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그라운드 떠나는 ‘라이온킹’ 이동국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20.11.02 10:28:06
  • 호수 129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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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만장 23년 축구인생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라이온킹’ 이동국이 그라운드를 떠난다. 한국 축구계의 아픈 손가락이었던 이동국이 은퇴 소식을 알리면서 축구들의 가슴을 찡하게 만들었다. 20세 축구 천재에서 41세 K리그 레전드로 파란만장한 축구 인생을 보낸 이동국의 발자취를 되돌아봤다. 
 

▲ 기자회견 갖는 라이온킹 이동국

이동국이 지난달 26일 자신의 SNS를 통해 은퇴한다는 소식을 알렸다. 이동국은 “아쉬움과 고마움이 함께 했던 올 시즌을 끝으로 저는 제 인생의 모든 것을 쏟았던 그라운드를 떠나기로 했습니다”라는 글을 남겼다. 

‘라이온킹’
은퇴 발표

이동국 아내 이수진씨는 26일 자신의 SNS에 “학교 끝나고 차에 타서 아빠의 은퇴 소식을 처음 알리고 은퇴 발표 영상을 함께 보면서 어린아이들의 느낌은 어떨까 내심 궁금했는데 이렇게 폭풍 오열을 할 줄이야”라며 설수대(이동국의 자녀 설아, 수아, 시안)의 모습이 담긴 영상을 게시했다.

이어 “아직 어린 애기들인 줄만 알았는데 너희들도 엄마와 같은 마음이구나. 절대 이런 상황에서 울지 않는 시안이까지 울음이 터지고”라며 “많은 분이 울면서 연락이 오셔서 종일 울고 또 울고. 우리 그냥 함께 마음껏 울어요”라고 남편 이동국 은퇴에 대한 속상한 마음을 드러냈다.

영상 속 설아는 아빠 이동국의 은퇴 영상을 보며 “아빠는 왜 그만두는 거야! 아빠 그냥 할아버지 될 때까지 계속하지” 함께 있던 수아와 시안이도 울먹이는 모습을 보였다. 

이동국의 은퇴 소식에 과거 전북에서 그와 함께 뛰었던 이종호는 “대한민국 스트라이커 교과서. 공격수라면 누구나 한 번쯤 플레이 영상을 찾아보며 감탄하며 배움을 얻었던 전설 이동국 선배와 함께해서 영광이었습니다”라는 글을 남겼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도 자신의 페이스북에 “그는 언제나 극복하는 사람이었다”며 “라이언킹의 새 출발을 축하한다"고 밝혔다.

이어 “함께 울고 웃었던 23년이었다”고 적었다. 이 지사는 “국민의 염원을 가득 담은 그라운드 위에 그가 있었다”며 “국민의 탄식도 환호도 모두 그가 감당해야 할 몫이었다”고 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차범근축구상(4회)을 수상하며 잠재력을 드러낸 이동국은 1998년 프로 데뷔와 동시에 차세대 스타로 주목받았다. 포철공고를 졸업하자마자 포항 스틸러스에 입단한 그는 축구 팬들의 이목을 끌었다.

만 19세의 나이에 불과했지만 187cm의 좋은 피지컬과 탁월한 골 결정력으로 황선홍을 이을 차세대 스트라이커로 이목을 끌었다. 

축구팬들에게 확실히 각인시킨 건 1998년 프랑스 월드컵이었다. 1997년부터 한국축구대표팀 상비군에 이름을 올린 이동국은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최종 명단에 뽑혔다. 김도훈, 최용수와 펼친 주전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진 못했지만, 잠재력을 인정받아 출전 기회를 잡았다.

고등학교 졸업 후 프로팀 직행
독일, 영국 등 해외진출 실패

당시 한국 축구는 1무2패로 조별 예선에서 탈락했지만 0-5 참패를 당할 때 네덜란드전에서 후반 교체 출장해 나선 그는 주눅 든 선배들을 대신해 패기 넘치는 플레이로 네덜란드의 골문을 위협했다. 

이후 안정환, 고종수와 함께 ‘트로이카’로 불리며 K리그의 르네상스를 이끈 주역으로 부상했다. 이들은 뛰어난 축구 실력과 준수한 외모, 개성 넘치는 매력을 갖추면서 많은 여성 팬들을 확보했다. 

