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트럼프 잡은 조 바이든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20.11.09 19:04:54
  • 호수 129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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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유리하지도 불리하지도 않다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트럼프 시대가 막을 내렸다. 조 바이든이 미국 대통령선거에 당선됐다. 오바마 행정부에서 부통령으로 역임했던 바이든은 세계인의 주목을 받고 있다.
 

▲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

트럼프를 누르고 새로운 미국 대통령이 탄생했다. 바이든이 승기를 잡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흑인 유권자들의 전폭적인 지지가 있었다는 분석이다. 민주당 경선에서도 바이든은 흑인 유권자 덕분에 구사일생한 적이 있다.

바이든 승리의 일등공신은 ‘히든 바이든’ 지지들이다. 이들의 뒷심이 개표 종반에 역전 드라마를 만들었다. 히든 바이든이란 우편투표 또는 개표 시간 지연 등으로 막판까지 표심이 드러나지 않은 채 숨어있던 바이든 지지층을 말한다.

‘히든 바이든’
역전 드라마

펜실베이니아 주 스크랜턴에서 태어난 바이든은 장남이었다. 집안은 아일랜드 계통이며 종교는 가톨릭이었다. 아버지 조지프 바이든 시니어와 어머니 캐서린 바이든 사이에서 출생했다. 그의 증조부는 도시공학자로서 부를 쌓아 펜실베이니아 주 상원의원까지 지냈다.

이후에도 부유한 집안이었지만, 바이든 주니어가 태어났을 무렵에는 가세가 기울었다. 1950년대에 불황이 오자 고향 펜실베이니아를 떠나 델라웨어 주로 이주해 성장했다. 이후 델라웨어 클레이몬트에 있는 가톨릭계 사립학교인 아키메어 아카데미로 진학했다. 


그는 학교에 다닐 때 미식축구를 즐겼고,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농성 운동에도 참여한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학비를 벌기 위해 유리창 청소를 하고 풀을 뽑아야 했다. 말을 더듬는 습관으로 놀림을 받았지만, 혼자 거울을 보고 시를 암송하며 극복한 것으로 전해진다. 

1961년 델라웨어 대학교에 진학했으며 미식축구팀인 델라웨어 파이팅 블루헨즈에서 뛰었다. 전공은 역사학과 정치학으로 성적은 좋지 않았다. 688명 중 506등으로 졸업했다. 학부 전공은 정치학으로, 졸업 후 시라큐스 대학교 로스쿨에 진학했다. 

로스쿨 재학 중에 논문 인용을 날림으로 하다가 표절 시비를 일으키기도 했다. 1966년 로스쿨 재학 중에 네일리어 헌터를 만나 결혼하고 2남1녀를 뒀다. 5차례 입영 연기를 한 후 1968년에 받은 선병검사에서 1-Y 등급을 받고 베트남 전쟁에는 참전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천식이었다.

1969년 변호사 활동을 시작했고 권력있는 사람의 편에 서는 것에 자괴감을 느껴 국선변호인 활동을 했다고 전해진다. 1970년 11월 뉴캐슬 카운티의 카운티 의회 의원이 됐다. 2년 뒤 민주당원으로 연방상원의원 선거에 출마한다.

당시 해당 선거구의 상원의원은 정계 은퇴를 고려하던 보그스였다. 그러자 그의 후계를 두고 공화당에 분열이 생겼고 당시 대통령인 리처드 닉슨은 한 번만 더 출마하라고 보그스를 설득했다.

변호사에서 국회의원으로
2008년 오바마와 한솥밥

당시 갓 서른에 가까웠던 바이든은 보그스를 이겼고 미국 역사상 다섯 번째로 어린 상원의원이 됐다. 그러나 그해 12월18일에 크리스마스 쇼핑을 하러 차를 끌고 나간 가족들이 교차로에서 트레일러에 추돌되는 교통사고를 당해, 아내 네일리어와 장녀인 나오미가 사망한다.


바이든은 상원의원 생활을 하며 1977년에 영어 교사 질 제이콥스와 결혼한다. 두 사람 다 재혼이었다. 계속 상원의원으로 재직하며 민주당에서 중진으로 경력을 쌓았는데 1988년에 목 통증이 심해져 월터리드 육군병원에 입원해 수술을 받았다.

뇌동맥류가 파열된 탓에 그는 사경을 헤맸지만 7개월 만에 재활해 복귀했다.

