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KPGA 왕좌 오른 ‘테리우스’ 김태훈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20.11.16 11:59:15
  • 호수 129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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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날리고 정확하게 땡그랑∼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새로운 골프스타가 탄생했다. 시원한 장타, 훤칠한 외모, 부진 극복 스토리 등 이슈를 갖춘 김태훈이 KPGA 대상과 상금왕을 석권하며 올해를 자신의 해로 만들었다. 
 

▲ 프로골퍼 김태훈

김태훈이 2020시즌 KPGA 코리안 투어에서 2관왕에 올랐다. 지난 8일, 경기도 파주 서원밸리 컨트리클럽(파72·7010야드)에서 열린 KPGA 코리안 투어 시즌 최종전 LG 시그니처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총상금 10억6원) 대회 4라운드에서 버디와 보기를 2개씩 기록하며 이븐파 72타로 마쳤다.

아이스하키서 
골프로 전향

최종 합계 13언더파 275타의 성적을 낸 김태훈은 공동 9위로 시즌 최종전을 마쳤다.

대회 전까지 상금과 대상 포인트 1위를 달린 김태훈은 선두를 지켜 2개 부문 타이틀홀더(상금 4억9593만원·대상 포인트 3251.7점)가 됐다. 두 부문에서 2위로 따라붙던 김한별(상금 4억2270만원·대상 포인트 3039점)을 제쳤다. KPGA 코리안 투어에서 상금과 대상 포인트를 석권한 선수가 나온 것은 2016년 최진호 이후 4년 만이다.

제네시스가 후원하는 대상 포인트를 차지한 김태훈은 보너스 상금 5000만원과 제네시스 차량 1대, 앞으로 5년간 KPGA 코리안 투어 시드, 2021-2022시즌 유러피언 투어 시드까지 받는다.


김태훈은 “(김한별, 이재경)두 선수가 대회에 못 나왔을 때 타이틀 부문 1위에 올랐다. 나는 연습을 안 하면 티가 많이 나는 유형이라 2주 격리를 했으면 이 정도 성적은 못 냈을 것이다. 아마 두 선수보다 순위가 아래에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나는 나이가 있지만 두 선수는 어리고 실력도 좋기 때문에 좋은 기회가 더 많을 걸로 생각한다“고 위로했다.

제네시스 대상 수상으로 코리안 투어 5년 시드뿐만 아니라 2021-2022년 유러피언 투어 시드마저 확보한 김태훈은 “제일 필요한 건 영어다. 그렇기 때문에 1년 동안 영어 공부를 해야 할 것 같다. 비거리 면에선 유럽 투어 선수들과 어느 정도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한국에 있는 경기장 잔디보다 유럽 투어 잔디가 훨씬 촘촘하다. 이 부분에 관해 공부해서 빨리 적응하는 게 관건”이라고 설명했다.

데뷔 14년 만에 대상·상금왕 석권
“2020년 최고의 해…유럽무대 도전”

캐디인 아버지(김형돈)에게도 고마움을 나타냈다. 김태훈은 “투어에 입성한 이후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아버지가 계속 캐디를 해주셨다. 나한테는 정말 좋은 캐디이자 아버지다. 아버지가 캐디를 못 하시게 된다면 아마 갤러리로 경기를 보러 오실 것 같다. 캐디든 갤러리든 앞으로 남은 내 골프 인생에서 끝까지 함께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태훈은 초등학생 때 골프채보다 아이스하키채를 먼저 잡았다. 프로야구 해태 타이거즈 강타자였던 큰아버지 김준환씨는 김태훈에게 “골프로 전향해보지 않겠냐”고 권유했다. 이 말을 듣고 김태훈은 전국체전 2관왕, 호심배 우승 등 아마추어 무대에서 일찍이 눈도장을 찍었다.

김태훈의 캐디백은 축구선수 출신 아버지가 멨다. 