1998년 K리그 최우수선수(MVP)는 고종수였다. 이동국은 당시 고종수에 밀려 신인왕을 거머쥐는 데 만족해야 했다. 1999년 MVP는 안정환이 수상했다.

데뷔 초반 이동국은 분명 리그에서 가장 주목을 받은 선수 중 한 명이었지만, 고종수, 안정환과의 비교에서는 주목도가 조금 떨어졌다. 그러나 그의 팬들은 귀를 살짝 덮은 머리를 휘날리며 슈팅을 날리는 그에게 팬들은 ‘라이온킹’이라는 별명을 붙여주며 환호했다.

2000년은 특히 이동국이 힘든 시기였다. 2000년 1월 올림픽 대표팀 소속으로 호주 4개국 친선대회에 출전해 이집트, 나이지리아, 호주전에 출전했다. 쉴 새 없이 2월이 되자 A대표팀에 발탁돼 북중미 골드컵에 출전했다.
 

당시 코스타리카전에서 골을 넣기도 했다. 이후 소속팀 포항 스틸러스에서 K리그에 출전했고, 올림픽 기간이 다가오면서 9월에는 다시 태극마크를 달고 시드니올림픽에 나섰다. 당시 칠레전에서 골을 넣었고 한국은 조별리그에서 2승 1패의 좋은 성적을 거뒀으나 토너먼트 라운드 진출에는 실패했다.

호주에 다녀온 이동국은 여전히 쉬지 못하고 10월 LG 4개국 친선대회, 레바논에서 열린 아시안컵에 나섰다. 조별리그 3경기와 3~4위전까지 한 번도 쉬지 못한 채 출전했는데 6골을 터뜨리며 득점왕을 차지했다. 

2001년 1월에는 독일 분데스리가 베르더 브레멘으로 임대를 떠나기도 했다. 교체로만 7경기에 출전한 뒤 경기장에 나서는 일은 없었다.

당시 클라우디오 피차로, 아일톤 두 선수에 밀려 좀처럼 선발 출장 기회를 잡지 못하면서 포항으로 복귀했다. 이동국은 베르더 브레멘에서 실패 원인에 대해 “내성적인 성격 탓에 동료들과 빨리 융화되지 못한 것이 실패의 원인”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동국은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최종 명단에 들지 못하는 아픔을 맛본다. 프랑스월드컵 당시 상대 팀 사령탑으로 이동국의 인상적인 슈팅을 눈앞에서 지켜봤던 히딩크 감독의 결정이었다.

해외 고전
힘든 시기

많이 뛰는 축구, 공격수의 수비 가담을 강조했던 히딩크 감독은 이동국 대신 황선홍과 안정환, 최용수와 설기현을 선택했다. 뜻밖의 탈락에 이동국은 한일월드컵 당시 축구를 보지 않고, 폐인처럼 살았다고 털어놓은 바 있다.

최근 한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한 이동국은 2002년 월드컵 직후 심경에 대해 “(2002년도에는)정환이형 컨디션이 너무 좋았다. 2002년도에 스트라이커 4명 정도 뽑는데 4명 중 황선홍, 최용수, 설기현 선수 등이 있었다”라면서 “그 선수 중 컨디션이 좋은 선수들, 감독님이 선호하는 선수들 위주로 발탁하는 것이기 때문에 마지막 엔트리에서 탈락이 됐다”고 회상했다.

월드컵 직후 펼쳐진 부산 아시안게임에 출전했다. 이 대회에서 우승할 경우 이동국은 군 면제를 받을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당시 대표팀 주장이던 이영표는 이란과의 4강전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고도 마지막 승부차기에서 실축했고 아시안게임 우승은 좌절되고 말았다.

월드컵에서 최종 명단 탈락과 아시안게임 우승 실패 등 국제대회로 인해 병역 혜택을 받지 못한 이동국은 결국 2003년 광주 상무에 입대, 군복무를 하면서 재기에 나섰다. 입대하자마자 27경기 11골을 터뜨렸다.

이동국의 K리그 첫 두 자리 득점이었다. 군복무 동안 그는 종횡무진하며 K리그서 51경기를 뛰며 15골-11도움을 기록했다. 권위적이었던 이동국은 상무에서 생활하며 성격이 바뀌었다고 한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동료들과 함께 생활하다 보니 사람에 대한 이해가 넓어졌다. 