1988년에는 당시 역대 2번째로 어린 나이로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출마했다. 젊은 이미지로 베이비붐 세대의 지지를 받는 유력 후보 중 한 명이었지만 영국 노동당 당수인 닐 키녹의 연설을 표절했다는 의혹이 불거져 결국 경선을 중도 포기했다. 

이후 2008년까지 36년 동안 델라웨어의 연방 상원의원으로 지냈다. 주로 외교 분야에서 활동했고 특히 코소보 문제에 많이 관여했다. 코소보 문제 당시에 미군이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자신의 의견에 동조하는 공화당 의원인 존 매케인과 결의서를 통과시키기도 했다. 1991년 걸프전에는 반대표를 던졌지만 2003년 조지 워커 부시가 이라크를 침공할 때는 용인했고, 대신 사담 후세인의 제거에는 반대했다.
 

바이든은 2008년 민주당 공천에 출마했지만 중도 하차하고 오바마 대선 열차에 합류했다. 이후 부통령으로서 오바마 전 대통령과 8년 동안 일했다. 건강보험개혁법, 경기부양책, 금융산업 개혁 등 그가 내세우는 정책 상당 부분이 오바마 시절의 유산이기도 하다.

바이든이 ‘형제’라고 언급하는 오바마와의 친분은 흑인 유권자들의 지속적인 지지를 얻어내는 원천이 됐다. 워싱턴 정가의 오랜 내부 인사인 바이든은 상대적으로 정치 경험이 적었던 오바마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줬다.

사경 헤매다
재활해 복귀

‘중산층 대표주자’로 불렸던 바이든은 오바마 대통령을 선호하지 않는 집단인 블루칼라 백인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투입됐다. 부통령 시절이던 2012년 바이든은 “동성 결혼에 대해 개인적으로 편안하다”고 언급했다.

당시 오바마 대통령이 완전히 동성 결혼에 대해 지지를 표명하지 않은 상황에서 나온 발언이라 더욱 화제가 됐다. 며칠 후 오바마 대통령은 동성 결혼을 찬성한다고 밝혔다. 연임을 거친 오바마 대통령을 보좌하며 부통령직을 맡았던 시간은 40년 정치 인생의 정점이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조지 워커 부시 행정부 시절 미 상원 외교위원장을 거쳐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 부통령으로 활동하는 등 워싱턴 정가의 잔뼈가 굵은 정치인이다. 한국에서는 주로 이명박정부 및 박근혜정부 시절 활동했던 정·관계 인사들과 깊은 교류를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박근혜정부에서 청와대 1차장을 했던 미래통합당 조태용 의원, 이명박정부에서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장을 맡았던 같은 당 박진 의원 등이 그와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 정권 인사로는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 송영길 국회 외교통일위원장 등이 거론된다.

조 의원은 1차장 직을 역임하던 시절 현재 바이든 캠프의 외교·안보 분야 선임자문을 맡고 있는 토니 블링컨 당시 오바마 행정부 국무부 부장관의 업무 카운터파트였다. 또 북한 핵 위협이 고조되던 2016~2017년 블링컨 선임자문과 총 5차례 한미 고위급 전략협의를 가지며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


조 의원은 “블링컨 선임자문과는 문자를 주고받던 사이”라고 말한 바 있다.

박 의원은 김영삼 전 대통령 시절 청와대 통역비서관으로 근무하며 당시 상원의원이었던 바이든과 인연을 맺었다. 이후 오바마 행정부에서 바이든이 외교위원장으로 활동할 때 박 의원도 한나라당 국제위원회 위원장,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장 등을 맡아 수차례 의견을 교환했다.

18대 국회에서 한미 의원 외교협의회 회장을 맡았던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도 바이든과 수차례 만난 것으로 전해진다. 정몽준 이사장은 민간 외교안보 싱크탱크인 아산정책연구원을 이끌며 워싱턴 정·관계 인사들과 꾸준히 교류해 인맥이 탄탄하다.

한국인
인맥은?

현 정부·여당 관계자는 보수 정부 10년을 거치며 바이든 측 인사들과 특별한 교류를 한 이력은 없다. 현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인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의원이 외통위에서 오래 활약하며 미국 민주당 측 인사들과 잘 아는 편으로 평가된다.

송 의원은 과거 미국 민주당 연찬회에서 바이든을 직접 만나 인사를 한 적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외교·안보 브레인으로 꼽히는 문정인 특보도 미국을 활발히 오가며 민주당 측 인사들과 꾸준히 교분을 쌓았다.


