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1986년, 10대에 데뷔한 김혜수는 날아다니는 나비였다. 화려한 조명과 의상, 김혜수만의 멋있는 외형에 단단한 내공까지 겸비했다. 김혜수를 두고 ‘충무로 여제’라 부르는 이유는 그가 증명한 결과가 수없이 많아서다. 그런 김혜수가 연약함을 표현했다. 인간 김혜수가 여러 고통으로 인해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려있을 때 만난 영화 <내가 죽던 날>을 통해서다. 우울감을 기저에 깔고 마음의 병에 고통스러워하는 인물을 완벽에 가깝게 그려낸 김혜수를 만나 소회를 들어봤다.
언제나 웃는 얼굴이었고 늘 밝았다. 목소리도 크고, 당당했다. 연예인 사이에서도 연예인이었고, 어디를 가도 누구를 만나도 주목받았다. 배우 김혜수에게는 그런 특별함이 있었다.
화려한 조명
미친 존재감
화려한 스튜어디스(<짝>)였으며, 화투판의 꽃(<타짜>)이기도 했다. 도둑들 사이에서도 두려움을 주는 ‘어마어마한 썅년’(<도둑들>)이었고, 기에서 밀리지 않는 당돌한 계약직(<직장의 신>)이었다. 또 남자들의 세계에서 당당히 생존한 변호사(<하이에나>)였다.
그가 맡은 인물뿐 아니라 실제 김혜수는 강했다. 논문 표절 시비가 붙었을 때 대중 앞에 서서 당당히 사과문을 읽는 정공법으로 대중의 마음을 풀어내기도 했다. 또 오랜 기간 맡은 청룡영화상 MC를 맡았을 때는 ‘한류스타’처럼 배우에게 걸맞지 않은 구태의연한 문구는 지우고 배우가 연기한 작품의 캐릭터에 맞게 소개하는 배려도 갖췄다.
여타 연예인들의 롤 모델이자, 가요·영화·드라마계를 통틀어 감사드리고 싶은 선배로 자주 지목되는 배우였다.
인정을 받거나, 비판받을 때도 언제나 자신감과 당당함을 겸비했던 그가, 다소 숨을 죽인 채 등장했다. 지난 6일 영화 <내가 죽던 날>을 통해 만난 김혜수는 이전의 느낌과 사뭇 달랐다.
활달하기보다 침착하고 차분했으며, <내가 죽던 날>에서 연기한 현수처럼 화장기도 옅었다. 회색빛 후드티를 입었고, 목소리는 평소보다 두 톤 정도 낮았다. 마치 김혜수가 아닌 현수를 만난 듯했다.
“우리가 살다 보면 어떤 상처나 고통을 겪잖아요. 절망적인 순간을 마주하는데, 그게 꼭 제 잘못이 아닐 때도 있어요. 마치 영화 속 현수나 세진(노정의 분)처럼요. 제목을 보는데 확 찌르더라고요. 대본에 담긴 공감 가는 대사와 스토리가 정말 매력적이었고요. 개인적으로 힘든 시기가 있었는데, 꼭 제 얘기 같더라고요. 그래서 시작하게 됐어요.”
<내가 죽던 날>에서 김혜수가 연기한 현수는 이전의 김혜수가 맡았던 인물들의 톤과 다르다. 연약하다. “나 정도면 괜찮게 사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현실과의 괴리감은 컸다.
오랫동안 믿었던 남편은 다른 여자와 바람피운 것도 모자라 없는 사실마저 조작해 현수를 더 구렁텅이로 몰아넣는다. 위자료를 최소화하려는 공작이다. 능력 있는 형사에서 하루아침에 다른 사람들의 조롱을 받는, 비루한 처지가 된다.
절망 휩싸여 있을 때 만난 <내가 죽던 날>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주인공 나와 닮았다”
변호사를 선임했지만, 과거 이야기를 꺼낼 힘조차 없다. 자신을 공격하는 남편과 싸워야 하는데 싸울 의지조차 없다.