2004년 12월 국가대표 친선경기에서 이동국은 환상적인 득점을 기록하며 국내 팬들을 짜릿하게 만들었다. 부산에서 열린 독일과의 평가전에서 세계 최고 골키퍼 올리버 칸을 상대로 환상적인 발리슛을 성공했다.

지금도 이동국은 “한 골 한 골이 다 소중하지만, 독일전 발리슛을 했을 때 기억이 가장 많이 난다. 공이 발에 맞는 찰나의 순간은 아직도 생생하다”라고 말한 바 있다.
 

2005년 최고의 컨디션으로 맹활약한 이동국은 상승세를 이어갔다. 딕 아드보카트 감독이 이끄는 국가대표팀의 황태자로 불리며 월드컵 출전이 확실시됐다. 월드컵 두 달 앞둔 4월5일. K리그 경기 도중 무릎 십자인대가 파열되면서 또 한 번의 월드컵 출전이 좌절됐다.

무릎 부상으로 수술을 받았던 이동국은 2007년 1월 ‘꿈의 무대’인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진출을 이뤄냈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이동국은 두 시즌 동안 정규리그 19경기에서 무득점에 그친 가운데 FA컵 4경기(1골)와 리그컵 2경기(1골)를 합쳐 25경기에서 2득점의 기록을 남기고 돌아왔다. 

이동국은 “프리미어리그는 힘든 리그였고 나도 최고의 컨디션은 아니었다”며 “하지만 미들즈브러에서 뛰면서 전술, 훈련방식, 소통에 대해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돌아봤다.

골, 골, 골…
K리그 전설

2008년 성남일화에 복귀해 1년 내내 뛰고도 2골밖에 기록하지 못했을 때 사람들은 기다렸다는 듯 네티즌들은 “이동국은 끝났다”는 의견을 쏟아냈다.

끝난 것 같았던 이동국의 축구인생은 2009년 최강희 감독과의 만남을 기점으로 전환점을 맞는다. 입단 당시 한물간 선수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이적한 이후 전지훈련 15경기에서 단 한골도 넣지 못한 이동국을 두고 최강희는 “골 못 넣어도 괜찮아! 10경기 골 못 넣어도 그 다음 경기 15경기에서 넣으면 된다. 너무 조급해하지 말아라”라고 격려한다.

이동국이 10경기 넘게 골이 없었다는 것은 팀 성적도 연패를 겪고 있다는 말이기 때문에 누구보다 최 감독의 속이 좋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제자의 성실한 모습을 믿고 오히려 믿어줬다. 그 후 이동국은 시즌 두 번째 경기에서 1349일 만에 멀티골을 터뜨리면 스승의 믿음에 보답한다.

이동국은 그해 득점왕(21골)과 최우수선수(MVP)에 올라 전북에 창단 15년 만의 첫 K리그 우승컵을 안겼다. 당시 K리그 최종전에선 500경기 출장 금자탑을 세운 경남 골키퍼 김병지를 상대로 멀티골을 뽑아내며 주인공 자리를 뺏었고, 친정팀인 성남과의 챔피언결정전에선 극적인 쐐기골로 우승을 자축했다. 전북 천하가 시작된 원년이었다. 

이듬해 월드컵과 인연이 없던 이동국은 드디어 꿈을 이뤘다. 이동국은 2010년 남아공월드컵에서 안정환, 김남일 등 노장들과 함께 발탁돼 12년 만에 꿈에 그리던 무대에 돌아왔다. 후배들에 밀려 선발로 나서진 못했지만, 우루과이와의 16강전에 교체 투입돼 경기 종료 직전 절호의 기회를 맞았다.

비가 오는 바람에 이동국의 빗맞은 슈팅은 속도를 내지 못했고, 골라인을 넘어가기 직전 우루과이 수비수 고딘이 걷어내면서 경기는 2대 1 패배로 끝나고 말았다. 이동국의 마지막 월드컵은 그렇게 끝났고, 1998년과 2010년 두 번의 대회에서 선발 출전과 공격포인트 없이 51분의 출전 시간만 기록했다.