골프선수로 전향한 김태훈은 시즌 초까지만 해도 무명선수였다. 2004년 국가대표 시절이었던 20세에 찾아온 드라이버 입스(Yips·결과에 대한 불안감으로 인해 정상적인 스윙을 못 하는 상태)에 무려 8년이나 시달렸다. 그는 “20세 때 드라이버 입스가 왔고, 그렇게 8~9년이 지나갔다”고 말했다. 
 

▲ 김태훈 프로

“잘못 때린 드라이버 티샷은 두 개 홀을 건너가 있을 정도였다”고 회고한 김태훈은 정타에서 벗어난 드라이버 샷으로는 도무지 성적을 낼 수 없었다고도 했다. 

골퍼 12년차 베테랑인 김태훈에게도 시련은 있었다. 2007년 코리안 투어에 데뷔하고는 11개 대회에서 모두 컷 탈락했고, 솔모로 오픈에서는 11개 홀에서 12개의 OB(아웃오브바운즈)를 내기도 했다.

김태훈은 “그땐 드라이버로 공을 때리면 어디로 갈지 몰랐다. 얼마나 심했던지 한 번은 김경태와 경기를 하는데 ‘형은 똑바로 300야드, 오른쪽으로 100야드를 날린다’며 놀리기도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평균 비거리
300야드 넘어

골프가 무서웠던 그는 이듬해 일찌감치 군에 입대했고, 어머니는 아들의 이름을 김범식에서 김태훈으로 개명했다. 그래도 입스 지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당시 그는 “입스가 왔을 때는 너무 힘들었고 옆에서 지켜보는 가족들도 매우 힘들었다”며 버텨낼 용기를 준 가족들에게 고마워했다. 

1부 투어 출전권을 상실한 2012년 2부 투어에서 뛰면서 성적에 대한 부담감을 덜어내자 드라이버 샷이 점차 안정됐다. 

그는 골프인생을 걸고 도전한 2013년 보성CC 클래식에서 첫 우승을 차지했다. 프로 데뷔 7년 만에 처음으로 맛본 우승이었다. 게다가 이승호가 2009년 삼성베네스트 오픈에서 KPGA 투어 72홀 최소타와 타이기록까지 세웠다. 최종합계 21언더파 267타.

그해 10위권 안에 8차례 진입하는 등 데뷔 이후 최고의 성적을 기록했다. 동계 훈련 기간 페어웨이가 넓은 골프장에서 수없이 드라이버 샷을 날리며 자신감을 찾은 게 도움이 됐다. 

김태훈은 우승 인터뷰에서 “그동안 너무 많은 마음고생으로 감정이 무뎌졌는지 눈물도 나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우승이 확정되던 순간, 김태훈의 아버지는 크게 기뻐했다. 악몽 같은 시간을 보내던 아들의 모습을 늘 옆에서 지켜보며 안타까워했고 아들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노력을 아끼지 않았던 아버지였다. 

우승 후 스타로 발돋움한 김태훈을 보기 위해 대회장을 찾는 갤러리도 늘어났고 골프장 밖에서도 알아보는 사람들이 생겼다. 심지어 어느 대회에서 만난 한 주니어 선수의 학부모는 “아들을 김태훈처럼 키우고 싶다”고 말했을 정도였다.

입스 트라우마 
마침내 극복


김태훈은 “첫 우승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2012년에는 집까지 걸어가지 못할 정도로 매일 열심히 운동했다. 그 노력이 첫 우승으로 이어져 골프가 정말 재밌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김태훈의 장기는 장타다. 매 대회 화끈한 장타 쇼를 선보인 김태훈의 시즌 평균 드라이버 샷 비거리는 301.067야드. 그해 출전 선수 중 유일하게 평균 드라이버 샷 비거리 300야드를 넘기며 KPGA 투어 장타상까지 챙겼다.

장타 비결에 대해 그는 “아이스하키가 골프 원리와 비슷한 점이 많다”며 “폴로(follow)와 임팩트 때 자세가 비슷하고 공에 힘을 싣는 원리도 비슷해 골프를 할 때 큰 도움을 받았다. 하체 힘을 키우기 위해 역도팀에 들어간 적도 있다”고 했다.

