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국 뇌관’ 라임·옵티머스 사태 후폭풍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20.10.19 10:09:39
  • 호수 129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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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폭, 로비, 게이트…노정권 휩쓴 ‘바다이야기’ 데자뷔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라임·옵티머스 사태가 정국의 뇌관으로 떠올랐다. 검찰은 수사팀을 확대하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수사의 종착지는 정관계 로비 의혹이다. 보수 야권은 이번 사태를 ‘권력형 게이트’로 규정, 공세를 펼치고 있다. 정치권 안팎에선 이번 사태가 과거 참여정부 집권 기간 최대 사건 중 하나였던 ‘바다이야기’를 연상시킨다고 분석한다.
 

▲ 피켄 든 옵티머스 피해자들

라임자산운용(이하 라임)과 옵티머스자산운용(이하 옵티머스)의 대규모 펀드 사기 사건이 일파만파 확산되고 있다. 옵티머스 사태는 환매 중단으로 투자자들에게 수천억원대 손실을 입힌 사건이다. 지난 2017년부터 2020년 6월까지 옵티머스는 공공기관 매출채권에 투자한다며 자금을 모은 뒤 부실채권 인수, 펀드 돌려막기 등에 사용해 검찰의 수사 선상에 올랐다. 옵티머스 사태로 투자자 2900여명이 피해를 입은 것으로 전해진다. 

일파만파
줄줄이 구속

이 때문에 옵티머스 사태는 ‘제2의 라임 사태’로 불린다. 라임 사태는 라임이 펀드의 부실을 고지하지 않고 증권사와 은행을 통해 상품을 판매해 결국 환매가 중단, 투자자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힌 사건을 이른다. 

사건 초기만 해도 선량한 투자자들을 울린 단순 금융범죄로만 여겨졌다. 그러나 두 사건에 정관계 인사가 연루됐다는 로비 의혹이 불거지면서 정권을 겨냥한 게이트로 번질 가능성이 생겼다. 

지난해 7월 라임의 펀드 수익률 돌려막기 의혹이 처음 제기됐다. 금융감독원(이하 금감원)은 라임 현장 검사에 착수했다. 그로부터 3개월여 뒤 라임 펀드의 1·2차 환매중단 사태가 발생했다.


관련자들이 줄줄이 구속되기 시작했다. 지난 3월 라임의 부실을 숨기고 판매한 임모 전 신한금융투자 PBS본부장을 시작으로, 4월 금감원의 라임 관련 문건을 라임에 전달한 김모 전 청와대 행정관이 구속됐다. 도피 중이던 라임 사태 핵심 인물인 이종필 전 부사장,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 심모 전 신한금융 팀장이 검거됐다. 

김 전 회장은 라임의 돈줄로 알려져 있다. 검찰은 그가 금융당국 조사를 피하기 위해 정관계 인사에게 금품과 향응을 제공했을 것으로 의심하고 수사를 진행했다. 지난달 23일 김 전 회장으로부터 돈을 받은 혐의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상호 전 부산 사하을 지역위원장이 구속됐다.

정국 최대 쟁점으로 급부상
BH 인사 연루설 민주당 비상

불똥은 청와대로 튀었다. 김 전 회장은 지난 8일 열린 이강세 전 스타모빌리티 대표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이 전 대표를 통해 강기정 전 청와대 정무수석에게 5000만원을 전달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지난해 7월 이 전 대표가 ‘내일 청와대 수석을 만나기로 했는데 비용이 필요하다’고 말해 5만원짜리 다발을 쇼핑백에 담아 5000만원을 넘겨줬다는 것. 지난 6월 구속된 이 전 대표는 광주MBC 사장 출신으로, 라임과 정치권의 연결고리 역할을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 굳게 닫힌 옵티머스 자산운용 사무실

김 전 회장은 당시 재판장서 “정무수석이란 분하고 (이 전 대표가)가깝게 지낸 건 알고 있었다”며 “이 전 대표가 인사를 잘 하고 나왔다고 했다. 금품이 (강 전 수석에게)잘 전달됐다는 취지로 이해했다”고 주장했다. 추가로 강 전 수석이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에게 전화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도 밝혔다. 

강 전 수석은 즉시 입장을 내고 김 전 회장의 주장에 대한 반박에 나섰다. 지난해 7월28일 청와대서 이 전 대표를 만난 사실은 인정하지만, 돈을 받은 사실이 없으며 청와대의 보안 체계상 돈다발이 든 쇼핑백이 검색대를 통과할 수 없다는 것이다.