업무를 보던 중 사고를 일으킨 것도 모자라, 극도의 불안감에 휩싸인 채 이상 행동을 보여 징계위원회에 회부됐다. 수면제가 없으면 잠을 자지도 못한다. 겨우 잠을 청했는데, 꿈속에서는 자신의 시체가 보인다. 가까스로 살아가고 있는데 마음을 알아봐 주기보다, 힘을 내야 한다고 닦달하는 친구가 고마우면서도 때론 야속하다.
그러던 중 복직 전에 일 하나만 처리해달라는 선배의 제안을 받는다. 흔쾌히 승낙한다. 일이라도 하지 않으면 정말 죽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제안받은 일은 한 여고생이 외딴 섬에서 자살한 사건의 보고서를 쓰는 것.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고등학생 세진의 집이 파탄 났다. 아버지는 마약 밀매범이었고, 오빠는 마약중독자였다. 우애가 깊었던 새엄마는 경찰 조사 후 잠적했다. 세진의 곁에는 아무도 없다. 경찰은 세진의 신변을 보호하기 위해 외딴 섬으로 이주시켰다.
세진의 시체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유서도 있고 자살로 추정할만한 정황이 많다. 자살로 보고하면 되는데, 어딘가 찝찝하다. 자신과 같은 상황에 처한 세진은 자신과 달리 살려는 의지가 여기저기서 보였기 때문이다. 제발 세진이 살아있었으면 하는 마음에 세진의 삶에 집착한다. 그리고 새로운 희망을 엿본다.
이 영화에서 김혜수가 맡은 현수의 역할은 상당히 크다. 관객은 현수의 눈을 통해 이야기를 따라간다. 관객을 사건 안으로 끌어들이는 역할을 하다 후반부에는 현수의 감정에 이입시켜야 하는 중책이다. 사건 중심의 이야기가 갑작스럽게 인물 감정 중심의 이야기로 바뀌는 변주를 매끄럽게 풀어내야 했다.
이게 실패하면 사실 영화의 존재가 사라진다. 아울러 우울감이 기저에 있을 뿐 아니라, 감정의 진폭도 꽤 큰 편이다.
25년 차 베테랑 배우 김혜수에게도 현수라는 인물은 난제에 가까웠다.
두려움
부담감
“어떤 촬영장이든 두려움과 부담감이 있어요. <내가 죽던 날>은 특별히 부담됐던 것 같아요. 제가 시나리오를 보면서 느낀 게 있거든요. 그걸 관객도 느끼도록 제대로 연기하고 싶었어요. 현수를 따라가다 보면 사건이 보이고, 그러다 현수의 감정에 이입해야 하는 점이 쉽지는 않았어요.”
영화를 보고 나면 김혜수의 연기에 감탄하게 된다. 그는 어떤 작품에서든 주어진 역할 이상을 해내는 최고의 연기를 선보였다. 이번 영화에서는 특히 영화 속 인물 자체가 된 듯한 연기를 보여주었다. 무의식조차도 김혜수는 현수에 가까웠다. 연기한 모든 부분이 엄청난 흡입력을 갖는다. 중후반부에는 강한 여운까지 남긴다.
“제가 시나리오를 보면서 커다란 감정을 정확하게 느끼는 것과 그걸 구현해내는 것은 다른 문제인 것 같아요. 촬영장에서의 변수가 워낙 많기 때문이기도 하고, 당일의 컨디션도 있고요. 최대한 부차적인 것들을 걷어내는 데 집중했던 것 같아요. 우리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죠. 영화에서 제일 중요한 건 사건의 진실보다는 세진과 현수의 감정이에요. 살고자 하는 의지를 가진 세진과 현수의 마음이 나타나야 해요. 화장이 옅고 제 얼굴이 푸석한 것은 당연하고, 작은 것까지 모두 현수가 되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어요.”
