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트럼프 잡은 조 바이든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20.11.09 19:04:54
  • 호수 129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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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유리하지도 불리하지도 않다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트럼프 시대가 막을 내렸다. 조 바이든이 미국 대통령선거에 당선됐다. 오바마 행정부에서 부통령으로 역임했던 바이든은 세계인의 주목을 받고 있다.
 

▲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

트럼프를 누르고 새로운 미국 대통령이 탄생했다. 바이든이 승기를 잡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흑인 유권자들의 전폭적인 지지가 있었다는 분석이다. 민주당 경선에서도 바이든은 흑인 유권자 덕분에 구사일생한 적이 있다.

바이든 승리의 일등공신은 ‘히든 바이든’ 지지들이다. 이들의 뒷심이 개표 종반에 역전 드라마를 만들었다. 히든 바이든이란 우편투표 또는 개표 시간 지연 등으로 막판까지 표심이 드러나지 않은 채 숨어있던 바이든 지지층을 말한다.

‘히든 바이든’
역전 드라마

펜실베이니아 주 스크랜턴에서 태어난 바이든은 장남이었다. 집안은 아일랜드 계통이며 종교는 가톨릭이었다. 아버지 조지프 바이든 시니어와 어머니 캐서린 바이든 사이에서 출생했다. 그의 증조부는 도시공학자로서 부를 쌓아 펜실베이니아 주 상원의원까지 지냈다.

이후에도 부유한 집안이었지만, 바이든 주니어가 태어났을 무렵에는 가세가 기울었다. 1950년대에 불황이 오자 고향 펜실베이니아를 떠나 델라웨어 주로 이주해 성장했다. 이후 델라웨어 클레이몬트에 있는 가톨릭계 사립학교인 아키메어 아카데미로 진학했다. 


그는 학교에 다닐 때 미식축구를 즐겼고,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농성 운동에도 참여한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학비를 벌기 위해 유리창 청소를 하고 풀을 뽑아야 했다. 말을 더듬는 습관으로 놀림을 받았지만, 혼자 거울을 보고 시를 암송하며 극복한 것으로 전해진다. 

1961년 델라웨어 대학교에 진학했으며 미식축구팀인 델라웨어 파이팅 블루헨즈에서 뛰었다. 전공은 역사학과 정치학으로 성적은 좋지 않았다. 688명 중 506등으로 졸업했다. 학부 전공은 정치학으로, 졸업 후 시라큐스 대학교 로스쿨에 진학했다. 

로스쿨 재학 중에 논문 인용을 날림으로 하다가 표절 시비를 일으키기도 했다. 1966년 로스쿨 재학 중에 네일리어 헌터를 만나 결혼하고 2남1녀를 뒀다. 5차례 입영 연기를 한 후 1968년에 받은 선병검사에서 1-Y 등급을 받고 베트남 전쟁에는 참전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천식이었다.

1969년 변호사 활동을 시작했고 권력있는 사람의 편에 서는 것에 자괴감을 느껴 국선변호인 활동을 했다고 전해진다. 1970년 11월 뉴캐슬 카운티의 카운티 의회 의원이 됐다. 2년 뒤 민주당원으로 연방상원의원 선거에 출마한다.

당시 해당 선거구의 상원의원은 정계 은퇴를 고려하던 보그스였다. 그러자 그의 후계를 두고 공화당에 분열이 생겼고 당시 대통령인 리처드 닉슨은 한 번만 더 출마하라고 보그스를 설득했다.

변호사에서 국회의원으로
2008년 오바마와 한솥밥

당시 갓 서른에 가까웠던 바이든은 보그스를 이겼고 미국 역사상 다섯 번째로 어린 상원의원이 됐다. 그러나 그해 12월18일에 크리스마스 쇼핑을 하러 차를 끌고 나간 가족들이 교차로에서 트레일러에 추돌되는 교통사고를 당해, 아내 네일리어와 장녀인 나오미가 사망한다.


바이든은 상원의원 생활을 하며 1977년에 영어 교사 질 제이콥스와 결혼한다. 두 사람 다 재혼이었다. 계속 상원의원으로 재직하며 민주당에서 중진으로 경력을 쌓았는데 1988년에 목 통증이 심해져 월터리드 육군병원에 입원해 수술을 받았다.

뇌동맥류가 파열된 탓에 그는 사경을 헤맸지만 7개월 만에 재활해 복귀했다.

1988년에는 당시 역대 2번째로 어린 나이로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출마했다. 젊은 이미지로 베이비붐 세대의 지지를 받는 유력 후보 중 한 명이었지만 영국 노동당 당수인 닐 키녹의 연설을 표절했다는 의혹이 불거져 결국 경선을 중도 포기했다. 

이후 2008년까지 36년 동안 델라웨어의 연방 상원의원으로 지냈다. 주로 외교 분야에서 활동했고 특히 코소보 문제에 많이 관여했다. 코소보 문제 당시에 미군이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자신의 의견에 동조하는 공화당 의원인 존 매케인과 결의서를 통과시키기도 했다. 1991년 걸프전에는 반대표를 던졌지만 2003년 조지 워커 부시가 이라크를 침공할 때는 용인했고, 대신 사담 후세인의 제거에는 반대했다.
 