월드컵의 슬픔도 뒤로한 채 다음 해 소속팀에서 최고의 활약을 펼친다.

네티즌들로부터 ‘골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공격수’라는 질타를 받자 리그에서 도움왕과 최우수선수를 차지했다. 2011년 ACL에서는 9골 몰아넣으며 득점왕 차지하기도 했다.

2010년부터 전북 소속으로 ACL에 출전하기 시작한 이동국은 그해 4골을 넣으며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다. ACL에서만 무려 9골을 기록하며 득점왕을 차지했다. 전북은 홈에서 열린 결승전에서 알사드(카타르)에 패하며 준우승했지만 맹활약한 이동국은 2011년 ACL의 MVP가 됐다.

31세 최강희 감독 만나 ‘펄펄’ 
K리그 547경기 228득점 금자탑

2011년 중동의 한 클럽에서 이동국에게 거액의 러브콜을 보냈다. 건물 한 채 값의 거액을 제시한 팀이 있었지만 이동국은 거부했다. 거부한 이유는 부활하게 해준 감독님을 버릴 수 없다는 이유였다.

당시 그의 아내는 “우리 가족을 위해서 한 번 더 생각해봐. 감독님이 반대의 상황이라면 중동 가셨을 거야”라고 설득했었다. 이동국은 “내가 버림받는 건 괜찮은데 내가 버릴 수가 없다”고 말하며 스승에 대한 사랑과 의리를 보여줬다.

이동국은 월드컵 본선 무대에는 더 이상 서지 못했지만 2014년 브라질 월드컵과 2018년 러시아 월드컵 최종예선에서 국가대표팀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소집돼 한국의 월드컵행을 이끌었다.  더 이상 월드컵 무대에 오르지 못했지만 이동국은 K리그에서 새로운 기록을 꾸준히 썼다. 

K리그 최다 득점 기록 경신뿐만 아니라 2017년에는 K리그 최초로 70-70 클럽(70골-70도움)에 가입하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K리그 최초 통산 300공격포인트(223골77도움)를 달성했다. 
 

도움도 77개로 역대 2위다. 1위는 110개의 염기훈(수원 삼성)이다.

아시아에서도 최고였다.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에서 37골을 터뜨려 최다 득점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이동국과 함께 전북도 전성기를 구가했다. K리그 7회 우승, AFC 챔피언스리그 1회 우승을 기록하며 K리그 최고 명문으로 자리매김했다. 이동국도 K리그 역사상 최초로 MVP를 4회(2009, 2011, 2014, 2015년) 수상했다. 이동국은 필드 플레이어 가운데 가장 많은 547경기를 소화하며 최다득점인 228골을 남기고 그라운드를 떠나게 됐다.

은퇴를 선언하면서 그의 향후 거취에도 관심이 쏠린다. 지도자 전향과 본격적인 예능 진출 등이 거론된다. 일단 이동국은 지도자 변신을 위한 준비를 이어간다. 은퇴 경기를 치른 후 11월 A급 지도자 자격증 교육에 들어가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지난 6월 1차 교육을 이수했고, 2차 강습을 앞두고 있다.

아시아축구연맹(AFC) A급 지도자 자격증을 획득하면 국가대표팀과 K리그 코치로 활동할 수 있다. AFC A급 지도자 자격증을 획득하고 고교 이상의 전문등록팀 지도 경력 5년을 채우면 P급 지도자 교육 과정을 신청할 수 있다. P급 지도자 자격증을 확보하면 대표팀 및 K리그 감독을 맡을 수 있다.

일단 이동국은 A급 지도자 자격증을 획득한 뒤 프로 코치로 활약할 발판을 만들 것으로 보인다.

인생 2막
지도자로

또 예능인으로서 보다 많은 활동도 예상된다. 이동국은 그동안 다섯 자녀와 함께 KBS2 예능프로그램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출연, 일상을 공개하며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큰 활약을 펼쳤다. 연예대상 후보로도 오르며 방송계에서도 강한 인상을 남겼다. 방송가는 이동국의 상품성을 높게 평가하고 출연 섭외가 이어졌으나 현역 활동으로 인한 출연 제약이 있었다. 은퇴를 선언한 만큼 자유롭게 예능 프로그램에 나설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9do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옥의 티’ 이동국 과거 논란

이동국의 부친이 1998년에 병무청 직원에게 뇌물을 전달하는 수법으로 아들의 병역 비리를 청탁해 적발된 바 있다.

