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배우를 보고 영화관으로 향하는 관객이 적지 않다. 때로는 좋아하는 배우 때문에 영화관을 찾았다가 실망감만 잔뜩 안고 돌아가는 경우도 있다. 이는 배우에 대한 신뢰감과 연결된다. 따라서 좋은 작품을 꾸준히 잘 고르는 것도 배우의 능력 중 하나다. 연기력만큼은 탁월한데, 가끔 이해되지 않을 출연으로 의아함을 주는 배우들이 있다.
배우들이 작품을 고르는 기준은 비교적 선명하다. ‘이야기에 흥미가 있을 때’나 ‘캐릭터가 워낙 매력적일 때’ ‘비록 분량은 적어도, 감독이나 제작사와 일을 해보고 싶을 때’ ‘혹은 과거의 인연 때문에’ 등이 있다. 여러 이유로 작품을 선택하지만, 모든 작품이 호평을 받지는 못한다. 때로는 지나치게 엉성한 모양새로 혹평을 받기도 한다. 특히 배우 마동석과 이성민, 박희순은 뛰어난 실력을 인정받으면서도, 때로 예상 밖의 작품을 골라 신뢰감에 타격을 입기도 한다.
[마동석]
배우 마동석은 국내서 가장 유니크한 배우 중 하나다. 작고 여리여리한 배우들 사이서 우락부락한 몸집만으로도 그는 특별한 존재다. 누구보다도 강렬한 인상을 지닌 그는 때때로 귀엽기까지 하다.
영화 <부산행>서 좀비를 단숨에 때려잡은 뒤, 임신한 아내(정유미 분)로부터 혼이 나는 모습만으로도 그가 가진 매력의 스펙트럼이 얼마나 넓은지 알 수 있다. 의상 코디네이터 역할을 맡은 <굿바이 싱글>이나 ‘힘 센 동네 바보형’이었던 <시동>, 진실의 방으로 범죄자를 끌고 가거나 장첸(윤계상 분)과 맞붙기 전 ‘싱글’임을 고백한 <범죄도시>서도 그의 매력은 상당했다. 연기의 폭이 넓다는 것은 그만큼 다양한 인물을 훌륭히 표현해낸다는 것.
그의 매력을 알아본 마블사가 ‘엄청나게 강력한 힘을 자랑하는 히어로’ 길가메시(영화 <이터널스>)로 낙점할 정도니, 마동석의 연기력은 세계적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그런 그가 꼭 좋은 작품만 선보인 것은 아니다. ‘마동석 장르’라 불리는 영화들이 대부분 혹평을 받았다. 여기서 마동석 장르란 힘센 마동석이 악당을 깨부수는 서사를 가진 일부 작품을 일컫는다. 영화 <함정> <살인자> <동네사람들> <악인전> <성난황소>가 그 대표적인 예다.
이 작품들에서 마동석은 불의에 맞서 악당을 흠씬 두들겨 패는 역할이다. 그가 휘두르는 주먹으로 통쾌함도 분명 존재하지만, 기시감이 너무 강하다는 단점도 있다. 아울러 지나치게 폭력적인 장면이 많거나, 여성이나 어린 아이가 과도한 피해를 입는 장치로만 사용돼 불편함을 주기도 한다.
영화계 의리파로 잘 알려진 그는 과거부터 알고 지낸 감독들과의 인연을 중시해 작품을 선택한 사례가 적지 않다. 마동석 주연 영화를 통해 입봉한 감독이 줄을 잇는 것이 그 방증이다.
의리로 작품을 선택하는 것 자체는 응원할만한 일이지만, 그가 소모적으로 사용되는 것은 배우 개인은 물론 관객에게도 손실이다. 영화 산업의 최정점에 있는 미국마저도 인정한 마동석이기에, 그의 이미지만 소모되는 영화는 당분간 출연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성민]
연극 극단 출신 배우 이성민은 다작 출연으로 유명하다. 주인공 혹은 비중 있는 조연으로 작품활동을 가리지 않는다. 영화와 드라마를 넘나들며 좋은 작품으로 관객과 시청자와 만나고 있다. 대부분 괜찮은 연기를 뛰어넘는 훌륭한 연기로 감동을 주곤 한다.
