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드라마 속 리더십 ‘해부’

괴짜 주인공들의 진짜 정의감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요즘 ‘라떼 꼰대’라는 말이 유행이다. 무슨 말만 나오면 ‘나 때는 말이야’라며 과거의 자신을 자화자찬하는 일부 사람들을 비아냥거리는 말이다. 나이 많은 어른을 무조건 꺼리는 것이 아닌, 무용담을 늘어놓는 데 급급한 어른을 싫어하는 요즘 세대의 인식이 담겨있다. 그렇다면 이상적인 어른은 어디에 있을까? 대중은 종종 드라마 캐릭터를 통해 그런 갈증을 해소한다. 현실과 판타지를 오고 가는 듯, 카타르시스를 던져주는 드라마 속 인물은 누가 있을까.
 

▲ 이태원 클라쓰 박서준 ⓒJTBC

최근 종영한 SBS <낭만닥터 김사부2>(이하 <김사부2>)와 <스토브리그>, 현재 방영 중인 JTBC <이태원 클라쓰>(이하 <이태원>)가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김사부2>와 <스토브리그>는 최고 시청률 27.1%(닐슨코리아), 19.1%로 종영했으며, <이태원>은 12.6%를 기록 중이다. 시청률 5%를 넘기는 것조차 버거울 뿐 아니라, 15%가 엄청난 ‘대박’이라 평가받는 현 드라마 시장서 남긴 놀라운 결과다.

3인의 리더십

세 드라마의 공통점은 현실서 보기 힘든 리더가 존재한다는 점. <낭만닥터 김사부> 김사부(한석규 분) 과장, <스토브리그> 백승수(남궁민 분) 단장, <이태원 클라쓰> 박새로이(박서준 분) 사장이 그 인물들이다. 

세 사람은 뚜렷한 소신과 신념을 앞세워 동료들을 이끌고 나간다. 힘 있는 자들의 불의 앞에서 굴복하지 않을 뿐 아니라 약자 앞에서는 포용력을 발휘한다. 마치 주머니 속 송곳처럼 툭 튀어나온 것 같은 이미지의 인물들이다. 

답답한 현실에 순응하기보다 소신에 따라 맞서고 싸운다. 아울러 함께하는 사람들에게 기회를 제공하고 책임질 줄 알며,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비전을 제시한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굳이 모난 돌이 되어 세상의 비바람을 견뎌낸다. 


그 반대로 일에 미쳐서 개인적인 시간을 즐길 줄도 모르며 사회성은 어딘가 부족한 듯 보이고, 매번 누군가에게 퍼주기만 하는 기질처럼 분명한 약점과 결핍도 존재한다. 모든 면에서 완벽하게 타고난 리더인 게 아니라,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가며 자신은 물론 주변도 성장시키는 캐릭터인 것. 인물의 기질이 현실감이 있어 더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세 인물은 신드롬에 가까울 정도로 강렬한 파급력을 보인다. 

김사부 : 신뢰의 리더십

<김사부2>의 돌담병원 외과과장 김사부는 그야말로 낭만적이다. 국내에 견줄 자 없는 엄청난 실력을 갖춘 ‘천재 의사’지만, 비즈니스 마인드로 병원을 운영하는 본원에 맞서 시골 병원서 은둔하면서도 최고급 의술을 펼친다. 사회성은 심히 떨어져 보이며 괴팍하고 거칠기도 하다. 그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가치는 ‘환자의 생명’ 뿐이다. 의사의 본분 외에 어떤 것도 타협하지 않는다. 

망한 병원의 내부고발자로 찍혔거나 이론은 뛰어나지만 수술실에선 울렁증 때문에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등 일반적인 시선서 부족함이 있는 후배 의사들의 잠재력을 발견하곤 기회를 제공한다. 답을 먼저 알려주기보다는 생각하게 만들고, 끝까지 신뢰하며 희망적인 시선을 유지한다. 후배가 올바르지 못한 방향으로 나아가려고 할 때 비로소 중심을 잡아준다.

‘사부’를 자처하면서도 자리에 주어진 칼을 휘두르지 않고, 오히려 솔선수범하며 함께하는 사람들을 살뜰히 챙기는 김사부는 현실에서 보기 힘든 낭만적인 리더다. 

끝까지 믿어주고 남이 우선 가치 
손해 보더라도 안고 가는 아량도

완벽해 보이지만 그 안을 들춰보면 완벽하지 않다. 개인적 삶이 없는 워커홀릭인 데다 아픈 걸 숨기면서까지 일에 매달려 주위를 걱정시키는 인물이다. 워커홀릭 대부분이 그렇듯 옆에 있는 동료들도 일하게 만들어 피곤하다. ‘미움받을 용기’ 따윈 없는지, 예고 없이 갑작스럽게 정을 주는 행동들은 김사부만의 매력 포인트다.


아울러 본원서 짜놓은 함정의 판을 모두 읽고 대비책을 마련해 두거나 기회를 얻은 후배들에게 진심 어린 조언을 남기는 김사부의 리더십은 이 드라마의 제목이 왜 ‘낭만 닥터’인지 충분히 짐작케 한다. 