그의 부친은 병역법 위반으로 불구속 기소됐고, 최초 실형을 받아 교도소에 갔지만, 최종적으로 2000만원의 벌금형을 판결받았다.

이동국 부친의 병역비리 사실을 밝혀낸 사람은 김대업이었다.

그의 증언에 따르면 이동국의 부친은 아주 적극적으로 아들의 병역면제를 위해 비리, 불법, 청탁행위를 저질렀고 심지어 병역비리계의 대부였던 박노항과도 접촉을 시도했다고 한다.

상당히 악질적인 방법으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아들의 병역비리를 청탁했기에 초범에 전과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실형, 그리고 최종심엔 2000만원이라는 거금의 벌금형까지 선고받은 것.

이동국 본인은 병역비리 사건에 연루가 없다고 주장했으나 특별한 상해나 질병이 없었음에도 몇 차례나 부친의 병역비리 행각에 재검으로 화답했다는 점에서 의혹을 떨치기는 어렵다. 

2007년 아시안컵 기간 중 이동국은 이운재, 우성용, 김상식과 함께 인도네시아 현지 룸살롱에서 술판을 벌인 것으로 드러났다. 

상벌위원회는 음주 파문을 일으킨 선수 4명(이운재, 우성용, 김상식, 이동국)에 대해 ‘대표팀 경기 1년 자격정지’의 중징계를 내렸다.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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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춤 추는 이정현 마이웨이