이어 “비거리에서 볼 스피드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발사각”이라며 “발사각을 높이려고 하면 자연스레 인-아웃(in-out) 스윙을 하게 되고 드로 구질의 샷을 하게 돼 비거리가 늘어나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2015년 김태훈은 충남 태안의 현대더링스컨트리클럽(파72·7241야드)에서 열린 카이도골프 엘아이에스(LIS) 투어챔피언십(총상금 3억원) 마지막 날 3라운드에서 버디 4개와 보기 2개를 묶어 최종합계 13언더파 203타로, 18개월 만에 우승을 노리던 박준원(29·하이트진로)을 1타 차로 따돌리고 우승컵을 안았다.

2013년 8월 보성컨트리클럽 클래식 이후 다시 들어 올린 우승 트로피였다. 


우승 후 김태훈은 “첫 승을 하고 2승을 하기까지 27개월이 걸렸다. 오랜만에 우승해서 더 기쁜 것 같다. 항상 함께해준 팬분들과 부모님과 이 영광을 함께하고 싶다”고 소감을 대신했다.

장타왕서 골프왕으로
장점 살려 통산 4승 

김태훈의 장타상은 2013년에 끝났다. 그는 “2013년에는 멀리 똑바로 공을 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멀리는 가는 데 정확하게 가지 않아 마음고생이 심했다. 지금도 완벽하지는 않지만 조금씩 잡아가고 있다”며 “이제 국내 무대는 모두 마감이 됐고 일본 Q스쿨을 위해 비행기에 오른다. 좋은 성적 거둬서 내년에는 일본과 한국 무대를 병행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2015년 최고 인기선수상을 차지했다. 드라이버샷 입스를 극복하고 시즌 마지막 대회인 투어챔피언십에서 우승한 김태훈은 스테이 트루(Stay True)상과 함께 인기상인 해피 투게더상을 받았다. 스테이 트루상은 한해 동안 진정성을 갖고 최고의 감동을 선사한 선수에게 수여되는 상이며 해피 투게더상은 온라인 팬 투표 1위에게 주는 상이다.
 

2018년 KPGA 투어 복귀하며 3승을 적립했다. 8월 양산의 통도 파인이스트 컨트리클럽(파72)에서 열린 코리안 투어 동아회원권 부산오픈 최종 라운드에서 9언더파 63타를 몰아쳐 4라운드 합계 13언더파 275타로 우승을 차지했다.

LIS 투어 챔피언십 제패 이후 무려 1015일 만에 생애 통산 3승 고지에 오른 김태훈은 긴 침묵을 깨고 부활을 알렸다. 우승 상금은 1억원.

9언더파 63타는 이 대회 1라운드 때 권성열이 세운 코스레코드를 1타 경신한 새로운 기록이다. 지금까지 7언더파 65타만 두 차례 쳐봤다는 김태훈은 개인 18홀 최소타 기록도 다시 썼다.

김태훈은 잭 니클라우스 골프클럽(파72)에서 열린 KPGA 코리안 투어 제네시스 챔피언십(총상금 15억 원) 최종 4라운드에서 버디 3개와 보기 4개로 1타를 잃었지만 최종 합계 6언더파 282타로 이재경(21·CJ오쇼핑·4언더파)을 2타 차로 따돌리고 우승의 영광을 차지했다.

한국 넘어 
유럽 정벌

KPGA의 꽃미남이자 소문난 장타자인 김태훈은 “필드에 나가면 외롭고 힘들어 심적으로 안정이 필요한데 그때마다 아버지와 함께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아버지 김형돈씨도 “캐디백을 메고 다니는 게 고되지만 성적이 좋고 나쁨을 떠나 아들과 함께하는 것이 기쁘다”고 말했다.


<9do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골프 장타의 세계
250m 넘으면 영혼도 판다?