백승수 : 효율의 리더십

만년 꼴찌 프로야구 팀 ‘드림즈’ 단장으로 부임한 백승수에게 주어진 숙제는 꼴찌 탈출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우승 후 해체’다. 지역민심 때문에 억지로 야구팀을 끌어안은 모기업은 애물단지 드림즈를 타 기업에 팔거나 해체하길 바란다. 

그런 상황서 백승수는 드림즈의 곪고 부패한 인물들을 콕 짚어 처단하거나 18승 선발투수 강두기(하도권 분)나 몸은 성치 않지만 타고난 분석능력을 갖고 있는 백영수(윤선우 분)를 영입하고, 진심으로 팀을 위해 일하는 양원섭(윤병희 분)을 승진시키는 등 철저히 능력 중심의 인사를 기용한다. 
 

▲ 낭만닥터 김사부2 한석규 ⓒSBS

백승수 역시 빈틈이 존재한다. 트레이드부터 전지훈련 등 구단 업무 전반의 회의자료를 직접 완벽하게 만들어버리니 주변 동료들이 초라해진다. 본인을 위해 회식 자리를 준비한 동료들에게 “저는 빠지겠습니다”라며 ‘백승수 없는 백승수를 위한 회식’을 만들기도 한다. “핑계 대기 시작하면 똑같은 상황에 또 지게 됩니다” 등 돌려 말할 줄 모르는 화법으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신임 단장으로 여겨질 수 없을 정도로 능수능란할 뿐 아니라 신출귀몰하게 대안을 마련하는 능력으로 모래알 같던 프런트와 선수, 코칭 스태프를 똘똘 뭉치게 한다. 결국 자신은 드림즈서 빠져 나오게 되지만, 그 희생은 드림즈를 지켜낸다. 백승수로 인해 올바른 시스템을 갖추게 된 드림즈는 일취월장한 결과를 얻는다. 

“어쭙잖은 신뢰 때문에 더 큰 손실을 야기하는 것도 부조리”라며 정확하게 업무를 수행하는 것에 목적을 둔 백승수의 효율의 리더십은, 현 직장인들이 가장 바라는 리더의 형태일지도 모른다. 

박새로이 - 포용의 리더십

동명 웹툰을 기반으로 한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의 박새로이는 불합리한 세상 속에서 고집과 객기로 맞서는 인물이다. 아버지가 정해준 ‘소신 있게 살자’를 삶의 기준으로 정하고 산다. 그러다가 인생이 심하게 꼬여버린 케이스다. 재벌가의 악행과 이에 동조한 경찰로 인해 고등학교를 퇴학당하고 감옥살이를 했으며,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난 상황서도 굴복하지 않는다.

15년짜리 계획을 세우고 아버지의 목숨을 앗아간 국내 최대 요식업 기업 ‘장가’에 맞서기 위해 이태원에 포차를 차린다. 

미성년자임을 속인 손님에게 술을 팔았다가 2개월 영업정지를 당했음에도 훌훌 털어버릴 줄 알며, 요리를 못하는 요리사를 내쫓자는 매니저의 의견을 뒤로하고, 더 많은 월급을 주며 ‘더 맛있는 음식을 제공해달라’는 요구만 한다. 박새로이가 운영하는 단밤의 건물을 사버린 장대희(유재명 분) 회장이 아들 장근수(김동희 분)를 돌려보내고 ‘무릎 꿇고 사과하면 계속 장사할 수 있게 하겠다’는 협박에도 꿋꿋하게 대응하며, 장근수를 내보내자는 조이서(김다미 분)에게 매니저 자격이 없다며 일갈하기도 한다. 

당장은 손해를 좀 보더라도 미래를 내다보며, 강자 앞에서는 강하게, 약자 앞에서는 누구보다도 수용적으로 대하는 박새로이의 태도에 시청자들은 ‘새로이 앓이’를 하고 있다. 주류 사회서 부족하게 볼 수밖에 없는 조폭 출신, 트렌스젠더, 고졸 출신 매니저는 물론 악연을 가진 라이벌 회장의 아들까지 자기 사람으로 만들어낸다. 그의 포용력은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흔히 볼 수 있는 이기심의 반대편서 흐뭇한 미소를 짓게 만든다. 


세 주인공은 꾸밈없이 소통할 줄 아는, 기대고 싶고 의지하고 싶은 어른이다. 그들은 정의롭지 못한 부조리에 맞서며, 대의를 위해 희생할 줄 아는 책임감도 갖고 있다. 딱히 뚜렷한 러브라인이 존재하지 않는 세 드라마가 큰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요즘 대중이 보고 싶은 리더상을 제공함은 물론 설렘도 안겨주는 점 때문이다.

현실과 대립

대중은 소신 있고도 따뜻하게 막막한 현실과 대립하며, 힘이 들어도 끝내 극복해내는 인물을 통해 쾌감을 만끽한다. 앞서 “<기생충>이 혁명을 제시하냐”는 한 외신기자의 질문에 대한 봉준호 감독의 답변처럼, 세상이 너무 복잡해져서 ‘척결의 대상’이 불분명해지는 이 시대가 진정 필요로 하는 것은 세 사람이 보여준 신뢰와 포용을 중심으로 한 인간에 대한 존중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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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