칼춤 추는 이정현 마이웨이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이정현 공천관리위원장이 거침없이 칼을 휘두르고 있다. 주호영 국회부의장·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이 공관위원장의 칼에 희생됐다. 변방의 이방인이어서 휘둘러야 했던 칼의 운명은 반복되고 있다. 그는 왜 칼을 휘두르는 걸까? 국민의힘 이정현 공천관리위원장(이하 공관위원장)이 지난 13일 “여러 의견을 존중하는 과정에서 제가 생각했던 방향을 더는 추진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면서 사퇴했다가 이틀 후 번복했다. 이 공관위원장은 사퇴했던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이틀 후 또 번복 정치권 안팎에선 대체로 이 공관위원장의 갑작스러운 사퇴의 주요 원인으로 오세훈 서울시장과의 갈등을 주된 원인으로 거론했다. 오 시장은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에 소극적인 지도부 혁신 ▲혁신적인 선거대책위원회 조기 출범 등을 요구하면서 지방선거 공천 기간 내 후보 등록을 하지 않았다. 이 공관위원장의 사퇴 번복에는 장 대표가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사퇴 번복 후 “장 대표가 지난 14일 공천 혁신을 완수해 달라면서 공천 관련 전권을 맡긴다는 뜻을 전해왔다”고 밝혔다. 따라서 이 공관위원장의 사퇴는 대체로 ‘무력 시위’로 해석되고 있다. 결국 오 시장은 지난 17일 국민의힘 서울시장 경선 후보로 등록했다. 복귀한 이 공관위원장은 ‘장 대표가 부여한 공천 관련 전권’을 거침없이 휘둘렀다. 지난 16일에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이하 공관위)는 박형준 부산시장 공천 컷오프를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박 시장을 컷오프하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을 단수공천하자”고 주장한 핵심은 이 공관위원장이었다. 그러자 부산에 지역구를 둔 국민의힘 의원들이 장 대표를 방문해 항의했고, 장 대표는 박 시장·주 의원 간 경선을 결정했다. 같은 날 공천이 날아간 현역 광역자치단체장은 김영환 충북도지사였다. 공관위는 김 지사를 컷오프한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그저 “김 지사의 공적·업적을 부정·평가절하 하기 위한 게 결코 아니”라면서 시대 교체·세대 교체를 언급했다. 정치권에선 ▲만 70세 고령 ▲수뢰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는 등 사법 리스크 ▲재임 중 각종 발언 논란 등 대체로 김 지사의 약점이 컷오프의 실제 이유 아니겠느냐는 추측이 돌고 있다. 김 지사는 곧바로 “특정인을 두고 면접을 진행하다니 기가 막힌다”면서 일각에서 거론됐던 ‘국민의당 김수민 전 의원 충북도지사 후보 내정설’을 암시했다. 김 전 의원은 지난 2024년부터 1년 동안 충북 정무부지사를 지냈다. 김 지사는 지난 18일엔 서울남부지법에 공천 배제 효력 정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이어 다음 날 진행된 심문에서 “이 공관위원장이 김 전 의원에게 개인적으로 연락해서 출마 여부를 타진했다”며 “절차적 정당성이 파기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공관위는 이와 상관없이 지난 20일 김 지사를 제외한 경선 구도를 확정했다. 이 공관위원장은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 공천과 관련해서도 존재감을 드러냈다. 공관위는 지난 22일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 경선과 관련해 주호영 국회부의장·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을 공천에서 배제했다. 광주시장 출마 아닌 공관위원장 지방선거와 묶인 운명의 끝은? 대구시장 후보 경선에 대해선 한동안 “국민의힘 최은석 의원 공천이 사실상 내정된 게 아니냐”는 설이 돌아다녔다. 그러자 최 의원은 지난 21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공관위원장은 공천 심사 면접에서 처음 만났다”면서 이를 강하게 부인했다. 주 부의장은 공천 배제에 크게 반발했다. 그는 공천 배제 가능성이 거론되던 지난 1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대구를 공천 실험장으로 삼으면 안 된다”며 “대구시장을 더불어민주당에 상납하려는 거냐”고 비판했다. 이어 “이 공관위원장은 대구의 자존심을 더 이상 짓밟지 말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주 부의장 공천 배제는 지난 22일 확정됐다. 그는 지난 25일 가처분 신청과 무소속 출마 가능성을 언급했다. 일각에서 의아하게 해석하는 지점은 유튜버 고성국씨 등 강경 보수 진영에서 강하게 지지했던 이 전 위원장이 공천에서 배제됐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추 의원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로 확정돼 의원직에서 물러나면, 이 전 위원장이 추 의원의 지역구 대구 달성 재보궐선거에 출마하는 게 아니냐”는 설이 나왔다. 