김 실장과 전화 통화를 했다는 주장 역시 부인했다. 강 전 수석은 김 전 회장을 위증,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서울남부지검에 고소한 상태다.

강 전 수석 외에도 다수의 여권 유력 인사들의 이름이 검찰의 소환 명단에 오르고 있다. 검찰은 지난 13일, 김영춘 국회 사무총장에게 소환을 통보하고 조사 일정을 조율 중이라고 밝혔다. 

이번 소환과 관련해 김 총장은 라임 사태와 어떠한 관련도 없다고 밝혔다. 

긴장하는
BH·민주당

앞서 검찰은 민주당 기동민 의원도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김 전 회장은 지난 2016년 총선을 앞두고는 기 의원 측에 수천만원이 들어있는 현금 봉투를, 당선 후에는 축하 명목으로 고급 양복을 줬다고 진술했다.

기 의원 측은 양복을 선물 받은 적은 있지만, 라임 사건과 어떤 관계도 없다고 부인했다. 김 총장, 기 의원 외에도 검찰은 민주당 이모 의원과 열린우리당 김모 전 부대변인에게도 출석을 통지한 것으로 전해진다.

옵티머스 사태 정관계 연루설은 청와대 행정관으로 근무했던 옵티머스 이사 부인이 지분을 차명 보유했다는 의혹으로부터 시작됐다. 검찰은 김재현 옵티머스 대표가 작성한 ‘펀드 하자 치유’ 문건과 구체적인 로비 계획이 담긴 문건·진술 등을 확보해 수사를 진행 중이다.

해당 문건들에는 로비를 의심케 하는 문구들이 포함돼있다. 예컨대 펀드 하자 치유 문건에 적힌 ‘이혁진(전 대표) 문제 해결 과정서 도움을 줬던 정부 및 여당 관계자들이 프로젝트 수익자로 일부 참여하고 있고, 펀드 설정 및 운용 과정에도 관여돼있다’ ‘권력형 비리로 호도될 우려가 있다’ 등이 대표적이다. 
 

▲ 문재인 대통령 ⓒ고성준 기자

검찰은 문건과 진술의 신빙성, 계획이 실행으로 옮겨졌는지 여부를 검증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 14일 옵티머스 쪽으로부터 수천만원의 돈을 받았다는 의혹이 있는 윤모 전 금감원 국장의 서울 성동구 자택을 압수수색하고, 윤 전 국장을 직접 소환해 조사한 일이 그 일환이다. 

여권 유력 대권주자의 이름 역시 거론되고 있다. <조선일보>는 채동욱 당시 옵티머스 고문(전 검찰총장)이 올해 5월 이재명 경기도지사를 만나 광주시 봉현물류단지 사업 인허가와 관련해 문의했다는 내용이 펀드 하자 치유 문건에 있다고 지난 9일 보도했다.

이 지사는 전혀 불가능한 허구라고 의혹을 정면 반박한 상태다.

이-이
연루됐나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옵티머스 관련 업체인 트러스트올서 복합기 임대료를 지원받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에 이 대표 측은 “복합기를 빌려준 당사자가 트러스트올과 연관이 있다는 것을 보도로 처음 알았다”며 “지급되지 않은 월 11만5000원가량의 대여사용료에 대한 정산 등 조치를 선거관리위원회 지침에 따라 이행할 예정”이라고 해명했다. 

보수야권은 라임·옵티머스 사태를 권력형 게이트로 규정하고 엄정 수사를 촉구했다.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강 전 수석 의혹이 불거진 후 “라임·옵티머스 사태는 우리나라 금융질서를 교란하는 권력형 비리 게이트라는 의혹을 가질 수밖에 없다”며 “여권 인사들이 투자자들 호주머니를 털기 위해 권력을 동원해 어찌도 그렇게 치밀하게 팀플레이를 펼쳤는지 상상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는 국정감사 대책회의서 강 전 수석과 민주당 이낙연 대표,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실명을 거론하며 “서민의 등을 치고 피눈물을 뽑아낸 사기 사건에 정권 핵심 실세들의 실명이 거론되는 것도 모자라 이런 정관계 로비 의혹을 검찰이 공공연하게 뭉개고 있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측은 특검 도입을 촉구하고 있다.

정치권에선 라임·옵티머스 사태를 ‘제2의 바다이야기’라고 보는 시각이 존재한다. ▲서민이 피해자라는 점 ▲정관계 로비 의혹이 있다는 점 ▲조폭 연루설이 불거진 점 ▲보수야권이 권력형 게이트로 규정했다는 점 등이 닮아있다. 