MBC <골든타임>에선 완벽에 가까운 의사였으며, tvN <미생>의 오 과장으로 인생의 무게를 전달하기도 했고, tvN <기억>에선 죽음을 앞둔 변호사로 삶의 소중함을 깨우쳤으며, 영화 <보안관>에서는 마약범과 호기롭게 다투는 지방 형사로 웃음을 선사했고, <공작>에서는 북한의 경제통으로 통일이라는 꿈을 꿨으며, <남산의 부장들>에서는 독재자 그 자체였다.
신뢰감 얻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유니크한 배우들 기복 있는 이유?
그런 그가 이따금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선택으로 보는 이들을 괴롭게 한다. 밈이란 단어의 부재로 당시에는 사용되지 않았지만, 전국적인 조롱을 받았던 영화 <리얼>, 지나치게 떨어지는 개연성으로 관객의 혹평을 받은 <목격자>와 <비스트>, 그리고 충격의 <미스터 주>까지, 이성민의 최근 행보는 널뛰기 중이다.
언제나 미친 연기를 선보이는 이성민이지만, 일부 영화에선 ‘연기력 낭비’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납득되지 않는 면이 많다. 살인자를 목격했지만 신고하지 못하는 목격자의 모습(<목격자>)이나, 암투를 벌이는 인물 사이서 설득력을 전혀 느낄 수 없는 <비스트>가 그 예다. <미스터 주>는 거의 모든 장면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그럼에도 영화 이후에 ‘배우의 연기만 남았다’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들리는 이유는 이성민의 연기만큼은 탁월했다는 것. 연기력이 아닌 작품성의 기복이 없는 배우라는 숙제를 앞으로 개봉할 <제8일의 밤>과 <리멤버> <대외비:권력의 탄생>을 통해 풀어내길 바라는 관객이 적지 않을 테다.
[박희순]
극단 목화 출신으로 2002년 영화 <세븐데이즈>를 통해 혜성처럼 등장한 배우 박희순도 작품의 질에 있어 폭이 큰 배우다. <세븐데이즈> <맨발의 꿈> <작전>을 비롯해 <용의자> <마녀> <밀정> <1987> 등 출연작도 일품이었으며, 연기 역시 훌륭했던 작품이 적지 않다. 한 번 들으면 잊히지 않는 특유의 보이스 역시 그의 매력을 배가시킨다.
선함과 악함을 동시에 강렬하게 표현하는 그의 연기력은 영화계를 비롯해 국내 관객 대부분이 인정한다. 터프한 외형과 달리 <맨발의 꿈>에서는 귀엽고 재밌기도 하며, <1987>에서는 왠지 모를 나약함도 보인다. 김상옥 열사를 모티브로 해 <밀정>의 문을 열었던 오프닝 시퀀스는 그야말로 박희순의 원맨쇼였다.
그런 그도 필모그래피가 예쁘지만은 않다. <신세계>와 <마녀>를 연출한 박훈정 감독의 실패작인 <혈투>의 주인공이었으며, 신하균 오만석 박희순의 연기로도 연출의 구멍을 메우지 못한 <올레>, 유치하기 짝이 없는 <썬키스 패밀리>, 비록 조연이었지만 워낙 실망스러운 완성도를 보인 <물괴>, 사극 코미디의 한계라 불린 <광대들:풍문조작단>까지, 박희순의 출연작 중에는 의외로 엉성한 작품이 적지 않다.
비록 작품성은 부족하지만, 그 안에서도 기대감을 주는 연기를 보여준 게 박희순이다. 아직까지 차기작 소식이 없는 그가, 다음 작품만큼은 누구나 감탄할 만한 좋은 이야기서 명연기를 선보이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