바이든은 글로벌 리더로서 미국의 역할을 강조하고, 불법 이민자에 대해 좀 더 관대한 조치를 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경찰 개혁과 총기 규제, 코로나19에 대한 방역 조치는 강력히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인하한 개인과 법인에 대한 세금을 다시 올리고, 최저임금을 인상해 중산층을 육성하며, 건강보험 확대 등 사회보장 제도를 확대하려 한다. 바이든은 유색인종과 진보층, 도시 지역과 젊은 층, 이민자, 대졸 이상의 고학력층에서 높은 지지를 받았다.

바이든은 중도·진보 성향의 정치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모두를 위한 건강보험, 대학학자금 면제 등 급진적 진보 공약을 앞세운 샌더스를 제치고 오바마 케어 지지 등 익숙한 정책으로 중도층의 지지를 결집했다.

일방적 주장과 상대를 깎아내림으로써 자신의 의견을 관철하는 트럼프에 비해 바이든은 슬픈 가족사를 언급하는 등의 공감능력이 강점으로 꼽힌다. 대선 슬로건에서 보듯 바이든은 ‘미국의 정신을 위한 투쟁’을 통해 유권자들의 감성을 자극하며 화합을 강조했다.

바이든 홈페이지 첫 화면은 유색인종, 장애인, 성수소자 등 다양한 사람들의 일러스트가 배치하는 등 포용과 화합의 이미지 앞세운다. 경제회복과 실행력, 성과 등을 강조한 트럼프와는 비교된다.

유색인종·장애인 등 화합 강조
2015년 부적절한 스킨십 논란도

바이든은 오바마 정권 8년 동안 부통령을 역임하면서 흑인 유권자들의 지지를 이끌어냈다. 지난 6월 바이든은 경찰의 무력 사용 과잉으로 사망한 조지 플로이드의 가족을 찾아 위로했다. 유색인종 여성을 처음으로 부통령 후보로 지명, 인종 격차를 해소하는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주장하면서 유색인종 지지층을 견고히 하고 있다.

하지만 큰 약점도 세 가지가 꼽힌다. 건강, 아들 스캔들, 성추행 등이다. 1946년생인 트럼프보다 4세 많은 바이든(만 77세)은 1988년 두차례 뇌동맥류 수술을 받은 경험이 있다. 그로 인해 잦은 말실수와 기억력 둔화 증세를 보인다는 우려가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바이든을 ‘졸린 조’라고 칭하며 인지력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바이든은 지난 6월 인터뷰에서 “정기적으로 검사를 받아오고 있다”고 말했지만 7월 인터뷰에서는 “검사를 받은 적이 없다”고 부인하기도 했다.
 

바이든의 둘째 아들 헌터는 기업 로비스트로 활동하면서 바이든의 정치적 후광으로 혜택을 받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러시아의 크림반도 침공과 관련, 바이든이 우크라이나 정책을 담당하던 당시 바이든의 아들 헌터는 2014년부터 5년간 우크라이나 에너지 회사 부리스마 홀딩스 사외이사를 맡았다.

당시 바이든은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10억달러(1조1265억원) 규모의 미국 대출 보증을 보류하겠다”며 검찰청장 사임을 요구했다. 2019년 트럼프 대통령은 당시 우크라이나 검찰이 부리스마 홀딩스의 횡령에 대해 수사를 진행하자, 바이든이 “수사를 막기 위해 정부를 압박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바이든은 아들과 관계없이 부패 청산을 요구한 것이라고 밝혔으나, 아들이 우크라이나 동업자와 골프를 친 사진이 공개되면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

헌터는 2013년 바이든 당시 부통령이 중국 방문 시 BHR(Bohai Harvesr Rst)사모펀드를 세워 중국 국영은행에서 투자를 받았다. 헌터 바이든은 2019년까지 BHR 이사로 재직하면서 중국 기술기업에 투자했으며 특히 중국 신장웨이우얼 지역 무슬림을 감시하는 모바일 앱에 5000억원 이상을 투자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트럼프는 바이든을 ‘친중 인사’라고 비난했다.