국민의힘 허은아 의원은 지난 13일 “단언컨대 이번 라임·옵티머스 펀드 게이트가 문재인정권의 ‘바다이야기’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잠룡 1·2위 이름도…
여권 정치인 줄소환

같은 당 김웅 의원 역시 지난 7월 언론 인터뷰서 라임·옵티머스 사태를 ‘제2의 바다이야기’로 규정한 바 있다. 공교롭게도 바다이야기 사태는 참여정부서, 라임·옵티머스 사태는 참여정부의 정신을 계승한 문재인정부서 불거져 눈길을 끈다.

사행성 성인오락물인 바다이야기는 박연차 게이트와 함께 참여정부를 뒤흔든 사건으로 꼽힌다. 일확천금을 노리는 사람들이 심각한 중독에 빠져 재산을 탕진해 자살하는 사람까지 나와 사회적 이슈가 됐다. 연간 100만명이 바다이야기에 매달린 것으로 추산된다. 이 사건으로 9조원 단위의 서민 자금이 증발했다.
 

▲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당시에도 여권 인사 연루설이 불거졌다. 친노 인사들 다수가 게임기 제조 회사와 관련돼있다는 소문이었다. 이어 유진룡 전 문화관광부 차관이 경질되자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은 유 전 차관이 바다이야기 허가에 제동을 걸었기 때문에 경질됐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더해 노무현 당시 대통령의 조카가 바다이야기 제작사의 코스닥 우회상장에 연루돼 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당시 한나라당은 바다이야기 사태를 참여정부 최대 게이트로 규정, 검찰 수사와 감사원의 철저한 감사를 거듭 촉구하는가 하면 청문회와 국정조사는 물론 당내 권력형 도박게이트진상조사특위까지 구성해 여권을 공격했다.

조폭 연루설도 닮아있다. 바다이야기를 수사한 특별수사팀은 신영광파, 국제PJ파, 그랜드파 등 15개 조직이 사행성 게임장과 상품권 유통 등에 깊숙이 개입한 사실을 적발했다. 옵티머스 사태 역시 펀드 중 상당액이 공갈·협박 등 폭력 전과가 있는 이모씨에게 집중 투자된 것으로 알려지는 등 조폭 연루설이 나오고 있다.

민주당 측은 라임·옵티머스 사태를 권력형 게이트로 규정한 보수야권에 근거 없는 정치공세라고 반박하고 있다.

특검으로
넘어갈까

김태년 원내대표는 지난 15일 “권력형 게이트란 권력을 가진 사람이 부당한 이익을 취하거나 불법행위를 도와주기 위해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라며 “라임·옵티머스 사태는 범죄자들의 금융사기 사건이다. 정부여당을 공격하기 위해 아무 데나 권력형 게이트라는 ‘딱지’를 갖다 붙이고 공격의 소재로 삼으려는 것은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검날의 끝 금감원→민정실?

서울중앙지검이 옵티머스자산운용(이하 옵티머스) 펀드 환매 사태 수사 인력을 확충한 가운데 금융감독원(이하 금감원)에 이어 수사의 칼끝이 청와대 민정수석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예상이 나온다. 

옵티머스 수사팀의 1차 목표는 옵티머스 펀드에 대한 금감원의 부실 감독 여부를 가려내는 데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앞서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조사부(부장검사 주민철)는 윤모 전 금감원 국장의 자택을 압수수색한 후 확보한 자료를 검토 중이다.

윤 전 국장은 지난 2018년 4월 옵티머스 측에 하나은행 관계자 등 금융권 인사를 소개시켜줬다.

검찰은 금감원이 옵티머스 펀드를 제대로 심사하지 않고 승인한 채 부실 감독한 배경에 윤 전 국장을 비롯한 금감원 고위 간부가 있을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이후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대한 수사로 확대될 수 있다.

민정수석실 행정관이 옵티머스 사태의 핵심 인물로 등장해서다. 또 다른 민정수석실 직원이 지난해 옵티머스의 로비스트로 지목된 신모 전 연예기획사 회장의 강남 사무실에 오갔다는 증언도 나왔다. 

민주당은 옵티머스 사태를 ‘금융사기사건’이라고 규정하지만, 민정수석실 사람들의 연루 의혹이 쏟아지고 있는 상황서 수사에 나서지 않는다면 부실 수사 비판에 직면하게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법조계 안팎서 나온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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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