최근 골프계에서 장타가 화제다. 오죽하면 장타대회가 따로 있을 정도다. 한 타 한 타가 돈인 프로는 말할 것도 없고, 아마추어도 250m가 넘는 장타를 칠 수 있다면 영혼이라도 팔겠다는 사람도 분명 적지 않다.

미 PGA 투어에서 전통적인 공략법을 무시하고 장타에 이은 숏게임으로 US 오픈을 제패했던 괴짜 브라이슨 디샘보는 지난주 자신의 SNS에 ‘드라이브샷 400야드를 넘겼다’며 403.1야드가 기록된 트랙맨 화면을 게시했다.

PGA 선수 중 마음먹고 스윙하면 400야드를 넘길 수 있는 선수가 없는 건 아니겠지만 최근 근육과 체중을 불리면서 장타자로 자리매김한 디샘보이기 때문에 더 관심을 모았다.

LPGA 투어에서도 새로운 장타자가 등장해 눈길을 끌고 있다.

지난해 Q스쿨을 통과해 올해 데뷔한 필리핀 출신 비앙카 파그단가난이 그 주인공으로 LPGA 투어 드라이브 온 챔피언십-레이놀즈 레이크 오코니 대회에서 315야드의 티샷을 날려 주위를 놀라게 했다.

280야드만 쳐도 장타자로 불리는 LPGA에서 300야드를 넘기는 선수가 등장할 것을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신장도 162㎝에 불과하지만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단체전 금메달, 개인전 동메달을 따낼 만큼 재능이 충분한 선수다.

디샘보나 더스틴 존슨, 전성기의 타이거 우즈처럼 장타력과 좋은 성적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선수도 있지만, 실제로 장타자가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은 쉽지 않다.

멀리 치려다 보면 정확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홈런타자가 타율이 높지 않고 삼진이 많은 것을 떠올리면 될 것이다.

PGA 투어의 평균 드라이버샷 비거리는 299.4야드다. 현재 1위 디샘보(344.4야드)와 2위 더스틴 존슨(333.8야드)는 각각 상금랭킹과 세계랭킹 1위에 올라있다.

장타력을 성적으로 연결하고 있는 뛰어난 선수들이다.

데뷔초 기복 심했던 김태훈
정교함 보강하면서 전성기

이들은 장타 외에 스크램블, 아이언, 퍼트 등 다양한 부문에서 고루 뛰어나다는 반증이다.

그러나 세계랭킹 2위 존 람은 장타 21위이고, 세계랭킹 23위인 임성재(305.3야드)는 장타 부문 78위로 중간 정도다.

300야드면 대단한 장타자로 불리던 게 오래되지 않았으나, 이제는 장비와 볼, 웨이트로 무장한 선수들이 늘어나면서 350야드는 쳐야 장타 1위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

한국남자골프도 300야드 시대다.

마이카 로렌 신(미국)이 312야드로 1위, 고태완이 311야드로 2위다. 상금랭킹 1위인 김태훈도 304야드로 5위다.

데뷔 초 장타력에 비해 성적의 기복이 심했던 김태훈은 정교함을 보강하면서 전성기를 만들어가고 있다.

상금랭킹 2위인 김한별도 291야드로 짧지 않은 드라이버샷을 갖고 있지만 27위다.

LPGA 투어는 파그단가난이 288야드로 1위, 마리아 파시가 282야드로 2위, 넬리 코르다가 272야드로 4위를 기록하고 있다.

김세영이 266.8야드로 한국선수 중 가장 높은 13위에 올라 있다.

하지만 상금랭킹 1위인 박인비는 239야드로 139위, 거의 최하위권이다.

티샷, 어프로치, 퍼트에서 모두 투어 최상위권인 박인비에게 비거리는 그다지 중요한 변수가 되지 못하고 있다.

KLPGA에서는 김아림(257야드) 김지영2(252야드)가 각각 장타 1, 2위에 올라있다.

하지만 상금랭킹 1위 김효주는 236야드, 2위인 박현경도 234야드 정도에 그친다.

최혜진이 246야드로 장타 10위, 상금 9위 등 비교적 균형이 맞는 선수에 속한다.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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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