는 과정에서 세금 부담을 덜기 위해 의도적으로 주가를 누르고 있다고 의심했다. 

이들은 이 같은 이유로 회사의 주가 부양 의지가 없다고 보고 있다. 당시 태양금속공업은 몇 차례의 일시적 급등을 제외하고는 주가가 수년째 2000원대 초반에 머물렀다.

태양금속공업 소액주주 모임 한 관계자는 “회장이 아들에게 자산을 넘기려고 하는 것이 문제”라며 “그동안 부자간 증여를 위해 주가를 엄청 눌러놨다”고 주장했다. 

노씨 측에 따르면, 지난 2016년 사전실적 보고사항(매출액 또는 손익구조가 30% 이상 변경 시) 공시자료에는 대규모 실적 호전(당기순이익 143% 증가)의 핵심원인인 해외법인 실적 호전에 따른 내용은 누락된 채 단순히 법인세 감소에 따른 이익의 증가에 대해서만 기재돼있다.

이를 두고 사측이 실적 개선에 따른 주가상승의 여력을 봉쇄하려 한 의도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또 매년 1분기 최대실적을 실현했던 것과 달리 올해 매출과 이익이 감소하며 실적이 크게 악화됐는데 사 측이 급여나 퇴직급여채무 등을 의도적으로 증가, 실적을 악화시켜 보고했다는 의심도 사고 있다.


이에 노씨와 소액주주들은 자산재평가와 회계장부 열람 등을 요구했지만 사 측이 이를 거부해 결국 직접 주총을 개최하겠다는 카드를 꺼내들었다.

순탄치 않은 앞길
시장 지배력 위협

당시 태양금속 관계자는 “승계 작업이 이뤄지지도 않았는데 경영권 승계를 위해 의도적으로 주가부양을 막고 있다는 주장은 말도 안 된다”며 노씨와 소액주주 측 주장을 반박했다. 자산재평가의 경우 제 가치를 평가받기에 시기상으로 적절치 않고 소액주주 추천의 사외이사 선임은 공정성 문제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결국 노씨가 제기한 임시주주총회 소집 허가 소송마저 각하됐고 노씨가 임시주총을 철회하면서 사건은 일단락됐다.
 

▲ 한우삼 태양금속공업 ⓒ태양금속공업

한 대표는 취임 후 “회사를 더 키워야 한다는 부담감과 함께 전 세계에 ‘태양금속공업’이라는 이름을 알리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는 경영일선에 나서기 전 주로 해외에서 글로벌 시장에 대한 꿈을 키웠다. 2007년 태양금속공업 부사장으로 취임하기 전 미국 제약업체 백스터, 컨설팅업체 ADL, 삼정KPMG 등에서 기업 인수·합병, 경영자문, 재무 관련 업무를 담당했다.


태양금속공업 부사장을 맡은 뒤부터는 전략 및 기획에 힘을 쏟았다. 이때 회사의 미래 성장동력을 발굴하는 선행연구·개발팀을 만들었다. 한 사장은 당시 “전세계 자동차 냉간단조시장에서 ‘톱3’에 드는 게 목표”라며 “유럽시장의 문도 계속 두드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10년이 지난 현재 한 대표의 바람은 이뤄졌을까. 태양금속공업의 주력 사업은 자동차용 볼트와 너트 등 냉간단조 시장이다. 현대·기아자동차에 사용되는 파스너의 약 40%를 납품하고 있고 시장 점유율로 봐도 40% 안팎을 차지하며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아직까지 탄탄한 경쟁력을 지닌 회사로 평가받고 있지만 한 대표가 설정한 목표와는 거리가 먼 것으로 보인다. 최근 눈에 띄게 줄고 있는 태양금속공업의 실적은 본격적으로 승계 절차를 밟기 시작한 한 대표의 앞길이 순탄치 않을 것을 예고한다.

태양금속공업의 매출액은 꾸준히 4000억원대를 유지했다. 하지만 지난해 9월(연결기준) 매출액은 2800억원까지 떨어졌다. 이는 전년 동기(3500억원)와 비교했을 때 턱없이 부족한 수치다. 이미 당기순이익은 2017년 적자로 전환됐고 2019년 영업이익마저 적자로 돌아섰다. 

업계에 따르면 태양금속공업의 주력제품인 자동차 부품은 제품 특성상 경쟁업체와 큰 차별성이 없다. 단순한 공정을 갖고 있어 저부가가치 상품으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시장 지배력 하락과 해외 수요 저조
시험대에 선 후계자…산적한 과제는?

또 경쟁업체들의 시장 진입이 거세지면서 시장 지배력에 위협을 받고 있다. 무엇보다 완성차 수요가 가장 큰 고민일 수밖에 없다. 주 거래처인 현대·기아차의 판매 둔화와 중국 시장의 수요 위축이 매출 하락으로 이어졌다.

태양금속공업은 현재 수익성 저하로 인한 자본 감소와 부채 증가로 재정건전성에 적신호가 켜졌다. 지난해 3분기 태양금속공업의 총자산(총자본+총부채)는 3895억원으로 전년 동기(4018억원)와 비교해 소폭 감소했다. 문제는 수년간 자본은 줄어들고 부채가 늘어나는 상황이 지속된다는 것이다.

최근 5년 태양금속공업의 총자본은 2016년 말 1078억원에서 지난해 3분기 797억원까지 감소했고 같은 기간 총부채는 2652억원에서 3098원으로 증가했다.

자본의 감소와 부채의 증가는 태양금속공업의 부채비율(총부채/총자본)에도 부정적 요소로 자용했다. 2016년 245%였던 부채비율은 2019년 말 449%까지 치솟았고 지난해 3분기 388%를 기록했다. 통상 부채비율은 200% 이하를 적정 수준으로 인식하는데 태양금속공업의 경우 수년간 심각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 태양금속공업 제품 ⓒ태양금속공업

대폭 늘어난 총차입금이 부채비율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됐다. 2016년까지 1369억원 수준이었던 태양금속공업의 총차입금 규모는 지난해 3분기 1923억원으로 확대된 상황이다. 

지난해 3분기 기준 태양금속공업의 차입금 의존도는 49%를 넘어섰다. 이는 태양금속공업의 재무제표가 공개된 이래 가장 높은 수치다. 30% 이하를 적정 차입금 의존도로 인식하는 통상적인 개념과 큰 간극을 나타낸다. 

차입금이란 일정한 기한 내에 원금의 상환과 일정한 이자를 지급한다는 채권, 채무 계약에 따라 조달된 자금이다. 이는 곧 차입금의 규모는 이자 지급률과 비례한다는 것을 뜻한다.

지난해 3분기 태양금속공업이 지급한 이자는 53억원 수준이다. 기타 비용이 96억원인 것을 감안했을 때 50% 이상의 금액이 이자비용으로 나간 것이다. 현재 태양금속공업의 차입금 상승 추이로 봤을 때 이자는 매년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자본 확충 필요
밝지 않은 미래

재무건전성 악화를 초래하는 자본과 부채의 심각한 불균형을 타개하기 위해서라도 태양금속공업은 자본 확충에 몰두해야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계속해서 줄어드는 시장 지배력과 해외시장 수요의 하락으로 봤을 때 그리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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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