김혜수에게 있어 필모그래피에 해당하는 모든 작품이 특별하지 않겠냐마는, <내가 죽던 날>에는 그에게 유독 더 특별한 점이 있다. 인간 김혜수에게 있어 정말 힘든 시기에 만나 힐링이 된 작품이기 때문이다.
김혜수는 지난해에 ‘빚투’ 논란에 휘말렸다. 모친이 지인들로부터 13억원에 달하는 거액을 빌리고 갚지 않은 일로 인해서다. 차근차근 일을 정리해 갔기 때문에 큰 파장으로 이어지지 않았을 뿐 김혜수의 마음에는 상처가 깊게 패였다. 현수의 대사처럼 “나 괜찮지 않은 것 같아”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연예인으로 사는 삶을 포기할까도 고민했단다.
굳이 털어놓고 싶지 않았을 이야기이기도 할 텐데, 김혜수는 담담하게 꺼내놨다.
“작품이라는 게 운명적인 부분이 있어요. 기묘하게도 저 스스로 굉장히 절망감에 휩싸여있을 때 만난 작품이에요. 이 작품은 제 것이었던 것 같아요. 현수와 세진이 처한 상황이 꼭 제가 처한 상황 같았어요. 현수나 세진이나 모르고 당하잖아요. 저도 똑같은 말을 한 적이 있어요. ‘난 정말 몰랐다. 내 인생이 이렇게 될 줄은’이라고요. 그렇게 저 역시 잘 몰랐고, 그래서 벌 받는다고 생각도 했어요. 하지만 모르는 것으로 책임을 피할 수도 없어요. 책임도 져야 하고요.”
어머니 빚투
은퇴 고민도
영화 속에서 현수가 친구에게 토로하는 장면이 있다. “억지로 잠이 들면 꼭 꿈에서 내 시체가 나와. 저걸 누가 좀 치워졌으면 좋겠는데, 아무도 치워주지 않아”라는 대사가 나온다. 그 대사는 김혜수가 직접 썼다. 애초 대본에 없었지만, 현수가 처한 상황이 김혜수와 너무 부합해 기꺼이 자신의 속 얘기를 꺼내놓은 것이다.
“꿈에서 제 시체가 보이는데 아무도 안 치워주는 거예요. ‘치워주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괴로웠던 순간에 반복적으로 꿨던 꿈이에요. 당시 제가 심리적으로 그런 상태라는 걸 알았죠. 처음부터 그 신에 그 대사를 쓸 생각이었던 건 아니었는데, 연기하다 보니까 그 대사가 현수의 감정을 정확히 표현한다고 생각했어요. 저처럼 현수도 불안정한 상황이고, 대사에서 무의식적으로 드러나는 감정이잖아요. 원래 있던 신에 그 부분을 추가한 거죠.”
짧은 대화 속에서 그가 겪은 고통이 전달됐다. 적지 않은 시간을 고통스럽게 보낸 듯했다.
“저도 위기가 참 많았죠. 많았어요. 그렇다고 그런 위기를 늘 이겨내고 극복한 건 아닌 것 같아요. 극복하려고 뭘 했다기보다는, 해야 할 것을 하면서 시간을 보낸 거죠. 그렇게 시간이 지나가고 나면 되는 건데, 그 순간은 힘들죠. 대내외적으로 위기가 있었어요. 그래도 늘 괜찮다고 생각했어요. 긍정적이라서가 아니라 그 정도는 괜찮았어요. 그런데 작년에 처음으로 ‘괜찮지 않구나’라는 걸 느꼈어요. 그리고 현수 역시도 그 지점에서 출발한 게 아닌가 싶었어요.”
그럼에도 이렇게 담담하게 말할 수 있는 건 그 힘든 시간을 이겨냈기 때문에 가능한 것으로 보였다.