부적절한 접촉
망신 당하기도

바이든은 다수의 부적절한 신체 접촉 사례로 ‘소름 끼치는 바이든’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도 가지고 있다. 2015년 에슈턴 카터 국방부 장관 취임식에서 장관 부인에게 과도한 신체접촉을 해서 비난을 받은 바 있으며 같은 해 크리스 쿤스 상원의원의 10대 딸에게 부적절한 스킨십을 하다가 저지당한 적도 있다.


<9do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뜬금없는 바이든 치매설?

바이든 후보는 지난 25일 열린 화상 대담 행사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조지’로 일컫는 듯한 장면을 연출했다.

그는 “내가 출마해서가 아니라 내가 맞서고 있는 인물 때문에, 이번 선거는 가장 중대한 선거”라며 “조지가 4년 더, 조지, 어, 그는(Four more years of George, uh, George, uh, he…)”이라고 말을 더듬었다.

공화당의 스티브 게스트 신속대응국장은 트위터에 해당 부분을 담은 영상을 올리면서 “바이든 후보가 트럼프 대통령과 조지 워커 부시 전 대통령을 혼동했다”며 맹공을 펼쳤다.

트럼프 대통령도 트위터에서 “조 바이든이 어제 나를 조지라고 불렀다”며 “내 이름을 기억할 수 없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바이든 후보가 말실수할 때마다 ‘치매설’을 점화하려 “인지 능력에 문제가 있다”고 공격해왔다.

바이든 캠프 측은 바이든 후보가 말실수 한 게 아니라며 방어하고 나섰다.

트럼프 대통령이 아닌 이날 질문자로 나선 코미디언 조지 로페스의 이름을 두 차례 부른 것이라는 반박이다.

공화당 측이 교묘하게 영상을 편집해 악용하고 있다고도 했다.

다만 바이든 후보가 그간 말실수로 자주 구설에 올랐던 건 사실이다.