반대로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서 대구시장 선거에 출마하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주 부의장의 지역구인 대구 수성갑에 출마하는 것 아니냐”는 설도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친한(친 한동훈)계 일원으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박정하 의원은 지난 24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주 부의장의 공천 배제엔 감정이 어느 정도 반영돼있는 게 아니냐는 생각을 하지 않고선 해석이 잘 안 된다”며 “장 대표의 생각도 분명히 들어가 있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이어 주 부의장과 한 전 대표의 연대설에 대해서도 “한 전 대표가 보수 재건 후 당에 돌아오는 길을 찾아가는 길에 있어선 주 부의장의 선택 여하에 따라 모든 가능성을 다 열어 검토할 것이라고 본다”면서 연대설을 부정하진 않았다. 장 대표는 지난 23일 국민의힘 대구시당을 방문해 “공천 관련 모든 것은 당 대표인 제 책임”이라면서 공천 내정설에 대한 간접적인 의견을 밝혔다. 이어 “시민이 납득할 수 있는 경선을 치르겠다는 말씀을 드렸고, 당 대표로서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광역지방자치단체장 경선 상황·흐름에 대해선 “영남권 기성 중진과 반 장동혁 성향 인사를 배제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아니냐”는 의문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선 장 대표와 이 곤공관위원장이 각각 ‘굿 캅’과 ‘배드 캅’으로 역할을 분담한다고 의심하고 있다. 의외의 연대설 이 공관위원장의 활동 방향을 놓고, 일각에선 그가 “사실상 장 대표의 칼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그의 삶과 정치 활동은 국민의힘 주류 정치인과 많이 다르다. 국민의힘은 영남을 주된 지역 기반으로 두고 있지만, 이 공관위원장은 전남 곡성 출신이다. 그가 태어나 자란 곡성에서도 특히 위치가 외진 목사동면 동암리로 알려졌다. 그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정치에 관심을 둔 것으로 알려졌고, 정계 입문 계기는 그의 고향을 지역구로 두고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던 민주정의당 구용상 전 의원의 비서관으로 발탁된 것이었다. 구 전 의원이 지난 1988년 제13대 총선에서 낙선한 후 이 공관위원장은 민주정의당의 말단 간사로 특채됐다. 영남 기반 정당의 호남 출신 당직자였던 그는 훗날 “늘 근본 없는 놈 취급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로부터 26년 후 그는 고향 전남 순천·곡성에서 진행된 재보궐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당선되는 이변을 일으켰고, 다시 2년이 지나선 새누리당 대표로 당선됐다. 당선 이후 그의 28년에 대해선 “한 편의 드라마” 혹은 “인간 승리”라는 평가도 나왔다. 이 공관위원장에겐 2명의 이 위원장이 있다. 그는 재보궐선거 당시 49.43%를 득표해 40.32%를 득표한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서갑원 후보를 물리쳤다. 이 후보의 당선엔 서 후보와 노관규 전 순천시장의 갈등도 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있다. 하지만 정치적 흐름만을 탄 결과라고 보기 어렵다는 판단도 있다. 고향 곡성에서 이 공관위원장에 대한 지지세가 높아 70% 이상 득표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그는 새누리당이 아닌 ‘곡성 출신 이정현’을 내세워 자전거를 타고 지역구를 누볐다. 당시 그는 스스로 ‘머슴’ 혹은 ‘촌놈’을 자처했다. 그러면서 “고향을 위해 미치도록 일하고 싶다”며 “죽도록 부려먹다가 못하면 그때 쓰레기통에 다시 넣으시더라도 이번 한번만큼은 제 손을 한 번 잡아달라”고 호소하는 등 지역의 호감을 얻는 발언을 이어나간 영향도 컸던 것으로 분석됐다. 비판·조롱 낯설게하기 지난 2016년 총선에선 지역구 조정 영향으로, 이 공관위원장은 전남 순천에 출마했다. 고향이 아닌 지역구에 출마한 것은 일견 불리할 수도 있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는 44.54%를 득표해 당선됐다. 그는 재보선 당선 이후 매주 지역구를 방문해 현장을 누빈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당시 야권이었던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에서 모두 후보를 출마시킨 구도의 영향도 호재로 작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공관위원장은 지난 2022년 지방선거에선 국민의힘 전남도지사 후보로 출마해 선거 비용 보전액 하한선 15%를 넘기는 18.81%를 득표해 “선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그는 중앙 정치에선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그가 중앙 정치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을 때 그 원인은 대체로 설화였다. 청와대 홍보수석비서관으로 재직했던 2014년엔 길환영 당시 KBS 사장에게 연락해 “세월호 참사 관련 해경에 대한 비판을 지금은 자제해 달라”고 요구한 게 2년여가 흐른 후 뒤늦게 알려져 물의를 일으켰다. 이는 방송 편성 관련 규제·간섭을 금지한 방송법 위반 행위가 될 위험이 있었는데 실제로 그는 벌금형을 확정받았다. 