“사람이 참 이기적인 것 같아요. 고통스러운 순간에는 누가 용기를 주고 힘내라고 해도 사실 소용이 없어요. 들리지 않거든요. 그럼에도 지속해서 저에게 힘을 주는 친구들이 있었어요. 제 곁에 있어 주면서, 제가 스스로 저를 포기하지 않도록 지켜준 친구들이었어요. 저는 운이 좋은 거죠.”
덕은 쌓은 만큼 돌아온다는 말이 있다. 힘든 시기에 친구들의 기운을 받을 수 있었던 것에는 그가 주위 사람들에게 보인 위로가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주변 배우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보이지 않는 곳에서 김혜수의 위로를 받았다고 소개한 사람들이 적지 않다.
25년 베테랑 “촬영장은 여전히 두렵다”
“작은 손길이 가진 힘, 누구나 행복하길”
“누군가 저로 인해 도움을 받았다고 하면 감사한 거죠. 어떤 의도를 갖고 그 사람을 대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그냥 진심으로 대했어요. 고맙다는 말을 들으려고 상대를 대한 건 아닌 거 같아요. 저에게 감사함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제가 감사하죠.”
전혀 다른 삶을 살던 누군가로부터 좋은 영향을 받고, 그 힘으로 용기를 얻는 경우가 있는 것처럼, <내가 죽던 날>은 누군가가 내민 작은 위로의 손길이 얼마나 강력한 생명력을 갖는지를 설명한다. 영화가 가진 묵직한 여운은 김혜수에게도 위로를 줬다.
“상처를 받았을 때 모두가 극복하는 건 아닌 거 같아요. 영화가 회복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주잖아요. 말 없는 손길이 얼마나 중요한지, 얼마나 강력한 희망을 주게 되는지 보여준다고 생각해요. 저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힘든 순간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모두가 그것을 극복했다기보다는 그 시간을 잘 버텨낸 것일 수도 있어요. 저 역시 마찬가지고요. 순천댁은 자신이 받은 상처를 극복하는 데는 실패했지만, 자신과 닮은 상처를 보듬어주면서 누군가에게 생명력을 불어넣잖아요. 그러면서 본인의 상처를 치유하기도 하고요. 저 역시도 그 메시지를 마음에 새기면서 잘 버텨낸 것 같기도 해요.”
힘들었던 순간 만난 <내가 죽던 날>로 인해 김혜수는 동년배 이정은을 만났다. 자신을 포용해주는 사람이었다고 했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의미라고 표현했다.
“이정은 배우에게 인간적인 면을 많이 봤어요. 어떤 특별한 말을 하지 않아도, 무언가 아픔을 품어주는 느낌을 받았어요. 무언의 손길을 내밀어줬어요. 매우 특별할 뿐만 아니라 처음 겪는 일이었어요. 누군가로부터 위로를 받는다는 거요. 정말 소중한 경험이에요. 실제 우리 영화의 결과와 상관없이, 이 작품을 한 것이 저에게는 특별한 의미로 다가와요.”
김혜수는 코로나19 시국에도 SBS 드라마 <하이에나>와 영화 <내가 죽던 날>을 찍으며 바쁜 나날을 보내왔다. 그러나 그의 일상에도 코로나19에 의한 힘겨운 시간들이 존재했다.
작은 손길
큰 생명력
“코로나19 때문에 저도 집에만 있었어요. 파자마만 입고, 게으르게 있는 편이에요. 추해요. 최근에 대중음악 강의를 들었어요. 각 시대 유명 예술가들의 음악을 온전히 듣고 감상하면서 토론하는 자리였어요. 일상적으로는 굉장히 흥분되는 일이었어요. 그나마 다행이었죠. 다들 여러모로 힘든 시기를 보내실 거예요. 잘 버티면 지나갈 거예요. 우리는 다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순천댁처럼 주위 사람들에게 작은 손길을 내밀다 보면 이 어려운 시국도 다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