바이든은 2008년 민주당 공천에 출마했지만 중도 하차하고 오바마 대선 열차에 합류했다. 이후 부통령으로서 오바마 전 대통령과 8년 동안 일했다. 건강보험개혁법, 경기부양책, 금융산업 개혁 등 그가 내세우는 정책 상당 부분이 오바마 시절의 유산이기도 하다.

바이든이 ‘형제’라고 언급하는 오바마와의 친분은 흑인 유권자들의 지속적인 지지를 얻어내는 원천이 됐다. 워싱턴 정가의 오랜 내부 인사인 바이든은 상대적으로 정치 경험이 적었던 오바마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줬다.

사경 헤매다
재활해 복귀

‘중산층 대표주자’로 불렸던 바이든은 오바마 대통령을 선호하지 않는 집단인 블루칼라 백인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투입됐다. 부통령 시절이던 2012년 바이든은 “동성 결혼에 대해 개인적으로 편안하다”고 언급했다.

당시 오바마 대통령이 완전히 동성 결혼에 대해 지지를 표명하지 않은 상황에서 나온 발언이라 더욱 화제가 됐다. 며칠 후 오바마 대통령은 동성 결혼을 찬성한다고 밝혔다. 연임을 거친 오바마 대통령을 보좌하며 부통령직을 맡았던 시간은 40년 정치 인생의 정점이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조지 워커 부시 행정부 시절 미 상원 외교위원장을 거쳐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 부통령으로 활동하는 등 워싱턴 정가의 잔뼈가 굵은 정치인이다. 한국에서는 주로 이명박정부 및 박근혜정부 시절 활동했던 정·관계 인사들과 깊은 교류를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박근혜정부에서 청와대 1차장을 했던 미래통합당 조태용 의원, 이명박정부에서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장을 맡았던 같은 당 박진 의원 등이 그와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 정권 인사로는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 송영길 국회 외교통일위원장 등이 거론된다.

조 의원은 1차장 직을 역임하던 시절 현재 바이든 캠프의 외교·안보 분야 선임자문을 맡고 있는 토니 블링컨 당시 오바마 행정부 국무부 부장관의 업무 카운터파트였다. 또 북한 핵 위협이 고조되던 2016~2017년 블링컨 선임자문과 총 5차례 한미 고위급 전략협의를 가지며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


조 의원은 “블링컨 선임자문과는 문자를 주고받던 사이”라고 말한 바 있다.

박 의원은 김영삼 전 대통령 시절 청와대 통역비서관으로 근무하며 당시 상원의원이었던 바이든과 인연을 맺었다. 이후 오바마 행정부에서 바이든이 외교위원장으로 활동할 때 박 의원도 한나라당 국제위원회 위원장,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장 등을 맡아 수차례 의견을 교환했다.

18대 국회에서 한미 의원 외교협의회 회장을 맡았던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도 바이든과 수차례 만난 것으로 전해진다. 정몽준 이사장은 민간 외교안보 싱크탱크인 아산정책연구원을 이끌며 워싱턴 정·관계 인사들과 꾸준히 교류해 인맥이 탄탄하다.

한국인
인맥은?

현 정부·여당 관계자는 보수 정부 10년을 거치며 바이든 측 인사들과 특별한 교류를 한 이력은 없다. 현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인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의원이 외통위에서 오래 활약하며 미국 민주당 측 인사들과 잘 아는 편으로 평가된다.

송 의원은 과거 미국 민주당 연찬회에서 바이든을 직접 만나 인사를 한 적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외교·안보 브레인으로 꼽히는 문정인 특보도 미국을 활발히 오가며 민주당 측 인사들과 꾸준히 교분을 쌓았다.


바이든은 글로벌 리더로서 미국의 역할을 강조하고, 불법 이민자에 대해 좀 더 관대한 조치를 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경찰 개혁과 총기 규제, 코로나19에 대한 방역 조치는 강력히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인하한 개인과 법인에 대한 세금을 다시 올리고, 최저임금을 인상해 중산층을 육성하며, 건강보험 확대 등 사회보장 제도를 확대하려 한다. 바이든은 유색인종과 진보층, 도시 지역과 젊은 층, 이민자, 대졸 이상의 고학력층에서 높은 지지를 받았다.

바이든은 중도·진보 성향의 정치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모두를 위한 건강보험, 대학학자금 면제 등 급진적 진보 공약을 앞세운 샌더스를 제치고 오바마 케어 지지 등 익숙한 정책으로 중도층의 지지를 결집했다.

일방적 주장과 상대를 깎아내림으로써 자신의 의견을 관철하는 트럼프에 비해 바이든은 슬픈 가족사를 언급하는 등의 공감능력이 강점으로 꼽힌다. 대선 슬로건에서 보듯 바이든은 ‘미국의 정신을 위한 투쟁’을 통해 유권자들의 감성을 자극하며 화합을 강조했다.