새누리당 최고위원이었던 지난 2015년엔 광주를 방문해 ‘광주 비하’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을 했다. 당시 그는 “광주 시민이 이정현이를 쓰레기통에 버렸다”며 “박근혜 대통령이 나 같은 쓰레기를 끄집어내서 탈탈 털어 청와대 정무수석·홍보수석을 시켜주는 배려를 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대통령에게 과잉 충성하는 이 공관위원장의 모습이나 발언은 지금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였던 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12년 9월 과거사 사과 기자회견에서 회견문을 읽은 후 고개 숙여 인사했다. 당시 상황을 촬영한 사진 중에 후보 공보단장이었던 이 공관위원장이 “질의 시간을 가지면 안 된다”는 의미로 손가락으로 X 표시를 만드는 사진도 있다. 새누리당 대표였던 지난 2016년 11월엔 야권이 박 전 대통령의 임기 단축 협상을 거절하고 탄핵소추를 추진하자 “그 사람들이 탄핵을 실천하면 뜨거운 장에 손을 집어넣겠다”고 반발해 한동안 이 공관위원장을 조롱하는 합성 사진이 범람했다. 정치인은 대체로 선거 현장·당내 투쟁에선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일부 정치인은 그 간극이 커서 주목받는다. 이 공관위원장의 태도는 “상대방에게 진정성 있게 몰입한다”는 장점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그 진정성 있는 몰입은 정반대의 이미지를 연출한다. 지역구에선 유권자들이 전통적인 지역 구도에 따른 관성을 무시하고 그를 지지하는 이변으로 이어진다. 반대로 중앙 정치에선 지지자들의 환호와 반대파의 비판·조롱으로 나뉜다. 주호영·김영환 치니 한동훈 꿈틀…나비효과? 마구 휘두르고 장동혁이 수습…굿 캅 배드 캅? 20세기 독일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의 존재론에 따르면, 이 공관위원장은 ‘호남 출신 보수정당 소속’으로 던져졌다. 이는 그 스스로 선택한 것이지만, 주어진 운명이 그를 던진 측면도 있다. 던져진 상황을 극복하는 것은 그의 선택이 부여한 운명이었다. 이 때문에 이 공관위원장은 고향에선 ‘친근한 고향 사람’이 돼 선거에 임하면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하지만 보수정당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그를 발탁한 사람은 박 전 대통령이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충성은 그 스스로 선택해 자신의 삶을 던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영남 출신 엘리트’ 주축으로 구성된 국민의힘 기준에서 이 공관위원장은 변방의 이방인이다. <조선일보> 양상훈 주필은 지난 2016년 8월 이 공관위원장이 새누리당 대표에 당선된 후 그에 관한 칼럼을 썼다. 양 주필에 따르면, 이 공관위원장은 당직자 시절 자신보다 어린 당 출입기자로부터 반말을 들어가면서 그의 심부름을 했다. 변방의 이방인이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태도는 훨씬 ‘편하게’ 나왔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는 지금도 국민의힘에 있다. 러시아 문예비평가 빅토르 슈클로프스키는 시 창작과 관련해 ‘낯설게하기’란 이론을 창안했다. “익숙한 대상을 생경하게 바라보면서 그 본질을 시로 표현할 수 있다”는 취지의 이론이다. 그런데 이 공관위원장은 존재 자체가 ‘낯설게하기’였다. 고향에선 보수 정당 소속이기 때문에 낯설다. 보수 정당에선 호남 출신인 그의 존재는 낯설면서도 동시에 강렬하다. 공천관리위원장으로서 시행하는 주요 정치인 컷오프도 그가 낯선 존재이기 때문에 더욱 부각된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그의 충성도 반대파·비판자의 관점에선 개종자의 열정·과잉 사회화로 보일 여지가 있다. 개종자의 열정은 원래 특정 집단 소속이 아니었던 사람이 집단에 들어간 이후 기존 구성원보다 더 근본주의적인 태도로 열정을 쏟아붓는 현상을 말한다. 이는 대체로 “난 원래 이 집단 사람이 아니었다”는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진행된다. 그에게는 늘 ‘근본’과 관련된 비판을 받으면 안 된다는 불안감이 있기 때문이다. 과잉 사회화도 뒤늦은 주류 문법 학습 때문에 유연성을 발휘하기보다 집단의 규범을 그대로 집행하려는 경향으로 이어지는 측면을 일컫는다. 개종자의 열정·과잉 사회화를 상징하는 역사 속 인물로는 긍정적인 측면에선 한때 유대교 바리새파에서 촉망받았다가 예수의 가르침을 전파한 사도 바울을 언급할 수 있다. 부정적인 측면에선 20세기 소련의 공안 탄압을 상징하는 라브렌티 베리야를 언급할 수 있다. 조지아 출신인 베리야는 이오시프 스탈린에게 발탁된 후 대숙청을 진두지휘했던 니콜라이 예조프를 몰아내고 방첩기관 NKVD의 수장이 됐다. 지금도 베리야는 공안 탄압을 상징한다. 특정 집단에 기반이 없는 이방인이 그 집단에서 생존하기 위해 누군가의 ‘칼’이 되는 것은 숙명에 가깝다. 숙명적으로 묶인 운명 이 공관위원장은 원래 광주·전남통합시장 출마를 준비했다가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장으로 임명됐다. 그는 임명된 직후 군복을 연상시키는 야전상의를 입고 다시 등장했다. 사실상 장 대표의 칼로써 공천을 진두지휘하면서 그의 정치적 운명은 지방선거에 묶였다. 그의 운명은 여전히 칼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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