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최근 스쿨존 내에서 일어난 사고에 관심이 높다. ‘민식이법’ 시행으로 법안 관련 논쟁이 계속되면서 스쿨존 사고를 둘러싼 갑론을박도 나타나는 모양새다. 민식이법이 본격적으로 시행되면서 스쿨존은 혼란의 장소로 떠올랐다. <일요시사>가 스쿨존서 일어난 여러 사건을 조명했다.
스쿨존은 어린이를 교통사고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초등학교 주변 일정 거리 부근을 ‘어린이보호구역’으로 지정해 교통시설과 체계를 어린이 중심으로 변경한 곳을 말한다. 1995년 도로교통법에 따라 어린이보호구역 제도가 도입됐고 ‘어린이보호구역의지정및관리에관한규칙’이 제정됐다.
음주운전 형량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18년까지 5년간 초등학생 보행자의 교통사고 건수는 총 1만4618건이다. 이중 77명이 목숨을 잃었다. 연도별로 2014년 333건, 2015년 3218건·2016년 2966건·2017년 2658건·2018년 2443건으로 건수 자체는 감소하는 추세다.
스쿨존서 발생한 사고는 1743건으로 22명이 사망했다. 2014년 377건·2015년 381건·2016년 345건·2017년 333건·2018년 307건으로 2015년부터 감소세를 유지하고 있다.
스쿨존이 국민적 관심을 받게 된 것은 지난해 9월 충남 아산서 일어난 사고 때문이다. 당시 9세였던 김민식군은 동생(4)과 함께 충남 아산 온양중학교 정문 앞 사거리 인근 횡단보도를 건너다 교통사고를 당했다. 민식군은 병원으로 옮겨지던 중 사망했다. 동생은 온몸에 찰과상을 입었지만 다행히 생명에 지장은 없었다.
사고 이후 어린이보호구역 내 과속단속카메라 설치를 의무화하고 해당 지방자치단체장이 신호등을 우선 설치하도록 하는 ‘도로교통법 일부개정안’과 어린이보호구역 내 안전운전 의무 부주의로 사망이나 상해사고를 일으킨 운전자를 가중처벌하는 내용의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 관한법률일부개정안’이 발의됐다.
민식이법은 지난해 12월1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12월24일 공포됐고 3개월 뒤인 올해 3월25일부터 본격 시행됐다. 앞서 지난해 11월 문재인 대통령은 <2019 국민과의 대화> 생방송서 민식이법에 대해 언급했다.
당시 민식군의 부모가 출연해 눈물을 흘리며 조속한 법안 통과를 호소했고, 문 대통령은 “국회와 협력해서 법안이 빠르게 통과되도록 하겠다”고 답했다. 이후 논의가 급물살을 타면서 법안이 국회 문턱을 넘었다.
지난 9월 아산서 일어난 사망사고
대통령 언급에 법안 초고속 통과
민식이법은 시행과 동시에 과잉처벌 논란이 일어났다. 논란의 중심은 스쿨존서 사고를 낸 운전자를 가중처벌한다는 내용이었다. 개정법은 운전자가 스쿨존서 통행속도 30㎞ 이내를 준수하고 어린이 안전에 유의하면서 운전해야 하는 의무를 위반해 어린이를 사망하게 하거나 상해에 이르게 하면 가중처벌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어린이를 사망에 이르게 한 경우에는 무기 또는 3년 이상의 징역, 상해에 이르게 한 때에는 1년 이상 1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상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운전자가 스쿨존 내 규정 통행속도 30㎞를 지켜도 어린이가 다치거나 사망할 경우 민식이법이 적용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증폭됐다. 교통사고의 경우 과실에 의한 사고일 가능성이 많은데, 음주운전 등 고의에 의한 범죄와 형량이 비슷해 형벌의 비례성 원칙에 어긋난다는 비판이 나왔다.
‘윤창호법’으로 불리는 음주운전 사망사고 형벌은 민식이법과 같은 무기 또는 3년 이상의 징역이다.
지난 3월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민식이법 개정을 청원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이 글에 35만명 이상이 동의를 표해 지난 20일 청와대서 답변했다.