코로나19 미국 사망자 수치를 2억명이라고 잘못 말하거나, 자신이 대통령 선거가 아닌 상원선거에 출마했다고 말하는 식이다.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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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1조4000억원 규모 초대형 사업에 ‘변수’가 등장했다. 사업 진행 과정에서 불거진 절차적 정당성에 시비가 붙었다. 법정 공방으로 비화됐던 문제는 이제 결론만 남은 상태다. ‘모로 가도 수익만 내면 된다’는 재개발·재건축 시장에 브레이크가 걸릴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 5-1구역, 5-3구역 도시정비형 재개발사업(이하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둘러싼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현재 확인된 소송만 ▲손해배상 청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등 3건에 이른다. 겉으로는 순탄하게 진행 중인 듯한 사업의 이면에 ‘복마전’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일요시사> 1539호 ‘<단독> 1조4000억원 세운5구역 재개발 복마전’(https://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250331) 기사 참조). 꼬리에 꼬리 사법 리스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은 서울 중구 산림동 190-3번지 일원 7672㎡ 부지에 지상 37층 규모의 업무복합시설을 짓는 프로젝트다. ㈜이지스자산운용이 주주로 참여 중인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PFV)가 시행을, GS건설이 시공을 맡고 있다. 태영건설이 시공권과 지분을 갖고 있었지만 워크아웃에 돌입한 이후 GS건설이 인수했다. 대신자산운용이 업무시설에 대한 선매매 계약을 체결했다. 선매입 가격은 3.3㎡당 3500만원가량으로 계약금으로만 700억원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지스자산운용에 따르면, 현재 사업은 철거 단계로 예정대로 2030년에 개발이 끝나면 연면적 13만㎡가 넘는 최상급 오피스 건물이 들어서게 된다. 문제는 몇 년째 꼬리표처럼 따라붙고 있는 ‘사법 리스크’다. 검찰, 경찰에 고발된 몇몇 사건은 종결됐지만 일부는 법정 공방으로 번졌다. 눈여겨볼 대목은 송사에 휘말린 이들이 현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아무런 지분이 없는 ‘외부인’이라는 사실이다. 사업 초창기 기틀을 닦은 이른바 ‘개국공신’ 역할을 한 것은 맞지만 지금은 연결고리가 없는 상태다. 그런데도 이들의 송사에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끊임없이 언급되는 이유는 시행을 맡은 이지스자산운용이 연루돼있기 때문이다. 이지스자산운용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자금 조달 역할로 합류했다. 부동산 매매, 분양 등을 하는 업체 대표 염모씨와 부동산 개발 관리 등을 하는 업체 공동대표 오모씨, 권모씨 등이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토지 매입 자금이 부족해지자 이지스자산운용을 끌어들였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사업에 합류할 무렵 인허가 문제 등이) 어느 정도 진행돼있었고 저희가 투자하기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돈을 투자해 진행하면 안정권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판단해 진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염씨가 대표로 있는 연합와이앤제이(이하 연합)와 이지스자산운용은 2019년 1월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은 50대 50으로 맞췄다. 여기에 연합은 오씨, 권씨, 최씨, 박 전 이사 등과 따로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 구조는 연합 50%, 오씨 30%, 권씨 10%, 최씨 7%, 박 전 이사 3% 등으로 구성됐다. 2030년 13만㎡ 업무복합시설 법정 공방 최소 3건 진행 중 2019년 6월 연합, 이지스자산운용, 국민은행(이지스펀드의 신탁사), 생보부동산신탁(현 교보자산신탁) 등은 주주협약서를 작성하고 ㈜세운5구역 PFV를 설립했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위한 시행사가 정식으로 구성된 것이다. 당시 지분 구조는 연합 47.1%, 이지스자산운용(17.2%)+이지스펀드(29.9%) 47.1%, 생보부동산신탁 5.8% 등이다. 대표이사는 염씨가 맡기로 했고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은 각 2명씩 이사를 추천해 총 4명으로 이사회가 구성됐다. 연합 측에서는 염 대표와 박 전 이사가 이사로 참여했다. 이 구성은 박 전 이사가 2020년 8월14일 이사직을 사임할 때까지 유지됐다. 이후 염 대표가 이지스자산운용에 지분을 넘기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빠져나왔다. 현재 진행 중인 소송은 염 대표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손을 떼는 과정에서 오간 돈, 이지스자산운용이 오씨와 권씨, 최씨 등에게 준 돈을 두고 불거졌다. 염 대표가 받은 378억원, 오씨 등 3명 등이 받은 94억원 등 약 480억원을 둘러싸고 소유권 논쟁이 진행 중이다. 세운5구역 PFV, 이지스자산운용은 돈을 지급한 주체라 송사에 연루돼있다. 이 소송은 당시 사업의 지분 구조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시작됐기에 어떤 결론이 나오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다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최근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 자체가 흔들릴 수 있는 소송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동안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절차적 정당성’을 부여했던 이사회 관련 소송이 1심 판결을 앞두고 있는 것. 세운5구역 PFV 4명의 이사 가운데 1명이었던 박 전 이사는 2023년 9월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2019년 6월20일부터 2020년 8월14일까지 이사로 재직하는 동안 단 한 차례도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 기간 세운5구역 PFV가 진행했다고 알려진 이사회는 16번이다. 480억원 두고 초기 멤버 갈등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는 상근 직원이 없고 등기임원의 보수도 없는 특수목적법인으로, 이사회는 업무 집행의 법률적 효력과 정당성을 보장해 주는 가장 중요한 기구이자 어쩌면 회사 그 자체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 이사회가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채 진행됐으니 그 결의 내용은 무효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세운5구역 PFV는 명목상 구성된 페이퍼컴퍼니였던 만큼 사업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는 실질적인 경영 주체(이지스자산운용), 총괄 관계자가 책임져야 한다. 