바이든 홈페이지 첫 화면은 유색인종, 장애인, 성수소자 등 다양한 사람들의 일러스트가 배치하는 등 포용과 화합의 이미지 앞세운다. 경제회복과 실행력, 성과 등을 강조한 트럼프와는 비교된다.

유색인종·장애인 등 화합 강조
2015년 부적절한 스킨십 논란도

바이든은 오바마 정권 8년 동안 부통령을 역임하면서 흑인 유권자들의 지지를 이끌어냈다. 지난 6월 바이든은 경찰의 무력 사용 과잉으로 사망한 조지 플로이드의 가족을 찾아 위로했다. 유색인종 여성을 처음으로 부통령 후보로 지명, 인종 격차를 해소하는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주장하면서 유색인종 지지층을 견고히 하고 있다.

하지만 큰 약점도 세 가지가 꼽힌다. 건강, 아들 스캔들, 성추행 등이다. 1946년생인 트럼프보다 4세 많은 바이든(만 77세)은 1988년 두차례 뇌동맥류 수술을 받은 경험이 있다. 그로 인해 잦은 말실수와 기억력 둔화 증세를 보인다는 우려가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바이든을 ‘졸린 조’라고 칭하며 인지력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바이든은 지난 6월 인터뷰에서 “정기적으로 검사를 받아오고 있다”고 말했지만 7월 인터뷰에서는 “검사를 받은 적이 없다”고 부인하기도 했다.
 

바이든의 둘째 아들 헌터는 기업 로비스트로 활동하면서 바이든의 정치적 후광으로 혜택을 받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러시아의 크림반도 침공과 관련, 바이든이 우크라이나 정책을 담당하던 당시 바이든의 아들 헌터는 2014년부터 5년간 우크라이나 에너지 회사 부리스마 홀딩스 사외이사를 맡았다.

당시 바이든은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10억달러(1조1265억원) 규모의 미국 대출 보증을 보류하겠다”며 검찰청장 사임을 요구했다. 2019년 트럼프 대통령은 당시 우크라이나 검찰이 부리스마 홀딩스의 횡령에 대해 수사를 진행하자, 바이든이 “수사를 막기 위해 정부를 압박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바이든은 아들과 관계없이 부패 청산을 요구한 것이라고 밝혔으나, 아들이 우크라이나 동업자와 골프를 친 사진이 공개되면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

헌터는 2013년 바이든 당시 부통령이 중국 방문 시 BHR(Bohai Harvesr Rst)사모펀드를 세워 중국 국영은행에서 투자를 받았다. 헌터 바이든은 2019년까지 BHR 이사로 재직하면서 중국 기술기업에 투자했으며 특히 중국 신장웨이우얼 지역 무슬림을 감시하는 모바일 앱에 5000억원 이상을 투자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트럼프는 바이든을 ‘친중 인사’라고 비난했다.

부적절한 접촉
망신 당하기도

바이든은 다수의 부적절한 신체 접촉 사례로 ‘소름 끼치는 바이든’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도 가지고 있다. 2015년 에슈턴 카터 국방부 장관 취임식에서 장관 부인에게 과도한 신체접촉을 해서 비난을 받은 바 있으며 같은 해 크리스 쿤스 상원의원의 10대 딸에게 부적절한 스킨십을 하다가 저지당한 적도 있다.


<9do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뜬금없는 바이든 치매설?

바이든 후보는 지난 25일 열린 화상 대담 행사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조지’로 일컫는 듯한 장면을 연출했다.

그는 “내가 출마해서가 아니라 내가 맞서고 있는 인물 때문에, 이번 선거는 가장 중대한 선거”라며 “조지가 4년 더, 조지, 어, 그는(Four more years of George, uh, George, uh, he…)”이라고 말을 더듬었다.

공화당의 스티브 게스트 신속대응국장은 트위터에 해당 부분을 담은 영상을 올리면서 “바이든 후보가 트럼프 대통령과 조지 워커 부시 전 대통령을 혼동했다”며 맹공을 펼쳤다.

트럼프 대통령도 트위터에서 “조 바이든이 어제 나를 조지라고 불렀다”며 “내 이름을 기억할 수 없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바이든 후보가 말실수할 때마다 ‘치매설’을 점화하려 “인지 능력에 문제가 있다”고 공격해왔다.

바이든 캠프 측은 바이든 후보가 말실수 한 게 아니라며 방어하고 나섰다.

트럼프 대통령이 아닌 이날 질문자로 나선 코미디언 조지 로페스의 이름을 두 차례 부른 것이라는 반박이다.

공화당 측이 교묘하게 영상을 편집해 악용하고 있다고도 했다.

다만 바이든 후보가 그간 말실수로 자주 구설에 올랐던 건 사실이다.

코로나19 미국 사망자 수치를 2억명이라고 잘못 말하거나, 자신이 대통령 선거가 아닌 상원선거에 출마했다고 말하는 식이다.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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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