김계조 행정안전부 재난안전관리본부장은 “지난 3월25일 (민식이법으로 불리는)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이 개정 시행된 이후 과잉처벌이라는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어린이보호구역서 기준 이하의 속도를 준수하더라도 사고가 나면 무조건 형사처벌 대상이라는 불안도 있다”고 설명했다.
김 본부장은 “현행법에 어린이안전의무 위반을 규정하고 있고 기존 판례서도 운전자가 교통사고를 예견할 수 없었거나 사고 발생을 피할 수 없었던 상황인 경우에는 과실이 없다고 인정하고 있다”며 “이런 현행법과 기존 판례를 감안하면 무조건 형사처벌이라는 주장은 다소 과한 우려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청와대의 답변에도 불구하고 스쿨존 사고를 둘러싼 논란은 민식이법 시행 이후 계속되고 있다. 최근 경주 스쿨존서 일어난 사고를 두고도 민식이법 적용 대상인지 여부를 두고 누리꾼들의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중이다.
지난 25일 경주 동천동 동천초등학교 인근서 교통사고가 났다. SUV 차량 운전자가 9세 남자아이가 탄 자전거를 뒤에서 들이받은 것. 사고를 당한 남자아이의 누나가 사고 영상을 SNS에 올리면서 누리꾼들의 관심이 폭발했다. 누나는 “남동생이 운전자의 자녀와 다퉜는데, 운전자가 뒤쫓아와 고의로 사고를 냈다”고 주장 중이다.
시행 직후 과잉처벌 논란
법 빌미로 합의금 요구도
사고가 고의인지 과실인지를 두고 논란이 계속되자 경주경찰서는 합동수사팀을 구성했다. 운전자가 고의로 사고를 냈다는 의혹에 대해 집중 수사한다는 방침이다. 이뿐만 아니라 해당 사고가 스쿨존 내에서 일어난 만큼 민식이법 적용 가능성에 대해서도 들여다본다는 계획이다.
교통사고 전문 한문철 변호사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 ‘한문철TV’를 통해 “(경주 사고는) 민식이법 적용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설명했다.
지난 21일에는 민식이법 시행 이후 처음으로 스쿨존서 사망사고가 일어났다. 전북 전주덕진경찰서에 따르면 지난 21일 낮 12시15분경 덕진구 반월동에 있는 스쿨존서 2세 남자아이가 불법유턴을 하던 차에 치여 사망했다. 사고 당시 엄마와 함께 있던 남자아이는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사망했다.
법원은 해당 운전자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한 상태다.
스쿨존서 난 사고도 아닌데 민식이법을 언급하면서 합의금을 요구한 사례도 있다. 한문철 변호사는 지난 18일 ‘이렇게 튀어나온 아이를 어떻게 피하죠?’라는 제목의 영상을 자신의 채널에 게재했다. 영상 속에는 차량이 코너를 돌아 골목에 진입해 달려가는 순간 갑자기 아이가 식당에서 튀어나오는 장면이 담겼다.
운전자는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아이는 차량 오른쪽 부분에 부딪힌 뒤 쓰러졌다. 차량 운전자는 50㎞ 속도제한 도로서 20∼30㎞ 미만으로 운행하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아이를 데리고 식당 안으로 들어가 아이 부모에게 사고 사실을 알리고 연락처를 교환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아이의 몸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연락을 시도했지만 되지 않았다”며 “이후 아이 부모가 민식이법 적용 사례라며 보험사에 합의금으로 150만원을 요구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보험사는 저와 협의 없이 106만원에 아이 부모와 합의했다”고 덧붙였다.
개정될까?
운전자는 “스쿨존도 아닌 곳에서 느닷없이 달려 나온 아이의 행동으로 발생한 사고를 무조건 민식이법으로 접근해 합의부터 먼저 하려고 한 아이 부모를 이해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한 변호사는 “해당 사고는 절대적으로 운전자에게 잘못이 없다”며 “경찰에 민식이법으로 접수해봤자 ‘공소권 없음’으로 접수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