리모컨을 누른 사람(이지스자산운용)이 문제지, 리모컨(세운5구역 PFV)이 잘못이 아닌 것과 같다”며 “14개월 동안 이사로 재직하다가 정기총회도 거치지 않고 중도 사퇴한 건 더 가다간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휘말릴 것 같아서였다”고 털어놨다. 박 전 이사는 이사회가 실제로 진행되지 않고 서류 작업을 통해 조작됐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그는 “상법에 따르면 이사회는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의 방식으로 진행하게 돼있다. 어디에도 서면으로 진행해도 된다는 문구는 없다. 대표이사였던 염씨가 이사회를 소집 통지하는 과정에서 보낸 공문에도 정확하게 기재돼있다”고 주장했다. 상법 제391조(이사회의 결의방법)에 따르면 이사회 결의는 이사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 이사의 과반수로 해야 한다. 다만 정관으로 그 비율을 높게 정할 수 있다. 그러면서 ‘정관에서 달리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이사회는 이사의 전부 또는 일부가 직접 회의에 출석하지 않고 모든 이사가 음성을 동시에 송·수신하는 원격통신 수단에 의해 결의에 참가하는 것을 허용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실제 <일요시사>가 입수한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 주식회사 이사회 소집통지’ 공문에 따르면 2020년 3월27일 오전 11시 이지스자산운용 회의실에서 이사회를 진행하겠다는 내용과 함께 ‘방법’ 부분에 ‘직접 참석 or 컨퍼런스 콜’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방어 근거 무너지나 박 전 이사는 해당 이사회에 참석한 적 없지만, 자신의 막도장을 이용해 의결이 이뤄진 것처럼 꾸몄다고 주장했다. 이사회 당일 다른 곳에 있던 적도 있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박 전 이사는 “2019년 3차 이사회 이사록을 보면 그해 10월31일 재적 이사 전원 출석으로 이사회가 개최된 것으로 기재돼있다. 하지만 당시 나는 지인들과 서울 강남구 수서동에서 스크린 골프를 치고 있었다. 물리적으로 1시간가량 차이 나는 곳에 있던 상황이다. 그런데도 이사회 결의는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박 전 이사는 이 내용을 가지고 서울영등포경찰서에 염 대표 등을 ‘배임’ ‘사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경찰은 박 전 이사가 재직 당시 이사회 소집이나 의사록 작성 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사실이 없다는 점 등을 들어 불송치 처분했다. 박 전 이사는 “사후에 통보식으로 이사회 의결 내용을 알았다고 해서 이사회 자체의 절차적 하자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검찰은 물론 염 대표, 이지스자산운용 모두 물리적 행위 자체가 없었던, 그래서 의결 자체가 무효인 이사회를 무기로 각종 고소·고발건을 방어해 왔다”며 “이사회에서 특별 결의사항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본인들이 체결한 공동사업약정서 등에 기재돼있는데도 그조차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가 토지를 매입하는 내용을 안건으로 다룬 이사회가 가장 문제라고 지적했다.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이 맺은 공동사업약정서에 따르면 ‘승인된 사업계획에 포함되지 않은 자본적 지출’은 이사회 특별 결의사항으로 분류하고 있다. 또 특별 결의사항은 재적 이사 전원의 동의로 의결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법원 절차적 하자 인정하면 사업 자체 흔들릴 가능성도 연합 등이 토지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땅값 부풀리기’ 의혹이 제기됐다. 염 대표와 오씨 등이 재개발 구역의 땅을 사는 과정에서 특수관계인을 이용해 비싼 값에 매입했다는 의혹이다. 시행사가 직접 원주민에게 토지를 사는 방식이 아니라 그사이에 특수관계인을 끼워 넣어 차익을 봤다는 것이다. 당시 검찰은 불기소의 근거 중 하나로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언급한 바 있다.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도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땅값은 사실 정해져 있는 게 아니지 않나. 재개발사업에서는 토지 확보가 중요하기 때문에 협의에 따라 하는 것이지, 정확한 시세가 있는 것도 아니다. 만약 너무 비싸게 샀다면 의사결정 과정을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의사회 결의는 무조건 다 있었고 더 큰 의사결정은 주주총회를 통해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박 전 이사의 주장대로 이사회의 절차적 하자가 인정돼 그 존재 자체가 무효가 된다면 결의 내용 역시 ‘없던 일’이 될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사회 관련 소송에 증인으로 참석한 당시 세운5구역 PFV 이사의 발언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4명의 이사 가운데 한 명이었던 그가 같은 이사였던 박 전 이사를 ‘전혀 모른다’는 취지로 증언한 것이다.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 온·오프라인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박 전 이사의 주장에 힘이 실리는 대목이다. 박 전 이사는 “내가 증인으로 신청했다. 그런데 서로 얼굴 한번 본 적 없다. 만나기는커녕 전화 한 통 한 적 없다. 세운5구역 PFV 측은 그제야 대면 결의는 없었다고 인정하면서 서면 결의도 인정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조합에 서면으로 이사회 결의를 한다고 말하면 조합장이 당장 쫓겨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지스자산운영 측은 “해당 건은 소송이 진행 중인 사안으로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답변드리기 어려운 점 양해 부탁드리며 향후 법적 과정에서 투명하게 밝혀질 수 있도록 성실히 소명할 계획”이라고 입장을 전해왔다. 1심 판결 곧 나온다 일각에서는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에 위반될 소지도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경험이 풍부한 한 관계자는 “SPC가 설립되고 사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사회 문제가 불거진 만큼 소송 결과에 따라 주무 관청의 인허가 문제로까지 번질 수 있다”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